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하루에 너무 많이 하면 몸에 해로워요. 절제해요.]나는 그 말을 본 순간 흥분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방금 그 말 음성 메시지로 보내줄 수 있어요? 누나가 나한테 여보라고 하는 거 듣고 싶어요.]애교 누나는 웬일인지 망설이지 않고 방금 한 말을 음성 메시지로 보냈다.애교 누나가 육성으로 여보라고 부르는 걸 듣자 나는 순간 만족감이 들어 누나한테 뽀뽀하는 이모티콘을 연속 보냈다.그렇게 한참 얘기하던 중, 애교 누나가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자 나는 요리를 끝낸 다음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요구했다.물론 먹지는 못해도 즐길 수는 있었으니까.애교 누나와 한참 동안 대화를 하다가 나는 기쁜 얼굴로 침실을 나섰다.형수는 내 표정을 보더니 싱긋 웃으며 물었다.“문제 해결됐어요? 애교가 뭐래요?”“애교 누나가 저한테 여보라고 했어요.”나는 너무 자랑스러워 참지 못하고 형수에게 공유했다.“어머, 그럼 잘된 일이네요. 애교의 입을 여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었을 텐데. 더 분발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교 마음 사로잡을 것 같으니.”형수의 말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말했다.“아직 애교 누나의 마음을 완전히 얻으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하지만 계속 노력할게요.”나는 형수에게 나와 애교 누나의 진짜 관계를 알리고 싶지 않으면서도 의심을 사고 싶지 않아 일부러 이렇게 대답했다.그걸 알 리 없는 형수는 기쁜 듯 말했다.“이따가 소꼬리 곰탕 끓여줄 테니까 먹고 기력 회복해요.”“아, 저는 괜찮아요. 형한테 줘요.”나는 기력이 이렇게 넘쳐나는 데 보충할 필요가 뭐 있다고.오히려 보충해야 할 사람은 형이다. 어젯밤 내 방에까지 숨어든 걸 보면 부담이 엄청날 텐데.하지만 형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수호 씨 형은 소꼬리 곰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병원에 가봐야 해요. 그리고 이건 수호 씨를 위해 끓인 거니 꼭 마셔요.”“알겠어요.”형수의 호의를 나도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결국 동의했다.시간은 일분일초 흘러 이내 저녁
“수호 씨, 형은 언제 돌아온대요?”형수가 그때 갑자기 다가와 물었다.하지만 진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나는 형수가 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형이 이러다니.결국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거짓말을 동조했다.“형이 요즘 바빠서 또 야근해야 한대요. 우리더러 기다리지 말래요.”그 말을 들은 순간 형수의 미소는 이내 사라졌다.“또 그놈의 야근! 매일 개처럼 일만 해대니 기력이 남아돌 리가 없지!”형수는 말하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됐어요. 우리끼리 먹어요.”“제가 도와줄게요.”형수가 지금 기분이 안 좋으니 나는 눈치껏 도와 나섰다. 내가 곁에서 도와주면서 말동무라도 하면 형수도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을 테니까.“그래요, 그럼 마늘 좀 까요.”“네. 마늘은 어디 있어요?”“저 안에요.”주방은 비교적 작아 나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음식하고 있는 형수 뒤로 비집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형수가 엉덩이를 내밀고 있는 바람에 지나가다 보면 부딪히는 걸 피할 수 없었다.“형수.”“왜요?”“저 좀 지나갈게요.”“그냥 지나가요. 나 지금 만두 끓이고 있잖아요.”형수는 대충 대답했다.“네.”형수가 바빠 보이니 나는 할 수 없이 입을 다물고 발꿈치를 든 채로 형수한테 닿지 않으며 지나가려고 애썼다.어찌 됐든 내가 아직도 형수한테 그런 생각을 품고 있으니 터치가 있었다가는 형수가 또 나를 오해할까 봐 걱정됐으니까.하지만 내가 겨우 지나치려고 할 때, 형수가 갑자기 뒤로 움직이는 바람에 커다란 엉덩이가 내 몸에 부딪히고 말았다.“아!”“어머!”나와 형수는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나는 부딪히는 순간 전해져 오는 짜릿한 느낌 때문이었고, 형수는 아마 내가 그곳으로 자기를 찌를 거라고 생각하지 못 해서였을 거다.형수는 내 그곳이 느껴지자 이내 얼굴을 붉혔다.본인 남편은 제대로 힘도 못 쓰는데, 나는 이 정도이니 저도 모르게 흥분되었을 거다.심지어 마음이 동하기도 했을 거고.하지만 형수는 본인의 가정을 무척 잘
