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속이 메쓱거리고 불편했다.‘아내랑 이혼하면서 왜 이런 말까지 나한테 하지? 아내를 대체 뭐로 생각하는 거야? 장난감?’하지만 아무리 속이 뒤틀리고 불편해도 나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할 수 없었다.오히려 현실에 타협한 채 고개 숙여야 했다.그도 그럴 게, 왕정민이 높은 자리에 있고, 사람들한테 존경받는 존재니까.“열심히 해 봐. 좋은 소식 기대할게.”왕정민은 직원을 격려하듯 나를 격려했다.그때 애교 누나가 밖에서 들어왔다.애교 누나는 방금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터라 여전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무슨 얘기 하길래 그렇게 기분 좋아 보여?”왕정민은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수호한테 당신에 대한 얘기 좀 했지.”“무슨 얘기?”“우리 마누라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마누라니까 앞으로 마누라 찾으려면 당신을 표준으로 삼으라고.”애교 누나는 이내 얼굴을 붉혔다.“왜 그런 얘기를 하고 그래? 부끄럽게?”“부끄러울 거 뭐 있어? 수호는 우리 동생인데 노하우 좀 전수해야 하지 않겠어?”그 말에 사람들은 모두 깔깔 웃어댔다.하지만 나는 도저히 들을 수 없어 코를 박고 술만 마셔댔다.한 잔, 두 잔...내가 쉴 새 없이 마셔대자 애교 누나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물었다.“수호 씨, 왜 그래요? 왜 그렇게 많이 마셔요?”“술 처음 마셔서 조절 못 했나 봐.”애교 누나의 눈에는 의아함이 스쳐 지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왕정민의 곁에 앉았다.왕정민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마음을 바꾸고 남아서 함께 식사했다.그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형은 왕정민과 함께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식사를 마치자 왕정민은 일이 있다며 형더러 우리를 집에 바래다주라고 했다.“이제 막 돌아왔으면서 벌써 가려고? 집에서 이틀 정도 머물다 가지.”애교 누나가 아쉬운 듯 붙잡자, 왕정민은 애교 누나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중요한 사업이라 내가 직접 가야 해. 몇억짜리 사업인데 당신도 내가 놓치는 거 싫잖아. 이 사업만 성사되면
한편, 왕정민의 커다란 손이 닿자 애교는 흥분되면서도 괴로웠다.그건 왕정민의 손을 너무 오래 타지 않은 탓이었다.그렇지 않으면 오늘 아침 그렇게 수호를 몰래 만지지도 않았다.그때 왕정민이 손을 애교의 치마 속으로 넣어 미끈거리는 액체를 만지더니 더 흥분한 듯 말했다.“정말 안 돼?”왕정민은 점점 더 대담하게 행동하며 애교의 귓가에 속삭였다.애교도 그동안 너무 목말라 있었기에 부끄러운 것도 뒷전으로 한 채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 그럼 자기가 가서 동성 씨와 태연한테 말해.”“알았어.”왕정민은 다급히 형과 형수 앞에 다가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아니면 먼저 가. 애교는 내가 나중에 데려갈 테니.”형과 형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이윽고 형수가 나를 부축한 채 차 뒷좌석에 앉았다.나는 물론 술을 많이 마셨지만 아직은 의식이 또렷했기에 왕정민이 애교 누나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다정하게 호텔로 들어가는 걸 보니 가슴이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다.왕정민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알고 있으니까. 지금 애교 누나를 데리고 호텔로 가는 것도 진짜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냥 잠자리를 가지려는 것뿐이다.그런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서러워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형수, 저 너무 괴로워요.”나는 형수의 품에 안겨 눈물을 뚝뚝 흘렸다.형수는 마음 아픈 듯 그런 나를 안아주었다.형수도 내가 애교 누나한테 마음이 흔들린 걸 알고 있고, 내가 방금 장면을 보고 슬퍼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때문에 아이를 달래듯 인내심 있게 나를 달래주었다.그에 반해 형은 내가 그저 술주정을 벌인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형수 품에 안겨 있는 걸 관여하지 않았다.처음에는 괴롭던 마음도 한참 울고 나니 많이 나아졌다.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내가 형수의 가슴 위에 엎드려 있다는 걸 눈치챘다.그것도 형수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로.형수 가슴은 너무 커서 내 얼굴이 완전히 묻힐 지경이었다.게다가 너무나도 부드럽고 말캉했다.나는 형수한테 나쁜 짓
