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국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남자는 죽을 때까지 소년이라는 말 못 들어봤나? 남자는 나이가 많든 적든 미녀를 보기 좋아해.”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적당히 봐요. 어쨌든 마 교수님이 한의과의 탑인데 교수님이 근무 중에 이런 영상을 보는 것을 환자가 보기라도 한다면 이미지에 안 좋아요.”나의 말을 들은 마동국이 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네가 오기 전에 한의과에는 일주일에 환자가 몇 명 오지도 않았었네.”“자네가 온 후에 한의과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 거야. 그런데 자네마저 떠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겠지.”“그래서 내가 영상을 보든 말든 상관할 사람이 없다네.”“사실 한의사가 완전히 답이 없는 건 아니에요. 인터넷을 보면 현재 일부 지역의 한의사가 인기가 있잖아요?”“직접 나서서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주면 다시 한의사의 시대가 올 거라고 믿어요.”마동국이 내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수호 씨, 자네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좋아.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이제 늙어서 할 수가 없어. 아참, 그러고 보니 여기서 떠나면 갈 곳은 있나?”나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그럼 내가 소개해 줄까?”나는 믿기지 않아 눈을 둥그렇게 떴다. “왜요? 전 항상 교수님께 맞섰는데 왜 저를 도와주시는 거예요?”동국이 자애로운 아버지처럼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 맞섰다고? 나는 그런 생각이 안 들었는데? 젊은이가 어느 정도 성격이 있는 건 정상이야. 전제는 반드시 실력이 뒷받침해 줘야지. 만약 자네가 민규와 같았다면 난 자네를 가만두지 않았을 거네.”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문득 예전의 자신이 망나니였다고 느껴졌다. 마동국은 지금까지 나를 겨냥한 적이 없었는데 난 줄곧 상대를 존중하지 않았다. 그걸 인지하니 후회가 밀려왔다. 정말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왜 이제서야 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까?’어쩌면 이게 인생일지도 모른다. 인생은 원래 어느 정도의 아쉬움은 남아야 하는 거니까.
분명 왕정민이 손을 쓴 게 틀림없다.병원에서 나를 해고하게 한 것도 모자라 비방하기까지 하다니.‘비겁하긴.’“마음대로 생각해요. 그림자가 비뚤었다고 사람도 비뚠 건 아니니까.”더 이상 실랑이를 벌이기 싫어 말을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려 할 때, 지은이 먼저 떠나버렸다.하지만 인사팀에서 수속을 마치고 떠나려 할 때 하필이면 또 지은을 만나버렸다.이번에 지은은 혼자가 아니라 웬 낯선 남자한테 몰려 구석에 서 있었다.“지은아,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남자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상대가 지은의 남자 친구 여준휘라는 걸 알았다.예전에 지은이 남자 친구가 집에 다른 여자를 들였다가 현장을 잡혔다고 했던 게 갑자기 생각났다.그렇다면 두 사람이 헤어지는 건 당연한 건데, 여기까지 달려와서 용서해달라고 하는 걸 보니 참으로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기 싫어 뒤돌아 다른 쪽 계단으로 올라갔다.이제 막 두 걸음 정도 걸었을 때, 갑자기 지은이 버럭 소리치는 게 들렸다.“여준휘, 너 뭐 하는 거야? 당장 이거 놔.”“싫어. 나 용서해주지 않으면 손 안 놓을 거야.”남자는 뻔뻔하게 말하면서 지은을 안고 입까지 맞추려 했다.그러자 지은이 상대의 뺨을 때리며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그런 짓을 했으면서 용서해달라고? 무슨 염치로 그런 말을 해?”“그래! 아가씨 좀 데려다 놓았다. 세상 남자들 중에 여자 밝히지 않는 남자가 어디 있어? 그런데 그건 그저 논 것뿐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뿐이라니까.”여준휘는 펄쩍 뛰며 소리쳤다.그 말을 들으니 너무 놀라웠다.사람이 얼마나 뻔뻔하면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나 생각이 들었다.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으면서 또 다른 여자한테 사랑을 속삭이다니.아니나 다를까 지은도 화가 나서 이성을 잃었다.“그 더러운 손 치워. 역겨우니까. 지금은 너만 봐도 역겨워. 당장 꺼져!”“왜? 설마 너도 딴 남자 생겼어? 안 그러면 이렇게 단호할 리 없
