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리의 얼굴은 동시에 빨갛게 달아올랐다.또 애교 누나한테 이런 짓을 하다가 들켰다는 사실에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어들고 싶었다.이 상황이 너무 난감했다.게다가 이번에는 애교 누나의 집, 그것도 애교 누나의 침대에서 애교 누나가 방금 덮었던 담요까지 덮고 있었으니.애교 누나가 당장 나한테 욕설을 퍼부어도 할 말이 없었다.하지만 이번에 애교 누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길게 이어지는 침묵에 내 마음은 더욱 조마조마했다.심지어 말조차 더듬었다.“애, 애교 누나, 화내지 마세요. 아까 너무 괴로워서... 나 마음대로 욕하고 때려도 되지만 쫓아내지만 말아요. 제발.”나는 당장이라도 애교 누나 앞으로 달려가 사과하고 싶었지만, 아직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탓에 이대로 나가면 엉덩이를 훤히 내놓게 되는데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그러면 애교 누나가 내 뺨을 후려갈길 게 뻔하다.나는 초조하고 난감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하지만 애교 누나는 이번에 나를 욕하기는커녕 얼굴을 붉히며 뒤로 물러나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우선 그만 말하고 정리부터 해요.”“아, 네.”나는 어색함을 무릅쓰고 허둥지둥 정리했지만 속은 여전히 두근거렸다.주요하게는 애교 누나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할 노릇이었다.그 시각, 문밖에 있는 애교의 머릿속은 제 이름을 부르며 그 짓을 하던 수호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 장면을 떠올리니 애교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심지어 왠지 모르게 흥분되고 설렜다.“내가 왜 이러지? 왜 계속 수호 씨가 그런 짓을 하던 장면만 떠오르지? 미친 거 아니야?”“그런데 수호 씨 젊고 힘 있고 튼실한 건 사실이잖아.”애교는 생각하면 할수록 흥분해 숨이 가빠왔다.아까 화장실에서 뜨거운 물이 몸을 스칠 때도 애교는 저도 모르게 수호의 이름을 불렀었다.하지만 이런 느낌에 빠지면 안 된다고 설득하면서 애써 참았다.그렇다고 원하지 않는 건 아니다.그저 이런 욕구는 남편인 왕
애교 누나는 황급히 손을 뺐다.“수호 씨, 뭐 하는 거예요?”“저 때리라고요. 그래야 누나도 화가 풀릴 거잖아요. 저 누나가 화내는 거 싫어요.”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누가 화 났다고 그래요?”그 말에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애교 누나가 그런 일을 겪고도 나한테 화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으니까.나는 흥분한 나머지 애교 누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애교 누나, 정말 화 안 났어요? 다행이다.”본인의 손을 꽉 잡은 수호의 힘 있는 손을 보자 애교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안 그래도 잔뜩 흥분했는데, 손에서 느껴지는 남자의 힘과 내면의 욕망이 한데 부딪히며 욕구가 다시 끓어올랐다.특히 티셔츠를 뚫고 나올 것 같은 수호의 튼실한 가슴을 보자 그대로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수호 씨...”애교 누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그때까지도 무슨 상황인지 눈치채지 못한 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애교 누나, 왜 그래요?”“아, 아무것도 아니에요.”애교는 그렇게 말했지만 손을 뒤로 빼지는 않았다.사실 애교는 이런 느낌이 너무 좋았다.하지만 본인이 유부녀이기에 수호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그저 체온만 느꼈다.“혹, 혹시 아래 불편해요? 그러니까 바지에 그렇게까지 했는데 불편하지 않아요?”애교 누나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기에 내가 지금 얼마나 괴로울지 알고 있었다.나는 웃으며 대답했다.“괜찮아요. 누나가 저한테 화내지만 않는다면 저는 뭐든 괜찮아요.”“수호 씨도 참 바보예요? 본인이 불편하면 불편한 거지, 그게 내가 화내는 거랑 무슨 상관있어요? 얼른 가서 샤워해요. 갈아입을 옷 챙겨 줄게요.”애교 누나가 나를 바보라고 하는 말에 내 마음은 꿀을 삼킨 듯 달콤했다.그 호칭은 나에게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다.내가 애교 누나의 침대에서 그런 짓을 했는데 나를 미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다정한 호칭으로 부르다니, 애교 누나가 나한테 점점 잘해주는 것만 같았다.때
