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이 지나서 고다정은 곰탕을 완성하였지만, 여준재에게 직접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병실에 까지 들어가면 진현준이 계속 귀찮게 하기 때문이다.“진 선생님, 이 곰탕을 여 대표님께 다져다 주세요.”말을 마친 고다정은 진현준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곰탕을 그의 손에 쥐어줬다.진현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고 선생님은요?”“저는 여기 곰탕에 들어가는 약재가 떨어져서 사러 가야 해요.”말을 마치고 고다정은 바로 주방에서 나갔다.진현준이 병실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여준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네가 왔어? 고 선생님은?”“삼촌, 우리 엄마는요?”두 아이도 의문의 눈길을 보였다.진현준은 아직 문의 심각함을 느끼지 못한 채 웃으며 말했다.“너희들 엄마는 약재를 사러 갔어.”그리고 또 여준재한테 곰탕을 건네며 말했다.“어서 마셔. 나와 고 선생님이 같이 달인 거야.”여준재는 약을 건네받고 바로 마시지 않고 눈앞에 있는 친구한테 말했다.“앞으로 우리 고 선생 귀찮게 하지 마. 너를 제자로 받지 않을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순간, 진현준의 눈빛이 심각해졌다.“왜 너마저 내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너를 안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하지만 한의학은 배우기 쉽지 않아. 게다가 고대 한의학은 더더욱 힘들어.”여준재는 인정사정없이 말했다.진현준은 그래도 불복하면서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여준재가 먼저 경고했다.“너 매일 이렇게 한가하면 나 원장님을 찾아가서 너한테 일을 더 많이 주라고 할거야.”“...”진현준은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삼키고 조용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자기 와이프밖에 모르는 나쁜 놈.”낮은 소리로 말했어도 여준재는 다 들었다. 하지만 사실이었기에 반박하지 않았다.오후 2시쯤에 고다정이 돌아왔는데 그녀가 병실에 왔을 때는 진현준은 없고 여준재와 두 아이가 자고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안도했다.여준재는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뭘 두려워하는
고다정은 듣자마다 바로 거절했다. 등을 밀어주는 다정한 스킨쉽은 어쩐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구 비서님 불러올게요.”말을 마친 고다정이 다시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문 앞까지 다다랐을 때, 등 뒤로 다시 한번 여준재의 은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 비서 병원에 없어요. 제가 회사로 보냈거든요.”여준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다정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녀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준재는 비록 고다정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여준재는 장난기 가득한 눈을 반짝였다. “난처하시면 안 하셔도 돼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상처를 건드릴지도 모르겠지만요.”말하며 여준재는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수건을 꺼내 몸을 닦았다. 여준재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고다정이 곧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몸을 돌려 여준재 앞에 다가갔다. 고다정은 여준재의 손에서 수건을 가로채 고개를 숙이고 수건을 씻으며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고개를 숙이고 수건을 씻는 작고 가녀린 고다정을 보며 여준재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원하는 바를 이룬 만족의 미소였다. 고다정은 여준재 입에 걸린 그 웃음을 보지 못했다. 수건의 물을 꽉 짜고 고개를 든 고다정의 눈에 다부진 여준재의 상반신이 한눈에 들어왔다. 겨우 정상 온도로 돌아온 볼이 또다시 뜨거워졌다. “그, 저기. 돌아서요.”그러자 여준재는 장난을 그만두었다. 행여 고다정이 도망이라도 갈까, 그는 고분고분 등을 돌려 고다정이 등을 닦을 수 있도록 가만히 있었다. 부끄러웠던 탓인지, 고다정은 말이 없었다. 같은 시각 고다정의 머릿속은 그저 얼른 닦고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일은 늘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라, 사고는 늘 예상치 못하게 일어났다. 고다정이 다시 수건을 씻을 때, 바닥에 물이 묻었던 탓인지 바닥이 굉장히 미끄러웠다. 바닥을 제대로 보지 않았던 고다정은 그만 중심을
