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햇빛 아래 커다란 승마장에는 푸른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여준재는 고다정을 이끌고 유유히 걷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는 너무나도 화기애애했다.두 아이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고다정의 휴대폰을 꺼내 두 사람을 위해 사진을 찍었고, 심지어 그 사진을 스토리에 올리기도 했다.스토리에 올리자마자 임은미로부터 문자가 왔다.“여준재 씨랑 승마장 데이트하러 갔어?”“이모, 우리도 있어요.”고하준이 휴대폰으로 임은미에게 답장했다.“뭐야? 승마하러 가는데 아무도 날 안 부른 거야? 섭섭하네!’두 아이가 임은미의 답장을 보고는 안절부절못했다.그들은 다음번에 꼭 부를 거라며 임은미를 진정시켰다.같은 시각, 임초연도 여준재와 고다정이 두 아이를 데리고 승마장에 갔다는 소식을 알게 되자 화가 난 나머지 방 안에 있는 물건을 모두 바닥에 내던졌다.기사가 터진 후로 그녀는 단 한 번도 집 밖을 나간 적이 없었다.몸이 불편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하기 싫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여준재와 고다정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워낙 크게 당했으니 그녀는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고다정은 죽어야 해! 여준재가 사는 게 죽는 것보다 고통스럽게 만들어야 한다고!’그 생각에 그녀는 눈이 벌게진 채로 방을 나서고는 신해선을 찾아 돈을 요구했다.“10억만 주세요.”“그렇게 많은 돈은 왜 필요한데?”신해선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임초연이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돈만 주세요, 너무 많은 걸 묻지 마시고요.”그 말을 들은 신해선이 바로 거절했다.“안 믿어. 10억이 어디 적은 돈이야? 뭘 하려는지 꼭 똑똑히 말해야 해. 중요하지 않은 돈이면 그 돈 줄 수 없어. 아빠 회사도 계속 적자를 내고 있어 돈을 아껴야 한단 말이야.”신해선이 쉽게 돈을 내놓지 않자 임초연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녀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그 일이 있은 뒤로 임광원은 그녀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그녀의 독단적인 움직임에 화가 나 그녀의 카드를 모두
신해선은 생각할수록 그 방법밖에 없다는 걸 확신했다.하지만 남편과 딸을 보니 두 사람은 절대로 여준재에게 뜻을 굽힐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그녀가 이 생각을 포기하려고 할 때, 머릿속에 갑자기 아이디어가 번쩍였다.“아니면 이러는 건 어때요? 두 사람이 여준재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다고 했으니 내가 심해영 부부를 찾아갈게요. 정 안 되면 여씨 집안 어르신에게 한 번 더 연락드리라고 어르신에게 부탁하죠, 뭐. 우리 두 집안의 친분, 그리고 어르신들의 친분을 봐서라도 여씨 집안에서 정말 그렇게 무자비하게 나올까요?”신해선의 말이 일리가 있었지만 임광원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누구를 찾아가든 그에게 있어서는 고개를 숙이는 거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여준재는 그 상황을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그는 고다정과 두 아이를 데리고 온하루 승마장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하루 동안의 연습을 걸쳐 고다정은 말을 잘 타진 못했지만 그래도 혼자 승마를 할 수 있었다.두 아이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집으로 돌아갈 때조차 흥분에 겨워 있었다.“아저씨, 다음에 또 와서 놀면 안 돼요?”고하윤은 아쉬운 얼굴로 하루 종일 탄 망아지를 보며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여준재에게 물었다.여준재는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물론이지. 하윤이가 승마하고 싶을 때 아저씨한테 말해. 그럼 내가 다 준비할게.”“우와, 아저씨 짱이에요!”녀석은 신이 나서 여준재의 품에 와락 안겼다.여준재는 고하윤이 의자에서 떨어질까 봐 다급하게 그녀를 꼭 잡았다.고다정이 그 모습을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얌전히 앉아있어. 아저씨 식은땀 흘리겠다.”“괜찮아요, 하윤이가 즐거워하는데요.”여준재가 괜찮다고 말하고는 활짝 웃으며 품에 안긴 하윤이를 바라봤다.고하윤은 그를 향해 귀엽게 웃어 보이더니 다시 두 눈을 반짝이며 물어다.“그럼 아저씨, 혹시 다음에 와도 저 망아지를 타도 될까요?”“당연히 되지. 아저씨가 깜빡하고 말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저 망아지는 오로지 하윤이의 망아지야. 언제 가도
