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태연의 마음도 복잡했다.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수호가 다른 여자와 친밀한 관계를 가졌다니.저도 모르게 수호와 지은이 뒤엉켜 있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마음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하지만 수호는 남편의 동생이니 밖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든 태연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질투할 자격은 더더욱 없고.이러한 복잡한 마음 때문에 태연은 너무 괴로웠다.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나는 형수가 진실을 알고 나를 모른 체한다고만 생각했다.“형수, 말 좀 해봐요, 네?”나는 형수의 팔을 잡고 애원하듯 말했지만 형수는 깊은숨을 들이켜더니 핸드폰을 나에게 돌려주었다.“늦었는데 일찍 자요.”형수가 말을 마친 뒤 바로 떠나버리자 나는 너무 불안해 났다.이 상태로 뒤쫓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한편, 태연은 복도를 나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한시 빨리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사실 이건 수호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애초에 수호가 자기 집에 얹혀살기 시작했을 때 겁 많은 남자였는데, 본인이 나서서 개발했으니.매번 화끈하고 섹시한 형수와 다정하고 우아한 애교를 만나는데 아무도 손대게 하지 않으니 수호는 그저 혼자 풀 방법을 찾은 것뿐이다.이제 고작 20대라 한창 혈기 왕성할 때니까.한참 동안 생각한 태연은 마침내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깊이 자책했다.애초에 저와 남편이 이런 일에 수호를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아직도 다른 대학생들처럼 평범한 생활을 했을 테니까.애교는 결국 다시 병실로 돌아갔다.형수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자지 않았다.형수가 돌아오지 않으면 잠들 수가 없었으니까.“형수.”그러다 형수가 돌아오자 벌떡 일어났다.형수는 얼른 나더러 다시 누우라며 입을 열었다.“다리도 불편한데 누워요.”“형수, 아직도 화 났어요?”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형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왜 화내겠어요? 수호 씨도 성인이고 사생활이 있는데 내가 화낼 권리는
난 형수 알기를 바란다. 내가 형수의 몸과 마음을 원한다는 걸.그러다 순간 얼굴이 달아오른 형수를 보자 나는 가슴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형수도 이 순간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는 참지 못하고 형수를 와락 끌어안았다.그러자 형수는 두려웠는지 다급히 말했다.“이거 놔요, 누가 보면 어떡해요.”“안 놓을 거예요. 형수가 제 물음에 대답하기 전까지는.”나는 일부러 이런 거다.내가 일부러라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형수는 절대 내 질문에 답하지 않을 테니.“내 마음속에도 수호 씨가 있어요. 됐죠? 이거 놔요.”형수는 황급히 대답했지만 나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더 집요하게 물었다.“안 돼요. 방금 대답은 너무 성의 없었어요. 진지하게 대답해요.”그때 옆 침대에 누운 어르신이 깨어날 것처럼 굴자 형수는 더 겁이 나 끝내 입을 열었다.“그래요, 인정할게요. 내 마음속에도 수호 씨가 있어요.”만족스러운 답변에 나는 겨우 손을 풀었다.옆 병상의 어르신은 화장실에 깨어나자마자 화장실로 향했고, 아내 되는 분이 어르신을 부축했다.그걸 본 형수는 나를 매섭게 쏘아보았다.하지만 나는 오히려 헤실 웃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솔직히 형수한테서 그런 말을 들은 게 지은과 만족스러운 관계를 가진 것보다 더 만족스럽다.그도 그럴 게, 형수는 내가 마음에 둔 여자니까.나는 슬그머니 형수의 손을 잡았다.“오늘 형수를 안고 자도 돼요?”“안 돼요. 질문에 답도 했는데 어디서 은근슬쩍 더 요구해요?”“형수의 마음을 알았으니 이러는 거잖아요. 형수의 마음속에도 제가 있고, 제 마음속에도 형수가 있는데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게 너무 답답하지 않아요?”“그럼 수호 씨도 내 물음에 진지하게 대답해요. 만약 내가 정말 수호 씨한테 몸을 내어주면 나 책임질 수 있어요?”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할 수 있어요.”“그럼 어떻게 책임질 건데요? 직접 수호 씨 형한테 나랑 잤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말할 거예요?”“그건...”나는
