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송연아는 화면 속 인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화면 속 그 사람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곧장 송연아의 자리로 갔고 그녀의 찻잔에 무언가를 넣었다.이를 본 송연아는 두 손을 불끈 쥐었고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송연아는 CCTV 담당자에게 말했다.“이 부분의 영상만 나에게 보내줄 수 있을까요?”담당자가 말했다.“원장님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CCTV 내용을 넘길 수 없습니다.”“일단 주시면 안 될까요? 원장님 쪽에는 제가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하지만...”“센터에 있는 모든 직원이 나중에 제가 원장님 자리를 이어받을 걸 아는데, 이 정도의 결정권도 없나요?”송연아의 태도가 강경하자 담당자는 망설이기 시작했고 그녀는 명령조로 말했다.“얼른 주세요.”“알겠습니다.”담당자는 결코 송연아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은 계속 여기서 일하고 싶으니 말이다.그리고 나중에 송연아가 원장이 된다면 이번 일로 그를 난처하게 하거나 이유를 찾아 자신을 해고할까 봐 두려웠는데 지금 사회를 놓고 보았을 때,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게다가 현재 그의 월급은 적지 않았을뿐더러 이렇게 간단한 일을 하면서 높은 월급을 받는 곳은 정말 많지 않았다.“이메일 주시면 제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송연아는 담당자에게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주었고 그녀의 이메일은 핸드폰과 연결이 되어 있었기에 곧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을 받았다.“저기... 원장님께 꼭 말씀드려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제가 설명해 드리기 곤란해집니다...”“알고 있어요.”송연아는 당연히 원장을 찾아갈 것이고 또 이 일은 원장의 허락 없이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그리고 이 사람도 규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송연아는 알고 있었다.“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원장님께 잘 설명할게요.”말을 마치고 송연아는 돌아서서 경비실을 나왔고 입구에 서서 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찻잔에 황
“이슬 언니?”송연아는 줄곧 안이슬이 기억을 잃은 후부터 자신에게 많이 냉담해졌다고 느꼈지만 그녀를 보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그랬던 안이슬이 스스로 자신을 찾아오다니,송연아는 너무 의외여서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어서 안으로 들어가요.”안이슬은 잠시 침묵을 지켰고 이내 입을 열었다.“우리 레스토랑으로 가자, 내가 밥 살게.”송연아가 말했다.“집에서 저녁을 다 준비해 놓았을 텐데...”“너와 단둘이 얘기하고 싶어.”안이슬은 송연아를 바라보았고 송연아는 그녀의 뜻을 재빨리 알아차리고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나가서 먹어요. 제가 기사님 부를게요.”안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택시를 타고 이곳으로 왔는데, 여기서 다시 택시 타고 목적지에 가려면 다소 불가능했다. 왜냐면 이곳에는 택시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고 핸드폰 앱으로 택시를 불러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송연아는 운전 기사에게 조금 조용한 식당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다행히 운전기사가 아는 곳이 꽤 많아 바로 그들을 목적지로 데려갔다.장소는 아주 좋았는데, 방밖에 없었고 로비도 없었으며 인테리어도 우아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고, 송연아는 안이슬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에 두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주문했다.또 한 가지 장점은 음식이 빨리 나온다는 것이다.음식 나온 후, 안이슬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이것들은 언니가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이에요.”송연아는 안이슬에게 반찬을 집어주었지만 그녀는 젓가락을 들지 않았고 이내 입을 열었다.“기억을 잃은 시간 동안 너에게 크게 실망했어.”송연아의 음식을 집는 동작이 그대로 굳어졌고 눈을 치켜뜨며 안이슬을 바라보았다.“언니...”“맞아, 나 이제 기억이 다 되살아났어.”안이슬은 송연아를 보며 말했고 송연아는 몇 초 뜸 들이더니 대뜸 웃으며 물었다.“정말요?”“거짓말을 왜 하겠어.”안이슬은 논리정연하게 말을 했다.“넌 심재경 어머니가 나를 해
