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로 그러겠다고 하면 왕정민이 분명 그가 애교를 오랫동안 마음에 푸고 있었다고 생각할 테니까.동성은 왕정민에게 밀당하듯 대답했다.[네가 내 마누라를 좋아하는 거면 내가 기회를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마누라는 됐어. 내가 어떻게 감히 그래.]심지어 본인은 자세를 낮추어 왕정민을 마치 윗사람인 것처럼 떠받들었다.그러면서 제 아내를 바치면서 왕정민의 욕망을 일부러 건드렸다.동성은 왕정민이 그동안 엄청 더럽고 다양하게 놀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자기 아내 태연처럼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와 분명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다.때문에 초반에 재미 좀 보게 한다면 왕정민도 애교를 저에게 넘겨줄 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여겼다.심지어 왕정민의 의심도 사지 않은 채로 말이다.아니나 다를까 왕정민은 동성의 대답을 보고 입꼬리를 비틀었다.태연은 너무 괜찮은 여자다. 게다가 몸매는 그가 지금껏 본 여자 중에서 가장 좋고.‘그런 여자와 몸을 섞는 건 어떤 기분일까?’왕정민은 당장 시도해 보고 시었다.‘진동성이 내 기분을 꽤 잘 맞춰주네. 아내를 나한테 바치겠단.’[그건 네가 원하는 거지, 네 마누라는 원해?]동성은 왕정민의 대답에서 희망을 가졌다.‘걸려들었네.’[솔직히 말하자면 나랑 태연 오랫동안 하지 못했어. 태연은 아이를 원하는데, 너도 알잖아 내가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거. 만약 네가 그걸 도와준다면 우리 부부도 너한테 무척 고마워할 거야.][조금 미덥지 못한데? 내 아내더러 내 아이를 갖게 하라고? 그리고 둘이 내 아이를 키워주겠다는 거야? 너는 괜찮고?]동성은 당연히 괜찮지 않아. 하지만 입 밖에 내지 않고 계속 말했다.[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네 아이면 내 아이인 거지, 그렇게 나눌 필요 뭐 있어?]왕정민은 동성의 대답을 보자 크게 웃었다.두 사람이 친구라고는 하지만 사실 왕정민은 항상 동성을 무시해 왔다.그런데 오늘 동성이 바닥에 바싹 엎드려 개처
“젠장, 개 같은 자식, 공짜로 내 마누라를 먹으려고? 맛보겠으면 미리 나한테 성의 표시라도 해야지.”동성은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동성이 화가 난 건 왕정민이 자기 아내와 자겠다는 게 아니라 자기 아내와 자겠다면서 애교를 저한테 주지 않는 거다.마침 혼자 집에 있는 지금, 왕정민은 애교를 꼬드겨 여기로 보낼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그러니 애교와 자라고 처음에 얘기했던 말이 그저 말뿐일 지 아닐지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동성은 이 일을 진짜로 밀어붙이고 싶었다.‘태연을 잘 설득해서 왕정민한테 협조하라고 해야겠네.’다음 날.형은 아침 일찍 병원에 찾아왔다. 나는 당연히 나를 보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형수를 불러내 뭔 대화를 하는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그걸 보니 나는 조마조마했다.그도 그럴 게, 형이 병실에 들어왔을 때 형수가 내 몸을 닦아주고 있었으니까.형이 나와 형수 사이를 의심할까 봐 두려웠다.때문에 자꾸만 목을 빼 들고 밖을 내다봤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그 시각, 동성은 태연을 아무도 없는 복도 끝으로 끌어가서는 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계속 수호 케어하느라 그동안 고생 많았어. 오늘부터 내가 수호를 돌볼 테니 돌아가서 휴식해.”“괜찮아, 힘들지 않아. 당신은 출근해야 하잖아. 남아서 수호 씨 보살피면 일은 어떡해?”동성은 진작 계획해 둔 대로 말했다.“요즘 회사에 일이 별로 없어서 부하직원더러 하라고 하면 돼. 자기가 힘들까 봐 마음 아파서 그러지.”“수호는 내 동생인데 형수인 너더러 매일 보살피라고 하는 게 좀 아닌 것 같아서, 돌아가서 휴식해. 하루만이라도 잘 휴식하고 내일 다시 와.”태연은 떠나기 매우 아쉬웠지만 동성의 의심을 살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할게.”태연이 떠난 뒤, 동성은 바로 왕정민한테 문자를 보냈다.[정민아, 내가 병원에 와서 태연이랑 교대했어. 오늘부터 내일 아침까지 계속 혼자 집에 있을 테니까 기회 잘 잡아.]왕정민이