“그러다가 변하지 않으면요? 왕정민처럼 되지 않으면요? 그때는 어떻게 할 건데요?”형수의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솔직히 내가 지금 색안경을 끼고 형을 보고 있다는 걸 나도 인정한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형수가 이렇게 귀띔하는 것도 내가 일시적인 쾌락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라서일 거다.나는 점점 더 망설여지고 모순되었다.형수를 내 여자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지만 우리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벽이 있으니까 너무 괴로웠다.그때 형수가 웃으며 내 볼을 꼬집었다.“수호 씨는 누구랑 만나든 다 되지만 유독 나와는 안 돼요. 내가 수호 씨 형수니까.”형수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마치 내 누나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바라봤다.하지만 형수의 이런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오히려 나를 더 반하게 한다는 걸 형수는 모르는 듯하다.사실 나도 우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이에 나는 머리를 형수의 품에 파묻고 풀이 죽어 말했다.“그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안고 자면 안 돼요?”형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건 형수도 망설이고 있다는 뜻이기에 나는 더 이상 형수를 강요하지 않았다.만약 여전히 거절하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요구를 제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하지만 의외로 형수는 나를 거절하지 않고 이불을 들춘 뒤 안으로 들어왔다.나는 일순 마음이 따뜻해졌다.이 순간 형수도 분명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나는 형수의 등 뒤에서 형수를 백허그 하고는 머리를 형수의 어깨에 파묻었다. 그러니 오히려 더 떨어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 오늘이 지나면 나와 형수 사이에는 이런 상황조차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그날 저녁 형수의 마음도 싱숭생숭했는지 우리는 한참 동안 제 고민을 안고 잠들지 못했다....오늘 밤은 평범하지 않은 밤임이 틀림없다.한편, 애교의 집.애교와 남주는 왕정민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낚을지 궁리하고 있었다.결국 애교는 특별히 술
그때 남주가 일부러 화난 듯 말했다.“요 며칠 애교가 몸이 불편해요. 그날이라서 술 못 마신다고요. 그것도 몰랐어요? 아니면 알면서 일부러 애교 취하게 하려는 거예요?”“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일부러 내 아내를 취하게 하려 하다니? 나는 그저 우리 부부가 오랫동안 술 마시면 얘기 나눈 적이 없어 함께 분위기 좀 만들려는 거지.”왕정민이 다급히 설명하자 남주는 아예 애교 앞에 놓인 술잔을 가져가 버렸다.“그래도 안 돼요. 얘기할 시간은 앞으로도 많잖아요. 이런저런 핑계로 집에 안 들어오지만 않으면. 정 술이 마시고 싶으면 내가 같이 마셔줄게요.”남주의 말에 답답해하던 왕정민은 마지막 한마디에 바로 흥분했다.남주를 취하게 하면 더 재밌을 테니까.왕정민은 남주를 처음 본 순간 섹시하고 농염한 남주에게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남주가 애교의 절친이라 그동안 남주한테 아무 짓도 하지 못했을 뿐.하지만 지금은 지위도 권력도 있으니 남주와 하룻밤 보낼 능력쯤은 얼마든 있다고 자부했다.정말 무슨 일이라도 나면 뒷수습할 능력도 있고.이에 왕정민은 헤실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요, 남주 씨와도 안 지 몇 년이 되는데 함께 술 마시며 얘기한 적이 없네요. 오늘 제대로 마셔보자고요.”남주 곧바로 마음속으로 왕정민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이 개 같은 쓰레기 자식, 역시 꿍꿍이가 있었잖아.’왕정민의 눈에는 욕망이 가득했다. 그때 남주는 애교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계획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남주는 그동안 정계 인사들을 만나며 주량은 많이 단련되었다.이에 곧바로 술잔을 들고 왕정민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그 결과 남주를 거뜬히 이길 거라고 생각한 왕정민은 오히려 두 시간 뒤 완전히 고주망태가 되어버렸다.애교는 그 틈에 미리 준비해 둔 계약서를 가져와서는 작은 소리로 남주에게 말했다.“어떡해? 너무 많이 먹어서 사인도 어려울 것 같은데?”남주는 힘껏 왕정민을 밀쳐 왕정민이 아예 꼼짝도 하지 않는 걸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이 개자식은 무슨 주량
