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아가 반응하기도 전에 의사가 또 물었다.“당신 이름, 연아 아니었어요?”송연아는 남자 의사를 몇 초간 빤히 쳐다봤는데 그를 어디서 봤던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저를 아세요?”남자 의사는 송연아가 자기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자 일부러 상처받은 척하며 말했다.“뭐든 쉽게 까먹는 편인가 봐요.”그가 자기소개하며 말했다.“저는 하동훈이라고 해요.”송연아는 갑자기 기억을 떠올렸다. 하동훈은 옆집 사는 동네 오빠였는데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이민 가지 않으셨어요?”“올해 돌아왔어요, 가족들은 아직 외국에 있고요.”하동훈이 말했다.“제프가 환자 한 분을 소개해 준다고 했어요. 많이 챙겨달라고 하던데, 당신이었을 줄은 몰랐네요. 제프와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송연아도 이런 우연이 있을 줄은 몰랐다.“저는 제프 씨와 같이 미디브에서 일했어요.”하동훈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젊은 나이에 벌써 미디브에 들어갔어요? 대단하네요. 제프가 미디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여자친구 덕분인데.”송연아가 겸손하게 말했다.“저도 우연히 미디브에서 일하게 되었어요.”“충분히 예쁜데 어딜 더 고치려고 그래요?”하동훈이 농담했다.송연아가 얼굴을 덮은 스카프를 벗자 흉터가 그대로 드러났다.하동훈은 깜짝 놀랐다.“어떻게 다쳤어요?”송연아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수술로 이런 흉터를 제거하기 쉬운가요? 회복하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까요?”하동훈이 꼼꼼히 검사했다.흉터는 목에서 얼굴 아래까지 이어졌는데 하동훈은 이쪽 분야의 전문가라 이런 수술을 진행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어려운 수술은 아니에요, 다만 회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작지 않은 면적이라. 회복 시간을 물어보셨는데 혹시 처리해야 하는 다른 일이 있나요?”송연아가 대답했다.“네, 결혼식 전에 수술을 하려고요.”“결혼해요? 정말 축하드려요. 수술하고 회복 시간은 최소 한 달 걸릴 거예요. 혹시 결혼식에 영향이 있을까요?”“아니요, 괜찮
심재경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어떻게 알았어?”“나한테 되묻지 말고 먼저 내 물음에나 대답해요. 정말 그렇게 말했어요?”송연아가 다급하게 물었다.심재경이 침묵하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마 자신의 행동이 썩 좋지 않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분명 심재경은 기억을 잃은 안이슬이 그와 그의 어머니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 않을 걸 알고 집으로 데려가려는 것이다.“내가 이슬이를 집으로 데려가려는 건 이슬이를 충분히 잘 보호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어서야. 게다가 엄마도 자기 잘못을 충분히 뉘우치고 있어. 이슬이에게 잘해주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과거의 일에 대해 보상하기 위해 난 이슬이와 결혼할 거고. 결혼하면 어쨌든 두 사람이 같이 살아야 하잖아...”“재경 선배, 만약 이슬 선배가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과연 선배를 받아줬을까요? 선배 어머니를 받아줬을까요? 이슬 선배가 기억을 잃었다고 예전 일을 다 없던 일로 만들려고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송연아는 심재경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만약 심재경이 정말로 안이슬에게 보상해 주려고 하고, 안이슬과 결혼하려고 한다면 어머니와 분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이 일을 당한 사람이 송연아라면 그녀는 절대 그녀를 해치려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안이슬과 친구 사이이고, 또 안이슬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안이슬이 과거의 일을 잊은 게 아니라면 절대 심재경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고, 심재경과 평화롭게 지내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그런데 심재경은 지금 안이슬과 어머니를 같은 집에서 살게 하다니!“그런데 이슬이는 기억을 잃었잖아.”심재경이 말했다.“...”송연아는 할 말을 잃었다.심재경이 이렇게 이기적인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혹시 이슬이 만났어? 이슬이가 이 얘기를 했어? 연아야, 내가 다른 걸 부탁한 적도 없잖아. 이번 일은 끼어들지 않았으면 해, 그렇게 해줄 수 있어? 사실 이 일은 나와 이슬이의 사적인 일이잖아. 네가 너무 많이 간섭해도 안 좋아.