형은 내 침대 옆에 앉아 계속 자기 일만 해댔다.그런 형이 얼마나 바쁜지 알고 있었기에 나도 방해하지 않았다.한편.태연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뜨거운 물로 목욕하고 팩을 붙이고는 잠깐 눈을 붙이려 했다.이틀 동안 병원에서 환자를 케어한다는 게 힘든 일이었으니까.태연이 입은 실크 슬립을 입고 있었지만, 완벽한 콜라병 몸매를 다 가리지는 못했다.한참 뒤, 태연은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그 시각 옆집.왕정민은 사실 아까 전 문 사이로 태연이 돌아온 걸 확인하고 난 뒤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애교와 남주는 아침 일찍 집을 나가 왕정민은 지금 베란다를 통해 태연의 집에 넘어갈 수 있었다.태연의 매력적인 몸매를 떠올리자 왕정민은 너무 흥분해 베란다를 살금살금 넘어 태연의 방에 몰래 잠입했다.태연도 방문을 잠그지 않은 터라, 왕정민은 문틈 사이로 방 안 광경을 몰래 볼 수 있었다.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남자를 끌어당기는 태연의 매력에 왕정민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특히 태연이 입고 있는 슬립 원피스와 서로 겹쳐 있는 늘씬한 두 다리를 보자 야릇한 생각이 떠올랐다.왕정민은 살금살금 태연에게 걸어가더니 급기야 손으로 태연의 다리를 탐욕스럽게 문질렀다.“완전 하얗고 부드럽잖아!”“아, 누구야?”잠에서 놀라 깨자마자 왕정민을 본 태연은 멍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왕정민 씨, 왜 우리 집에 있어요?”왕정민은 피둥피둥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설명했다.“뭐 좀 빌리러 왔는데 아무리 노크해도 대답이 없어 베란다로 넘어왔어요.”“뭘 빌리러 왔죠?”태연은 왕정민이 저를 보는 눈빛을 보자 너무 무서웠다.특히 말하면서 옆에 슬쩍 안는 모습에 더욱 불안했다.여자의 직감이 말해주건대, 왕정민은 분명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다.태연은 얼른 침대에서 내려와 긴 외투를 걸치며 말했다.“거실에서 얘기하죠.”태연은 말하면서 거실로 걸어갔다.그나마 거실이 침실보다는 조금 더 안전하니까.만약 왕정민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한다면 재빨리 문을 열고 도
“태연 씨, 사실 나도 동성 말이 맞다고 봐요, 여자는 아무래도 남자의 손길을 타야 하니까. 안 그러면 빨리 늙어요. 동성은 태연 씨와 이혼하고 싶지 않고 또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나한테 도움 청한 거니 이게 오히려 두 사람 결혼생활에 더 좋을지도 몰라요.”왕정민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더니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왕정민은 태연과 몸을 섞고 싶지만 본인이 지배자의 위치에서 태연이 스스로 몸을 바치기를 원했다.태연은 왕정민의 그런 태도에 구역질이 나 싸늘하게 말했다.“우리 결혼은 그런 방식으로 유지할 필요 없어요.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할 테니까 그만 가주세요.”이에 왕정민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태연 씨, 남의 호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여기 한 번 오는 게 쉬운 줄 알아요? 그런데 나를 이렇게 쫓아낸다고요?”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면 포기할 기미가 없는 듯한 왕정민의 태도에 태연은 어이가 없었다.왕정민이 저한테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뻔뻔한 사람일 줄은 꿈에도 없었으니까.심지어 눈살 찌푸려지는 말까지 하며 말이다.결국 태연은 어두워진 얼굴로 문 앞에 서서 문을 활짝 열고 왕정민을 쫓아냈다.“그만 가세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왕정민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끄고 어두운 표정으로 문 앞에 걸어갔다.그러다가 갑자기 태연의 팔을 잡아당겨 제 품에 껴안고는 문을 닫아걸었다.그 순간 태연은 너무 놀라 버럭 소리쳤다.“뭐 하는 거예요? 경고하는데, 그만둬요.”왕정민은 태연의 풍만한 몸매에 순간 반응했다.“뭐 하긴, 당연히 하려고 그러지. 동성이 태연 씨를 나한테 줬어요. 그러니 날 제대로 모셔요.”“어디서 순진한 척은, 욕구 불만인 주제에 남자 손 한동안 안 탔으면 저도 안달 났을 거면서.”왕정민은 몸집이 커다란 데다 힘까지 세서 힘도 들이지 않고 태연을 소파 쪽으로 끌어와 힘껏 밀었다.그 순간 태연의 몸은 소파에 세게 부딪히면서 가슴이 흔들렸고, 치마마저 말려 올라가며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
“태연 씨, 우리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잖아요. 동성도 태연 씨 생각해서 이러는 건데. 사실 동성은 태연 씨와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은데 자기가 만족시켜 주지 못해 영향을 줄까 봐 나한테 도움 처한 거예요.”“내가 방금 표현이 좀 과격해서 오해가 생겼을 수도 있겠네요. 지금 다시 제대로 설명해 줬잖아요, 그리고 강요할 마음도 없어요.”‘강요할 마음이 없다고?’‘당장이라도 겁탈할 것처럼 달려들었으면서 잘도 뻔뻔한 소리를 하네.’태연은 세 살짜리 아이가 아니다. 태연도 자기만의 생각이 있고, 판단이 있기에 왕정민의 말은 조금도 믿지 않았다.그저 눈앞의 남자를 보면 볼수록 역겹고 구역질 난다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왕정민은 태연이 제 말에 설득된 줄 알고 슬그머니 태연의 손을 더듬었다.만약 거절하지 않으면 태연도 마음속으로 원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그러면 다시 제대로 공략하면 그만이다.