크고 웅장한 거실에 임광원 부부와 여진성, 심해영이 서로 소파에 마주 앉아 있었다.네 사람의 낯빛은 모두 그다지 좋지 못했고 예전만큼의 친근함은 보이지 않았다.도우미가 차를 올린 후 바로 나갔고 거실은 이상한 침묵에 사로잡혔다.신해선은 옆에 앉은 남편을 한 눈 보고는 아직 체면을 내려놓지 못해 입을 열지 못한다 생각해 먼저 침묵을 깨트렸다.“해영 씨, 해외여행을 했다고 들었어요. 어제 돌아왔다면서요, 그동안 운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먼저 떠보듯 물어봤다.심해영은 그녀를 바라보더니 차갑게 응수했다.“알아야 할 것, 몰라야 할 것 가리지 않고 다 알게 됐네요. 그러니 오늘 온 목적을 직접 말해도 돼요.”그 말에 신해선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지며 마음속으로는 수치심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충분히 좋은 태도로 말을 꺼냈는데 심해영은 가시 돋친 말로 자신을 비웃기나 했다.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억누른 채 평온한 말투로 천천히 의도를 설명했다.“다들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게 됐으니 더는 긴 말 하지 않을게요. 당신네 준재가 전담 의사 하나를 위해 우리 집 초연이를 망쳐놨으니 우리 두 가문의 관계도 오늘 이 지경에 이른 거겠죠. 심지어 여기서 끝낸 게 아니라니,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말을 마치며 그녀는 긴장된 얼굴로 여 씨 부부를 쳐다봤다.심해영과 여진성은 바로 눈썹을 찌푸렸다. 여진성은 어이없어 실소가 터져 나왔다.그의 예리한 눈빛이 신해선을 꿰뚫더니 차갑게 대답했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뭐가 그리 지나친 거죠? 임초연이 먼저 우리 고 선생에게 해를 끼친 거 아니었던가요? 거기에 두 아이한테도 해를 입히려 했다니, 고 선생이 우리 준재가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었단 거 임초연이 모를 리는 없겠죠?”“하지만 초연이도 다 준재를 위해서 한 일이잖아요.”신해선이 억울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심해영이 다급하게 말을 끊고는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책임을 우리 준재에게 떠넘기려고 하지 마
구남준의 속마음을 알아챈 듯 여준재가 다시 입을 열었다.“수많은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옛정이 여전할 거라 생각해?”당연히 더 이상의 남은 정은 없을 것이다.남준은 속으로 대답을 하고는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표했다.“어떻게 해야 할 지 알 것 같습니다.” 남준은 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 나갔다.남준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준재는 아버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전화 속 여진성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밤에 집에 좀 들르렴. 나와 엄마가 긴히 할 얘기가 있단다.”“알겠어요.”여준재는 알겠다고 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부모님이 하고 싶은 얘기를 알아채고 있었다.너무 명백하게도 임 씨 부부가 찾아온 일과 연관될 것이었고 현실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그날 밤, 여준재가 집에 돌아오자 여진성이 임 씨 부부가 찾아온 일에 대해 말을 꺼냈다.“오늘 임광원이 나와 네 엄마를 찾아왔단다. 두 집안의 지난 시간 동안 나눠온 옛정과 네 할아버지의 얼굴을 봐서라도 그만해달라고 하더구나.”그는 말을 마치고는 잠시 멈칫하더니 준재에게 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저한테 물으시면 전 당연히 동의하지 않죠.”여준재가 실눈을 뜨고 차갑게 대답했다.임 씨 집안을 용서해준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이 집안사람들은 한 번, 또 한 번 그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했다.특히 그날 밤 자신이 몇 분이라도 늦게 도착했으면 생겼을 끔찍한 결말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거기다 임초연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망쳐놨을뿐더러 자신의 아이까지 해하려 했다.제일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에게 마음이 약해진다는 건 후환을 남겨두는 행동이었다.여진성은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아들을 바라보며 그의 의중을 알아채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임 씨 집안의 뿌리를 뽑아내는 건 불가능 할 거다. 너와 임광원이 대치했던 시간 동안 일어났던 일들은 알고 있어, 지금껏 임 씨네 어르신이 아직 나서지 않았을 뿐이지 그가 직접 나선다면 임