‘다 내 탓이야. 형수한테 매번 그런 짓만 해서 형수가 화난 거잖아.’나는 혼자서 묵묵히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했다.하지만 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아무리 뒤척여 봐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그러다 결국 형수가 기분 나빠 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사과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이윽고 나는 용기 내어 형수의 침실 앞에 다가갔다.똑똑똑-내가 문을 두드렸지만 형수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벌써 자나? 그럼 다음에 하지 뭐.’나는 당연히 형수가 잔다고 생각하고 이내 뒤돌아 떠나려 했다. 하지만 그때, 안쪽에서 갑자기 신음소리가 들려왔다.전에 애교 누나도 똑같은 상황이었기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형수가 어디 아프다고 생각하고 다급하게 문을 몸으로 밀쳤다.하지만 문이 처음부터 비스듬히 열려 있는 탓에 나는 관성 때문에 멈춰 서지 못한 채 형수의 침대 위로 돌진해 형수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나와 형수는 동시에 넋을 잃고 말았다.형수는 자고 있던 게 아니라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이마에 작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그 순간 나는 방금 났던 신음 소리가 무엇 때문에 났는지 알아챘다.너무 난감한 상황에 나는 내 뺨을 때리고 싶었다.“형수, 미안해요. 사과하러 왔다가 안에서 신음소리가 들리길래 어디 아픈 줄 알고...”형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왜 사과해요?”“아... 아까 주방에서 실수로 부딪혀서 화났잖아요.”내 말에 형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수호 씨 정말 바보네요. 내가 기분 나빠하는 게 수호 씨랑 무슨 상관있다고.”“네? 아까 계속 꿀꿀해 있길래 저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형수는 손을 뻗어 내 목을 끌어안았다.그 순간 내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그도 그럴 게, 전에 형수는 내 앞에서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그런데 지금은 내가 형수의 위에 엎드려 있는데 형수가 이런 행동을 하니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나는 너무 긴장해 말까지 더듬었다.“형수, 지... 지금...”나는
형수는 내 목을 꼭 끌어안고 나에게 맞춰 주었다.그 때문에 내 마음은 더욱 설렜다.그동안 형수한테 이런저런 생각을 다 해왔는데, 형수는 매번 자기한테 그런 마음 품지 말라고 경고만 했었다.하지만 오늘 저녁에는 먼저 키스를 요구하고 나에게 맞춰주다니.나는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져 오직 눈앞의 여자를 차지해야 한다는 본능만 남았다.그러다 점점 입 맞추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형수도 의외로 거절하지 않았다.그 때문에 나는 더 대담하게 형수의 옷을 그대로 벗겨 버렸다.형수는 육덕진 몸매라 애교 누나처럼 여리여리하지 않다.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지만 모두 나를 미치게 하는 건 같았다.내가 흥분한 나머지 마지막까지 진행하려고 할 때, 형수가 갑자기 나를 막았다.“왜 그래요, 형수?”형수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싼 채 진지하게 말했다.“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얼른 돌아가요.”“네? 왜요?”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애교 누나에 이어 형수까지 모두 원하면서 마지막까지는 원하지 않다니.나는 여자들의 생각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그때 형수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아까 그냥 흥분해서 그런 거예요. 우리는 마지막까지 할 수 없어요. 안 그러면 수호 씨 형 얼굴 어떻게 봐요?”“그래도...”나는 이미 형수에게 홀려 이 욕구를 해방하지 않으면 너무 괴로워 오늘 밤 잠도 못 이룰 것 같았다.게다가 형수도 이미 이렇게 됐는데 왜 마지막까지는 안된다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태연아, 나 힘들어.”나는 처음으로 용기 내 형수의 이름을 불렀다.그랬더니 형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바라봤다.“방, 방금 뭐라고 했어요?”“태연이요, 태연이라고 했어요.”나는 형수의 이름을 부르며 한 손을 이불 속으로 밀어 넣어 확인했다.원래는 형수가 반응했는지 확인하려던 거였지만 내 손에 의외로 실리콘 재질의 무언가가 닿았다.그 순간 나는 형수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어쩐지 아까 숨을 거칠게 쉬며 나를 끌어안더
“키스해 줄게요.”형수는 마하면서 먼저 나에게 입을 맞췄다.그러고는 이내 말을 이었다.“됐어요. 이제 일어나요.”“싫어요.”‘키스 한 번으로 나를 쫓아내려고? 어림도 없지.’내가 원하는 건 형수와 정사를 나누는 거다.그때, 형수의 손이 내 다리를 꼬집는 바람에 나는 꽥 소리 지르며 다급히 형수 위에서 물러났다.“얼른 수호 씨 방 돌아가요. 오늘 밤 있었던 일은 잊어요.”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이번까지 두 번째다.‘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곳이 내가 참고 싶다고 참아지는 건가?’나는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너무 아쉬웠으니까. 이번에 만약 형수를 화나게 하면 형수가 앞으로 나를 보지도 않을 수 있는데, 그러면 내가 원하는 건 더 할 수 없게 되니까.