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지?’순식간에 느껴지는 따끔함에 강세욱은 눈살을 찌푸렸고 송연아는 그저 무덤덤하게 그를 바라봤다.“내가 힘을 주는 순간 넌 엄청 고통스러울 거야.”관자놀이는 인체의 중요한 부분으로 대뇌의 중동맥과 연결되어 있어 조금의 충격으로도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차에 올라타기 전 미처 무기를 준비할 겨를이 없었던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다. 생명에 치명적인 공격은 아니더라도 위협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네 아이가 내 손에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다치는 순간 아이와 엄마는 반드시 죽을 거야.”“내가 너 해치지 않으면 만나게 해줄래?”강세욱은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봤다.“아니, 하지만 내가 다치면 네 아이는 무조건 살아남지 못할 거야.”강세욱은 아이가 엄마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송연아는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그는 송연아의 손을 보고선 헛웃음을 터뜨렸다.“고작 열쇠 하나로 날 협박한 거야?”송연아는 그를 바라봤다.“내가 잡혔으니까 아이는 풀어줘.”송연아와 강세헌 두 사람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카드를 이대로 포기할 강세욱이 아니었다.“싫어.”그의 말에 송연아의 화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이 싸움에서 반드시 승패를 보리라고 다짐했다!강세욱은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날 그렇게 노려보지도 말고, 비난하지도 마. 원망하려면 강세헌이랑 눈이 맞았던 너 자신을 탓해.”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덧 차는 강가에 멈춰 섰다.이곳은 보수되지 않은 강변으로 주위엔 잡초가 무성했고 길이 없었다.강세욱은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입을 열었다.“지금쯤이면 용운으로 돌아왔겠지?”강세헌은 서둘러 돌아오기 위해 여객기를 타지 않고 개인 비행기를 탔다.그 시각 막 착륙한 강세헌은 핸드폰이 울리자마자 바로 받았다.“형의 와이프랑 아이, 장모님까지 전부 내 손에 있어. 살리고 싶다면 브리언트 넘겨.”
강세욱은 요즘 줄곧 해외에서 시간을 보냈다.두 사람 사이의 불화에 대해서도 조금은 들은 바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탓에 확신할 수 없었다.‘설마 진짜로 헤어진 거야?’의심이 들었지만 쉽게 믿을 리가 없었다.“안 믿어.”강세헌을 곧바로 전화를 끊었고 단호한 그의 행동에 송연아한테 신경을 끈 건지, 일부러 연기를 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그는 송연아를 바라보며 물었다.“강세헌이랑 싸웠어?”송연아는 그가 임옥민의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그를 이해했다.그러나 엄마를 죽인 사람과는 절대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는 말을 직접 들은 후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며 괴로웠다.그녀는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다 알게 됐잖아? 왜 또 물어?”강세욱은 한참이나 그녀를 바라봤고 실망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조금도 꾸며낸 것 같지 않았다.하지만 강세헌은 너무 교활한 사람이고 송연아도 멍청한 건 아니니,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계심을 잃지 않았다.그동안 강세헌에게 당했던 수모를 생각하며 이번에는 절대 실패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강세헌이 송연아를 걱정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그는 이 여자를 손에 넣고 이용하기로 결심하고 다시 그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강세헌은 이미 진원우와 만났다.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임지훈을 시켜 지도를 손에 넣었고 그들이 추적하고 있는 노선을 확인했다.지도로 보니 그들이 추적하고 있는 남쪽은 번화가에 행정구역까지 있어 범죄를 저지르기엔 가능성이 희박한 곳이었다.진원우가 말했다.“왜요? 지금 계속 따라잡고 있어요...”강세헌은 그를 힐끗 보고선 되물었다.“이게 정말 맞다고 생각해?”진원우는 지도를 보고선 할 말을 잃었는지 몇 초 동안 침묵을 유지했다.“조금 이상하네요. 그런데...”“그런데 뭐? 핸드폰이 지금 다른 사람한테 있을 수도 있어.”임지훈은 그의 말을 잘랐다.진원우는 당시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꼼꼼히 살펴보지 못했고, 이제야 이상하리
