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교 누나 옷 사이 두고 보면 혈 자리가 안 보이는데 옷 좀 벗을 수 없어요?”왠지 애교 누나의 몸을 본 뒤로 이렇게 옷을 사이 두고 만지니 자꾸만 뭔가 모자란 기분이 들었다.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애교 누나를 속였다.그제야 애교 누나는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투덜댔다.“뭐예요? 내가 그렇게 믿었는데, 지금 나를 속였어요?”나는 하하 웃으며 애교 누나의 품에 파고들었다.애교 누나도 그런 내 모습이 재밌었는지 한참 동안 소리 내어 웃었다.하지만 우리가 한참 시시덕거릴 때, 애교 누나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고, 애교 누나는 얼른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쉿, 목소리 낮춰요. 우리 남편이에요.”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기분이 언짢았다.심지어 이 순간 왕정민이 우리의 관계를 방해한 제삼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마음 같아서는 왕정민이 영원히 애교 누나의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하지만 애교 누나는 왕정민의 전화에 무척 기뻐했다.“여보, 투자자 쪽은 어때? 화내지 않으셨어?”애교 누나는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그런 애교 누나를 보니 내 마음은 더 불편해져 곧바로 침대에서 내려 베란다에서 내 반바지를 챙겨 입었다.애교 누나는 그런 나를 보자 손가락으로 옷도 안 말랐는데 어디 가냐고 물었다.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바지를 입었다.그러자 애교 누나도 더 이상 마를 관계하지 않았다.그도 그럴 게, 왕정민이 전화에서 오늘 밤 돌아온다고 했으니까.사실 애교는 이 말에 기뻐해야 하지만 왠지 모르게 왕정민이 돌아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여보, 왜 그래? 지금 내 말 듣고 있어?”“아, 듣고 있어. 나 지금 빨래 널고 있느라 핸즈프리 모두로 하고 있거든. 방금 뭐라고 했어? 오늘 저녁 돌아온다고? 진짜야?”왕정민은 헤실 웃었다.“당연히 진짜지. 낮에 원래 자기랑 호텔에서 진하게 한판 하려고 했는데 공급업체 전화 때문에 방해받는 바람에 못 했잖아. 오늘 저녁 돌아가서 내가 보상해 줄게.”왕
게다가 형수는 나한테 입에 담지 못할 부끄러운 짓까지 가르쳐 주었다.때문에 나한테는 선생님 같은 존재다.그런데 지금 그런 형수한테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형수가 나를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하자 나는 물건을 내려놓고 형수 앞에 앉았다.그러자 형수가 물었다.“그럼 왜 이렇게 오래 갔어요? 혹시 애교가 난처하게 해요?”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러자 형수가 답답한 듯 또 물었다.“그러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형수, 그만 물어요.”나는 더 이상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대충 얼버무렸다.하지만 형수는 끈질기게 물었다.“그건 안 되죠. 수호 씨가 말하기 싫다면 내가 직접 애교한테 물어볼게요.”나는 다급히 형수의 팔을 잡았다.“가, 가지 마요.”형수는 내 팔을 잡으며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수호 씨, 나 수호 씨 형수예요. 나한테 말하지 않으면 누구한테 말하려고요. 우리가 수호 씨 이용하는 건 맞지만, 그래도 수호 씨가 억울한 일 당하는 건 싫어요.”“만약 애교가 수호 씨한테 심한 말, 심한 행동하면 내가 대신 화내줄게요.”형수의 말에 나는 가슴이 찡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러다가 애교 누나랑 사이가 틀어질까 봐 두렵지 않아요?”“두려울 게 뭐 있어요? 틀어지면 틀어졌지.”“그래도, 절친이잖아요. 저 때문에 그럴 가치가 없잖아요.”형수는 그 말에 싱긋 웃었다.“내 절친은 애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 이렇게 가깝게 지내는 건 순전히 애교 남편 때문이에요. 물론 애교와의 감정이 가짜인 건 아니지만 만약 애교가 수호 씨한테 무슨 짓하면 난 당연히 수호 씨 편이에요.”형수의 진지한 표정을 보니 나는 마음이 뭉클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했다.뭉클한 건 형수가 나한테 너무 잘해줘서고, 미안한 건 내가 방금 형수를 속였다는 것 때문에.내가 형수의 말에 어떻게 답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확인해 보니 애교 누나가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왜요? 화났어요?]내가 형수를 보자 형수는 나더러 얼른 답장하라는 눈