그것도 왕정민이 변태처럼 애교 누나를 취하는 모습. 그걸 생각하니 순간 화가 치밀었다.‘왕정민 같은 쓰레기는 왜 애교 누나의 사랑을 받고, 나는 진심을 다해 대해주고도 오히려 미움만 받는 건데?’나는 왠지 모르게 눈앞에 있는 여자를 끌어안고 거칠게 입을 맞췄다.“수호 씨, 뭐 하는 거예요? 나 수호 씨 형수예요. 얼른 이거 놔요.”“애교 누나, 누나 남편 누나 사랑하지 않아요. 나더러 누나를 꼬시라고 했다고요. 그 사람은 누나를 아무 가치 없는 사람으로 여겨요. 아니, 그래도 조금의 가치는 있겠네요. 누나를 당당히 취할 수 있는 거.”“그놈이 누나와 그런 짓 하는 건 누나를 모욕하려는 거예요. 저는 누나가 그런 일 당하는 거 보기 싫어요.”나는 애교 누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꼭 끌어안은 채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모두 내뱉었다.그렇게 내뱉고 나니 내 마음도 어느 정도 편해졌고 이내 의식을 잃었다.하지만 의식을 잃은 뒤에도 여전히 형수를 안고 있다는 건 알지 못했다.한편, 태연은 수호가 술에 취해 자기를 애교로 착각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원래는 밀어내려 했지만 수호가 내뱉은 솔직한 말에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이애교, 난 참 너를 불쌍해해야 할 지 부러워해야 할지 모르겠어. 왕정민은 너 배신했지만 이렇게 좋은 수호 씨 같은 남자를 네 곁에 남겨줬잖아. 솔직히 네가 너무 부러워.”“네가 수호 씨의 진심을 제대로 느꼈다면 왕정민한테 얽매이지는 않았겠지. 그런데 나는 달라, 나는 다른 사람을 찾아 다시 시작할 이유도 없어.”그걸 생각하면 태연은 한숨이 나왔다.‘내가 동성 씨랑 아무 사이도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태연은 한참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이건 모두 너무 터무니없고 비현실적인 환상일 뿐이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소용없다.태연은 수호의 머리를 들어 베개에 눕히려 했지만 너무 무거운 나머지 수호의 무게에 딸려 같이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아!”그 순간 수호의 튼실한 팔이 느껴지자 태연은 가슴이 두근거
그러면서 젊고 힘세고 잘생긴 내가 더 좋다고 했다.애교 누나는 왕정민과 결혼한 몇 년 동안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다고 했다.그래서 내가 그걸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그 말에 나는 너무 흥분되어 애교 누나를 그대로 덮쳤다....하지만 현실 속에서 내가 안고 있는 여자는 형수였다.그 시각, 그저 나를 안고 잠깐만 자고 일어나려던 형수는 이상함을 느꼈다.그도 그럴 게, 나의 그곳이 형수에게 닿았기 때문이다.그것도 모자라 내가 자꾸만 몸을 움직이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애교 누나, 사랑해요. 저 누나 정말 사랑해요.”“나쁜 자식, 나를 안고 다른 여자 이름을 불러?”형수는 내 손을 떼어내고 품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내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게다가 내가 몸을 점점 떨며 사정을 해버렸다.그 순간 너무 놀라 일어난 나는 그제야 내가 형수를 안은 채 아래가 축축해졌다는 걸 인지했다.“형수, 형수가 왜 여기 있어요?”형수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내가 고생스럽게 방까지 부축해 줬는데 수호 씨가 나한테 무슨 짓 했는지 봐 봐요.”형수는 투덜대며 내 아래를 보더니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동성 씨 일 년 치 양보다 더 많잖아. 이러니까 내가 임신을 못하지. 동성 씨가 수호 씨 반만 했으면 우리 아이가 지금쯤 학교에 갔겠네.’태연은 보면 볼수록 부럽고 설렜다. 심지어 빌려 쓰고 싶다는 생각마저 했다.그 시각 나는 형수를 안고 그런 일을 했다는 생각에 쪽팔려 미칠 지경이었다.꿈에서 봤던 장면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웬 여자를 안고 그 짓을 했다는 것밖에.하지만 현실 속에서 안고 있던 게 형수였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형수님, 죄송해요. 저 정말 나쁜 놈이에요. 어떻게 형수한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지?”나는 말하면서 내 입을 쳤다.그러자 형수가 다급히 내 손을 잡았다.“수호 씨 뭐 하는 짓이에요?”“이렇게 벌이라도 줘야 다음에 안 그러죠. 저 앞으로 절대 형수한테 이상한 짓 안 할게요.”
