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안은 그 순간 강세헌의 눈빛을 알아차렸다.그녀의 얼굴은 더욱 밝아질 수밖에 없었다.강세헌은 곧장 자리를 떠났다.가는 길에 강의건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세헌아, 지안이 회사에 입사 지원했다고 들었는데, 일을 잘 못해서 해고된 것 같구나. 지안이가 이제 막 졸업하고 경력이 없는데 회사에 자리 하나 마련해 줄 수 있겠니?”“할아버지가 그 애를 데려온 거죠?”강세헌이 물었다.그들은 연기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강세헌은 그래도 단서를 찾았다.이지안의 등장은 너무 우연이었다.수상쩍을 정도로 우연히 일치여서 그는 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세헌아,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강의건은 여전히 사실을 숨기려고 애쓰고 있었다.“할아버지, 제가 바보처럼 보여요?”강세헌의 말투가 차가웠다.“지난번에 저를 부르셨을 때는 송연아와 이혼하라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집에 다른 여자가 나타났어요. 할아버지, 일부러 저를 그 여자와 엮는 거 아니에요?”강의건은 자신이 계획을 잘 세웠다고 생각했다.그래도 강세헌에게 들킬 줄은 누가 알았을까?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사람이 너무 똑똑해도 피곤하다고 생각했다.“그게...” 강의건은 해명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자신이 강세헌을 위해 이러는 거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를 댈 수 없었다.다른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결국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었다!“제가 지훈이에게 그 여자의 일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할게요. 할아버지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 꾸미지 마세요."그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었다.강의건이 그의 개인적인 일에 너무 심하게 간섭했다.“아이고, 그래.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으마. 너와 지안이를 엮어주고 싶었지만, 정말 지안이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고 싶었어. 걔가 오래전에 할아버지를 따라 해외로 이주했고, 부모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어. 지안이도 많이 힘들었을 거야. 너처럼 둘 다 아주 일찍...”그는 ‘부모’ 두 글자를 말하지 않았고, 자신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
진짜 오늘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게 강세헌 때문일까?강세헌이 이미 그녀의 기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까?아니야.그럴 리가 없어.마음속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사실은 바로 눈앞에 있었고, 그녀는 정말 강세헌 때문에 불안해했다.그녀에게 상처를 입히고 간접적으로 아이를 잃게 만든 남자에게 어떻게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강세헌을 마음에서 지우고 싶었지만, 무언가를 없애려고 할수록 마음속에서 강세헌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떠올랐다.이 순간 강세헌의 모습이 그녀의 마음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마치 영화가 한 장면 한 장면 재생되는 것처럼.“맞아요, 사모님. 도련님께서 이미 돌아오셨어요. 방금 도련님도 위층으로 올라가셨는데 사모님을 찾으시지 않던가요?”오은화가 물었다.송연아는 계단을 오르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오은화를 돌아보며 물었다.“세헌 씨가 돌아왔다고요?”오은화는 고개를 끄덕였다.송연아는 계단을 올라가다가 잠시 멈칫하더니 강세헌을 만나러 갈지 말지 망설였다.하지만 충동이 이성을 이기고 그녀는 결국 강세헌의 방으로 걸어갔다.방의 문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았고 틈이 보였다. 그녀는 손을 뻗어 천천히 방 문을 열었다. 방안의 빛이 너무 밝아 문을 여는 순간 살짝 눈이 부셨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빛에 적응한 후 방에 서 있는 강세헌을 보았다.그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송연아는 방의 문을 조금 더 열어 똑똑히 보았는데 그는 확실히 그림을 쳐다보고 있었다.지난번에 고훈에게서 사 온 자신의 임신한 모습을 담은 그림이었다.그녀는 걸어 들어와서 부드럽게 물었다.“왜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그림을 사려고 했어요?”강세헌은 그녀가 문을 열었을 때 이미 인기척을 느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그 순간에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그림에 머물러 있었다.이 여자는 아마 잠들었을 때와 그림과 같을 때만 조용히 그의 곁에 가만히 머물러 있을 것이다.“너니까.” 그가 말했다.송연아는 숨이 막히고