“그래요, 갈게요.”나는 아쉬운 듯 형수를 바라보다가 끝내 용기 내어 물었다.“그, 그럼 형수 아래 볼 수 있어요?”“뭐라고요? 수호 씨!”형수가 화를 내며 베개를 잡아 내 쪽으로 던지자 나는 다급히 도망갔다.하지만 보고 싶은 걸 보지 못하고,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해 마음은 여전히 허전했다.내 방 침대에 누운 나는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잠깐 형수 생각이 났다가 또 잠깐 애교 누나 생각이 나기를 반복했다.‘지금 9시니까 왕정민은 벌써 돌아왔겠지? 애교 누나는 아마 왕정민과 뒹굴고 있을지도 몰라.’‘왕정민 같은 쓰레기도 애인와 애교 누나를 양손에 모두 잡고 있는데. 나는?’나처럼 좋은 남자가 오히려 여자 하나 손에 넣지 못한다는 생각에 나는 순간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얼른 핸드폰 채팅 어플을 켜고 근처에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너무 허전해 아무하고 대화하고 싶었다.만약 나처럼 외로운 여자를 만나 함께 뒹굴 수 있다면 더 좋고.하지만 내가 남자라 그런지 아무리 돌아봐도 먼저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하.”나는 천천히 냉정을 되찾았다.그러니 내가 잘못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오늘 밤 벌인
‘같은 동네? 그것도 200미터도 안 되는 거리?’‘그렇다면 같은 건물일 가능성이 높잖아!’그럴 가능성을 생각하니 나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그도 그럴 게, 나는 여자와 한 번만이라도 해보고 싶었으니까.이에 나는 대담하게 문자를 보냈다.[그쪽은 몇 동인데요?]여자는 바로 답장했다.[1단지 8동 1505호.]‘그렇다면 우리 위층이잖아.’‘헐 이렇게 가깝다고?’그렇다는 건 내가 지금 올라가면 제대로 성욕을 풀 수 있다는 거다.이 유혹은 내게 너무나도 컸다.나는 마음이 동했지만 상대가 사기치는 것일까 봐 한편으로 두려웠다.[그런데 왜 원나잇 하려는 건데요? 말투 보니까 화난 것 같은데, 혹시 남자 친구와 싸웠어요?][그놈이 밖에서 여기저기 붙어먹고 다니니까 나도 집에서 다른 남자랑 붙어먹으려고요.]‘그런 거였구나.’보아하니 남자든 여자든 배우자의 배신을 용납할 수 없는 건 똑같나 보다.내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상대방 여자한테서 또 답장이 왔다.[그래서 올 거예요 말 거예요? 안 오면 다른 사람 부를 거예요.]‘이런 좋은 일을 내가 왜 거절하겠어? 내가 안 가도 다른 남자가 갈 텐데.’[그래요, 갈게요. 지금 바로 찾으러 갈게요.]나는 신속히 침대에서 내려 형수의 의심을 살까 봐 미리 인사했다.“형수, 저 물건 좀 사러 갈게요.”“뭘 사는데요?”“약재요.”나는 일부러 집에 없는 물건을 말했다.그랬더니 형수는 별생각 없이 답했다.“그럼 일찍 다녀와요.”“네.”나는 집에서 나오자마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으로 향했다.이제 곧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내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나도 겨우 한번 여자를 맛보겠구나.’나는 너무 기뻤다.15층은 눈 깜짝할 새에 도착했다.1505호 앞에 도착하자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아직 그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관계를 가진다고?’‘만약 공룡처럼 생기면 어떡하지?’내가 아무리 굶주려 있다고 해도 처음을 공룡 같은 여자랑 하고 싶지는 않았다.‘됐어, 그냥
나른하고 부드러운 여자의 허리를 만지니 내 마음은 따라서 두근거렸다.“나랑 하려고 불렀다면서요? 시작해요.”나는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그랬더니 여자가 손에 든 술병을 던져버리고 나를 덮쳐왔다.“맞아요. 나도 바람피울래요. 오빠, 오늘 밤, 계 탄 줄 알아요.”여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내 입술을 덮쳐왔다.우리는 전희도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그도 그럴 게, 그 여자가 남자 친구에게 복수하는 데 급급해 내 바지를 벗기고는 바로 위에 앉았기 때문이다.처음으로 여자와 나누는 정사에 나는 날아갈 것만 같았다.하지만 너무 오래 참은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정했다.여가는 그대로 나를 놓아주지 않고 다시 세워주고는 그 위에 앉아 욕설을 퍼부었다.“여준휘, 이 개자식, 감히 밖에서 바람을 피워? 그럼 나도 집에서 바람피울 거야.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네가 한 번 피우면 나는 열 번 피울 거야!”나는 그런 걸 상관할 겨를이 없이 그저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그러다가 상대를 내 아래에 두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아래가 싫다면서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결국 그 여자에게 주도권을 양보하고 말았다.저녁 9시부터 1시까지, 우리는 총 4,5번을 했다. 그 여자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여자는 소파에 누워 눈물을 흘리며 이따금씩 욕설을 내뱉었다.나는 그런 여자를 묵묵히 지켜보며 속으로 웃고 있었다.그도 그럴 게, 내 처음을 이렇게 예쁜 여자한테 줬으니 여한이 없었다.나는 담요를 가져와 여자에게 덮어주고 집을 청소해 주고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때마침 여자가 내 손을 잡으며 중얼거렸다.“가지 마. 나랑 같이 있어 줘. 나 너무 외롭고 무서워.”나는 너무 마음이 아파 그 여자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그래요. 안 갈게요. 같이 있어 줄게요.”나는 소파 앞에 앉아 여자가 잠들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여자가 잠들고 나서 시간을 봤더니, 때는 벌써 새벽 2시였다.너무 피곤한 나머지 나는 조심스럽게 여자의 집을 나가 내 방으로 돌
