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초간 공기마저 정지 된 것 같았다.윤소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분이 바로 이슬 언니죠? 재경 오빠한테서 얘기 들었어요. 저희 결혼식에 참석하러 오신 거예요?”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마치 방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처럼 말이다.안이슬은 미간을 찌푸렸다.‘심재경이 내 얘기를 했다고? 전 여친이라고 생각하고 현 여친한테 얘기한 건가?’안이슬은 확실히 굴욕을 당했고 그녀는 차갑게 웃었다.“결혼 축하하러 왔어요. 백년해로 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길 바래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심재경을 바라보았다.“그쪽 재경 오빠는 정말 정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그러니 꼭 잘 잡으세요. 다른 여자를 보고 다리가 나른해지면 안되죠.”“재경 오빠 그런 사람 아니에요.”윤소민은 웨딩드레스의 큼지막한 치맛자락을 안고 그들을 향해 걸어왔고 심제경의 팔짱을 꼈다.“오늘은 저희의 결혼식이고 하객들도 많아서 인사하러 가야 해요. 곧 결혼식도 시작하니 다들 로비로 가서 기다려 주세요. 저희도 이만 가야 해서요.”그녀는 시종일관 화를 내지 않고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이 냉정함.이 참을성.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송연아도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만약 그녀와 강세헌의 결혼식에서, 강세헌이 다른 여자와 키스를 나눈 모습을 보았다면 그녀는 분명 미쳐 날뛰겠지?심재경은 차마 안이슬을 쳐다 보지 못하고 윤소민따라 가버렸다.송예걸은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심재경은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먼저 이슬 누나에게 치근덕거렸고 목적을 달성하니 지금 이렇게 가버린 다고?’그는 더 이상 신경 쓸 틈도 없이 달려고 심재경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그러고도 당신이 남자야?”윤소민은 화를 냈다.“당신 뭐 하는 거야? 뭔데 사람을 때려?!”송예걸은 콧방귀를 꼈다.“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아서 때렸고. 사람을 괴롭혀서 때린 건데.”“우리 재경 오빠는 당신보다 훨씬 남자답고 당신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사람이야. 책임감이 있는 남자라고. 당
송연아는 쪽지를 건네받고 물었다.“누가 저한테 전달하라고 했어요?”종업원한테 쪽지를 건네줄 때 이미 당부하였기에 종업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말할 수 없어요.”송연아는 그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았다.“전달받았어요.”종업원이 떠났다.송연아는 쪽지를 열어봤고 안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26층 502실로 오세요. 말씀드릴 비밀이 있어요.】그녀는 다 보고 나서 쪽지를 공 모양으로 뭉쳐서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다.쪽지에 적힌 장소에 가지도 않았다.서명도 없고 이렇게 비밀스러운 것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니다.그녀는 바보처럼 저곳에 가지 않을 것이다.이때 결혼식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이 흩어졌다.강세헌은 송연아 옆으로 가서 앉았다.송연아가 입을 열었다.“엄청 바쁘시네요.”결혼식에 참석했을 뿐인데 이렇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말이다.그녀는 또 주스 한 모금을 마시고 컵을 힘껏 내려놓았다.강세헌은 주스 컵을 힐끗 보고는 물었다.“화났어?”송연아는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그녀가 어찌 감히 그에게 화를 날 수 있냐 말이다.그리고 그는 일 때문에 이러고 있으니 그녀도 화를 낼 이유가 없다. 단지 자신이 그의 옆에서 있는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그녀는 결혼식을 보며 말했다.“신부가 참 젊고 예뻐요.”강세헌은 아예 신부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녀만을 바라보았다.“네가 더 예뻐.”송연아는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지금 그녀를 놀리고 있는 건가?쪽지 생각이 나서 망설이다가 그녀는 입을 열었다.“방금 누군가 26층 502호실로 오라고 했어요. 얘기해줄 비밀이 있다고 하면서요.”“뭐?”강세헌은 조금 미간을 찌푸렸다.송연아가 입을 열었다.“함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지 않았어요.”사실 그녀는 궁금하다. 26층 502호실에 무엇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지.이때, 사회자가 하는 덕담이 결혼식장에 울려 퍼졌다.“이 어울리는 한 쌍의 커플은 오늘 이곳에서 혼인하게 되었습니다. 두 분은 이제 함께 인생의 여정을 시작하게
