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훈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설령 그가 잘못해서 강세헌이 그를 꾸중한대도 분명하게 말을 해줘야 한다.그를 끝까지 이유도 모르게 만들면 안 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그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강세헌은 더더욱 들을 수 없었다!“아이고, 왜 여기 있어요. 빨리 나와요.”거실로 돌아가는 길에 강세헌이 전 집사의 목소리를 듣고 걸어가자 이지안이 방에서 그의 부모님 사진 옆에 놓아둔 작은 상자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순식간에 그의 눈빛이 흐려지더니 큰 걸음으로 건너갔다.“뭐 하는 거야?”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서웠다.이지안은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그냥 궁금해서 여기 뭐가 들어 있는지 살펴본 것뿐이에요.”“얼른 그걸 내려놓으세요. 그건 우리 도련님에게 매우 소중한 물건이에요...”전 집사가 말했다.“이건 분명 내 물건이었어요.”이지안은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말했다.그녀가 이 물건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당한 얼굴로 말할 수 있었다.이 모든 것은 강의건이 그녀에게 가르쳐 준 말이었다.강의건은 이 옥패의 주인이 강세헌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그녀가 강세헌에게 자신이 이 옥패의 주인이라고 말하면 강세헌은 당연히 그녀에게 잘 대해 줄 것이다.“뭐라고 했어?”강세헌은 눈을 가늘게 떴다.“이게 당신 거라고?”“네, 이건 아버지가 저에게 남긴 물건인데 제가 잃어버렸었어요. 못 믿으시면 저희 할아버지께 가서 제 물건이 맞는지 아닌지 물어보시면 되잖아요?”이지안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그녀의 확신에 찬 표정을 보면 사람들이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당신의 물건이라면서 어떻게 잃어버릴 수 있어?”강세헌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언제 잃어버린 건지는 잊었어요.”이지안은 대답했다.“이걸 잃어버렸을 때는 제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그녀는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바로 말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된 일이기에 바로 말하면 고의적인 것 같
이지안은 그 순간 강세헌의 눈빛을 알아차렸다.그녀의 얼굴은 더욱 밝아질 수밖에 없었다.강세헌은 곧장 자리를 떠났다.가는 길에 강의건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세헌아, 지안이 회사에 입사 지원했다고 들었는데, 일을 잘 못해서 해고된 것 같구나. 지안이가 이제 막 졸업하고 경력이 없는데 회사에 자리 하나 마련해 줄 수 있겠니?”“할아버지가 그 애를 데려온 거죠?”강세헌이 물었다.그들은 연기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강세헌은 그래도 단서를 찾았다.이지안의 등장은 너무 우연이었다.수상쩍을 정도로 우연히 일치여서 그는 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세헌아,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강의건은 여전히 사실을 숨기려고 애쓰고 있었다.“할아버지, 제가 바보처럼 보여요?”강세헌의 말투가 차가웠다.“지난번에 저를 부르셨을 때는 송연아와 이혼하라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집에 다른 여자가 나타났어요. 할아버지, 일부러 저를 그 여자와 엮는 거 아니에요?”강의건은 자신이 계획을 잘 세웠다고 생각했다.그래도 강세헌에게 들킬 줄은 누가 알았을까?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사람이 너무 똑똑해도 피곤하다고 생각했다.“그게...” 강의건은 해명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자신이 강세헌을 위해 이러는 거라고 말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를 댈 수 없었다.다른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결국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었다!“제가 지훈이에게 그 여자의 일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할게요. 할아버지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 꾸미지 마세요."그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었다.강의건이 그의 개인적인 일에 너무 심하게 간섭했다.“아이고, 그래.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으마. 너와 지안이를 엮어주고 싶었지만, 정말 지안이에게 일자리를 찾아주고 싶었어. 걔가 오래전에 할아버지를 따라 해외로 이주했고, 부모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어. 지안이도 많이 힘들었을 거야. 너처럼 둘 다 아주 일찍...”그는 ‘부모’ 두 글자를 말하지 않았고, 자신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
