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고다정과 여준재는 아침 식사가 끝난 후 쌍둥이를 데리고 놀러 나갔다.사오월의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았고 산들바람이 기분 좋게 살랑살랑 불었다.그래서 그들은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시내 북쪽에 위치한 성북공원에 갔다.넓은 잔디가 있어 연날리기에 딱 맞는 장소였기 때문이다.그들이 공원에 도착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연을 날리고 있었고, 일부 연날리기 애호가들은 특이한 연을 띄우고 있었다.“와, 엄마, 저 연을 좀 봐요. 꼬리가 엄청나게 길어요.”하윤이가 하늘에 떠 있는 지네 모양의 연을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고다정과 여준재는 꼬맹이의 말을 듣고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그 지네 모양의 연은 정말 길었기 때문이다.여준재가 눈대중으로 봤을 때 적어도 3m는 될 것 같았다.다만 이렇게 긴 연을 그 주인은 어떻게 하늘에 올려보냈을까?여준재가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것 같아 내려다보니 딸애가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아빠, 저도 저렇게 긴 연을 날리고 싶어요.”하윤이가 지네 모양의 연을 가리키며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여준재를 쳐다보았다.순수한 딸애의 두 눈을 보고 여준재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 동의했다.하준이도 원래 지네 모양의 연을 가지고 싶었지만 동생이 그걸 선택하자 마음을 바꿨고, 이따 연을 파는 가게에 가서 다시 고르기로 했다.10분도 안 되어 네 식구는 연을 구매했다.하윤이는 역시 3m짜리 지네 모양의 연을 샀다.꼬맹이는 신바람이 나서 연의 한 귀퉁이를 잡고 여준재를 따라갔다.하준이는 그렇게 큰 연을 고르지 않고 파란색 제비 모양의 연을 골랐다.그 원인은, 그도 크고 긴 연을 고르면 네 식구가 연 가게를 떠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동생의 연만 해도 아빠와 엄마가 둘이 함께 들어야 했으니까.그는 철든 아이라서 아빠, 엄마를 난처하게 할 수 없었다.고다정과 여준재는 꼬맹이의 속마음을 알아채지 못한 채 연을 연구하고 있었다.“
“너희 가족이 오랜만에 나들이하는데 방해하지 않을게.”임은미는 말머리를 돌렸다.“참, 여 대표님이 너한테 고다빈과 진시목의 일을 말해줬어?”이 말을 들은 고다정은 무의식적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준재와 하윤이를 바라보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그 사람들은 왜?”“어, 너 몰랐구나. 여 대표님이 알려주지 않았네. 하긴 여 대표님이 너를 얼마나 아끼는데. 당연히 네가 이런 더러운 일을 알고 기분 잡치는 것이 싫겠지.”임은미는 이 대목에서 친구가 부럽기까지 했다.고다정도 당연히 말뜻을 알아듣고 실소했다.“왜? 채 선생님은 너한테 잘해주지 않아?”“컥컥... 이 얘기는 뛰어넘고, 고다빈과 진시목 얘기를 하자.”임은미는 친구한테 놀림받고 싶지 않아 급히 화제를 돌렸다.그러나 고다정은 이 화제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그 두 사람에 대해 할 말이 뭐가 있어?”“넌 모르지?”임은미는 일부러 뜸 들이더니 속시원해하며 말했다.“고다빈은 죽고 진시목은 감옥 갔어.”이 말을 들은 고다정은 놀랍고 믿을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어떻게 그런 일이?”“인과응보지 뭐. 갚지 않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지 않았던 거야. 고다빈이 진시목의 손에 죽으리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지? 어쩌면 고다빈도 자기가 진시목의 손에 그렇게 치욕스럽게 죽임을 당할 줄은 몰랐을 거야.”임은미는 마지막에 탄식을 금치 못했다.이는 고다정의 호기심을 제대로 자극했다.“진시목이 어떻게 했는데?”“고다빈이 바람피웠다고 의심해서 거지 몇 명을 찾아 그 짓거리를 시켰대. 무슨 말인지 알지? 아무튼 고다빈이 그렇게 죽었대.”임은미가 알고 있는 것을 말했다.고다정은 듣고 나서 마음이 말할 수 없이 복잡해졌다.그녀가 손을 쓰기도 전에 고씨 집안 사람들이 죽거나 감옥 가 엉겁결에 어머니 원수를 갚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허무했다.너무 오래 침묵이 흐르자, 임은미가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다정아, 내 말을 듣고 있니? 이상하네. 교외라서 신호가 안 좋은가?”“듣고 있어. 방금
