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은 안타까워하며 유감을 표했다.“최선을 다했지만 부상이 너무 심각했습니다...”순간 심정이 철렁 내려앉은 진원우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강세헌을 바라봤고 잔뜩 긴장한 그의 표정에서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진원우는 살얼음 위를 걷는듯한 느낌이었다.“대표님...”강세헌의 목소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듯 매우 낮고 무거웠다.“지금 농담하시는 거죠?”의사 선생님은 긴장한 채로 답했다.“이런 일로 농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강세헌은 애써 현실을 부정했지만 너무 선명하게 귀에 꽂힌 의사 선생님의 말에 마른 침만 삼켰다.“대표님, 일단 진정하세요.”진원우는 그를 설득하려 했으나 강세헌은 진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견딜 수 없는 상황에 그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고 수술실 문 앞에 멈춰 선 그의 다리는 납을 채운 것만 같았다.수술실의 문은 열려있었고 이번 수술을 담당한 의사들이 수술대 옆에 일자로 선 채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주석민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시신에는 튜브가 꽂혀있었는데 그 모습마저도 선명하게 보였고 얼굴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두 눈이 빨갛게 충혈된 강세헌은 누워있는 시체가 송연아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가짜 시신으로 날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고개를 숙이고 있던 주석민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얼굴도 없는데 어떻게 안거지?’고개를 들고 강세헌의 당황한 눈빛을 보고서야 시체가 송연아가 아닌 걸 알아챈 게 아니라 그저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아 현실 부정하며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깨달았다.주석민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최선을 다했지만 부상이 너무 심한 터라 저희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강세헌은 사람을 죽일듯한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당신들이 무능한 게 아니고?”지금 입을 여는 순간 상황이 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진원우는 한숨을 쉬며 무기력하게 말했다.“다들 나가시죠.”어쩌면 혼자 마음을 추스르고 진정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의사 선생님들도 줄지어 밖으로 나갔다.감히 강세헌과 말할 엄두조차 없었던 주석민은 진원우를 보며 말했다.“시신을 이대로 계속 방치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가능한 빨리 영안실로 옮겨야 합니다.”그의 말에 동의한 진원우도 얼른 시신을 영안실로 보내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강세헌이 걱정되었다.“노력해 볼게요.”주석민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그럼 부탁하겠습니다.”강세헌은 모든 사람을 내보낸 후 홀로 수술대 앞에 섰다.세상에 혼자 남은 듯 주위의 모든 게 멈춰있는 느낌이었다!밖에 있던 진원우는 초조했지만 섣불리 들어갈 용기가 없어 날이 저물 때까지 몇 시간 동안 밖에서 기다렸다.그러나 강세헌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고 조급함에 발만 동동 굴리던 그때 임지훈이 다가왔다.“어때?”순간 눈시울이 붉어진 진원우는 쉰 목소리로 모든 일을 임지훈한테 말해줬고 충격에 빠진 그는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모든 준비를 했는데 이런 사고가 일어난다고? 그럼... 대표님은 이제 어떡하지?”“사람을 쫓아내고 혼자 몇 시간 동안 수술실에 있는데 차마 방해할 수가 없었어.”“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다른 방법이 있을까?”임지훈은 벤치가 앉아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에 빠졌고, 진원우 역시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아이랑 한혜숙 씨는 괜찮지?”그들의 안전이 걱정됐던 진원우는 무의식적으로 물었고 그의 말에 임지훈은 순간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었다.“생각났어.”“뭐야?”“연아 씨 말고도 대표님한테 다른 가족이 남아있잖아.”진원우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찬이 말하는 거야?”“그래, 연아 씨가 죽었다는 슬픔에서 벗어나기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자식인 찬이를 그저 내버려 둘 수는 없을 거잖아?”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진원우는 걱정이 앞섰다.“여긴 병원이
