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회실을 나온 원빈 노인은 대기실에서 원진혁을 찾아냈다. 경찰을 통해 이미 상황을 파악한 원진혁이 원빈 노인 곁으로 다가와 묻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보석은 불가능해요. 여씨 집안에서 끝까지 추궁하겠다고 했대요.”이 말을 들은 원빈 노인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조금 뒤 분부했다.“고 선생이 어느 병원에 있는지 알아봐.”원경하가 말한 것처럼 그는 원씨 집안에서 수감자가 나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원씨 집안 명성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회사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그래서 그는 염치 불고하고 여준재와 고다정을 찾아가 사정할 수밖에 없다.원진혁은 할아버지의 속마음을 대충 알아챘지만 여 대표가 사람을 놓아줄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고 선생이 실질적 상해를 입지 않았던 지난번과 다르다.물론 그는 이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서 담당자에게 연락했다.…병원 VIP 병실에서 고다정은 의식이 없는 채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그녀의 이마에는 흰색 붕대가 감겨 있고 얼굴에도 거즈가 붙어있었다.여준재는 안쓰러운 눈빛을 하고 곁을 지켰고 쌍둥이도 병상 양쪽에 엎드려 눈도 깜박하지 않고 엄마를 지켰다.“아빠, 엄마는 언제 깨어날까요?”“내일쯤 깨어날 거야.”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이렇게 대답하자 쌍둥이는 축 늘어졌다.이를 보던 여준재는 고다정을 신경 쓰느라 의사에게 하준이를 보이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급히 일어나 하준에게 다가갔다.“아빠?”갑자기 누군가에게 안긴 하준이는 무의식적으로 옆 사람을 껴안았고 자기를 안은 것이 아빠인 것을 발견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여준재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아까 그 여자한테 배를 차였다고 했잖아. 아빠가 여태 너를 신경 쓰지 못했어. 지금 아빠랑 같이 의사 선생님한테 가보자.”“나도 갈래요.”하윤이도 오빠가 걱정돼 즉시 따라나섰고 여준재는 막지 않았다. 조금 뒤, 세 사람은 의사 사무실에 도착했다. 의사는 그들이 찾아온 이유를 듣고 나서
“제 탓도 있어요. 원경하가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집에 있으니 별일 없으려니 하고 별로 방비하지 않았어요.”고다정이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후회하는 표정을 짓자 여준재가 급해 위로했다.“당신 탓이 아니에요. 당신도 그 여자가 간덩이가 부어 집에서까지 손찌검할 줄 몰랐잖아요.”여전히 안색이 어두운 고다정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원경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그녀는 말하다가 뭔가 생각난 듯 잠시 멈추더니 갑자기 긴장하며 물었다.“참, 원경하 그 여자는요? 제가 기절한 후 또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때 준이와 윤이가 2층 복도에 있었던 것 같은데, 애들이 놀라지 않았어요?”“걱정하지 말아요. 그 여자는 이미 붙잡아 경찰서에 넘겼어요. 하준이와 하윤이는 하준이가 약간 외상을 입은 외에 아무 일도 없어요.”여준재는 하준이가 다친 것에 대해 숨기지 않고 고다정에게 사실대로 말했다.하준이가 다쳤다는 말에 고다정은 걱정하기 시작했다.“준이 왜 다친 거죠? 많이 다쳤어요?”“당신이 그 여자한테 괴롭힘을 당하는 걸 보고 하준이가 그 여자를 물었다가 그 여자한테 걷어차였어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장기는 괜찮고 멍이 좀 심하게 들었을 뿐이라고 하셨어요.”여준재는 고다정이 의식을 잃은 후 발생한 일을 대충 얘기해줬다.다 듣고 난 고다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진짜 악랄한 인간이네요. 이번에는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그녀는 외할머니 생각이 나자 지나간 일인데도 무섭게 느껴졌다.“어젯밤에 외할머니가 친구 집에 가신 게 다행이네요. 집에 계셨다면 얼마나 놀라셨겠어요.”외할머니는 이제 나이가 드셔서 자극받지 못한다.잔뜩 화가 난 여인을 바라보며 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으로 소리 없이 위로했다.한편, 호텔 로열 스위트룸에서 원진혁이 전화벨 소리에 깼다.“진혁 도련님, 말씀하신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고다정 씨는 YS그룹 산하의 사립병원에 있고 사람은 무사합니다.”“알았어요, 수고했어요.”
