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아는 좋게 말하며 설득했다.“저에 대해서 뭔가 오해를 하고 있으신 것 같은데 당신과 만나고 싶은 이유는 제가 자초지종을 얘기하려고...”“나랑 할 얘기가 있어? 나 피해 다녔잖아? 사람 불러서 나 때리려고 했잖아? 내가 당신 고소하니까 나랑 할 얘기가 생겼어? 분명히 얘기하는데 나 당신이랑 절대 합의 안 해!”그쪽에서 엄숙한 호통이 들려왔지만, 송연아는 냉정하게 대응했다.“당신에게 어떤 용서를 바라는 게 아니에요. 저는 사람을 해치려고 하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당신의 아버지를 살리고 싶은 마음 하나로 긴급한 상황에서...”“나랑 얘기하지 말고 판사님한테 얘기하라니까, 당신이 한 짓이 규정에 맞는 일인지 아닌지!”원장 아들은 최후의 통보를 내렸다.“다시는 나한테 전화하지마. 그랬다가는 당신을 사생활 침해로 추가고소를 할 거야!”송연아는 전임 원장 아들과 이렇게도 말이 안 통할 줄 몰라 속으로 탄식했다.“당신 아버지는 연구를 진행하던 분이라 당신도 어느 정도의 업무 내용을 알고 있겠죠. 원장님이 인공심장을 연구한 목적이 바로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게 아닌가요? 그런 원장님이 심장 때문에 죽는 걸 보고 싶은 건가요? 제가 한 일이 규정에 부합되지 않는 게 맞아요. 하지만 저는 당신 아버지를 살렸어요. 제가 아니면 벌써 돌아가셨을지도...”“뚜뚜...”그쪽에서 전화를 끊었다. 송연아는 휴대폰을 좌석에 던지면서 두통이 몰려와 이마를 짚었다. 이영은 뒤돌아 그녀를 봤다.“제가 도울 게 있습니까?”이번 일은 이영이 별다른 도움을 줄 수가 없었기에 송연아가 말했다.“괜찮아요.”“만나고 싶은 사람 얘기해줘요. 그럼 제가 사람을 보내서 잡아 올게요.”이영의 말에 송연아가 웃었다.“개인적으로 사람 막 잡고 그러는 거 불법이에요. 이 사람이 지금 나를 고소한 마당에 납치까지 하면 추가고소를 할 이유가 또 하나 더 늘겠네요.”“이가 많으면 간지러운 줄도 모른다잖아요.”이영이 말했다.“...”“이영 씨,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거죠
“너 지금 욕하는 거야?”원장 아들은 화를 내고 싶지만, 기세가 꺾여 소리를 낮추고 얘기했다.“너희들 얼른 꺼져. 안 가면 나 신고할 거야.”이영이 뭐라 더 말하려고 했지만, 더 얘기하다가는 두 사람이 싸울 것 같아서 송연아가 막았다. 송연아는 합의하러 온 거지 충돌을 일으키려고 온 게 아니다.“이 사람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니까 흥분하지 마시고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그때 상황은...”“그때의 상황은 당신이 내 허락 없이 아직 테스트 단계인 인공심장을 투입하여 내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태로 아직도 중환자실에 누워있게 한 거였어. 나랑 무슨 얘기를 하려고?”원장 아들은 화가 나 씩씩거렸다.“당신은 내 아버지를 구하려고 그렇게 했다지? 그런데 지금 결과는 우리 아버지가 일어나셨어?”송연아는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 그녀는 사람을 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을 성공적으로 살리지는 못했다. 현재는 사망하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상황이다. 송연아는 원장 아들을 보며 말했다.“제가 최선을 다해서...”“안 들어!”원장 아들은 듣기 싫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빨리 가. 아니면 아파트 경비를 불러서 쫓아낼 거야!”송연아는 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아무리 어떤 말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을 걸 느끼고 이영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이영이 말했다.“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거죠?”송연아는 한숨을 내쉬었다.“그 누구도 혈육의 일에서는 냉정할 수가 없으니 이 사람을 탓하면 안 되는 거죠. 이건 인지상정이니까요.”이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송연아는 문득 막막한 느낌이 들어 아파트 단지를 나와 문 앞에 서 있었다. 이영은 송연아가 망설이는 것을 보고 물었다.“아니면 강 대표님한테 말할까요?”송연아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가만히 쳐다볼 뿐 말이 없으니 이영은 속이 뜨끔했다.“내가 말을 잘못했습니까?”송연아가 대답했다.“아니요.”지금 상황을 보면 송연아는 어쩔 수 없이 강세헌의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상대방