“무슨 방법인데?”임지훈이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형수님이 죽으면 범인은 누구야?”진원우가 물었다.임지훈은 진원우를 바보 보는 것처럼 쳐다보며 말했다.“당연히 이 모든 일을 저지른 강세욱이지!”“강세욱이 도망친다면...?”“절대 도망칠 수 없을 거야. 난 그놈이 도망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진원우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임지훈이 끼어들어 독기 서린 채 말했다.“감히 도망치면 그의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진원우는 서두르지 않고 임지훈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설명했다.“그놈이 도망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먼저 보내줄 수는 있잖아...”“죽이지 못하는 것도 화가 나는데, 그냥 놔주자고? 제정신이야?”임지훈은 진원우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진원우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조용히 내 말 좀 들어줄래? 내 말을 자꾸 끊지 마!”그제야 임지훈은 진정하고 물었다.“너, 무슨 말을 하려고?”“내 말은, 지금 대표님은 형수님이 죽었다는 충격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이때 송연아를 죽인 범인이 도망쳐서 밖에서 자유롭게 다니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송연아의 복수를 위해 정신을 차리지 않겠어?”진원우의 말을 듣고 임지훈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지금으로써는 다른 방법이 없었고, 찬이도 강세헌을 정신 차리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를 자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증오뿐이었다.그는 그것이 시도해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렇다면 내가 먼저 찬이를 데려온 다음 강세욱을 풀어주겠어...”“잠깐만.”진원우는 임지훈을 불러 세워 말했다.“일단 급하게 풀어줄 생각하지 마. 일이 잘못되면 큰일이야. 아직 준비가 필요해. 그놈은 아직 혼수상태지?”임지훈이 말했다.“그럴 거야. 그런 종류의 마취 총으로 사람을 한 번 쏘면 10시간 이상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어.”“마취제를 조금 더 투여해서 깊은 혼수상태에 빠뜨리고, 그가 의식이 없는 동안 몸에 추적기를 심으면 그가 어디로 도망가도 위치를 알 수 있을 거야.”임지훈은 진원우를 몇 초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얼굴 오른쪽부터 목까지 큰 화상으로 덮여 있었다.이미 상처를 처리하고 약도 발랐다.그러나 그 끔찍한 흔적을 감출 수는 없었다.화상은 칼에 베인 상처나 긁힌 상처와는 달리 인체의 피부 세포를 태우기 때문에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가 남는다.하지만 요즘에는 의료 기술이 발전했고 피부 이식 수술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성형 수술을 하면 그녀의 얼굴을 거의 원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다.문제는 현재 송연아가 임신 중이라는 것이다.수술하려면 항생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 먼저 아이를 낙태해야 한다.낙태하지 않으면 약물로 인해 배 속에 아이가 불완전하게 발달하거나 기형으로 발육할 수 있고, 더 나쁜 경우 유산될 수 있다.“사실, 아이는 다시 가지면 돼...”주석민은 그녀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다.송연아는 눈을 떴는데 그녀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얀 형광등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그녀는 눈을 감고 말했다.“저는 수술을 받지 않을 거예요. 하늘이 저를 이렇게 처참한 폭발에서 살아남게 하신 것은 아마도 제가 뱃속의 이 작은 생명을 지키게 해주려는 것이겠죠.”그녀가 강으로 떨어지는 순간, 몸에 있던 폭탄 조끼가 몸에서 떨어져 나갔고, 그녀가 먼저 물에 빠져서야 폭탄이 터졌다.송연아의 얼굴에 생긴 화상은 폭탄의 충격이 물속으로 파문을 일으키면서 생긴 것이다.그렇게 다쳤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죽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그녀에게 외모가 중요할까?여자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송연아는 그렇게 아름다워서 누구에게 보여줄까?누구를 위해?주석민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강세헌은 너의 죽음에 괴로워하고 하고 있어.”“제가 죽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엄마가 없어서 한탄하고 있을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평소처럼 활기차고 열정적이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강세헌의 말에 그녀는 자신이 베풀었던 감정과 사랑이 모두 장난이 되어 버렸다고 느꼈다.“제 얼굴에 입은 화상은 사나흘만 지나면 거의 회복할 수 있겠