애교 누나는 끝내 답장을 하지 않았다.그러자 형수는 갑자기 애교 누나를 귀찮게 굴기 시작했다.[말해 봐요. 말해 봐요. 말해 봐요...]연속 같은 말만 10번을 보내자 애교 누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답장 하나를 보내왔다.[네.]“네? 네가 무슨 뜻이야? 이애교, 말 한마디 듣기 뭐가 이렇게 어려워?”형수가 옆에서 중얼거리며 다시 답장을 보냈다.[그렇게 짤막한 대답 말고 명확히 대답해 줘요. 나 정말 신경 쓰이는 거 맞아요?]애교 누나가 눈앞에 없지만 지금쯤 부끄러워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그때 애교 누나에게서 답장이 왔다.[맞아요, 나 수호 씨 신경 쓰여요.]형수는 손가락을 튕기며 미소 짓더니 핸드폰을 나에게 넘겨주었다.“애교가 겨우 대답했어요. 이 기회에 계속 유혹해요.”애교 누나의 답장을 보자 나는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조금 전까지 드리웠던 먹구름이 사라진 기분이었다.나는 웃으면서 형수에게 말했다.“형수, 저 이제 방에 돌아갈게요.”“그래요.”나는 다급히 핸드폰을 들고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애교 누나에게 답장을 보냈다.심지어 애교 누나더러 나를 여보라고 부르라고 요구했다.애교 누나도 처음에는 계속 거절하다가 나의 끈질긴 요구에 결국 ‘여보’라는 두 글자를 보내왔다.그러자 나는 더욱 대담해져 애교 누나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내일 누나 집에 가면 내 앞에서 직접 그렇게 불러줘요.]애교 누나는 여전히 부끄러운지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안 돼요. 수호 씨 앞에서는 그렇게 못 불러요.][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여러 번 부르다 보면 습관 될 거예요. 누나랑 남편도 그렇게 지금까지 온 거잖아요.][그게 어떻게 같아요? 우리는 합법적인 부부고, 수호 씨와 나는 바람 파우는 거잖아요.][나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오히려 우리가 진짜 부부라고 생각되지. 여보, 자기야!]그 시각, 옆집.애교는 저를 여보라고 부르는 허스키한 소리에 당장이라도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왕정민은 이미 나이가 들어 목소리마저 늙었는
[여보, 하루에 너무 많이 하면 몸에 해로워요. 절제해요.]나는 그 말을 본 순간 흥분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방금 그 말 음성 메시지로 보내줄 수 있어요? 누나가 나한테 여보라고 하는 거 듣고 싶어요.]애교 누나는 웬일인지 망설이지 않고 방금 한 말을 음성 메시지로 보냈다.애교 누나가 육성으로 여보라고 부르는 걸 듣자 나는 순간 만족감이 들어 누나한테 뽀뽀하는 이모티콘을 연속 보냈다.그렇게 한참 얘기하던 중, 애교 누나가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자 나는 요리를 끝낸 다음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요구했다.물론 먹지는 못해도 즐길 수는 있었으니까.애교 누나와 한참 동안 대화를 하다가 나는 기쁜 얼굴로 침실을 나섰다.형수는 내 표정을 보더니 싱긋 웃으며 물었다.“문제 해결됐어요? 애교가 뭐래요?”“애교 누나가 저한테 여보라고 했어요.”나는 너무 자랑스러워 참지 못하고 형수에게 공유했다.“어머, 그럼 잘된 일이네요. 애교의 입을 여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었을 텐데. 더 분발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교 마음 사로잡을 것 같으니.”형수의 말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말했다.“아직 애교 누나의 마음을 완전히 얻으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하지만 계속 노력할게요.”나는 형수에게 나와 애교 누나의 진짜 관계를 알리고 싶지 않으면서도 의심을 사고 싶지 않아 일부러 이렇게 대답했다.그걸 알 리 없는 형수는 기쁜 듯 말했다.“이따가 소꼬리 곰탕 끓여줄 테니까 먹고 기력 회복해요.”“아, 저는 괜찮아요. 형한테 줘요.”나는 기력이 이렇게 넘쳐나는 데 보충할 필요가 뭐 있다고.오히려 보충해야 할 사람은 형이다. 어젯밤 내 방에까지 숨어든 걸 보면 부담이 엄청날 텐데.하지만 형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수호 씨 형은 소꼬리 곰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병원에 가봐야 해요. 그리고 이건 수호 씨를 위해 끓인 거니 꼭 마셔요.”“알겠어요.”형수의 호의를 나도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결국 동의했다.시간은 일분일초 흘러 이내 저녁