진짜 오늘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게 강세헌 때문일까?강세헌이 이미 그녀의 기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까?아니야.그럴 리가 없어.마음속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사실은 바로 눈앞에 있었고, 그녀는 정말 강세헌 때문에 불안해했다.그녀에게 상처를 입히고 간접적으로 아이를 잃게 만든 남자에게 어떻게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강세헌을 마음에서 지우고 싶었지만, 무언가를 없애려고 할수록 마음속에서 강세헌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떠올랐다.이 순간 강세헌의 모습이 그녀의 마음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었다.마치 영화가 한 장면 한 장면 재생되는 것처럼.“맞아요, 사모님. 도련님께서 이미 돌아오셨어요. 방금 도련님도 위층으로 올라가셨는데 사모님을 찾으시지 않던가요?”오은화가 물었다.송연아는 계단을 오르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오은화를 돌아보며 물었다.“세헌 씨가 돌아왔다고요?”오은화는 고개를 끄덕였다.송연아는 계단을 올라가다가 잠시 멈칫하더니 강세헌을 만나러 갈지 말지 망설였다.하지만 충동이 이성을 이기고 그녀는 결국 강세헌의 방으로 걸어갔다.방의 문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았고 틈이 보였다. 그녀는 손을 뻗어 천천히 방 문을 열었다. 방안의 빛이 너무 밝아 문을 여는 순간 살짝 눈이 부셨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빛에 적응한 후 방에 서 있는 강세헌을 보았다.그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송연아는 방의 문을 조금 더 열어 똑똑히 보았는데 그는 확실히 그림을 쳐다보고 있었다.지난번에 고훈에게서 사 온 자신의 임신한 모습을 담은 그림이었다.그녀는 걸어 들어와서 부드럽게 물었다.“왜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그림을 사려고 했어요?”강세헌은 그녀가 문을 열었을 때 이미 인기척을 느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그 순간에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그림에 머물러 있었다.이 여자는 아마 잠들었을 때와 그림과 같을 때만 조용히 그의 곁에 가만히 머물러 있을 것이다.“너니까.” 그가 말했다.송연아는 숨이 막히고
송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강세헌은 그 일에 대해 대략적으로만 알 뿐, 백수연이 선택한 장소가 외딴곳이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송연아가 백수연이 자신을 해치려 했다고 말한 것을 듣고 강세헌은 신경이 곤두서면서 물었다.“어디 다치지는 않았어?”송연아는 고개를 저었다.고훈의 부상을 떠올리자 강세헌은 다시 안도했다. 그녀는 메스를 잡는 사람인데 어떻게 쉽게 인질로 잡혀 다칠 수 있을까.그러나 그녀는 결국 젊은 여자였고 아무리 똑똑해도 육체적으로 한계가 있었다.“앞으로 조심해.”그가 당부했다.“무슨 일이 생기면 제때 연락해.”“알았어요.”송연아는 맑고 밝은 눈을 뜨고 속눈썹을 깜빡이며 말했다.“세헌 씨, 나...”그녀는 아이를 낳았다고 말하고 싶었다.그러나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을 때 그녀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무슨 일이야?”강세헌이 물었다.송연아는 고개를 숙이고 어떻게 입을 떼야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말했다.“지난번에 세헌 씨한테 하려고 했던 말이 있었잖아요.”“응?”“그게... 내가요...”윙윙--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했다.“할 말이 있으면 바로 말해. 나한테 숨길 필요 없어.”강세헌은 그녀가 망설이는 것을 알아차렸다.“저 출산했었어요!”그녀는 용기를 냈다.강세헌은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다. 그는 송연아가 그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의 표정을 보고 송연아는 그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가 지난번에 그에게 거짓말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한 줄 알았다.“아니, 사실은...”“괜찮아. 신경 안 써.”강세헌은 다시 강조했다.이때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또 진동했다.송연아는 혹시 한혜숙이 전화한 거면 찬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어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해 그에게 말했다.“됐어요.”그녀는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강세헌이 그녀를 다시 끌어당겼다!“어디 가? 오늘 밤 내 방에서 자.”그의 시선이 불타올랐다.송연아가
송연아는 전화를 끊은 후 곧바로 문밖을 나섰는데 복도에서 강세헌과 마주쳤다. 그도 한창 외출 준비를 하는 듯싶었다.두 사람은 서로 눈이 마주치더니 강세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나가려고?”송연아가 머리를 끄덕였다.“친구한테 일이 좀 생겨서 가보려고요.”그녀는 마찬가지로 밖에 나가려는 강세헌을 보며 물었다.“세헌 씨도 나가려고요?”“응.”강세헌이 먼저 걸음을 내디디며 그녀에게 물었다.“넌 어디 가는데?”송연아는 좀 전에 확인한 주소를 그에게 알려주었다.강세헌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나도 거기 가.”“네?”송연아는 흠칫 놀랐지만 심재경과 강세헌이 친하다는 걸 알아채고 마음을 다잡았다.“재경 선배가 찾아요?”강세헌이 머리를 끄덕였다.“같이 가.”송연아도 알겠다며 대답했다.강세헌이 운전하고 송연아가 조수석에 탔다.두 사람 모두 침묵을 지켰다.서로 대화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상 떠오르지 않았다.