“강세헌이 구하러 올지 안 올지 내기하자. 구하러 오면 내가 널 풀어주고, 안 오면 나랑 만나자.”그의 요구는 송연아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녀가 강세헌이 소유했던 여자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강세헌의 여자가 자기 여자가 된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낯 뜨겁고 수치스러운 일긴가?그의 제안에 송연아는 순식간에 내기할 마음이 사라졌다.“미친놈!”강세욱은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단번에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난 욕하는 것들이 제일 싫어!”송연아는 그의 음산한 눈빛에도 겁먹지 않고 오히려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여자랑 아이로 협박해서 이긴 건 너무 수치스럽지 않겠어? 그리고 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 같은 인간이랑 엮일 생각 없어.”강세욱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며 실핏줄까지 곤두섰다.“당돌한 거 보니까 강세헌이 왜 널 곁에 두고 싶어 하는지 알겠어.”보통의 여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울고불고 난리 치겠지만 생각과 달리 패기 넘치는 그녀의 모습에 강세헌이 왜 좋아하는지 깨달았고 오늘부로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그래. 좋아. 언제까지 고집을 부리는지 지켜볼게.”강세욱은 힘껏 그녀를 끌었다.“내려.”그와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던 송연아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턱은 어느새 빨갛게 부어올랐지만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 득의양양할 강세욱의 모습이 떠올라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끝까지 꾹 참았다.송연아는 차에서 내려 옆에 서 있었고 산들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그 시각 강세욱은 트렁크에서 조끼를 꺼내더니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겁에 질린 송연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뭐 하는 거야?”강세욱은 송연아의 얼굴에 떠오른 두려움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선심’ 쓰듯 친절하게 설명했다.“내가 이걸 구하느라고 진짜 애썼어. 봐봐, 조끼에 폭탄이 가득하잖아. 이렇게 컨트롤러도 있어. 어떤 사람들이 쓰는지 알아?”누가 쓰는지 궁금하지 않았던 그녀는 뒷걸음질 쳤고 이 물건과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강세욱은
송연아는 그림자만 보고 그 사람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챘다.강세욱과 싸울 때도 그녀는 결코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그러나 강세헌이 혹시나 강세욱의 꾀에 걸려들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생기면서 처음으로 겁먹기 시작했다.어찌 됐든 두 사람의 목숨을 손에 쥐고 있으니 강세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다.“봐봐, 내가 올 거라고 했지?”드디어 갑이 된 강세욱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박장대소했다.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달리 강세헌의 걸음은 무겁고 안정적이며 여유로웠다.그는 마음 아픈 듯 걱정 어린 눈빛으로 송연아를 힐끗 보고선 곧바로 무표정한 얼굴로 강세욱을 바라봤다.“네가 원하던 거.”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강세욱은 마음속 깊이 그를 두려워하는 감정으로 가득 찼고, 이번에도 직접 가지러 가는 것이 아니라 부하를 시켰다.부하가 망설이며 주춤하자 그는 곧바로 엉덩이를 걷어찼다.“빨리 가.”부하는 전전긍긍하며 강세헌을 향해 걸어갔다.“브리언트로 송연아를 바꾸다니. 아직도 많이 신경 쓰고 있었네.”여자 때문에 브리언트를 포기하는 건 정말 손해가 큰일이기에 내기를 제안할 때만 해도 그는 마음속으로 확신이 없었다.“지금 보니 송연아를 이용해서 협박한 건 정말 잘한 것 같네.”강세욱은 송연아를 완벽하게 다루고 있었다. 폭탄 조끼를 입힌 것뿐만 아니라 부하 두 명이 그녀를 꽉 잡고 있어 아예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내 아이의 엄마니까 구하러 온 거야. 다른 사람한테 매정하고 무자비하다는 말 듣고 싶지 않거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니까 착각하지 마.”말하면서도 강세헌은 송연아한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일부러 싸늘하게 굴었다.송연아는 몸이 좋지 않은지 초점이 풀린 채 멍한 표정을 지었고 머릿속엔 온통 ‘아이의 엄마니까 구하러 온 거야’라는 말만 울려 퍼졌다.매정한 그의 말에 그동안 잘해주고 챙겨준 건 오직 찬이를 낳은 것 때문이라고 오해했다.그녀는 강세헌을 바라봤다.“좋아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강세헌은 그녀의 불편함을 깨닫
