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는 어제 무료 진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그들도 어제 일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김씨 집안의 일 처리 방식을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바른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정말 뻔뻔스러워. 어제도 이런 수작으로 고 선생님의 동정심을 사더니, 오늘도 같은 수법으로……. 쯧쯧!”“김씨 집안 사람들 하는 짓거리 정말 역겹네. 필요할 땐 치켜세우더니 필요 없을 때는 악담을 퍼붓고…….”“낯짝도 두껍지. 무슨 자신감으로 고 선생님께 다시 치료를 간청해?”주위 사람들의 얘기를 들은 김재원은 얼굴색이 극도로 어두워졌다.한 편으로 마음속으로는 후회 막심했다.‘어제 그렇게 충동적으로 일 처리하는 거 아닌데, 이제 뒷수습을 어떻게 하지?’김씨 부자도 쓴웃음을 지으며,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어제의 일로 고다정을 불쾌하게 만든 건 차치하고, 신수 노인과 문성 노인조차도 김씨 집안에 불만이 생겼다.현재 그들은 이 두 집안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잠시 뒤, 그들은 자리를 떴다.떠나기 전, 능구렁이 김씨 노인은 다정에게 예의를 차리고 인사를 건넸다.“내 목숨은 고 선생님이 구해준 것입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고 선생님께서 이 늙은이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본 다정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신수 노인에게 한마디 물었다.“저한테 고대 의술 처방전이 하나 있는데, 혹시 드릴까요?”“좋지, 좋지, 당연히 감사하게 받아야지!”다정의 얘기에 신수 노인은 눈이 번쩍 뜨였다.흥분한 나머지 손을 비비며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잠깐이라도 늦으면 방금 한 말을 철회할까 봐 두려웠다.옆에 있던 문성 노인도 다정의 얘기를 듣고 난리를 쳤다.“나도 필요해.”“주긴 뭘 줘? 서재에 널린 게 처방전이더구먼. 이것까지 탐내다니, 욕심 좀 그만 부려!”신수 노인은
그날 저녁, 신의 약방의 무료 진료가 끝났다.신수 노인의 꼬임에 넘어간 여준재는 고다정을 데리러 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준재는 다정의 얼굴에 피로감이 쌓인 모습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그는 못마땅해하며 물었다.“몸이 나은지도 며칠 안 됐는데, 이렇게 고생하셔도 되는 거예요?”자신을 걱정하는 그의 모습에 감동한 다정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준재를 바라보는 그녀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갔고, 검은 눈동자는 마치 별을 박아 놓은 것 같았다.“그리고 참 의미있는 일이잖아요, 그렇죠? 특히 오늘은 많은 환자분들이 오셔서 치료받고 가셨어요.”말하는 사이에 그녀는 그날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가 늘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나간 모습이 생각나 큰 성취감을 느꼈다.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준재에게 시선을 돌린 채 말을 이어 나갔다.“그리고 환자분들의 편안한 표정을 보면 이제 질병으로 고통받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요. 또 제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이 말을 들은 준재는 눈앞의 작은 그녀가 행복해하는 모습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는 화제를 바꿔 물었다.“내일이 마지막 날인데, 내일도 가세요?”“당연히 가야죠. 힘들더라도 자기가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해요.”다정은 질문이 끝나자마자 대답했다.준재는 이런 그녀의 모습이 괜히 귀여웠다.그때, 다정의 맑은 목소리가 다시 그의 귀에 들렸다.“내일은 약재를 잔뜩 가져가야겠어요.”“왜요?”의문을 가진 준재에게 다정은 설명했다.“신수 어르신께는 없는 약재도 있고, 어르신께서 직접 들여온 약재도 있기 때문에 그때가 되면 아주 바쁠 수도 있어요.”이 말을 들은 준재는 빙그레 웃었다.“어떤 일이에요? 제가 내일 아침에 사람을 보낼게요.”“괜찮아요, 저희끼리 해결할 수 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그녀는 지난 이틀 동안 이미 준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더 이상 그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오히려 준재는