형수가 나간 뒤, 나는 새 팬티를 꺼내 갈아입었다.하지만 방금 형수를 안고 그런 쪽팔린 짓을 한 걸 생각하면 아직도 창피해 견딜 수가 없었다.‘아니야, 괜찮아. 형수는 나를 동생처럼 생각하잖아.’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니 아까보다는 덜 쪽팔렸다.나는 갈아입은 팬티와 바지를 갖고 방에서 나와 화장실로 들어갔다.“형수, 저 갈아입었어요.”나는 얼굴을 붉히며 갈아입은 팬티와 바지를 형수에게 건넸고, 형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받았다.하지만 내가 원래 청바지 안에 숨겨놨던 팬티를 형수는 아예 빼내 씻으면서 말했다.“수호 씨는 뭐든 다 좋은데 수줍음이 너무 많아요. 사내가 그렇게 수줍음이 많아서 여자를 어떻게 꼬시겠어요?”“뭐 학교 다닐 때 연애를 안 해서 그렇다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남학생들이 고등학생 때부터 그 짓을 하고 다녔어요. 남자가 돼서 너무 정직하면 안 돼요. 안 그러면 결혼도 남자들 많이 만나본 여자와 하게 돼요.”“다 그런 건 아니지 않나요? 그래도 남자 함부로 만나지 않는 좋은 여자가 있을 거잖아요.”그 말에 형수는 피식 웃었다.“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요? 네, 그런 여자가 있는 건 맞아요. 하지만 만 명 중에 한 명 찾아내기도 바빠요.”“착하고 순진한 여자일수록 남자한테 쉽게 속아 몸과 마음 다 바쳤다가 버려져요. 그리고 그제야 남자는 믿을 게 못 된다는 걸 인지하고 자기한테 잘해주고 정직한 사람 찾아 결혼하고 내 낳아요.”“반대로 원래부터 노는 걸 좋아하는 여자애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결혼해도 애인을 몇이나 뒀는지 몰라요. 수호 씨는 너무 정직해요. 그런 성격은 사회에서 손해 많이 봐요.”나는 이게 형수가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이라는 걸 알고 있다.나도 내가 너무 정직하고 성실하다고 생각하니까.학교 다닐 때, 사실 나도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하지만 용기 내어 고백하지 못했을 뿐.그러다 결국 다른 남학생한테 빼앗기고 말았다. 심지어 소문에 그 여자애는 고등학생 때 임신해 그 남자애와
‘형수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왜 이렇게 부끄러워해?’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안방 화장실로 향했다.이 화장실은 밖에 있는 것보다 작았지만 필요한 건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나는 화장실 문을 잠그고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그러다가 선반 위에 올려놓은 것이 모두 샤워용품이라고 생각해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뻗다가 뭔지 모를 물건을 떨어뜨리고 말았다.나는 그게 당연히 형수의 화장품이라고 생각했다.형수의 화장품은 모두 유명 브랜드라 아주 비싸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그래서 깨뜨리기라도 했을까 봐 허리를 숙여 이리저리 찾았다.그리고 내가 발견한 건 웬 오리 모양 주전자였다.그것도 가죽으로 만든.‘이건 대체 뭐지? 안에 로션 같은 것도 없는데?’나는 샤워하고 나서 형수한테 물어보려 조심스럽게 그 물건을 다시 세면대에 올려놓았다.만약 이게 형의 워크맨이거나 이어폰 같은 거면 물어내야 하니까.샤워를 마친 뒤 나는 그 물건을 손에 든 채 나왔다.그때 마침 형수도 방에 들어오자 나는 손에 든 물건을 내밀며 물었다.“형수, 이게 뭐예요? 아까 샤워하다가 실수로 떨어뜨렸는데 망가졌는지 모르겠어요.”그러자 형수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입꼬리를 비틀었다.“이건 좀 부끄러운 건데, 알고 싶어요?”‘부끄러운 거? 설마 성인용품인가?’그 생각에 내 얼굴은 순간 화르르 타올랐다. 하지만 궁금하기는 했다.나도 성인용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줄이 달린 거라든가, 남자 거기를 본떠 만든 거라든가.하지만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건 처음 보는 거다.이에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지만 이 말을 내뱉는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그러자 형수가 내 손에서 그 물건을 가져가 오리주둥이를 손가락에 끼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이건 여자들이 사용하는 거예요. 이곳을 여자의 그곳에 대고 누르면 빨아당기거든요.”‘아아아!’나는 수없이 많은 가능성을 생각했
웅웅-나와 형수가 대화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꺼내서 확인해 보니 애교 누나가 나한테 온 전화였다.“애교 누나예요.”나는 핸드폰을 형수 앞으로 내밀며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지금쯤 애교 누나는 왕정민과 호텔에서 좋은 시간을 내고 있어야 할 텐데 왜 나한테 전화했지?’“받아 봐요. 뭐라는 지 보게.”나는 형수의 말에 짤막하게 대답하고 이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애교 누나.”“수호 씨, 혹시 우리 집으로 와서 나 마사지해 줄 수 있어요?”애교 누나의 말에 나는 형수를 바라봤다.그랬더니 형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동의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나는 형수가 시키는 대로 동의하고 이따가 곧 가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고 형수를 바라봤다.