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이 지나서 고다정은 곰탕을 완성하였지만, 여준재에게 직접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병실에 까지 들어가면 진현준이 계속 귀찮게 하기 때문이다.“진 선생님, 이 곰탕을 여 대표님께 다져다 주세요.”말을 마친 고다정은 진현준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곰탕을 그의 손에 쥐어줬다.진현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고 선생님은요?”“저는 여기 곰탕에 들어가는 약재가 떨어져서 사러 가야 해요.”말을 마치고 고다정은 바로 주방에서 나갔다.진현준이 병실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여준재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네가 왔어? 고 선생님은?”“삼촌, 우리 엄마는요?”두 아이도 의문의 눈길을 보였다.진현준은 아직 문의 심각함을 느끼지 못한 채 웃으며 말했다.“너희들 엄마는 약재를 사러 갔어.”그리고 또 여준재한테 곰탕을 건네며 말했다.“어서 마셔. 나와 고 선생님이 같이 달인 거야.”여준재는 약을 건네받고 바로 마시지 않고 눈앞에 있는 친구한테 말했다.“앞으로 우리 고 선생 귀찮게 하지 마. 너를 제자로 받지 않을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순간, 진현준의 눈빛이 심각해졌다.“왜 너마저 내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너를 안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하지만 한의학은 배우기 쉽지 않아. 게다가 고대 한의학은 더더욱 힘들어.”여준재는 인정사정없이 말했다.진현준은 그래도 불복하면서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여준재가 먼저 경고했다.“너 매일 이렇게 한가하면 나 원장님을 찾아가서 너한테 일을 더 많이 주라고 할거야.”“...”진현준은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삼키고 조용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자기 와이프밖에 모르는 나쁜 놈.”낮은 소리로 말했어도 여준재는 다 들었다. 하지만 사실이었기에 반박하지 않았다.오후 2시쯤에 고다정이 돌아왔는데 그녀가 병실에 왔을 때는 진현준은 없고 여준재와 두 아이가 자고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안도했다.여준재는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뭘 두려워하는
고다정은 듣자마다 바로 거절했다. 등을 밀어주는 다정한 스킨쉽은 어쩐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구 비서님 불러올게요.”말을 마친 고다정이 다시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문 앞까지 다다랐을 때, 등 뒤로 다시 한번 여준재의 은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 비서 병원에 없어요. 제가 회사로 보냈거든요.”여준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다정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녀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준재는 비록 고다정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여준재는 장난기 가득한 눈을 반짝였다. “난처하시면 안 하셔도 돼요. 제가 할 수 있어요. 상처를 건드릴지도 모르겠지만요.”말하며 여준재는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수건을 꺼내 몸을 닦았다. 여준재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고다정이 곧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몸을 돌려 여준재 앞에 다가갔다. 고다정은 여준재의 손에서 수건을 가로채 고개를 숙이고 수건을 씻으며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고개를 숙이고 수건을 씻는 작고 가녀린 고다정을 보며 여준재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원하는 바를 이룬 만족의 미소였다. 고다정은 여준재 입에 걸린 그 웃음을 보지 못했다. 수건의 물을 꽉 짜고 고개를 든 고다정의 눈에 다부진 여준재의 상반신이 한눈에 들어왔다. 겨우 정상 온도로 돌아온 볼이 또다시 뜨거워졌다. “그, 저기. 돌아서요.”그러자 여준재는 장난을 그만두었다. 행여 고다정이 도망이라도 갈까, 그는 고분고분 등을 돌려 고다정이 등을 닦을 수 있도록 가만히 있었다. 부끄러웠던 탓인지, 고다정은 말이 없었다. 같은 시각 고다정의 머릿속은 그저 얼른 닦고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일은 늘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라, 사고는 늘 예상치 못하게 일어났다. 고다정이 다시 수건을 씻을 때, 바닥에 물이 묻었던 탓인지 바닥이 굉장히 미끄러웠다. 바닥을 제대로 보지 않았던 고다정은 그만 중심을