한참 후에야 송연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제가 만나기로 한 선배는 안이슬이라고 하는데 전에 재경 선배와 만났었어요.”강세헌은 심재경의 사생활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송연아의 말을 들은 후에야 심재경이 왜 요즘 기분이 가라앉았는지 이해가 됐다. 감정에 문제가 생긴 탓이었다.“그래서 두 사람 지금 이별하는 중이야?”강세헌의 물음에 송연아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이슬 선배는 헤어지고 싶은데 재경 선배가 안 놓아줘요. 못 놓아준다고 해야겠죠.”강세헌은 담담한 눈빛으로 더 캐묻지 않았다.그는 딴 사람 일에 지나치게 따져 묻지 않는 듯싶었다.두 사람은 곧바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송연아가 먼저 내리고 강세헌이 뒤따라 내렸다!문을 두드리자 심재경이 와서 문을 열었다.둘이 함께 온 걸 보고 심재경은 썩 놀라지 않았다. 방금 안이슬이 송연아에게 전화할 때 그도 옆에 있었으니까.심재경은 몸을 한쪽 옆으로 피하며 길을 내주었다.“들어와.”송연아는 재빨리 안이슬에게 다가
“맞아.”안이슬이 쓴웃음을 지었다.“소개팅하러 온 상대 앞에서 내가 여자친구라고 말했고 그 여자는 속았다고 생각해 당장에서 재경이 엄마한테 전화했어. 일을 아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렸다니까...”송연아는 그 당시의 장면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선배가 왜 재경 선배 집에서 나타나요? 두 사람 오해 다 풀었어요?”송연아가 물었다.안이슬은 한참 침묵한 후에야 말을 이었다.“재경이한테 다 얘기했어.”송연아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두 사람 원래 서로 사랑했으니 다 알게 되면 이슬 선배를 더 놓치려 하지 않겠죠? 요즘 재경 선배가 얼마나 위축됐는지 알아요? 매일같이 술로 슬픔을 달래고 사람이 다 홀쭉해졌다니까요. 이슬 선배는 이런 재경 선배가 속상하지 않아요?”안이슬도 다 알고 있었다. 심재경은 그토록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의기소침해졌는지, 그녀도 마음이 너무 아팠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심재경의 엄마는 그녀를 더욱 미워할 것이다. 전에는 가정형편이 별로여서 제 아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겠지만 이젠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여자라고 생각할 것이다!심재경을 떠나겠다고 약속해놓고 인제 와서 또다시 그와 엮이다니.심재경의 엄마가 안이슬을 얼마나 미워하겠냐는 말이다.송연아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달래주었다.“천천히 관계를 개선해나가면 돼요. 재경 선배가 이슬 선배의 마음을 헤아리고 또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으니 재경 선배 어머님도 시간이 지나면 선배의 좋은 점을 서서히 발견할 거예요.”안이슬은 그녀의 말처럼 낙관적이지 못했다.그 당시 심재경의 엄마는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으니까.송연아는 꿋꿋이 그녀를 위로했다.“사실 난 지금이 더 좋다고 봐요. 두 사람 손 잡고 함께 나아갈 수 있잖아요. 전에는 이슬 선배 혼자 감당하느라 얼마나 괴로웠어요. 재경 선배도 덩달아 속상했고요. 지금은 적어도 재경 선배가 그때처럼 힘들어하지 않잖아요. 두 사람을 가로막는 사람은 재경 선배 어머님뿐이에요. 재경
출중한 외모에 정말 홀딱 넘어간 걸까?!“나도 내가 세헌 씨한테 설렐 줄은 몰랐어요. 찬이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데 매번 코앞에 닥치면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하겠더라고요.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배 그거 알아요? 난 예전에 단 한 번도 후회 안 했는데 세헌 씨 앞에서 후회한 적이 있어요...”“찬이 낳은 걸 후회해?”안이슬이 눈썹을 들썩거렸다.송연아는 고개를 내저었다.“그날 밤 충동적인 행동이 후회돼요.”찬이를 낳은 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찬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1호이니까.송연아가 후회하는 것은 누군가를 좋아하면 자신의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강세헌에게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비록 강세헌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녀는 늘 마음에 걸렸다.안이슬은 그녀 곁에 다가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연아야, 이건 단지 내 관점이라 다 맞다고 할 순 없어. 네가 만약 평범한 사람을 만나고 그 상대가 너에게 애가 있다는 걸 신경 쓰지 않으면 난 무조건 좋게 봐. 하지만 강세헌 씨는 단연코 평범한 남자가 아니야! 그런 급의 남자는 어떤 여자인들 못 만나겠어? 수많은 미인을 접해 봤을 거야. 지금은 한순간의 짜릿함 때문에 널 좋아할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고 딴 사람의 아이를 마주하게 되면 진짜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마다 상상력이 있기 마련이야. 강세헌 씨가 그 아이를 보면서 저도 몰래 네가 딴 남자랑 관계를 나눴던 장면을 떠올릴 거야! 그러다 보면 너희 두 사람의 감정에도 금이 갈 테고!”송연아는 강세헌에게 바로 얘기하지 않아도 실은 이런 걱정을 하고 있었다.어쨌거나 찬이는 강세헌의 아이가 아니니 그가 정말 진심으로 송연아와 찬이에게 잘해줄 수 있을까? 게다가 송연아는 찬이와 떨어져 지내고 싶지 않다.“내 말이 다 맞다는 건 아니야. 어쩌면 내가 옹졸한 마음으로 판단했을지도 몰라...”“아니에요.”송연아는 안이슬이 자신을 걱정해서 이렇게 말하는 걸 다 알고 있다. 그녀도 안이슬의 말이 일리