“아!”애교 누나는 나 때문에 너무 놀라 핸드폰을 떨어뜨렸다.이윽고 내가 온 것을 확인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어디서 나타난 거예요?”나는 싱긋 웃으며 손을 이불 속으로 밀어 넣어 애교 누나의 가슴을 움켜잡았다.“집에 마음대로 와도 된다고 열쇠 줬잖아요. 그래서 몰래 문 열고 들어왔죠.”“참 못됐어! 한참 동안 답장 안 와서 오기 싫어하는 줄 알았잖아요”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애교 누나의 허리를 감싸안았다.“그럴 리가요. 누나가 어쩌다가 나 보고 싶다고 했는데, 태평양이든 대서양이든 건너와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애교 누나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며 내 품에 기댔다.“역시 수호 씨밖에 없네요.”“그런데 누나 남편은 대체 무슨 상황이에요?”나는 일부러 애교 누나를 인도하려고 뻔히 알면서 물었다.그러자 애교 누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모르겠어요. 급한 일이라 지체하면 안 된대요.”“그 말을 믿어요?”“예전 같으면 당연히 믿었겠지만 지금은... 하지만 남편이 나한테 미안한 짓 했다고 믿고 싶지 않아요.”“진실이 어떻든 솔직해져야 해요. 절대 본인 해치는 선택하지 마요.”15층에 있는 여자를 생각하니 나는 애교 누나도 걱정이 됐다.여자는 감성적인 동물이기에 특히 남녀 사이의 감정에서 상처받으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때문에 애교 누나가 본인을 해치는 선택을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애교 누나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만약 남편이 정말 나한테 미안한 짓 하면 나 이혼할 거예요. 그러면 그때 수호 씨가 나랑 결혼할래요?”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당연하죠. 저 누나한테 항상 진심이었어요.”나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이건 모두 진심이다.나는 정말 애교 누나가 좋다고 생각한다.만약 이런 여자와 결혼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애교 누나는 내 대답에 피식 웃었다.“그냥 물어본 거예요. 우리는 불가능해요.”“왜요?”“우선 내가 수호 씨보다 너무 나이가 많아 수호 씨 집안에서 반대할 거예요. 그리고 내가 남편
나는 윤지은이 그동안 나를 미워하고 싫어한다고만 생각했다. 가끔 외로울 때 나를 찾아 외로움을 달래는 것 외에는 아무 감정이 없다고 여겼다.때문에 윤지은이 나를 좋아하고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그래서인지 이 순간 나는 모든 게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현실적인 느낌과 비현실적인 느낌이 한데 섞여 나는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때 윤미화가 팔꿈치로 나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거 봐. 내 말 맞지? 지은 씨가 수호 씨를 좋아한다니까.”“윤 사장님도, 지은 씨가 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나는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아 되물었다.그러자 윤미화는 화가 난 듯 나를 째려봤다.“더 사람이 하는 대화 못 들었어? 또 어떻게 해야 믿을 건데?”“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믿기지 않아서요. 제가 전에 지은 씨한테 고백했는데 아주 대차게 차였거든요.”“우리 평소에 만나면 항상 다투기만 해요. 누구도 서로 양보하지 않아요. 게다가 연인끼리 하는 달콤한 말은 한 번도 한 적 없고, 서로 좋아한다는 고백을 한 적도 없어요.”“너무 사랑하면 미워지고 너무 미워하면 사랑한다는 거 몰라?”윤미화는 아주 철학적인 말을 했다.나는 그 말을 한참 곱씹었다.“확실히 일리가 있네요.”만약 정말 그렇다면 나는 너무 기쁘다. 그러면 윤지은의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뜻이니까.하지만 한편으로 골치 아팠다. 나한테 이미 애교 누나가 있기에 나는 윤지은을 책임질 수 없고 사랑을 받아줄 수도 없다.윤미화는 마치 내 뱃속에 들어왔다 나온 것처럼 농담조로 말했다.“평생 결혼하지 마. 그러면 부담 없잖아.”“어떻게 그래요?”“안 될 거 뭐 있어? 결혼은 종잇장으로 한 약속에 불과해. 누구한테 잘해주고 싶으면 그런 게 없이도 잘해줄 수 있잖아. 요즘 연애만 하고 결혼하지 않는 사람 많아. 난 그것도 괜찮다고 봐.”‘대체 뭐라는 거지?’나는 그 정도로 개방적이진 않다.나는 우선 마음을 가다듬었다.