“애교 누나, 제 몸매 어때요?”나는 과감하게 애교 누나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그랬더니 애교 누나가 나를 흘긋 보더니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얼굴을 붉혔다.“수호 씨 점점 간이 커지네요. 이제는 나도 다 놀리고. 계속 그러면 쫓아낼 거예요?”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안 그럴 거잖아요. 내가 가는 게 서운하잖아요.”“누가 서운하다고 그래요? 계속 그러면 망신당하게 벌거벗은 채로 쫓아내요?”애교 누나는 말하면서 내 팔을 잡아당겼다.하지만 애교 누나의 가는 팔다리로 나를 이길 리가 없었다.나는 오히려 애교 누나를 놀리려고 팔을 살짝 당겼다. 하지만 힘을 별로 쓰지 않았는데,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화장실 문이 활짝 열리며 애교 누나가 그대로 화장실 안에 딸려 들어왔다심지어 내 품에 그대로 폭 안기고 말았다.애교 누나의 나른한 몸이 느껴지자 나는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그에 반해 애교 누나는 내 튼튼한 품 안에서 얼굴을 붉혔다.샤워하느라 켜두었던 샤워 부스에서 물이 떨어지면서, 나와 애교 누나는 동시에 젖고 말았다.실크 잠옷을 입고 있던 애교 누나는 물에 젖자 몸매가 훤히 드러났다.그것보다 나를 더 미치게 만든 건, 애교 누나가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거였다.그 덕에 숨김없이 드러난 몸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그와 동시에 나는 피가 한곳으로 쏠렸다.“애교 누나, 왜 속옷을 안 입고 있어요? 설마 일부러 저 유혹하려고 한 거예요?”나는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아랫배가 저릿했다.애교 누나는 온몸이 축축하게 젖고, 머리까지 젖어 얼굴에 들어 붙었지만 오히려 야릇한 분위기를 더해주었다.이건 유혹이 틀림없었다.애교 누나는 내 말에 얼굴을 붉히며 버둥댔다.“누, 누가 유혹했다고 그래요? 내 집에서 속옷 안 입는 것도 수호 씨 동의를 거쳐야 해요?”“아무리 그래도 이 집에 지금 우리 둘뿐인데, 이렇게 입는 게 유혹이 아니면 뭐예요?”“아니거든요. 얼른 이거 놔요.”애교 누나는 버둥거리며 내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내가 본인의 어
내 두 손은 더 과감하게 움직였고, 애교 누나도 더 이상 반항하는 걸 포기하고 즐기기 시작했다.나는 애교 누나의 팔이 스르르 내 허리를 감은 걸 느낄 수 있었다.애교 누나도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그걸 인지한 순간 나는 더 대담하게 애교 누나의 옷을 아예 찢어버렸다.그 순간, 옷 아래에 가려져 있던 새하얀 살결이 내 눈앞에 드러났다.아무것도 가려지지 않은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자 나는 순간 흥분에 몸이 떨려 애교 누나를 벽에 밀쳤다.하지만 내가 다음 동작을 이어 나가려고 할 때, 애교 누나가 힘껏 버둥대면서 나를 밀어냈다.“수호 씨, 안 돼요. 그곳은 안 돼요.”“왜요?”“이유 없어요. 아무튼 그곳은 만지지 마요.”“그런데 우리 벌써 이렇게 됐는데 만지든 만지지 않든 그게 뭔 상관인데요?”“당연히 상관있죠. 수호 씨가 그곳 안 만지면 난 아직 바람피우지 않은 건데, 만지는 순간 난 정말 바람피운 게 되잖아요. 우리 이러는 것만 해도 나 충분히 죄책감 들어요. 더는 하고 싶지 않아요.”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미 이렇게 벗은 채로 마주하고 있고, 또 마지막 단계까지 가지 않은 것 빼고 할 것 못할 것 다 한 사이인데, 그게 바람피우는 기준과 뭔 상관이 있다는 건지.하지만 애교 누나가 괴로워하자 나는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나는 애교 누나의 몸만 탐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사랑하는 거니까, 결국 애교 누나의 뜻을 존중해주기로 했다.하지만 고개를 숙여 나를 보자 너무 괴로워 났다.“그럼 저는 어떡해요? 이거 봐요. 만약 해결하지 못하면 저 오늘 잠 못 자요.”애교 누나는 고개를 숙여 내 그곳을 바라보더니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애교 누나가 처음으로 내 그곳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얼굴을 붉혔다.“이 정도일 줄이야. 어쩐지 아까 바지가 그렇게 됐다 했네.”“애교 누나, 나 도와주는 게 어때요?”내가 용기 내어 말하자 애교 누나가 의아한 듯 물었다.“어떻게 도와줄까요?”“여기로.”나는 손가락으로 애교 누나의 빨간 입술을
