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진이 떠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빼어난 분위기를 자랑하는 여자가 저택 밖에 도착했다.그녀는 초인종을 누르고는 옆으로 물러나 조용히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장씨 아저씨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다소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아가씨, 여긴 웬일이세요?”장씨 아저씨는 눈앞에 있는 여자를 잘 알았다. 사씨 가문의 큰아가씨, 사윤영이었다.동시에 그는 난처한 기색을 드러냈다.예의상 사윤영을 저택 안으로 안내해야 하지만, 지금 저택에 살고 있는 사람을 생각하니 안으로 데려가면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사윤영은 사장님과 사모님이 점찍어둔 도련님의 아내가 될 사람이었으니까.사윤영도 그런 장씨 아저씨의 표정을 눈치챘지만 못 본 척하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구영진 씨 만나러 왔어요. 집에 있죠? 아까 오는 거 봤는데.”“그게... 도련님께서 돌아오시긴 했는데 조금 전에 가셨어요. 지금 가면 아마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장씨 아저씨는 사윤영이 도련님을 쫓아가기를 바라며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불행히도 그는 사윤영이 오늘 온 목적이 구영진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다.사윤영이 무식해 보이는 구영진에게 정말로 마음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특히 그녀의 주선으로 두 집안은 이미 결혼을 논의하고 있었다.그 결과 구영진이 해외에서 돌아온 뒤로 정략결혼은 흐지부지되었고, 게다가 구영진이 외국에서 여자까지 데려왔다는 소문을 들은 그녀였다.그리하여 사윤영은 두 집안의 결혼을 취소하게 만든 사람이 이 여자일 거라고 짐작했다.대체 어떤 여자기에 망나니 구영진을 휘어잡았는지도 무척 궁금했다.“쫓아갈 바엔 그냥 들어가서 기다릴게요.”사윤영은 말을 마치고 곧장 별장으로 들어갔다.장씨 아저씨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얼른 도련님께 돌아오라고 연락해야겠다.’곧 사윤영이 거실로 들어왔고, 이때 고다정은 아직 방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아까 구영진이 돌아왔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잡지를 보
#사윤영이 고다정에게 그녀의 정체에 대해 알려주고 있을 때, 밖에서 구영진이 황급히 뛰어 들어와 이 장면을 보게 되었다.씩씩거리던 그는 사윤영을 노려보며 말했다.“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내가 안 왔으면 네가 아저씨 아줌마 몰래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는 것도 몰랐을 거야.”사윤영은 구영진의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심각한 얼굴로 대꾸했다.“네가 이러면 아저씨 아줌마한테 얼마나 성가신 일이 생기는지 알아?”“이건 내 집안일이야. 네가 참견할 필요 없어. 잔소리쟁이가 몇 년 만에 봐도 계속 남 일에 간섭하네.”구영진은 짜증스럽게 말하더니 이윽고 경고를 날렸다.“미리 말하는데, 저 여자가 여기 있다는 걸 어디 가서 말하지 마. 안 그러면 네 어릴 적 못생긴 사진 다 퍼뜨릴 거니까!”“...”이 순간 고다정과 사윤영 둘 다 할 말을 잃었다.사윤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퍼뜨리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나도 절대 이번 일 숨기지 않을 거니까!”말을 마친 그녀가 고다정을 바라보며 한결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오늘은 더 얘기 못하겠네요. 전 이만 돌아갈 테니까 나중에 시간 되면 다시 만나요.”“네, 조심히 가요.”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두 여자가 자신을 무시한 채 둘이서만 대화하자 구영진은 다가가 사윤영의 앞을 막아서며 위압적으로 말했다.“내 말대로 따르기 전까지 여기서 못 나가!”“나를 안 보내고 여기 남겨두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아? 내가 너 찾으러 여기 온 거 우리 엄마 아빠가 다 알거든.”사윤영은 전혀 가지 못할까 봐 두려운 기색 없이 당당하게 그를 노려보았다.구영진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그래서 뭐, 내가 너 못 봤다고 하면 그만이지.”이 말을 들은 사윤영은 크게 웃었다.고다정 역시 소파에 앉아 흥미롭게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왜 웃어?”구영진은 사윤영의 예쁜 미소를 바라보며 살짝 흔들렸다.사윤영은 웃으며 말했다.“네가 뒷일 생각 못하고 이러는 게 웃겨서. 네가 날 못 봤다고 말해도