강한나는 윤지은 옆에 앉으며 물었다.“다리는 왜 그래?”“별거 아니야.”강한나는 장소도 개의치 않고 윤지은의 치마를 걷어 올렸다. 윤지은의 종아리는 벌겋게 부어오른 데다 물집까지 잡혔다.“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둬? 그리고 이렇게 됐으면 병원부터 가지 왜 여기까지 달려와서 저 사람 일에 신경 쓰는 건데? 너 미쳤어?”강한나는 윤지은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윤지은은 남자에게 희망을 걸 사람이 절대 아니고, 남자를 위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을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그런데 윤지은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었다.강한나는 문득 눈앞의 윤지은이 자기가 알던 그 윤지은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괜찮은 줄 알았어. 이렇게 심각할 줄 몰랐어.”윤지은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 그녀도 다리에 흉터가 남을까 봐 걱정됐다.“안돼. 너무 아파. 얼른 병원 데려다줘.”강한나는 화가 나면서도 어쩔 수 없어 윤지은을 업고 일어났다.“못 말려 정말. 여자는 역시 사랑에 빠지면 안 된다니까.”윤지은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그런 거 아니야. 허튼 생각 하지 마. 정말 실수로 이런 거야. 이렇게 심각할 줄 몰랐어.”“알았다. 알았어. 해명할 거 없어. 그럴수록 오히려 뭘 숨기려는 것 같으니까.”강한나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윤지은이 떠난 뒤 윤미화만 밖에서 나를 기다렸다.약 30분 뒤, 나는 풀려났다. 하지만 윤미화만 보여 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지은 씨는요?”“몰랐어?”“뭘요?”“다리에 화상을 입어 물집까지 잡혔는데 수호 씨를 돕겠다고 달려온 거였어. 방금 경찰 친구가 병원에 데려갔어.”윤지은이 화상을 입다니. 어쩐지 방금 절뚝거린다 했는데.그 정도로 화상을 입었다면 절대 가볍지 않다.게다가 여자는 누구나 예쁜 걸 좋아하니 흉터가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게 먼저일 텐데, 윤지은은 상처를 치료하러 가지 않고 먼저 나를 찾아왔다.나는 윤미화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어
윤지은은 마음이 초조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때문에 실수로 컵라면을 엎어 뜨거운 물이 다리 위로 흘러내렸다.윤미화는 아파서 찬 공기를 들이마셨지만 대충 찬물로 덴 곳을 헹구고 얼른 옷을 입고 밖으로 향했다.“무슨 일인데요? 상세하게 말해 봐요.”윤미화는 자초지종을 대충 설명했다.이윽고 윤지은은 곧바로 강한나에게 연락했고, 경찰서에 인맥이 있던 강한나가 인맥을 통해 말을 해둔 덕에 윤지은과 윤미화는 곧바로 나를 찾아왔다.“윤지은? 여긴 어쩐 일이에요?”평소 혼잣말 할 때 이름만 부르는 게 습관이 되어 무의식적으로 이름이 튀어나왔다.윤지은은 절뚝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윤지은이 걷는 모습에 나는 어리둥절했다.“다리는 왜 그래요?”“아무것도 아니야.”윤지은은 솔직히 말하지 않고 의자를 당겨 그 위에 앉았다.“일은 대충 들었어. 하지만 상대가 절대 합의는 안 해주겠다고 하네. 정말 의서를 돌려줄 생각 없어?”나는 단호하게 말했다.“절대 안 내놔요. 내놓으면 끝이에요. 그건 제 할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물건이에요.”“그럼 강도죄가 성립되어 감옥살이해야 해.”윤지은이 강조했다.나는 복역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거예요?”윤지은은 고개를 저었다.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어쨌든 그 의서는 절대 내놓을 수 없어요.”“봐요. 내 말 맞죠? 참 융통성이 없다니까요.”윤미화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그때 윤지은도 나를 날카롭게 째려봤다.“융통성도 없고 멍청하기도 하네요.”“내 상황을 보고도 욕이 나와요?”‘참 동정심도 없다니까.’윤미화는 결국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죽어도 뜻을 안 꺾겠다고 버티는 거야? 이게 뭔지 봐 봐.”윤미화는 새 책 하나를 나한테 건넸다.너무 궁금한 나머지 몇 장 펼쳐 본 순간 나는 눈이 커다래졌다.“이, 이건 제 할아버지가 남긴 의서 내용이잖아요.”‘왜 인쇄되어 있지?’할아버지가 남긴 의서는
