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애린과 찬이가 숨바꼭질하다가 강세헌과 부딪쳤다.강세헌의 얼굴이 어두워지자, 구애린은 긴장했다.“미... 미안해요.”송연아는 서둘러 강세헌의 팔을 끌어당기며 웃었다.“제가 집에 초대했어요.”강세헌은 고개를 돌려 송연아를 보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송연아는 구애린한테 찬이와 놀라고 하고는 강세헌과 같이 방으로 들어갔다.“왜 그래요?”“그럼 웃으면서 반겨줘야 하는 거야?”송연아는 옆에 앉아서 그의 팔을 잡고 말했다.“화내지 말아요. 집에 외부인이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 거 알아요. 구애린 씨를 데려온 건 나도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생각해 봐요, 구애린 씨는 지금 세헌 씨 오른팔인 원우 씨랑 사귀고 있어요. 게다가 어머님이 키우신 엄연한 어머님 딸이에요. 모르는 사이로 지낼 수 없잖아요.”송연아는 강세헌의 어깨에 기대어 계속 말했다.“난 세헌 씨 옆에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강세헌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당신은 내 가족 아니야?”예전 같으면 가족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강세헌에게는 송연아와 두 아이가 있다. 여기가 바로 그의 집이다. 그들 외에 다른 그 어떤 것도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그건 다르죠. 그리고 찬이도 자기를 사랑해 주는 이모가 있어서 좋아할 거예요.”강세헌은 송연아를 몇초간 쳐다보다가 말했다.“말은 잘해.”“인제 그만 나가요. 손님이 있는데 방에만 있으면 안 되잖아요.”송연아는 강세헌을 끌고 나갔다.구애린은 아까처럼 찬이와 놀아주지 못하고 다소곳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고 찬이는 같이 놀자고 떼쓰고 있었다.“우리 계속 놀아요.”송연아가 다가와 아들을 안으며 말했다.“엄마도 같이 놀까?”“네!”찬이는 손뼉을 치며 행복하게 웃었다.“어이구...”송연아는 찬이가 흘린 침을 닦아주었다.구애린이 갑자기 일어났다.“저는 이제 가봐야 겠어요.”송연아가 말렸다.“저녁 같이 해요.”“그게...”“좀 있으면 원우 씨도 올 거예요.”송연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초인종이 울렸다.근
송연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에 있는 책들을 계속 정리했다.“중요한 것들도 있죠. 예전에 적어둔 것 중에 지금도 쓸모 있는 것들도 있을 거예요.”그러고는 자신이 정리한 책들을 가리키며 물었다.“이것들을 여기 서재에 둬도 되죠?”강세헌은 송연아가 그 일기장을 '보관해야 할 것' 더미에 넣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송연아는 지금 그의 표정이 얼마나 어두운지 보지 못하고 혼잣말했다.“아무 말 안 하면 동의한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많은 공간을 사용하지는 않을게요. 나머지는 버릴 거니까, 두 칸 정도 비워두면 될 거예요.”강세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송연아는 책 정리를 마치고, 한혜숙의 책도 몇 권을 가져다주었다.그리고 찬이를 목욕시키고 작은아들의 기저귀를 갈아주었다.“둘째 이름을 지어줘야지.”한혜숙이 귀띔했다.“찬이처럼 아무 이름이나 짓지 않고 세헌 씨에게 마음을 담은 이름을 지어달라고 해야죠.”“우리 찬이 이름이 어때서? 얼마나 예쁜데.”한혜숙이 말했다.“알았어요.”송연아가 웃었다.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으며 말했다.“둘째 아들 이름 지어줘요.”강세헌은 못 들은 것처럼 아무 반응이 없었다.송연아는 그가 아직 자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껌딱지처럼 달라붙었을 건데 오늘 이상했다. 지금 상황은 전에 없었던 일이었다.‘화가 났나?’송연아는 뒤에서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아직도 구애린 씨 때문에 화났어요?”“나 졸려.”강세헌이 그녀를 밀어냈다.강세헌이 그녀를 밀어낸 건 처음이었기에 놀랐다.“피곤해요?”송연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강세헌은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송연아는 옆에서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강세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왜 기분이 안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강세헌이 정말로 많이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곧 그녀의 부드럽고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강세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아서 옆에서 자