사윤영은 연락처를 받자마자 전화를 걸었고 빠르게 통화가 연결되었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로 정중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사윤영도 예의 있게 물었다.“혹시 여 대표님인가요?”“죄송하지만 아닙니다. 저는 대표님 비서인데 누구시고, 왜 대표님을 찾으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구남준은 업무적인 태도로 말했다.사윤영은 다소 놀랐지만 금방 받아들였다.여준재는 그들과 같은 수준의 사람이 아니었기에 비서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것으로 충분했다.사윤영은 잠시 딴생각에 잠겨있다가 전화를 건 목적을 얘기했다.“사실 제 친구가 대표님 약혼녀를 구했거든요.”“잠깐만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구남준의 흥분된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사윤영은 당황하며 다시 말했다.“제 친구가 대표님 약혼녀를 구하게 됐는데, 고다정 씨 상황이 좀 특별하고, 또 제 친구와 여 대표님이 과거에 원한이 좀 있었나 봐요. 그래서 친구가 바로 연락드리지 않았어요. 여 대표님께서 언제쯤 데리러 오실 수 있을까요?”이 말을 들은 구남준은 재빨리 말했다.“지금 대표님 찾으러 갈 테니 끊지 마세요!”말을 마친 그는 차 키를 들고 대표님을 찾으러 병원으로 향했다.사윤영은 전화를 끊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10분 정도 지나자 다소 흥분한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재차 들려왔다.“여준재입니다. 제 약혼녀는 어디 있나요?”“여 대표님 안녕하세요. 고다정 씨는 지금 무릉에 있는 제 친구 집에 계세요. 혹시 7년 전에 레이싱 때문에 귀찮게 했던 구영진이라는 사람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기억합니다.”평소 기억력이 좋았던 여준재가 낮게 말했다.이 말을 들은 사윤영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구영진이 제 친구인데 너무 모질게 대하진 말아 주세요. 워낙 애 같은 사람이고, 또 지금은 고다정 씨와 아이를 잘 돌봐주고 있어요.”솔직히 여준재는 화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약혼녀와 아이를 구한 것을 봐서 참으며 짙어진 눈빛으로 물었다.“정확한 주소를
“네, 기억을 잃었어요. 단지 사람들이 그쪽이 내 약혼자라고 하는 걸 들었어요.”고다정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제안했다.“저 찾으러 오신 거니까 들어와서 얘기해요. 아저씨, 저분들 거실로 좀 안내해 주세요. 옷 갈아입고 바로 내려갈게요.”“알겠습니다, 고다정 씨.”장씨 아저씨는 그러겠다고 대답한 뒤 안내하는 제스처를 취했다.5분도 채 되지 않아 일행은 거실에 앉았다.고다정은 여준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조금 전 불빛이 없을 때도 이 남자가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니 남자의 생김새가 제법 그녀의 취향이었다. 고다정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겉으로 침착하게 말했다.“소개 좀 해줄래요? 그리고 내가 왜 임신한 상태에서 총을 맞고 바다에 던져졌는지 그 사고에 대해 알려줄 수 있어요?”“그러죠.”여준재는 다가가서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지난 한 달 동안의 일을 이야기했다.옆에 서 있던 구남준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모님을 살피며 속으로 한탄했다.‘기억을 잃은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 대표님과 사모님에게 일어나다니.’“약혼자인 저 말고도 아이 둘이 있고, 외할머니도 계시는데 다정 씨가 실종되고 쓰러지셨어요. 하지만 다정 씨가 돌아가면 괜찮아지실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여준재는 고다정을 위로하는 말로 말을 마쳤다.고다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이 남자가 한 말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었지만, 가슴에 와닿는 감정이 이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하지만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왜 우리는 아이가 둘이고 배 속에 있는 아이까지 합치면 셋이나 되는데 아직 미혼 관계인 거죠?”“말하자면 긴데 궁금해하는 것 같으니 짧고 굵게 알려줄게요.”여준재는 고다정의 질문에 전혀 놀라지 않고 첫 만남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진지하게 듣던 고다정은 그제야 자신이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보름 전에 결혼식을 올렸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여준재는
