그 말을 듣고도 고다정은 얼굴을 가리고 머리를 흔들었다.“괜찮아요. 저는 이대로 두는 게 좋아요.”이 말을 듣고, 또 너무 이상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서야 여준재는 뒤늦게 알아챘다.“나는 안 좋다고 생각해요. 상처 회복에 안 좋으니까 말 좀 들어요. 내가 꺼리지 않을 테니 거즈를 떼요.”여준재가 고다정을 달랬다. 깊고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고다정이 그에 매혹돼 잠시 정신이 없는 틈을 타서 여준재가 단번에 거즈를 떼버렸다.고다정의 새하얀 얼굴에 가로놓인 3센티미터 정도 되는 상처가 눈에 확 띄었다.하지만 눈에 거슬리거나 보기 흉한 것은 아니었다.흉터는 고다정의 얼굴에 가로놓여 있지만 치료가 잘 돼서 회복이 빠르고 딱지도 예쁘게 앉아 전체적으로 보면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하지만 고다정은 모른다. 정신이 돌아온 그녀는 여준재가 자신을 주시하자 급히 얼굴 상처를 가렸다.“보지 말아요. 흉해요.”“내가 꺼리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흉하지도 않아요.”여준재는 천천히 부드럽게 고다정의 손을 내리고 흉터에 가볍게 키스했다.그의 이런 태도 때문인지 고다정도 그다지 싫거나 불안하지 않았다.“정말 흉하지 않아요?”“진짜예요. 믿지 못하겠으면 남준이한테 물어봐요.”여준재는 이렇게 말하며 조수석에 앉아있는 구남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서 경고의 뜻을 헤아린 구남준은 흠칫하더니 즉시 맞장구를 쳤다.“정말 흉하지 않아요. 믿지 못하시겠으면 거울을 보세요.”그러고는 어디선가 조그마한 거울을 찾아내서 고다정에게 공손하게 건넸다.고다정은 이를 보고 의아해서 잠깐 멍해졌다. 구남준 같은 사내가 거울을 가지고 다니리라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녀는 이상하게 느끼면서도 거울을 받아 확인했다. 보고 나서 그녀는 여준재의 말을 믿었고, 얼굴에 있는 흉터가 그리 흉하지 않아서 안도감이 들었다.조금 뒤, 두 사람은 빌라에 도착했다.거실에 있던 쌍둥이와 강말숙이 소리를 듣고 마중 나왔다.“아빠 엄마, 돌아오셨어요?
안으로 들어온 고다정과 여준재는 소파에서 두 아이와 놀아주고 있는 여진성 부부를 보았다.동시에 쌍둥이도 그들이 돌아온 걸 보고 신이 나서 뛰어오며 두 사람을 불렀다.“아빠, 엄마. 돌아오셨어요.”여진성 부부도 아이들의 부름 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발견하고 웃으며 반겼다.“너희들 돌아왔구나.”여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다정을 데리고 옆쪽 소파에 와 앉으며 그들한테 물었다.“두 분은 어떻게 오셨어요?”“오늘 주말이라, 원래는 애들을 데리고 나가 놀려고 했는데, 애들이 너희가 병원에 갔다면서 너희들이 돌아와야 나가겠다고 하더구나.”심해영은 상황을 대충 설명하고 고다정의 얼굴에 눈길을 돌려 그녀의 한눈에 뚜렷하게 보이는 붉은 상처 자국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했다.“의사가 뭐라고 하더냐? 얼굴에 흉터가 남을 거라고 하던?”“아니요, 제때 약만 잘 바르면 자국은 서서히 없어진다고 했어요.”고다정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심해영을 안심시켰다.심해영은 그제야 안심한 듯 미간을 펴고 웃으며 말했다.“아니면 됐다. 여자애 얼굴인데 별일 있으면 안 되지. 근데 말이 나온 김에, 이 큰일을 왜 너희 둘은 우리한테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오늘 애들을 찾아오지만 않았으면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 거 아니냐.”“그게……”고다정은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여준재를 바라봤다.여준재가 그녀의 손을 잡고 어머니한테 대신 대답했다.“제가 처리할 수 있어요.”“네가 처리하는 건 하는 거고, 우리는 걱정도 못 해?”심해영은 아들의 말에 심통이 나 퉁명스럽게 여준재를 노려보며 말했다.“알겠어요. 나중에 또 이런 일 생기면 그땐 알려 드릴게요.”여준재는 할 수 없이 어머니를 달랬고, 심해영은 그제야 얼굴에 만족한 기색이 돌았다.“당연히 그래야지.”그러다 또다시 고다정의 얼굴 상처에 시선이 쏠린 그녀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원씨 집안 그년은 정말 미친년이로구나. 감히 우리 여씨 집안사람한테 손을 대? 우리 집안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구나. 이런 년은 절