인기척 소리에 송연아는 창가 쪽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돌렸다. 강세헌은 그녀를 향해 곧장 다가왔다.“재경 선배는 어떻게 됐어요?”강세헌이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말했다.“병원 일을 관두고 집에서 운영하는 회사로 돌아가 출근하겠대.”송연아는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심재경이 의사 직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인제 와서 포기하다니, 그는 지금 얼마나 속상할까?“잃는 게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도 있어.”강세헌은 그녀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챈 듯싶었다.“너무 걱정하지 마.”송연아는 그의 외투 단추를 풀어주며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재경 선배 걱정한 거 아니에요.”강세헌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는데 오늘 왠지 어딘가 달라 보였다.송연아는 그의 외투를 옷장에 넣으며 물었다.“씻고 잘래요?”강세헌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내가 물 받아놓을게요.”송연아는 욕실로 향했다.이때 강세헌이 그녀를 덥석 잡았다.“무슨 일 있지?”송연아가 가볍게 웃으며 되물었다.“그래 보여요?”그녀는 차분하게 강세헌과 지내며 그를 향한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고 싶었을 뿐이다!송연아의 친절함과 단아함에 강세헌은 가슴이 미치도록 설렜다!그는 허리를 숙여 송연아를 확 끌어안았다.송연아는 그의 목을 안고서 그윽한 눈길로 올려다보았다.“안 씻어요?”강세헌은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그녀 위에 엎드렸다.“내가 더러워?”송연아가 머리를 내저었다.“그게 아니라...”“나 아주 깨끗해.”말을 마친 강세헌은 살포시 그녀의 핑크빛 입술을 탐했다. 그는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자신의 셔츠 칼라에 갖다 댔다.“풀어줘.”강세헌의 중저음의 목소리에 송연아는 살짝 수줍은 듯 눈길을 피했다.강세헌은 그녀의 얼굴을 바로잡으며 말했다.“날 봐.”그야말로 터프하고 일방적인 강세헌이었다.송연아는 그를 밀치며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자꾸 나 괴롭힐 거예요?”강세헌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는 송연아의 이런 모습이 너무 좋았다.강세헌은 그녀의
결혼식을 마친 후 방유정 아버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떠나기 전에 임지훈에게 회사를 완벽하게 인계하려고 회사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임지훈은 송연아와 강세헌 일행과 같이 먼저 프랑스로 돌아가서 그쪽 일을 마무리했다. 비록 임지훈이 회사에 있으면 강세헌은 보다 한가하게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떠난다고 해도 그냥 조금 더 바쁠 뿐이다. 어느 회사든 누가 떠나면 절대 안 되는 건 없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임지훈은 프랑스에서의 일들을 모두 마치고 귀국해서 방씨 가문 회사에 들어갔다.임지훈도 국내에 집이 있었지만 방유정과 같이 방씨 가문에 들어갔다. 데릴사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유정 아버지의 병을 알고 방유정이 부모님과 많을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였다. 임지훈 역시 사위로서 그럴 의무가 있었다....반년 후, 방유정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방유정 어머니는 그 충격에 순식간에 많이 늙었다.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집안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는데 방유정의 대부분 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예전의 임 비서는 이제 임 대표가 되어 그의 능력으로 방씨 가문은 아주 관리가 잘 되었고 3개월 후 방유정 어머니의 상황도 많이 좋아졌다.방유정이 드디어 임신하게 되면서 방유정 아버지가 돌아간 일도 어느 정도 잊혀가고 있었다. 임지훈은 곧 아빠가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방유정도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방유정 어머니 역시 곧 외할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정말로 모두 행복해할 만한 일이었다.방유정이 임신 6개월 때 그들은 프랑스로 갔는데 구애린은 남자아이를 낳았고 심재경의 딸은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샛별이가 유일한 여자아이여서 모두가 예뻐했다. 샛별이는 아직 작고 어렸지만 찬이를 쫓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찬이는 샛별이 다리가 짧다고 계속 놀려줬으며 그게 재밌다고 샛별이는 키득키득 웃었다. 찬이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샛별이는 오빠라고 불렀는데 너무 귀여웠다.방유정이 말했다.“저도 딸을 낳고 싶어요.”구애린이 말했다.“그게