“형수, 이게 무슨 뜻이죠?”형수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내 생각이 맞는다면, 왕정민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 같아요.”“네? 왜 그렇게 확신해요?”“왕정민의 애인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거든요. 내가 볼 때, 왕정민이 이번에 애교 보러 오면서 그 여자한테 말 안 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여자가 불안해서 왕정민한테 미행을 붙였다가 덜미를 잡았을 거고.”나는 형수의 말을 들을수록 어안이 벙벙했다.“그런데 그게 애교 누나가 저한테 전화한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형수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쿡 찔렀다.“수호 씨 정말 바보네요. 애교가 전화로 뭐라고 했어요?”“마사지해달라고요.”“그거 핑계예요. 진짜 목적은 수호 씨한테서 만족감을 얻으려는 거라고요. 그런데 애교 성격에 어디 그걸 직접 말하겠어요? 그래서 마사지해달라는 핑계로 불러낸 거라고요.”“남자든 여자든 성욕이 불타올랐을 때 해결하지 못하면 다 괴롭고 불편해요. 애교가 아무리 보수적이어도 욕구는 있을 거예요. 이건 수호 씨한테 주어진 기회니까 잘 잡아요.”형수의 그럴싸한 설명은 정말로 믿음이 갔다.그게 진짜든 아니든 애교 누나네 집에 가는 건 변함없겠지만.게다가 나는 왕정민이 애교 누나한테 손대지 못했다니
나는 먼저 애교 누나한테 전화했다.“애교 누나, 저 지금 가고 있는데 직접 문 열고 들어가요? 아니면 누나가 열어 줄래요?”“직접 열고 들어와요. 나 침실에 있어요.”애교 누나가 전화로 대답했다.“그래요.”그 말에 나는 곧바로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갔다.침실에 도착하니 애교 누나가 나를 향해 손을 저었다.“수호 씨, 여기요.”나는 공구함을 들고 침실로 걸어 들어갔다.애교 누나가 침대에 엎드려 있는 걸 보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누나, 왜 이래요?”“아까 층계를 오르다가 삐끗했어요.”애교 누나는 뭔가 찔리는 듯 대답했다.“아, 그럼 제가 풀어드릴게요.”나는 공구함에서 연고를 꺼냈다.이 연고는 우리 할아버지가 직접 연구 개발한 건데, 타박상에 매우 효과적이다.“애교 누나, 옷 좀 들게요.”나는 애교 누나가 무례하다고 생각할까 봐 먼저 의견을 물었다.그랬더니 애교 누나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그, 그래요.”애교 누나는 실크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나시와 바지로 나뉜 세트였다.때문에 웃옷만 들출 수 있어 속살이 보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애교 누나의 집에서 그것도 이토록 가까이에서 애교 누나의 피부를 감상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게다가 형수의 그런 말을 듣고 나서 애교 누나의 여리여리하고 하얀 허리를 보니 나는 저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왔다.애교 누나의 몸매는 아주 완벽했다.여리여리하지만 나올 데는 나오고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탄탄한 애플힙과 S자로 된 골반 라인은 그야말로 완벽했다.그걸 보니 저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누나 몸매 너무 좋네요.”애교 누나는 그 말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그건 아직 애를 안 낳아서 그래요. 애 낳으면 몸매 망가질걸요.”“아니에요. 누나는 애 낳아도 여전히 예쁜 몸매 유지할 거예요.”“왜 그렇게 확신하는데요?”“누나는 골격이 천성적으로 작아요. 이런 여자는 살이 안 찌거든요.”내가 솔직히 대답하자 애교 누나는 피식 웃었다.“수호 씨는 말 너무 잘
내가 노랑머리한테 준 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족히 10만 원 가까이는 됐으니까. 백수들한테는 이것도 큰돈이나 다름없다.노랑머리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아직 대답을 못한 사람들은 얼른 다른 질문을 하라고 나를 재촉했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했다.“그럼 혹시 이연화 혹은 조금희가 요즘 낯선 사람과 만난 걸 본 사람이 있어요?”그 물음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나는 실망했다.“세 번째 질문, 혹시 누가 나 대신 이연화를 감시할래요?”모든 사람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럼 다 같이 해요.”“그럼 돈은 어떻게 계산하는 거예요?”노랑머리가 물었다.나는 가방에서 또 돈 두 뭉치를 꺼냈다.“세 명이 감시해요. 한 사람당 200씩 줄게요.”세 사람의 눈은 커다래지더니 급기야 반짝반짝 빛이 났다.나는 세 사람에게 귀띔했다.“이 돈은 수고비예요. 누가 만약 유용한 단서를 제공하면 이 외에도 큰 보상을 받게 될 거예요.”‘역시 돈이 있으니 뭐든 쉽게 되네.’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성실하게 일하게 하려면 이 사람들 마음을 매수하는 게 우선이다.