이 말을 들은 원빈 노인은 또 한 번 가슴이 내려앉았고 원씨 부부도 이 일이 쉽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특히 자기 딸이 감옥 가는 것을 원치 않는 원여사는 마음이 매우 급했다.“고 선생님,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만 저희는 딸이 경하 하나뿐이에요. 얼마를 배상하든 저희 집안에서 다 받아들일 테니 감옥만 가지 않게 해줄 수 없을까요?”이 말이 나오자마자 원빈 노인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아니나 다를까 여준재가 이내 맞받아쳤다.“아니, 저희가 당신네 집안의 그까짓 물건이 없어서 그래요? 지나치다는 걸 알면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원여사는 이 말에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원빈 노인이 낮은 소리로 그녀를 꾸짖었다.“말할 줄 모르면 조용히 옆에 서 있어.”시아버지의 성난 눈초리를 보면서도 원여사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또 뭐라 말하려 했지만 옆에 있는 남편에게 제지당했다.“정말 경하를 구하고 싶으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아버지에게 맡겨.”원호열이 머리를 약간 옆으로 돌리고 둘만 들을 수 있는 낮은 소리로 이렇게 말하자 원여사는 어쩔 수 없이 나오려던 말을 삼켰다.이때 원빈 노인이 원진혁의 손에서 선물함을 넘겨받아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서더니 협탁 위에 올려놓고 사과했다.“여 대표님, 고 선생님, 이 정도 선물로 고 선생님이 받은 상처를 보상할 수는 없겠지만 저의 조그마한 성의니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물건을 가지고 돌아가세요. 조금 전, 준재 씨가 말한 것처럼 저는 그 물건들이 모자라지 않습니다.”이 사죄 선물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고다정은 차갑게 거절했다. 받은 게 있으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여준재도 원빈 노인의 수단을 한눈에 알아채고 얼굴빛이 냉랭해졌다.“원씨 저택에 있을 때도 원경하가 여러 번 말썽을 일으켰고 심지어 다정 씨를 2층에서 아래로 밀었지만 저희는 신수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 문제 삼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희를 호락호락한 사람으로 보셨어요?”“…”말문이 막힌 원빈 노인은 멋쩍게 한마디 했다.“그럴
“말하지 마.”원호열이 경고하자 원여사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정말 경하를 저렇게 버려둘 건가요?”“지금 우리가 버려두는 거야? 전혀 방법이 없잖아. 경하가 무슨 짓을 했는지 한번 생각해 봐. 됐어, 나가자.”아내가 헛소리할까 봐 원호열은 그녀를 끌고 병실을 나갔다.두 사람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이지 못했다. 그들이 자리를 뜨는 것에 대해 원빈 노인도 사실 동의했다.며느리가 어떤 사람인지 그도 잘 아는데, 계속 여기 있다가 무슨 나쁜 말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그도 작별을 고하고 병실에서 나갔다.어느새 원진혁만 병실에 남았다. 여준재는 눈을 찡그리더니 쌀쌀하게 물었다.“아직 용건이 남았나요?”원진혁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미안한 눈빛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고 선생님, 제 사촌 여동생이 한 짓에 대해 제가 여기서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말을 마치고 원진혁은 고다정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고다정은 몸을 옆으로 돌려 그의 사과를 받지 않았다.“진혁 도련님이 저한테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잘못한 건 그쪽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저는 사과를 받고 싶지도 않아요. 원경하가 응당한 처벌을 받길 바랄 뿐이에요.”“그건 당연하죠. 동생이 잘못했으니 대가를 치러야죠.”원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한편, 복도에서 원여사는 원빈 노인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이내 다가가 다급히 물었다.“아버님, 정말 경하를 저렇게 둘 거예요?”“나보고 어떻게 하라고?”원빈 노인은 눈을 치켜뜨고 실망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원여사는 딸이 너무 걱정돼서인지 눈치채지 못하고 속마음을 낱낱이 털어놓았다.“어쨌든 경하를 감옥에 보낼 수는 없잖아요. 감옥에 가면 그 애 인생은 끝장나요. 경하를 외국에 내보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하겠다고 아버님이 고 선생과 여 대표한테 얘기해 보는 건 어때요?”