환자들이 신의 약방에 들어왔고, 고다정은 예정대로 무료 진료를 시작했다.오전 10시가 되자 갑자기 문밖에는 여러 대의 소형 화물차가 도착했다.이를 본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래? 또 무슨 일이 나는 건 아니겠지?”“누가 감히 일을 벌이겠어. 이곳은 신수 어르신과 문성 어르신이 함께 주최한 행사인걸.”“누가 아니래, 우선 어떤 상황인지 보자.”주의가 산만할 때, 사람들은 화물차에서 누군가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그런 다음 그 사람은 약재 한 봉지를 차에서 내렸다.신수 노인과 문성 노인은 놀라서 사람을 데리고 나왔고, 문밖에 쌓여 있는 약재를 보며 의아해했다.그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려고 할 때 책임자로 보이는 청년이 다가왔다.“신수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씨 집안의 비서입니다. 신수 어르신과 문성 어르신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저희 회장님께서는 많은 약재를 구입하셨습니다. 신수 어르신과 명의분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치료 기간을 포함해 모든 약은 환자들에게 무료로 제공될 것입니다.”이 말 나오자마자 현장은 소란스러워졌다.‘정말 김씨 집안에서 보낸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신수 노인과 문성 노인도 의외였지만 김 노인이 꽤 현명하다고 생각했다.옆에 있던 다정도 의아했다.하지만 그녀는 김씨 집안의 의도를 어림짐작했다.‘그래도 김 노인은 좋은 사람이구나.’다른 사람들도 이 일을 계기로 김씨 집안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역시 듣던대로 큰 손이야”“그래도 김씨 집안이 성의라도 보이네.”신수 노인은 그들의 목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약재를 받아들였다.‘준다면 받아야지.’신수 노인은 즉시 사람을 배치하여 약재를 창고로 옮기게 했고, 준재의 인력을 동원해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대의 소형 화물차에 있는 모든 약재를 옮겼다.김씨 집안의 부하들은 상황을 보고 떠났다.그리고 빠르게 무료 진료가 계속되었다.다정은 오전 내내 매우 바쁘게 보냈다.아이들도 의사들에게 차와 물을 가져다주고 필요한 물건을 건
여준재는 이 말에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신수 노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더 깊이 생각했다.결국 그는 가볍게 던진 말이었을 뿐이었다.이어 그는 준재에게 윙크를 하며 속삭였다.“말해봐, 지금 고선생이랑 무슨 사이야? 너희 관계가 좀 심상치 않은 것 같은데, 고 선생과 함께라면 좋을 거야.”이 말을 들은 준재는 실소를 금치 못했지만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전 계획이 있어요.”“힘 좀 내봐. 고 선생은 보기 드문 좋은 여자야. 다른 사람들한테 빼앗기기 전에……, 잠시만, 방금 뭐라고 했니?”신수 노인은 뒤늦게 준재의 말을 곱씹었다.그는 두 눈을 번쩍 뜨고 준재를 바라보았다.하지만 그 말을 반복할 생각이 없던 준재는 가볍게 헛기침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또 바빠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도와드릴 테니 이제 그만 농땡이 피우세요.”말을 마친 준재는 뒤돌아 밖으로 나갔고 신수 노인은 괘씸한 마음에 그 자리에 서 있었다.“이 자식, 분명히 일부러 그런 거야!”아직도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신수 노인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무료 진료소로 들어갔다.준재는 나가자마자 다정이 한 노인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았다.그 노인은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빈 병이 들어 있는 뱀 가죽 가방을 들고 있었다.겉으로 봤을 땐, 빈 병을 주우며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지저분했다.하지만 다정은 이 점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맥박을 잰 후, 그녀는 망설임 없이 먼지투성이인 노인의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침을 놓았다.이 일을 다 마친 뒤, 그녀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고개를 숙여 처방전을 썼다.“제가 환자분에게 먹는 약과 족욕제 두 처방을 드렸어요. 이 두 처방으로 세 번만 치료하시면 괜찮아지실 거예요.”“고마워요, 아가씨.”노인은 감사 인사를 했다.다정은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다.햇살이 그녀를 비추고 그녀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준재는 그런 그녀를 볼 때면 마치 한 겹의 빛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자기도