손을 뻗어 살짝 밀자 방문이 열렸다.안은 텅 비었고, 아무것도 없었다.송연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누가 장난을 치고 있는 걸까요?”강세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생각이 있었다.이건 아마 누군가가 장난을 친 게 아니라 송연아가 낚이지 않자 덫을 놓은 사람이 이곳을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청소한 것 같다.“이만 돌아가요.”그녀가 입을 열었다.남의 결혼식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좀 좋지 않은 것 같았다.강세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송연아는 그의 옆에 기대어 그의 손을 잡으려고 하는데, 이때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올라왔고 ‘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송연아는 살며시 손을 움츠렸고 강세헌이 주동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녀는 멍해졌다. 의외였다.피부가 맞닿는 순간, 그녀의 마음도 긴장돼서 두근두근 거렸다.그녀는 자신이 왜 긴장되는지 모른다.분명히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잔 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다.긴장된 심장이 가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강세헌 따라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빠르게 문이 닫혔고 그는 1층 버튼을 눌렀다.폐쇄된 공간 안, 그들 둘뿐이다.송연아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윤관이 뚜렷한 얼굴과 목선이 연결되어 섹시한 그림을 만들었다.이 남자는 그녀가 봤던 남자 중에 최고의 미모를 가지고 있는 남자이다.그런 남자가 지금 그녀의 남자이니 그녀는 경사라고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이 생각을 하니 어느새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앞쪽 엘리베이터 문에 무심코 시선이 향했다.그녀는 멍해졌다.엘리베이터 문은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로 매우 매끄러워서 사람의 모습까지 선명하게 비친다.방금 그녀가 강세헌을 얼빠진 사람처럼 보고 있는 것도 그가 모두 똑똑히 보았단 말인가?‘으악—— 너무 쪽팔려.’그녀는 당장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숨고 싶었다. 그녀는 맥없이 고개를 떨구었고 차마 고개도 들지 못했다.강세헌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자세히
다들 위를 보고 있길래 심재경과 윤소민은 계단을 내려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빌딩 외벽에 언제부터 걸려있었는지 모를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위에는 글자가 적혀있었다.【심재경, 변심한 놈!】【심재경, 쓰레기 같은 인간!】【윤소민, 뻔뻔한 년!】【윤소민, 천한 년!】심재경은 원래 별로 화나지 않았지만 윤소민을 욕한 현수막을 보고는 얼굴이 어두워졌고 노발대발했다.“경호원들은? 빨리 가서 저거 뜯지 않고 뭐해?”“네.”이 일은 윤소민의 부모님에게 전해졌고 그들은 나와서 아직 뜯지 못한 현수막을 보고는 금세 안색이 어두워졌다.“심재경,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에게 제대로 설명하길 바라.”윤씨 집안도 잘 알려진 집안인데 딸이 결혼하는 날에 이런 일을 당하니 그들도 참 부끄러웠다. 심재경은 황급히 설명했다.“이 일은 누군가가 일부러 장난친 게 틀림없어요...”“우리 양가의 세력을 누가 모르겠어요? 감히 이런 짓을 한다고요? 그 이유를 제외하지 않고서야 말이죠...”말하면서 윤소민의 아버지는 심재경을 힐끗 보았다.“여자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여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지 않는 이상, 누가 우리한테 이런 짓을 꾸미겠어요?”심재경 어머니는 바로 안이슬이 생각났고 안이슬에 대한 혐오가 더욱 강해졌다.그녀가 심재경과 헤어지는 것에 대하여 내키지 않아서 이런 짓을 꾸민다는 생각이 들었다.“반드시 저희에게 제대로 설명하셔야 할 거예요.”윤소민의 아버지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저희한테 딸은 소민이 한 명뿐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날에 이런 재수 없는 일을 당하다니, 정말 말도 안 되죠!”“이 일은 저희가 꼭 제대로 조사할 거예요.”심재경 아버지도 체면을 잃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심재경 어머니도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얼른 수습하였다.“오늘 같은 경사스러운 날에 이런 사소한 일로 기분이 상하면 안 되죠.”말을 마친 뒤, 윤씨 집안에 보여주기식으로 말했다.“재경아, 이 일은 반드시 소민이 그리