왕정민은 너무 화나고 열 받았다.자기가 애교를 모해하는 건 괜찮지만 애교가 저를 모해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애교와 결혼한 7년 동안 왕정민은 비굴한 구애자에서 고고한 위치에 섰다.사실 애초에 왕정민이 애교한테 구애한 것도 애교가 예뻐 제 체면을 살려줄 거라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애교의 가정 형편이 좋아 제 사업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다.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왕정민은 애교를 통해 자기가 원하는 걸 얻었고,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심지어 졸업한 뒤에도 시행착오를 줄여 줄곧 성공의 길을 걸어왔기에 이미 저를 구애자가 아닌 통치자라고 생각했다.대학 때 여신도 더 이상 그의 욕망을 만족시켜 줄 수 없이 이번 이혼 계획을 세웠던 거다.그런데 그렇게 단순하고 귀엽기만 하던 아내가 자기를 상대로 계략을 꾸미다니.왕정민은 그걸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점차 애교가 밖에 내연남을 두고 있다고 확신했다.‘분명 그럴 거야. 안 그러면 이렇게 똑똑해질 리 없어. 어쩐지 이번에 털끝 하나도 대지 못 하게 하더라니.’“이 여편네가!”왕정민은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이윽고 뭔가 생각난 듯 동성에게 문자를 보냈다.[네 동생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우리 마누라랑 관계는 맺었대?]그 시각 동성은 혼자 집에서 야한 영화를 보며 혼자 해결하고 있었다.왠지 요즘 동성은 점점 이런 느낌에 빠져들고 있었다.분명 영화 속 여주인공이 태연보다 예쁘지도 않고 몸매도 별로지만 오히려 흥분했다.“아...”동성은 신음을 뱉으며 소파에 완전히 드러누웠다.그러다 한참 이 지난 뒤에야 핸드폰을 켜고 왕정민의 문자를 확인했다.동성은 다급히 소파에서 일어나 앉고는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내가 말하는 걸 깜빡했는데, 어제 내 동생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어. 그 일은 좀만 뒤로 미룰 수 없을까?][미루기는 개뿔! 애교가 나를 상대로 계략을 꾸미고 있어. 시간 끌면 나한테 불리하다고. 네 동생이 안 되면 네가 직접 하던가
하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로 그러겠다고 하면 왕정민이 분명 그가 애교를 오랫동안 마음에 푸고 있었다고 생각할 테니까.동성은 왕정민에게 밀당하듯 대답했다.[네가 내 마누라를 좋아하는 거면 내가 기회를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마누라는 됐어. 내가 어떻게 감히 그래.]심지어 본인은 자세를 낮추어 왕정민을 마치 윗사람인 것처럼 떠받들었다.그러면서 제 아내를 바치면서 왕정민의 욕망을 일부러 건드렸다.동성은 왕정민이 그동안 엄청 더럽고 다양하게 놀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자기 아내 태연처럼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와 분명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다.때문에 초반에 재미 좀 보게 한다면 왕정민도 애교를 저에게 넘겨줄 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여겼다.심지어 왕정민의 의심도 사지 않은 채로 말이다.아니나 다를까 왕정민은 동성의 대답을 보고 입꼬리를 비틀었다.태연은 너무 괜찮은 여자다. 게다가 몸매는 그가 지금껏 본 여자 중에서 가장 좋고.‘그런 여자와 몸을 섞는 건 어떤 기분일까?’왕정민은 당장 시도해 보고 시었다.‘진동성이 내 기분을 꽤 잘 맞춰주네. 아내를 나한테 바치겠단.’[그건 네가 원하는 거지, 네 마누라는 원해?]동성은 왕정민의 대답에서 희망을 가졌다.‘걸려들었네.’[솔직히 말하자면 나랑 태연 오랫동안 하지 못했어. 태연은 아이를 원하는데, 너도 알잖아 내가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거. 만약 네가 그걸 도와준다면 우리 부부도 너한테 무척 고마워할 거야.][조금 미덥지 못한데? 내 아내더러 내 아이를 갖게 하라고? 그리고 둘이 내 아이를 키워주겠다는 거야? 너는 괜찮고?]동성은 당연히 괜찮지 않아. 하지만 입 밖에 내지 않고 계속 말했다.[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네 아이면 내 아이인 거지, 그렇게 나눌 필요 뭐 있어?]왕정민은 동성의 대답을 보자 크게 웃었다.두 사람이 친구라고는 하지만 사실 왕정민은 항상 동성을 무시해 왔다.그런데 오늘 동성이 바닥에 바싹 엎드려 개처