비록 손을 놓기 싫었지만, 방유정 아버지는 결국 방유정의 손을 임지훈에게 넘겨줬다.“앞으로 계속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방유정도 아버지에게 말했다.“꼭 그렇게 할게요.”이어서 결혼식은 순서대로 일사천리로 피로연까지 모두 순리롭게 진행되었다.방유정 어머니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는데 딸이 그렇게도 바라던 결혼을 하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결혼시키고 나니 또 잘 살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세상의 부모들은 다 그런가 보다.임지훈은 방유정을 데리고 강세헌이 있는 테이블로 가서는 비록 모두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소개했다. 모두 방유정을 다시 한번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심재경 친구의 사촌 동생이 아닌 임주훈의 아내로 말이다.구애린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너무너무 축하해요.”방유정도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윤이도 어른들 따라 한마디 했다.“축하해요.”방유정은 윤이를 보며 말했다.“너무 귀여워요.”그녀가 손을 뻗어 윤이의 얼굴을 만지자, 윤이가 손을 내밀었다.“안아줘요.”송연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윤이야, 안 돼.”방유정이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윤이를 안으며 말했다.“무겁지 않아요.”윤이는 그녀의 머리에 있는 금색 비녀를 보고 만지려고 했다. 방유정이 한복을 입고 있었기에 머리에 비녀를 하고 있었다. 방유정은 아주 시원하게 바로 비녀를 빼서 윤이에게 주었는데 송연아는 윤이를 제지하지 못해서 미안해했다.“이러면 안 돼요. 오늘 얼마나 중요한 날인데...”“괜찮아요. 그냥 액세서리일 뿐이에요. 윤이가 좋아하니 놀게 해요.”방유정은 정말 성격이 좋았다.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만큼 성품이 좋았다. 가끔 조금 오만하긴 하지만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모두 그녀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송연아는 윤이를 안고 달래려고 했다.“윤이 착하지. 이건...”송연아는 윤이가 방유정을 어떻게 부르면 될지 생각했는데 방유정이 웃으며 말했다.“호칭일 뿐이니까 편
“지금 막 들었는데 유정 씨와 결혼한다면서요. 지금 방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준비한다고 난리 났어요.”임지훈이 웃었다.“저 이래 봐도 능력 있는 남자예요. 여자들한테도 인기 많아요. 봐요, 결혼도 금방 하죠?”구애린이 말했다.“이제 우리 모두 짝이 있네요.”찬이도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지훈이 삼촌, 축하해요.”“고마워.”임지훈이 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심재경이 물었다.“그런데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하던데요?”심재경의 말에 모두 놀라며 시선이 일제히 임지훈에게로 향했다. 확실히 놀랄만한 일이다. 임지훈의 조건에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돈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충분히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데 말이다.“하긴, 방씨 가문에 가장이 필요하긴 해요.”심재경이 그쪽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한마디 했다....임지훈의 결혼식으로 송연아와 강세헌도 프랑스로 돌아가는 일정을 늦췄다. 아무도 심재경의 결혼식을 보러 왔다가 임지의 결혼식까지 보게 될 줄을 생각을 못 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건 임지훈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듯이 방유정과의 결혼은 정말로 찰나의 결정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 역시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임지훈이 진원우에게 말했다.“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진원우가 말했다.“그런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방씨 가문은 돈도 많고 유정 씨도 예쁘고 그 정도면 만족해야지.”“만족해. 다만 너무 빠른 것 같아서 그래.”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싱글이었는데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결혼식은 방씨 가문에서 모두 준비했는데 방유정 딸 하나이고 또 사위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혼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렀다. 방씨 가문의 친척들도 꽤 많이 참석해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록 데릴사위라고 하지만, 임지훈 측은 심재경이 준비했는데 심재경 본인도 금방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에 익숙한지라 아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방유정은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값진 웨딩드레스를 입었는