송연아가 고개를 돌려보니 심재경이었다. 그녀는 황급히 한마디 내뱉었다.“그냥 제 추측이에요.”방금 그녀가 자기 생각을 얘기 한 이유는 옆에 강세헌이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심재경이 올 줄이야!심재경은 그들을 배웅하려고 온 건데 송연아의 이런 말을 듣게 될 줄 몰랐다. 그도 안이슬이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송예걸이 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송예걸은 젊고 충동적이여서 그가 해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오늘 선배 결혼식이니 엄청 바쁘죠? 여기는 무슨 일로 왔어요?”송연아가 물었다. 그러면서 일부러 화제를 딴 데로 돌렸다.심재경이 말했다.“배웅해 주려고 왔어.”그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송연아에게 말했다.“이슬에게 말 좀 전해줘.”“무슨 말이요?”“그게...”심재경은 말을 채 하지 못했다.“아니야.” 지금 무슨 말을 해도 의미가 없다.그가 그와 안이슬 사이의 감정을 저버린 것이다.송연아가 올 때 운전기사가 데려다줬는데, 그녀는 운전기사를 돌려보냈고 강세헌의 차를 타고 갈 생각이다.“연아야.”심재경은 차 문 앞에 서서 말했다.“이번 일은 송예걸에게 따지지 않을게. 그러나 만약 다음이 있다면, 이렇게 넘어가지 않을 거야. 날 욕하는 건 상관없어. 그런데 소민이는 죄가 없어. 이런 욕을 들으면 안 되지.”송연아는 다시 해석하였다.“아까도 말했듯이 그냥 그건 제 추측이에요. ”“걔 말고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없어.”심재경은 송예걸이 한 짓이라고 확신했다.송연아는 심재경이 이렇게 독단적인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알겠어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차창을 닫았다.심재경은 송연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캐치했지만 그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차는 떠났다.강세헌이 그녀에게 물었다.“기분이 안 좋아?”송연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재경 선배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요. 그건 제 추측이라는 거 알잖아요. 실질적인 결론을 낸 것도 아닌데 재경 선배는 증거도 없이
송연아는 잠에서 깼고 옅은 소독제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자극하였다.익숙한 냄새이다.의사인 그녀는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천장의 불빛이 흔들리면서 눈이 아파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한참 지나서야 그녀는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오은화는 찬이를 안고 있었고 송연아가 눈 뜬 것을 보고 그제야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오은화는 그녀에게 물었다.“사모님, 깨셨어요?”송연아가 일어나 앉으려 하는데, 온몸이 나른하고 힘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의사가 사모님의 몸이 너무 허약하대요. 그러니 일어나지 마시고 푹 쉬세요.”오은화가 말했다.송연아는 아들을 보고 손을 내밀었다.“아주머니, 찬이를 저한테 주세요.”오은화는 찬이를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아주머니, 저 찬이 안고 싶어요.”오은화는 다른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뜻을 알아챘다.“뭐 드시고 싶으세요? 준비해서 가져다드릴게요.”하지만 송연아는 입맛이 없어서 정말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의사 선생님이 지금 사모님 몸이 너무 허약하다고 하시니 조금이라도 드세요.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찬이를 생각해야죠. 지금 찬이를 안을 힘은 있어요?”오은화는 노파심에서 거듭 충고를 하였다.송연아가 말했다.“그래요.”“쉬고 있으세요.”오은화는 방에서 나와 문을 닫았다.“엄마...”찬이는 그녀의 팔을 베고 두 손을 마구 움직이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기도 하고 옷을 잡기도 하였다.날씨가 점점 서늘해졌다.찬이는 멜빵바지를 입고 있는데 이것은 송연아가 얼마 전에 그에게 사준 것이다.그에게 새로 사준 가을옷인데, 그가 입고 있으니 아주 귀여웠다.“엄마... 엄마...”말랑말랑한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녹였다. 그러나 그는 이 두 글자만 알고 아빠라고 부를 줄도 모르고 당연히 다른 말도 할 줄 모른다.송연아는 옆으로 몸 돌려 그를 안고는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찬이는 그녀의 체면을 봐서인지 울지도 않고