“젠장, 개 같은 자식, 공짜로 내 마누라를 먹으려고? 맛보겠으면 미리 나한테 성의 표시라도 해야지.”동성은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동성이 화가 난 건 왕정민이 자기 아내와 자겠다는 게 아니라 자기 아내와 자겠다면서 애교를 저한테 주지 않는 거다.마침 혼자 집에 있는 지금, 왕정민은 애교를 꼬드겨 여기로 보낼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그러니 애교와 자라고 처음에 얘기했던 말이 그저 말뿐일 지 아닐지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동성은 이 일을 진짜로 밀어붙이고 싶었다.‘태연을 잘 설득해서 왕정민한테 협조하라고 해야겠네.’다음 날.형은 아침 일찍 병원에 찾아왔다. 나는 당연히 나를 보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형수를 불러내 뭔 대화를 하는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그걸 보니 나는 조마조마했다.그도 그럴 게, 형이 병실에 들어왔을 때 형수가 내 몸을 닦아주고 있었으니까.형이 나와 형수 사이를 의심할까 봐 두려웠다.때문에 자꾸만 목을 빼 들고 밖을 내다봤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그 시각, 동성은 태연을 아무도 없는 복도 끝으로 끌어가서는 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계속 수호 케어하느라 그동안 고생 많았어. 오늘부터 내가 수호를 돌볼 테니 돌아가서 휴식해.”“괜찮아, 힘들지 않아. 당신은 출근해야 하잖아. 남아서 수호 씨 보살피면 일은 어떡해?”동성은 진작 계획해 둔 대로 말했다.“요즘 회사에 일이 별로 없어서 부하직원더러 하라고 하면 돼. 자기가 힘들까 봐 마음 아파서 그러지.”“수호는 내 동생인데 형수인 너더러 매일 보살피라고 하는 게 좀 아닌 것 같아서, 돌아가서 휴식해. 하루만이라도 잘 휴식하고 내일 다시 와.”태연은 떠나기 매우 아쉬웠지만 동성의 의심을 살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할게.”태연이 떠난 뒤, 동성은 바로 왕정민한테 문자를 보냈다.[정민아, 내가 병원에 와서 태연이랑 교대했어. 오늘부터 내일 아침까지 계속 혼자 집에 있을 테니까 기회 잘 잡아.]왕정민이
형은 내 침대 옆에 앉아 계속 자기 일만 해댔다.그런 형이 얼마나 바쁜지 알고 있었기에 나도 방해하지 않았다.한편.태연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뜨거운 물로 목욕하고 팩을 붙이고는 잠깐 눈을 붙이려 했다.이틀 동안 병원에서 환자를 케어한다는 게 힘든 일이었으니까.태연이 입은 실크 슬립을 입고 있었지만, 완벽한 콜라병 몸매를 다 가리지는 못했다.한참 뒤, 태연은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그 시각 옆집.왕정민은 사실 아까 전 문 사이로 태연이 돌아온 걸 확인하고 난 뒤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애교와 남주는 아침 일찍 집을 나가 왕정민은 지금 베란다를 통해 태연의 집에 넘어갈 수 있었다.태연의 매력적인 몸매를 떠올리자 왕정민은 너무 흥분해 베란다를 살금살금 넘어 태연의 방에 몰래 잠입했다.태연도 방문을 잠그지 않은 터라, 왕정민은 문틈 사이로 방 안 광경을 몰래 볼 수 있었다.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남자를 끌어당기는 태연의 매력에 왕정민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특히 태연이 입고 있는 슬립 원피스와 서로 겹쳐 있는 늘씬한 두 다리를 보자 야릇한 생각이 떠올랐다.왕정민은 살금살금 태연에게 걸어가더니 급기야 손으로 태연의 다리를 탐욕스럽게 문질렀다.“완전 하얗고 부드럽잖아!”“아, 누구야?”잠에서 놀라 깨자마자 왕정민을 본 태연은 멍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왕정민 씨, 왜 우리 집에 있어요?”왕정민은 피둥피둥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설명했다.“뭐 좀 빌리러 왔는데 아무리 노크해도 대답이 없어 베란다로 넘어왔어요.”“뭘 빌리러 왔죠?”태연은 왕정민이 저를 보는 눈빛을 보자 너무 무서웠다.특히 말하면서 옆에 슬쩍 안는 모습에 더욱 불안했다.여자의 직감이 말해주건대, 왕정민은 분명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다.태연은 얼른 침대에서 내려와 긴 외투를 걸치며 말했다.“거실에서 얘기하죠.”태연은 말하면서 거실로 걸어갔다.그나마 거실이 침실보다는 조금 더 안전하니까.만약 왕정민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한다면 재빨리 문을 열고 도
윤미화는 다른 직원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나와 함께 왕정민 회사로 향했다.얼마 뒤 윤지은도 나타났다.윤지은까지 직접 온 건 매우 의외였다.“왜 왔어요?”“네가 여기서 죽은 것도 모를까 봐.”윤지은은 언제 한번 말을 예쁘게 하는 법이 없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런 농담을 하니 오히려 내 긴장감이 줄어들었다.게다가 윤지은이 나를 도와주러 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 용기와 마음에 무척 감사했다.“동준 형님은요? 같이 안 왔어요?”윤지은도 왔는데 양동준이 안 왔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양동준이 나서면 왕정민이 모습을 드러낼까?”보아하니 양동준은 부근에 몸을 숨긴 모양이었다. 양동준이 있다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했다.“고마워요.”나는 진심으로 말했다.윤지은은 내 말에 흠칫 놀라더니 이내 눈을 홉뜨며 말했다.“갑자기 이렇게 예의 차린다고?”나는 너무 무안해서 머리를 긁적였다.“진심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윤 사장님도 너무 고마워요. 두 분 모두 제 귀인이에요.”윤미화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말로만 고마워하지 말고 나중에 밥 사.”