“다른 사람이랑 어울리다 보면 뭐든지 조심하는 게 좋아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전화하세요.”송연아는 카페 프런트에 가서 종이 한 장을 챙기고는 그 위에 자기 전화번호를 적고 안이슬에게 건넸다.안이슬은 그녀를 힐끔 보더니 종이를 건네받지 않았다.“나 심재경 씨랑 같이 집으로 가도 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조심할 게 뭐가 있어요? 진심으로 모든 사람과 어울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송연아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는데 안이슬은 이미 차를 타고 자리를 떴다.송연아는 그저 제자리에서 멀리 떠나간 차를 바라보기만 했다.안이슬이 화난 것 같지만 그녀가 왜 화 났는지는 알지 못했다.‘혹시 기억을 잃어서 성격도 바뀐 거 아닐까?’송연아는 머리를 절레절레 젓고는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그녀도 커피값을 물고 택시를 탔다.한혜숙은 집에서 아기를 안고 있었다. 찬이도 그녀의 무릎에 앉아 동생을 지켜보고 있었다.송연아가 집에 들어오자 한혜숙의 목에 목걸이가 하나 더 많아진 것을 발견했다.그녀가 어릴 때 한혜숙 그 목걸이를 착용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엄마, 이 목걸이 말이에요. 왜 이렇게 눈에 익죠?”그녀가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한혜숙이 목걸이를 만지며 말했다.“어제 네가 나에게 준 물건에서 찾아냈어.”한혜숙은 옛날 일들을 떠올렸다.“이 목걸이, 너희 아버지가 나에게 선물한 거야. 예걸이가 집을 팔아서 더는 못 찾을 줄 알았는데 이 목걸이를 남겼을 줄은 몰랐네. 예전에는 너희 아버지가 미웠는데 다 죽은 사람 이제 미워하고 싶지 않아.”한혜숙이 모든 걸 내려놓은 것으로 보이자 송연아는 미소를 지었다.옛날 일들을 속에 묵혀두는 거야말로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저녁 식사 때, 테이블 앞에 앉은 송연아가 말했다.“나 내일 병원에 가서 수술해요.”강세헌이 말했다.“나도 같이 갈게.”“혹시 다른 일이 있으면 일 봐도 돼요. 큰 수술도 아니고. 그리고 나 수술해 주는 의사, 아는 사람이에요. 국내에서 최고의 성형외과 의사인데
송연아는 처음으로 허리가 시큰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침대도 제대로 내려오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전에 강세헌이 아무리 거칠어도 최소한 그녀를 배려해 주면서 조심했었는데 이번엔 그야말로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 같았다.심지어 강세헌에게 당해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송연아는 일어날 힘도 없었다.하지만 그녀를 이렇게 만든 남자는 늠름하게 스탠드 거울 앞에 서서 셔츠 단추를 매고 있었다.그는 거울 속의 송연아를 보며 물었다.“깼어?”송연아는 미간을 구기며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그가 다가오더니 침대 옆에 서서 물었다.“안 일어나? 오늘 수술하러 가야 하잖아.”송연아는 이불로 머리를 덮었다.강세헌이 침대 옆에 앉아 이불을 걷어내고는 물었다.“왜 그래?”송연아는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세헌 씨야말로 왜 그래요? 내가 뭘 잘못했으면 말로 해요, 비아냥거리지 말고.”강세헌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더니 말했다.“지금까지 몇 명의 남자를 좋아했어?”송연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했다.“남자를 좋아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어려서부터 아빠의 의지로 여러 가지 학원에 다니기만 했어요. 그리고 의대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강세헌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일어나.”“...”송연아는 어이가 없었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강세헌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나 요즘 만난 사람도 없는데 말이야. 세헌 씨가 왜 갑자기 화가 난 거지?’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일어났다.그리고 씻을 때 비로소 목에 가득 남은 자국들을 발견했다.송연아는 곧바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오늘 수술하러 가야 하는데 키스 마크가 가득 찬 목으로 어떻게 수술하러 간단 말인가? 어떻게 수술한단 말인가?그녀는 잠옷을 입은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강세헌은 마침 찬이를 안고 있었는데 송연아는 강세헌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찬이를 그의 품에서 내려놓고는 그의 넥타이를 잡았다.강세헌은 그대로 그녀에게 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방에
