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실크 캐미솔 잠옷을 입은 중년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다름 아닌 채성휘의 어머니 하지유였다.그녀의 뒤에는 군청색 잠옷을 입은 그의 아버지 채은호가 따라 들어왔다.“아버지, 어머니, 왜 여기 계셔요?”채성휘가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이때 전화기 너머로 임은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오셨으니 무슨 문제 있으면 두 분한테 물어봐요. 저는 너무 졸려서 먼저 잘게요.”말하고 나서 임은미는 직접 전화를 끊었다.채성휘는 끊긴 휴대폰을 보며 임은미가 떠난 것이 부모님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입을 열기도 전에 하지유가 선수를 쳤다.“너 은미한테 전화하는 거 맞지? 은미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가 돌려보냈어. 너희 둘이 아직 명분이 없는데 은미가 여기 사는 건 아니잖아. 조신한 여자애가 결혼 전에 남자 집에 사는 게 어디 있어?”하지유는 상황을 설명하는 척하면서 실은 임은미의 험담을 하고 있었다.바보가 아닌 이상 어머니의 말에 숨은 뜻을 모를 리 없는 채성휘는 워낙 잔뜩 구겨진 미간이 펴진 적이 없었고, 눈에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어머니, 은미 씨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저한테 약속하셨잖아요?”“내가 괴롭혔어? 뭘 보고 내가 괴롭혔다고 말하는 거야?”하지유는 얼굴을 찌푸리며 언짢은 표정으로 그를 흘겨보았다.채성휘는 말문이 막혔다. 그가 반박할 말을 찾기 전에 하지유가 말을 이었다.“너는 내가 은미가 싫어서 돌려보냈다고 생각하니? 이게 다 너희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너희 둘이 아직 결혼하지 않았는데 혼전 임신한 것도 말이 안 돼. 이 소식이 고향에 전해지면 네 큰 고모랑 친척들이 은미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성휘야, 네 엄마는 정말 은미를 생각해서 돌려보낸 거야. 그리고 은미를 돌보는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가 사용인을 딸려 보냈으니까.”하지유가 눈짓하자 채은호도 말을 거들었다.이를 지켜보던 채성휘는 더욱 대책이 없다는 표정을
쌍둥이가 나간 후 고다정은 친구를 바라보며 걱정스레 물었다.“말해 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임은미도 원래 상의하려고 친구를 찾아온 것이기 때문에 숨기지 않았다.“성휘 씨 부모님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어떻게 된 거야?”고다정이 즉시 미간을 찌푸리며 캐물었다.임은미는 자기가 돌아온 후 발생한 일을 털어놓았다.“내가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휘 씨 부모님이 오셨는데, 나랑 성휘 씨가 결혼 전에 같이 살면 소문이 안 좋게 날 수 있다며 일단 집에 돌아가라고 하셨어. 나를 돌보는 사용인을 보내긴 했지만 어쩐지 나를 못마땅해하시는 것 같아.”이 말을 들은 고다정도 깊은 생각에 잠겼다.“그때 구체적으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말해 봐.”“그때...”임은미는 채성휘 부모님이 했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이 말들은 얼핏 들으면 임은미를 위하는 것 같지만 말에 담긴 깊은 뜻을 따져보면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친구와 채성휘의 신분을 구분하고 있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녀는 친구를 바라보며 물었다.“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노력해 보고 싶어. 다정아, 나를 좀 도와줘. 어떻게 하면 될까?”임은미가 간절한 눈빛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친구의 마음을 이해하는 고다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우선 채성휘 씨 부모님이 왜 너를 싫어하는지 알아내야 해. 너 요 며칠 두 분을 뵈러 간 적이 있어?”“두 분을 모시고 운산을 한 번 둘러볼 생각으로 연락했다가 거절당했어. 내가 임신 중이라 돌아다니면 안 된대.”임은미는 요 며칠 채성휘 부모님과 접촉한 상황을 말하면서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자기가 뭘 잘못해서 채성휘 부모님이 이렇게 싫어하는지 알 수 없었다.고다정도 이 말을 듣고 뭐라 해야 할지 몰랐다.상대방의 행동이 지나치다고 하기에는 이치에 맞고 근거가 있어 흠잡을 데가 없었다.고다정이 생각하다 물었다.“채성휘 씨에게 이 얘기를 한 적이 있어?”“아니,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임은미가 고개를 젓자, 고다정은