이튿날 아침, 강말숙은 고다정이 엄마를 보러 간다는 소리에 대견해하며 음식을 준비했다.쌍둥이는 따라갈 수 없어 아쉬워하면서 외할머니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엄마, 외할머니한테 우리가 방학하면 보러 간다고 전해줘요.”“외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해바라기꽃을 가지고 갈 거예요.”하윤이도 옆에서 거들었다.고다정은 웃으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식사를 마친 고다정과 여준재는 쌍둥이를 학교에 보낸 후 산소로 향했다.유라는 내려와 함께 식사하지 않았지만 식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았다.그녀는 베란다에서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지켜본 후 내려가 식사하려고 방으로 돌아갔다.요즘 그녀는 일부러 여준재 앞에 나타나는 횟수를 줄였다. 여준재가 그녀를 보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고 쫓을까 봐 두려워서다.귀국하면 그녀가 여준재와 고다정의 결혼을 막으려 해도 여건이 안 된다.유라가 두 사람의 결혼을 어떻게 막을지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의 심복 디카프리도였다.“주인님, 요구에 맞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고다정에게 풀 수 없는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디카프리도가 조사한 상황을 보고하자, 유라가 시큰둥하게 말했다.“원한이 있으면 돼. 고다정을 죽이든가, 죽이지 못하면 쫓아내든가, 둘 중 하나를 하면 내가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전해.”그녀는 뭐가 생각났는지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이전에 녹음한 손건우 음성을 보내줘. 여준재가 우리를 의심하면 안 돼.”“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압니다.”디카프리도는 유라의 뜻을 알아듣고 전화를 끊었다.고다정은 이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어머니 묘비 앞에 외할머니가 준비한 제사 음식을 하나하나 꺼내 놓으면서 일상 이야기를 늘어놓았다.“제가 여기 온다고 하니까 외할머니께서 이른 아침에 어머니가 즐겨 드시던 음식을 준비해 주셨어요. 외할머니가 오시지 않았다고 나무라지 마세요. 병에 걸린 후 외할머니는 몸이 이전 같지 않아요. 요즘 정신은 좋은데 몸은 점
산소에서 내려온 후 여준재는 바로 집에 돌아가지 않고 고다정을 데리고 영화관에 갔다.“여긴 왜 와요?”고다정은 의외라는 듯 여준재를 올려다보며 물었다.그러자 여준재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우리 단둘이 데이트한 지 너무 오래됐어요. 마침 오늘 준이, 윤이도 없어서 방해하는 사람이 없으니 우리 제대로 데이트해 봐요.”말하고 나서 그는 고다정의 손을 잡고 영화관 입구로 갔다.그들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을 때 디카프리도는 임초연을 만났다.임초연은 맞은편에 앉은 외국인 남자를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말해. 어느 쪽 사람이야?”“혹시 4대 은둔 가문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세요?”디카프리도는 한눈에 임초연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일부러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했다.임초연은 그의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곱씹으며 말했다.“은둔 가문을 어떻게 몰라? 하지만 한 달 전 4대 은둔 가문이 하나로 합쳐지고, 성씨 가문만 남았다고 들었는데.”임씨 가문은 재작년에 여준재에게 쫓겨 운산을 떠났지만 워낙 기반이 탄탄한 데다 집안 어르신이 다시 경영 일선에 뛰어들고 혼인으로 관계를 맺은 가문의 지원도 받으면서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다시 일류 가문 반열에 올랐다.“현재 4대 은둔 가문 중 성씨 가문만 남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가문이 달갑게 성씨 가문에 굴복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여준재가 중간에서 방해하지 않았다면 이 게임의 승자는 성씨 가문이 아닐 수도 있었어요. 즉 우리는 같은 사람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요. 우리와 손잡고 그에 맞설 의향이 없으신지요?”디카프리도가 협력을 제안했다.임초연이 이 말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그녀는 여준재와 고다정이 제 명에 못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니까.하지만 그녀는 조심성을 보이며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부자는 망해도 3년은 먹을 것이 있다는데. 3대 가문은 망했다 해도 나보다 능력이 있을 텐데 나를 찾아와 이러는 의도가 뭔지 이해가 안