하지만 지은의 쓰레기 전남친은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고 계속 지은을 괴롭혔다.“그래, 내가 너한테 미안한 짓 했고, 너도 나한테 미안한 짓 했으니 이제 쌤쌤이겠네?”남자의 말을 들으니 지은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나 또한 너무나도 내 가치관을 벗어나는 말을 들으니 놀라웠다.‘와, 이렇게도 할 수 있다고?’이건 너무 말도 안 되잖아.지은이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 시선을 돌려보니 아예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심지어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웃느라 눈물까지 찔끔 나왔다.그걸 본 준휘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헤실 웃으며 말했다.“지은아, 지금 나 용서해주는 거지? 역시 너밖에 없어.”짝!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지은은 준휘의 손을 쳐내며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용서? 웃기고 자빠졌네! 난 네가 싫고 역겹고 짜증 나서 네가 가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아예 세상에서 사라져서 내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졌으면 좋겠다고.”준휘는 얼굴색이 어두워졌다.“꼭 나한테 이렇게까지 할 거야? 나를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거야?”“됐으니까 그만 말하고 당장 꺼져. 더 이상 너 보고 싶지 않으니까.”지은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싫었는지 귀찮은 듯 말했다.그때 준휘가 지은의 손을 덥석 잡았다.“너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거 그놈 때문이지?”“내가 누구랑 만나든 너랑 무슨 상관인데?”“당연히 상관 있지. 우리 아직 정식으로 헤어진 거 아니야. 그럼 넌 아직도 내 여자 친구인 거고.”“저기 비켜. 누가 내 남자 친구라는 거야? 네가 나한테 뭘 해줬는데? 물질적인 걸 해줬어? 사랑을 줬어? 아니면 옆에 있어주길 했어? 뭐 하나 나한테 해준 거 있어?”지은은 말하면서 점점 흐느끼기 시작했다.“여준휘, 애초에 너를 좋아한 것 자체가 내 눈이 삐었던 거야. 인성은 쓰레기에 여자 등골이나 빼먹는 남자가 뭐가 좋다고.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네가 일자리를 몇 번이나 바꿨는지 알아? 바뀔 때마다 내가 너 뒷바라지했어. 그동안 내가 뭐든 해주니까 습관 됐지? 당연한
지은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바람을 피우는 것조차 이 남자의 끝이 아니었다. 이 남자는 애초에 도덕적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우웩!”그녀는 너무 역겨운 나머지 속마저 뒤번저졌다.하지만 준휘 안타까워하기는커녕 눈치 없이 물었다.“왜 그래? 설마 임신한 건 아니지? 설마 그놈 거야?”결국 지은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지은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가져 준휘한테 복수한 건 맞지만 안전하게 조치했다.이건 임신이 아니라 준휘가 너무 역겨워서 생긴 생리 반응이다.그런데 그 반응을 보고 또 이렇게 쓰레기 같은 말을 하다니.지은은 준휘한테서 벗어나려고 거짓말을 했다.“그래, 맞아. 나 임신했어. 네 아이 아니야. 너 남의 자식 기르고 싶지 않지? 싫으면 꺼져.”그 말을 들은 준휘는 갑자기 웃었다.“그래, 좋아. 그럼 나한테 돈 줘, 바로 사라져 줄게.”“무슨 염치로 돈 달라는 거야? 네가 나 먼저 배신하지 않으면 나도 이런 방식으로 너한테 복수하는 일도 없었을 거잖아.”“밖에서 좀 논 거 갖고 그런 것도 못 하게 하면 나중에 나더러 어떻게 큰일을 하라는 거야?”“큰일 하는 거랑 바람피우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사람이면 좀 염치가 있어. 너도 대학 나왔잖아. 그동안 배운 건 어디 던져버렸어?”지은은 준휘와 저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준휘가 이기적인 사람인 데다 무식하기까지 하고, 심지어 그동안 자신이 완전히 눈이 삐어 사람을 잘못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에 반해 준휘는 저만의 생각에 빠져 있다가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마음대로 말해. 난 그딴 거 상관없으니까. 다 네가 선택한 거잖아. 이제 와서 누굴 탓해? 내가 계속 일자리 바꾼 건 더 나은 걸 찾기 위해서야. 그리고 내가 뒷바라지해달라고 했어? 네가 스스로 했으면서 왜 나를 탓해?”“난 네가 마음 쓰여서 돈 줬던 거였어. 그런데 이제는 그게 내 탓이라고?”“그래, 네 탓이지! 네가 자꾸 뒤에서 밀어주고 잘났으니까 나도 계속 더 우수하고 너랑 어울