진원우는 송연아의 기색이 많이 긴장된 것을 보고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송연아는 고개를 저었다,“세헌 씨가 연락이 안 돼서요.”진원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강 대표님 일하는 중이거나 휴대폰이 배터리가 없을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없을 거예요.”송연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네, 걱정 안 해요.”그러고는 걸음을 옮겼다.“먼저 가볼게요.”진원우는 한참 있다가 뭔가 생각난 듯 엘리베이터로 가서 마침 엘리베이터에 들어가고 있던 송연아를 불렀다.“강 대표님한테 볼 일 있으세요?”송연아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무슨 일이 있으신 거면 제가 도울 수 있어요.”진원우의 말에 송연아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사소한 일이 하나 있기는 한데.”진원우가 말했다.“그럼 제 사무실로 갈까요?”송연아는 알겠다며 함께 진원우의 사무실로 갔다. 진원우는 커피를 한잔 내려서 송연아의 앞에 놓았다.“무슨 일이에요?”말하며 그는 자리에 앉았고 송연아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믿을만한 변호사를 찾고 있는데 회사에 있을까요?”진원우가 대답했다.“회사 법무팀이 아주 유능해요. 어느 부분에 대해 자문하려는 거에요? 다른 사람의 일 때문이에요? 아니면...”“제 일이에요.”송연아는 사실대로 말했다.“제가 고소를 당했어요. 잘못은 저의 쪽에 있어요.”진원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의료소송이에요?”“...그런 셈이죠.”송연아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이 사건에서 저는 완전히 불리한 위치에 처해있어요. 제가 변호사를 찾아서 소송을 준비하는 것도 사실 시간을 끌고 싶어서고요.”송연아는 전임 원장이 깨어나기만 한다면 원장 아들도 더는 자신을 물고 늘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만약 원장이 진짜 사망한다면 그로 인해 자신이 처벌을 받게 된다 해도 달갑게 받을 것이다. 하여 지금 송연아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진원우가 눈썹을 찡긋했다.“의료사고요?”일반적인 의료사고하면 손해배상을 하
지금도 여전히 연결되지 않아 송연아는 조금 걱정되는 마음에 얼굴을 찌푸렸다. 왜 연락이 안 되지?진원우마저도 강세헌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게 너무 이상했다. 차에 올라타서도 불안한 마음에 이영에게 집으로 간다는 말을 하는 것도 까먹었다. 이영은 차를 몰아 도로에 오른 후에도 송연아가 목적지를 얘기하지 않자 한마디 물었다.“어디로 갈까요?”강세헌은 연락이 되지 않고 본인은 일이 많이 꼬여있다. 송연아는 두통이 몰려와 눈을 감으며 말했다.“집으로 가요.”이영은 백미러로 송연아를 힐끔 봤는데 그녀의 기분이 안 좋은 것으로 보여 묵묵히 운전만 하며 말을 걸지 않았다. 송연아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물었다.“강세헌 집에 왔어요?”“아직.”한혜숙은 딸을 보며 물었다.“너 이름에 성까지 붙여서 부르니?”“...”송연아는 급한 마음에 한 말이었다. 강세헌이 연락이 안 돼서 마음이 타들어 갔지만 한혜숙의 앞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얘기했다.“저 계속 이렇게 불렀는데요? 아니면 뭐라고 불러요? 애 아빠? 얼마나 촌스러워요!”한혜숙은 웃으며 말했다.“금실이 좋은 부부들은 다들 여보, 자기야 하잖아. 너희들은 왜 그렇게 안 불러?”송연아가 걸어와 한혜숙의 품에 있는 윤이를 안으려는데 한혜숙이 그녀를 툭 때리며 말했다.“나갔다가 와서는 손도 안 씻고, 세균 있는 손으로!”한혜숙이 혼내자 송연아는 더욱 보란 듯이 아이의 볼을 어루만졌다.“내 손은 깨끗해요. 엄마, 여보가 예전에는 누굴 부르던 말인지 알아요?”한혜숙은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남편이라는 뜻 아니야?”송연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했다.“여보라는 말은 예전에 내시를 부르던 말이래요. 그래도 내가 강세헌을 이렇게 불렀으면 좋겠어요?”“...”한혜숙이 어이없어하는 것을 보고 송연아는 웃음이 나는 걸 참았다. 한혜숙은 송연아가 농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짜증이 났지만 웃음이 나기도 해서 가볍게 송연아의 팔을 꼬집었다.“나한테도 이런 장난을 쳐, 내시는 무슨, 얼마나 불