“당연하죠.”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무엇보다 밥 한 끼 같이 하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옆에 있던 윤지은의 낯빛은 매우 어두웠다.“종마.”윤지은의 목소리는 매우 작았지만 내 귀에 콕 박혔다.나는 순간 어이없어 반박했다.“갑자기 왜 또 욕하고 그래요?”“욕하면 뭐?”윤지은은 더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윤지은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까까지만 해도 살갑게 대하더니 갑자기 기차 통을 삶아 먹었는지 화를 내다니.나는 너무 어이없었지만 이 상황에 끝까지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됐어요. 싸우기 싫어요. 내가 남자니까 참을게요.”나는 결국 양보를 선택했다.옆에 있던 윤미화는 이상한 눈빛으로 우리 둘을 번갈아 봤다.한편 나는 또 실수로 윤지은 심기를 거스를까 봐 그녀와 거리를 두었다. 그때 윤미화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저 아가씨가 수호 씨 좋아하는 것
전승빈이 제 딸을 속일 방법은 수백 가지도 더 된다. 왕정민 같은 쓰레기가 딸 옆에 없다면 오히려 더 잘된 일이 아닌가?만약 내가 전승빈이라면 오히려 왕정민이 영원히 사라져서 평생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거다.전승빈은 내 말에 대답하기 싫은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쓸데없는 건 묻지 말게. 화를 불러일으킬 테니.”윤미화는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 조용히 내 팔을 잡아당겼다.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승빈에게 말했다.“좋아요. 왕정민을 찾는 걸 도와드리죠. 그러면 제가 빚진 건 없었던 겁니다.”말을 마친 나는 윤미화를 데리고 회사를 나왔다.회사를 나오자마자 윤미화는 나한테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왕정민은 분명 전승빈이 두려워서 숨었을 거예요. 그러니 찾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그건 거의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나 마찬가지다.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왕정민은 분명 제가 죽도록 미울 거예요. 내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줄까요?”“미쳤어? 이 와중에 왕정민을 만났다가 왕정민이 진짜 살의라도 품으면 어쩌려고?”왕정민은 현재 나 때문에 궁지에 몰렸으니 분명 나를 죽이고 싶을 거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를 만나면 확실히 화를 입을 수 있었다.다만 이게 왕정민을 끌어내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안돼. 그건 너무 위험해. 내가 동의 못해!”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방법이 떠올랐어요. 지금 왕정민은 버림받은 개나 마찬가지라 분명 진동성을 찾아갈 거예요. 제가 병원에서 진동성만 잘 감시하면 될 거예요.”‘안 되겠어. 지금 당장 병원에 가봐야 해. 안 그러면 늦을지도 몰라.’나는 얼른 윤지은에게 전화했다.“지금 외과 병동으로 가서 진동성이 있는지 봐줄래요?”[그럴 필요 없어. 진동성이 방금 가는 걸 봤거든.]“젠장. 결국 한발 늦었네.”나는 화가 나 이를 갈았다. 그러자 윤지은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이내 전승빈이 나한테 왕정민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는 걸 사실대로 말했다.윤지은은 내 말을 듣고
왕정민은 자기가 고용한 놈들이 저에게 반항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너희들 뭐야? 이게 무슨 짓이야? 지금 반항해?”왕정민은 버럭 소리치며 다급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그러자 꽃무늬 셔츠가 콧방귀를 뀌었다.“전 회장님이 오라고 하십니다.”왕정민이 아는 사람 중 전 회장이라 불릴만한 사람은 전승빈뿐이다. 때문에 그는 단번에 전승빈을 떠올렸다.왕정민은 그제야 이 모든 게 처음부터 함정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것도 내가 전승빈과 손을 잡고 판 큰 함정.아쉽게도 왕정민은 그걸 이제야 알아차렸다.왕정민은 자신이 전승빈 손에 들어가면 어떤 신세가 될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돌아갈 수 없었다. 돌아가지도 않을 거였고.“빌어먹을!”왕정민은 바닥에 있는 벽돌을 집어 들어 꽃무늬 셔츠에게 던지고는 신속히 밴에 뛰어들어 시동을 걸었다.그 누구도 왕정민이 도망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그제야 반응한 꽃무늬 셔츠는 다급히 소리쳤다.“당장 쫓아!”꽃무늬 셔츠는 필두로 한 무리는 다급히 밴을 쫓았다. 