몇백만 원은 지금의 나한테 큰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사모님을 도울 수 있다면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모든 일을 마친 뒤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윤지은의 말을 들어보니 사모님은 이미 잠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모님 정서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기분이 다운된 사람은 쉽게 졸리고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나는 방금 전 일을 윤지은에게 말했다.“이번 일 조사하기 엄청 어려울 거예요. 언제 진실이 밝혀질지도 모르겠고. 장기전을 할 준비는 됐어요?나는 윤지은을 보며 말했다.그러자 윤지은이 나를 째려봤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미는 내 베스트 프렌드야. 유미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내가 같이 있어 주지 않으면 누가 같이 있어 줘? 그러는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설마
나와 윤지은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우리는 사모님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사모님, 비록 어렵지만 아무 희망도 없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끝까지 견지하면 분명 수확이 있을 거예요. 게다가 사장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줄 거예요.”사장님을 언급하자 사모님의 정서는 드디어 조금 안정되었다. 사모님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호섭 씨, 정말 우리를 지켜줄 거야?”“당연하지.”윤지은도 사모님을 위로했다.그때 내가 분석했다.“제가 볼 때 이연화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요. 그 여자가 한 말 진짜 아니에요.”“너도 그래?”보아하니 윤지은도 똑같은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넌 어떻게 보아냈는데?”“느낌이 그래요. 이연화가 그렇게 드센데 남편 일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돼요. 게다가 조금희 카드에 입금된 2억이 이연화랑도 연관된 것 같아요.”이건 내 직감이다.나는 왠지 이연화 같은 신분과 배경에 성깔 있는 여자라면 통제욕이 엄청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여자가 자신을 배신했던 남자를 나 몰라라 방치할 수 있을 리가 있을까?그건 그 여자 성격에 부합되지 않는다. 윤지은의 관점 역시 나와 어느 정도 비슷했다. 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며 맞장구치면서 보충했다.“그리고 또 이연화가 2억을 얘기할 때 자꾸 눈빛을 피했어. 그건 거짓말한다는 표현이야.”“문제는 그 여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예요.”이건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그건 간단해. 내가 사람을 시켜 그 여자를 감시하라고 할 거야. 그러면 분명 허점을 보일 거야.”이런 건 역시 돈이 많아야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다.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나는 얼른 맞장구쳤다.“만약 그곳 주민을 감시자로 붙여두면 더 좋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이연화 행적을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윤지은은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봤다.“그건
사모님의 기세에 눌린 이연화는 오만하고 안하무인이던 태도가 싹 사라지고 다급히 대답했다.“말할게, 말한다고. 이거 먼저 놔.”사모님은 그제야 이연화 머리채를 놔주었다.이연화는 머리를 마구 문질러댔다. 심지어 얼굴까지 시뻘게진 걸 봐서는 사모님의 공격에 적지 않게 다쳤음을 알 수 있었다.이연화는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제야 입을 열었다.“그 2억은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그 인간이 우리 모자한테 주는 보상이라면서 줬어요.”“당신은 그 사람 아내인데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우리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자 이연화가 조급히 말했다.“내 말 다 사실이에요. 난 정말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우리가 부부인 건 맞지만 명의상 부부나 다름없었어요. 그 인간이 나 몰래 불여우를 만나다가 잡힌 적도 있어요.”“그때 그 인간이 이혼만 하지 말자고 싹싹 빌지 않았으면 진작 헤어졌을 거예요.”여자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그 2억이 어디서 났는지 몰랐다면, 조금희 씨가 불치병이라는 건 알았겠죠?”이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알아요. 그 인간이 오래전에 내 앞으로 보험을 들어 놓을 걸 줬었거든요. 자기가 가면 보험사에서 돈이 나올 거라면서.”이건 모두 일가 조사했던 내용이었다. 다만 이연화가 말한 사실이 모두 진짜인가 하는 게 문제였다.나는 이연화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그날 장례식장에서 화장을 미뤄달라고 했는데 왜 안 들었어요?”“나 할 일 많아요. 당신들과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인간이 당한 사고가 단순 사고든 인위적인 사고든 난 관심 없어요. 그 인간이 내 앞으로 돈을 남겼으니 난 그 돈을 얼른 받아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이연화는 조금희와 더 이상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아 조금희 일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하지만 2억의 존재를 모른다는 게 진짜일지 의문이었다.만약 진짜라면 사건의 실마리는 또 끊기게 된다.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질