여진성은 그 말에 오히려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다.“임광원 씨,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우리 준재 성격으로는 당신 임 씨 집안을 당장이라도 파산시킬 수 있어요. 지금은 오히려 임 씨 집안이 다른 지방에서 발전할 기회를 주는 건데 활로를 찾아주는 거로 모자라다는 건가요?”“...”임광원은 말문이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이와 함께 여진성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는지 차갑게 한마디 했다.“길은 이미 알려줬으니 어떤 선택을 할지는 당신한테 달렸죠.”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한 편, 임광원도 휴대전화를 내려놓고는 타오르는 분노에 사로잡혔다.“망할 놈의 집안!”한 마디 사자후를 남기더니 책상 위의 모든 물건을 쓸어버리며 분풀이를 해댔다.‘펑’하는 굉음과 함께 유리 재떨이가 바닥에 떨어지며 아래층에 있던 신해선과 방에 있던 임초연까지 놀라게 했고 둘은 임광원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다급히 서재로 향했다.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서재는 이미 엉망진창이 돼 있었고 책꽂이들도 임광원에 의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임광원은 방 중앙에 선 채 새빨개진 얼굴로 가슴팍이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했고 얼핏 봐도 크게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신해선과 임초연은 그가 이토록 극대노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지라 얼떨떨한 눈빛만 보낼 뿐이었다.“여보, 이게 무슨 일이에요. 왜 이렇게 화가 났어요?”“아버지, 무슨 일이에요?”두 모녀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이구동성으로 질문했다.임광원은 그들의 질문에 고개를 들고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대답했다.“여 씨 집안에서 답변이 왔어.”그 말에 신해선 모녀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아무리 봐도 여 씨 집안에서 좋지 못한 소식을 전해왔기에 임광원이 이토록 화가 난 것이 틀림없었다.결국, 현실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두 모녀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임광원의 어두운 목소리가 들렸다.“여준재가 봐주는 건 가능하지만 우리 임 씨 집안 더러 앞으로 영영 운산을 떠나라고 요구했어.”“준재 씨가 뭔데 감히 그런
두 녀석이 자기가 만든 식사를 들고 점수를 따러 가는 모습에 고다정은 화가 나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여준재는 두 녀석의 극진한 대접을 누리며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만족감을 띠고 있었다.강말숙은 그들의 따뜻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이제는 갈수록 가까워져서 부모 자식 같은 모습이 나오는구나.”고다정은 그 말을 듣고는 참지 못하고 진실을 이야기해줬다.“할머니, 저 두 녀석한테 속지 마세요. 오늘 저렇게 점수 따는 건 다 승마장에 가고 싶어서라니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방 쪽에서 그녀의 말을 증명해 줄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준이 하윤이가 여준재를 보더니 기대에 찬 채 말했다.“아저씨, 이번 주말에도 승마장에서 놀면 안 돼요? 이렇게 오래 못 갔는데 망아지가 우릴 잊으면 어떡해요?”그 말에 여준재의 눈빛이 반짝였다.그는 두 녀석의 기대에 찬 모습을 보며 괜히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이번 주? 아마 안될 수도 있을 텐데.”“왜 안돼요? 바쁜 일 있어요?”두 녀석이 다급하게 여준재를 쳐다보자 여준재의 눈동자에 능글맞은 장난기가 서리더니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그때 있을지 없을지는 아저씨가 확신할 수 없어.”하윤이가 그 말을 듣더니 혼란스러웠는지 머리를 긁적였다.“일이 없다 했다가 또 있다 했다가 도대체 있는 거예요 없는거에요?”“이 바보야, 아저씨가 우릴 놀리는 거잖아.”하준이는 여준재의 나쁜 심보를 알아채고는 동생의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꼬마 녀석은 맞은 곳을 문지르며 강력하게 변명해댔다.“당연히 아저씨가 우리 놀리는 거 알고 있거든, 그리고 나도 바보 아니야. 오빠야말로 자꾸 날 때렸다가는 진짜 바보가 될지도 몰라. 그땐 오빠가 책임져야 해!”“난 책임 안 질 건데.”하준이가 일부러 싫다는 표정을 하며 거절했다.한차례 웃고 난 후 결국에는 주말에 승마장에서 망아지를 보러 가기로 약속했다.이때 하준이가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아저씨, 한 사람만 더 데리고
