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 김재원은 주위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했다.재원은 화가 치밀어 오른 두 눈으로 다정을 쳐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저는 고 선생이 좋은 마음을 품고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제가 당부하는데 우리 할아버지에게 이상이 생긴다면, 저는 절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다정은 그럼에도 몸을 곧게 펴고 서서 얼굴이 굳어졌다.특히 용서할 수 없는 욕을 퍼붓는 것을 보고 그녀의 말이 점점 더 듣기 싫어져 말문이 막혔다.다정은 결국 참지 못하고 뺨을 한 대 내리쳤다.재원은 그대로 맞고 뺨을 가린 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다정은 손을 걷어 내고서 싸늘하게 말했다.“이제 좀 정신이 들어요?”이 소리를 들은 재원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눈을 부릅뜨고 째려보았다.“네가 감히 나를 때려?”“제가 왜 못 때리겠어요? 방금 당신은 악을 쓰면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했잖아요! 근데 저는 김재원 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다정은 두려워하지 않고 재원을 쳐다보면서 당당하게 계속 말했다.“당신은 정말 무식하고 자제할 줄 모르는 사람이군요. 여기서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건 정말 용납할 수 없어요. 할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고 싶지 않으면 당장 모시고 나가세요!”마지막 말에 다정은 목소리를 높여 재원을 놀라게 했다.몇 초가 지나서야 재원은 이에 반응하며 억지를 피우기 시작했다.“우리 할아버지가 당신 같은 사람한테 치료받다가 문제가 생겼는데, 나보고 우리 할아버지를 데리고 나가라고 하다니 어이가 없네. 절대 그렇게 못 해!”“내가 경고하는데, 우리 할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난 죽어도 용서 못 해!”신수 노인과 문진혁은 김씨 할아버지의 건강 검진을 마쳤는데 이 말을 듣고 갑자기 안색이 안 좋아졌다.“그만 해요, 이미 할 만큼 했잖아요!”신수 노인은 소리를 질렀다.불쑥 튀어나온 소리에 재원은 깜짝 놀랐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침착한 신수 노인을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다 결국 건방진 행동을 멈추고 주눅이 든 채 다시 입
여준재는 고다정이 어두운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이를 본 신수 노인도 약간 걱정이 되었다.“진혁아, 네가 바깥 상황을 좀 보거라, 내가 다정이를 좀 봐야 할 것 같다.”이 말을 남긴 후, 신수 노인은 몸을 돌려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그러나 그가 몇 발짝 움직였을 때, 구남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 선생님은 저희 대표님이 계시니 괜찮을 겁니다. 신수 노인은 무료 진료에만 전념하셔도 됩니다.”‘우리 대표님은 고 선생님을 위로하기 위해 들어가신 게 분명해. 그 누구도 둘만의 시간을 방해할 수 없어.’신수 노인은 의미심장하게 남준을 바라보고는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맞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료 진료 행사야. 치료받지 못한 환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 확인하러 가야겠어.”그는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문진혁은 이러한 상황이 혼란스러웠다.그는 진료실 안을 살펴보고 문밖에 길게 늘어선 줄을 바라보며 뭔가 기분이 이상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신수 노인을 따라 무료 진료를 계속했다.한편, 준재는 다정을 따라 방으로 들어서자 다정이 문을 등지고 얇은 어깨가 들썩이는 걸 보았다.다정은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누군가가 들어온 줄 알고 놀라 급히 고개를 숙이고 눈가를 닦은 뒤 돌아섰다.“여 대표님?”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문 앞에 있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들어오셨어요?”준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붉어진 다정의 눈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울었어요?”그는 말하며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미간을 찌푸렸다.다정을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무슨 일이 있어도 강한 여자였는데……. 하긴, 김재원이 보인 모습은 정말 사악했어.’준재는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생각하며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선생은 그를 위해 열심히 치료했는데 그렇게 의심을 받으니 마음이 많이 힘들 거야.’이를 생각하자 준재는 마음이 아파졌