심지어 남자의 손길을 오랫동안 타지 않은 여자, 특히 태연처럼 욕구불만인 여자는 분명 남자를 원할 거라고 확신했다.그걸 제대로 불붙여주면 태연을 손에 넣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하지만 생각 밖으로 태연은 왕정민의 손이 닿자마자 바로 쳐냈다.“손대지 마요. 왕정민 씨, 잘 들어요. 우리 남편 무슨 말을 했든 절대 정민 씨랑 그럴 가능성은 없어요.”“태연 씨, 나랑 동성은 오랜 친구예요. 내가 친구 도와주자고 발 벗고 나서는데, 호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태연은 너무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정말 그럴싸한 변명이네요. 나를 겁탈하려 하면서 도와준다고? 그것도 말이라고!”“아니에요, 난 정말 태연 씨를 돕고 싶어요.”“본인 아내도 오랫동안 방치했으면서, 왜 애교는 도와주겠다는 말 안 해요? 자기 아내한테도 무관심한 사람이 친구 아내를 걱정한다고? 무슨 속셈인지 내가 모를 줄 알아요?”왕정민은 또 다시 얼굴을 구겼다.“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나랑 애교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알고 있으니까 방금 정민 씨 말이 역겹다는
태연은 바로 동성에게 전화해서 울먹였다.“진동성, 대체 뭐 하자는 거야?”[왜 그래? 무슨 일이야?]동성은 일부러 모르는 척 연기했다.“어설픈 연기 그만해. 왕정민이 사실대로 다 말했으니까. 나를 왕정민한테 팔아넘겼다며?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이 개자식아!”태연은 말하면서 또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동성은 이미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했지만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솔직히 태연이 아주 기꺼이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지 이렇게까지 거부감을 가질 줄은 몰랐다.동성의 경솔함이 일을 완전히 그르쳤다.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후회해 봤자 소용은 없다. 때문에 동성은 끝까지 잡아떼며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자기를 왕정민한테 팔아넘기다니? 자기는 내 아내인데 그럴 리 없잖아. 왕정민이 무슨 짓 했어? 이 개자식! 역시 그 자식이 더러운 마음 품고 있을 줄 알았다니까. 어쩐지 나더러 자기와 교대하라고 하더라니, 다 꿍꿍이가 있었네.]그 말에 태연은 바로 눈물을 그쳤다.“그게 무슨 말이야? 왕정민이 이렇게 하라고 했다고?”[응, 난 또 우리 부부를 생각해 주는 줄 알았지, 누가 뒤에서 자기를 노릴 줄 알았겠냐고. 설마 무슨 일 당한 건 아니지?]태연은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야. 내가 애교를 내세워 협박하니까 아무 짓도 못 하더라. 지금 맹세해. 정말 왕정민과 짜고 나 팔아넘긴 거 아니지?”태연은 동성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왕정민이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태연과 동성은 왕정민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그런 왕정민이 정말 태연을 어떻게 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면 지금껏 기다릴 이유가 없다.때문에 동성이 거짓말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동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맹세해. 절대 왕정민과 짜고 치지 않았어. 내가 거짓말하면 앞으로 남은 평생 남자구실 못할 거야.]‘독하네, 이런 맹세까지 하다니.’결국 태연은 그대로 넘어갔다.“그래, 이번 한 번만
하지만 방금 전 동성의 말에 태연은 너무나도 구역질이 났다.태연이 제일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자기의 남편이 이미 변했다는 것이다.이기적이고 밑바닥까지 없는 인간으로.때문에 태연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자기 남편의 이미지가 그보다 더 밑바닥일까 봐.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동성과 앞으로 살아갈 자신조차 없어지게 될까 봐.“왜? 왜 이렇게 됐지?”태연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애초에 동성을 만나고 결혼까지 결심한 건 분명 동성의 정직함이 마음에 들어서였다.동성 가은 남자와 살아야 착실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사실 결혼한 지 몇 년 동안 동성은 늘 태연에게 잘해줬다.크고 작은 명절과 기념일이면 선물을 사다 주고 월급 카드도 태연에게 맡기고, 심지어 결혼한 뒤 산 집도 태연의 명의로 해줬다.게다가 세금 납부를 제때에 하고 매일 제 시간에 귀가하고 시간만 나면 태연과 함께 있어줬다.태연은 자기가 늘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하지만 2년 동안 회사 압력이 점점 처지면서 동성의 어깨에 짊어진 책임의 무게도 점점 커갔고 부부 생활에 전처럼 신경 쓸 수 없게 되었다.