“윤 쌤, 주치의가 오라고 해요.”나는 지은을 빨리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고 거짓말을 했다.그때 준휘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차갑게 물었다.“넌 또 뭐야?”“남성 비뇨기과 인턴인데요.”“내가 어린애인 줄 알아? 인턴이 의사 가운도 안 입었다고?”“오늘부터 일하기 시작한 거라 아직 옷 갈아입지 못했어요.”“오늘부터 일한 사람한테 이런 심부름을 시킨다고?”‘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렇게 논리적이라고?’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러자 준휘가 나를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위아래로 훑었다.“설마 네가 그놈은 아니지?”내가 대답하려 할 때 지은이 갑자기 대답했다.“맞아, 이 사람이야.”그 순간 나는 너무 어이없어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그저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러 온 사람을 물고 늘어진다고?’나는 이 더러운 흙탕물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아 설명하려고 했지만 준휘는 나에게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주먹부터 날렸다.“젠장, 네 놈이 내 여자 친구와 바람피운 상대라고? 너 오늘 죽었어.”준휘가 달려들자 나는 결국 손쓸 수밖에 없었다.나는 순식간에 퍽 하고 준휘의 팔에 있는 혈 자리를 눌러 팔을 마비시켰다.그러고는 상대가 힘이 빠지자 솔직하게 말했다.“저 사실 한의과 인턴이에요. 윤 쌤하고는 아는 사이라 도와주려고 나선 거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에요.”“젠장! 난 그런 거 다 상관없다고. 나 때렸으면 배상해!”‘이젠 나한테까지 돈 뜯어내려고 용쓰네? 이 자식 아주 돈독에 빠진 미친놈이네.’“그저 혈 자리 누른 거예요. 가해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돈 뜯어낼 생각을 한다고요?”그때 지은이 차갑게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가요. 이 자식은 주식 하면서 미쳤으니까.”‘주식 하면서 미쳐 버린 거였어? 어쩐지 생긴 건 멀쩡한데 인간답지 않게 행동한다 했네.’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은과 함께 떠났다.하지만 준휘가 갑자기 달려들었다.“안돼. 가면 안 되지. 손해배상 내놔.”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비원한테
“미쳤어요? 아까 내가 도와줬는데 아직도 이런다고요?”“나를 도와주려고 그랬다고요? 내 처참한 꼴 비웃으려고 그런 거잖아요.”지은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안 순간 나는 화가 나 지은을 째려봤다.“마음대로 생각해요. 설명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맹세하라는 건 절대 따라줄 수 없어요.”“맹세도 못 하겠다면서 어떻게 믿어요?”“그건 그쪽 일이죠. 의심 많은 사람이라 다른 사람 믿지 못하면서, 내가 왜 그쪽 요구를 들어주려고 기분 나쁜 일까지 해야 하죠?”나는 기분이 너무 나빴다.방금 분명 도와주려는 마음에 나섰는데 이런 취급을 받으니 좋은 일을 하고 오해받았다는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난 남자 못 믿어요. 그게 누구라도. 이 세상 남자는 다 쓰레기예요. 하나도 빠짐없이!”지은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지은이 쓰레기 남친한테 너무 상처를 받아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알기에 결국 말투를 누그러뜨렸다.“세상 모든 남자가 그렇게 이기적인 건 아니에요. 좋은 남자도 많아요. 하지만 다음번에 남자 만날 때는 사람 제대로 보고 신중하게 만나요.”“다시는 남자 친구 안 만들 거예요. 평생 혼자 사는 한이 있더라도 또다시 이런 짓은 안 해요.”지은은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래도 지은의 감정이 점차 누그러지는 것을 보니 나는 얼른 도망치고 싶었다.하지만 내가 이제 막 두 걸음 걸었을 때 지은이 바로 눈치챘다.“거기 서요!”“또 왜요? 난 그래도 그쪽 존중해주는 마음에 떠나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아까처럼 그러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어찌 됐든 내가 남자이기에 떠나고 싶다면 지은의 체격으로 나를 막을 수는 없다.“기분이 꿀꿀해서 그러니 같이 점심 먹지 않을래요?”“네?”나는 지은이 나한테 점심을 같이 하자는 요구를 제기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두려워 났다.“왜요? 싫어요? 그쪽 거기 내가 고쳐줬다는 거 잊지 마요.”“그래요, 안 싫어요. 좋아요, 됐죠? 어디서 먹을 건데요? 구내식당이요? 아니면 밖이