“...”구영진은 고다정이 그동안 가둬놓은 것에 대해 보복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그는 옆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훤칠한 남자를 보며 이기지 못해도 세게 나가려 했으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그의 의지와 달랐다.“그냥 농담한 거예요. 여 대표님도 괜찮으시죠? 그래도 내가 약혼녀 구해드렸잖아요. 그때 내가 잠수해서 우연히 만나지 않았으면 심하게 다친 채로 바다에서 죽었을 거예요.”“압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여기 무사히 서 있는 거죠.”여준재는 짙은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어쨌든 다정 씨와 내 아이를 구해줬으니 한 가지 부탁을 들어드리죠. 제 능력이 닿는 대로 최대한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이 말을 들은 구영진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짓다가 반짝이는 눈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정말입니까?”“네.”여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거듭 말했다.그러자 구영진은 잔뜩 들떠서 곧바로 자신이 원하는 걸 말했다.“좋아요. 그럼 내 조건은 우리가 다시 한번 레이싱하는 겁니다. 그동안 계속 연습했어요. 이번엔 반드시, 그것도 압도적으로 이길 겁니다!”멀지 않은 곳에서 잔뜩 흥분한 남자를 바라보며 여준재와 고다정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저 멍청한 남자가 바라는 게 고작 저런 것일 줄이야.’옆에 있던 구남준과 장씨 아저씨도 할 말을 잃었다.여준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진심입니까, 그게 다예요?”“난 진심이에요.”구영진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를 본 여준재는 더 말하지 않고 차갑게 대꾸했다.“시합 날짜는 저희 쪽 일이 끝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그 말에 구영진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계속 바쁘다고 나와의 약속을 미루는 건 아니겠죠?”“전 한 번 뱉은 말은 지킵니다. 시간 날 때 연락드리죠.”여준재는 말을 마치고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시간도 늦었는데 다정 씨 쉬어야 하니까 더 할 말 있으면 내일 다시 하세요.”구영진은 두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방에 들어선 여준재는 고다정을 조심
#남자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속으로 감동하며 무의식중에 이렇게 말했다.“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요. 몸 상해요.”“알겠어요. 근데 지금은 다정 씨랑 떨어지기 싫어서 그랬어요.”여준재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가 점점 더 짙어졌다.고다정은 기억을 잃었어도 자신의 몸에 대한 걱정은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한편 고다정은 멍하니 넋을 잃고 남자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바라보았다.비록 여준재는 지금 매우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그의 잘생긴 얼굴은 변함없었고, 오히려 퇴폐미까지 더해져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여준재도 당연히 고다정의 눈빛을 알아차리고는 애정 가득한 눈빛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깨어났으니 일어날까요?”그렇게 말하며 그는 앞으로 다가가 고다정을 침대에서 일어나도록 도와주려 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고다정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상대가 자신의 약혼자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니 멍하니 보는 것도 당연했다.‘그러게 누가 그렇게 잘생기랬나.’여준재는 그런 고다정의 표정 변화를 하나하나 눈에 담았고, 기억을 잃고 난 뒤 고다정의 성격이 활발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간단히 씻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래층에는 장씨 아저씨가 이미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았다.구영진도 이미 일어난 뒤였다.사실 아직 일어날 때가 아니었지만 여준재가 여기 있어 마음 놓고 잘 수 없었다.식탁 앞에서 알콩달콩한 두 사람을 보며 그는 속이 답답했다.‘이른 아침부터 꼭 솔로인 사람 괴롭게 해야 하나?’한 명은 기억을 잃었고 다른 한 명은 어제 막 찾아왔는데, 왜 하룻밤 사이에 둘이 부쩍 가까워진 것 같지?“그러고 보니 사람도 찾았는데 언제 갈 생각입니까?”구영진은 두 사람을 빨리 떠나보내고 싶었다. 괜히 이러다 부모님과 만나게 되면 설명하기도 난감했다.때가 되어 부모님이 고다정의 행방을 물으면 헤어졌다고 말할 생각이었다.하지만 고다정과 여준재는 그런 그의 속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고