잠시 후, 고다정과 여준재는 밖으로 나왔다.신수 노인은 다정의 눈에 옅은 웃음이 스쳐 가는 것을 보고 다정이 이미 안정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빨리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준재와 관련이 있었다.오후에도 무료 진료는 계속됐다.준재는 실제로 다정에게 몇 명의 경호원을 배치하여 질서를 유지하게 했다.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겁을 먹고 예의 바르고 질서있게 행동했다.물론 다정이 진정으로 그들의 환심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뛰어난 의술 덕이었다.“환자분의 다리는 너무 오래 방치한 탓에 완치하기는 어렵겠지만, 침술과 약물로 족욕을 하시면 증상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특히 비 오는 날에 욱신거리는 다리 통증을 줄일 수 있어요.”“이전에 몸 관리를 제대로 안 하시고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인해 위 기능이 저하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식이요법과 약물 치료, 장기간의 식단관리를 통해서만 호전될 수 있어요. 위 세 가지를 지킬 수 있다면 약을 처방해 드릴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약을 처방해도 소용없어요.”“자주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이 가빠오신다고요? 제가 맥을 한번 짚어 보겠습니다.”오후 내내, 다정은 여러 가지 질병과 마주쳤고, 너무 바빠서 물을 마실 시간도 없었다.가까스로 저녁이 되어 무료 진료가 끝나자, 그녀는 이미 지쳐버려 움직일 힘도 없었기에 힘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신수 노인은 그런 다정의 모습을 보고 죄책감을 느꼈다.사실 그는 다정의 의술을 테스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소연에게 다정의 환자들은 어려운 환자들을 배정하도록 요청했기 때문이다.“오늘 수고 많았다. 피곤할 텐데 내가 데려다줄게.”“그럼 감사하죠.”다정은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그 순간 신수 노인은 옆에 있는 준재에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준재야, 이따가 다정이를 데려다준 뒤에 날 데려다줘야 한다. 알겠지?”준재는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다정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다정은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아무 말도 하지
한편, 두 아이와 강말숙은 여준재가 고다정을 안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괜스레 걱정됐다. “아저씨, 우리 엄마 왜 그래요?”하윤이 다가와 준재를 빤히 쳐다보니 뚜렷한 흑백 눈동자에는 걱정이 가득했다.하준과 강말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준재의 걱정 가득한 모습을 한눈에 보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준재는 상황을 알아챈 후, 얼른 설명했다.“걱정하지 마. 너희 엄마는 괜찮아. 너무 피곤해서 잠드신 거야.”이후, 그는 강말숙에게 인사를 하고 다정을 안아 침실로 갔다.들어간 후, 준재는 안고 있던 다정을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힌 후 이불을 덮어주었고, 그와 다정과의 거리는 자연스레 가까워지게 됐다.그의 시선이 왠지 모르게 그녀의 선홍빛 입술에 고정되더니, 갑자기 입이 바싹 마르는 것을 느꼈다.준재는 별 생각없이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시러 나갔다.그는 나오자마자 작은 머리 두 개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봤다. 그 둘은 하준과 하윤이었다. “너희 뭐 하는 거니?”준재는 미소를 머금고 두 아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하윤은 준재에게 말했다.“저와 오빠는 아저씨가 떠날까 봐 문밖을 지키고 있었어요. 하지만 아저씨는 우리 엄마에게 매우 친절하시네요.”말이 끝나자 하윤이 웃으며 준재를 바라보았다.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짓만 했다.준재는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어른들의 일은 어린아이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오늘 숙제는 다 했니?”그는 화제를 돌렸다.두 아이는 머리를 더듬으며 입을 삐죽 내밀고 대답했다.“진작에 다 했죠! 아저씨가 검사해 줄 거예요?”준재는 당연히 해줄 것이다.준재는 두 아이와 함께 거실에 모였다.강말숙은 그 모습을 보고 주방으로 가서 그들에게 줄 과일들을 준비했다.한참 후, 준재는 숙제를 검사한 후, 두 아이와 잠시 놀고서야 아쉬워하며 떠났다.……다음 날 아침, 다정은 여전히 신의 약방에 가서 무료 검진을 진행했다.이번 무료 검진 기간은 모두 3