다음 날 아침, 부자 셋과 같이 아침 식사 중이던 고다정은 또다시 교도소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고다정 씨, 원경하가 어젯밤에 교도소 내에서 자살했어요.”“자살이요?”갑작스러운 소식에 충격받은 고다정은 다급히 물었다.“죽었나요?”교도관은 그녀의 놀란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다행히 저희 교도관한테 제때 발견되어 살려냈습니다만, 고다정 씨를 만나겠다고 강력히 요구하네요. 고다정 씨를 못 만나면 계속해서 자살 시도를 할 모양인데, 와서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어요?”원경하가 살았다는 말에 고다정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교도관의 말을 듣고 그녀는 어이가 없었지만, 생각 끝에 만나는 것에 동의했다.“알겠어요, 만나볼게요. 어디로 가면 되죠?”“시립병원으로 직접 가시면 됩니다.”교도관은 원경하가 치료받고 있는 병원 주소를 알려주었다.알겠다고 전화를 끊은 고다정의 얼굴빛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여준재와 강 할머니도 통화 내용을 얼핏 들었는지라 걱정스럽게 고다정을 바라보면서 물었다.“어쩐 일이에요? 누가 자살했어요?”“원경하가 교도소에서 자살했대요. 제때 발견돼서 다행히 살리기는 했는데, 절 계속 보자고 한다네요. 못 보면 계속 자살 시도를 할 거라고.”애처럼 억지 부리는 원경하의 해괴한 짓거리에 그녀는 기가 차 얘기하다 말고 실소를 터뜨렸다.얼굴에 옅은 화가 깔린 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죽든 살든 알아서 하게 내버려둬요.”“됐어요. 그냥 한번 가볼게요. 어찌 됐든 목숨 하나가 달렸는데.”원경하가 무척이나 미운 건 사실이지만, 의사의 마음이랄까, 눈뜨고 사람이 죽는 꼴을 볼 수는 없었다.여준재는 그녀가 내릴 결정을 대충 짐작하고 있었기에 끝내 말리지는 않았다.“저랑 같이 가요. 마침 저도 오전에 별일 없으니까.”“좋아요.”자기를 혼자 보내면 여준재가 시름을 놓지 못할 것 같아 고다정도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그들의 결정에 강 할머니는 다소 불안해하며 말했다.“가게 되면
원여사가 한 말을 원경하는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그녀는 원망스럽게 원여사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몸이 아프고 일이 있는 게 아니라, 나같이 원씨 집안 명성을 더럽힌 애물단지가 보기 싫은 거겠죠.”“그럴 리가 있니, 경하야.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아.”원여사는 입꼬리를 어색하게 끌어당기며 억지로 변명했다.원경하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날 속이지 마세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날 버렸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어요.”여기까지 생각하니 그녀의 마음속에는 독한 생각이 떠올랐다.“엄마,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진 거, 나 절대 못 참겠어요. 날 좀 도와줘요, 네?”“지금은 내가 널 돕느냐 안 돕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널 도울 방법이 전혀 없다는 거야.”원여사는 매우 후회스러운 표정으로 자책하며 말했다.“네가 이렇게 큰 사고를 칠 줄 알았으면, 애당초부터 널 단단히 가르칠 걸 그랬어.”그녀의 말에 원경하는 속으로 불덩어리가 타 올랐지만, 자신이 생각한 계획을 위해 받아치지 않고 이를 물고 말했다.“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뭐해요. 할 일 못할 일 다 해버렸는데.”원여사는 그녀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원경하가 이어서 말했다.“다른 건 할 필요 없어요. 그냥 제 말대로 소식을 밖에 퍼뜨리기만 하면 돼요.”“무슨 소식?”원여사는 의문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러자 원경하의 얼굴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신문사 하나 섭외해 줘요. 여준재가 자기 여자 때문에 다른 한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어 죽였는데 여씨 집안 세력이 무서워 피해자가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그 신문사에 알려요.”“안돼. 그럴 수 없어.”원여사는 생각지도 않고 거절했다. 그러다 딸애가 발작하려는 기색을 보고 얼른 좋은 말로 타일렀다.“경하야, 엄마 말 좀 들어봐. 우리가 그렇게 한대도, 여씨 집안이나 고다정한테는 별로 큰 영향을 안 끼쳐. 조금만 조사해 봐도 그런 루머는 거짓인 게 금방 탄로가 날 거야.”“누가 거짓이래요?”원경하가 음침한 목소리로 반박했다.원여사는