강세헌은 여유롭게 윤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 아들이랑 장난치며 말했다.“노인네가 죽었어.”송연아는 깜짝 놀라 넋이 나갔다.“노인네가 죽었다고요?”어느 노인네?“강씨.”강세헌은 전혀 기복이 없는 말투로 덤덤하게 말했으나 송연아는 강세헌이 말하는 노인네가 누군지 알고 무척 놀랐다.“죽었다고요? 병 때문에요?”송연아는 강의건이 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병세가 아무리 악화하였다고 해도 좋은 약을 계속 쓰고 있어서 이렇게 빨리 잘못될 리는 없는데...“화병 나서.”강세헌은 말할 때 송연아를 쳐다보지 않고 남 얘기하듯 말했다. 송연아는 조심스레 물었다.“당신이 화병 나게 한 것이에요?”“간접적으로 원인을 제공했지.”강세헌이 대답했다.“...”송연아는 강세헌의 품에서 아이를 안아 오은화에게 주고 강세헌을 끌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들어서자 바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강세헌은 침대에 걸터앉아 나른하게 그녀를 보면서 웃음을 띠고 물었다.“그렇게 긴장돼?”송연아는 지금 강세헌의 기분이 어떤지 몰랐다. 강세헌의 마음속에는 강의건에 대한 깊은 실망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송연아는 잘 알고 있었다. 하여 강의건이 죽었다는데 강세헌이 아무 동요도 없이 냉담한 것도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혈연관계가 있는 할아버지가 아닌가. 강세헌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지, 혹시 조금이라도 슬프지는 않을까?“나 뭐하러 갔는지 계속 물었지? 이리와, 알려줄게.”강세헌은 송연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송연아는 망설이다가 천천히 걸어와서 손을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강세헌은 그녀의 손을 잡더니 순식간에 힘을 써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와서 송연아를 그대로 다리에 앉혔다. 그러고는 송연아의 허리를 잡고 귓가에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내가 피도 눈물도 없다고 생각하지?”“아니요.”송연아가 고개를 저으며 그의 목을 감쌌다.“세헌 씨가 좋은 사람이란 거 알고 있어요.”그 말에 강세헌이 웃었다.“좋은 사람? 이건 무슨 평가지?
송연아는 강세헌을 보면서 말했다.“나 위로하느라 하는 얘기인 거 알아요.”송연아는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인이 느낀 아픔은 아니지만, 여자로서 구애린이 감당해야 했던 것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강세헌은 다정하게 말했다.“구애린은 다시 원우를 받아주기로 했어. 지금 둘은 아주 좋아. 네가 스스로에게 책임 전가를 하지 않아도 돼.”송연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왜 나는 모르지? 언제 다시 화해한 거야?구애린이 지나간 일을 다 잊고 진원우와 다시 시작한다는 건 좋은 소식이다.송연아는 진지하게 물었다.“지금 강세욱은 어디 있어요?”“갇혀있어.”강세헌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직 숨은 붙어있어.”그 일은 지나갔지만, 본인과 본인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으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하여 강의건이 애걸복걸하는 상황에서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강세헌은 강세욱을 죽지 않을 만큼만 때려놓고 지금 본가에 가두었다.“노인네의 장례는...”“아들이 맡아 하고 나는 그냥 얼굴만 비추려고.”강세헌은 송연아의 말을 끊었다. 그는 송연아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둘째 강윤석은 다리가 불편하지만, 아직 버젓이 살아있다. 어리고 예쁜 아가씨를 곁에 두어서 강세욱의 일에 관심이 없다고 들었다. 그는 원래도 여색을 좋아했는데 아주 여자한테 푹 빠져 있었다.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는 것도 좋네요.”송연아는 강세헌이 신경을 아예 쓰지 않아 외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까 봐 걱정했었다. 집안의 허물은 밖으로 들어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지 않는가.강세헌이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나와 노인네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을 외부에서는 이미 알고 있잖아? 서로 안 맞는다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이잖아?”“...”송연아는 한마디 덧붙였다.“어찌 됐든 사람이 죽었는데 보여주기식이어도 해야죠.”외부 사람들한테 자기 친할아버지도 존중하지 않는 냉혈한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아무리 강씨 집안의 사람들이 계