“잠도 잤는데 왜요? 모른 척하려고요?”방유정이 옷을 입더니 침대에서 꼼짝 안 하는 임지훈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왜요? 계속 그렇게 누워 있을 거예요?”임지훈이 말했다.“내 옷을 가져오지 않았잖아요. 나 입을 옷 없어요.”방유정은 그제야 임지훈이 옷이 없다는 걸 생각했다.“가져다 줄게요.”그녀는 곧바로 차에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올라갔다.“뭐 입을지는 알아서 찾아서 입고 내려와요.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요.”방유정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임지훈은 침대에서 내려 결혼 얘기이니만큼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정장을 찾아서 입었다. 그가 정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방유정은 부모님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부모는 그를 보자마자 더욱더 열정적이었다.임지훈이 건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저기...”“우리 딸 줄게요.”“아니에요. 지훈 씨가 저한테 시집 오는 거예요.”방유정이 정정했다.“...”“...”“...”방유정을 제외한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유정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방유정은 자신이 여자이며 이 집안에 다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아버지가 중병이고 자기는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기에 어찌 보면 자기가 남편을 찾는다기보다는 방씨 가문의 회사를 경영할 사람을 찾는 거였다. 인제야 그녀는 부모가 조급해하는 의도를 이해했고 그녀 역시 가문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임지훈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임지훈을 각별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그런 것들 때문이지 않겠는가.“유정 씨,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임지훈은 뼈대가 있는 남자로서 데릴사위 할 생각은 없었다.방유정이 말했다.“후회하면 안 돼요!”“왜 안 돼요? 유정 씨가 뭘 원하든지 저 모두 만족시켜 줄 수...”“제가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방유정이 외치자, 임지훈은 오히려 우스웠다. 한 여자가 나한테 시집오라고 하다니!“우리 유정이가 시집가는 거 맞아요
지금 그녀가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물으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할 것 같았다.‘나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지? 결혼, 그래 결혼해야 해.’그녀는 자기가 결혼해야만 부모님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상대도 지금 바로 방에 있지 않겠는가?‘남자 친구인 척을 해줬으니 이제 남편인 척해달라고 해야지.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도 되니까 결혼하자고 해야겠어.’방유정은 진료 기록부를 다시 원래 위치에 넣고 비틀거리며 부모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는데 임지훈이 아직 욕실에서 나오지 않아 침대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지나자, 임지훈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는데 침대에 자기의 옷이 보이지 않아 방유정의 옆에 서서 물었다.“내 옷은요?”그는 방유정이 잊은 것 같아서 다시 말했다.“내 옷은 지금 당신 차 트렁크에 있어요.”방유정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지훈 씨, 우리 결혼해요.”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약을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어요?”“다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요.”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거칠었는데 임지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울었어요? 누가 괴롭혔어요? 얘기해 봐요. 제가 가서 때려줄게...”임지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방유정이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임지훈은 갑작스러운 친밀감에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게... 유정 씨...”그가 말하려고 할 때 방유정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손이 아래로 드리는 순간 몸에 걸친 유일한 가운마저 벗겨져서 흘러내렸다.“...”방유정은 워낙 임지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 행동이 충격에 의한 도발적인 행동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옷의 단추를 벗겨 가슴을 드러내고는 그의 가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저를 좀 봐봐요.”임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목젖을 굴렸는데 이름 모를 불길이 아랫배에서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딱딱해졌다.“정말 후회하지 않겠어요?”임지훈도