“수호 씨, 형은 언제 돌아온대요?”형수가 그때 갑자기 다가와 물었다.하지만 진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나는 형수가 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형이 이러다니.결국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거짓말을 동조했다.“형이 요즘 바빠서 또 야근해야 한대요. 우리더러 기다리지 말래요.”그 말을 들은 순간 형수의 미소는 이내 사라졌다.“또 그놈의 야근! 매일 개처럼 일만 해대니 기력이 남아돌 리가 없지!”형수는 말하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됐어요. 우리끼리 먹어요.”“제가 도와줄게요.”형수가 지금 기분이 안 좋으니 나는 눈치껏 도와 나섰다. 내가 곁에서 도와주면서 말동무라도 하면 형수도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을 테니까.“그래요, 그럼 마늘 좀 까요.”“네. 마늘은 어디 있어요?”“저 안에요.”주방은 비교적 작아 나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음식하고 있는 형수 뒤로 비집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형수가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바람에 지나가다 보면 부딪히는 걸 피할 수 없었다.“형수.”“왜요?”“저 좀 지나갈게요.”“그냥 지나가요. 나 지금 만두 끓이고 있잖아요.”형수는 대충 대답했다.“네.”형수가 바빠 보이니 나는 할 수 없이 입을 다물고 발꿈치를 든 채로 형수한테 닿지 않으며 지나가려고 애썼다.어찌 됐든 내가 아직도 형수한테 그런 생각을 품고 있으니 터치가 있었다가는 형수가 또 나를 오해할까 봐 걱정됐으니까.하지만 내가 겨우 지나치려고 할 때, 형수가 갑자기 뒤로 움직이는 바람에 커다란 엉덩이가 내 몸에 부딪히고 말았다.“아!”“어머!”나와 형수는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나는 부딪히는 순간 전해져 오는 짜릿한 느낌 때문이었고, 형수는 아마 내가 그곳으로 자기를 찌를 거라고 생각하지 못 해서였을 거다.형수는 내 그곳이 느껴지자 이내 얼굴을 붉혔다.본인 남편은 제대로 힘도 못 쓰는데, 나는 이 정도이니 저도 모르게 흥분되었을 거다.심지어 마음이 동하기도 했을 거고.하지만 형수는 본인의 가정을 무척 잘
‘다 내 탓이야. 형수한테 매번 그런 짓만 해서 형수가 화난 거잖아.’나는 혼자서 묵묵히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했다.하지만 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아무리 뒤척여 봐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그러다 결국 형수가 기분 나빠 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사과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이윽고 나는 용기 내어 형수의 침실 앞에 다가갔다.똑똑똑-내가 문을 두드렸지만 형수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벌써 자나? 그럼 다음에 하지 뭐.’나는 당연히 형수가 잔다고 생각하고 이내 뒤돌아 떠나려 했다. 하지만 그때, 안쪽에서 갑자기 신음소리가 들려왔다.전에 애교 누나도 똑같은 상황이었기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형수가 어디 아프다고 생각하고 다급하게 문을 몸으로 밀쳤다.하지만 문이 처음부터 비스듬히 열려 있는 탓에 나는 관성 때문에 멈춰 서지 못한 채 형수의 침대 위로 돌진해 형수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나와 형수는 동시에 넋을 잃고 말았다.형수는 자고 있던 게 아니라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이마에 작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그 순간 나는 방금 났던 신음 소리가 무엇 때문에 났는지 알아챘다.너무 난감한 상황에 나는 내 뺨을 때리고 싶었다.“형수, 미안해요. 사과하러 왔다가 안에서 신음소리가 들리길래 어디 아픈 줄 알고...”형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왜 사과해요?”“아... 아까 주방에서 실수로 부딪혀서 화났잖아요.”내 말에 형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수호 씨 정말 바보네요. 내가 기분 나빠하는 게 수호 씨랑 무슨 상관있다고.”“네? 아까 계속 꿀꿀해 있길래 저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형수는 손을 뻗어 내 목을 끌어안았다.그 순간 내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그도 그럴 게, 전에 형수는 내 앞에서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그런데 지금은 내가 형수의 위에 엎드려 있는데 형수가 이런 행동을 하니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나는 너무 긴장해 말까지 더듬었다.“형수, 지... 지금...”나는