“세헌 씨, 왜 그래요?”송연아가 물었다.왜 갑자기 자기한테 화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강세헌은 다시 침대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씻고 나온 송연아는 다시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를 보며 뭘 잘못 먹었나 하고 생각했다.“아침 밥 안 먹을 거예요?”강세헌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송연아의 말을 무시했다.송연아는 어린아이 같은 그의 행동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나 오늘 약속이 있어서, 먼저 내려가 밥 먹고 나갈게요.”강세헌은 순간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며 물었다.“누구 만나러 가는 건데?”“흉터 수술 때문에 성형외과 예약했어요.”강세헌은 그제야 안도하며 말했다.“알았어.”그러고는 다시 누웠다.어제 밤새 못 잤기 때문에 잠을 좀 자야 했다.송연아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강세헌을 안아주며 말했다.“잘 자요.”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강세헌은 자려고 누웠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간단히 씻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송연아는 내려오는 그를 보고 물었다.“안 자요?”한혜숙은 아침밥을 가져와 식탁에 올려놓으며 강세헌의 검푸른 다크서클을 보며 물었다.“잠 잘 자지 못 했어?”강세헌은 송연아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좀 까다로운 일이 있어서요.”“일도 중요하겠지만, 몸이 더 중요한 거 알지. 저녁에 일찍 와, 몸보신할 수 있는 거 만들어 줄게.”한혜숙이 걱정하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장모님.”한혜숙은 강세헌이 부르는 호칭을 들을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더 깊어지곤 했다.식사가 끝난 후.두 사람은 함께 외출했다.“기사님한테 데려다 달라고 하면 되는데.”“내가 데려다줄게.”강세헌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송연아는 어젯밤부터 강세헌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차에 탔다.차가 성형외과 병원 앞에 멈추자, 송연아는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나 갈게요.”강세헌은 또다시 자신이 본 것을 떠올리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그래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떠났다
“강세욱, 넌 내 손에서 못 벗어나. 미친 짓을 해서 도망치려는가 본데 꿈 깨.”강세헌은 잠시 멈칫하더니 조롱 섞인 어조로 말했다.“왜 나한테 졌는지 알아? 멍청해서 그런 거야.”강세욱의 눈이 빨개지고 있었다.미친 것처럼 낄낄대는 목소리도 날카로워졌다.분명 힘들게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강세헌은 몸을 숙여 그의 자존심을 짓밟으며 말했다.“지금 네 모습을 봐봐, 자기 여자도 지켜주지 못하고 같이 이 고통을 받게 하고 있으니. 너 남자 맞아? 길거리 거지도 너보다는 낫겠다.”“허허, 맛있어, 먹어봐.”강세욱은 웃으며 손에 쥔 밧줄을 들어 강세헌에게 건넸는데 표정만큼은 진짜로 미쳐 있는 것 같아 보였다.“난 네가 정신환자라는 걸 안 믿어.”“네가 정신환자야.”강세욱이 웃으며 말했다.진원우가 강세헌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여기에 오래 둘 수는 없습니다. 다른 곳을 찾아야 합니다.”강세헌은 심호흡하며 생각했다.‘정말 잘 참네. 갖혀 있더니 인내심이 더 늘었어.’“힘들게 다른 곳 찾느라 하지 마. 노인네가 풀어주라고 했으니 그냥 풀어주자.”진원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리더니 금세 강세헌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협조했다.“네, 대표님. 이렇게 인력 물력을 낭비할 바엔 그냥 두 다리, 두 손을 부러뜨리고 혀를 잘라버리죠. 그럼 말도 못 하고 글도 쓸 수 없으니 더 이상 나쁜 짓을 못 할 겁니다. 폐인이 된다면 강 회장님 곁으로 보내줘도 별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렇게 해.”강세욱이 참는 건 자유와 희망을 찾고 싶은 거지 폐인이 되려는 건 아니었다.그렇게 살아서 뭘 하겠는가?“강세헌!”강세욱은 눈이 터질 듯이 분노에 찬 눈빛으로 강세헌을 노려보았다!“죽여 버릴 거야!”그러고는 강세헌과 함께 죽으려는 듯이 그에게 달려들었다!강세헌은 강세욱이 미치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하고 그를 자극해 본심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수시로 방어 준비를 하고 있어서 강세욱이 달려드는 순간 발로 차버렸다.강세