대표 사무실에서 구남준이 여준재에게 아래층 상황에 대해 보고했다.“임광원이 로비에서 대표님을 만나야겠다고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경비가 내쫓아도 다시 돌아와서 쫓아낼 수가 없다고 합니다.”“알겠어, 내가 직접 가볼게.”여준재는 말하며 몸을 일으켜 사무실을 나갔다.내려가면서 임광원이 회사의 경비와 난장판이 된 채 싸우고 있는 장면을 보자 낯빛이 어둡게 가라앉으며 큰 소리로 명령했다.“그만둬요!”그 목소리에 경비와 싸우고 있던 임광원이 자리에 얼어붙더니 홱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여준재를 발견했다.“여준재, 너 드디어 나타났구나.”임광원은 이를 꽉 깨물며 말하고는 꼿꼿하게 여준재를 향해 걸어왔다.다른 사람들은 그의 독기 어린 눈빛에 여준재를 해치려는 줄 알고 황급히 다가와 여준재를 보호했다.덕분에 임광원은 여준재와 두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임광원이 몸부림치며 크게 외쳤지만 애석하게도 여준재의 분부가 없이는 경비들도 손을 놓지 않았다.임광원은 차오르는 분노에 여준재에게 욕을 퍼부었다.“여준재, 네 졸개한테 날 놓아달라고 말해. 너같이 검은 속내를 가진 애가 우리 딸 인생을 망치는 거로 모자라서 이젠 우리 집안을 몰락시키려 하는 거야? 넌 지옥으로 떨어질 거야!”그 말을 듣고도 여준재는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경비들에게 분부했다. “놓아주세요.”경비들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결국 손을 놓았고 자유를 얻은 임광원은 그대로 여준재의 코앞까지 뛰어왔다.그는 단번에 여준재의 멱살을 잡아채고는 이를 꽉 깨물고 물었다.“여준재, 어찌할 셈인 거야?”여준재는 차가운 얼굴로 손을 들어 임광원을 밀어내고는 옷에 진 주름을 살짝 털어냈다.“내가 뭘 하려는지는 이미 우리 아버지가 똑똑히 얘기해준 것 같은데요. 임 씨 집안이 영원히 운산을 떠나든, 이대로 사라지든 둘 중에 하나죠.”그는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고 임광원을 바라보는 눈빛은 온도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차가웠
”고 선생과 준재가 만난 들 안될 것도 없지. 둘 사이에 아이들도 있고, 감정도 깊은 데 이렇게 애를 쓸 필요가 있을까, 우리 가족 관계에도 영향을 끼치고 말이야.”여진성이 속마음을 털어놨다.심해영은 말문이 막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를 몰랐다.그때 여진성이 말을 이었다.“항상 우리 준재에게 필요한 건 현모양처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몇 번이고 원 씨네든 임 씨네든 여준재의 능력은 충분히 입증됐으니 현모양처는 필요 없을 것 같아. 그럼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고르게 하는 것도 좋지. 그리고 고 선생도 장점이 없는 것도 아니지, 신분이 특출난 건 아니지만 고대 한의학 계승자를 사부로 모시고 있다고 하고.”“지금 그런 말을 하시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이미 미운털이 박혀버렸는데, 지금 우리 친손주마저 보지 못하게 됐잖아요.”심해영은 우울함과 후회에 가득 찬 채 말했다.여진성은 그녀의 시무룩한 모습에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애들이 오지 않으면 우리가 찾으러 가면 되지. 이미 준재가 이번 주 주말 고 선생과 아이들을 데리고 승마장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어. 이 기회에 두 아이에게 승마술 좀 가르쳐줄 셈이야.”심해영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는 고개를 숙이고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럼 도우미에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 좀 준비시키라 해야겠어요.”같은 시각, 임 씨네 별장에서신해선은 클럽 직원이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안녕하세요, 임 대표님이 지금 클럽에서 만취하셔서 데리러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아, 네. 바로 가도록 하죠.”신해선은 전화를 끊고는 집사에게 차를 대기시키라 분부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클럽에 도착하자 룸에서 만취한 임광원이 보였고 저도 모르게 눈썹이 찌푸려졌다.“여보.”그녀는 임광원을 부르며 그에게 다가갔지만 임광원은 본 척도 하지 않고 술병을 잡은 채 바닥에 앉아 고개만 숙이고 있어 표정을 알아채기도 힘들었다.신해선은 그 상황을 보고는 수려한 눈썹을 또다시 크게 찌푸렸다.특히 룸 안에 풍기는 진한 알코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