그것도 태연은 모두 받아들였다.정 안 되면 시험관 아기라도 가져보겠다는 생각을 안고.아무튼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현 상황을 해결할 생각뿐이었지 동성과 이혼하려는 선택지는 태연에게 없었다.하지만 오늘 그런 일이 벌어지고 동성에 대한 태연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애초에 태연을 알뜰히 보살피고 아껴주던 남자는 언제부터인가 이미 변하기 시작했다.왕정민처럼 이기적으로 변했다.태연의 마음은 너무 심란하고 복잡했다.‘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병원.비몽사몽한 상태로 잠자고 있던 나는 어렴풋이 들리는 형의 통화 소리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은연중에 태연이라는 이름을 들어 나는 단번에 형이 형수와 통화하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하지만 형은 통화 내내 뭔가를 해명하고 있었고 상태도 조금 이상해 보였다.전화를 끊은 형을 보자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형이 방금 뭐라고 그랬지?’‘왕정민이 형수를 안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형수는 형의 아내인데, 자기 아내를 남의 남자에게 바친다고?’나는 도저히 내 귀를 믿을 수 없었다.더욱이 항상 정직하기만 하던 형이 이렇게 쓰레기 같은 마인드를 갖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내 마음은 복잡하고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너무 고민되었다.저 남자는 분명 내 형인데. 분명 내가 어릴 때부터 친형처럼 따르던 형인데.나는 당장이라도 형한테 달려가 왜 이러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형이 평소에 나한테는 정말 잘해줬으니까.때문에 나는 더 괴롭고 고통스러웠다.심지어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형은 왕정민과 통화를 끝낸 뒤 떠났지만 나는 화장실 문에 기댄 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어쩐지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니.’형수를 생각하니 왕정민에 대한 증오가 극에 치달았다.‘이 쓰레기가 애교 누나를 배신한 것도 모자라 형수까지 넘봐?’나는 당장이라도 왕정민을 죽이고 싶었다.‘절대 이렇게 왕정민이 원하는 대로 되게 할 수 없어.’나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 왕정민이 형수를 노린다는 걸 애교 누나에게 말했다.게다가 화가 잔뜩 나서 문자 하나를 전송했다.[누나, 왕정민과의 이혼을 서둘러요. 그렇지 않으면 왕정민 그 짐승만도 못한 자식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그리고 누나랑 남주 누나도 조심해요. 왕정민은 인간도 아니에요.]그 시각, 남주와 함께 법무사 사무소에서 명의이전 절차에 관해 물어보고 있던 애교는 저한테 도착한 메시지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남주는 애교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걱정스레 물었다.그러자 애교는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남주에게 건넸다.그걸 본 남주는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왕정민 이 개 같은 자식, 이건 인간도 아니야. 어떻게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어?”“난 그래도 왕정민이 어느 정도 선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
전에는 누가 와서 소란을 피울까 봐 민우더러 나와 함께 가게에서 지내자고 했지만, 지금 사장님 댁에 머물고 있는데 민우까지 데려올 수는 없었다. 때문에 뭐든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민우를 집에 데려다 두는 길에 그는 나에게 함께 사장님 댁에 있어 달라냐며 물었다. 그러면 서로 보살필 사람이 있다면서.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나도 그걸 생각해 보지 않은 적 없어. 하지만 사장님을 돌보려고 그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너까지 데려가면 이상하잖아.”“난 그 개자식들이 또 너한테 무슨 짓 할까 봐 그러지.”“나도 무서워. 하지만 이미 준비해 뒀어.”나는 의자 밑에서 도구 몇 개를 꺼냈다.민우는 그 도구들을 손에 들고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말했다.“이 도구들은 조금 도움이 될 뿐이야. 그래도 내가 너한테 가르쳐준 방법을 사용해.”민우는 말하면서 손을 움켜쥐는 동작을 했다.그 동작에 나는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그 방법 확실히 좋더라...”우리가 한창 얘기하고 있을 때 백미러에 언뜻거리는 차 한 대가 비쳤다.