가는 길에 송연아는 강세헌에게 반항하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세헌은 한쪽 손을 비우고는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송연아는 묵인하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세헌이 말했다.“당신이 날 먼저 건드렸잖아.”송연아가 그를 힐끔 보며 말했다.“내가 먼저 세헌 씨를 건드렸다고요? 말해봐요, 내가 어떻게 건드렸는데요?”강세헌이 말했다.“알면서.”“...”송연아는 말문이 막혔다.‘차라리 내가 알았으면 좋겠네. 왜 뜬금없이 화를 내는 거야? 이렇게 감정 기복이 심한 걸 보니 설마 갱년기라도 온 걸까? 남자도 갱년기 있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면 이유 없이 화를 내지 않을 텐데 말이야.’‘윙윙...’강세헌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그의 휴대폰은 차량 블루투스에 연결되어 있어 통화 버튼을 누르자 진원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세욱 씨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문을 들이받고 소리를 질러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친 모양입니다. 아직 강세욱 씨를 가둘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강세헌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묶어서 입부터 막아놔.”진원우가 대답했다.“네...”강세헌이 전화를 끊자 송연아가 물었다.“계속 가둬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예요. 게다가 할아버지는 몸이 편찮으시잖아요...”강세헌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물었다.“당신 말은 세욱이를 풀어주라는 거야?”“아니요.”송연아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이런 사람을 풀어주면 반드시 다시 말썽을 일으킬 거예요. 가만히 있게 하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죠.”그녀는 절대 강세헌더러 강세욱을 풀어주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게다가 그녀에게는 지금 두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화근을 밖에 두는 건 자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그녀의 아이들은 더 이상 조금의 상처도 받으면 안 되었다.“무슨 방법?”강세헌이 물었다.송연아는 차에서 종이와 펜을 찾아 약 이름을 적었다.“이거 구할 수 있죠?”강세헌이 힐
하동훈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문 앞에 선 남자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해서 왠지 모를 압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누굴 찾으세요?”하동훈이 물었다.강세헌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의 명패만 뚫어지게 쳐다봤다.하동훈의 이름을 본 그의 안색은 한껏 어두워졌다.송연아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세헌 씨?”하동훈이 물었다.“두 사람 아는 사이예요?”강세헌이 성큼성큼 병실에 들어가더니 병상 옆에 서서 송연아를 내려다봤다. 그녀에게 몸은 괜찮은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즐겁지?”송연아는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그저 시비를 거는 강세헌이 유치하게만 느껴졌다.‘정말 이상한 사람이네!’그녀는 웃으면서 하동훈에게 말했다.“소개할게요, 이쪽은 제 남편이에요.”하동운이 웃으며 말했다.“이분이 바로 결혼할 상대예요? 안녕하세요.”그는 강세헌에게 손을 내밀었다.하지만 강세헌은 그 손을 보지 못한 척 고개를 휙 돌렸다.하동훈은 허공에 뜬 손을 다시 거두고는 말했다.“나 아직 할 일이 있어서 두 사람 방해하지 않을게요.”말을 마친 그는 방을 나섰다.송연아가 강세헌을 째려보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강세헌이 콧방귀를 뀌며 불만을 드러냈다.“내가 뭘?”“동훈 씨가 손을 내밀었는데 못 본 체했잖아요. 제 수술해 줬는데 예의를 지켜야 할 거 아니에요.”“저 사람한테 왜 예의를 지켜? 저 사람이 수술할 줄 알았으면 당신을 이곳에서 수술시키지 않았지.”강세헌이 퉁명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송연아는 강세헌의 말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세헌 씨, 동훈 씨 알아요?”강세헌이 콧방귀를 뀌고는 도도하게 말했다.“몰라.”“그러면 왜 동훈 씨가 나 수술해 줄 걸 알았으면 여기서 수술시키지 않을 거라고 해요?”“누군가의 중요한 물건에서 그 이름을 본 적이 있거든.”강세헌은 짜증이 났는데도 그녀의 상처를 보며 물었다.“아파?”송연아는 그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세헌 씨, 나 지금