그 말을 들은 여준재는 재미난 듯 쳐다보았다.“난 당신이 안 물어볼 줄 알았어요.”고다정은 얼굴이 다소 굳어지더니 턱을 살짝 올려세우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그냥 아무 얘기나 해본 거예요.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요.”말하자마자 그녀는 앞으로 총총대며 걸음을 재촉했다. 여준재는 그걸 보고 실소를 터뜨리며 쫓아와 그녀를 잡았다.“아니에요. 그만 놀릴게요. 원경하는 죽지 않았어요.”“다행이네요.”그동안 원경하가 진짜 죽음으로 자신한테 보복할까 봐 내심 걱정했던 고다정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비록 자신한테 실질적인 상해는 없지만, 잇따른 문제도 가볍게 볼 수만은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그런 일 때문에 마음이 꺼림직해지기 싫었다.표정으로 그녀의 속마음을 읽어낸 여준재는 이어서 말했다.“앞으로 죽고 싶어도 못 죽을 거예요. 원씨 집안에서 교도소에 손을 써놔서 특별하게 보살피도록 했어요.”그 말을 듣고 고다정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화제를 계속하지 않았다.아침 식사를 마친 후 그들은 각자 볼일을 보는데 바빴다.여준재는 두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다가 다시 회사로 출근하고, 고다정은 강 할머니와 함께 정원에서 산책하다가 약 밭을 살피러 갔다.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새 저녁이 되고, 고다정은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같이 거들고 있었는데, 이 집사가 밖에서 들어오며 공손히 말했다.“작은 사모님. 꼬마 도련님과 아가씨가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임은미 아가씨와 육성준 씨도 같이 오셨어요.”“네? 은미랑 성준이가요?”놀란 표정을 지은 고다정은 얼른 이 집사한테 분부했다.“마실 것부터 내보내시고요, 제가 여기 일을 끝내고 갈게요.”이 집사는 알겠다 끄덕이고 돌아서서 나갔다.몇 분 뒤, 고다정은 거실로 가서 두 아이와 한창 정신없이 놀고 있는 임은미와 육성준을 보고 걸어가며 웃는 얼굴로 물었다.“너희들 어떻게 왔어? 그것도 둘이 같이?”그녀는 말하면서 그 둘을 야유의 눈빛으로 훑어보았다.“……”그 시선에 둘은 어이가 없어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난 별일 없어, 그저 내 양아들이랑 양딸 보러 왔지. 성준이는 볼일 있을 거야.”임은미는 육성준만 홀랑 팔아넘기고 뒷일은 상관 않은 채 두 아이와 장난치느라 가버렸다.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의아해서 육성준을 바라보며 물었다.“나한테 무슨 볼일인데?”“사실 별거 아닌데, 며칠 후에 내 생일이야. 널 초대하고 싶어서.”그는 서류 가방에서 초대장을 꺼내 고다정한테 넘겨주었고, 고다정은 그걸 받으며 말했다.“아, 그렇구나. 꼭 제시간에 갈게.”말하고 있는 사이에 이 집사가 건너와 저녁 식사를 알리자, 고다정은 두 친구한테 식사를 같이하자고 했다.식사 자리에서 육성준은 고다정 모자 세 사람과 강 할머니만 있는 걸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여 대표님은 저녁에 안 돌아오나 봐?”“준재 씨가 오늘 약속이 있어 늦게 돌아온다고 했어.”고다정은 웃으면서 설명했다.임은미는 육성준을 향해 눈을 희번덕거리며 그를 쏘아붙였다.“여 대표님은 사무가 바쁘신 분이야. 너처럼 맨날 빈둥빈둥 돌아다니는 놈팡이인 줄 아니?”“임은미, 넌 잠깐이라도 나랑 안 다투면 입이 근질근질한 거야?”육성준은 뾰로통해서 그녀를 보았다.원래부터 여준재한테 앙금이 남아있는데 그녀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그의 자격지심을 건드려 화가 잔뜩 났다.그런데도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럴듯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응, 맞아. 어떻게 한 판 더 싸워볼래?”그녀가 도발하며 육성준을 쳐다보자, 그는 부아가 터져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고다정은 그가 정말 화났다는 걸 눈치채고 얼른 분위기를 완화했다. “됐다, 됐어. 그만들 싸워. 하루에 몇 번씩이나 싸우는 거야. 너희들은 참 딱 맞는 한 커플이야."“누가 쟤랑 커플이야? 우린 서로 원수야, 원수.”둘이 이구동성으로 입을 열었다.그러고는 어리둥절해서 서로 마주 보고는 또다시 싫다는 내색하며 머리를 돌렸다.이 모습을 본 고다정은 저절로 웃음이 났다.두 아이와 강 할머니도 참지 못해 소리 내 웃고 말았다.이렇게 웃고 떠들