송연아는 서둘러 그 물건을 반대편으로 밀었고 안이슬은 거절하는 그녀의 손을 막았다.“이 돈은 너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송예걸에게 주는 거야. 직접 주면 안 받을 것 같아서 네가 날 대신해서 전해줘. 부탁이야.”그러자 송연아가 물었다.“예걸이에게 돈은 왜 주는데요?”안이슬이 말했다.“빚진 게 있어서 그래. 난 예걸이가 나 때문에 입은 손해를 평생 갚지 못할 수도 있어, 너도 들었겠지만 너희 송가네 회사는 나 때문에 망한 거야.”건네준 돈은 안이슬이 저축했던 모든 돈과 청양시에 있는 그녀의 작은 집을 동료에게 팔아 마련한 것이었다.원래 이렇게 빠르게 돈을 마련할 수 없었는데, 마침 안이슬의 동료가 집을 구하고 있었고, 또 그녀의 집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당장 사겠다며 먼저 그녀의 계좌에 돈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안이슬이 돌아가면 다시 정식적인 절차를 밟기로 했다.“왜 언니 때문이에요? 심씨 집안과 윤씨 가문 때문이죠...”“연아야.”안이슬이 말했다.“더는 날 죄책감 느끼게 하지 마. 실은 다 알고 있잖아, 내가 예걸이와 가깝게 지내지만 않았어도 그들이 예걸이를 건드리는 일은 없었을 거고 너희 회사를 목표물로 삼지도 않았을 거라는 걸. 그러니까, 거절하지 말고 예걸이에게 전해줘.”송연아는 안이슬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 돈을 받았다.“혹시라도 이제 급한 용무가 있으면, 이 돈 다시 가져가도 돼요.”“이번에 널 찾은 건 또 다른 일이 있어서야.”안이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나 곧 떠날지도 몰라.”송연아는 황급히 물었다.“떠나요? 어디로요?”“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조용히 살고 싶어.”안이슬이 말했다.“나도 안 알려줄 거예요?”송연아가 물었다.안이슬은 고개를 끄덕였다.“알면, 송예걸과 심재경의 추궁을 견뎌낼 자신은 있고?”송연아는 안이슬의 말을 듣고는 사색에 잠겼다.“언니가 여기 있으면 우리가 돌봐줄 수 있어요. 근데 떠나면, 언니는 혼자가 되잖아요.”송연아는 안이슬을 설득하고 싶었다.새
“어떻게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있어?”문짝을 사이에 두고도 원장의 말투에서 분노와 안타까움을 알 수 있었다.“송연아만 아니었다면 우리 사부님이 그렇게...”“그건 네 사부가 먼저 잘못한 거야, 네 사부 때문에 송연아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강세헌이 연아를 구해내서 다행이지 안 그러면 네 사부는 더 엄중한 처벌을 받았을 거야!”원장은 정경봉이 훌륭한 사람으로 되지 못함에 한스러워했다.“나도 알아, 넌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근데 누울 자리도 봐가면서 발을 뻗어야지. 네 사부가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 아직도 네 사부를 생각해서 복수하는 거니?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원장은 너무 화가 나서 폭언을 했지만 정경봉은 자존심이 세서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잘못도 인정하려 하지 않아 원장은 정경봉을 노려보았다. 자기 자식이었다면 아마 진작에 뺨을 후려쳤을 것이다.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힌 원장이 입을 열었다.“이제 출근할 시간이 되었으니, 연아도 이제 곧 오겠네. 가서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해서 용서를 빌어...”“아니요.”정경봉은 거절했다.“어쨌든 그 여자가 내 사부를 해쳐...”원장은 미간을 심하게 찌푸렸고 하마터면 정경봉에게 손찌검을 할 뻔했으나 억지로 참았다.“내가 아직 확실하게 안 말했나?”원장은 목소리를 낮춰 최대한 조용하게 말했다.“잘 알아들었습니다. 제 사부님이 먼저 잘못한 건 알지만, 사부님은 그 여자 때문에 평생 쌓으신 커리어가 무너졌고 또...”“닥쳐.”원장은 이제 더 말하기도 귀찮았다.“그래, 계속 그렇게 고집부려, 지금 자기 손으로 제 무덤을 파고 있는 줄도 모르고!”“그 여자가 날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나를 어떻게 하고 싶어도 증거가 있어야죠.”원장은 정경봉이 정말 바보인 것 같았다.“연아가 나에게 이번 일을 네가 했다고 확실하게 말했어. 설마 연아가 증거도 없이 말했겠니?”원장이 되묻자 정경봉은 말문이 막혔고 그의 침묵이 반쯤 흘렀을 때,