우리는 결국 중국집에 도착했다.하지만 전에 다른 사람한테서 들었는데 이 중식당은 1인당 소비가 16만 원 정도라 나한테는 너무 비싸다.이번에 정산받은 월급이 고작 28만 원이니까.이거로는 턱도 없다.“우리 다른 데로 옮기는 게 어때요?”내가 조용히 제안했다.주요하게는 돈이 너무 아까웠다, 아무리 따로 낸다고 해도 나한테는 너무 비싼 가격이었으니까.밥 한 끼에 16만 원을 낸다는 건 내 살을 도려내는 것보다도 더 괴로웠다.그때 지은이 나를 째려봤다.“지금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먹기만 해요.”말을 마친 지은은 2인석으로 향하더니 한 상 가득 음식을 시켰다.하지만 이 음식들을 보니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지은은 내가 움직이지 않자 화가 난 듯 말했다.“말했잖아요. 돈 낼 필요 없다고. 먹기만 하라고. 그러니까 목석처럼 앉아만 있지 말래요?”“정말 돈 낼 필요 없는 거 맞죠?”지은은 테이블 위에 탁하고 제 카드를 올려 놓았다.“나 여기 회원이라 30% 할인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돈은 다 이 카드로 빠져나갈 거예요.”지은의 말을 들으니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먹기 시작했다.솔직히 음식은 너무 맛있었다. 게다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끝없이 먹기만 했다.그러자 지은이 발로 나를 툭툭 찼다.“좀 천천히 먹으면 안 돼요? 배고파 죽은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체통 좀 지켜요.”“아무 걱정하지 말고 먹기만 하라면서요? 말도 하지 말라고 하니 먹을 수밖에 있어요?”“내 일에 대해 궁금한 거 없어요?”묻지도 않은 말을 지은이 먼저 꺼내자 나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안 궁금해요. 외국 속담에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이 있대요. 난 죽고 싶지 않아요.”내 말이 끝나자마자 지은은 내 발을 차버렸다.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나는 소리쳤다.“뭐 하는 거예요? 아파 죽을 뻔했잖아요.”나는 지은이 찬 다리를 문지르며 억울한 듯 말했다.‘내가 궁금하지 않다는데, 그게 잘못인가? 이건 무슨 논리지?’그때 지은이 화가 난 듯
지은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나도 몰라요.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대학교 바로 졸업하고 나서일 수도 있고,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고, 사회 현실이 너무 가혹해서일 수도 있죠. 졸업하고 난 강북 한의원에서 인턴을 했고, 반년도 안 되는 사이에 레지던트가 됐고, 또 얼마 안 돼서 한의과 부교수가 됐거든요.”“반면 남자 친구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여러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해도 이런 저러한 이유 때문에 레지던트로 되지 못했어요.”여기까지 들었을 때, 마침 거의 다 먹은 나는 더 이상 들어줄 심정도 아니라 곧바로 끼어들었다.“그러면 충격이 컸겠네요.”내 말에 지은은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째려봤다.“그러니까 지금 그 자식이 바람피운 이유가 정당하다는 뜻이에요?”“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그저 갓 졸업하고 그렇게 많은 역경에 부딪혔으니 충격이 컸을 거라는 얘기예요. 그런데 여자 친구가 너무 대단하니 자격지심도 느꼈을 거고.”“그런데 난 내 노력으로 레지던트가 된 거잖아요. 근데 그 자식은 내가 가족 백으로 됐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뭐라고 하든 믿어주지 않았어요!”“그러면 나중에는요? 주식은 왜 갑자기 했대요?”“병원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니까 아예 다른 쪽으로 일자리 알아봤거든요. 그래서 내가 마침 의료 기기 판매하는 일을 소개해 줬어요. 일 잘하면 수익도 괜찮아 보이니까.”“그런데 얼마 안 하고 또 그만두더라고요. 동료들이 따돌리고 상사가 괴롭힌다면서. 그리고 혼자서 일자리 찾을 수 있다면서 나더러 찾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관계하지 않았죠. 그런데 허구한 날 일자리를 바꿨어요.”“대학 졸업하고 지금까지 5년이 흘렀는데 반년 이상 다녀 본 곳이 없을 지경이라고요. 내가 이유를 물을 때면 온갖 변명을 댔어요. 항상 남 탓만 하고 본인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듯이.”“그러다가 주식에 빠졌는데 헤어 나오지 못했어요. 그것 때문에 몇 번이나 싸우고, 물건도 집어 던지고 했는데 나중에 배신까지 하더라고요.”지은은 지난날을 생각하자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