하지만 임은미는 대답할 겨를도 없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더니 재빨리 맞은편으로 향했다.고다정은 그녀가 무작정 달려가는 것을 보고 손에 땀을 쥐었다.이 시각 도로는 오가는 차들로 붐비고 있기 때문이다.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정말 비극이다.“은미야, 천천히 가. 차 조심해!”고다정은 임은미를 향해 소리치고는 쌍둥이에게 얌전히 차에 있으라고 당부한 후 그녀를 쫓아갔다.소담과 화영도 걱정되어 뒤차에서 내렸다.그들이 고다정의 뒤를 쫓아 맞은편 길가에 도착해 보니 임은미가 표정을 구긴 채 채성휘 앞을 막고 있었다.채성휘 옆에는 예쁘장하게 생긴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있었다.“이분은 누구예요?”임은미가 차가운 얼굴로 채성휘 옆의 여인을 가리키며 캐물었다.채성휘는 한순간 당황했지만 당당하게 소개했다.“이쪽은 어머니 친구분 따님 한시영 씨. 제가 약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찾아왔어요. 이쪽은 제 약혼녀 임은미 씨.”그는 또 임은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한시영 씨가 오늘 막 도착했거든요. 그래서 어머니가 저한테 여기저기 구경시키라고 하셨어요. 저녁에 은미 씨를 불러 같이 식사하려 했는데,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네요.”이 말을 들은 임은미는 채성휘를 힐끗 쳐다보고는 한시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여자의 직감으로 그녀는 한시영이라는 여자가 자기한테 적대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한시영이 무슨 목적으로 나타났든지 그녀는 기세 싸움에서 질 수 없었다.“안녕하세요, 한시영 씨. 저와 성휘 씨의 약혼식에 참석하려고 멀리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 제가 친구랑 쇼핑 중인데 같이 하실래요? 성휘 씨는 남자여서 여자들이 뭘 좋아하는지 몰라요.”임은미는 말하면서 채성휘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채성휘는 질투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호응했다.“그래도 되죠. 여자들끼리 말도 더 잘 통할 거예요. 마침 저는 연구소에 못다 처리한 일이 있어서.”이 말과 함께 채성휘는 한시영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돌아서서 가버렸다.내키지 않
“이모, 이 치마 입어봐요. 예쁠 것 같아요.”“이거, 이것도 입어봐요. 이모는 다리가 이렇게 길고 예쁜데, 치마를 입지 않으면 낭비예요.”쌍둥이는 부지런한 꿀벌처럼 브랜드 매장에서 끊임없이 임은미에게 예쁜 옷을 골라주었다.달콤한 말도 끊인 적이 없다. 이를 지켜보던 고객과 점원들이 잇달아 웃음을 지었다.“어머, 얘네 너무 귀여워!”“또 둘째를 낳고 싶게 만드네!”“정말 너무 귀엽다!”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고다정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렇게 훌륭한 아이들이 내 아이다!’임은미는 웃지도 울지도 못 할 노릇이다.특히 쌍둥이가 매장의 옷을 싹쓸이하려는 기세로 나오자 그녀는 급히 말렸다.“그만, 이제 그만 가져와. 이것만 입어보려고 해도 한참 걸릴 거야. 그리고 내 옷만 고르지 말고 너희 엄마 옷도 몇 벌 골라봐. 아니면 너희 엄마가 질투할지도 몰라.”그녀는 쌍둥이가 고다정에게로 시선을 돌리도록 유도하려 했다.그녀의 속내를 모를 리 없는 고다정은 즉시 눈썹을 치켜뜨며 웃었다.“질투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준, 윤, 이모에게 예쁜 옷을 많이 골라줘.”“네, 엄마!”쌍둥이는 큰 소리로 대답한 후 계속해서 임은미를 위한 예쁜 옷을 골랐다.그들의 분주한 모습을 지켜보던 고다정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친구 곁에 다가와서는 두 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려놓고 그녀를 탈의실로 떠밀었다.“빨리 이 옷들을 입어봐.”임은미는 어쩔 수 없이 옷을 한 아름 가득 안고 탈의실에 들어갔다.역시 쌍둥이의 안목은 굉장히 높았다.그들이 임은미를 위해 고른 옷들은 모두 임은미의 분위기에 잘 맞았다.“이모 너무 예뻐요!”“이 옷들이 이모가 입으니 모델보다 더 분위기 있어요!”쌍둥이는 오버하며 꿀 발린 말을 했고, 점원들도 각종 찬사를 보냈다.그들의 칭찬에 황홀해진 임은미는 그제야 얼굴에 억지웃음이 아닌 유쾌한 웃음이 번졌다.그녀는 치맛자락을 잡고 피팅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돌아보며 자신의 미모를 감상하더니 이렇게 예쁜 옷