“됐어요, 수호 씨. 그만 장난치고 얼른 옷 입어요.”애교 누나는 나를 막으려 했지만 나는 누나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싫어요. 옷 안 입을래요. 이렇게 누나 안고 싶어요. 누나, 저 오늘 누나랑 같이 잘 수 있어요?”내가 점점 더 심한 걸 요구하자 애교 누나는 다급히 거절했다.“당연히 안 되죠. 나랑 잤다가 수호 씨 형수가 물어보면 어쩌려고요?”“친구 만나러 갔다고 하면 형수도 모를 거예요.”“그래도 안 돼요. 그러다가 저녁에 갑자기 들이닥치면 어떡하려고요?”“그럴 리 없어요. 형수한테 그럴 여유 없어요. 애교 누나, 오늘 밤 저랑 같이 자요. 저 이렇게 누나 안고 자고 싶어요.”내가 애교 누나를 안은 채 애교 부리자 누나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다.“안 돼요. 이거 놔요. 나갈래요.”그러다 내가 갑자기 번쩍 들어 안 자 애교 누나는 너무 놀라 다급히 소리쳤다.“수호 씨, 뭐 하는 거예요? 당장 내려줘요.”“누나, 그만 소리쳐요. 누나가 소리 낼수록 제가 더 괴로워요. 누나가 지금 모습으로 그런 소리를 내면 얼마나 사람 자극하는지 알아요?”애교 누나는 내 말에 너무 놀라 버둥대던 것도 멈췄다.이윽고 얼굴을 붉힌 채 본인의 가슴을 가렸다.“누, 누군 뭐 이러고 싶어 이래요? 그러게 누가 버릇없이 굴래요? 당장 내려줘요. 나갈래요.”나는 눈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누나, 이제 와서 뭘 또 가려요? 이미 다 봤는데.”“계속 말할 거예요? 그만 말해요!”애교 누나의 얼굴은 점점 더 붉어졌다. 하지만 화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분명 나를 훈계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투정 부리는 것 같았다.“됐어요. 걱정하지 마요. 아무 짓도 안 할 테니까. 그냥 안고 나갈게요. 됐죠?”내가 이렇게 말하자 애교 누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잠깐만요. 그냥 이렇게 나간다고요?”우리는 모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집에 다른 사람도 없는데 뭐 어때요?”“그래도, 수호 씨는 내 남편도 아니잖아요. 이
나는 계속 애교 부렸다.“그냥 조금만 안고 자게 해줘요. 제가 뭘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그래도 안 돼요. 얼른 가서 옷 입어요. 안 그러면 정말 화낼 거예요.”애교 누나가 정말로 화내려고 하자 나는 더 이상 함부로 할 수 없어 누나가 방심한 틈에 얼굴에 입을 맞추고는 도망치듯 화장실로 달려갔다.애교 누나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화를 내려고 째려보다가 결국에는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나는 화장실에 들어와 티셔츠와 애교 누나가 가져다준 새 팬티로 갈아입었다.하지만 왕정민의 바지를 보니 입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다.왕정민이라는 사람 자체를 싫어하니 왕정민의 물건조차 싫어졌다.결국 나는 다시 침실에 들어가 애교 누나에게 말했다.“누나, 내 반바지 좀 빨아줘요.”이미 잠옷으로 갈아입은 애교 누나는 내가 또 귀찮게 하자 나를 째려봤다.“혼자서도 씻을 수 있잖아요.”“그래도, 누나가 씻어줬으면 좋겠어요. 누나가 씻어준 걸 입으면 느낌도 다를 것 같아서요.”애교 누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얼굴을 붉히며 화장실로 향했다.“어? 그런데 팬티는 없어요?”“네.”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여기 올 때 형수가 기어코 팬티는 입지 말라고 했으니까 없는 게 당연했다.그 말에 애교 누나는 피식 웃었다.“속옷 입기 싫어하는 여자는 봤어도 팬티 입기 싫어하는 남자는 처음 보네요. 그런데 남자들은 팬티 안 입으면 불편하지 않아요? 그곳 쓸리거나 걸을 때 불편하지 않아요?”애교 누나도 말문이 한번 트이니 말이 은근히 많은 것 같았다.예전에는 무슨 말만 하면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는데 말이다.나는 화장실 문틀에 기대 웃는 얼굴로 내 팬티를 빨아주는 애교 누나를 바라봤다.“애교 누나가 보고 싶다면 보여드릴 수 있는데.”“누가 보고 싶댔어요? 보기 싫거든요. 그게 뭐 볼 게 있다고.”애교 누나의 얼굴은 또 붉어졌다.나는 애교 누나의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누나는 정말 누구의 아내가 엄청 어울리는 것 같아요. 우리 이러고 있는 거
“누나, 저 올해 고작 23이에요. 마침 혈기 왕성할 때라고요.”나는 웃으며 애교 누나에게 귀띔했다.“그래도 그렇지. 우리 남편이 수호 씨만 할 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애교 누나가 왕정민 얘기를 하자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그런데 애교 누나는 남편이랑 어떻게 만난 거예요?”“우리 대학 동기예요. 그것도 같은 반.”“누나가 이렇게 예쁜데, 그때 남편이 누나 쫓아다닌 거죠?”애교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처음에 나도 정민 씨한테 아무 느낌 없었는데, 정민 씨가 나 2년 동안 꼬박 쫓아다녔거든요. 결국 그 정성에 감동해서 사귀게 되었죠.”역시나 내가 생각한 대로다.왕정민은 생긴 게 평범해 수트 차림이 아니라면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도 않는 유형이다.하지만 애교 누나는 서른이 넘는 나이인데도 여전히 이렇게 예쁘니 젊었을 때는 적어도 여신급은 되었을 거다.그러니 왕정민은 애교 누나한테 한참 못 미친다.