송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강세헌은 그 일에 대해 대략적으로만 알 뿐, 백수연이 선택한 장소가 외딴곳이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송연아가 백수연이 자신을 해치려 했다고 말한 것을 듣고 강세헌은 신경이 곤두서면서 물었다.“어디 다치지는 않았어?”송연아는 고개를 저었다.고훈의 부상을 떠올리자 강세헌은 다시 안도했다. 그녀는 메스를 잡는 사람인데 어떻게 쉽게 인질로 잡혀 다칠 수 있을까.그러나 그녀는 결국 젊은 여자였고 아무리 똑똑해도 육체적으로 한계가 있었다.“앞으로 조심해.”그가 당부했다.“무슨 일이 생기면 제때 연락해.”“알았어요.”송연아는 맑고 밝은 눈을 뜨고 속눈썹을 깜빡이며 말했다.“세헌 씨, 나...”그녀는 아이를 낳았다고 말하고 싶었다.그러나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을 때 그녀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무슨 일이야?”강세헌이 물었다.송연아는 고개를 숙이고 어떻게 입을 떼야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말했다.“지난번에 세헌 씨한테 하려고 했던 말이 있었잖아요.”“응?”“그게... 내가요...”윙윙--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했다.“할 말이 있으면 바로 말해. 나한테 숨길 필요 없어.”강세헌은 그녀가 망설이는 것을 알아차렸다.“저 출산했었어요!”그녀는 용기를 냈다.강세헌은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다. 그는 송연아가 그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의 표정을 보고 송연아는 그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가 지난번에 그에게 거짓말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한 줄 알았다.“아니, 사실은...”“괜찮아. 신경 안 써.”강세헌은 다시 강조했다.이때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또 진동했다.송연아는 혹시 한혜숙이 전화한 거면 찬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어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해 그에게 말했다.“됐어요.”그녀는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강세헌이 그녀를 다시 끌어당겼다!“어디 가? 오늘 밤 내 방에서 자.”그의 시선이 불타올랐다.송연아가
송연아는 전화를 끊은 후 곧바로 문밖을 나섰는데 복도에서 강세헌과 마주쳤다. 그도 한창 외출 준비를 하는 듯싶었다.두 사람은 서로 눈이 마주치더니 강세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가려고?”송연아가 머리를 끄덕였다.“친구한테 일이 좀 생겨서 가보려고요.”그녀는 마찬가지로 밖에 나가려는 강세헌을 보며 물었다.“세헌 씨도 나가려고요?”“응.”강세헌이 먼저 걸음을 내디디며 그녀에게 물었다.“넌 어디 가는데?”송연아는 좀 전에 확인한 주소를 그에게 알려주었다.강세헌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나도 거기 가.”“네?”송연아는 흠칫 놀랐지만 심재경과 강세헌이 친하다는 걸 알아채고 마음을 다잡았다.“재경 선배가 찾아요?”강세헌이 머리를 끄덕였다.“같이 가.”송연아도 알겠다며 대답했다.강세헌이 운전하고 송연아가 조수석에 탔다.두 사람 모두 침묵을 지켰다.서로 대화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상 떠오르지 않았다.한참 후에야 송연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제가 만나기로 한 선배는 안이슬이라고 하는데 전에 재경 선배와 만났었어요.”강세헌은 심재경의 사생활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송연아의 말을 들은 후에야 심재경이 왜 요즘 기분이 가라앉았는지 이해가 됐다. 감정에 문제가 생긴 탓이었다.“그래서 두 사람 지금 이별하는 중이야?”강세헌의 물음에 송연아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이슬 선배는 헤어지고 싶은데 재경 선배가 안 놓아줘요. 못 놓아준다고 해야겠죠.”강세헌은 담담한 눈빛으로 더 캐묻지 않았다.그는 딴 사람 일에 지나치게 따져 묻지 않는 듯싶었다.두 사람은 곧바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송연아가 먼저 내리고 강세헌이 뒤따라 내렸다!문을 두드리자 심재경이 와서 문을 열었다.둘이 함께 온 걸 보고 심재경은 썩 놀라지 않았다. 방금 안이슬이 송연아에게 전화할 때 그도 옆에 있었으니까.심재경은 몸을 한쪽 옆으로 피하며 길을 내주었다.“들어와.”송연아는 재빨리 안이슬에게 다가