심지어 그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긴장되었다.원장은 모든 것을 아는 듯한 표정으로 뒷짐 진 채 그를 바라보며 꾸짖었다. “병원을 뭐로 생각한 거야? 주 교수 집인 줄 알았어? 왜 네 마음대로 해? 네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인 줄 알아?”지난번에는 구진학의 문제로 인해 원장은 주석민의 체면을 지켜주었지만 그에게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말라고 경고했다.하지만 이번에도 주석민은 송연아의 문제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송연아를 도왔다.송연아를 돕는 것은 틀리지 않았다.하지만 거짓말을 한 건 틀렸다.분명히 죽지 않았지만 죽었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의 시체를 대용으로 사용했다.“죄송합니다...”“난 자네의 사과를 듣고 싶지 않아. 요컨대, 이 문제는 확실히 자네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알릴 거야...”“원장님.”송연아는 힘겹게 일어났다.주석민은 걸어가서 그녀를 부축했다. “너 아직 일어나면 안 돼.”송연아는 학장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번 일은 제가 교수님께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를 비난하세요. 그리고 저를 한 번만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원장은 송연아의 얼굴을 보자 미간을 찌푸렸다.예전에 그녀는 절세 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하지만 지금은...“네 얼굴...”송연아가 말했다.“심각한 건 아니에요. 얼굴이 조금 망가진 것뿐이에요. 원장님, 제가 병원에 들어온 이래로 실수한 적도 없고 열심히 일을 했으니 이번엔 좀 도와주세요, 네?”원장은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마침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어휴, 그냥 내가 안 온 걸로 해. 난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야. 안 그러면 두 사람 다 병원에서 나가!”원장은 말을 무자비하게 했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고 돌아서서 수술실에서 걸어 나갔다.주석민은 긴 숨을 내쉬며 말했다.“원장님이 우리 둘을 탓하지 않아서 다행이야.”송연아는 미안해하며 말했다.“교수님을 난처하게
진원우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대표님.”강세헌은 그를 흘끗 쳐다보고 물었다.“장소는 구했어?”진원우가 대답했다.“찾았어요. 하루나 이틀 안에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강세헌은 무표정으로 알겠다고 대답했다.진원우는 강세헌의 옆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었고, 피부는 지나치게 하얗다. 그는 분명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긴했지만 사람이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대표님, 이분은...”강세헌은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그는 그 남자를 수술실로 안내했다.진원우는 의구심을 품은 채 그 뒤를 따랐다.남자는 상자를 열어 옆으로 치우고는 장갑을 끼고 송연아의 얼굴을 덮은 천을 들어 올렸다.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원래 모습으로 복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화상을 입은 거라 살아있는 사람이었으면 피부를 이식해서 재생이 가능하지만, 죽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도 방법이 없네요.”강세헌은 최고의 장의사를 찾아서 데려왔는데, 그의 직업은 죽은 사람의 모습을 죽기 전의 상태로 복원하는 것이다. 얼굴과 몸을 가능한 완전하게 고치는 것인데 죽은 사람에게 치장을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미 차가워진 시신에 생기를 부여하여 영원한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다.“이 여성분은 너무 심하게 다쳐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장의사가 말했다.강세헌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눈 밑으로 실망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그녀가 생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건가?“가능한 한 빨리 시신을 영안실에 넣는 것이 좋습니다.”장의사가 말했다.기회를 포착한 진원우는 서둘러 그의 말에 동의했다.“네, 맞아요. 병원에 두기 싫으시면 얼음 관에 넣어 지금 바로 별장으로 가져가겠습니다.”그리고 임지훈이 냉동실을 다 지으면 얼음 관을 바로 넣을 수 있다. 거기에 잠시 둘 수 있을 것이다.장의사는 이어서 말했다.“그렇게 하면 보존에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손상되기 쉽습니다.”강세헌은 이렇게 두는