고다정은 문성 노인의 말에 매우 동의했다. 첫날을 제외하고는 치료비가 너무 비싸서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작은 병이 큰 병이 된 안타까운 환자들을 많이 보았다.이를 생각한 그녀는 마음속으로 신수 노인에게 할 제안 사항이 생겼다. “이번 무료 진료소를 통해 저는 이렇게 큰 도시에서 무료 진료를 하는 것이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어요. 상류층 사람들이 차지하게 될 거예요.”“다정이 말이 맞아.”문성 노인은 매우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신수 노인도 이를 진지하게 생각했고, 다정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다음에 또 기회가 생긴다면, 외진 산간 지역이나 꼭 필요한 곳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무료 진료소가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이 제안은 받아들이마. 이번 일은 확실히 주도면밀하게 고려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신수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 제안을 승인했다.준재는 세 사람의 열띤 토론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그렇다면 인력이 필요할 때 연락해 주시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네가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도와줘?”신수 노인은 버럭 소리쳤다.준재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이를 본 다른 사람들은 한바탕 웃었다.다정도 미소를 지었고, 동시에 준재를 감탄하며 바라보며 이 남자가 매우 배려심이 많다고 느껴졌다.이때 두 아이도 뒤처지지 않고 차례로 입을 열었다.“저도 도와드릴게요.”“저는 엄마랑 할아버지 두 분의 심부름을 할 수 있어요.”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몇몇 어른들은 두 아이가 사랑스럽고 영리하다고 생각했고,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신수 노인은 웃으며 그들을 칭찬했다.“그래, 너희들도 도와주려무나.”말을 마친 뒤, 아이들을 바라보던 그는 뭔가 떠올라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우리 두 아이를 칭찬해 주고 싶었어. 오늘 우리를 많이 도와줬잖아.”“전부 저희가 해야 할 일인 걸요.”아이들은 칭찬의 말에 되레 겸손하게 대답했다.하지만 꼿꼿하게 핀 허리는 그들이 칭찬에 약하다는 것을
야광석의 가치를 알아차린 고다정은 잠시 멍했다.그런 다음 그녀는 즉각 거절했다.“저희는 이런 귀한 걸 받을 수 없어요.”두 아이는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문성 할아버지, 너무 감사하지만 저희는 받을 수 없어요.”“맞아요, 문성 할아버지. 다시 가져가세요.”세 모자가 연거푸 거절하는 모습을 보며, 문성 노인은 이렇게 선물을 거절 받은 상황을 처음 직면했다.그 순간, 그는 고집을 부리며 아이들에게 야광석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가져가거라. 이건 할아버지가 너희에게 주는 거야. 어른 말은 들어야지, 받거라!”아이들은 빛나는 야광석을 받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혹시 다정이 아이들에게 야광석을 다시 빼앗아 갈까 봐 걱정된 문성 노인은 화가 난 척하며 바라보았다.“이건 내가 아이들에게 주는 거야. 너는 거절하지도 말고 너희들도 다시 돌려주지 말거라. 그렇지 않으면 몹시 화가 날 것 같구나!”진지한 척하는 문성 노인을 본 다정은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문성 노인이 이렇게 행동할 것이라고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문성 노인은 다정을 바라보다가 말을 멈추고, 다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득의양양하게 신수 노인을 바라보았다.“내 선물은 별거 아니야. 영감, 이제 당신 차례일세.”이 말에 문성 노인의 눈에 비웃음이 보이자, 신수 노인은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그 자신이 문성 노인에게 무시당했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는가?‘이 영감은 예나 지금이나 얄밉단 말이지.’이 생각에 그는 문성 노인을 노려보며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영감은 참 바라는 게 많구먼.”문성 노인은 개의치 않고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내 선물은 이미 전달했는데, 설마 준비를 안 한 건 아니지?”이 말이 나오자마자 신수 노인의 안색이 굳어졌다.단지 그는 문성 노인이 선물을 줄 것이라고는 전혀 몰랐기에 준비하지 않았다.‘그래도 문성 영감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내가 주지 않으면 이 영감탱이와 비교되는 거