“맞아.”안이슬이 쓴웃음을 지었다.“소개팅하러 온 상대 앞에서 내가 여자친구라고 말했고 그 여자는 속았다고 생각해 당장에서 재경이 엄마한테 전화했어. 일을 아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다니까...”송연아는 그 당시의 장면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선배가 왜 재경 선배 집에서 나타나요? 두 사람 오해 다 풀었어요?”송연아가 물었다.안이슬은 한참 침묵한 후에야 말을 이었다.“재경이한테 다 얘기했어.”송연아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두 사람 원래 서로 사랑했으니 다 알게 되면 이슬 선배를 더 놓치려 하지 않겠죠? 요즘 재경 선배가 얼마나 위축됐는지 알아요? 매일같이 술로 슬픔을 달래고 사람이 다 홀쭉해졌다니까요. 이슬 선배는 이런 재경 선배가 속상하지 않아요?”안이슬도 다 알고 있었다. 심재경은 그토록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의기소침해졌는지, 그녀도 마음이 너무 아팠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심재경의 엄마는 그녀를 더욱 미워할 것이다. 전에는 가정형편이 별로여서 제 아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겠지만 이젠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여자라고 생각할 것이다!심재경을 떠나겠다고 약속해놓고 인제 와서 또다시 그와 엮이다니.심재경의 엄마가 안이슬을 얼마나 미워하겠냐는 말이다.송연아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달래주었다.“천천히 관계를 개선해나가면 돼요. 재경 선배가 이슬 선배의 마음을 헤아리고 또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으니 재경 선배 어머님도 시간이 지나면 선배의 좋은 점을 서서히 발견할 거예요.”안이슬은 그녀의 말처럼 낙관적이지 못했다.그 당시 심재경의 엄마는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으니까.송연아는 꿋꿋이 그녀를 위로했다.“사실 난 지금이 더 좋다고 봐요. 두 사람 손 잡고 함께 나아갈 수 있잖아요. 전에는 이슬 선배 혼자 감당하느라 얼마나 괴로웠어요. 재경 선배도 덩달아 속상했고요. 지금은 적어도 재경 선배가 그때처럼 힘들어하지 않잖아요. 두 사람을 가로막는 사람은 재경 선배 어머님뿐이에요. 재경
출중한 외모에 정말 홀딱 넘어간 걸까?!“나도 내가 세헌 씨한테 설렐 줄은 몰랐어요. 찬이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데 매번 코앞에 닥치면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하겠더라고요.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배 그거 알아요? 난 예전에 단 한 번도 후회 안 했는데 세헌 씨 앞에서 후회한 적이 있어요...”“찬이 낳은 걸 후회해?”안이슬이 눈썹을 들썩거렸다.송연아는 고개를 내저었다.“그날 밤 충동적인 행동이 후회돼요.”찬이를 낳은 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찬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1호이니까.송연아가 후회하는 것은 누군가를 좋아하면 자신의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강세헌에게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비록 강세헌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녀는 늘 마음에 걸렸다.안이슬은 그녀 곁에 다가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연아야, 이건 단지 내 관점이라 다 맞다고 할 순 없어. 네가 만약 평범한 사람을 만나고 그 상대가 너에게 애가 있다는 걸 신경 쓰지 않으면 난 무조건 좋게 봐. 하지만 강세헌 씨는 단연코 평범한 남자가 아니야! 그런 급의 남자는 어떤 여자인들 못 만나겠어? 수많은 미인을 접해 봤을 거야. 지금은 한순간의 짜릿함 때문에 널 좋아할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고 딴 사람의 아이를 마주하게 되면 진짜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마다 상상력이 있기 마련이야. 강세헌 씨가 그 아이를 보면서 저도 몰래 네가 딴 남자랑 관계를 나눴던 장면을 떠올릴 거야! 그러다 보면 너희 두 사람의 감정에도 금이 갈 테고!”송연아는 강세헌에게 바로 얘기하지 않아도 실은 이런 걱정을 하고 있었다.어쨌거나 찬이는 강세헌의 아이가 아니니 그가 정말 진심으로 송연아와 찬이에게 잘해줄 수 있을까? 게다가 송연아는 찬이와 떨어져 지내고 싶지 않다.“내 말이 다 맞다는 건 아니야. 어쩌면 내가 옹졸한 마음으로 판단했을지도 몰라...”“아니에요.”송연아는 안이슬이 자신을 걱정해서 이렇게 말하는 걸 다 알고 있다. 그녀도 안이슬의 말이 일리
