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사무실에서 구남준이 여준재에게 아래층 상황에 대해 보고했다.“임광원이 로비에서 대표님을 만나야겠다고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경비가 내쫓아도 다시 돌아와서 쫓아낼 수가 없다고 합니다.”“알겠어, 내가 직접 가볼게.”여준재는 말하며 몸을 일으켜 사무실을 나갔다.내려가면서 임광원이 회사의 경비와 난장판이 된 채 싸우고 있는 장면을 보자 낯빛이 어둡게 가라앉으며 큰 소리로 명령했다.“그만둬요!”그 목소리에 경비와 싸우고 있던 임광원이 자리에 얼어붙더니 홱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여준재를 발견했다.“여준재, 너 드디어 나타났구나.”임광원은 이를 꽉 깨물며 말하고는 꼿꼿하게 여준재를 향해 걸어왔다.다른 사람들은 그의 독기 어린 눈빛에 여준재를 해치려는 줄 알고 황급히 다가와 여준재를 보호했다.덕분에 임광원은 여준재와 두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임광원이 몸부림치며 크게 외쳤지만 애석하게도 여준재의 분부가 없이는 경비들도 손을 놓지 않았다.임광원은 차오르는 분노에 여준재에게 욕을 퍼부었다.“여준재, 네 졸개한테 날 놓아달라고 말해. 너같이 검은 속내를 가진 애가 우리 딸 인생을 망치는 거로 모자라서 이젠 우리 집안을 몰락시키려 하는 거야? 넌 지옥으로 떨어질 거야!”그 말을 듣고도 여준재는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경비들에게 분부했다. “놓아주세요.”경비들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결국 손을 놓았고 자유를 얻은 임광원은 그대로 여준재의 코앞까지 뛰어왔다.그는 단번에 여준재의 멱살을 잡아채고는 이를 꽉 깨물고 물었다.“여준재, 어찌할 셈인 거야?”여준재는 차가운 얼굴로 손을 들어 임광원을 밀어내고는 옷에 진 주름을 살짝 털어냈다.“내가 뭘 하려는지는 이미 우리 아버지가 똑똑히 얘기해준 것 같은데요. 임 씨 집안이 영원히 운산을 떠나든, 이대로 사라지든 둘 중에 하나죠.”그는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고 임광원을 바라보는 눈빛은 온도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차가웠
”고 선생과 준재가 만난 들 안될 것도 없지. 둘 사이에 아이들도 있고, 감정도 깊은 데 이렇게 애를 쓸 필요가 있을까, 우리 가족 관계에도 영향을 끼치고 말이야.”여진성이 속마음을 털어놨다.심해영은 말문이 막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를 몰랐다.그때 여진성이 말을 이었다.“항상 우리 준재에게 필요한 건 현모양처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몇 번이고 원 씨네든 임 씨네든 여준재의 능력은 충분히 입증됐으니 현모양처는 필요 없을 것 같아. 그럼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고르게 하는 것도 좋지. 그리고 고 선생도 장점이 없는 것도 아니지, 신분이 특출난 건 아니지만 고대 한의학 계승자를 사부로 모시고 있다고 하고.”“지금 그런 말을 하시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이미 미운털이 박혀버렸는데, 지금 우리 친손주마저 보지 못하게 됐잖아요.”심해영은 우울함과 후회에 가득 찬 채 말했다.여진성은 그녀의 시무룩한 모습에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애들이 오지 않으면 우리가 찾으러 가면 되지. 이미 준재가 이번 주 주말 고 선생과 아이들을 데리고 승마장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어. 이 기회에 두 아이에게 승마술 좀 가르쳐줄 셈이야.”심해영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는 고개를 숙이고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럼 도우미에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 좀 준비시키라 해야겠어요.”같은 시각, 임 씨네 별장에서신해선은 클럽 직원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안녕하세요, 임 대표님이 지금 클럽에서 만취하셔서 데리러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아, 네. 바로 가도록 하죠.”신해선은 전화를 끊고는 집사에게 차를 대기시키라 분부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클럽에 도착하자 룸에서 만취한 임광원이 보였고 저도 모르게 눈썹이 찌푸려졌다.“여보.”그녀는 임광원을 부르며 그에게 다가갔지만 임광원은 본 척도 하지 않고 술병을 잡은 채 바닥에 앉아 고개만 숙이고 있어 표정을 알아채기도 힘들었다.신해선은 그 상황을 보고는 수려한 눈썹을 또다시 크게 찌푸렸다.특히 룸 안에 풍기는 진한 알코올