이 말이 끝나자마자 고다정은 친구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하하, 장난이야.”그녀는 아직 진동 중인 휴대폰을 다시 집어들고 웃으며 말했다.“어디 보자. 채 교수님이 무슨 말씀 하시려는지?”임은미가 이를 보고 씩씩거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고다정이 전화하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지,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고 쌍둥이에게 불평했다.“너희 엄마가 너무 나빠. 날 괴롭혀!”“엄마가 나쁘긴 한데, 방금 이모 표정이 너무 웃겼어요.”쌍둥이가 눈을 깜박거리며 입가에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임은미는 잠깐 멍해졌다가 일부러 사나운 척하며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좋아, 너희들도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내 손맛 볼래?”“아, 이모 살려줘요!”미처 피하지 못한 하윤이 임은미에게 잡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용서를 빌었다.고다정은 그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이때 전화기에서 채성휘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그녀의 귓가를 때렸다.“다정 씨, 은미 씨는요?”“은미는 애들이랑 놀고 있어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저한테 얘기하셔도 돼요. 이따 전해드릴게요.”고다정은 임은미가 지금 전화 받기 싫어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채성휘도 옆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듣고 임은미가 정말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저녁에 부모님이 한시영을 환영하는 의미로 식사 자리를 마련했는데 은미 씨도 같이 오래요. 제가 데리러 갈 테니 볼일이 끝나면 저한테 메시지를 보내라고 은미 씨한테 전해주세요.”이 말을 들은 고다정은 실눈을 뜬 채 대답하지 않고 반문했다.“부모님이 은미를 데려오라고 하신 거예요? 아니면 채 선생님이 은미를 데리고 가고 싶은 거예요?”그녀가 괜히 이렇게 묻는 게 아니다. 시내 구경을 핑계로 친구 딸을 채성휘한테 떠민 것을 보면, 채성휘 부모님은 두 청년을 이어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두 분은 저녁이 만남의 좋은 기회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채성휘는 고다정이 문제를 알아챈 줄도 모르고
그날 저녁 채성휘가 임은미를 데리러 왔을 때 고다정과 여준재가 같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살짝 놀랐다.고다정도 그의 표정 변화를 보고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채 교수님, 우리 친정 쪽에서 한 사람이 더 가도 괜찮죠?”“그럼요. 괜찮아요.”고다정이 이렇게 예의를 차려서 말하는데 어찌 감히 안 된다고 말하겠는가.고다정이 그제야 만족한 듯 콧노래를 불렀다.여준재는 그녀가 친구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일부러 부른 것이다.쌍둥이는 이미 집으로 보냈다. 오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불쾌한 일이라도 생기면 두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은미 씨, 차에 타요. 부모님은 이미 레스토랑에 도착하셨어요.”채성휘가 임은미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임은미는 그를 흘겨보고는 거절하지 않고 조수석으로 향했다.채성휘는 극진하게 차 문을 열고 젠틀하고 자상하게 그녀를 부축해 차에 태운 후 문을 닫았다.이 모든 것이 끝난 후에야 그는 고다정과 여준재에게 시선을 돌렸다.그가 입을 열기 전에 고다정이 먼저 말했다.“우리는 차를 가지고 왔어요. 앞에서 가시면 저희가 뒤에서 따라갈게요.”“그래요. 그럼 저 먼저 출발할게요.”채성휘가 말하면서 운전석에 올라탔다.앞차에 시동이 걸리자, 고다정과 여준재도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랐다.가는 길에 여준재가 채성휘의 승용차를 보면서 탄식했다.“일할 때 그렇게 결단력 있는 사람이 집안일은 엉망이네요.”“저도 채성휘 씨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 걱정돼서 기어이 이번 가족 식사에 참석하겠다고 했어요.”고다정도 한숨을 지었다.“은미가 지난 몇 년 저를 많이 도와줬어요.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한때 저한테 많은 도움을 주셨고요. 지금 제가 능력이 되니까 당연히 은미가 다른 사람에게 구박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내 사람을 누구도 괴롭혀서는 안 돼요.”여준재는 친구 역성을 드는 아내를 보며 빙그레 웃었지만 좀 질투도 났다.고다정과 함께 지낸 지 이렇게 오래됐지만 이런 대우는 한 번도 받아본 적