형수는 내 목을 꼭 끌어안고 나에게 맞춰 주었다.그 때문에 내 마음은 더욱 설렜다.그동안 형수한테 이런저런 생각을 다 해왔는데, 형수는 매번 자기한테 그런 마음 품지 말라고 경고만 했었다.하지만 오늘 저녁에는 먼저 키스를 요구하고 나에게 맞춰주다니.나는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져 오직 눈앞의 여자를 차지해야 한다는 본능만 남았다.그러다 점점 입 맞추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형수도 의외로 거절하지 않았다.그 때문에 나는 더 대담하게 형수의 옷을 그대로 벗겨 버렸다.형수는 육덕진 몸매라 애교 누나처럼 여리여리하지 않다.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지만 모두 나를 미치게 하는 건 같았다.내가 흥분한 나머지 마지막까지 진행하려고 할 때, 형수가 갑자기 나를 막았다.“왜 그래요, 형수?”형수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싼 채 진지하게 말했다.“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얼른 돌아가요.”“네? 왜요?”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애교 누나에 이어 형수까지 모두 원하면서 마지막까지는 원하지 않다니.나는 여자들의 생각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그때 형수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아까 그냥 흥분해서 그런 거예요. 우리는 마지막까지 할 수 없어요. 안 그러면 수호 씨 형 얼굴 어떻게 봐요?”“그래도...”나는 이미 형수에게 홀려 이 욕구를 해방하지 않으면 너무 괴로워 오늘 밤 잠도 못 이룰 것 같았다.게다가 형수도 이미 이렇게 됐는데 왜 마지막까지는 안된다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태연아, 나 힘들어.”나는 처음으로 용기 내 형수의 이름을 불렀다.그랬더니 형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바라봤다.“방, 방금 뭐라고 했어요?”“태연이요, 태연이라고 했어요.”나는 형수의 이름을 부르며 한 손을 이불 속으로 밀어 넣어 확인했다.원래는 형수가 반응했는지 확인하려던 거였지만 내 손에 의외로 실리콘 재질의 무언가가 닿았다.그 순간 나는 형수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어쩐지 아까 숨을 거칠게 쉬며 나를 끌어안더
“키스해 줄게요.”형수는 마하면서 먼저 나에게 입을 맞췄다.그러고는 이내 말을 이었다.“됐어요. 이제 일어나요.”“싫어요.”‘키스 한 번으로 나를 쫓아내려고? 어림도 없지.’내가 원하는 건 형수와 정사를 나누는 거다.그때, 형수의 손이 내 다리를 꼬집는 바람에 나는 꽥 소리 지르며 다급히 형수 위에서 물러났다.“얼른 수호 씨 방 돌아가요. 오늘 밤 있었던 일은 잊어요.”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이번까지 두 번째다.‘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곳이 내가 참고 싶다고 참아지는 건가?’나는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너무 아쉬웠으니까. 이번에 만약 형수를 화나게 하면 형수가 앞으로 나를 보지도 않을 수 있는데, 그러면 내가 원하는 건 더 할 수 없게 되니까.“그래요, 갈게요.”나는 아쉬운 듯 형수를 바라보다가 끝내 용기 내어 물었다.“그, 그럼 형수 아래 볼 수 있어요?”“뭐라고요? 수호 씨!”형수가 화를 내며 베개를 잡아 내 쪽으로 던지자 나는 다급히 도망갔다.하지만 보고 싶은 걸 보지 못하고,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해 마음은 여전히 허전했다.내 방 침대에 누운 나는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잠깐 형수 생각이 났다가 또 잠깐 애교 누나 생각이 나기를 반복했다.‘지금 9시니까 왕정민은 벌써 돌아왔겠지? 애교 누나는 아마 왕정민과 뒹굴고 있을지도 몰라.’‘왕정민 같은 쓰레기도 애인와 애교 누나를 양손에 모두 잡고 있는데. 나는?’나처럼 좋은 남자가 오히려 여자 하나 손에 넣지 못한다는 생각에 나는 순간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얼른 핸드폰 채팅 어플을 켜고 근처에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너무 허전해 아무하고 대화하고 싶었다.만약 나처럼 외로운 여자를 만나 함께 뒹굴 수 있다면 더 좋고.하지만 내가 남자라 그런지 아무리 돌아봐도 먼저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하.”나는 천천히 냉정을 되찾았다.그러니 내가 잘못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오늘 밤 벌인
윤미화는 위층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막았지만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사람은 막지 못했다.그 사람들은 방을 한 칸 한 칸 수색하다가 결국 내가 숨어 있는 방에 쳐들어와 다짜고짜 나를 잡았다.그러고는 곧장 나를 8층 808호실로 끌고 갔다.놈들에게 끌려가면서도 나는 속으로 기뻤다.내 계획이 성공했으니 말이다.서윤기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담담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내가 말했잖아. 발버둥 치지 말라. 그러게 왜 말을 안 들어?”“내가 전에 사람 잘못 봤네. 서윤기 당신도 다른 사람이랑 똑같이 눈에 돈밖에 없는 인간이었어.”나는 서윤기를 비아냥거렸다.그러자 서윤기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돈 버는 게 나빠? 뭐 문제 있어? 난 상인이야. 상인이 돈 벌지 않고 설마 사람을 구할까?”“아무리 돈을 벌고 싶어도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지. 