송연아가 반응하기도 전에 의사가 또 물었다.“당신 이름, 연아 아니었어요?”송연아는 남자 의사를 몇 초간 빤히 쳐다봤는데 그를 어디서 봤던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저를 아세요?”남자 의사는 송연아가 자기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자 일부러 상처받은 척하며 말했다.“뭐든 쉽게 까먹는 편인가 봐요.”그가 자기소개하며 말했다.“저는 하동훈이라고 해요.”송연아는 갑자기 기억을 떠올렸다. 하동훈은 옆집 사는 동네 오빠였는데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이민 가지 않으셨어요?”“올해 돌아왔어요, 가족들은 아직 외국에 있고요.”하동훈이 말했다.“제프가 환자 한 분을 소개해 준다고 했어요. 많이 챙겨달라고 하던데, 당신이었을 줄은 몰랐네요. 제프와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송연아도 이런 우연이 있을 줄은 몰랐다.“저는 제프 씨와 같이 미디브에서 일했어요.”하동훈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젊은 나이에 벌써 미디브에 들어갔어요? 대단하네요. 제프가 미디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여자친구 덕분인데.”송연아가 겸손하게 말했다.“저도 우연히 미디브에서 일하게 되었어요.”“충분히 예쁜데 어딜 더 고치려고 그래요?”하동훈이 농담했다.송연아가 얼굴을 덮은 스카프를 벗자 흉터가 그대로 드러났다.하동훈은 깜짝 놀랐다.“어떻게 다쳤어요?”송연아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수술로 이런 흉터를 제거하기 쉬운가요? 회복하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까요?”하동훈이 꼼꼼히 검사했다.흉터는 목에서 얼굴 아래까지 이어졌는데 하동훈은 이쪽 분야의 전문가라 이런 수술을 진행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어려운 수술은 아니에요, 다만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작지 않은 면적이라. 회복 시간을 물어보셨는데 혹시 처리해야 하는 다른 일이 있나요?”송연아가 대답했다.“네, 결혼식 전에 수술을 하려고요.”“결혼해요? 정말 축하드려요. 수술하고 회복 시간은 최소 한 달 걸릴 거예요. 혹시 결혼식에 영향이 있을까요?”“아니요, 괜찮
심재경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어떻게 알았어?”“나한테 되묻지 말고 먼저 내 물음에나 대답해요. 정말 그렇게 말했어요?”송연아가 다급하게 물었다.심재경이 침묵하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마 자신의 행동이 썩 좋지 않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분명 심재경은 기억을 잃은 안이슬이 그와 그의 어머니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 않을 걸 알고 집으로 데려가려는 것이다.“내가 이슬이를 집으로 데려가려는 건 이슬이를 충분히 잘 보호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어서야. 게다가 엄마도 자기 잘못을 충분히 뉘우치고 있어. 이슬이에게 잘해주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과거의 일에 대해 보상하기 위해 난 이슬이와 결혼할 거고. 결혼하면 어쨌든 두 사람이 같이 살아야 하잖아...”“재경 선배, 만약 이슬 선배가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과연 선배를 받아줬을까요? 선배 어머니를 받아줬을까요? 이슬 선배가 기억을 잃었다고 예전 일을 다 없던 일로 만들려고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송연아는 심재경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만약 심재경이 정말로 안이슬에게 보상해 주려고 하고, 안이슬과 결혼하려고 한다면 어머니와 분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이 일을 당한 사람이 송연아라면 그녀는 절대 그녀를 해치려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안이슬과 친구 사이이고, 또 안이슬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안이슬이 과거의 일을 잊은 게 아니라면 절대 심재경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고, 심재경과 평화롭게 지내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그런데 심재경은 지금 안이슬과 어머니를 같은 집에서 살게 하다니!“그런데 이슬이는 기억을 잃었잖아.”심재경이 말했다.“...”송연아는 할 말을 잃었다.심재경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혹시 이슬이 만났어? 이슬이가 이 얘기를 했어? 연아야, 내가 다른 걸 부탁한 적도 없잖아. 이번 일은 끼어들지 않았으면 해, 그렇게 해줄 수 있어? 사실 이 일은 나와 이슬이의 사적인 일이잖아. 네가 너무 많이 간섭해도 안 좋아.