보통 그런 남자가 여자를 성공적으로 사귀는 방법은 바로 끈질기게 밀어붙여 상대를 감동시키는 거다.애교 누나는 워낙 단순한 성격이니 왕정민이 2년 동안 끈질기게 쫓아다니니 결국 감동했을 거고.나는 생각을 멈추고 또 물었다.“그럼 결혼한 지는 몇 년 돼요?”애교 누나는 내 옷을 씻으며 말했다.“대학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했으니 올해로 7년 됐어요.”“형수 말로는 두 사람 결혼할 때 별로 안 좋았다면서요. 무슨 일 있었어요?”“그때 우리 집에서 반대가 심했거든요. 내 남편이 갓 졸업하고 일자리도 못 구해서. 아빠는 정민 씨가 본인 먹여 살리기도 바쁜데 나는 절대 먹여 살리지 못할 거라고 반대했거든요.”“그런데 나는 두 사람이 사랑하기만 하면 아무리 곤란이 닥쳐도 꼭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서 가족과 다툼이 있었어요. 내 고집 때문에 아빠가 화병 나기까지 했고.”이건 너무 의외였다.“애교 누나처럼 얌전한 사람이 그런 짓도 했다니 놀랍네요.”“나도 생긴 건 얌전해도 사실 고집 엄청 세요. 한번 결정한 일은 소 열 마리가 와
“수호 씨, 왜 또 이래요?”내 말에 애교 누나의 표정이 확 굳었다.“왜 자꾸 내 앞에서 내 남편 헐뜯으려고 해요? 대체 의도가 뭐예요? 우리 둘이 이혼하면 기회를 엿보려고 그래요?”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애교 누나, 저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됐어요,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서 이런 말 하지 마요.”애교 누나는 내 말을 잘랐지만 꾸짖는 대신 인내심 있게 타일렀다.물론 내가 원하는 목적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애교 누나가 나를 신경 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잘 기억하고 다음부터 다시는 이런 말 안 할게요.”애교 누나는 나를 도와 반바지를 빨아 베란다에 널어 주었다.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나도 수호 씨 반바지 빨아줬는데, 수호 씨도 내 팬티 빨아야 하지 않아요?”“얼마든지요.”나는 당연히 애교 누나가 방금 더럽힌 팬티를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방금 더럽혀 놓은 그 팬티를 말하는 거였다.그 팬티는 내가 혼자 해결할 때 사용한 거라 섬유 유연제 냄새만 날 뿐 애교 누나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왠지 조금 실망스러웠다.하지만 그런 실망은 지금의 좋은 기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애교 누나가 나더러 자기 팬티를 씻으라고 한 건 장족의 발전이니까.‘오늘은 팬티를 씻었으니 내일은 같이 샤워할 수 있지 않을까?’이럴 가능성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렜다.나는 이내 애교 누나의 팬티를 씻고 누나의 방으로 들어갔다.“애교 누나, 또 마사지 필요해요?”“필요 없어요. 이제 허리도 안 아파요. 수호 씨도 온 지 한참 지났는데 이제 돌아가요.”“아직 반바지도 채 안 말랐는데 어떻게 돌아가요?”“아까 우리 남편 바지 줬잖아요.”“싫어요. 저는 제 거 입을래요.”“뭐예요? 또 애처럼 떼쓰는 거예요?”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애교 누나가 주동적으로 담요를 들어 올렸다.“그럼 우선 잠깐 올라와서 몸 좀 녹여요. 이
현성과 민우는 내가 혼자인 게 시름이 놓이지 않고 걱정되어 돌아온 거엿다.무엇보다 내가 이번에 건드린 사람은 임천호다. 바로 그 S시 전체를 주름잡고 수많은 용병을 거느리고 있는 효웅이라 불리는 남자 말이다.우리는 그런 사람을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봤지 현실에서 만난 적이 없다.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우리 같은 새내기한테 그런 사람은 닿을 수도 없고 두려운 존재다.하지만 현성과 민우는 두려워하지 않고 내 곁에 있기로 했다.이건 단지 감동이라는 단어로 형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건 목숨을 나눈 우정과도 같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천수백 마디로도 우리의 우정을 표현할 수 없었으니까.나는 방 두 개를 현성과 민우에게 내어주고 혼자 거실에 누워 속으로 감탄했다.이 순간 흥분과 감동, 두려움과 무서움이 한데 섞여 내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하지만 이렇듯 신맛이 났다 단맛이 났다 쓴맛이 났다 매운맛이 나는 이런 과정이 바로 성장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잠들어 버렸다.다음 날, 우리 셋은 함께 천수당에 출근했다.나는 되도록 얼굴을 비추지 않으려고 내실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러다가 10시가 넘었을 때쯤 윤미화가 서윤기의 행방을 찾았다며 전화해 왔다.“어디 있는데요?”[샹젤리호텔. 내가 지금 마침 그곳에 가봐야 하니까 먼저 가서 확인해 볼게.]그 말을 들으니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뭐 하러 가는데요?”[고객이 거기서 기다려. 설마 내가 수호 씨랑 같이 가고 싶어서 일부러 이런다고 생각했어?]나는 순간 머쓱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그래요. 그럼 부탁할게요. 오해한 건 미안해요.”나는 윤미화를 단단히 오해했다는 걸 자각하고 다급히 사과했다.그러자 윤미화가 웃으며 말했다.[말만으로 미안하다면 다야? 실제 행동을 보여줘야지.]“사장님, 우리 한 식구 아니었어요? 뭐 하러 조목조목 다 따져요? 거리감 들게.”[누가 한 식구라는 거야?]“아니에요? 우리 탐정 사무소는 한 가족 아