사람들이 웅성대는 의논 속에서 고다정은 한 손으로 여준재의 팔짱을 끼고 다른 한 손으로 고하윤의 손을 잡고 우아하게 걸어 호텔 내로 들어갔다.호텔 입구에 서서 그들 한 가족이 걸어오는 걸 보던 육성준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고다정한테 농담을 건넸다.“오늘 밤 주인공은 난데, 너희 일가족이 나타나서 다른 사람 시선을 다 빼앗으면 난 어떡하라는 거야?”“그럼 우리 갈까?”고다정도 장난으로 받아치며 여준재한테 팔짱 끼고 가려는 시늉을 했다.그들이 한참 농담을 주고받을 때 육씨 부부가 연회장 안에서 걸어 나왔다.육씨 부부도 여준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놀랍기도 감격스럽기도 해, 어찌 된 일인지 직접 마중 나와 알아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YS그룹과 아무런 친분이 없었으니 말이다. “진짜로 여 대표님이 오셨네요. 여 대표님이 이렇게 자리를 빛내주시니 너무 큰 영광입니다.”육 회장은 굽신거리며 여준재의 앞에 다가와 웃는데 그 모습이 마치 미륵불이 웃는 모습과 같았다.그렇다. 비록 육성준은 준수한 외모와 날씬한 체격의 미남자지만 그의 아버지는 뚱보였다.육 회장의 곁에 섰던 육 회장 부인은 여준재와 인사를 나눈 후, 고다정한테로 시선이 가더니 얼굴색이 약간 변하며 머뭇거렸다.“이건…다정이 아니니?”“네. 육 회장님, 사모님, 오랜만에 봬요.”고다정은 예의 있게 그들에게 인사를 드렸다.육 회장은 그제야 그녀를 알아보고, 그녀가 여준재와 함께 나타난 것에 의아하여 물었다.“진짜 고씨네 그 아이가 맞는구나. 너 그 집안에서 쫓겨났잖아…어떻게 여 대표님이랑 함께 있는 거냐?”자신이 부적절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닫고 육 회장은 급히 말을 돌렸다.그러고는 시선이 또 두 아이한테 가더니 더 놀란 표정이었다.두 아이의 모습이 어찌 봐도 여준재와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두 아이는…”“저와 여준재 씨 아이입니다. 그때 그 아이들이고요.”그들한테 굳이 숨길 이유가 없어 그녀는 스스로 털어놓았다. 그러나 목소리는 아주 작아 그들 몇 사람만 들을 수
몇몇 부인의 말을 듣고 고다정은 그들이 오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어차피 그렇게 될 사정이므로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그녀는 조신하게 그녀들한테 인사를 드렸다.“안녕하세요.”“여 대표 사모님, 안녕하세요.”그녀들과 몇 마디 나누고 나니 어색했던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특히 그녀들과 인사말을 하는 앙증맞은 두 아이의 말소리가 그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어쩜 이렇게 얌전하고 귀여운 애들이 다 있을까? 집에 훔쳐 가고 싶다.”“하윤아, 이모랑 같이 집에 안 갈래? 이모 집에는 장난감도 엄청 많고, 너랑 같이 놀아 줄 오빠도 있어.”“그 집에는 다 개구쟁이들이잖아요. 하윤이를 다치게 하면 어떡해요. 우리 집에 가자, 우리 집은 다 언니들이야, 여자애들끼리 할 말이 많잖아.”사모님들은 서로 두 아이를 자기 집에 데려가려고 다투기 시작했다.애들은 이런 상황을 겪은 경험이 없는지라, 고다정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고다정은 오랜만에 두 아이가 어려움에 부닥친 걸 보고 놀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 일부러 못 본 척하였다.임은미도 고다정의 고약한 취미를 알아채고 아무 소리 없이 그녀와 합을 맞추었다.그리고 그녀한테 가까이 다가가서 익살부리며 속삭였다.“우리 집 하준, 하윤이가 인기 짱이네.”“너 그걸 이제야 알았어?”고다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그러나 두 아이는 엄마와 양엄마가 자기 둘을 내버려두고, 그들끼리만 속닥대며 귓속말하는 걸 보고 속이 매우 답답했다.그와 같은 시각, 연회장에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다.육성준은 눈앞의 고씨 집안사람들을 보며 반갑지 않은 기색이 스쳤다.“고씨 집안에 초대장을 보낸 적이 없는 거로 기억되는데, 여긴 뭐 하러 왔어요?”이 말을 꺼내자, 호텔 바깥의 기타 사람들이 다 이상한 눈빛으로 고경영 부부와 고다빈, 진시목을 바라봤다.진시목은 그 시선에 얼굴이 따가워지며 난처한 기색이었고, 고씨 집안 다른 사람들도 얼굴색이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그들은 육성준이 이렇게 대놓고 그들의 체면을 구길 줄은 몰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