병실을 나온 고다정은 멀리 가지 않았다. 그녀는 복도 베란다에 서서 자신의 뜨거운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방금 그건 사고야. 너무 생각하지 말고, 신경도 쓰지 마.”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다정의 심장은 여전히 쿵쾅쿵쾅 뛰어댔다. 그녀는 한참 만에야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몸을 돌려 병실로 향했다. 이제 막 병실 앞에 도착한 고다정은 안에서 나오는 진현준을 보더니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진현준이 올 줄 알았더라면, 조금 늦게 돌아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다정은 이미 진현준에게 시달릴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 하지만 진현준은 스승으로 삼겠다는 얘기 대신 그녀에게 당부했다. “형수님, 마침 돌아오셨네요. 들어가셔서 준재에게 얘기 좀 잘해줘요. 지금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씻으려고 하면 겨우 아문 상처가 또 벌어질 거라고요.”진현준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조금 마음에 찔렸다. 자신이 방금 넘어질 뻔한 것을 여준재가 잡아줬기 때문이었다. 당시 고다정은 여준재의 신음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그리고 입맞춤 때문에... 고다정은 그 일을 까먹고 만 것이다. “알겠어요. 제가 잘 지켜볼게요.”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진현준과 인사를 나눈 고다정이 병실로 들어갔다. 그녀가 병실에 들어서자, 침대에 누워있던 여준재와 두 아이가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왜 날 봐요?”그들의 시선이 조금 불편했던 고다정은 헛기침하며 물었다. 그러자 두 아이는 고다정에게 눈빛을 보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엄마, 방금 어디 갔었어요?”그들의 의도를 눈치챈 고다정이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어른들 일이야. 애들은 알려고 하지 마.”말하며 고다정은 여준재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방금 돌아오면서 진 선생님을 만났어요. 상처가 벌어졌다면서요. 괜찮아요?”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그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여준재는 당연히 고다정이 화제를 돌리고 있다는 것을
다음 날 아침 일찍 고다정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두 아이를 씻긴 후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심해영은 이미 옷을 입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녀와 멀지 않은 곳엔 정리된 캐리어가 놓여있었다. 심해영은 고다정 모자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두 눈을 반짝이며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준아, 하윤아. 이리 오렴.”“할머니, 왜요?”두 아이가 달려가 물었다. 심해영은 아이들을 품에 안고 아쉬운 듯 말했다. “좀 있으면 할머니는 가야 해. 아니면 너희도 할머니랑 같이 가자. 할머니는 너무 아쉬워.”절대 빈말은 아니었다. 심해영은 정말 두 아이를 데려가고 싶었다. 아쉽게도, 아이들은 심해영의 제안을 거절했다. “우리도 할머니가 가시는 게 아쉽지만, 남아서 아저씨를 보살피고 싶어요.”“아저씨가 다 나으면, 저희가 아저씨랑 같이 할머니 보러 갈게요.”그 말을 듣고 심해영은 실망스러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곧 네 사람은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헤어지기 전, 심해영은 고다정을 바라보며 당부했다. “애들 잘 보살펴요.”“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모습에 심해영은 입을 뻐금거렸다.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심해영의 모습에 고다정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그 말을 들은 심해영은 그윽한 눈빛으로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비록 우리 준재를 구해주셨지만, 전 여전히 고 선생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고 선생님은, 제가 기대했던 며느리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에요.”고다정에게 그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잠시 말이 없던 고다정은 태연한 눈빛으로 심해영을 쳐다보았다. “사람의 마음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비록 심 여사님이 기대하신 며느리가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저도 그렇게까지 빠지는 사람은 아닌 것 같거든요. 여 대표님께서 제가 좋다고 하시면, 그게 좋은거겠죠.”“...”심해영은 그만 할 말을 잃었고, 얼굴도 일그러졌다. 고다정은 그런 심해영을