“하지만 우리 언니 병 반드시 고쳐야 해.”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뒤돌아섰다.그러자 서지예는 다급히 나를 막아섰다.“뭐 하자는 거지?”“지예 씨 언니는 마음에 병이 있어요. 제가 심리 의사도 아니고 어떻게 무조건 낫게 한다고 장담하겠어요?”이건 너무 무리한 요구다.서지예도 자신의 요구가 좀 지나치다는 걸 알았는지 한발 물러섰다.“그럼 우리 언니랑 대화 많이 하면서 설득해 봐. 더 이상 죽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이제야 말이 되네요.”하지만 이것도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나는 한의학을 전공했지 심리학을 전공한 게 아니다. 더욱이 심리학 의사도 아니라 어떻게 서나연을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서지예는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떠나기 전에 특별히 몸에 좋은 약재를 몇 가지 사갔다.그렇게 하루를 바삐 보내다 보니 어느덧 저녁 7시가 넘었다.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는 온종일 의미 없는 일만 한 것 같다. 다행히 민우와 현성은 뭐라 하지 않았지만.그날 저녁, 우리 셋은 함께 식사하며 S시에 다녀온 일을 얘기했다.그때를 떠올리니 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임천호 때문에 몇천만 원 손해 본 것도 모자라 앞으로 다른 사람한테까지 영향이 미칠지 모르겠어.”그 말에 현성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무서울 게 뭐 있어? 분명 해결 방법이 있을 거야. 무슨 일 있으면 우리랑 같이 이겨내면 되지.”민우도 내 어깨를 두드렸다.“걱정하지 마. 우리는 너랑 같이 일하기로 했으니 절대 널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두 사람의 감동적인 말에 나는 갑자기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하지만 민우와 현성이 옆에 있으니 확실히 마음이 편해졌다.“너희밖에 없다. 자, 짠하자.”우리 셋은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그러던 그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내가 가게에 있으면 임천호는 절대 우리 가게를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앞으로 난 가게 나가는 횟수를 줄일 테니까
“마음 가는 대로 얘기해도 내용이 있을 거 아니야. 어떤 내용으로 대화했는데?”서지예는 끈질기게 추궁했다.하지만 한참을 생각해도 나는 그날 대화 내용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별것도 아닌 얘기를 내가 어떻게 기억해요?”결국 마음이 조급해진 서지예는 무의식적으로 내 팔을 잡아당겼다.“잘 좀 생각해 봐. 나한테는 중요한 거란 말이야. 우리 언니 평소 남들과 얘기 안 해. 내가 뭘 물어보면 대답도 안 한다고.”“그런데 길게 대화했다는 건 진짜 놀라운 일이야. 정수호, 아니면 네가 우리 언니 좀 봐줄래?”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됐어요. 서씨 가문이 S시에서 어떤 가문인데요. 돈 있고 권력 있는 집안에서 설마 의사 하나 찾지 못하겠어요? 날 함정에 빠뜨릴 생각이라면 포기해요.”나는 흙탕물 싸움에 끼어들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게다가 임천호가 만약 그 일을 알게 되면 더 골치 아파질 거다.그때 서지예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우리 언니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두고 볼 거야? 의사라며? 사람 살리는 게 의사의 본분 아니야?”“전 의사지 성인군자가 아니에요. 이 세상에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모두 구해줄 수는 없잖아요.”나는 이내 반박했다.그러자 서지예가 나를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봤다.“그런데 이미 알면서 구하지 않으면 의사 자격 없는 거지.”“지예 씨도 의사면서 왜 본인이 구하지 않아요?”‘그리고 말은 왜 또 이렇게 듣기 거북하게 한담?’서지예는 초조해서 미칠 지경이었다.“내가 할 수 있으면 이렇게 널 찾아와서 입 아프게 설득하겠어?”내가 꿈쩍도 하지 않자 서지예는 이내 말을 이었다.“우리 언니를 치료해주면 내가 큰 고객 많이 소개해 줄게.”만약 서지예가 돈을 준다고 했으면 난 마음이 동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큰 고객을 소개해 준다고 하니 내 마음은 결국 흔들리고 말았다.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고, 내가 필요한 건 인맥이지 눈앞에 보이는 돈이 아니었다.서지예는 서씨 가문 둘째 딸이고