무의식적으로 뒤에 따라붙은 사람이 운전할 줄 모른다며 투덜거리던 나는 갑자기 이상한 낌새를 챘다. 그도 그럴 게, 뒤에서 달려오는 차는 속도가 아주 빨랐는데 마치 나를 강제로 세울 것처럼 굴었으니까.“잘 앉아.”나는 불안한 예감에 다급히 액셀을 밟아 속도를 냈다.다만 내 차의 유일한 단점은 속도를 너무 빨리 낼 수 없다는 거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뒤 차에 따라잡혔다.놈들은 내 차를 강제로 멈추게 할 작정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 차량은 승합차였는데, 그런 승합차는 용량이 커 적어도 열댓 명을 태울 수 있었다.만약 차에서 열 몇 명이 우르르 내리면 나와 민우 둘이 대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때문에 나는 액셀을 밟았다. 하지만 승합차 두 대는 좌우에서 협공하며 내 차를 가운데 몰아 끼긱끼긱, 하며 긁히는 소리가 났다. 분명 차가 내는 소리였지만 내 살점이 뜯겨나가는 기분이었다.아직 차 할
내가 한창 망설이고 있을 때 사장님도 말을 보탰다.“수호 씨, 남아서 좀 도와줘. 우리 마누라가 요즘 너무 힘들어서 그래. 어릴 때부터 금지옥엽으로 자라나 이런 고생 언제 해 봤겠어? 이것 봐, 피곤해하는 거 보이지? 나도 솔직히 마음 아파.”사장님과 사모님이 모두 나를 남으라고 설득하는 상황이라 나도 더 이상 거절하기 곤란했다.“그래요. 제가 남아서 도와드릴게요.”사장님이 드시고 사용해야 하는 약이 너무 많아 확실히 번거롭긴 하다. 때문에 나도 사모님 혼자 사장님을 케어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다.사모님은 내 말에 이내 환한 표정을 지었다.“수호 씨는 아무것도 가져올 필요 없어요. 여기 모두 있으니까. 전처럼 계속 객실에서 자면 돼요. 그곳 채광이 좋고 공기도 좋아요...”사모님은 내가 이곳에서 지내는 데 불편해할까 봐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았다.사장님 내외가 사는 집은 모두 고급 가구를 사용했는데, 내가 이곳에 남아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런 걸 누려볼 기회가 어디 있을까?사장님 내외는 나한테 너무 잘해줘서 내가 다 미안할 따름이었다.사장님 몸은 우선 한약으로 며칠간 보양해야 하지만 약을 다 먹으면 사실 힐 것도 없어 나는 가게 일을 돌볼 수 있었다.요 며칠간 주해진은 소란 피우러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대로 포기했다는 건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동료들한테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한편 주해진은 그날 도망치듯 가게를 떠난 뒤 마음이 계속 안 좋았다.하지만 최근 일손을 구해봤지만 누구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 첫째 이유는 주해진이 깡패라 정계와 연이 닿는 지인이 적었고, 두 번째 이유는 사촌 형이 다시는 화인당을 다시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주해진은 입으로는 싫다고 했지만 요 며칠간 그래도 제 분수를 지켰다. 다만 김진호 병문안을 간 뒤, 마음이 또 바뀌었다.김진호는 나를 여자 등에 빨대 꽂고 출세한 놈으로 말하면서, 깡패인 주해진이 나 같은 등신 하나 해결하지 못한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웃음거리
어르신도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너도 잘했어. 처방한 게 거의 다 맞췄으니까. 새내기 같지가 않아. 네 할아버지한테서 많이 배웠나 보네?”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럭저럭요. 그런데 그때는 너무 어려 할아버지의 모든 재능을 배우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괜찮아. 앞으로 내가 네 할아버지니까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물어봐.”나는 얼른 감사를 표했다.어르신과 약처방을 확인한 뒤, 나는 화인당에 가 이틀 치 약을 짓고 동료들에게 사장님이 퇴원했다는 사실을 말했다.다들 사장님이 다 나은 줄 알고 기뻐하는 눈치였다. 특히 민우는 슬그머니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돌아오면 우리 따로 나가는 거지?”나는 얼른 민우의 말을 잘랐다.“사장님이 돌아와도 이런 말은 급하게 하면 안 돼. 화인당이 안정되고 가게에 일손이 부족하지 않을 때 떠날 수 있어. 우리가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건 자신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지만, 화인당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되지. 사장님이 우리 둘한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었는지는 내가 말 안 해도 알잖아.”민우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네. 앞으로 절대 함부로 말 안 할게.”“참, 요즘 태진 선배는 어때? 가게에서 본 적 있어?”나는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모태진이 오늘 없다는 걸 발견했다.