임초연은 어머니의 말을 듣더니 경악을 금치 못하고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혔다.“여준재가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그녀는 주먹을 꽉 말아쥔 채 이를 바득바득 갈며 가슴속으로는 타오르는 분노를 느꼈다.하지만 지금 화를 내봤자 소용없는 일이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귓가에 어머니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그 여준재라는 놈, 널 이렇게 만들어놓고도 끝장을 보겠다는 거지. 그 고 씨 성의 못된 년은 아무 일도 없고. 양심도 없지, 우리가 증거를 못 찾아낸 게 한이야, 아니면 여준재가 지금처럼 막 나갈 수 없었을 거다!”임초연은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마음속에는 충동이 일었다.“여준재를 찾아가야겠어요!”말을 뱉고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려 했고 신해선은 잠시 멍해 있더니 황급히 따라 나가며 막았다.“초연아, 거기 서!”임초연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단숨에 계단까지 걸어가더니 종종걸음으로 내려갔다.어쩔 수 없이 신해선도 속도를 높여 쫓아갔고 바로 그때 뜻밖의 사고가 발생했다.슬리퍼를 신은 신해선의 발이 삐끗하더니 새된 비명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고 그 소리를 들은 임초연이 고개를 돌리자 어머니가 자신의 위로 와락 넘어지는 모습이 보였다.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둘은 함께 고꾸라져 데굴데굴 계단을 굴러 내려왔다.임광원이 소란을 듣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자 자신의 아내와 딸이 계단 입구에 넘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고 당장 다가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뭐 하는 거야?”신해선은 바로 대답하지 못한 채 임초연의 손목을 꽉 잡고 다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엄마 말 들어, 여준재를 찾으러 갈 생각도 하지 마. 이미 널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들었는데 네가 무릎 꿇고 빈들 그가 우리 임 씨 집안을 놓아줄 리 없어.”엄마의 마음으로 쓴소리를 하며 임초연을 설득했고 임초연은 이를 꽉 깨물고는 분노를 표출했다.그녀도 엄마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여준재 앞에서 무릎 꿇고
드디어 기자들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악성 질문들에 임초연이 폭발하고 말았다.“그만 해요! 시집을 가든 못가든 당신들이랑 뭔 상관인데, 우리 임 씨 집안은 운산을 떠나는 것뿐이지 파산당한 것도 아니라니까, 난 여전히 임 씨 집안 아가씨라고!”그녀는 면전의 기자들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분노를 이기지 못하는 모습에 자리에 있던 기자들 모두 그 자리에 멍하니 얼어붙었다.그리고 이 틈을 타 그녀는 옆에 있던 엄마를 끌어당기고 아빠를 부르고는 몸을 돌려 보안 검색대로 향했다.잠시 멍해 있던 기자들이 정신을 차려보니 임 씨 가족은 이미 보안 검색을 넘어 대기실로 들어간 뒤라 더는 인터뷰 할 수 없어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반 시간쯤 지났을까 운산에서 낙성시로 향하는 비행기가 이륙했다.임초연은 퍼스트 클래스 창가 쪽에 앉아 창밖으로 점점 작아지는 운산을 바라보며 눈동자 속 살기가 극에 달했고 아름다운 얼굴은 음침한 악의로 일그러져갔다.‘여준재, 고다정, 가만두지 않겠어!언젠가는 나 임초연이 반드시 돌아와 복수해주지!’...YS그룹, 대표 사무실에서구남준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방 중앙에 선 채 공손하게 보고를 올렸다.“대표님, 임 씨 가족 모두가 운산을 떠나 낙성시로 향했답니다.”“알겠어, 계속 사람을 붙여 예의주시하도록 해.”여준재가 목소리를 낮추고 분부했다.그도 임광원이나 임초연이나 이렇게 쉽게 그만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람을 붙여 감시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대비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구남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처리하러 나갔다.같은 시각, 고다정도 인터넷을 통해 임 씨 집안이 운산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하게 됐다.하지만 별다른 신경은 쓰지 않은 채 그저 하던 일을 계속 집중해나갔다.그날 밤, 여준재가 다름없이 아파트로 와 두 아이와 함께했고 온 김에 치료를 받았다.그때 그가 임 씨 가족의 도피에 대해 말을 꺼냈다.“임초연이 떠나긴 했지만 이번에 큰 손실을 보았는데 절대 가만있진 않을 거예요. 그러니 다정