병실을 나온 고다정은 멀리 가지 않았다. 그녀는 복도 베란다에 서서 자신의 뜨거운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방금 그건 사고야. 너무 생각하지 말고, 신경도 쓰지 마.”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다정의 심장은 여전히 쿵쾅쿵쾅 뛰어댔다. 그녀는 한참 만에야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몸을 돌려 병실로 향했다. 이제 막 병실 앞에 도착한 고다정은 안에서 나오는 진현준을 보더니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진현준이 올 줄 알았더라면, 조금 늦게 돌아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다정은 이미 진현준에게 시달릴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 하지만 진현준은 스승으로 삼겠다는 얘기 대신 그녀에게 당부했다. “형수님, 마침 돌아오셨네요. 들어가셔서 준재에게 얘기 좀 잘해줘요. 지금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씻으려고 하면 겨우 아문 상처가 또 벌어질 거라고요.”진현준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조금 마음에 찔렸다. 자신이 방금 넘어질 뻔한 것을 여준재가 잡아줬기 때문이었다. 당시 고다정은 여준재의 신음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그리고 입맞춤 때문에... 고다정은 그 일을 까먹고 만 것이다. “알겠어요. 제가 잘 지켜볼게요.”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진현준과 인사를 나눈 고다정이 병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병실에 들어서자, 침대에 누워있던 여준재와 두 아이가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왜 날 봐요?”그들의 시선이 조금 불편했던 고다정은 헛기침하며 물었다. 그러자 두 아이는 고다정에게 눈빛을 보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엄마, 방금 어디 갔었어요?”그들의 의도를 눈치챈 고다정이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어른들 일이야. 애들은 알려고 하지 마.”말하며 고다정은 여준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방금 돌아오면서 진 선생님을 만났어요. 상처가 벌어졌다면서요. 괜찮아요?”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그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여준재는 당연히 고다정이 화제를 돌리고 있다는 것을
다음 날 아침 일찍 고다정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두 아이를 씻긴 후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심해영은 이미 옷을 입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녀와 멀지 않은 곳엔 정리된 캐리어가 놓여있었다. 심해영은 고다정 모자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두 눈을 반짝이며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준아, 하윤아. 이리 오렴.”“할머니, 왜요?”두 아이가 달려가 물었다. 심해영은 아이들을 품에 안고 아쉬운 듯 말했다. “좀 있으면 할머니는 가야 해. 아니면 너희도 할머니랑 같이 가자. 할머니는 너무 아쉬워.”절대 빈말은 아니었다. 심해영은 정말 두 아이를 데려가고 싶었다. 아쉽게도, 아이들은 심해영의 제안을 거절했다. “우리도 할머니가 가시는 게 아쉽지만, 남아서 아저씨를 보살피고 싶어요.”“아저씨가 다 나으면, 저희가 아저씨랑 같이 할머니 보러 갈게요.”그 말을 듣고 심해영은 실망스러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곧 네 사람은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헤어지기 전, 심해영은 고다정을 바라보며 당부했다. “애들 잘 보살펴요.”“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모습에 심해영은 입을 뻐금거렸다.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심해영의 모습에 고다정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그 말을 들은 심해영은 그윽한 눈빛으로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비록 우리 준재를 구해주셨지만, 전 여전히 고 선생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고 선생님은, 제가 기대했던 며느리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에요.”고다정에게 그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잠시 말이 없던 고다정은 태연한 눈빛으로 심해영을 쳐다보았다. “사람의 마음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비록 심 여사님이 기대하신 며느리가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저도 그렇게까지 빠지는 사람은 아닌 것 같거든요. 여 대표님께서 제가 좋다고 하시면, 그게 좋은거겠죠.”“...”심해영은 그만 할 말을 잃었고, 얼굴도 일그러졌다. 고다정은 그런 심해영을