“다른 사람이랑 어울리다 보면 뭐든지 조심하는 게 좋아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전화하세요.”송연아는 카페 프런트에 가서 종이 한 장을 챙기고는 그 위에 자기 전화번호를 적고 안이슬에게 건넸다.안이슬은 그녀를 힐끔 보더니 종이를 건네받지 않았다.“나 심재경 씨랑 같이 집으로 가도 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조심할 게 뭐가 있어요? 진심으로 모든 사람과 어울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송연아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는데 안이슬은 이미 차를 타고 자리를 떴다.송연아는 그저 제자리에서 멀리 떠나간 차를 바라보기만 했다.안이슬이 화난 것 같지만 그녀가 왜 화 났는지는 알지 못했다.‘혹시 기억을 잃어서 성격도 바뀐 거 아닐까?’송연아는 머리를 절레절레 젓고는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그녀도 커피값을 물고 택시를 탔다.한혜숙은 집에서 아기를 안고 있었다. 찬이도 그녀의 무릎에 앉아 동생을 지켜보고 있었다.송연아가 집에 들어오자 한혜숙의 목에 목걸이가 하나 더 많아진 것을 발견했다.그녀가 어릴 때 한혜숙 그 목걸이를 착용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엄마, 이 목걸이 말이에요. 왜 이렇게 눈에 익죠?”그녀가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한혜숙이 목걸이를 만지며 말했다.“어제 네가 나에게 준 물건에서 찾아냈어.”한혜숙은 옛날 일들을 떠올렸다.“이 목걸이, 너희 아버지가 나에게 선물한 거야. 예걸이가 집을 팔아서 더는 못 찾을 줄 알았는데 이 목걸이를 남겼을 줄은 몰랐네. 예전에는 너희 아버지가 미웠는데 다 죽은 사람 이제 미워하고 싶지 않아.”한혜숙이 모든 걸 내려놓은 것으로 보이자 송연아는 미소를 지었다.옛날 일들을 속에 묵혀두는 거야말로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저녁 식사 때, 테이블 앞에 앉은 송연아가 말했다.“나 내일 병원에 가서 수술해요.”강세헌이 말했다.“나도 같이 갈게.”“혹시 다른 일이 있으면 일 봐도 돼요. 큰 수술도 아니고. 그리고 나 수술해 주는 의사, 아는 사람이에요. 국내에서 최고의 성형외과 의사인데
송연아는 처음으로 허리가 시큰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침대도 제대로 내려오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전에 강세헌이 아무리 거칠어도 최소한 그녀를 배려해 주면서 조심했었는데 이번엔 그야말로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 같았다.심지어 강세헌에게 당해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송연아는 일어날 힘도 없었다.하지만 그녀를 이렇게 만든 남자는 늠름하게 스탠드 거울 앞에 서서 셔츠 단추를 매고 있었다.그는 거울 속의 송연아를 보며 물었다.“깼어?”송연아는 미간을 구기며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그가 다가오더니 침대 옆에 서서 물었다.“안 일어나? 오늘 수술하러 가야 하잖아.”송연아는 이불로 머리를 덮었다.강세헌이 침대 옆에 앉아 이불을 걷어내고는 물었다.“왜 그래?”송연아는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세헌 씨야말로 왜 그래요? 내가 뭘 잘못했으면 말로 해요, 비아냥거리지 말고.”강세헌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더니 말했다.“지금까지 몇 명의 남자를 좋아했어?”송연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했다.“남자를 좋아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어려서부터 아빠의 의지로 여러 가지 학원에 다니기만 했어요. 그리고 의대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강세헌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일어나.”“...”송연아는 어이가 없었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강세헌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나 요즘 만난 사람도 없는데 말이야. 세헌 씨가 왜 갑자기 화가 난 거지?’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일어났다.그리고 씻을 때 비로소 목에 가득 남은 자국들을 발견했다.송연아는 곧바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오늘 수술하러 가야 하는데 키스 마크가 가득 찬 목으로 어떻게 수술하러 간단 말인가? 어떻게 수술한단 말인가?그녀는 잠옷을 입은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강세헌은 마침 찬이를 안고 있었는데 송연아는 강세헌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찬이를 그의 품에서 내려놓고는 그의 넥타이를 잡았다.강세헌은 그대로 그녀에게 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방에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