강세헌은 송연아의 움직임을 알아챘다.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연아는 어느새 사람들한테서 벗어나 강변을 향해 달려갔다!강세헌은 순식간에 눈빛이 변했고 쏜살같이 달려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더니 품에 안고 속삭이며 위로했다.“장난치지 마...”절망에 빠진 송연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저 때문에 당신이 위협받는 게 싫어요.”지금껏 잘해준 모든 행동이 단지 아이 때문이라는 그의 말에 송연아는 절망했다.그가 자신 때문에 강세욱한테 위협받는 걸 원하지 않았고 이렇게 떠나는 게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했다.강세헌은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사람이었고 그녀가 사랑한 유일한 남자였다!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에 죽은 어머니와 장애를 입은 아버지를 떠오른 강세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버튼을 눌러 두 사람을 함께 죽여버리기로 했다.그의 움직임을 알아챈 송연아는 있는 힘껏 강세헌의 팔을 물었고 그가 아파하며 힘이 풀린 틈을 타 재빨리 밀어냈다.“찬이를 구해줘요...”마지막 말과 함께 그녀는 강으로 뛰어내렸고 곧이어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비록 강세헌은 밀려났지만 너무 가까이 있은 탓에 폭탄의 여력에 밀려 기슭에 쓰러졌다.터지는 불빛은 하늘의 반을 밝게 비추었고 화약 냄새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강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기슭을 적셨고 이때 차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달려 나왔다.강세헌은 사람을 안 데려온 게 아니라 숨길 목적으로 일부러 직접 운전했다.사람들은 하나같이 손에 마취총을 들고 있었고 기회가 엿보며 강세욱과 그의 부하를 쏘려 했으나 적절한 기회를 찾지 못해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났다.부하의 허리춤에서 칼을 빼낸 강세욱은 강세헌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죽었는지 직접 확인하고, 살아있으면 직접 죽이려고 했는데 걸음을 떼자마자 목덜미에 마취총을 맞아 그대로 정신 잃고 쓰러졌다.그렇게 강세욱의 부하들은 그렇게 하나둘씩 잡혔다.“얼른 밑으로 내려가. 무조건 사모님을 찾아야 해...”...그 시각 병원, 강세헌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의사 선생님은 안타까워하며 유감을 표했다.“최선을 다했지만 부상이 너무 심각했습니다...”순간 심정이 철렁 내려앉은 진원우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강세헌을 바라봤고 잔뜩 긴장한 그의 표정에서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진원우는 살얼음 위를 걷는듯한 느낌이었다.“대표님...”강세헌의 목소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듯 매우 낮고 무거웠다.“지금 농담하시는 거죠?”의사 선생님은 긴장한 채로 답했다.“이런 일로 농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강세헌은 애써 현실을 부정했지만 너무 선명하게 귀에 꽂힌 의사 선생님의 말에 마른 침만 삼켰다.“대표님, 일단 진정하세요.”진원우는 그를 설득하려 했으나 강세헌은 진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견딜 수 없는 상황에 그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고 수술실 문 앞에 멈춰 선 그의 다리는 납을 채운 것만 같았다.수술실의 문은 열려있었고 이번 수술을 담당한 의사들이 수술대 옆에 일자로 선 채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주석민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시신에는 튜브가 꽂혀있었는데 그 모습마저도 선명하게 보였고 얼굴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강세헌은 누워있는 시체가 송연아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가짜 시신으로 날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고개를 숙이고 있던 주석민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얼굴도 없는데 어떻게 안거지?’고개를 들고 강세헌의 당황한 눈빛을 보고서야 시체가 송연아가 아닌 걸 알아챈 게 아니라 그저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아 현실 부정하며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깨달았다.주석민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최선을 다했지만 부상이 너무 심한 터라 저희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강세헌은 사람을 죽일듯한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당신들이 무능한 게 아니고?”지금 입을 여는 순간 상황이 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진원우는 한숨을 쉬며 무기력하게 말했다.