“이 김씨 집안 사람들 왜 또 왔어, 귀찮게 하러 온 거 아니야?”“그것보다 더 신기한 건, 이 김씨 영감은 많이 나아졌나 봐, 어제보다 더 멀쩡한 거 같아!”“맞아, 어제는 죽을 것 같이 보이더니, 오늘은 신기하게도 침대에서 내려왔나 보네. 보아하니 그 고 의사의 기술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많은 사람들이 구설수가 끊이지 않으며 호기심이 가득 찬 표정으로 김씨 집안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신수 노인은 김씨 집안 사람을 보자 곧 표정이 굳어졌다.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김씨 집안 사람을 막으라고 하자 단호하다는 소리와 함께 불만스러운 태도로 물었다.“너희 김씨 집안 사람들은 또 뭔 짓을 하러 온 거야?”김씨 노인은 노기를 못 본 듯 허허 웃으며 바라보았다.“제가 직접 고 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러 왔어요. 겸사겸사 이 버르장머리 없는 손녀를 데리고 사과하러 왔습니다!”말이 끝나자마자, 김씨 노인은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김재원에게 큰소리쳤다.“너는 아직도 뒤에서 뭘 꾸물거리고 있어. 빨리 와서 무릎을 꿇지 않고, 고 의사에게 얼른 사과해!”재원은 성난 할아버지를 보더니 마지못해 걸어 나왔다.다만 그녀는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고다정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흘겨보며, 마음속으로 그녀를 몹시 미워했다. ‘이 여자 때문에 내가 김씨 집안 아가씨의 체면이 구겨지게 되면서, 어제 이후로 내 체면은 다 망가졌어!’그러나 그녀의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의 위엄에 해가 되기는 싫었다.그녀는 시선을 거둔 뒤, 눈썹을 치켜 내리며 정직한 자세로 다정에게 무릎을 꿇었다.다정은 그 모습을 보고 난 후, 받아들이지 않으려 급히 옆으로 한 걸음씩 옮겼다. 김씨 노인은 그의 눈앞에 있는 다정의 체면이 서지 않은 것 같아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안색이 어두워졌다.결국 재원의 눈에는 자신이 스스로 사과한 것이 가장 큰 양보였다.재원의 아빠는 옆에서 자기 아버지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서둘러 말했다.“고 선생님, 어제 저희 아버지 의식
현장에는 어제 무료 진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그들도 어제 일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김씨 집안의 일 처리 방식을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바른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정말 뻔뻔스러워. 어제도 이런 수작으로 고 선생님의 동정심을 사더니, 오늘도 같은 수법으로……. 쯧쯧!”“김씨 집안 사람들 하는 짓거리 정말 역겹네. 필요할 땐 치켜세우더니 필요 없을 때는 악담을 퍼붓고…….”“낯짝도 두껍지. 무슨 자신감으로 고 선생님께 다시 치료를 간청해?”주위 사람들의 얘기를 들은 김재원은 얼굴색이 극도로 어두워졌다.한 편으로 마음속으로는 후회 막심했다.‘어제 그렇게 충동적으로 일 처리하는 거 아닌데, 이제 뒷수습을 어떻게 하지?’김씨 부자도 쓴웃음을 지으며,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어제의 일로 고다정을 불쾌하게 만든 건 차치하고, 신수 노인과 문성 노인조차도 김씨 집안에 불만이 생겼다.현재 그들은 이 두 집안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잠시 뒤, 그들은 자리를 떴다.떠나기 전, 능구렁이 김씨 노인은 다정에게 예의를 차리고 인사를 건넸다.“내 목숨은 고 선생님이 구해준 것입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고 선생님께서 이 늙은이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본 다정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신수 노인에게 한마디 물었다.“저한테 고대 의술 처방전이 하나 있는데, 혹시 드릴까요?”“좋지, 좋지, 당연히 감사하게 받아야지!”다정의 얘기에 신수 노인은 눈이 번쩍 뜨였다.흥분한 나머지 손을 비비며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잠깐이라도 늦으면 방금 한 말을 철회할까 봐 두려웠다.옆에 있던 문성 노인도 다정의 얘기를 듣고 난리를 쳤다.“나도 필요해.”“주긴 뭘 줘? 서재에 널린 게 처방전이더구먼. 이것까지 탐내다니, 욕심 좀 그만 부려!”신수 노인은