여진성은 허허 웃으며 두 녀석을 바라봤고 보물인 양 하윤이를 안아 들며 물었다.“우리 보배 손녀 하윤이, 할아버지 안 보고 싶었어?”“보고 싶었어요. 하윤이랑 오빠 모두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하윤이는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에 꿀 발라논 듯 달콤한 말로 대답했고 하준이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심해영은 할아버지와 손주들의 끈끈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질투가 났는지 황급히 다가오며 물었다. “너희들은 할아버지만 보고 싶었고 할머니는 안 보고 싶었어?”“아니에요! 할머니도 똑같이 보고 싶었어요.”하준이가 심해영의 질투 난 모습을 눈치채고는 황급히 뛰어가 다리를 잡고 응석을 피웠다.심해영은 녀석을 안고는 인제야 만족의 웃음을 지었다.고다정은 여준재가 깨워 차에서 내리자 보이는 광경에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어리둥절한 채 여준재를 쳐다봤다.그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여준재가 그녀의 의중을 알아챘는지 손을 저으며 말했다.“나도 저분들이 올 줄 몰랐다면 믿어줄 거에요?”고다정은 고개를 들어 준재의 진심 어린 눈빛을 보며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여준재가 그녀를 속일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며 눈길을 다시 여 씨 부부에게로 옮겼고 눈빛에는 복잡한 심경이 담겨있었다.바로 그때, 임은미가 다가오더니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저 두 분은 누구야?”은미는 여 씨 부부를 몰랐지만 두 녀석이 저 둘과 친해 보였기에 호기심이 들었다.고다정이 대답해줬다. “여 대표님 부모님이야.”임은미는 그 말에 눈을 깜빡이며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친구를 쳐다봤다.“대단하네, 여 대표님 부모님까지 해결하고. 이제 두 사람의 좋은 일도 머지않은 건가?”그녀는 말을 하며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히히 웃으며 어깨로 고다정을 툭 쳤다.이내 능글맞은 눈빛으로 눈썹을 치켜들며 말했다.“너랑 여 대표님 결혼하는 날, 이 들러리에게 사례금 두둑이 챙겨주는 것도 잊지 말라고!”“...”고다정은 친구의 모습을 바라보며 기가 빨리는 기분이었다.그녀는
승마장에 들어선 후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이 고다정 일행을 데리고 말을 보러 갔다.두 녀석은 그들의 망아지를 보고는 기분이 좋았는지 망아지에게 손을 휘휘 저으며 인사했다.“안녕 망아지, 우리가 또 왔어. 우리 기억나?”“후후~”두 녀석의 망아지가 후후 소리를 내며 쌍둥이의 질문에 대답하는 듯했고 이를 본 두 녀석은 더 흥분한 모습이었다.“엄마 이거 봐요, 망아지가 저를 기억하고 있어요.”하윤이가 흥분에 겨워 고다정을 보며 소리 질렀다.하준이는 최대한 감정을 절제했지만 찢어질 듯 올라간 입꼬리가 그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여진성은 아이들이 망아지를 좋아하는 것을 보자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할아버지랑 같이 말을 산책시켜주러 가자.”“좋아요!”쌍둥이는 행복한 듯 자리에서 방방 뛰더니 여진성을 따라 떠났다.심해영은 상황을 보더니 혼자 남아 고다정과 여준재와 함께 하기에는 분위기가 이상해질 가봐 얼른 따라나섰다.더 중요한 것은 그녀도 아이들을 데리고 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이렇게 여준재와 고다정, 임은미 셋만 자리에 남았다.임은미도 눈치 빠르게 여준재와 다정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너희들도 놀러 가. 나는 선생님을 따라 승마나 배워봐야겠어.”“너도 나랑 같이 가자.”고다정은 친구를 혼자 남겨두는 게 마음에 걸렸고 더군다나 여준재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임은미는 그녀가 보내는 눈빛을 보지 못한 듯 단칼에 거절했다.“아니야, 넌 여 대표님이랑 가서 놀아야지. 얼른 가.”“...”고다정은 이 상황에 가슴이 답답해졌다.여준재도 옆에서 바라보더니 고다정의 작은 꼼수를 놓치지 않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는 주먹을 입가에 가져다 댄 채 일부러 마른기침을 하며 웃었다.“고 선생님, 은미 씨는 걱정하지 마세요. 구남준과 함께 승마를 배우라고 할 거니 별일 없을 겁니다.”“고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는 한 친구분도 다치지 않을 겁니다.”구남준이 바로 대답하며 약속했고 고다정을 할 수 없이