심재경이 단호하게 말했다.“네, 기억 잃은 거 맞아요. 엄마, 이슬이에게 정말 잘해줘야 해요. 예전에 저질렀던 잘못을 만회해야 한다고요.”심재경 어머니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럴게. 넌 이제 심씨 가문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잖아. 나도 더는 심씨 가문을 뺏길까 봐 두렵지 않아. 그래서 너에게 결혼을 강요할 일도 없을 거고. 네가 능력이 되니 당연히 좋아하는 여자랑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심재경이 말했다.“이슬이 앞에서는 옛날얘기 꺼내지 마요.”심재경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안이슬은 옆에서 수군거리는 두 모자를 보더니 눈빛이 서늘해졌다.‘두 사람, 설마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니야? 엿들은 게 많아서 다행이지, 아니면 또 한 번 당할 뻔했네.’심재경이 오더니 그녀를 도와 야채를 씻었다.안이슬이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도와주지 않아도 돼요, 나 혼자 할 수 있어요.”심재경이 말했다.“우리 집에 처음 온 너를 어떻게 혼자 주방에 혼자 있게 해?”그는 안타까운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네가 이런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해...”“아이고, 무슨 힘든 일도 아닌데요.”안이슬이 웃으면서 말했다.“여기서 방해하지 말아요. 내가 한 밥 먹고 싶지 않아요?”심재경이 바로 대답했다.“당연히 먹고 싶지.”“그럼 나가서 기다려요. 계속 여기서 어물쩍 대면 나 화낼 거예요.”안이슬이 화낸 척하며 말했다.심재경은 어쩔 수 없이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심재경 어머니는 거실에서 안이슬과 심재경 두 사람의 행동을 눈여겨봤다.예전에 그녀는 심재경에게 도움이 되는 며느리를 찾아주고 싶었다.안이슬이 마음에 들지 않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온전히 그녀의 가정과 직장 때문이었다.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안이슬은 사실 내조를 참 잘했다.심재경은 문 앞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그녀와 결혼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다.지금 느낀 행복이 딱 좋다고 생각했다.기분이 좋으니 입맛도 좋아 그는 많은 음식을 먹었다.저녁에 잘
병원에서, 송연아가 잠에서 깨어났다.강세헌은 그녀에게 물 한 잔 건네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배고파?”송연아가 말했다.“아니요, 약은 구했어요?”“구했어.”강세헌이 대답했다.“원우에게 그 약을 쓰라고 했어, 이제 강세욱을 할아버지에게 넘기면 돼.”강세헌은 특별히 부하에게 그 약효를 알아보라고 했다. 그 약은 주로 사람의 기억 신경을 파괴하는 작용을 했다.송연아는 강세욱이 모든 원한을 잊고, 새로운 사람이 될 기회를 주었다.확실히 좋은 방법이긴 했다. 강세욱을 계속 가두고 사람 시킨다 하더라도 그가 언제 또도망 나와 나쁜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할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신 것 같은데 이때 강세욱이 옆에 있는다면 할아버지의 치료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송연아가 말했다.그녀가 이 방법을 떠올리게 된 것도 안이슬에게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원한을 잊는다면 더는 마음에 두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강세헌은 할아버지에 관한 그 어떤 소식도 듣고 싶지 않았다.“강세욱을 할아버지에게 넘기겠다고 한 건 내가 번거로움을 덜고 싶어서 그래.”더 이상의 고려는 없었다.송연아는 그가 할아버지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다는 걸 알고 일부러 화두를 돌렸다.“예걸이에게 일자리 하나 찾아줘요!”회사가 망했으니 송연아도 송예걸이 밖에서 떠도는 것을 원치 않았다.“내가 알아서 할게.”강세헌이 말했다.‘윙윙.’휴대폰이 갑자기 울려 강세헌은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로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는 고훈의 목소리가 들렸다.“강세헌,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강세헌이 눈썹을 들썩이더니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당신이 먼저 비겁한 수법을 쓴 거 아니야?”고훈이 분노의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도 나보다 잘한 게 없을 텐데.”강세헌은 더 듣기도 귀찮아 바로 그의 전화를 끊었다.전화기 너머의 고훈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감히 내 전화를 끊어?”비서가 말했다.“저희가 강의건 회장님과 합작해 강세욱 씨를 구해서 강의건 회장님이 우리에게 신세를 지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