그렇다면 우리의 추측이 거의 맞는 거로 증명이 된 셈이다. 게다가 이연화는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거다.“이러면 이연화 모자만 찾으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겠네요.”우리는 일이 이렇게 순조로울 줄 몰랐다.심지어 사모님은 마음이 급해 벌떡 일어섰다.“더는 못 기다리겠어. 나 지금 당장 이연화 만나러 갈래.”“유미야. 아직 조급해하지 마. 지금 이연화 모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이렇게 해, 내가 한나한테 조사해 보라고 할게.”윤지은은 강한나에게 전화해 이연화 모자가 사는 곳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직무상 편의를 이용해 강한나는 곧바로 이연화 모자의 거주지를 찾아냈다.[미리 말하는데, 이연화 모자 좋은 사람 아니야. 이연화 아버지는 판자촌 터줏대감이라 되도록 갈등을 만들지 마.]“알았어.”이연화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무조건 가봐야 했다. 그건 사모님한테는 더더욱 간절했다.아무리 그곳에 불바다라도 사모님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이연화 집 주소를 알아낸 우리는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판자촌은 낡은 건물 지역이라 외지고 낡은 곳에 있는 데다 교통도 불편했다. 다만 이연화의 집은 그 판자촌에서 가장 큰 집이었다.우리가 이연화의 집을 찾았을 때 이연화는 집에서 화투를 치고 있었다.남편이 죽은지 얼마 되지 않는 여자가 이곳에서 한가하게 화투나 치고 있다니 침 한심했다.“이연화 씨,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어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러자 이연화는 나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나 지급 바빠서 시간 없어요.”“이건 당신 남편 조금희 씨와 관련된 일이라 이연희 씨가 저희랑 반드시 가주셔야 해요.”기분이 살짝 언짢아진 나는 당연히 다정한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하지만 이연화는 자기 구역에 있어 무서울 게 없어 심지어는 나에게 소리까지 질렀다.“반드시? 내가 왜? 당신들이 누군데? 경찰이야? 내가 왜 당신들 말을 들어야 해? 당장 꺼져. 화투 치는 거 방해하지 말고.”여자는 말하면서 다시 화투 치는 데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조금희 씨 몸에 종양이 퍼지고 있어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네요.”“혹시 조금희 씨가 뒤에서 꼼수 부린 거 아닐까요?”나는 문득 뭔가 떠올라 의문점을 제기했다.현재 상황으로 분석해볼 때 조금희의 혐의가 가장 높았다.그때 윤지은이 말했다.“자세한 건 조사해 봐야 하지만 나도 조금희 씨가 이상한 것 같아.”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다음에 조사할 때 나도 끼워줘. 나도 같이 조사하고 싶어. 두 사람 말 맞아. 호섭 씨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나라도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해. 이게 내가 살아갈 유일한 동력이야.”사모님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슬픔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와 윤지은은 항상 사모님 곁을 지킬 거다.그날, 우리는 곧장 종양 전문 병원에 가 조금희의 병력을 조사했다.조금희 몸에서 종양이 발견된 건 1년 전인데, 처음에 양성이었다가 악성으로 번지기까지 적지 않은 돈을 들였던 거로 확인되었다.게다가 조금희는 불치병에 걸리기 전에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자세한 건 저도 모르는데, 조금희 씨가 우리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항상 와서 돌봐줬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병원에 찾아와 그 아가씨를 때렸고요. 그 일은 병원 사람들 다 알아요.”‘그렇다는 건 조금희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네?’조금희가 이런 사람일 주은 생각지도 못했다.윤지은은 여간호사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주 기뻐하며 떠나갔다.조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밖에서 식당을 찾았다.식당에 도착한 윤지은은 분석을 시작했다.“조금희 씨가 불치병에 걸렸고, 예전에 아내와 아들한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시 자기가 얼마 못 살 걸 알고 호섭 씨를 배신해 돈을 챙겼던 건 아닐까?”