방유정은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응원을 하시는 거였다.“화이팅!”방유정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지금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만 좋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선 자리를 만들어주고 남자를 유혹하라고까지 하시다니?그녀는 어머니의 이마를 만지며 물었다.“엄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우리 이제 나가야 해.”방유정의 아버지는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집을 나갔고 방유정은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차가 떠나자,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어차피 임지훈이 자고 있었기에 지루할 것 같아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심했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서 임지훈을 놀려주려고 그가 곤히 자는 방으로 올라가서는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가져다가 침대 옆에 앉아 임지훈에게 예쁜 화장을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임지훈이 깨지 않자, 옆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눈이 아파 오니 옆에 기대서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임지훈은 이미 깨어나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언, 언제 깼어요?”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방유정은 참을 수 없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훈의 얼굴은 정말로 오페라 가수 같았는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팠다. 임지훈은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물었다.“다 웃었어요?”방유정은 곧바로 웃음을 거두고 그의 손을 뿌리쳤다.“맘대로 제 몸에 손을 대지 말아요.”임지훈이 말했다.“유정 씨를 저에게 준다고 해도 거절이에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뭐라고요? 저를 좋다고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면 프랑스까지는 갈 거예요. 그런데 지훈 씨는 내가 싫다고요?”임지훈이 흠칫하자, 방유정이 그를 잡고 물었다.“지금 그
“방유정은 부모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알았어요.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어서 지훈 씨 방으로 데려가.”방유정이 물었다.“어느 방에요?”방유정 어머니는 그제야 깨달은 듯 말했다.“어머, 어떡해. 게스트룸은 아직 준비가 안 돼있어. 우선 네 방으로 데려가서 휴식하게 해.”방유정은 어머니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아빠, 엄마, 이 정도로 오픈 마인드였어요? 어떻게 제 방에 술 취한 남자를 데려가라고 하세요?”“네 말대로 취했는데 뭐 어때?”“술김에 어떤 짓도 한다는 말 몰라요?”방유정이 묻자, 그녀의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몰라.”방유정은 철저히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과 임지훈이 정말로 모르는 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임지훈이 그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엄마 아빠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아무리 나를 결혼시키고 싶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만약 진짜로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바로 결혼시킬 거야.”임지훈은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바탕 뿜었다. 방유정의 부모님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본인이 천당에 있는 것 같았는데 정말로 귀여운 부모님들이라고 생각했다.‘방유정은 전생에 은하계를 구했나 봐.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고 말이야.’방유정은 역겨워하며 말했다.“지훈 씨,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화장실로 가야지.”“취했잖아.”방유정 어머니가 가정부를 불러 치우게 했다.“그만하고 불편해 보이는데 어서 방으로 데려다 쉬게 해.”방유정은 혼자서 임지훈을 옮길 수 없어서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함께 방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방에 도착하자, 그녀는 임지훈을 침대에 던졌는데 임지훈은 몸이 포근한 세계에 떨어진 듯 따뜻하고 향기로웠다.“무슨 향수를 써요?”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방유정이 말했다.“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잠이나 자요.”임지훈은 취한 건 사실이지만 정신만은 여전히 말짱했다. 그는 눈을 감고 또 말했다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요. 해명하지 않아도 화는 나지 않았을 건데, 굳이 해명하니 용서해 줄게요.”방유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거렸다.“그렇게 잘난 척하지 말아요. 그럼 좋은 말이 안 나가니까.”