약재 가격을 높이는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안 좋은 약재와 좋은 약재를 섞어서 팔고 가짜 약재로 진짜 약재를 바꿔치기 할 수 있어? 이건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야.”이건 내가 가장 참지 못할 부분이다.약재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약재상이 질이 안 좋은 약재를 섞어 팔고 가짜 약재로 수만 채운다면, 약은 제 약효를 발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환자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그때 서윤기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내가 예전에 정 사장이랑 같이 일할 때 항상 가장 좋은 약재를 가장 싼 가격에 팔았어. 그렇게 매일 개처럼 일했는데 결국엔 고작 몇 푼밖에 못 벌었다고.”“내가 지난 몇 년 동안 고생해서 번 돈이 동종업자들이 1년 동안 번 것보다 적었어.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놀리고 비꼬아 댔는지 알아? 병에 걸린 환자들도 약을 먹고 병이 나으면 의사한테 고마워하지, 누가 약재상한테 고마워해?”“양쪽에서 모두 찬밥 신세 당하면서 내가 왜 남 좋은 일만 해야 하는데? 내가 정 사장과 협력하지 않은 이후로 한 달에 얼마씩 버는 줄 알아?”“4억 가까이 돼. 전에는 1년에도 이 정도 못 벌었어. 매달 4억이면
그 행동을 본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뭐 하는 거예요?”서윤기는 라이터를 의서에 가까이 가져갔다.“호텔 에어컨이 좀 춥지 않아요? 우리 따뜻하게 해요.”나는 다급히 의서를 빼앗았다.“미쳤어요? 의서에 얼마나 많은 난치병 치료 방법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걸 태우면 사람들의 희망을 태우는 거나 다름없어요.”서윤기는 라이터를 내려놓고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난 장사꾼이지 의사가 아니에요.”“이...”나는 전에 서윤기가 유순하고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야 비로소 이 사람도 그저 돈만 밝히는 악덕 상인이라는 걸 알았다.나뿐만 아니라 정 사장님도 그동안 서윤기에게 깜빡 속았다.손에 든 의서를 그대로 포기하자니 나는 너무 아쉬웠다.이건 할아버지의 심혈이다. 의서 한 권을 집필하려고 우리 정씨 가문이 대대로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없다.하지만 이 의서를 건지려면 서윤기와 손을 잡아야 하고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내 마음은 너무 복잡했다.그때 문득 대담한 생각이 떠올라 나는 의서를 챙긴 뒤 이를 악물고 밖으로 도망쳤다.하지만 얼마 못 가 호텔 직원이 내 뒤를 따라붙었다.어쩐지 내가 의서를 갖고 도망쳐도 서윤기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했더니 호텔 안팎에 이미 서윤기의 사람이 가득했다.나는 절대 잡히면 안 된다는 일념 하나로 죽을 듯이 도망쳤다. 호텔 직원이 쫓아오면 그 사람을 발로 차고 때리면서 의서를 꼭 지켜내려고 아등바등했다.그와 동시에 나는 윤미화에게 전화했다.“지금 어디 있어요?”[호텔이지. 무슨 일인데?]“지금 누가 절 죽이려고 해요. 윤 사장님이 좀 도와줘요.”나는 도망치면서 되도록 일을 심각하게 설명했다. 그건 윤미화가 빨리 나를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헉. 무슨 일인데 그래? 지금 몇 층이야?]“8층에서 내려가는 중이에요.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사람들이 쫓아와요”나는 신속히 내 상황을 설명했다.그러자 윤미화는 잠깐 생각하더
서윤기의 말에 나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하긴, 서윤기 같은 사장한테 몇천만 원은 돈도 아니다.만약 서윤기가 거래할 마음이 없다면 내가 모든 재산을 준다고 해도 절대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다.하지만 이렇게 포기하려니 내키지 않아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의서를 저한테 팔 건데요?”“이 의서는 나한테 필요해서 안 판다고 했을 텐데요.”서윤기는 끝까지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그 때문에 나는 계속 서윤기에게 끌려가기만 했다.“서 사장님은 그 의서로 저와 거래할 생각이죠?”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그러자 서윤기가 담담하게 웃으며 자기 잔에 와인을 따랐다.그 동작은 내 생각이 맞다는 걸 충분히 증명했다.하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서윤기를 보니 나는 마음이 불안해졌다.“강북 한약 상회 일이라면 전 결정권이 없어요. 정 사장님도 이미 건강을 회복했으니 상회 일은 사장님이 다시 맡고 있으니까요.”나는 먼저 내 생각을 내비쳤다.그제야 서윤기는 손에 든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며 입을 열었다.“돈은 나도 많아요. 돈 벌 루트가 필요한 거지. 하지만 난 내 파트너한테는 항상 관대하거든요. 파트너들과 함께 돈 버는 것도 좋아하고요.”