“그런 다음 네가 또 손을 써서 중도에 빼내려고?”원빈 노인은 그녀를 사정없이 비난했다.이 얘기가 나오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다정도 걱정하는 눈빛이다. 어쨌든 얼굴에 난 상처이니 여준재가 개의치 않는다 해도 그녀는 신경이 쓰인다.그러나 더 이상 가족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그녀는 이런 기분을 꼭꼭 숨겼다.여준재가 그녀의 모든 정서 변화를 눈여겨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이 일을 마음속에 기억했다.이때 하준이가 어젯밤에 다쳤다는 말이 생각난 고다정은 꼬맹이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이리 와, 엄마가 다친 데 좀 보게.”“볼 게 없어요.”하준이는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배를 잡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고다정은 포기하지 않았다.“볼 게 없어도 엄마는 볼 거야. 스스로 올 거야? 아니면 엄마가 내려갈까?”어쩔 수 없이 하준이는 엄마한테 다가갔다.아이를 가까이 끌어당겨 옷을 젖히고 배에 있는 눈에 거슬리는 검푸른 멍 자국을 본 고다정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엄마, 이게 그냥 심각해 보일 뿐 아프지는 않아요.”엄마 표정이 바뀌는 것을 눈치챈 하준이는 급히 옷을 내리고 나른한 목소리로 엄마를 설득했다.“엄마, 화내지 마세요. 엄마가 지금 편히 쉬어야 한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어요.”이렇게 철든 아들을 보며 고다정은 마음이 너무 아팠고, 원경하가 응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더욱 굳혔다.여준재도 속으로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날 오후, 그는 구남준을 경찰서에 보내 상해죄로 원경하를 고소했다. 증거가 충분한 까닭에 사건은 이내 수리됐고, 또한 100% 단죄할 수 있다.다시 말하면, 원경하는 실형을 받고 수감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됐다.교도관을 통해 이 소식을 알게 된 원경하는 안절부절못했다.“가족들을 만나게 해주세요. 저기요,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세요.”그녀는 수감실 문을 긁으며 복도에 있는 교도관을 향해 소리쳤다.그녀가 너무 시끄러웠던지 교도관은 편의를 봐줘서 원씨 집안에 연락해 줬다.하지만 원씨 부부 두 사람만 왔고, 이를 본 원경하는 약간 당황해했다.“엄마 아빠, 할아버지는
이 말을 들은 원여사는 그를 째려보았다. 원래는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자기 생각을 실현하려면 이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입을 열었다.“지난번에는 여 대표와 고 선생이 신수 노인의 체면을 봐서 경하를 놓아줬어요. 이번에도 신수 노인이 나서면 경하를 빼낼 가망이 있을 거예요.”아내의 말을 들은 원호열은 잠시 침묵했다. 의외라기보다는 그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딸에 대한 실망이 극에 달했지만 어쨌든 그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다.“그럼 신수 어르신한테 누굴 보낼 거야?”“당신이 가요.”원여사가 생각 없이 이렇게 대답하자 원호열은 기가 막혀 웃었다.“내 체면을 봐줄 거라 생각해?”“…”원여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을 지켰다.원호열이 말을 이었다.“지금은 아마 아버지도 신수 어른신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을걸.”이 말이 나오자 원여사는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눈빛이 단호해졌다.“신수 어르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동의할 때까지 일어나지 말아요.”“진짜 그러려고?”원호열이 놀라자 원여사는 침울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정색했다.“내가 농담하는 것으로 보여요? 차를 돌려 신의약방에 가요.”마지막 두 마디는 기사가 들으라고 한 말이다.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사람을 태우고 신의약방에 갔다.운이 좋았던지 신수 노인이 마침 약방에 있었다.이들 부부를 싫어하지만 원빈 노인의 체면을 봐서 그는 두 사람을 만나주었다.자리에 앉은 후 신수 노인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건지?”“신수 어르신, 부탁할 일이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나요?”원여사가 눈시울을 붉히며 애원하자 신수 노인은 그녀의 표정에 깜짝 놀랐다.“천천히 말해봐. 무슨 일이야?”하지만 원여사는 울기만 하고 감히 말을 못 했다.신수 노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약간 귀찮아했다.자기가 입을 열길 기다린다는 걸 모를 리 없는 원호열은 어쩔 수 없이 염치를 불고하고 중요한 것은 피하고 지엽적인 것만 골라가며 자초지종을