“...”임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그때 방유정의 어머니가 열정적으로 요리를 집어 그의 앞접시에 건넸다.“이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요리인데 맛봐요.”임지훈이 집어서 입어 넣고 먹어보더니 말했다.“맛있습니다.”방유정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고 방유정 아버지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평소 주량이 어떻게 돼요?”임지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못합니다.”방유정 아버지는 호탕하게 웃었다.“잘 마실 것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네요.”임지훈이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방유정은 보다 못해 한마디 했다.“아빠, 지훈 씨는 일이 바빠서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야 해요.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술을 많이 주지 마세요.”방유정 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네. 그러니까 한 잔씩만 해요.”말하면서 방유정은 술을 가져갔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정말 분위기를 깬다.”방유정이 말했다.“두 분의 건강을 생각해서예요.”방유정 어머니는 술병을 들고 임지훈에게 한 잔 따르고 또 남편에게도 한 잔 따랐다.“많이 마시게 되면 우리 집에 방이 많으니 그냥 휴식하면 돼요. 비행기는 내일 타면 되는데 급해 할 거 없잖아요.”방유정은 어머니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엄마, 이 사람을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집에서 잠을 자래요?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려고요?”“걱정하지 마. 조사해 봤는데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야.”“...”“...”방유정과 임지훈이 순간 놀랐다. 방유정은 평생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을 느낀 적이 없었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체면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었다.방유정 아버지는 아내를 힐끗 쳐다
“지훈 씨는 취미가 뭐예요?”방유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임지훈은 방유정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다가 자신의 생활을 떠올렸는데 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휴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심재경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계속 일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더구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본인의 생활이 정말로 단조롭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따뜻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순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내를 맞이해서 함께 서로 보살펴주며 지내고 싶었는데 그런 사람만 있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고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방유정을 바라봤는데 본인과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방유정은 아직도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보살필 줄은 모를 것 같았다.“왜 그런 이상한 눈빛으로 봐요?”방유정의 물음에 임지훈이 되물었다.“어디가 이상한데요?”방유정은 좀 더 가까이 가서 그의 눈을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왜요? 설마 저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니죠?”임지훈은 어이가 없었다.“당신은 성격도 안 좋고 또 엄청 잘난체하는데 내가 왜요? 점심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들어가요.”시간을 보며 임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굶었어요?”방유정이 그를 비웃었다.“식사 끝나면 저는 가도 되죠.”방유정은 순간 왠지 서운했다.“그렇게 가고 싶어요?”“여기는 제집이 아닌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방유정은 그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자, 임지훈은 의아해했다.“왜 그래요?”“내가 뭐요?”방유정은 짜증을 냈다.“유정 씨는 정말 변덕이 많네요. 그걸 고쳐요. 남자들은 변덕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방유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집안으로 걸어들어갔다.임지훈은 고개를 돌려 못에 있는 물고기들을 한 번 더 보고는 뒤따라 들어갔다. 방유정이 집에 들어서자, 그녀의 어머니가 그들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딸만 보였기에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