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조금 전 확실히 바람 쫓는 기분만 즐기다 고삐를 풀었다고 생각하여 멋쩍게 말했다.“다음번에 조심할게요.”“다음이 어딨어요!”여준재는 진지한 얼굴로 그 말을 정정했다.그러고는 고다정이 이어 답하기도 전에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혹시 말로 달리고 싶다면, 제가 같이 타줄 수 있어요.”“같이 탄다고요?”고다정이 의아해하며 묻자, 여준재가 고개를 끄덕였다.“저랑 같은 말에 타면, 안전은 제가 보장해줄 수 있어요. 게다가 조금 전 달렸을 때보다 기분도 더 좋을 거고요.”여준재는 고다정이 이미 말을 타는 기분을 좋아하게 됐다는 걸 알고는 일부러 이런 말을 건넸다.하지만 실제로도 그건 사실이다.고다정은 조금 전 그 달리는 느낌이 좋았고, 심지어 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싶었다.하지만 여준재와 같은 말에 타면 너무 가까울 것이고 왠지 이상한 느낌이었다.게다가 여준재네 부모님도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말이다.여준재는 현재 고다정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그는 고다정이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씨익 웃더니 말에서 내리고는 바로 고다정이 타고 있는 말에 뛰어오르며 뒤에서 고다정을 껴안았다.고다정은 깜짝 놀란 나머지 굳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그녀는 등 뒤의 뜨거운 온기를 느낄 수 있었고, 수줍은 듯 짜증 섞인 말투로 소리쳤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 얼른 내려요! 말이 우리를 견디지 못하면 어떡하려고 그래요?”“걱정하지 마요. 이게 암컷 말이래도 튼튼해서 두 사람의 무게는 충분히 견딜 수 있어요.”여준재의 담담한 웃음소리가 고다정의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심지어 그의 숨결도 고다정의 뺨에 느껴졌고, 그 숨결을 느낀 고다정은 얼굴에서부터 목까지 빨개졌다.고다정은 당황해하며 몸을 비틀었고, 화를 내며 말했다.“됐고! 빨리 내려요!”하지만 여준재는 듣는 체 만 체하며 고삐를 잡았다.“똑바로 앉아요. 이제 말 달릴 겁니다.”여준재는 두 다리를 말에 꼭 끼운 다음, 손의 승마용 채찍으로 말을 내리쳤다.이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틀이 지나버렸다.지난번 승마장에서 다 같이 재밌게 논 뒤로, 고다정은 여준재 부모님과 사이가 많이 가까워졌다.게다가 심해영은 가끔 두 아이를 자기네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다.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는 강말숙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앞으로 고다정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이상, 그녀의 감정 문제에 대해 더는 간섭하지 않겠다고 전에 그녀가 말한 적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고다정 또한 현재의 조용한 생활에 무척 만족해하고 있었다.그녀는 가끔 여준재와 함께 두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것 외에는 평소에 거의 외출하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며 집에서 의학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다.그날도 그녀는 약방에서 새 약을 제작하고 있는데, 갑자기 외할머니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다정아, 정 선배가 너 찾아왔다.”“네, 나가요.”고다정은 얼른 답한 뒤 가볍게 정리하고 밖으로 나갔다.나가보니 정성재는 거실 소파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다정은 예의상 인사를 건넨 후 바로 질문을 던졌다.“선배, 아주머니 약 가지러 왔어요? 시간상으로 계산해보면, 지난번 가져갔던 약 아직 남아있는 거 아니에요?”비록 지난번에 이미 명확히 정성재를 거절했지만, 그는 그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평소처럼 어머니의 약을 구하러 고다정을 찾아왔다.정성재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고, 고다정이 자신의 진지함과 진심을 알아주길 바랐다.고다정도 그걸 알기에 최대한 정성재와 멀찍이 앉아 그에게 선을 그었다.정성재는 자신과 떨어져 앉은 냉담한 그녀를 보며, 다소 상처받은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전에 가져갔던 약 아직도 남아있어. 내가 오늘 온 이유는, 저녁에 너와 아이들같이 밥 먹으러 가려고 온 거야. 내 친구가 알려줬는데 라이브 공연 레스토랑이 새로 섰대. 거기에 피아니스트 연주도 있고 말이야. 가보면 너도 분명히 좋아할 거야.”“아, 밥은 됐어요. 저 사실 밖에서 밥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해서요.”고다정은 어색한 웃음을 띠며 그를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