마음속에 이미 답이 있었지만 원장의 입에서 재차 확인하고 싶었다.원장이 말했다.“전에 그 부원장이야.”송연아는 당연히 놀라지 않았지만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고 이 일에 대해 불만이 있는 듯 소파에 앉았다.원장이 물었다.“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야?”송연아가 말했다.“원장님께서 센터에 오래 계셨으니 모든 사람에 대해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원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원장은 송연아의 옆에 있는 1인용 소파에 앉았다.잠깐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근본적인 문제는 경봉이에게 있지 않아. 경봉이는 사람이 아주 단순해. 그리고 아주 좋은 머리도 가지고 있지. 센터에 입사할 수 있었던 건 당시 응시생 중에서 시험을 가장 잘 쳤고 심지어 2등과 점수 차가 엄청났기 때문이야. 센터에 들어와서는 줄곧 부원장을 따랐는데, 경봉이가 금방 들어왔을 때는 아직 부원장은 아니었고, 주임이었다가 나중에 승진한 거야.”송연아는 조용히 듣고 있었고 어떻게 처리할지는 얘기하지 않았다.원장은 이어서 말했다.“경봉이는 서울대를 수석 입학한 인재고 공부를 잘하지만 머리를 쓰지 않고 인간관계를 다루는 사람이지. 경봉이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변한 건 사람들에게 하도 많이 이용당한 원인도 있지만 전에 부원장이 그를 잘 돌봐준 원인도 있어. 경봉이는 사람의 호감을 사는 성격도 가지고 있지 않고 가정환경도 좋지 않아. 부원장이 그를 잘 대해줬기에 이번 일을 저지른 것도 분명 부원장의 은혜를 갚고 싶기 때문이었을 거야.”잠시 머뭇거리다가도 원장은 속마음을 말했다.“좀 가볍게 처벌을 내릴 수는 없는 거니? 경봉이는 그래도 인재야, 만약 그가 센터를 떠나게 된다면, 너무 안타까워. 물론 그가 한 일이 용서받기 어렵지만.”송연아도 원장의 말을 듣고는 약간 망설였다.하지만 결코 마음이 약한 것이 아니었고 병원에서 크게 이바지할 만한 인재를 잃고 싶지 않아서였다.송연아는 자신을 해친 사람을 쉽게 용서할 수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내가 부원장의 댁으로 가서 그 집 사람들에게
진원우가 말했다.“정경봉은 지금 서원연구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가 센터에 막 입사했을 때, 저번에 말썽을 일으킨 전 부원장의 제자라고 합니다...”강세헌은 바로 알아차렸다.‘지금 그 부원장의 처지 때문에 송연아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정경봉이 그때 그 전화를 건 것도 다 목적이 있었고?’사유가 뚜렷해지자 강세헌은 벌떡 일어섰다.송연아가 지금 센터에 있는데,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은가.“차 대기시켜.”강세헌은 서둘러 외투를 챙겼다.“됐어. 그냥 내가 운전할게.”진원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강세헌은 이미 사무실을 나섰던지라 그저 멋쩍게 웃었고 이내 입술을 삐쭉거렸다.한 사람이 완전히 변할 수도 있다는 것에 진원우는 감개무량했다.그는 강세헌이 평생 긴장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송연아는 원장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평소 그녀의 말에 항상 트집을 잡던 동료를 만났다.그 사람도 역시 정경봉처럼 송연아가 낙하산으로 원장 자리를 차지했다고 생각했고 또 그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자신이 오랫동안 센터에서 일했기에 무슨 말이라도 충분히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그 사람은 안하무인의 태도였고 송연아의 존재를 못마땅하게 여겼다.아니, 송연아가 나왔을 때, 일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실수로 그녀의 발을 밟았는데 그녀는 용서하지 않겠다며 물고 늘어졌고 송연아가 아무리 사과해도 소용없었다.“눈을 어디에다가 두고 다니는 거야? 다 큰 사람이 앞을 안 보고 다녀? 너 일부러 그런 거지!”송연아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는데, 이미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당사자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니 그녀도 어쩔 수가 없었다.원장실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에 원장이 제일 먼저 상황을 알게 되었고 동료를 나무랐다.“이미 사과했잖아.”“송연아 씨가 조심하지 않은 거잖아요. 성의도 없이 사과하고, 금방 신은 덧신도 더럽히고. 이래서 제가 어떻게 실험실에 들어가죠?”이 사람의 이름은 옥자현이고 40대 초반의 중년여성에 센터에서 오지랖
소리를 들은 송연아는 고개를 들었고 복도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그 사람의 체격은 우람했고 온갖 풍파 속에서 갈고 닦은 강한 카리스마를 풍기며 위풍당당하게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처음 강세헌을 본 순간, 송연아는 든든함을 느꼈으나 곧바로 낙담했는데 이제 그녀의 배후에는 정말 누군가가 있고 그 사람을 통해 높은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소문이 더더욱 사실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송연아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여기에는 왜 왔어요?”강세헌은 아무 말 없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옥자현을 힐끗 쳐다보았다.