그날 저녁, 신의 약방의 무료 진료가 끝났다.신수 노인의 꼬임에 넘어간 여준재는 고다정을 데리러 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준재는 다정의 얼굴에 피로감이 쌓인 모습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그는 못마땅해하며 물었다.“몸이 나은지도 며칠 안 됐는데, 이렇게 고생하셔도 되는 거예요?”자신을 걱정하는 그의 모습에 감동한 다정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준재를 바라보는 그녀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갔고, 검은 눈동자는 마치 별을 박아 놓은 것 같았다.“그리고 참 의미있는 일이잖아요, 그렇죠? 특히 오늘은 많은 환자분들이 오셔서 치료받고 가셨어요.”말하는 사이에 그녀는 그날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가 늘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나간 모습이 생각나 큰 성취감을 느꼈다.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준재에게 시선을 돌린 채 말을 이어 나갔다.“그리고 환자분들의 편안한 표정을 보면 이제 질병으로 고통받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요. 또 제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이 말을 들은 준재는 눈앞의 작은 그녀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는 화제를 바꿔 물었다.“내일이 마지막 날인데, 내일도 가세요?”“당연히 가야죠. 힘들더라도 자기가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해요.”다정은 질문이 끝나자마자 대답했다.준재는 이런 그녀의 모습이 괜히 귀여웠다.그때, 다정의 맑은 목소리가 다시 그의 귀에 들렸다.“내일은 약재를 잔뜩 가져가야겠어요.”“왜요?”의문을 가진 준재에게 다정은 설명했다.“신수 어르신께는 없는 약재도 있고, 어르신께서 직접 들여온 약재도 있기 때문에 그때가 되면 아주 바쁠 수도 있어요.”이 말을 들은 준재는 빙그레 웃었다.“어떤 일이에요? 제가 내일 아침에 사람을 보낼게요.”“괜찮아요, 저희끼리 해결할 수 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그녀는 지난 이틀 동안 이미 준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더 이상 그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오히려 준재는
환자들이 신의 약방에 들어왔고, 고다정은 예정대로 무료 진료를 시작했다.오전 10시가 되자 갑자기 문밖에는 여러 대의 소형 화물차가 도착했다.이를 본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래? 또 무슨 일이 나는 건 아니겠지?”“누가 감히 일을 벌이겠어. 이곳은 신수 어르신과 문성 어르신이 함께 주최한 행사인걸.”“누가 아니래, 우선 어떤 상황인지 보자.”주의가 산만할 때, 사람들은 화물차에서 누군가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그런 다음 그 사람은 약재 한 봉지를 차에서 내렸다.신수 노인과 문성 노인은 놀라서 사람을 데리고 나왔고, 문밖에 쌓여 있는 약재를 보며 의아해했다.그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려고 할 때 책임자로 보이는 청년이 다가왔다.“신수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씨 집안의 비서입니다. 신수 어르신과 문성 어르신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저희 회장님께서는 많은 약재를 구입하셨습니다. 신수 어르신과 명의분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치료 기간을 포함해 모든 약은 환자들에게 무료로 제공될 것입니다.”이 말 나오자마자 현장은 소란스러워졌다.‘정말 김씨 집안에서 보낸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신수 노인과 문성 노인도 의외였지만 김 노인이 꽤 현명하다고 생각했다.옆에 있던 다정도 의아했다.하지만 그녀는 김씨 집안의 의도를 어림짐작했다.‘그래도 김 노인은 좋은 사람이구나.’다른 사람들도 이 일을 계기로 김씨 집안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역시 듣던대로 큰 손이야”“그래도 김씨 집안이 성의라도 보이네.”신수 노인은 그들의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약재를 받아들였다.‘준다면 받아야지.’신수 노인은 즉시 사람을 배치하여 약재를 창고로 옮기게 했고, 준재의 인력을 동원해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대의 소형 화물차에 있는 모든 약재를 옮겼다.김씨 집안의 부하들은 상황을 보고 떠났다.그리고 빠르게 무료 진료가 계속되었다.다정은 오전 내내 매우 바쁘게 보냈다.아이들도 의사들에게 차와 물을 가져다주고 필요한 물건을 건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