서윤기는 애매모호하게 말을 흐렸지만 나는 단번에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서윤기는 내가 자신과 손을 잡으면 의서를 바로 주겠다는 뜻이었다.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서윤기를 바라봤다.“전 이제 상회 일도 관여하지 않는데 저랑 손잡아서 서 사장님한테 무슨 이득이 있죠?”“수호 씨가 상회 일에 관여하지 않지만 정 사장과 사이가 좋은 건 상회 사람들이 다 알고 있죠. 수호 씨가 나서면 정 사장의 뜻을 대변할 수 있을 거예요.”‘이 너구리 같은 인간이 이걸 노린 거였네.’나는 이제야 서윤기의 속내를 완전히 알았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렇다면 실망하시겠네요. 저는 정 사장님께 미안한 일은 안 해요.”서윤기는 의서를 꺼내 테이블 위
“아, 네. 들어와 앉았다 갈래요?”“그러죠.”서윤기는 사실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지만 나는 냉큼 기회를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방금 봤던 여자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조금만 실수하면 속살이 다 노출될 지경이었다.여자는 이런 상황과 장소가 매우 익숙한 듯했다.그때 서윤기가 여자에게 돈을 한 웅큼을 던져주며 나가라는 눈치를 주자 여자는 아무 말없이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뒤 옷을 갈아입고 나오더니 엉덩이를 흔들며 방을 나갔다.서윤기는 그제야 나에게 와인 한 잔을 따라주었다.“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수호 씨는 강북에서 생활하지 않아요? 설마 호텔에서 지내요?”나는 서윤기가 나를 찔러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차분하게 대답했다.“저도 이제 사업하는 사람이니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호텔에 머무는 건 불가피한 일이에요. 집에 가는 게 오히려 더 어렵다니까요. 그런데 이곳에서 서 사장님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큰 사업을 하는 사장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가끔 재미를 보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나도 아예 세상 물정 모르는 건 아니다.서윤기는 내 말에 허허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하지만 몇 분만 더 일찍 왔더라면 큰일 났을 거예요.”‘늙은 여우 같은 것.’서윤기가 상회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으면 내가 끌려다닐 게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윤기는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내가 결국 먼저 말을 꺼내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쓸데없는 얘기만 하면서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할 테니까.나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서 사장님, 전에 조천석 사장님한테서 의서를 구매하셨죠?”“조천석? 어디 보자... 내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만난 사람이 하도 많아서 기억이 나지 않네요.”‘이 자식 일부러 이러는 거네.’나는 결국 직접적으로 힌트를 줬다.“강북 경진당 사장 조천석 말이에요. 책 이름이 ‘고의문’인데 기억나시나요?”내가 이 정도로 알기 쉽게 말했는데 계속 모
현성과 민우는 내가 혼자인 게 시름이 놓이지 않고 걱정되어 돌아온 거엿다.무엇보다 내가 이번에 건드린 사람은 임천호다. 바로 그 S시 전체를 주름잡고 수많은 용병을 거느리고 있는 효웅이라 불리는 남자 말이다.우리는 그런 사람을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봤지 현실에서 만난 적이 없다.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우리 같은 새내기한테 그런 사람은 닿을 수도 없고 두려운 존재다.하지만 현성과 민우는 두려워하지 않고 내 곁에 있기로 했다.이건 단지 감동이라는 단어로 형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건 목숨을 나눈 우정과도 같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천수백 마디로도 우리의 우정을 표현할 수 없었으니까.나는 방 두 개를 현성과 민우에게 내어주고 혼자 거실에 누워 속으로 감탄했다.이 순간 흥분과 감동, 두려움과 무서움이 한데 섞여 내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하지만 이렇듯 신맛이 났다 단맛이 났다 쓴맛이 났다 매운맛이 나는 이런 과정이 바로 성장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잠들어 버렸다.다음 날, 우리 셋은 함께 천수당에 출근했다.나는 되도록 얼굴을 비추지 않으려고 내실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러다가 10시가 넘었을 때쯤 윤미화가 서윤기의 행방을 찾았다며 전화해 왔다.