인기척 소리에 송연아는 창가 쪽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돌렸다. 강세헌은 그녀를 향해 곧장 다가왔다.“재경 선배는 어떻게 됐어요?”강세헌이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말했다.“병원 일을 관두고 집에서 운영하는 회사로 돌아가 출근하겠대.”송연아는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심재경이 의사 직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인제 와서 포기하다니, 그는 지금 얼마나 속상할까?“잃는 게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도 있어.”강세헌은 그녀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챈 듯싶었다.“너무 걱정하지 마.”송연아는 그의 외투 단추를 풀어주며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재경 선배 걱정한 거 아니에요.”강세헌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는데 오늘 왠지 어딘가 달라 보였다.송연아는 그의 외투를 옷장에 넣으며 물었다.“씻고 잘래요?”강세헌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내가 물 받아놓을게요.”송연아는 욕실로 향했다.이때 강세헌이 그녀를 덥석 잡았다.“무슨 일 있지?”송연아가 가볍게 웃으며 되물었다.“그래 보여요?”그녀는 차분하게 강세헌과 지내며 그를 향한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고 싶었을 뿐이다!송연아의 친절함과 단아함에 강세헌은 가슴이 미치도록 설렜다!그는 허리를 숙여 송연아를 확 끌어안았다.송연아는 그의 목을 안고서 그윽한 눈길로 올려다보았다.“안 씻어요?”강세헌은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그녀 위에 엎드렸다.“내가 더러워?”송연아가 머리를 내저었다.“그게 아니라...”“나 아주 깨끗해.”말을 마친 강세헌은 살포시 그녀의 핑크빛 입술을 탐했다. 그는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자신의 셔츠 칼라에 갖다 댔다.“풀어줘.”강세헌의 중저음의 목소리에 송연아는 살짝 수줍은 듯 눈길을 피했다.강세헌은 그녀의 얼굴을 바로잡으며 말했다.“날 봐.”그야말로 터프하고 일방적인 강세헌이었다.송연아는 그를 밀치며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자꾸 나 괴롭힐 거예요?”강세헌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는 송연아의 이런 모습이 너무 좋았다.강세헌은 그녀의
송연아는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강세헌은 그녀를 안고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괜찮아, 내가 옆에 있잖아.”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더니 귀밑머리로 흘러내렸다.“난... 아빠가 미워요. 그런데 가슴이 너무 아파.”송연아는 겨우 말을 내뱉으며 몸을 살짝 떨었다.강세헌이 대답했다.“알아.”그 사람은 송연아의 아빠이고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니 어찌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지금... 보러 가야겠어요.”송연아는 횡설수설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강세헌이 그녀에게 옷을 건넸다.“침착해, 조급해하지 마.”“어떻게 침착해요?!”이때 송연아가 버럭 소리쳤다.그녀는 너무 흥분했다.소리치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아무리 속상해도 강세헌에게 화풀이해서는 안 되었다.“미안해요.”송연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강세헌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그녀는 멍하니 강세헌을 바라보더니 불쑥 그의 품에 안겨 어깨를 파르르 떨면서 대성통곡했다!강세헌은 그녀를 꼭 안고 등을 토닥였다.한참 뒤 마음을 진정하고 나서야 옷을 갈아입고 문밖을 나섰다.병원에 도착한 그녀는 송태범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송태범은 이미 영안실에 실려 가 흰 천을 덮고 있었고 백수연이 옆에 엎드린 채 목청이 찢어지게 울었다.송연아는 몇 초 머뭇거린 후에야 걸음을 뗐다.백수연이 그녀를 밀쳤다.“이런 재수 없는 년, 네 아빠가 다 너 때문에 죽었어...”“엄마!”송예걸이 그녀를 가로챘다.“왜 누나 탓을 해? 엄마가 아빠랑 싸우지만 않았어도 아빠가 화가 나서 죽을 지경에 이르진 않았을 거야!”송태범이 숨졌을 때 송예걸이 옆에 있었다.그는 아빠의 죽음이 송연아와 전혀 상관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백수연은 아들을 표독스럽게 째려보았다.‘얘가 대체 누구 편이야? 왜 이렇게 어리석어?!’송연아는 차갑고 매정한 눈길로 백수연을 흘겨봤다!송태범의 병이 위독하다고 해도 아직 살날이 좀 더 남아있을 텐데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난 건 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