“다들 나가시죠.”어쩌면 혼자 마음을 추스르고 진정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의사 선생님들도 줄지어 밖으로 나갔다.감히 강세헌과 말할 엄두조차 없었던 주석민은 진원우를 보며 말했다.“시신을 이대로 계속 방치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가능한 빨리 영안실로 옮겨야 합니다.”그의 말에 동의한 진원우도 얼른 시신을 영안실로 보내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강세헌이 걱정되었다.“노력해 볼게요.”주석민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그럼 부탁하겠습니다.”강세헌은 모든 사람을 내보낸 후 홀로 수술대 앞에 섰다.세상에 혼자 남은 듯 주위의 모든 게 멈춰있는 느낌이었다!밖에 있던 진원우는 초조했지만 섣불리 들어갈 용기가 없어 날이 저물 때까지 몇 시간 동안 밖에서 기다렸다.그러나 강세헌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고 조급함에 발만 동동 굴리던 그때 임지훈이 다가왔다.“어때?”순간 눈시울이 붉어진 진원우는 쉰 목소리로 모든 일을 임지훈한테 말해줬고 충격에 빠진 그는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모든 준비를 했는데 이런 사고가 일어난다고? 그럼... 대표님은 이제 어떡하지?”“사람을 쫓아내고 혼자 몇 시간 동안 수술실에 있는데 차마 방해할 수가 없었어.”“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다른 방법이 있을까?”임지훈은 벤치가 앉아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에 빠졌고, 진원우 역시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아이랑 한혜숙 씨는 괜찮지?”그들의 안전이 걱정됐던 진원우는 무의식적으로 물었고 그의 말에 임지훈은 순간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었다.“생각났어.”“뭐야?”“연아 씨 말고도 대표님한테 다른 가족이 남아있잖아.”진원우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찬이 말하는 거야?”“그래, 연아 씨가 죽었다는 슬픔에서 벗어나기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자식인 찬이를 그저 내버려 둘 수는 없을 거잖아?”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진원우는 걱정이 앞섰다.“여긴 병원이
“무슨 방법인데?”임지훈이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형수님이 죽으면 범인은 누구야?”진원우가 물었다.임지훈은 진원우를 바보 보는 것처럼 쳐다보며 말했다.“당연히 이 모든 일을 저지른 강세욱이지!”“강세욱이 도망친다면...?”“절대 도망칠 수 없을 거야. 난 그놈이 도망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진원우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임지훈이 끼어들어 독기 서린 채 말했다.“감히 도망치면 그의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진원우는 서두르지 않고 임지훈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설명했다.“그놈이 도망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먼저 보내줄 수는 있잖아...”“죽이지 못하는 것도 화가 나는데, 그냥 놔주자고? 제정신이야?”임지훈은 진원우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진원우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조용히 내 말 좀 들어줄래? 내 말을 자꾸 끊지 마!”그제야 임지훈은 진정하고 물었다.“너, 무슨 말을 하려고?”“내 말은, 지금 대표님은 형수님이 죽었다는 충격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이때 송연아를 죽인 범인이 도망쳐서 밖에서 자유롭게 다니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송연아의 복수를 위해 정신을 차리지 않겠어?”진원우의 말을 듣고 임지훈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지금으로써는 다른 방법이 없었고, 찬이도 강세헌을 정신 차리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를 자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증오뿐이었다.그는 그것이 시도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렇다면 내가 먼저 찬이를 데려온 다음 강세욱을 풀어주겠어...”“잠깐만.”진원우는 임지훈을 불러 세워 말했다.“일단 급하게 풀어줄 생각하지 마. 일이 잘못되면 큰일이야. 아직 준비가 필요해. 그놈은 아직 혼수상태지?”임지훈이 말했다.“그럴 거야. 그런 종류의 마취 총으로 사람을 한 번 쏘면 10시간 이상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어.”“마취제를 조금 더 투여해서 깊은 혼수상태에 빠뜨리고, 그가 의식이 없는 동안 몸에 추적기를 심으면 그가 어디로 도망가도 위치를 알 수 있을 거야.”임지훈은 진원우를 몇 초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