나는 속으로 오늘 왜 이토록 재수 없는지 한탄했지만 결국 서지예를 따라나섰다.밖에 나오자마자 서지예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봤다.“너 S시에 다녀왔어?”“네.”“뭐 하러 갔는데?”“돈 받으러 갔어요.”“거짓말. S시에서 우리 언니 만났잖아.”“지예 씨 언니를 만난 거랑 돈 받으러 간 거랑 모순되지 않잖아요.”나는 사실을 말했지만 서지예는 나를 믿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를 뚫어버릴 것 같은 눈빛으로 노려봤다.“흥. 누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우리 언니에 대해 조사하러 갔겠지.”나는 너무 억울해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제가 왜 지예 씨 언니를 조사해요? 저랑 무슨 상관이라고요.”“너랑은 상관없지만 소여정과 상관있잖아. 솔직히 말해, 소여정이 우리 언니를 조사하라고 했지?”서지예의 엉뚱한 생각에 나는 화가 나 헛웃음이 나왔다.“증거 있어요? 소여정 씨가 저더러 지예 씨 언니 조사하라고 한 증거 있냐고요? 있으면 꺼내고 없으면 좀 가요.”나는 상대 체면도 고려하지 않고 축객령을 내렸다.그러자 서지예는 이를 갈며 나를 노려봤다.“나도 증거가 없으니까 따지러 왔잖아. 하지만 증거를 찾으면 그땐 죽을 줄 알아.”“우리 언니가 임천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나 해? 소여정이 자기를 조사하라고 했다는 걸 언니가 알면 죽으려고 할 거야.”서예지는 어찌나 걱정됐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서예지가 언니의 안위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서나연의 상태를 떠올리니 확실히 안타까웠다. 귀하게 자랐을 부잣집 아가씨가 남자 하나 때문에 죽으려고 하다니.그때를 떠올리니 내 태도도 서서히 누그러졌다.“임천호는 지예 씨 언니를 사랑하지 않아요. 동생이면 언니가 그런 남자 때문에 죽으려고 하는 걸 내버려두지 말고 포기하게 설득해야죠.”“말이 쉽지. 너 같은 사람은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 없지? 너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봐, 놓겠다고 쉽게 놓아지나.”서예지는 여전히 언니 편을 들었다.역시나 친자매 아니랄까
서윤기의 행방을 찾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걸 인지한 나는 윤미화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탐정 사무소로 향했다.윤미화는 강북에 돌아온 뒤로 계속 잠을 보충하다가 내가 찾아오니 그제야 나른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심지어 옷도 갈아입지 않고 얇은 잠옷 바람에 나를 맞이하는 윤미화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윤 사장님, 이미지 좀 생각하면 안 돼요?”윤미화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다른 애들 다 일하러 나갔어. 여기 수호 씨뿐이야. 전에 못 봤던 것도 아닌데, 조심할 게 뭐 있어?”“그래도 조심해야죠. 사장님이잖아요.”나는 여전히 귀띔했다.그제야 윤미화는 대충 외투를 몸에 걸쳤다.“그래. 알았어.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야?”“저 대신 사람 좀 조사해 줘요.”나는 곧바로 이곳에 온 목적을 말했다.그 말에 윤미화는 눈이 커다래졌다.“뭐야? 나 사장이야. 직원이 사장한테 일 시킨다고?”“돈 낼게요.”“누가 돈 달래? 안 해. 얼른 나가.”윤미화는 손을 휘휘 저었다.이에 나는 싱긋 웃으며 윤미화 곁에 앉았다.“윤 사장님 이렇게 인정머리 없는 분 아니잖아요. 항상 말만 독하게 하지 마음은 누구보다 여린 거 알아요. 제발 도와줘요. 이 사람 저한테 정말 중요해요.”“흥. 난 돈에 매수당할 사람 아니야. 돈으로 날 매수하려 했다면 날 정말 얕잡아봤어.”나는 다급히 물었다.“그럼 뭘 원하는데요? 뭐든 말해요. 할 수 있는 거면 무조건 할게요.”“다리 좀 두드려 봐. 다리 아파.”“네.”나는 얼른 윤미화의 다리를 두드렸다.“이 정도 강도면 괜찮아요?”윤미화는 눈을 감고 빙그레 웃으며 마사지를 즐겼다.“좋네. 딱 좋아. 역시 한의학을 전공한 사람이라 다르네.”“그럼 아까 일은...”“아, 다리가 또 아프네.”나는 윤미화가 일부러 이런다는 걸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리를 두드렸다.그러자 윤미화는 아예 나를 시종 취급하면서 차를 따르게 했다가 음식을 사 오게 했다가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시켰다.그렇게 약 2시간