내 말에 민우가 대답했다.“누가 알겠어? 또 그깟 일 때문에 가게에 피해 갈까 봐 안 나왔겠지. 상관하지 마. 다 큰 어른이 본인 몸 하나 건사 못 하겠어? 수호야, 아직은 따로 나가는 말은 안 할게. 하지만 천수당을 관찰하는 건 괜찮지?”“관찰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함부로 하지 마.”나는 신신당부했다.그러자 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나는 약을 가진 후 다시 사모님 댁으로 돌아갔다.이 약 일부는 목욕용이고 일부는 마시는 약이라 나는 위애 상세하게 적어 따로 분리했다. 그리고 먹는 약은 모두 달여 진공 포장한 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이렇게 하면 마실 때 데
윤지은은 보기 드물게 이번만큼은 내 편에 섰다.“동의하기 싫어도 동의해야지. 내가 진작 서약이 부작용이 있고 중독성이 커서, 장기적으로 이렇게 치료하면 환자가 오히려 탈탈 털릴 거라고 말했는데. 유미한테는 내가 말할게. 걔네 부모님은 아무튼 B시에 계시잖아? 한동안 돌아올 수 없으니까 당분간 비밀로 하지 뭐.”윤지은이 전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건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서의학 의사면서 서의학이 안 좋다고 하면 분명 안 좋은 영향이 있을 거다.하지만 친구 남편인 정호섭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친구 임유미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만약 정호섭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임유미는 어떡하라고?나는 사장님을 바라봤다.“그래도 되겠어요?”사장님은 효심이 강한 분이라 장인 장모를 속이는 게 안 좋다고 여겼다. 게다가 두 분이 지금껏 사장님을 길러왔으니.하지만 사장님이 고민하는 동안 윤지은은 이미 사장님 대신 결론을 내렸다.“뭐 그렇게 생각할 게 많아요? 두 분한테 말하면 절대 동의 안 할 거예요. 이 일은 내가 말한 대로 해요. 나도 한의학을 전공했던 사람이라 파악이 없으면 이런 말 안 해요.”나와 사장님 모두 머뭇거렸는데, 윤지은이 이런 태도로 나오니 오히려 감화되었다.나는 윤지은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뭐든 엄격하고 신속하게 하는 모습은 내가 따라 배울 점이었다.윤지은은 나더러 병원에 남아 사장님을 돌보게 하고 본인은 유미 사모님을 모셔 오면서 한의 치료 방법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했다.그사이 나는 사장님이 아침 식사를 드시는 걸 도와드렸지만, 사장님은 입맛이 없다면서 조금밖에 드시지 않았다.요즘 매일 많은 양의 약을 먹어 위장이 망가져 음식을 먹는 것조차 무리였다.이렇게 부작용이 큰 게 바로 서양의학의 가장 큰 단점이다.나도 사장님을 강요하지 않았다.환자가 입맛이 없다는데 억지로 먹게 하면 오히려 위장의 부담을 더해주기 때문이다.나는 따뜻한 물을 받아와 사장님의 얼굴과 몸을 닦아주었다.
어르신은 내가 보인 자신감에 매우 만족해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을 귀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침술 하기 전에 모든 서약을 끊고 한동안 몸보신해야 해. 지금 너의 사장님 몸은 너무 나약해서 기혈이 거의 다 사라진 거나 다름없어. 이 상태로 침술 할 수 없어. 이 일은 먼저 환자 가족들과 상의하고 동의를 구한 뒤 진행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때마침 윤지은이 회진하러 와서 나는 그녀더러 사장님을 잠시 봐달라고 하고는 어르신을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됐어. 데려다 줄 필요 없어. 이 부근에 마친 공원이 있으니 나도 좀 산책하다가 택시 타고 가면 돼. 네 사장님 상황은 서둘러서 가족과 상의해. 더 지체되면 천지신명이 와도 어쩔 수 없어.”어르신의 긴박한 말투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할아버지.”나는 진심으로 어르신께 감사했다. 90세가 넘는 분이 내 전화 한 통에 아무 이유 없이 도와준 거니까.이 은혜는 꼭 마음에 새길 거다.어르신은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사람을 구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이건 나를 위해 덕을 쌓는 거야. 너도 얼른 가 봐. 이 일은 지체하면 안 된다는 거 잊지 말고.”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어르신이 뒤돌아 떠난 뒤에야 나는 병실로 돌아갔다.다른 사람은 이미 떠나고 윤지은만 병실에 남아 있었다.나는 얼른 윤지은과 사장님께 방금 전 상황을 말씀드렸다.“수호 씨, 한의학 치료법으로 정말 내 병을 완화할 수 있어?”사장님은 나를 조금 믿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한번 확인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설명했다.“아까 보신 분이 우리 마을에서 엄청 유명한 명의세요. 젊을 때 저희 할아버지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 병을 치료해주셔서 엄청 유명해요. 저도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건데 정말 방법이 있다더라고요.”“사장님이 입원한 뒤 몸 상태가 확실히 점점 나빠지셨잖아요. 이 부분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사장님도 느끼셨을 거예요. 서약은 비록 효과는 빠르지만 부작용도 커요. 사장님 몸은