“고집 한 번 세네. 아주 정호섭과 똑같아. 좋아. 그럼 나도 쓸데없는 말 하지 않을게.”서윤기는 손을 휙 저었다. 그러자 바로 옆에 있던 직원이 내 몸을 더듬었다.“서 사장님, 없어요.”서윤기는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봤다.“의서를 숨겼어?“그건 원래부터 우리 집 의서였어.”“그런데 지금은 내 거야. 네놈이 내 물건을 빼앗았으니 내가 신고하면 넌 감방행이야.”“정수호,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줄게. 나랑 손잡으면 의서 건은 책임을 묻지 않고 큰돈을 만지게 해줄게.”나는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아무리 돈이 좋아도, 난 깨끗한 돈만 취급해. 양심을 팔아 돈 버는 일은 안 해.”“좋아. 그럼 신고하지.”30분 뒤, 경찰 몇 명이 현장에 도착했고 호텔 CCTV에 찍힌 바람에 나는 잡아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다 나는 결국 경찰들에게 잡혀갔다.내가 잡혀가는 걸 보자 윤미화는 다급히 달려와서 물었다.“무슨 일이야?”“의서는 찾았어요?”나는 가장 걱정되는 것부터 물었다.그러자 윤미화는 고개를 끄덕였다.“찾아서 챙겼어. 그런데 왜 잡혀가는 거야?”“그 약재상이 신고했어요. 의서를 내놓지 않는다고 잡혀가는 중이고요.”“의서가 뭐라고 주면 될 거 아니야.”“안 돼요. 그건 할아버지가 저한테 남겨준 거라 절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면 안 돼요. 서윤기는 악덕 상인이라 그 책을 망가뜨릴 거예요.”나는 그 의서만큼은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다.“그럼 나도 구해줄 수 없어.”나는 윤미화의 인맥이 얼마나 넓은지 알고 있다. 때문에 이 일도 솔직히 윤미화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 모양이었다.서윤기의 인맥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경찰들은 나를 경찰서에 데려간 뒤 서둘러 심문하지 않고 취조실에 계속 가두었다.이건 분명 절차에 맞지 않다. 그렇다면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서윤기의 체면을 봐서 일부러 이러는 거다.안에 갇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윤미화가 나를 꺼내주기만을 기다렸다.윤미화는 강북
윤미화는 위층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막았지만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사람은 막지 못했다.그 사람들은 방을 한 칸 한 칸 수색하다가 결국 내가 숨어 있는 방에 쳐들어와 다짜고짜 나를 잡았다.그러고는 곧장 나를 8층 808호실로 끌고 갔다.놈들에게 끌려가면서도 나는 속으로 기뻤다.내 계획이 성공했으니 말이다.서윤기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담담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내가 말했잖아. 발버둥 치지 말라. 그러게 왜 말을 안 들어?”“내가 전에 사람 잘못 봤네. 서윤기 당신도 다른 사람이랑 똑같이 눈에 돈밖에 없는 인간이었어.”나는 서윤기를 비아냥거렸다.그러자 서윤기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돈 버는 게 나빠? 뭐 문제 있어? 난 상인이야. 상인이 돈 벌지 않고 설마 사람을 구할까?”“아무리 돈을 벌고 싶어도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지. 약재 가격을 높이는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안 좋은 약재와 좋은 약재를 섞어서 팔고 가짜 약재로 진짜 약재를 바꿔치기 할 수 있어? 이건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야.”이건 내가 가장 참지 못할 부분이다.약재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약재상이 질이 안 좋은 약재를 섞어 팔고 가짜 약재로 수만 채운다면, 약은 제 약효를 발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환자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그때 서윤기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내가 예전에 정 사장이랑 같이 일할 때 항상 가장 좋은 약재를 가장 싼 가격에 팔았어. 그렇게 매일 개처럼 일했는데 결국엔 고작 몇 푼밖에 못 벌었다고.”“내가 지난 몇 년 동안 고생해서 번 돈이 동종업자들이 1년 동안 번 것보다 적었어.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놀리고 비꼬아 댔는지 알아? 병에 걸린 환자들도 약을 먹고 병이 나으면 의사한테 고마워하지, 누가 약재상한테 고마워해?”“양쪽에서 모두 찬밥 신세 당하면서 내가 왜 남 좋은 일만 해야 하는데? 내가 정 사장과 협력하지 않은 이후로 한 달에 얼마씩 버는 줄 알아?”“4억 가까이 돼. 전에는 1년에도 이 정도 못 벌었어. 매달 4억이면