다만 사람이 차를 쫓아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덕에 왕정민은 밴을 몰고 도망쳤다.“젠장.”꽃무늬 셔츠는 곧바로 전승빈에게 전화해 왕정민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고 나서 제 무리를 데리고 떠났다.한참 뒤 내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전승빈이었다.[증거는 입수했나?]“네.”[왕정민은 왜 도망치게 뒀지?]전승빈은 화가 난 듯 따져 물었다.그 말에 나는 미간을 팍 구겼다.“저는 함정을 파서 왕정민이 뛰어들게 하는 것만 책임졌지 사람까지 잡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게다가 왕정민이 도망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왕정민이 도망치면 우리가 지금껏 한 게 뭔 의미가 있지? 지금 당장 내 부하 놈들과 협력해서 왕정민을 잡아와!]나는 전승빈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내가 제 사람인 줄 아나? 내가 왜 왕정민을 잡는 것까지 도와줘야 하지?’그때 윤미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봤다.“전 회장
이로써 왕정민의 열등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당장 저 자식 다리부터 분질러!”왕정민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놈들에게 소리쳤다.그러자 건달들은 무기를 든 채 하나둘씩 나에게 달려들었다.그때 꽃무늬 셔츠를 입은 놈이 나더러 벽 쪽으로 가라고 눈빛을 보냈다. 그렇게 하면 상처를 줄일 수 있었다.나는 얼른 구석진 벽 쪽으로 달려갔다.건달 놈들은 멋모르고 나에게 달려왔다. 꽃무늬 셔츠는 내 앞에 막아서면서 나와 싸우는 척했지만 사실은 나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반항하기 시작했다.나는 지금껏 쌓아왔던 울분을 모두 건달 놈들에게 풀었다.“아!”나는 소리 지르며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 해댔다.마음 같았으면 놈들을 모두 때려죽이고 싶었다.내 기세에 놀랐는지 기세등등하게 달려들던 놈들이 점차 뒷걸음치기 시작했다.나는 감정이 폭발해 놈들을 향해 소리쳤다.“이봐. 죽일 테면 죽여 봐! 덤벼!”하지만 나에게 덤비는 놈은 한 놈도 없었다.그러자 결국 왕정민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왔다.“젠장. 쓸모없는 것들! 비켜. 내가 직접 한다.”왕정민은 몽둥이를 들어 내 다리를 내리쳤다.그 기회를 봐 내가 반격하려 할 때 갑자기 그림자 하나가 휙 하고 나타나더니 단번에 왕정민을 걷어찼다.나는 놀란 눈으로 내 앞에 나타난 변석훈을 바라봤다.“석훈 형님, 여긴 어떻게 왔어요?”“넌 윤 회장님 사람이야. 윤 회장님이 널 죽이지 않는 한 다른 놈이 널 죽일 수는 없어.”변석훈은 간단하게 온 이유를 설명했다.그때 윤미화가 탐정 사무소 직원들을 데리고 달려왔다.“수호 씨, 얼른 내려와. 이 증거로 저 자식들 잡을 수 있어.”나는 녹화된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은 매우 완벽했다. 특히 왕정민이 아주 선명하게 나왔다.“좋아요. 우리 가요.”그제야 왕정민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버럭 소리쳤다.“정수호, 거기 서!”왕정민은 내 주변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결국 윤미화에게 시선이 떨어졌다.“윤미화, 감히 날 갖고 놀아?”윤미화는 싸늘
모든 준비가 완벽히 끝났다. 하지만 내 눈에 왕정민은 보이지 않았다.왕정민이 직접 나타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때문에 나는 일부러 꽃무늬 셔츠를 입은 놈에게 물었다.“당신들 누구야? 뭐 하는 거야?”“누가 당신의 팔다리를 부러뜨리라네?”꽃무늬 셔츠는 나에게 협력해 정보를 흘렸다.나는 또 물었다.“누가 당신들 보냈어? 죽기 전에 어떻게 죽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나는 말하면서 밴 쪽을 쳐다봤다. 안에 왕정민이 있는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나는 이를 악물며 비아냥거렸다.“그런데 당신들 고용한 놈도 참 쫄보네. 직접 나서지도 못하는 거 보면.”“하. 정수호.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왕정민이 겨우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다행히 왕정민도 직접 왔네.’내 걱정은 그제야 말끔히 사라졌다. 나는 왕정민을 차갑게 노려봤다.“왕정민, 뭐 하려는 거야? 벌건 대낮에. 이거 불법이야.”왕정민은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한 모금 크게 빨아들였다.“불법? 난 원래 법 안 지켜. 어쩔 건데?”“당장 저놈 핸드폰 빼앗아 와.”왕정민은 먼저 내 핸드폰부터 압수하고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여기 CCTV도 없어. 네가 아무리 신고해도 소용없어. 정수호, 내 말에 대답해. 너한테 왜 내 집 열쇠가 있는 거야?”나는 일부러 왕정민을 자극했다.“당연히 애교 누나가 줬지.”“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태웅이 네 열쇠 압수한 거 다 알아.”“압수한 거 맞아. 하지만 나중에 다시 줬어.”사실 그런 적은 없지만 나는 왕정민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지어냈다.이태웅한테 계속 무시당해 왔다는 건 왕정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지뢰 같은 사실이다. 때문에 내가 일부러 이태웅이 나한테 잘해준다고 하면 왕정민은 분명 불만을 품을 게 뻔하다.아니나 다를까 왕정민은 내 자극에 바로 반응했다.“왜 줬는데? 이태웅 그 노인네를 내가 몇 년 동안 모셨는데 지금껏 날 인정하지 않았다고. 그런데 너는 뭔데 인정을 받