“어디 있는데요?”[샹젤리호텔. 내가 지금 마침 그곳에 가봐야 하니까 먼저 가서 확인해 볼게.]그 말을 들으니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뭐 하러 가는데요?”[고객이 거기서 기다려. 설마 내가 수호 씨랑 같이 가고 싶어서 일부러 이런다고 생각했어?]나는 순간 머쓱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그래요. 그럼 부탁할게요. 오해한 건 미안해요.”나는 윤미화를 단단히 오해했다는 걸 자각하고 다급히 사과했다.그러자 윤미화가 웃으며 말했다.[말만으로 미안하다면 다야? 실제 행동을 보여줘야지.]“사장님, 우리 한 식구 아니었어요? 뭐 하러 조목조목 다 따져요? 거리감 들게.”[누가 한 식구라는 거야?]“아니에요? 우리 탐정 사무소는 한 가족 아
“하지만 우리 언니 병 반드시 고쳐야 해.”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뒤돌아섰다.그러자 서지예는 다급히 나를 막아섰다.“뭐 하자는 거지?”“지예 씨 언니는 마음에 병이 있어요. 제가 심리 의사도 아니고 어떻게 무조건 낫게 한다고 장담하겠어요?”이건 너무 무리한 요구다.서지예도 자신의 요구가 좀 지나치다는 걸 알았는지 한발 물러섰다.“그럼 우리 언니랑 대화 많이 하면서 설득해 봐. 더 이상 죽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이제야 말이 되네요.”하지만 이것도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나는 한의학을 전공했지 심리학을 전공한 게 아니다. 더욱이 심리학 의사도 아니라 어떻게 서나연을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서지예는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떠나기 전에 특별히 몸에 좋은 약재를 몇 가지 사갔다.그렇게 하루를 바삐 보내다 보니 어느덧 저녁 7시가 넘었다.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는 온종일 의미 없는 일만 한 것 같다. 다행히 민우와 현성은 뭐라 하지 않았지만.그날 저녁, 우리 셋은 함께 식사하며 S시에 다녀온 일을 얘기했다.그때를 떠올리니 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임천호 때문에 몇천만 원 손해 본 것도 모자라 앞으로 다른 사람한테까지 영향이 미칠지 모르겠어.”그 말에 현성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무서울 게 뭐 있어? 분명 해결 방법이 있을 거야. 무슨 일 있으면 우리랑 같이 이겨내면 되지.”민우도 내 어깨를 두드렸다.“걱정하지 마. 우리는 너랑 같이 일하기로 했으니 절대 널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두 사람의 감동적인 말에 나는 갑자기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하지만 민우와 현성이 옆에 있으니 확실히 마음이 편해졌다.“너희밖에 없다. 자, 짠하자.”우리 셋은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그러던 그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내가 가게에 있으면 임천호는 절대 우리 가게를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앞으로 난 가게 나가는 횟수를 줄일 테니까
“마음 가는 대로 얘기해도 내용이 있을 거 아니야. 어떤 내용으로 대화했는데?”서지예는 끈질기게 추궁했다.하지만 한참을 생각해도 나는 그날 대화 내용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별것도 아닌 얘기를 내가 어떻게 기억해요?”결국 마음이 조급해진 서지예는 무의식적으로 내 팔을 잡아당겼다.“잘 좀 생각해 봐. 나한테는 중요한 거란 말이야. 우리 언니 평소 남들과 얘기 안 해. 내가 뭘 물어보면 대답도 안 한다고.”“그런데 길게 대화했다는 건 진짜 놀라운 일이야. 정수호, 아니면 네가 우리 언니 좀 봐줄래?”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됐어요. 서씨 가문이 S시에서 어떤 가문인데요. 돈 있고 권력 있는 집안에서 설마 의사 하나 찾지 못하겠어요? 날 함정에 빠뜨릴 생각이라면 포기해요.”나는 흙탕물 싸움에 끼어들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게다가 임천호가 만약 그 일을 알게 되면 더 골치 아파질 거다.그때 서지예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우리 언니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두고 볼 거야? 의사라며? 사람 살리는 게 의사의 본분 아니야?”“전 의사지 성인군자가 아니에요. 이 세상에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모두 구해줄 수는 없잖아요.”나는 이내 반박했다.그러자 서지예가 나를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봤다.“그런데 이미 알면서 구하지 않으면 의사 자격 없는 거지.”“지예 씨도 의사면서 왜 본인이 구하지 않아요?”‘그리고 말은 왜 또 이렇게 듣기 거북하게 한담?’서지예는 초조해서 미칠 지경이었다.“내가 할 수 있으면 이렇게 널 찾아와서 입 아프게 설득하겠어?”내가 꿈쩍도 하지 않자 서지예는 이내 말을 이었다.“우리 언니를 치료해주면 내가 큰 고객 많이 소개해 줄게.”만약 서지예가 돈을 준다고 했으면 난 마음이 동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큰 고객을 소개해 준다고 하니 내 마음은 결국 흔들리고 말았다.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고, 내가 필요한 건 인맥이지 눈앞에 보이는 돈이 아니었다.서지예는 서씨 가문 둘째 딸이고