그 행동을 본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뭐 하는 거예요?”서윤기는 라이터를 의서에 가까이 가져갔다.“호텔 에어컨이 좀 춥지 않아요? 우리 따뜻하게 해요.”나는 다급히 의서를 빼앗았다.“미쳤어요? 의서에 얼마나 많은 난치병 치료 방법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걸 태우면 사람들의 희망을 태우는 거나 다름없어요.”서윤기는 라이터를 내려놓고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난 장사꾼이지 의사가 아니에요.”“이...”나는 전에 서윤기가 유순하고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야 비로소 이 사람도 그저 돈만 밝히는 악덕 상인이라는 걸 알았다.나뿐만 아니라 정 사장님도 그동안 서윤기에게 깜빡 속았다.손에 든 의서를 그대로 포기하자니 나는 너무 아쉬웠다.이건 할아버지의 심혈이다. 의서 한 권을 집필하려고 우리 정씨 가문이 대대로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없다.하지만 이 의서를 건지려면 서윤기와 손을 잡아야 하고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내 마음은 너무 복잡했다.그때 문득 대담한 생각이 떠올라 나는 의서를 챙긴 뒤 이를 악물고 밖으로 도망쳤다.하지만 얼마 못 가 호텔 직원이 내 뒤를 따라붙었다.어쩐지 내가 의서를 갖고 도망쳐도 서윤기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했더니 호텔 안팎에 이미 서윤기의 사람이 가득했다.나는 절대 잡히면 안 된다는 일념 하나로 죽을 듯이 도망쳤다. 호텔 직원이 쫓아오면 그 사람을 발로 차고 때리면서 의서를 꼭 지켜내려고 아등바등했다.그와 동시에 나는 윤미화에게 전화했다.“지금 어디 있어요?”[호텔이지. 무슨 일인데?]“지금 누가 절 죽이려고 해요. 윤 사장님이 좀 도와줘요.”나는 도망치면서 되도록 일을 심각하게 설명했다. 그건 윤미화가 빨리 나를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헉. 무슨 일인데 그래? 지금 몇 층이야?]“8층에서 내려가는 중이에요.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사람들이 쫓아와요”나는 신속히 내 상황을 설명했다.그러자 윤미화는 잠깐 생각하더
서윤기의 말에 나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하긴, 서윤기 같은 사장한테 몇천만 원은 돈도 아니다.만약 서윤기가 거래할 마음이 없다면 내가 모든 재산을 준다고 해도 절대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다.하지만 이렇게 포기하려니 내키지 않아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의서를 저한테 팔 건데요?”“이 의서는 나한테 필요해서 안 판다고 했을 텐데요.”서윤기는 끝까지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그 때문에 나는 계속 서윤기에게 끌려가기만 했다.“서 사장님은 그 의서로 저와 거래할 생각이죠?”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그러자 서윤기가 담담하게 웃으며 자기 잔에 와인을 따랐다.그 동작은 내 생각이 맞다는 걸 충분히 증명했다.하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서윤기를 보니 나는 마음이 불안해졌다.“강북 한약 상회 일이라면 전 결정권이 없어요. 정 사장님도 이미 건강을 회복했으니 상회 일은 사장님이 다시 맡고 있으니까요.”나는 먼저 내 생각을 내비쳤다.그제야 서윤기는 손에 든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며 입을 열었다.“돈은 나도 많아요. 돈 벌 루트가 필요한 거지. 하지만 난 내 파트너한테는 항상 관대하거든요. 파트너들과 함께 돈 버는 것도 좋아하고요.”서윤기는 애매모호하게 말을 흐렸지만 나는 단번에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서윤기는 내가 자신과 손을 잡으면 의서를 바로 주겠다는 뜻이었다.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서윤기를 바라봤다.“전 이제 상회 일도 관여하지 않는데 저랑 손잡아서 서 사장님한테 무슨 이득이 있죠?”“수호 씨가 상회 일에 관여하지 않지만 정 사장과 사이가 좋은 건 상회 사람들이 다 알고 있죠. 수호 씨가 나서면 정 사장의 뜻을 대변할 수 있을 거예요.”‘이 너구리 같은 인간이 이걸 노린 거였네.’나는 이제야 서윤기의 속내를 완전히 알았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렇다면 실망하시겠네요. 저는 정 사장님께 미안한 일은 안 해요.”서윤기는 의서를 꺼내 테이블 위