이틀 연속 푹 쉬고 난 고다정이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성시원과 채성휘는 연구실에 있었다. 가운을 입고 무슨 얘기 중인 건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스승님, 채 선생님, 무슨 얘기 하세요?"고다정이 가까이 가며 묻자 돌아본 둘이 동시에 말했다."왔니? 얼른 와서 결과 봐 봐.""저희 성공했어요!""정말요?"둘의 말을 들은 고다정이 기쁜 표정으로 다가가니 성시원이 손에 들린 보고서를 건넸다."네가 직접 봐."보고서를 보던 고다정의 표정이 밝아졌다. 80%의 확률로 암세포를 억제한다는 문장이 바로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스승님! 너무 다행이에요."고다정이 고개를 들고 성시원을 뿌듯하다는 듯 보자 성시원도 웃으며 답했다."그러게, 성공했네. 이제 임상 실험만 통과하면 더 이상 다른 약에 의존할 필요 없어!"스승과 제자가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자 감정을 잘 다스리던 채성휘도 함께 흥분했다.국민들이 약 부족과 높은 가격으로 인해 약을 못 살 걱정을 줄일 거라는 생각에 행복한 미래를 상상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차분해진 셋이 이 소식을 연구소에 알렸다."특효약이 생겼으니까 이제 M국 사람들 눈치 안 봐도 되겠어요!""그러니까요. 그동안 국민들 한 명이라도 더 넣어 주려고 얼마나 많은 특혜를 줬는지 몰라요.""드디어 한숨 덜었네요."이 소식에 연구소가 소란스러워졌지만 결론은 다행이라는 말들이었다.단체 채팅방에서 누군가 회식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에 채성휘가 단번에 동의하고는 고다정에게 맡겼다.거절할 리 없는 고다정이 바로 친인척들을 데려올 수 있게 호텔을 예약했다. "바빠요?"고다정이 예약하자마자 여준재에게 전화를 걸었다."서류 검토하는 중이라 바쁘진 않아요. 무슨 일이에요?"미소를 머금은 듯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고다정은 돌려말하지 않고 바로 용건을 말했다."저녁에 회식이 있는데 친인척 데려와도 된다길래. 근데 우리 여 대표님 얼굴 비출 시간이라도 있을지 모르겠네요."장난스러운 목소리에 여준재가 웃었다."마누라
여준재도 이런 식으로 질투한다는 걸 이제 안 채성휘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그쪽 쪼잔한 거 고 선생님은 알아요?""어떨 것 같은데요."여준재가 살짝 흘기며 대답을 흘렸다."보아하니 모르나 본데, 제가 일러바칠까 두렵지도 않아요?"술을 한 모금 마신 채성휘가 코웃음 쳤다."그게 뭐요. 알게 된다 해도 제가 그만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는 것뿐인데."전혀 타격받지 않은 여준재를 본 채성휘가 쏟아지는 깨에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아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이렇게 유치한 남자가...’시간이 좀 더 지나서야 성시원이 도착했다. 그와 함께 회식도 정식으로 시작됐는데 여준재는 그제서야 특효약 연구에 성공했다는 걸 알았다."성공한 거 진심으로 축하해요."잔을 들고 고다정에게 감탄을 보내자 고다정이 부드럽게 웃었다."대표님도 축하해요."이 말을 들은 여준재가 의아해 눈썹을 치켜세웠다."임상실험 통과하면 YS그룹 의료 계열사랑 공립 병원에 보급하기로 했어요.""고마워요."여준재가 진심으로 감동받았다. 원래대로라면 빨라도 공립 병원 보급 반 년 뒤에야 살 수 있는 권한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보급이라니.여준재의 감사 인사에 고다정이 여준재가 가르쳤던 자세로 삐딱하게 말했다."고맙다는 말 금지. 다음에 또 하면 그땐 혼날 줄 아세요."말이 끝남과 동시에 여준재를 흘겨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익숙한 말을 들은 여준재가 못 참고 웃었다. 자신의 말을 따라 하는 고다정을 놀릴 심산으로 입을 열려던 차, 성시원이 다가오는 것을 봤다."어르신."하려던 말을 삼키고 성시원에게 인사했다."내가 방해했나?"둘을 슬쩍 보고는 웃었다."그럴 리가요. 무슨 일이세요?"다급하게 부인한 고다정이 묻자 성시원이 곧바로 말했다."저번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 배사의식과 동시에 후계자 신분 밝히는 거. 프로젝트 일부가 끝난 거나 다름없으니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는데.""제가 뭘 준비하면 되나요?"진지해진 고다정이 묻자 성시원이 부드럽게 웃으며 답