“그럼 왜 진작 데려오지 않았어?”소여정은 나를 나무라는 듯 노려봤다.“저도 어제저녁에 갑자기 생각난 거예요. 외지에서 학교 다니다 보면 고향에 내려갈 일이 적잖아요.”나는 얼른 설명했다.그때 소여정이 크게 하품했다.“하, 피곤해. 난 먼저 휴식하러 테니 여기 지키고 있어.”“네, 먼저 들어가 쉬세요.”소여정은 정말 피곤했는지 얼굴에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사실 소여정도 따지고 보면 참 좋은 사람이다. 친구 남편이 아프다고 이렇게 고생도 마다하고 밤새도록 환자 곁을 지켜줬으니 말이다. 그것도 임천호한테 그렇게나 예쁨 받는 사람이.이렇게 의리 있는 친구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소여정이 가니 정태곤도 따라 나갔다.정태곤은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없이 수문장처럼 꿋꿋이 소여정을 지키기만 한다.다행히 요즘 두 번이나 만났는데 정태곤은 나에게 싸움을 걸어오지 않아, 나도 정태곤을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다.나는 얼른 병상 앞에 와서 진료 과정을 묵묵히 관찰했다.어르신이 진료할 때 우리 할아버지와 매우 닮았다. 모두 진지하고 엄격해 나는 감히 뭘 물어보지도, 방해하지도 못했다.나도 한의학을 전공한 사람이기에 한의사가 환자의 맥을 짚어보는 과정에 누군가 물어보면 짜증 난다는 걸 잘 안다.얼마 뒤 어르신이 맥을 짚던 손을 내리자 나는 얼른 물었다.“할아버지, 어때요?”어르신은 제 수염을 한번 쓸며 말했다.“상황이 좋지 않아. 만약 계속 서의학 방법으로 치료하면 상태가 더 나빠질 거야.”나도 사실 처음에 똑같은 의견이었다. 다만 이제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한 말에 얼마나 힘이 있을까? 아마 말해도 믿는 사람이 없을 거다.그런데 어르신의 말이 내 추측을 증명한 셈이다.“침술과 한약 치료를 병행하는 게 더 좋은 거죠? 그래야 근본을 다지고 원기를 북돋울 수 있어 간의 손상을 줄일 수 있는 거죠?”나는 내 견해를 말했다. 무엇보다 어르신처럼 의술이 대단한 분이 앞에 계시는데, 이 기회에 잘 배워둘 작정이었다.그때 어르
어르신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네 할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너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너도 한의학을 배울 좋을 인재라고 하면서 나더러 나중에 많이 도와주라고 한 적도 있어.][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 같이 이리저리 떠돌며 의학을 배운 사람을 믿지 못하잖니. 대부분 학교에서 정식적인 교육을 받아서. 하지만 나한테 있는 방법이 민간요법이고 이상한데 받아들일 수 있겠어?]“우리 사장님 병만 고칠 수 있다면...”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이 끼어들었다.[고칠 수는 없어. 간병은 억제할 수 있을 뿐이지 완치는 어려워.]내가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나는 얼른 말을 바꾸었다.“억제해도 괜찮아요. 적어도 고통을 줄여 주시면 돼요.”[그래. 날 믿으면 됐어.]나는 순간 너무 감격스러워 다급히 말했다.“그럼 지금 어디 계세요? 제가 모시러 갈게요.”어르신은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 주소는 유미 사모님 집과 그리 멀지 않았다.나는 이 소식을 서둘러 사모님께 알리지 않았다. 어르신이 정말 사장님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을지 아직은 몰랐으니까.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지금 말해봤자 오히려 실망만 할 거다. 게다가 사모님께 서프라이즈도 해주고 싶었다.때문에 나는 아침을 사러 가는 척 말하고 차를 몰고 어르신을 모시러 갔다.20분 뒤, 나는 어르신을 만났다.하지만 어르신을 보는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90이 넘는 노인이었는데 놀랍도록 정정했다. 이러니까 이 어르신이 선단을 드셨다며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떠들어 댄 거였다.물론, 나는 사람을 장생불로 하는 선단 같은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어르신은 그저 보양할 줄 아는 거다. 게다가 자식들이 모두 효도하니 뭘 해도 기분이 좋을 거고, 그러니 자연스레 고민 없이 사는 거다.“봉섭 할아버지, 저 정수호예요.”나는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어르신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위라래로 살펴봤다.