“저는 따지지 않겠지만 두 분께 아드님을 잘 단속하라는 말씀은 드리고 싶네요. 또다시 이런 일을 벌였다가 막무가내인 사람한테 잘못 걸리면 구씨 가문에 엄청난 골칫거리가 생길지도 모릅니다.”구영진을 놀려보니 고다정이 왜 재미있어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특히 구영진의 다양한 표정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여준재의 이런 속내를 모르는 구민석 부부는 그의 말을 듣고 표정이 엄숙해졌다.특히 주혜원은 화가 치밀어오른 나머지 구영진을 덥석 잡아끌더니 사정없이 귀를 잡아당겼다.“이런 못된 놈을 봤나. 점점 더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구나. 이런 일로 사람을 속이다니. 여 대표님과 고다정 씨가 문제 삼지 않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나 해?”“아, 엄마 살살해요. 아파요. 여 대표님과 고다정 씨도 계시는데 좀 체면을 살려주세요!”아파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구영진을 보며 고다정과 여준재는 폭소를 금치 못했다.이때 구민석도 옆에서 거들었다.“쌤통이야. 여 대표님과 고다정 씨가 계셔서 다행인 줄 알아. 아니면 나도 네 엄마랑 같이 때렸을 거야. 사고만 치는 자식!”여준재가 문제 삼지 않는다고 그들이 아무 표시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혼나고 난 구영진은 어깨가 축 늘어졌다.온순해진 구영진을 바라보며 고다정은 미소를 지었다.“시간 나면 아주머니를 모시고 운산에 놀러 와요.”“그래. 시간 나면 꼭 갈게.”주혜원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쉬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어쩌다 아들을 후려잡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 했더니 남의 약혼녀라니.‘짜증 나! 안 되겠어. 이 멍청한 자식을 더 패야지.’이를 모르는 고다정은 그날 오후 여준재를 따라 운산에 돌아갔다.헬기에서 내리니 이상철이 멀쩡한 고다정을 반갑게 맞았다.“작은 사모님, 끝내 돌아오셨네요.”“안녕하세요.”고다정이 방그레 웃으며 인사했다.당황한 이상철은 무심코 여준재를 쳐다보았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여준재는 숨기지 않고 고다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다정
쌍둥이가 눈물을 머금은 것을 본 고다정은 급히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왜 울어? 조금 전까지 멀쩡했잖아.”“저희는 괜찮아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쌍둥이가 흐느껴 울며 말했다.사실 그들은 오랜만에 돌아온 엄마가 이전과 달리 멀게 느껴졌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아기가 생겨서 그런 걸까?쌍둥이는 속으로 허튼 생각을 했다.그들의 속마음은 여준재의 눈을 속이지 못했다.울지도 웃지도 못할 상황에 여준재가 급히 설명했다.“엄마가 기억을 잃어서 지금 누구도 기억 못한단다.”여준재가 왜 갑자기 이 말을 하는지 의아했던 고다정은 붉어진 쌍둥이의 눈시울을 보고 나서야 무슨 영문인지 알았다.“미안해. 나는 과거의 기억이 없어. 그래서 이전에 내가 어떻게 했는지도 몰라. 상처받았다면 엄마가 용서를 빌게.”그녀는 겸연쩍은 눈빛으로 쌍둥이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사과했다.이 말에 쌍둥이와 강말숙, 심해영이 깜짝 놀랐다.“기억을 잃었다고?”“엄마가 기억을 잃었어요?”그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잠시 기억을 잃었습니다.”이때 여준재도 입을 열었다.“내일 다정 씨를 데리고 병원에 갈 거예요. 전면 검사를 받으려고 신경과 전문의를 예약했어요.”자기를 위한 일인 걸 아는 고다정은 반대하지 않았다.“엄마가 기억을 잃은 거였군요. 아기가 생겨서 우리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하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앳된 얼굴로 고다정을 쳐다보았다.“엄마가 우리를 기억 못 하면 다시 자기소개 할게요. 엄마, 안녕하세요, 저는 엄마 딸 여하윤이에요. 원래 고하윤이었는데, 아빠를 찾은 후 개명했어요. 올해 6살이고요. 유치원 상급반을 다니고 있지만 독학으로 초등학교 4학년 과정까지 끝냈어요.”“초등학교 4학년?”고다정이 깜짝 놀라자, 하윤은 자랑스럽게 작은 가슴을 쫙 폈다.“이게 다 똑똑한 오빠 공로예요.”하준은 이 말을 듣고 동생을 힐끗 보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며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저는 하준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