안이슬의 전화였다.안이슬이 먼저 그에게 전화를 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청양시로 돌아온 후에도 그녀는 송예걸에게 전화를 건 적이 없었다.그런데 이때 갑자기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는 정말 너무 놀랐다.평소 같았으면 이 기회에 안이슬과 대화를 나눴을 텐데 지금은 적합하지 않았다.“이슬 누나, 무슨 일이 있으면 나중에 말해요. 지금은 너무 바빠서요.”“뭐가 바쁜데?”“지금 한 놈을 패야 해요. 바빠서 지금은 말하지 못하고 나중에 연락할 테니 먼저 끊을게요.”그렇게 말한 후 그는 전화를 끊었다.안이슬은 당황했다.아직 어린 송예걸이 설마 과도한 일을 저지르거나 법을 어기지는 않겠지?그녀는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송예걸은 사람을 때릴 생각뿐이라,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았고, 너무 성가셔서 아예 전원을 꺼버렸다.전화가 끊기자 안이슬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휴대폰이 꺼져있다는 소리를 들었다.그녀는 많이 불안했다......진원우의 부하들은 송예걸을 어두운 방으로 데려갔다.방의 시야는 매우 어두웠고 창문이 없었다. 네 면의 벽과 철제문 하나뿐이었다. 달칵 소리를 내며 누군가 스위치를 눌렀고 불이 켜졌다.송예걸은 손이 묶인 강세욱을 보았다.갑작스러운 빛에 강세욱은 눈을 감았다.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있었기 때문에 지나치게 밝은 빛에 적응할 수 없었다.그는 눈이 너무 부셔 뜰 수가 없었고 한참 있다가 눈을 반쯤 가늘게 뜨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강세헌이 아닌 것을 확인한 그는 짜증 내며 말했다.“강세헌은 어디 있어? 죽었어, 안 죽었어? 송연아가 밀쳐서 강세헌은 죽지 않았잖아? 지금 송연아 때문에 울고 있는 거 아니야?”그는 조롱하는 말투로 말했다.“나는 강세헌이 눈물을 흘리는 걸 정말 보고 싶어.”송예걸은 분노에 차 말했다.“곧 죽는데도 여전히 헛소리하고 있군. 오늘 내가 널 부모도 못 알아볼 정도로 때리지 않으면 앞으로 난 송 씨가 아니야!”강세욱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그를 무시했다.“넌 어디서 나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난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 난 그런 일 절대 못 해요. 날 놓아줘요.”송예걸은 임지훈에게서 손을 빼내려 했지만 임지훈이 힘을 주어 잡고 있어서 그는 도망칠 수 없었다.임지훈은 인내심 있게 그에게 말했다.“이 일은 송예걸 씨가 하기에 가장 적합해요.”“내가 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가서 말하면 혜숙 아주머니가 안 속상할까요? 난 그런 나쁜 사람 안 할래요. 그렇게 못해요.”송예걸은 임지훈이 자신한테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의 어머니는 생전에 한혜숙과 송연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잘못한 것도 많았다.그는 그들 모녀와 지내면서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송예걸은 이미 한혜숙과 송연아를 자신의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한혜숙은 그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이제 송연아는 죽었다.한혜숙이 알게 되면 너무 슬퍼서 오열할 것이다!“감추면 안 돼요?”송예걸은 이 사실을 감추는 게 알려주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한 사람이 죽었는데 그걸 감춘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임지훈은 그를 바라보았다.“하루 이틀을 감출 수는 있어도 한 달 두 달, 일년 이년 후에는요? 감출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에게 부탁하는 건 우리 모두를 위해서예요.”송예걸은 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서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사모님이 죽은 건 당신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다 너무 슬픈 일이에요. 이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 건 우리가 원했던 게 아니에요.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 잖아요. 살아있는 사람들은 계속 살아가야 해요. 지금 당신에게 한혜숙 씨께 알려드리라고 부탁하는 건 며칠 후에 저희 대표님이 진정되셨을 때 한혜숙 씨가 찾아와 울면서 다시 대표님의 기분을 흔들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강세헌이 며칠이면 우리 누나를 잊을 수 있어요? 우리 누나는 그 사람의 아이도 낳았는데. 잠깐 슬퍼하다가 만다고요? 그건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닌가...”“말이 그렇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