두 아이는 임은미의 문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임은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임은미가 다시 문자를 보냈다. 『그러고 보니, 너희 엄마 이번에 해외로 가서 아저씨를 치료했잖아. 둘 지금 사이가 어때? 조금 가까워졌어?』『엄마랑 아저씨 뽀뽀했어요. 하지만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굴더라고요. 아무 변화도 없고요. 이것도 가까워진 거예요?』고하준은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의문을 제기했다. 얼마 뒤, 임은미는 느낌표 몇 개를 보냈다. 부호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다시 문자가 도착했다. 『뽀뽀했다, 이거지?』임은미의 문자에 답장하려는 찰나, 여준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준아, 하윤아. 너희들 뭐해?’“아, 아무것도 안 해요.”두 아이는 괜히 마음에 찔려 휴대폰을 뒤로 숨겼다. 하지만 그 행동은 오히려 비밀을 폭로한 셈이었다. 여준재는 씩 웃었지만, 아이들의 비밀을 굳이 까발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하필 이때, 두 아이의 스마트 워치 알람이 울렸다. 아이들이 답장이 없자 임은미가 참지 못하고 전화를 한 것이다. 임은미의 전화번호를 확인한 아이들은 전화를 끊을 수도, 그렇다고 받을 수도 없어졌다. 여준재는 망설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참지 못하고 장난쳤다. “전화 안 받아?”“아, 받아요.”고하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하준을 바라보는 여준재의 눈빛은 ‘받을 거면 얼른 받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고하준은 어쩔 수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가 연결되자, 잔뜩 흥분한 임은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아, 너희 엄마랑 아저씨가 정말 뽀뽀했어?!”스마트 워치는 스피커 모드였다. 그러니 여준재도 그 말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두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더욱 마음에 찔려 감히 여준재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임은미는 휴대폰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또다시 아이들을 불렀다. “준아, 윤아. 왜 말을 안 해? 신호가 안 좋은
“네.”구남준은 명령을 받들고 돌아섰다. 고다정은 그제야 참지 못하고 물었다. “방금 구 비서님이 말씀하진 킬러 조직이라는 거, 어떻게 된 거예요?”“저희 집안 라이벌이 절 해치려고 국제 킬러 조직에 의뢰를 맡겼어요. 제가 지난번에 당한 사고, 그리고 고 선생님이 납치당하신 것 모두 그쪽에서 손 쓴 거예요.”여준재가 대충 설명했다. 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충격을 받고 멍하니 서 있었다. “사업이 이렇게 위험했었나요?”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고다정을 보며 빙긋 미소 지었다. “위험한 게 아니라, 돈이 사람을 움직이니까요.”여준재는 말하며 한탄했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도 더 욕심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러니 YS그룹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질투의 대상이겠죠.”여준재의 말에 고다정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두 아이는 두 어른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번갈아 보고 있었다. 여준재는 의문이 가득한 아이들의 눈을 보며 씩 웃더니 손을 흔들었다. 그에 두 아이가 얼른 여준재에게로 다가갔다. “삼촌, 왜요?”“방금 삼촌이 엄마랑 한 얘기, 이해했어?”여준재가 나지막이 물었다. 두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모르겠어요.”“몰라도 괜찮아. 나중에 크면 알게 될 거야.”여준재는 지금의 어린아이들에게 어두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세 사람을 바라보는 고다정은, 걱정스러웠던 마음이 이상하다고 느껴질 만큼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그날 밤, 구남준은 다시 병실로 복귀했다. “대표님. 그쪽 보스가 저희에게 사람을 넘겼어요. 이건 배후 세력의 자료에요.”“원준이야?”여준재가 태연하게 한 마디 물었다. 구남준이 대답했다. “맞아요. 그쪽 보스가 저에게 원준과의 대화 내용과 출입금 명세를 보여줬어요.”말을 마친 구남준이 녹음과 송금 기록을 전부 여준재에게 보여주었다. 여준재는 그저 힐끔 쳐다볼 뿐, 자세히 보지도 않고는 말했다. “이제 증거가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원시혁은 자기 아들을 보았다. 