두 아이는 임은미의 문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임은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임은미가 다시 문자를 보냈다. 『그러고 보니, 너희 엄마 이번에 해외로 가서 아저씨를 치료했잖아. 둘 지금 사이가 어때? 조금 가까워졌어?』『엄마랑 아저씨 뽀뽀했어요. 하지만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굴더라고요. 아무 변화도 없고요. 이것도 가까워진 거예요?』고하준은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의문을 제기했다. 얼마 뒤, 임은미는 느낌표 몇 개를 보냈다. 부호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알 수 있었다. 곧이어 다시 문자가 도착했다. 『뽀뽀했다, 이거지?』임은미의 문자에 답장하려는 찰나, 여준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준아, 하윤아. 너희들 뭐해?’“아, 아무것도 안 해요.”두 아이는 괜히 마음에 찔려 휴대폰을 뒤로 숨겼다. 하지만 그 행동은 오히려 비밀을 폭로한 셈이었다. 여준재는 씩 웃었지만, 아이들의 비밀을 굳이 까발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하필 이때, 두 아이의 스마트 워치 알람이 울렸다. 아이들이 답장이 없자 임은미가 참지 못하고 전화를 한 것이다. 임은미의 전화번호를 확인한 아이들은 전화를 끊을 수도, 그렇다고 받을 수도 없어졌다. 여준재는 망설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참지 못하고 장난쳤다. “전화 안 받아?”“아, 받아요.”고하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하준을 바라보는 여준재의 눈빛은 ‘받을 거면 얼른 받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고하준은 어쩔 수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가 연결되자, 잔뜩 흥분한 임은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아, 너희 엄마랑 아저씨가 정말 뽀뽀했어?!”스마트 워치는 스피커 모드였다. 그러니 여준재도 그 말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두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더욱 마음에 찔려 감히 여준재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임은미는 휴대폰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또다시 아이들을 불렀다. “준아, 윤아. 왜 말을 안 해? 신호가 안 좋은
“네.”구남준은 명령을 받들고 돌아섰다. 고다정은 그제야 참지 못하고 물었다. “방금 구 비서님이 말씀하진 킬러 조직이라는 거, 어떻게 된 거예요?”“저희 집안 라이벌이 절 해치려고 국제 킬러 조직에 의뢰를 맡겼어요. 제가 지난번에 당한 사고, 그리고 고 선생님이 납치당하신 것 모두 그쪽에서 손 쓴 거예요.”여준재가 대충 설명했다. 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충격을 받고 멍하니 서 있었다. “사업이 이렇게 위험했었나요?”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고다정을 보며 빙긋 미소 지었다. “위험한 게 아니라, 돈이 사람을 움직이니까요.”여준재는 말하며 한탄했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도 더 욕심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러니 YS그룹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질투의 대상이겠죠.”여준재의 말에 고다정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두 아이는 두 어른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번갈아 보고 있었다. 여준재는 의문이 가득한 아이들의 눈을 보며 씩 웃더니 손을 흔들었다. 그에 두 아이가 얼른 여준재에게로 다가갔다. “삼촌, 왜요?”“방금 삼촌이 엄마랑 한 얘기, 이해했어?”여준재가 나지막이 물었다. 두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모르겠어요.”“몰라도 괜찮아. 나중에 크면 알게 될 거야.”여준재는 지금의 어린아이들에게 어두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세 사람을 바라보는 고다정은, 걱정스러웠던 마음이 이상하다고 느껴질 만큼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그날 밤, 구남준은 다시 병실로 복귀했다. “대표님. 그쪽 보스가 저희에게 사람을 넘겼어요. 이건 배후 세력의 자료에요.”“원준이야?”여준재가 태연하게 한 마디 물었다. 구남준이 대답했다. “맞아요. 그쪽 보스가 저에게 원준과의 대화 내용과 출입금 명세를 보여줬어요.”말을 마친 구남준이 녹음과 송금 기록을 전부 여준재에게 보여주었다. 여준재는 그저 힐끔 쳐다볼 뿐, 자세히 보지도 않고는 말했다. “이제 증거가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원시혁은 자기 아들을 보았다. 