“아, 네. 들어와 앉았다 갈래요?”“그러죠.”서윤기는 사실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지만 나는 냉큼 기회를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방금 봤던 여자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조금만 실수하면 속살이 다 노출될 지경이었다.여자는 이런 상황과 장소가 매우 익숙한 듯했다.그때 서윤기가 여자에게 돈을 한 웅큼을 던져주며 나가라는 눈치를 주자 여자는 아무 말없이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뒤 옷을 갈아입고 나오더니 엉덩이를 흔들며 방을 나갔다.서윤기는 그제야 나에게 와인 한 잔을 따라주었다.“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수호 씨는 강북에서 생활하지 않아요? 설마 호텔에서 지내요?”나는 서윤기가 나를 찔러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차분하게 대답했다.“저도 이제 사업하는 사람이니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호텔에 머무는 건 불가피한 일이에요. 집에 가는 게 오히려 더 어렵다니까요. 그런데 이곳에서 서 사장님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큰 사업을 하는 사장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가끔 재미를 보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나도 아예 세상 물정 모르는 건 아니다.서윤기는 내 말에 허허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하지만 몇 분만 더 일찍 왔더라면 큰일 났을 거예요.”‘늙은 여우 같은 것.’서윤기가 상회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으면 내가 끌려다닐 게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윤기는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내가 결국 먼저 말을 꺼내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쓸데없는 얘기만 하면서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할 테니까.나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서 사장님, 전에 조천석 사장님한테서 의서를 구매하셨죠?”“조천석? 어디 보자... 내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만난 사람이 하도 많아서 기억이 나지 않네요.”‘이 자식 일부러 이러는 거네.’나는 결국 직접적으로 힌트를 줬다.“강북 경진당 사장 조천석 말이에요. 책 이름이 ‘고의문’인데 기억나시나요?”내가 이 정도로 알기 쉽게 말했는데 계속 모
현성과 민우는 내가 혼자인 게 시름이 놓이지 않고 걱정되어 돌아온 거엿다.무엇보다 내가 이번에 건드린 사람은 임천호다. 바로 그 S시 전체를 주름잡고 수많은 용병을 거느리고 있는 효웅이라 불리는 남자 말이다.우리는 그런 사람을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봤지 현실에서 만난 적이 없다.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우리 같은 새내기한테 그런 사람은 닿을 수도 없고 두려운 존재다.하지만 현성과 민우는 두려워하지 않고 내 곁에 있기로 했다.이건 단지 감동이라는 단어로 형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건 목숨을 나눈 우정과도 같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천수백 마디로도 우리의 우정을 표현할 수 없었으니까.나는 방 두 개를 현성과 민우에게 내어주고 혼자 거실에 누워 속으로 감탄했다.이 순간 흥분과 감동, 두려움과 무서움이 한데 섞여 내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하지만 이렇듯 신맛이 났다 단맛이 났다 쓴맛이 났다 매운맛이 나는 이런 과정이 바로 성장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잠들어 버렸다.다음 날, 우리 셋은 함께 천수당에 출근했다.나는 되도록 얼굴을 비추지 않으려고 내실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러다가 10시가 넘었을 때쯤 윤미화가 서윤기의 행방을 찾았다며 전화해 왔다.“어디 있는데요?”[샹젤리호텔. 내가 지금 마침 그곳에 가봐야 하니까 먼저 가서 확인해 볼게.]그 말을 들으니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뭐 하러 가는데요?”[고객이 거기서 기다려. 설마 내가 수호 씨랑 같이 가고 싶어서 일부러 이런다고 생각했어?]나는 순간 머쓱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그래요. 그럼 부탁할게요. 오해한 건 미안해요.”나는 윤미화를 단단히 오해했다는 걸 자각하고 다급히 사과했다.그러자 윤미화가 웃으며 말했다.[말만으로 미안하다면 다야? 실제 행동을 보여줘야지.]“사장님, 우리 한 식구 아니었어요? 뭐 하러 조목조목 다 따져요? 거리감 들게.”[누가 한 식구라는 거야?]“아니에요? 우리 탐정 사무소는 한 가족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