송연아는 강세헌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못생긴 사람은 바람기가 없죠.”강세헌은 눈썹을 찡긋하고는 추파를 던지며 물었다.“나는 바람기가 있어?”“지금은 괜찮은데... 앞으로는 모르죠...”강세헌은 고개를 숙여 송연아의 콧등을 아프지 않게 물며 말했다.“절대 그러지 않아.”송연아는 강세헌을 밀어냈다.“아파요.”강세헌은 그녀를 보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풍성하고 말려 올라간 속눈썹 아래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 한 쌍이 숨어있었다.“어디 아파?”“...”강세헌이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며 말했다.송연아는 엄숙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나 건들지 말아요. 나는 생각 없으니까.”“응.”강세헌은 그 말에 몸을 돌려 내려왔고 둘은 옷을 정리하며 생각도 정리했다. 그리고 강세헌이 물었다.“아 맞다, 회사에 찾으러 왔었다며?”송연아가 대답했다.“네, 일이 좀 있어서 세헌 씨랑 상의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해결했어요.”“응?”강세헌이 의아한 듯 물었다.“무슨 일인데 이렇게 빨리 해결됐어?”송연아는 사실대로 말했다.“고소를 당해서 좋은 변호사를 찾으려고 회사에 찾아갔었어요. 그런데 세헌 씨가 없어서 원우 씨가 회사의 법무팀 변호사를 소개해 줬어요. 아주 유능한 모양이에요. 해결해 줄 방법이 있대요.”이 일을 송연아가 말하지 않아도 진원우가 강세헌한테 말할 것이다. 송연아는 강세헌에게 신경 쓸 일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지만, 해결이 안 되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해야 했다.“음, 회사의 법무팀은 완전히 믿어도 돼.”강세헌이 말하자 송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세헌 씨는 강세욱과 강씨 가문의 장례를 신경 쓰세요. 내 일은 내가 변호사랑 소통할게요.”강세헌은 고개를 끄덕였다.“법무팀에 잘 말해둘게.”...강의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용운시 전체가 떠들썩거렸다. 강씨 가문이 아무리 예전 같지 않대도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더구나 강세헌의 세력은 강씨 가문의 제일 전성기 때와 비하면 더 대단했지, 전혀 못 하
“이건 피고 측의 변명일 뿐입니다. 수술하지 않으면 환자는 무조건 죽습니까?”원고 측의 변호사가 이의를 제기하자 피고 측의 변호사는 증거를 제시하고 증인신문을 진행하였다. 병원의 황 선생은 송연아를 위해 증언을 하겠다고 했다. 황 선생은 당시 수술을 바로 진행하지 않았다면 환자는 사망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관련 검사 결과, 수술 과정과 환자의 병력서를 제출하였다.“이 자료들은 전문가를 모셔서 당시 환자의 상황이 위급한 상황인지 아닌지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만약 긴급하게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환자는 사망하였을 것입니다.”원장 아들은 변호사의 귓가에 작게 뭐라고 속삭였고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피고 측이 제시한 증거와 증언에 대해서는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이것들은 사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송연아 씨가 이 수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규정과 제도를 잘 지켰습니까?”원고 측은 송연아의 결정이 규정과 제도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는 이 점을 물고 늘어졌다. 그들은 결과를 보지 않았다. 겨냥한 목표는 오직 송연아였다.원장 아들은 처음에 어리둥절했다. 전후 사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송연아가 독단적으로 수술을 한 것만 알고 송연아에게 모든 화를 풀었다. 현재 피고 변호사의 분석을 듣고 자신의 아버지가 수술하지 않았더라면 혼수상태가 아니라 죽었을 것이라는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지만, 고소를 취하하려 하지 않았다.그는 절대 이 일을 그저 지나칠 수 없다. 피해를 본 자신이야말로 피해자였다. 그런데 송연아의 경호원한테 얻어맞기나 하고, 맞은 이유도 알 수 없었다. 하여 그는 송연아를 고소하려고 마음먹었다. 목적이 어찌 됐든 송연아의 방법은 규정에 부합되지 않았다.사건은 대치상태로 들어갔다. 법원은 휴정을 선고하고 일주일 후에 다시 개정한다고 했다.정경봉이 말했다.“안 되겠어요. 사람들을 모두 불러서 증언하도록 하겠어요.송연아는 고개를 저었다.“소용없어요.”상대방은 송연아가 사람을 살리려 했던 행동인지 아닌지 관심이 없었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