나는 겨우 걱정을 덜어내고 윤미화에게 전환해 모든 것을 자백했다.내 말을 들은 윤미화는 고막이 터질 정도로 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정수호, 미쳤어? 전승빈이 어떤 사람이고 왕정민은 또 어떤 사람인데? 감히 두 사람을 이용하려고 들어?”윤미화는 내가 왕정민이 전승빈 조사를 의뢰했다는 걸 누설했다고 탓하는 게 아니라 내 안위를 걱정했다.그 때문에 나는 윤미화에게 더 미안했다.“윤 사장님, 일은 이미 벌어져서 돌이킬 수 없어요. 제가 전화드린 건 장비 좀 빌려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예요. 오늘 저녁 제가 왕정민 약점을 잡을 거거든요.”“빌리긴 뭘 빌려? 내 직원한테 일이 생겼다는데 내가 설마 모른 척하겠어?”윤미화의 말에 나는 너무 감동하였다.“윤 사장님, 정말 너무 좋은 분이셨군요.”윤미화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알면 됐어. 앞으로 한 번만 더 속였다간 봐. 수호 씨는 내가 스카우트한 사람이니까 난 수호 씨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어.”“왕정민한테 미움 살까 봐 두렵지 않아요?”“두렵지. 그걸 말이라고. 하지만 내가 탐정 사무소를 차린 건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야. 내 소원은 이미 이뤘으니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내가 돈 벌 방법이 이것뿐인 것도 아니고.”그 말에 나는 더욱 감동했다.“사장님, 저 울고 싶어요.”윤미화는 그런 내가 쪽팔리다니는 듯 말했다.“남자가 울긴 뭘 울어? 난 그런 남자 제일 싫어.”윤미화는 오늘 밤 직접 오겠다면서 주소를 보내라고 했다.내 계획은 왕정민을 아무도 없는 골목으로 끌고 가는 거다. 그렇게 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니까.물론 왕정민이 무조건 나타나게 하기 위해 도관에서 나오기 전 나는 일부러 그에게 전화해 자극했다.“왕정민, 네가 뭘 모르는 게 하나 있는데. 나 지금껏 애교 누나네 집 열쇠를 가지고 있었어.”[개자식이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데?]왕정민은 분노에 차 버럭 욕설을 퍼부었다.예상했던 반응에 나는 피식 웃었다.“별 건 아니고. 그냥 네가 예전에 샀던 그 집은 지금 내가 살
변석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한참 뒤 윤지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도 내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저 자식 얼마나 연습했어?”“아가씨, 벌써 3시간째 저러고 있어요.”“죽으려고 작정했나? 어제도 밤을 새웠으면서 오늘 이렇게 무리하면 어쩌자는 건지.”윤지은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걸어왔다.“정수호, 지금 당장 휴식해.”나는 윤지은을 흘긋거리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 연습했다.윤지은은 내 행동에 화가 났는지 내 뺨을 후려갈겼다.“네가 이런다고 누가 감동할 것 같아? 넌 지금 스스로 감동에 취해 있는 거야. 전에는 연습을 게을리하고 이제 와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나 봐? 네가 뭐 소설 주인공인 줄 알아? 지금 당장 휴식해!”나는 화끈거리는 얼굴도 신경 쓸 새 없이 심호흡하며 말했다.“누구 감동하라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화를 풀려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짬 내서 연습해서 하루빨리 실력을 끌어올리려는 거예요.”변석훈은 나에게 고작 한 달이라는 시간밖에 주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서두르지 않으면 그 시간 안에 다 배우지 못할 거다.윤지은은 씩씩거리며 말했다.“벽석훈이 너 안 가르친다면 내가 양동준더러 너 가르치라고 하면 될 거 아니야. 뭐 그리 큰일이라고 이렇게 네 몸을 가혹하게 대해?”나는 너무 놀라 윤지은을 바라봤다.“뭐라고요? 동준 형님이 저 가르치는 거 동의하는 거예요?”“네가 내 말 잘 들으면.”윤지은의 요구에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지금 당장 휴식할게요.”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두말없이 뒤돌아섰다.윤지은은 내가 이렇게 고분고분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예전에는 항상 개와 고양이처럼 만나면 싸워댔는데 내가 갑자기 고분고분해지니 윤지은은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윤지은은 이내 나에게 걸어와 나를 꿰뚫어 볼 것처럼 훑어봤다.“정수호. 너 아무 일 없는 거 맞지?”나는 물을 마시며 땀을 닦았다.“저한테 뭔 일 있겠어요? 보다시피 저 멀쩡해요.”“그렇다면 다행이고. 난