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만약 조금희 씨 계좌에 큰돈이 입금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아쉽지만 이곳은 강북이 아닌 Y시다. 안 그랬다면 윤지은의 인맥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배고픔을 느낀다는 건 좋은 일이다.윤지은이 아침을 사 오자 사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었다.그걸 본 윤지은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들었다. 그건 내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번 치료 방법이 확실히 효과적이었으니까.나는 사모님을 한참 동안 관찰했다.비록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데도 사모님은 음식 드실 때 여전히 우아하고 단아했다. 살짝 슬픔을 띄고 있어 살짝 비극의 여주인공 같기도 했다.내가 한창 사모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윤지은의 날카로운 눈빛이 갑자기 나를 쏘아봤다. “짐승!”윤지은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그 욕에 나는 억울함을 호소했다.“제가 뭘 했다고 짐승이라는 거예요?”“아무튼 짐승 맞아. 이런 상황에서 훔쳐보기나 하고.”윤지은은 나를 째려봤다.난 그저 사모님을 몇 번 본 것뿐인데 나를 짐승 취급하다니, 너무 어이없었다.하지만 이러다 또 싸움 나겠다 싶어 나는 얼른 아침을 들고 다른 곳에 가서 배를 채웠다.식사를 마친 뒤 사모님은 자발적으로 나와 윤지은을 찾아왔다.“알고 있는 거 사실대로 다 알려줘요. 난 호섭 씨 사고에 대한 모든 사실이 알고 싶어요.”사모님은 너무 평온해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때문에 나는 사모님 상태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사모님, 우선 맥 좀 짚어봐도 될까요?”“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나도 알아야. 걱정할 거 없어요. 어젯밤 많이 생각해 봤고, 호섭 씨가 떠난 사실을 받아들였어요.”“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호섭 씨처럼 착한 사람이 남한테 죽임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억울함을 풀어줄 거예요.”“난 강해져야 하고 호섭 씨처럼 용감해져야 해요. 그래야 호섭 씨가 마음 놓고 갈 수 있어요.”사모님은 애써 슬픔을 참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또 흐느꼈다.그 말을 들으니 나도 코끝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같은 목표가 생겼다. 바로 진실을 밝히는 것.나는 얼른 마음의
나는 사모님 팔을 힘껏 잡으면서 사모님과 눈을 마주쳤다.“사모님!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사장님이 이런 사모님 보고 편히 가지 못하길 원하시는 건 아니잖아요.”내 말이 사모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는지, 사모님은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윤지은은 내가 강제로 사모님을 자극했다며 나를 탓했다.“유미 지금 안 그래도 나약한 상태인데, 왜 그런 말을 직접 해?”나는 너무 난감했다.“누구는 뭐 이러고 싶은 줄 알아요? 하지만 사모님이 계속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환상 속에 살고 있는데, 계속 이러면 상태가 점점 악화해요.”윤지은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그와 동시에 사모님이 또 상처받을까 봐 걱정했다.나도 사모님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사모님을 절망 속에서 끄집어내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나는 윤지은에게 말했다.“정말 사모님을 돕고 싶다면 모질어야 해요. 이럴 때 마음 약해지면 오히려 해치는 거예요.”윤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 말에 동의하는지, 내가 치료할 수 있도록 묵묵히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나른하게 힘이 쭉 빠진 사모님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없어요. 사모님이 속사한 건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속상해할 때가 아니에요. 우리 할 일이 있어요.”“사장님 사고 단순 사고가 아니에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사고 낸 거예요. 사모님, 정신 차리고 우리와 함께 진실을 조사해요.”사모님은 텅 빈 눈으로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사모님을 깊은 슬픔에서 꺼내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두르지 않고 그녀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다.나는 말투를 부드럽게 하며 방금 한 말을 또다시 반복했다.“사장님 교통사고에 수상한 점이 발견됐어요. 사모님도 사장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거 원하지 않죠? 우리 함께 진실을 알아내 사장님이 억울하게 죽임당하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아올랐다.