온 사람은 주석민이었다.“몸은 좀 괜찮아?”송연아는 일어나 앉으면서 말했다.“많이 좋아졌어요. 교수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주석민이 말했다.“네가 실려 왔을 때 내가 마침 있었어. 그래서 내가 먼저 검사를 하고 산부인과 교수님이 오셔서 또 진찰하셨어...”“산부인과 교수님께서요?”그럴 리가 없다. 그녀는 자기 몸 상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요즘 잘 휴식을 못하고 일 때문에 조금 피곤해서 그렇지, 병에 걸리...”“임신인 것 같아.”주석민이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송연아는 멈칫하였다. “뭐라고요?”그녀는 줄곧 피임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임신을 할 수 있단 말인가?“혹시 결과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 산부인과 교수님이 직접 검사한 거라서 틀렸을 리가 없어.”주석민이 얘기했다.송연아는 멍해졌다.“그럴 리가요.”“믿지 못하겠으면 다시 검사를 해봐.”주석민은 그녀를 바라보았다.“지금 이 시기의 임신은 너한테는 좋을 거야. 강세헌과의 관계도 완화 시킬 수 있고...”송연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찬이를 가질 때 그녀와 강세헌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지금 어렵게 서로에 대하여 어느 정도 감정이 생겼는데, 임옥민의 일이 발생 했다. 강세헌은 지금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아이를 위해서 자신의 옆으로 돌아온다고 하여도 단순히 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닌 아이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강세헌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다. 그녀는 강세헌에게 시간을 주고 싶지, 아이 문제로 그를 잡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감정도 그녀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알겠어요. 저 좀 도와주실래요?”송연아가 물었다. 주석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말해봐.”“임신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주석민을 바라보며 말했다.주석민이 대답했다.“그래, 비밀 지켜줄게. 산부인과 교수님한테도 내가 얘기를 할게.”“푹 쉬고, 힘들면 내일 출근하지 마.”송연아는 조금 멘탈이 나갔다.“저 괜찮아요.”“맞다, 구진학
송연아는 강세헌이 자신에게 전화를 먼저 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최근 두 번, 일 때문에 출국을 했지만 그녀에게 먼저 연락한 적이 없었다.오늘 그의 연락에 그녀는 매우 놀랐다.“그...”“아주머니한테서 아프다는 얘기는 들었어.”송연아는 핸드폰을 꼭 쥐었다. 오은화가 그에게 자신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줘서 그가 먼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그녀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괜찮아요. 너무 피곤해서 쓰러진 거예요.”“좀 괜찮아?”“네. 저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그래.”“...”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그 사이 두 사람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전화를 끊지는 않았다.조용한 나머지, 상대방의 가벼운 숨소리마저 들을 수 있었다.송연아가 먼저 이 침묵을 깨트렸다.“많이 바쁘죠? 별일 없으면 먼저 끊어요.”“그래.”그는 알겠다고 했지만 전화를 끊지 않았고 송연아도 끊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 또 침묵이 흘렀다.이번에는 강세헌이 입을 열었다.“끊어.”송연아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녀는 의외로 평온해졌다.순간 그녀가 신경 썼던 부분과 마음속의 섭섭함이 모두 풀린 것 같았다.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누웠다.자신의 직업 때문인지 병원 내 소독액 냄새가 역겹지 않았다.그녀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어둠이 짙어졌다. 병원 안은 조용해졌고 가끔 걸어 다니는 발소리만 들렸다.송연아는 깊게 잠이 들어 병실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 온 것도 전혀 몰랐다.커다란 실루엣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잠시 멈칫하고는 가볍게 문을 닫고 바로 침대 옆으로 다가갔다.그는 침대에서 곤히 잠든 여인을 보며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병원에서 이렇게나 깊이 잠들 수 있다고? 이렇게 편안하게?’그는 한 손으로 양복 외투의 단추를 풀고는 옆으로 누워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송연아는 흐리멍덩한 채 누군가가 있는 듯 하였지만 너무 졸려서 금방 다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