하지만 난 윤지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윤지은의 집에서 나온 뒤, 나는 곧장 천수당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가는 도중 익숙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서윤기였다.서윤기가 강북에 돌아왔다.전에 경진당 사장 조천석은 진동성한테서 산 의서를 다시 서윤기한테 팔았다고 했던 적이 있다.그 뒤로 나는 서윤기한테 연락해 만나자고 했지만 서윤기는 일이 있다며 나중에 강북에 돌아오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그리고 오늘 서윤기를 바로 만난 거다.나는 서윤기를 나쁜 쪽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정말 요즘 너무 바빠 나한테 연락할 시간이 없었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먼저 전화를 걸었다.서윤기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나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서 사장님, 요즘 뭐 하세요?”[뭘 하긴요. 약재상이니 당연히 약재 사업하느라 바쁘죠.]“그러면 어디 계세요? 강북에 돌아왔나요?”[아니요. 아직 Y시에 있어요.]서윤기의 말을 들은 순간 내 마음은 나락으로 떨어졌다.분명 강북에 돌아왔으면서 나한테는 아직 Y시에 있다고 거짓말이라니.만약 서윤기가 강북에 돌아왔는데 요즘 바쁘다고 하면 나는 별생각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런 거짓말을 하니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바로 서윤기가 나를 속이고 있다고.‘하지만 왜 나를 속이지?’‘설마 의서를 나한테 팔지 않으려고?’그건 아마 아닐 거다. 내가 전화에서 의서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으니까.그렇다는 건 분명 다른 일이 있다는 거다.전에 서윤기가 나를 찾아와 같이 손잡자고 제안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그러니 서윤기가 지금 나한테 보이는 살가운 태도는 사실 모두 가식이다.사람은 역시나 겉만 봐서는 안 된다.그래도 서윤기가 착하고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모두 내 바람이었다.나는 속으로 냉소를 삼키며 서윤기의 거짓말을 까발렸다.“그래요? 그런데 방금 북원로에서 사장님을 봤는데요.”“하하. 그래요? 잘못 본 건 아니고요?”서윤기는 여전히
냄새를 조금 맡아보던 윤지은은 여전히 싫어하는 표정을 지었다.“안돼. 이거 냄새 너무 심해서 못 참겠어.”“그러면 코 막고 눈 감고 한꺼번에 마셔요.”나는 어린아이 달래듯 윤지은을 어르고 달랬지만 윤지은은 끝까지 한약을 거부했다.결국 나는 의자를 꺼내 위에 앉으며 최후의 수단을 썼다.“지은 씨가 안 마시면 저 안 가요. 누가 이기나 해 봐요.”“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나 환자야. 의사가 환자를 그렇게 대하면 어떡해?”“환자가 말도 안 듣고 협조도 안 해주는데 어떡해요? 지은 씨 같은 환자가 있으면 난 바로 치료 방법 바꿔요.”한의학적 치료 방법은 고작해야 한약과 침술 그리고 마사지다.때문에 윤지은이 계속 한약을 거부하면 나는 침을 놓을 수밖에 없다.침을 맞는다는 생각에 윤지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다만 대체 무슨 상상을 했기에 이토록 부끄러워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윤지은은 갑자기 그릇을 빼앗아 가더니 코를 막고 한약을 깨끗이 비웠다.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싫다고 생떼를 부렸는데 왜 갑자기 순순히 먹는 거지?’하지만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약을 먹었으면 된 거니까.“됐어요. 얼른 휴식해요.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나는 그릇과 수저를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그때 윤지은도 따라 일어나며 몸을 비틀거렸다. 워낙 감기 기운이 심한 탓에 윤지은은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나는 얼른 수저를 내려놓고 윤지은을 부축했다.“방까지 부축해 줄까요?”“부축 안 해줄 생각이었어? 나 혼자 방에 들여보낼 생각이었나 봐? 내 상태를 봐. 이 상태로 나 혼자 방까지 갈 수나 있을까?”역시 윤지은의 입은 독사보다 더 독했다.나는 윤지은의 팔을 덥석 잡았다.“알았어요. 지은 씨는 부잣집 아가씨니까, 지은 씨 말이 다 맞아요. 자, 들어가요.”나는 윤지은을 방까지 부축했다.하지만 오랜만에 와 보는 윤지은의 방에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때문에 나는 윤지