진소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만 봐도 흔들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작 몇 마디 사탕 발린 말에 흔들린다니, 이 여자가 참 한심했다. ‘머리가 비었나? 하긴, 그러니까 진동성한테 제대로 속았겠지.’하지만 예전의 나도 진소민과 다를 게 없었다.태어날 때부터 계략에 능하고 총명하며 위선과 악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나는 진소민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쌍했다. 진동성의 눈빛만 보면 그가 진소민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그저 이 바보 같은 여자를 농락하고 있는 거였다.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내가 짐작이 맞았다.진동성이 진소민을 떠나지 못하게 한 건 그가 진소민한테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진소민은 워낙 민감한 몸이라 진동성의 사이즈가 아무리 작아도 쉽게 절정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느낌은 그동안 아내인 고태연한테서 느껴보지 못했다. 때문에 진소민을 만난 뒤에 그는 진정 자기가 남자가 된 것 같았다.진동성은 아직 사업에서도 큰 성공을 이룩하지 못하고 결혼도 실패했는데, 유독 진소민 앞에서만은 성취감을 얻을 수 있고 빈자리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되든 그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진동성의 목적은 이 바보 같은 여자를 붙잡는 거였다.나는 더 이상 끼어들지 않았다. 진소민이 떠나든 말든 관심 없었다. 난 오직 이런 방법으로 기름을 부어 진동성이 하루빨리 나를 처리하라고 왕정민을 꼬드기게 하고 싶었다.나는 진동성을 보며 냉소했다.“이 여자는 속이기 쉬워 참 좋겠어. 어디 평생 속여 봐. 하지만 네놈이 한 짓을 부모님이 알면 어떨지 궁금하네.”말을 마친 나는 일부러 깔깔거리며 떠나갔다.이 순간 진동성이 뒤에서 이를 갈며 나를 죽일 듯 노려볼 거라는 걸 알고 있다.이건 바로 내가 원하는 효과였다.진동성은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어 직접 움직일 수 없으니 분명 왕정민한테 연락할 거다.왕정민이 나에게 손을 쓴 순간 내 계획은 성공한 셈이다.나는 아무도 없는 구석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될 때 나는 부모님께 그 의서가 어디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부터 의서를 찾지 못했다.아마 그전에 진동성이 이미 몰래 훔쳐 갔을 거다.‘진동성 이 개 같은 자식. 진짜 뼛속까지 악질이네.'우리 가족은 너무 착해서 그놈의 가면에 깜빡 속아 넘어갔다.여진수가 형수의 상태를 확인한 뒤 나는 곧장 외과 병동으로 향했다.진소민이 와서 진동성을 간호하고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진동성의 손은 진동성의 치마 속에 있었다.형수는 아직도 의식불명의 상태인데 이 개자식은 병원에서까지 여자와 꽁냥거리고 있다니. 이런 놈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 하는 게 맞다.진동성은 나를 보자마자 비아냥거렸다.“넌 또 왜 왔어? 내 마누라 돌보지 않고 내가 다른 여자랑 즐기는 거 구경 왔어?”나는 피식 웃었다.그러자 진동성의 미간이 푹 파였다.“뭘 웃어?”나는 의자 하나를 끌어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사실 나는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고 있었다.난 형수가 갑자기 교통사고가 난 게 분명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함께 교통사고가 났는데 형수는 크게 다쳐 의식불명이 되고 진동성은 고작 피부가 까진 전도로 끝났다는 게 너무 이상하다.게다가 이 자식은 형수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진소민과 어울리고 있다니. 이걸 찍어두면 분명 형수에게 유리한 증거가 될 거다.“네 놈 목숨이 참 질겨서 웃는다. 형수는 저렇게 됐는데 넌 고작 찰과상이라니. 어떻게 했어?”진동성은 이미 대답을 준비한 것처럼 빈틈없이 대답했다.“그걸 나한테 물으면 난 누구한테 물어봐? 교통사고가 갑자기 나서 나도 미처 반응하지 못했어. 내가 깨어났을 땐 이미 병원에 있었고. 그런데 나한테 어떻게 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당연히 모른다지.”진동성이 이렇게 대답할 거라는 걸 난 진작 예상했다.때문에 나는 방법을 바꾸어 진소민을 바라봤다.“그럼 당신한테 묻지. 그쪽은 대체 무슨 신분으로 그 남자를 돌보는 거야?”진소민은 워낙 말주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