확실히 방금 은행 지점장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그가 이렇게 사방을 돌아다니며 돈을 빌리러 다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아들을 관리 잘하는 것이 나았다.남자라면 상황에 따라 굽힐 줄도 알아야 한다.이 난관만 헤쳐나 기기만 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렇게 생각한 원시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원준을 보면서 말했다.“원준이 너 얼른 나랑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 내일 우린 해외로 가서 여준재를 찾아갈 거다. 가서 사과해! 용서해 줄 때까지, 우리 집안을 봐줄 때까지 빌어!”“지금 저보고 여준한테 가서 사과하라고요?!”원준은 놀란 눈으로 원시혁을 보다가 이내 소리를 버럭 질렀다.“싫어요!”소리를 지른 후에도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던 그는 계속 원시혁을 노려보고 있었다.“제가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여준재한테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는 일은 없을 거예요!”그런 아들의 모습에 여준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일은 네가 벌여 놓고 사과하지 않겠다고? 설마 우리 집안 3대째 이어온 사업을 물거품으로 만들 생각인 것이냐?!”그의 말에 화가 나 있던 원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아무리 자존심이 강해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지금껏 이룬 업적과 자본은 원씨 집안이 존재한 상황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최근 며칠 동안 그는 매일 협력 업체에 계약 거부를 당했고 자존심을 억누르며 아버지와 함께 일일이 방문하여 부탁하고 있었다.길거리에서 대치 중이었던 두 사람 주위로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들을 힐끔힐끔 보게 되었다.한참 지나서야 원준은 그제야 먼저 입을 열었다.“전 사과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돈을 구해올 방법은 있어요.”“그게 무슨 방법인데?”원시혁은 그다지 그를 믿지 않았다.원준은 어두워진 낯빛으로 말했다.“어쨌든 저에겐 다 방법이 있어요. 만약 그 방법도 안 되면 제가 결혼하는 방법도 있잖아요. 아버지께선 일단 국내에서
“왜 웃는 거지?”원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보았다. 갑자기 웃는 임초연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임초연은 비웃음으로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네가 그동안 준재 씨한테 억압당하고 산 게 이해가 되어서.”말을 마친 그녀는 뜸을 들이더니 이내 점점 더 비아냥거리는 모습을 보였다.“비록 난 말이야. 네가 뭘 믿고 나한테 협박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만 알아둬. 네가 여씨 집안에 가서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 난 두렵지 않아.”그녀의 말에 원준은 눈치채게 되었다.임초연이 이미 자신과의 계약을 깨고 배신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렇게 생각한 원준은 안색이 점차 어두워지더니 입을 열었다.“제기랄, 감히 날 갖고 놀아?!”임초연은 당장이라도 살인을 저지를 듯한 그의 모습에 다소 움찔했고 혹여라도 이 남자가 갑자기 돌발행동을 할까 긴장하게 되었다.하지만 임초연은 남자의 앞에서 긴장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를 곧게 펴며 차갑게 피식 웃었다.“너도 날 갖고 놀았잖아. 이걸로 우린 공평해진 거야!”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내선 전화를 눌러 비서에게 손님을 배웅하라고 했다.원준은 화가 난 채로 나가버렸다.이내 사무실엔 임초연 혼자만 남게 되었다.그녀는 의자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동시에 자신이 한 수를 남겨두어 임씨 집안을 그 진흙탕 싸움에서 빼낸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책상 위에 있던 내선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회장실에서 온 연락이었다.임초연은 눈을 살짝 반짝이며 바로 전화를 받았다.“아빠, 무슨 일이세요?”“내 사무실로 올라와.”임광원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임초연은 전화를 끊고 바로 회장실로 올라갔다.회장실로 들어간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있는 임광원을 발견하곤 격식 있게 말했다.“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어요?”“방금 원씨 집안 그 녀석이 널 만나고 갔다던데, 언제부터 원씨 집안 아들이랑 만나고 있었던 게냐?”임광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