“그 역겨운 눈 치워요. 더 보면 사람 시켜서 눈알 파냅니다.”여준재는 서늘한 눈빛과 위압적인 존재감으로 한시영을 바라봤다.한시영도 온화했던 남자가 갑자기 표정이 바뀌자 순식간에 호감에서 공포로 바뀌었다.이 모습을 본 고다정은 만족스러운 듯 입술을 말아 올리며 한시영에게 차갑게 말했다.“나는 은미 친구이긴 하지만 친구를 넘어 친정 식구이기도 해요. 은미 미래 시댁 식구들이 운산에 왔는데 어떻게 친정 사람인 제가 대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러다 남들에게 알려져서 우리 집에서 몰상식하게 대했다고 말이라도 나오면 어쩌려고.”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시영의 표정이 바뀌었다.‘친정 식구? 안돼, 절대 이 여자를 들여보낼 수 없어. 안 그러면 오늘 밤의 계략은 물거품이 될 것이 분명하다.’그녀가 미처 말리기도 전에 고다정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고, 눈에 예리한 빛이 번뜩이며 옆에 있던 채성휘를 재촉했다.“저희 안으로 안내해 주세요. 아주머니, 아저씨 오래 기다리게 하시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채성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식당으로 안내할 준비를 했다.하지만 그들이 움직이자마자 한시영은 그들의 길을 막으며 다급하게 말했다.“들어가면 안 돼요.”한시영이 고다정과 여준재에게 한 말이었다.이를 본 두 사람은 다소 흥미로운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누군가 그들의 앞을 막아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특히 고다정은 여준재를 만나면서 어머니의 반대를 마주한 이후 이런 상황이 오랜만이었다.길을 막고 있는 앞의 여자를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은 옆에 있던 채성휘를 향하며 차갑게 말했다.“채 선생님, 무슨 일인지 설명해 주시겠어요?”“그래요. 나도 왜 우리 친정 식구가 안에 못 들어가는지 알고 싶네요. 왜요, 오늘 채씨 가문에서 오래된 친구 따님 대접하느라 여기까지 인사하러 온 제 친정 식구는 환영받지 못하는 건가요?”임은미 역시 채성휘의 손을 뿌리치고 아니꼬운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비록 채씨 가문에서 오늘 모임에 친정 식구들을 초대
“애초에 초대받지 않은 자리였는데 어떻게 뻔뻔하게 그런 말을 해요?”한시영은 옆에서 화가 나서 말했다.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비명을 질렀다.알고 보니 임은미가 불같은 성질을 못 참고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뺨을 내려친 것이다.이 여자가 거듭 일을 망치는데 이번에도 반격하지 않으면 임은미는 정말 이 여자가 자신을 만만하게 볼 것 같았다.그 순간 그녀는 화난 표정으로 한시영을 바라보았다.“당신이 채성휘 씨 친분 있는 집안의 딸이라서 몇 번이고 참았는데, 그게 우리 친정 식구까지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어! 그래, 채씨 가문에서 오늘 우리 친정 가족을 초대하지 않았지만 선물까지 챙겨서 보러 온 건데 뭐 잘못됐어?”마지막 말은 채성휘가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그 기세를 보아 채성휘가 그렇다고 말하는 순간 이 일은 일파만파 커질 것 같았다.그걸 모를 리 없는 채성휘는 임은미를 거듭 진정시켰다.“그런 뜻이 아니니까 괜한 생각 마세요.”임은미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다시 물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할래요, 우리 들어갈까요 아님 그냥 갈까요?”“당연히 들어가야죠. 가요!”채성휘는 그렇게 말한 뒤 고다정과 여준재에게 아부 섞인 미소를 지었다.이런 채성휘의 모습은 고다정과 여준재도 처음 봤지만 그도 임은미를 위해 자신의 체면을 내려놓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다정은 임은미를 생각하며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준재를 데리고 채성휘를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매를 맞았던 한시영이 반응한 것도 이때였다.그녀는 더 이상 마음속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룸 안의 상황을 생각하며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하지유에게 전화를 걸었다.“시영아, 왜 그래? 성휘 만났니?”“어머님, 임은미 씨 친정 식구들이 왔어요.”한시영은 서둘러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고 물론 일러바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하지유는 안 그래도 임은미 친정 식구들이 초대도 없이 찾아와서 불만인데 임은미가 마음에 드는 며느리 후보를 때렸으니 잔뜩 체면을 구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