확실히 방금 은행 지점장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그가 이렇게 사방을 돌아다니며 돈을 빌리러 다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아들을 관리 잘하는 것이 나았다.남자라면 상황에 따라 굽힐 줄도 알아야 한다.이 난관만 헤쳐나 기기만 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렇게 생각한 원시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원준을 보면서 말했다.“원준이 너 얼른 나랑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 내일 우린 해외로 가서 여준재를 찾아갈 거다. 가서 사과해! 용서해 줄 때까지, 우리 집안을 봐줄 때까지 빌어!”“지금 저보고 여준한테 가서 사과하라고요?!”원준은 놀란 눈으로 원시혁을 보다가 이내 소리를 버럭 질렀다.“싫어요!”소리를 지른 후에도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던 그는 계속 원시혁을 노려보고 있었다.“제가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여준재한테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는 일은 없을 거예요!”그런 아들의 모습에 여준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일은 네가 벌여 놓고 사과하지 않겠다고? 설마 우리 집안 3대째 이어온 사업을 물거품으로 만들 생각인 것이냐?!”그의 말에 화가 나 있던 원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아무리 자존심이 강해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지금껏 이룬 업적과 자본은 원씨 집안이 존재한 상황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최근 며칠 동안 그는 매일 협력 업체에 계약 거부를 당했고 자존심을 억누르며 아버지와 함께 일일이 방문하여 부탁하고 있었다.길거리에서 대치 중이었던 두 사람 주위로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들을 힐끔힐끔 보게 되었다.한참 지나서야 원준은 그제야 먼저 입을 열었다.“전 사과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돈을 구해올 방법은 있어요.”“그게 무슨 방법인데?”원시혁은 그다지 그를 믿지 않았다.원준은 어두워진 낯빛으로 말했다.“어쨌든 저에겐 다 방법이 있어요. 만약 그 방법도 안 되면 제가 결혼하는 방법도 있잖아요. 아버지께선 일단 국내에서
“왜 웃는 거지?”원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보았다. 갑자기 웃는 임초연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임초연은 비웃음으로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네가 그동안 준재 씨한테 억압당하고 산 게 이해가 되어서.”말을 마친 그녀는 뜸을 들이더니 이내 점점 더 비아냥거리는 모습을 보였다.“비록 난 말이야. 네가 뭘 믿고 나한테 협박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만 알아둬. 네가 여씨 집안에 가서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 난 두렵지 않아.”그녀의 말에 원준은 눈치채게 되었다.임초연이 이미 자신과의 계약을 깨고 배신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렇게 생각한 원준은 안색이 점차 어두워지더니 입을 열었다.“제기랄, 감히 날 갖고 놀아?!”임초연은 당장이라도 살인을 저지를 듯한 그의 모습에 다소 움찔했고 혹여라도 이 남자가 갑자기 돌발행동을 할까 긴장하게 되었다.하지만 임초연은 남자의 앞에서 긴장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를 곧게 펴며 차갑게 피식 웃었다.“너도 날 갖고 놀았잖아. 이걸로 우린 공평해진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내선 전화를 눌러 비서에게 손님을 배웅하라고 했다.원준은 화가 난 채로 나가버렸다.이내 사무실엔 임초연 혼자만 남게 되었다.그녀는 의자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동시에 자신이 한 수를 남겨두어 임씨 집안을 그 진흙탕 싸움에서 빼낸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책상 위에 있던 내선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회장실에서 온 연락이었다.임초연은 눈을 살짝 반짝이며 바로 전화를 받았다.“아빠, 무슨 일이세요?”“내 사무실로 올라와.”임광원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임초연은 전화를 끊고 바로 회장실로 올라갔다.회장실로 들어간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있는 임광원을 발견하곤 격식 있게 말했다.“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어요?”“방금 원씨 집안 그 녀석이 널 만나고 갔다던데, 언제부터 원씨 집안 아들이랑 만나고 있었던 게냐?”임광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