나는 뻔뻔하게 웃으며 말했다.“별 수 있어요? 제가 워낙 오지랖이 넓거든요. 지은 씨가 아픈 걸 아는데 내버려두는 건 의사로서 도리가 아니잖아요.”“그래서, 지금 그것 때문에 온 거야?”내 말에 윤지은은 살짝 실망했다.그런 윤지은의 마음을 내가 알 리는 없었다. 하지만 난 여자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우리 그래도 친구 정도는 되잖아요. 친구 사이에 걱정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윤지은의 눈빛이 서늘해졌다.그때 나는 여전히 뻔뻔하게 말했다.“직접 할래요? 아니면 내가 해줄까요?”윤지은은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내 상태를 봐. 이런데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그럼 조금 비켜줄래요. 들어갈게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몸을 틀어 자리를 내주었다.식재료를 들고 주방으로 향하는 나를 본 윤지은은 그제야 입꼬리를 예쁘게 말아 올렸다.보살핌을 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다.아무리 윤지은처럼 강한 사람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나는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며 물었다.“지은 씨는 지금 위장이 약할 테니 따뜻한 죽과 야채 샐러드 만들어 줄게요. 괜찮죠?”윤지은은 상관없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했다.“마음대로 해. 어차피 입맛 없어.”“입맛 없으니까 더 먹어야 하는 거예요. 안 먹으면 어떻게 나아요?”한결 부드러워진 윤지은의 말투에 내 마음도 따라서 편해졌다.나는 얼른 윤지은을 위해 따뜻한 죽과 야채 샐러드를 만들고 한약을 끓이기 시작했다.식사 준비를 마친 나는 모든 음식을 식탁 위에 세팅한 뒤 윤지은을 불렀다.“윤지은 아가씨, 다이닝룸으로 자리 옮기실게요.”윤지은은 나를 매섭게 째려봤다.“제대로 말해!”“지은 씨가 화낼까 봐 이러는 거잖아요. 화 다 풀렸으면 얼른 가서 식사해요.”윤지은은 다이닝룸으로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사실 윤지은은 입맛이 없었지만 내가 바삐 돌아다니며 준비한 걸 봐서 결국 숟가락을 들었다.“오후에 가게 나가?
[응.]윤지은은 차갑게 대답했다.나는 한 편으로 화도 나면서 또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갑자기 왜 카톡을 삭제해요?”[삭제하든 말든 내 마음이지. 그것도 네 동의를 받아야 해?]윤지은은 차갑게 되물었다.그 말에 나는 더 어리둥절했다.“적어도 이유란 게 있어야 하잖아요. 이유가 뭔데요? 나한테 사형 선고를 내릴 거면 이유라도 알고 죽게 해줘요.”나는 뭐가 됐든 이유를 꼭 알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찝찝해서 견딜 수 없으니까.하지만 윤지은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이유는 없어. 이제 할 말없지? 끊을게.]윤지은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곧바로 전화를 끊지 않았다. 윤지은 성격에 정말 기분이 안 좋았다면 아무 말없이 바로 전화를 끊었을 텐데, 이렇게 기다린다는 건 나한테 기회를 준다는 뜻이었다.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윤지은이 내 카톡을 삭제했다는 일만 가득해 이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너무 막무가내로 구는 윤지은에게 화도 났다.“사람 참 뜬금없네요. 선물을 줬는데 싫다고 한 건 본인이면서 갑자기 연락처는 왜 삭제해요? 제가 그렇게 싫으면 아예 차단해요.”[너...]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말로 내 연락처를 차단했다.나는 윤지은의 속내를 도무지 읽을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심지어 음식을 해주려던 기분마저 사라져 버렸다.한편. 윤지은은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자마자 내 연락처를 차단해 버렸다.이번에 윤지은은 화난 게 아니라 실망하고 속상했다.윤지은은 아픈 사람을 상대로 그런 말까지 하는 내가 너무 양심 없다고 생각했다.사람은 아플 때 취약해진다고, 지금의 윤지은도 극도로 취약하고 예민했다. 심지어 너무 서러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눈시울을 적셨다.윤지은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얼굴도 예뻤으며 때 묻지 않고 자기애가 강했다. 하지만 처음 만난 남자 여준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윤지은이 온 마음을 다 바쳐 희생했는데도 여준휘는 항상 윤지은에게 더 뜯어낼 게 없나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빴다.이에 워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