두 사람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던 고다정이 함정이란 걸 알았지만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스승님 가문의 다른 분들은 뵌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스승님 가문이니 분명 대단하겠죠. 준재 씨랑 비교한다면... 각자 장점이 있지 않을까요?"말을 끝내자마자 반박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다가오는 임은미에게 손을 흔들며 그리로 도망갔다."은미야, 마침 그쪽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타이밍 좋다."그 뒷모습에 못 당하겠다는 듯 웃은 둘의 시선이 마주치자 성시원이 먼저 빈정거렸다."아까 한 말 다 진심이야. 고작 이 정도도 못 깨면 결혼 못 할 줄 알아.""걱정 마세요. 꼭 결혼하고 말 테니까."여준재가 확실하게 못 박았다.성시원이 자리를 떠남으로써 두 사람의 대치가 겨우 종료됐다. 회식은 행복한 분위기를 쭉 유지하다 새벽이 되어서야 파했다.돌아가는 길에 조금 취한 고다정이 여준재의 품에 안겨 배시시 웃었다."그렇게 좋아요?"헝클어진 고다정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말했다."당연하죠. 특효약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기쁜데요?"그러고는 딸꾹질 때문에 끊긴 말을 이었다."무엇보다 희망이 생겼어요. 암세포를 억제할 수 있게 됐으니까 나중에 암세포를 아예 죽일 수 있는 약을 만들어내서 불치병 틀에서 암을 빼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이 호언장담을 들은 여준재가 입가에 미소만 은은하게 띄울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신난 고다정에게 지금 필요한 건 입이 아니라 귀인 것을 아는 것이다."저는 아직 젊으니까 몇 년만 더 지나면 암이라는 난제를 꼭 해결해서 할머니 무병장수하시게 만들 거예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준재의 품에서 잠들었다.그런 고다정을 보던 여준재가 편한 자세를 찾아 단단히 안아 줬다."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드릴게요."대화를 듣던 구남준이 룸 미러로 둘을 보며 빛나는 사람들을 옆에서 보필할 수 있다는 것에 내심 감격했다....그 뒤로 고다정은 쭉 성시원을 따라갈 채비를 했는데, 일이 일이니만큼 고다정의 유일한 보호자인 강말숙
다음 날 아침, 여준재의 보호 아래 무사히 성시원과 맞닥뜨려 출발했다.성시원의 본가는 300km 떨어진 태산에 있었는데 2만 평 가까이 되는 사합원이었다.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눈앞에 보이는 저택의 기세에 성시원을 제외한 모두가 차원 이동이라도 한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대문 양옆에 위치한 사자상이 웅장함과 위엄을 증폭하는 듯했다."우와, 어르신 집 굉장해요!"쌍둥이가 입을 다물지 못하자 그에 고다정과 강말숙도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내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야."성시원이 웃으며 정정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커다란 대문이 열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줄을 맞춰 걸어 나왔다."둘째 왔냐.""작은아버지 오랜만이에요.“"시삼촌."고다정은 이 호칭에 그들이 성시원의 가족이라는 것을 확신했다.하지만 끼어들어 인사하기보다는 쌍둥이를 데리고 강말숙의 옆에서 그들이 회포를 다 풀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고다정이 간과한 것은 성시원이 그 호의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반가워하는 친척들 사이에서도 미소 하나 내비치지 않은 성시원은 친척들의 가식이라면 이제 지겨웠다."가식은 이쯤 해. 이번에 돌아온 건 전화로 말했듯이 제자랑 증조 스승님 뵈고 후계자 선포하러 온 거니까. 누가 자꾸 넘보길래 이제 그만 좀 넘보라고."자신의 말에 분위기가 얼마나 싸해지든 성시원은 손을 휘둘러 고다정을 불렀다."따라와, 다정아.""네, 스승님."대답하고는 쌍둥이와 강말숙을 데리고 함께 대문을 넘었다.성시원의 친척들을 지나치려는 순간이었다."어디서 구르다 온지도 모르는 게 어디서 내 재산을 넘봐? 웃기고 있어. 얼른 여기서 꺼지지 않으면 그 욕망 품은 걸 평생 후회하게 해 주지."큰 소리로 말한 건 아니었지만 고다정에게는 충분히 잘 들리는 크기였다.그에 강말숙의 안색이 어두워짐과 함께 쌍둥이의 얼굴도 분노로 물들었다.고하준이 제 동생에게 눈치를 주자 고하윤이 망발을 뱉은 남자를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엄마,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