원장은 옥자현에게 화가 났지만 그녀를 연구센터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센터에 오래 있은 사람들은 그래도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이다.그런데 강세헌이 송연아보다 성격이 훨씬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옥자현을 가차 없이 내쫓을까 봐 걱정되었다!원장은 웃으며 애써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했다.“아이고, 오해가 좀 있었나 보네요...”“오해요?”강세헌은 입꼬리를 치켜세우며 옥자현을 쏘아보았다.“오해가 있었나요?”강세헌의 기세에 눌린 옥자현은 무의식적으로 한발 물러서 원장 뒤로 몸을 숨겼고 겁에 질렸으나 애써 침착한 척했다.“송연아 씨가 먼저 제 발을 밟았어요. 그래서 몇 마디 한 것뿐이에요.”원장은 송연아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그는 옥자현을 위해 사정 해줬으면 싶었는데, 큰 소동을 일으켜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어쨌든 송연아는 앞으로 여기에서 계속 일하게 될 것이고, 정말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든지 나중에 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절대 송연아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기에 센터의 운영에 어려움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내가 센터 구경시켜 줄게요.”송연아는 원장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강세헌의 팔을 잡고 끌고 갔고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눈썹을 찌푸렸다.“나보고 관두라는 거야?”송연아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강세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정말 네가 처리할 수 있겠어?”“내가 계속 여기에서 일하겠는
“부원장의 아내예요.”송연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고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이 일에서 명백한 피해자가 오히려 보복의 대상이 되었다니.사람은 참 간사하고 음침한 동물이다.“어떻게 해결할지는 잘 생각해 봤어?”강세헌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고 시시각각 이 일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송연아가 이 일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 알면서도 그들은 회개하기는커녕 복수를 하려고 했다.이는 그들이 인성을 버렸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줬기에 사정을 봐줄 필요가 없었다.송연아가 말을 하지 않자 강세헌은 기회를 틈타 제안하였다.“내가 처리해 줄게.”송연아는 강세헌을 올려다보았고 곱슬곱슬한 검은색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더니 몇 초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센터 밖의 일은 당신이 처리해요, 하지만 센터 내의 일은 내가 처리해요.”강세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는 센터 내의 일도 처리해 주고 싶었다.송연아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니, 이번에도 마음을 모질게 쓰지 않을 것 같았다.“연아야...”“난 당신의 일을 상관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당신도 내 일에 너무 깊이 간섭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송연아는 마음을 독하게 먹지 않은 것이 아니라, 원장이 정경봉이 사람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다고 말했고 또 이번 일은 주요하게 부원장의 가족이 꾸민 일이었기 때문이다.정경봉이 정말로 영악한 사람이었다면 이용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어쨌든 송연아가 원장의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 뻔한데 자신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정경봉은 그녀에게 미움을 사서는 안 되었고 설사 정경봉의 계획대로 되었다고 해도 송연아가 중상을 입었든 죽었든 간에 감옥에 가는 것은 불가피했다.그러면 정경봉 이후에 사업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철저하게 망할 것이다.이 일만 미루어 보아도 정경봉은 확실히 생각이 깊은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차려지는 이득과 손실을 분간할 줄도 모르니 말이다.이로써 정경봉이 단순하다는 원장의 말이 검증됐다.송연아가 센터에서 일하려면, 밑에 적어도 한두 명의 심복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