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여전히 그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느꼈지만 어쩔 수 없이 두 어르신이 준비한 선물을 받았다. ‘여 대표님이 말한 것처럼, 나중에 처방전과 희귀한 약재들을 준비하여 두 어르신께 드리면 이 선물에 보답할 수 있을 거야.’고민 끝에 그녀는 두 아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두 할아버지의 마음이니, 감사히 받고 감사 인사를 꼭 드려.”“저도 알아요, 엄마.”아이들은 한목소리로 대답한 뒤, 신수 노인과 문성 노인을 바라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부드러운 어린아이의 목소리는 두 노인의 마음을 살살 녹였다.이로 인해 문성 노인은 문진혁에게 개인사에 대해 재촉하기 시작했다.“아이고, 이 녀석아. 다정이 좀 보고 배우거라. 너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이미 두 아이의 엄마야. 너는 언제쯤 나에게 손자며느리를 보여줄 거니? 내가 사지 멀쩡히 움직일 수 있을 때 증손자를 안아볼 수 있도록 하거라!”그 순간, 진혁은 오늘 이 식사 자리에 그가 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그는 얼굴을 찡그린 채 멋쩍어했다.“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나는 네가 최선을 다하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고 네가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바란단다.”문성 노인은 다시 그를 압박했다.진혁은 계속해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그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매우 비윤리적으로 웃었다.곧 모든 사람이 웃고 떠들며 식사 자리가 끝났다.해산할 때도 여전히 준재가 다정과 아이들을 데려다주었다.가는 길에 두 아이는 많이 피곤했는지 다정에게 기대어 잠이 들었다.이를 본 다정은 아이들이 더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잠자는 자세를 가볍게 조절해 주었다.차의 움직임과 맞물려 그녀는 결코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하지만 아이들이 곤히 자는 모습을 본 그녀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아이들이 오늘 많이 피곤했나 봐요.”다정은 사랑이 가득한 얼굴로 조용히 속삭였다.준재는 그녀의 말에 매우 동의했다.그는 옆에서 곤히 잠든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고,
여준재는 고다정이 고생하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기에 그렇게 말했다.만약 조수가 있다면 이런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할 필요도 없다.이때 잠에서 깨어난 다정은 준재의 말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조수는 필요 없어요. 지금은 피곤해도 당분간은 버틸 수 있어요.”그녀는 이 말과 함께 준재의 몸에 남아있는 침을 뽑아주었다.이런 상황에 준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몇 분 후, 모든 침을 뽑은 다정은 뒷정리를 하고 준재를 쫓아갔다.“여 대표님, 돌아가신 후 이전 약재 그대로 계속 목욕하시면 됩니다. 저는 이만 씻고 자야겠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준재가 할 말이 있든 없든 개의치 않고 옆에 놓인 수건을 집어 들고 비틀거리며 욕실로 걸어갔다.굳게 닫힌 욕실 문을 바라보던 준재는 곧바로 떠나지 않고 눈살을 찌푸린 채 서 있었다.그는 다정의 몽롱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에 다정이 욕실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떠나려 했다.다정은 그런 그의 마음을 알 방법이 없다.욕실에 들어간 그녀는 욕조에 물을 채우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길고 하얀 다리가 욕조 안으로 들어섰고, 잔잔한 물결이 일렁였다.욕조에 앉은 그녀는 따뜻한 목욕물이 가슴을 넘치자 편안함을 느끼며 입을 열어 한숨을 쉬었다. 이어서 긴장을 풀고 벽에 기대었다.그녀는 원래 잠시 몸을 담그고 일어날 계획이었지만, 너무 편한 나머지 다정은 욕조에 기대어 있다가 이내 잠들어 버렸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준재는 다정이 나오지 않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선생님?”그는 욕실 문으로 다가와 머뭇거리며 소리쳤다.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했다.준재는 눈살을 찌푸리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설마 잠드신 건가?”그렇게 말하고 다시 문을 두드리며 그녀를 불러봤지만 안은 여전히 고요했다.결국 준재는 불안한 마음에 강제로 문을 부수고 들어갔고, 그의 눈앞에 보인 장면에 그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다정은 눈을 감은 채 욕조 속으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