“네가 어릴 적에 네 할아버지가 너를 우리 집에 자주 데려왔었는데, 눈 깜짝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고용주가 까라면 까야지.”윤미화는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문을 나섰다.한순간 집에는 나와 사모님 둘만 남게 되었다.나는 사모님 방 쪽을 한번 확인했다. 문이 꼭 닫혀 있는 데다 아무 인기척도 안 들리는 걸 봐서는 이미 자는 모양이었다.나는 다시 객실로 가지 않고 아예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 사모님 방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바로 알 수 있으니까.소파에 누운 지 얼마되지 않아 사모님 방 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얼른 사모님을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야심한 밤에 여자 방을 들락거리는 건 좀 아닌 듯했다.하지만 아무것도 못들은 척하자니 또 소리가 너무 또렷하게 들려 순간 모순이 됐다.결국 나는 결심을 내리고 노크했다.“사모님, 괜찮아요?”“괜, 괜찮아요. 상환 말고 얼른 자요.”사모님은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더 이상 울지 마요. 더 울면 몸 상해요. 그러면 사장님은 어떡해요?”내 말에 큰 힘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모님을 위로하고 싶었다.그때 안에서 ‘네’라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리더니 더 이상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내 위로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소파 쪽으로 돌아갔다.이 상황에서 아무리 위로해 봤자 소용이 없다.하지만 그 순간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그분은 나와 한 동네에 살았던 어르신인데, 젊을 적에 내 할아버지와 어울려 지내며 의술을 익혔다.올해로 90살쯤 됐는데 이상하게 그분은 한 번도 앓은 적이 없다. 마을 사람들 말로는 그 어르신이 스스로 몸조리해서 건강한 몸을 유지했다고 한다.그 어르신한테 사장님을 고칠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나 나는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다. 그래도 시도해 보는 게 손 놓고 있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다음 날 아침, 나는 어머니한테 전화해 사장님 상황을 대충 말씀드리고 어머니더러 그 어르신한테 슬쩍 물어보라고 부탁했다.어머니도 우리 사장님이 좋은 분이라는 걸 알았기에 아침 일찍 식사도 하지 않고 어르신
‘장난하나? 주머니에 들어간 돈을 다시 토해내라니. 절대 안 돼.’나는 돈도 없는 주머니를 무의식적으로 꽉 쥐었다.“그건 안 돼요.”“그럼 얌전히 여기 있다가 내가 없을 때 유미 대신 좀 돌봐 줘.”난 여전히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윤 사장님, 제가 싫은 게 아니라, 유미 사모님 평판이 나빠질 거예요.”“수호 씨가 유미를 노리지 않는 이상 평판이 나빠질 일은 없잖아. 오래전부터 유미를 노리고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나는 얼른 도리질했다.“그런 적 없어요. 전 사모님을 항상 존경해 왔어요.”“그럼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남아.”윤미화의 태도가 너무 강경한 바람에 나는 마지못해 동의했다.두 사람은 나에게 객실을 내주었다.유미 사모님의 집은 윤미화 집 못지않게 널찍하고 사치스러웠다. 방 4개에 거실 2개인 데다 인테리어가 화려했다.객실 침대에 누워 보니 평범한 침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보아하니 가격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잠이 오지 않았다.천수당, 이태웅, 왕정민이 하나하나 내 뇌리를 스치다가 결국에는 동성 형까지 떠올랐다.동성 형을 떠올리니 내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용천 호텔에서 돌아온 뒤로 동성 형과는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다.형수는 동성 형이 이제는 대놓고 밖으로 나돌고 있다고 했었다.형수도 지금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머리가 복잡할 거다.나는 얼른 문자로 형수 동생은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수한테서 답장이 왔다.[아직도 싸우고 있어요. 이제는 아예 각자 변호사를 고용해서 소송을 진행 중이에요.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난 집에 돌아왔고요.][그럼 형은요? 형은 요즘도 집에 안 들어와요?][들어왔어요. 하지만 계속 각방 써요.]그 말에 나는 너무 놀라 되물었다.[왜요?][왜긴요, 요즘 일이 바쁘다면서 밤 늦게 들어오는데, 나를 방해하기 싫다면서 따로 자요.]그건 다 핑계일뿐이다. 사실 형수는 누구 보다도 그걸 잘 알고 있지만 티를 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