원여사는 원호열의 시선을 느끼고 차갑게 말했다.“신수 어르신이 경하를 구해주겠다고 약속할 때까지 나랑 여기서 무릎 꿇고 있든가, 아니면 혼자 가요.”“당신, 이게 무슨 허튼짓이야!”원호열은 그녀를 노려보며 잠시 할 말을 잊었다. 하지만 그녀를 이렇게 혼자 남겨두는 것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결국 함께 있기로 하고 같이 무릎을 꿇었다.이 광경을 본 소연이도 깜짝 놀랐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우리 신경 쓰지 말고 일 보세요.”원호열이 소연이를 향해 손을 저었다.하지만 어떻게 그대로 일하러 가겠는가? 소연이는 신수 노인의 사무실로 달려갔다.“어르신, 어르신, 큰일 났어요.”“난 잘 있거든.”신수 노인이 퉁명스레 말했다.소연이는 숨을 헐떡이며 그 문제를 따지지 않고 화제를 돌려 문밖을 가리키며 말했다.“아까 그 두 사람이 자기들을 도와달라며 무릎을 꿇고 있어요.”“응접실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고?”신수 노인이 깜짝 놀라며 이렇게 묻자 소연이는 머리를 끄덕였다.“어르신, 어떻게 할까요? 설마 꿇고 있게 내버려둘 거예요?”“꿇고 싶으면 꿇으라 해. 신경 쓰지 말고 일 봐.”신수 노인은 어이없어 웃으며 소연에게 나가라고 손짓했다.소연이 나간 후 안색이 확 어두워진 신수 노인은 응접실 방향을 노려보며 코웃음을 쳤다.“원빈 어르신이 반평생을 고귀하게 살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염치없는 아들을 두어서 후반생의 명성을 망치는구먼.”그는 자주 쓰지 않는 휴대폰을 꺼내 원빈 노인에게 전화했다.30분도 안 돼서 원빈 노인이 원진혁과 함께 급히 신의약방에 찾아왔다.일찌감치 소식을 들은 소연이가 두 사람을 보자 즉시 마중 나왔다.“원빈 어르신과 진혁 도련님은 응접실에 있는 두 분을 데리러 오신 거죠? 신수 어르신께서 사람만 데려가고 어르신을 만날 필요는 없다고 하셨습니다.”“알았어.”원빈 노인은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큰아들과 큰며느리가 한 짓이 신수 어르신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음을 잘 알고 있다.그런 까닭에, 응접실에 들어서서 땅에
그날 저녁 무렵 신수 노인은 고다정이 있는 병원을 알아내 병문안을 갔다.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이마와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로 병상에 앉아있는 고다정을 본 그는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어쩌다 이렇게 많이 다쳤어?”“어르신,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그를 본 고다정은 의아해했고 여준재도 의문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침대 옆에 다가선 신수 노인은 숨김없이 사실대로 말했다.“오늘 오후 원호열과 그 아내가 약방에 찾아와서 나한테 딸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어. 그래서 원경하가 또 널 찾아와 말썽을 일으켰다는 걸 알았지.”“사람은 잘 찾는군.”여준재는 콧방귀를 뀌면서 다소 달갑지 않은 눈길로 신수 노인을 바라보았다.신수 노인은 압박감을 주는 그의 시선에서 오해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급히 손을 저었다.“중재하려고 온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그냥 다정이 보러 왔어.”“어르신이 중재해도 소용없어요. 이번에는 절대 원경하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여준재가 자기 입장을 밝혔다.신수 노인은 억지웃음을 지었다.“나도 그 정도 주제 파악은 해. 따져보면, 다정이가 이런 일을 당한 게 내 탓이기도 하지. 다정이에게 원빈 어르신의 치료를 부탁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당하지 않았을 테니까.”말을 마치고 그는 미안한 나머지 한숨을 쉬었다.그가 정말 많이 자책하고 있다고 느낀 고다정은 급히 위로했다.“어르신, 그런 말씀을 하지 마세요. 어르신도 제가 잘되라고, 의술 훈련 기회를 주려고 그러셨던 거죠. 그리고 병을 봐주고 사례금도 받았어요. 다만 원경하가 이렇게까지 날뛰리라고 누구도 생각지 못한 거죠.”“그러게, 원빈 어르신이 평생 쌓은 명예가 원경하 손에 무너진 셈이네.”신수 노인이 탄식했다.이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뭔가 생각나서 걱정스레 신수 노인을 바라보며 말하려다가 멈추었다.그의 표정 변화를 눈치챈 신수 노인이 의아해하며 물었다.“너 무슨 할 말이 있어?”“저와 원씨 집안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어르신과 원빈 어르신의 관계에 영향을 주지는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