사모님 상태는 살짝 이상해 보였다. 아마도 의식이 혼미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를지도 몰랐다.나는 사모님이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봐 서둘러 사모님 팔을 꼭 잡았다. 그러면서 계속 따라오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데려올 생각이었다.“수호 씨, 이거 놔요. 난 남아서 호섭 씨랑 같이 있을래요...”사모님은 마구 버둥대며 소리쳤다.이러다가 사고가 날 것 같아 나는 아예 사모님을 어깨에 두러 업었다. 그러자 사모님은 곧바로 버둥거리며 소리쳤다.벼랑 끝에 서 있는지라 조금만 실수하면 함께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결국 사모님을 손날로 기절시켰다.내가 가드레일 안쪽으로 다시 넘어왔을 때 윤지은의 차가 마침 도착했다.“왜 그래?”윤지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사모님을 차에 앉히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모님 지그 정신이 이상해서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해요. 방금 사장님이 춥다고 한다면서 옷 주러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제가 제때 나타나지 않았으면 뛰어내렸을지도 몰라요.”윤지은은 내 말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계속 이럴 순 없어. 우리가 잠깐은 지켜볼 수 있지만 평생 지켜볼 순 없잖아.”그때 내 머릿속에 문득 방법이 떠올랐다.“사모님께 사장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려드리는 건 어때요?”“미쳤어? 이번 일로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또 자극하자고?”윤지은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이에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제 할아버지가 남긴 의학 서적에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옛날에는 환자가 가족을 잃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 치료가 안 된다면 환자한테 희망을 줘야 한대요. 그 희망이 의학에서 말하는 기예요.”“그 기를 가진 환자가 음식 치료와 약물 치료를 함께 진행하면 서서히 회복할 수 있대요.”“사장님의 죽음에 수상한 점이 있잖아요. 그래서 사모님과 함께 그 사건을 수사하는 거예요. 아마 사모님도 사장님이 죽은 진실을 알고 싶을 거예요.”
장례식장 안을 모두 뒤져 봤지만 사모님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리 조급하지 않던 내 마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불안해졌다.사모님은 현재 몸 상태도 안 좋고 정서도 매우 불안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족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됐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그러다 결국 방법이 없어 나는 문득 사모님 번호를 떠올려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계속 긴 연결음만 들릴 뿐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려고 할 때 연결음이 꺼졌다. 액정을 확인하니 전화가 연결되었다.“사모님?”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수호 씨, 나 괜찮으니까 좀 내버려둬요.]사모님 목소리는 매우 우울해 보였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한테는 너무 듣기 좋았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사모님, 어디 있어요? 너무 걱정돼요.”[혼자 있고 싶어요.]“알아요, 아는데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요. 사모님이 안전하다는 거 확인해야 해요.”전화 건너편에서 한참 침묵이 흘렀다.그때 갑자기 차 경적음이 들려왔다.그렇다는 건 사모님이 장례식장에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나는 문득 사모님이 있을 수 있는 곳이 떠올랐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물었다.“사모님, 알려주시면 안 돼요?”사모님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하지만 이미 대충 답을 얻은 나는 장례식장을 뛰쳐나가 택시를 잡고 사장님이 사고를 당한 곳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사모님을 찾았냐는 윤지은의 전화를 받은 나는 내 추측을 말했다.“아니요. 사모님 아마도 사장님 사고 난 곳에 있는 것 같아요.”[거긴 왜?]윤지은은 이해가 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사장님 죽음이 수상해 직접 조사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사장님이 그리웠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저 지금 가는 중이에요.”[그럼 먼저 건너가. 나 이따 바로 갈게.]나는 윤지은과 상의한 뒤 먼저 사장님이 사고 난 곳으로 향했다.사고가 난 곳은 절벽인데, 사모님은 마침 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