나는 속으로 오늘 왜 이토록 재수 없는지 한탄했지만 결국 서지예를 따라나섰다.밖에 나오자마자 서지예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봤다.“너 S시에 다녀왔어?”“네.”“뭐 하러 갔는데?”“돈 받으러 갔어요.”“거짓말. S시에서 우리 언니 만났잖아.”“지예 씨 언니를 만난 거랑 돈 받으러 간 거랑 모순되지 않잖아요.”나는 사실을 말했지만 서지예는 나를 믿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를 뚫어버릴 것 같은 눈빛으로 노려봤다.“흥. 누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우리 언니에 대해 조사하러 갔겠지.”나는 너무 억울해서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제가 왜 지예 씨 언니를 조사해요? 저랑 무슨 상관이라고요.”“너랑은 상관없지만 소여정과 상관있잖아. 솔직히 말해, 소여정이 우리 언니를 조사하라고 했지?”서지예의 엉뚱한 생각에 나는 화가 나 헛웃음이 나왔다.“증거 있어요? 소여정 씨가 저더러 지예 씨 언니 조사하라고 한 증거 있냐고요? 있으면 꺼내고 없으면 좀 가요.”나는 상대 체면도 고려하지 않고 축객령을 내렸다.그러자 서지예는 이를 갈며 나를 노려봤다.“나도 증거가 없으니까 따지러 왔잖아. 하지만 증거를 찾으면 그땐 죽을 줄 알아.”“우리 언니가 임천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나 해? 소여정이 자기를 조사하라고 했다는 걸 언니가 알면 죽으려고 할 거야.”서예지는 어찌나 걱정됐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서예지가 언니의 안위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서나연의 상태를 떠올리니 확실히 안타까웠다. 귀하게 자랐을 부잣집 아가씨가 남자 하나 때문에 죽으려고 하다니.그때를 떠올리니 내 태도도 서서히 누그러졌다.“임천호는 지예 씨 언니를 사랑하지 않아요. 동생이면 언니가 그런 남자 때문에 죽으려고 하는 걸 내버려두지 말고 포기하게 설득해야죠.”“말이 쉽지. 너 같은 사람은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 없지? 너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봐, 놓겠다고 쉽게 놓아지나.”서예지는 여전히 언니 편을 들었다.역시나 친자매 아니랄까
서윤기의 행방을 찾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걸 인지한 나는 윤미화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탐정 사무소로 향했다.윤미화는 강북에 돌아온 뒤로 계속 잠을 보충하다가 내가 찾아오니 그제야 나른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심지어 옷도 갈아입지 않고 얇은 잠옷 바람에 나를 맞이하는 윤미화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윤 사장님, 이미지 좀 생각하면 안 돼요?”윤미화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다른 애들 다 일하러 나갔어. 여기 수호 씨뿐이야. 전에 못 봤던 것도 아닌데, 조심할 게 뭐 있어?”“그래도 조심해야죠. 사장님이잖아요.”나는 여전히 귀띔했다.그제야 윤미화는 대충 외투를 몸에 걸쳤다.“그래. 알았어.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야?”“저 대신 사람 좀 조사해 줘요.”나는 곧바로 이곳에 온 목적을 말했다.그 말에 윤미화는 눈이 커다래졌다.“뭐야? 나 사장이야. 직원이 사장한테 일 시킨다고?”“돈 낼게요.”“누가 돈 달래? 안 해. 얼른 나가.”윤미화는 손을 휘휘 저었다.이에 나는 싱긋 웃으며 윤미화 곁에 앉았다.“윤 사장님 이렇게 인정머리 없는 분 아니잖아요. 항상 말만 독하게 하지 마음은 누구보다 여린 거 알아요. 제발 도와줘요. 이 사람 저한테 정말 중요해요.”“흥. 난 돈에 매수당할 사람 아니야. 돈으로 날 매수하려 했다면 날 정말 얕잡아봤어.”나는 다급히 물었다.“그럼 뭘 원하는데요? 뭐든 말해요. 할 수 있는 거면 무조건 할게요.”“다리 좀 두드려 봐. 다리 아파.”“네.”나는 얼른 윤미화의 다리를 두드렸다.“이 정도 강도면 괜찮아요?”윤미화는 눈을 감고 빙그레 웃으며 마사지를 즐겼다.“좋네. 딱 좋아. 역시 한의학을 전공한 사람이라 다르네.”“그럼 아까 일은...”“아, 다리가 또 아프네.”나는 윤미화가 일부러 이런다는 걸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리를 두드렸다.그러자 윤미화는 아예 나를 시종 취급하면서 차를 따르게 했다가 음식을 사 오게 했다가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시켰다.그렇게 약 2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