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는…… 없어.” 정후는 말을 아꼈다.원경릉은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구심단(救心丹)을 한 알 삼켰다.“아니, 거짓말은 그만하세요. 지금이라도 불미스러운 관계를 맺은 여인들이 더 있으면 빨리 말해요. 약까지 먹은 마당에 화를 낸다고 죽기라도 하겠어요?”정후는 구심단을 먹은 원경릉을 보고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사실대로 말을 해도, 저 약을 먹었으니 얘가 죽지는 않겠구나.’그는 지금까지 유부녀 약 열 명 정도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말했고, 그중에 두 여인은 조정의 관리 본처들이었다.그 말을 들은 원경릉은 그 자리에서 눈이 뒤집어졌다.‘여자들도 미쳤나? 저……원팔룡(元八隆)을 왜 좋아하는 거지?’원경릉은 잠시 정후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마흔이 넘었는데도 몸이나 얼굴이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고, 눈도 깊은 것이 유부녀들이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가 술과 담배에 찌들었지만, 본판은 여전히 남아있었다.“근 몇 년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돈도 없고, 벼슬도 못하고 있는 마당에 어쩌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정후부가 어떻게 먹고살겠느냐는 말이다! 나도 여자들한테 몸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겠느냐? 나도 싫었어! 근데 어쩌겠냐고! 수치스러워도 먹고는 살아야지!”정후가 열변을 토했다.정후는 딸 앞에서 이런 더러운 과거를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이 수치스럽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두 가지 선택이 있으니 잘 생각하고 고르세요. 첫 번째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는다. 두 번째 처자식을 데리고 경성을 떠난다. 부친 때문에 잘 살고 있는 오라버니의 앞길도 막지 말고요.”원경릉이 말했다.“사실 두 가지 모두 필요 없어. 네가 입만 다물고 있어 준다면, 아무도 알지 못한다. 두 선택 모두 명예롭지 못하잖아?”“정말 끝까지 이렇게 구질구질할 겁니까? 부친과 고지 사이에 일어난 일을 안왕이 알고 있잖아요! 안왕이 그런 큰 패를 쥐고 있으면서 가만히 있을 거라고 믿는 겁니까? 부친은 바봅니까?”“안왕도 이제 쓸모없어. 무슨 힘이 있다고……
원경릉은 진심으로 희상궁이 자신의 어머니였으면 했다. 사실 그녀는 친정집에 별 감정이 없기에 이런 생각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정후부에는 조모를 제외하고 어른다운 어른은 하나도 없다. 원경릉이 아이를 셋을 낳았는데도 불구하고 모친 황씨는 출산한 딸을 찾아와 걱정은커녕 주씨와 싸운 얘기만 늘어놓고는 갔다. 그렇다고 시어머니에게 정을 붙일 수도 없다. 현비는 차갑고 매정하다. 아마 현비는 원경릉이 죽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희상궁은 다르다. 매일 밤 원경릉의 안부를 물었고, 아픈 원경릉을 보며 가슴 아파해주었다. 힘든 시기에 누군가가 내 옆에 같이 있어주고 슬퍼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희상궁은 원경릉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기분 나쁜 일은 다 잊어버리고, 태자비의 인생을 살아요. 잠을 자는 동안은 아무 걱정 마세요. 몸 상하면 안 됩니다.”“예, 알겠습니다.”원경릉은 뒤숭숭한 마음을 뒤로하고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 그녀는 한 시간가량 잠에 들었다가 깼다. 눈을 뜨니 다섯째가 옆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매우 집중한 표정으로 책을 한 장씩 넘겼고, 원경릉은 그의 모습이 낯선 듯 숨죽이고 그를 쳐다보았다.원경릉이 가만 보니 그가 읽고 있는 책은 병서(兵書)였다. 그는 완전한 무술인이기에, 병서를 제외하고 저렇게 집중하고 읽을 만한 책은 없다. 우문호가 책을 뚫어져라 보다가 책장을 쓱 넘기며 “그렇게 빤히 나를 보고 있는 이유가 뭐야?”라고 물었다.원경릉은 웃으며 그의 옆에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옆에 눈이라도 붙어있는 거 아니야? 나 일어난 거 어떻게 알았어?”“숨 쉬는 소리가 달라. 깨어났을 때랑 잘 때.” 그는 책을 내려놓고 “배고파? 상처는 어때?”라고 물었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배고프지 않고, 아프지도 않아. 내가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책은 나중에 보고 얘기 좀 할까?”원경릉은 그의 옆에 바싹 달라붙어 그의 손에 깍지를 꼈다.“고지와 장
“상부인뿐 아니라 조정의 관리들의 본처들을 포함한 십여 명정도의 여인들과도 정을 통했다고 해……”원경릉의 말을 듣고 우문호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경릉아 장인께서 미치지 않고서는 그럴 수가 있느냐? 발정이 나지 않고서야 사람이 어떻게 그래?”원경릉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우문호는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보며 “음…… 장인을 멀리 보내는 건 어때? 이 일 때문에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는 거야.”라고 말했다.“나도 그렇게 생각해.” 원경릉이 말했다.우문호는 생각하면 할수록 정후가 이해되지 않았다.“근데 장인께서는 고지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하셔?”“인정하기 싫겠지. 근데 고지가 애를 낳으면 바로 목을 졸라 죽일 거라고 하더라.”원경릉은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한숨을 내쉬었다.“출세가 뭐라고 사람을 그 지경까지 만드는 걸까? 사람으로서 하면 안 되는 말을 하시네.”“악질이야.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겐 강한 그런 악질.”우문호는 아무래도 자신의 장인이기에 원경릉이 악질이라고 하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장인께서는 간도 크시다. 그렇게 많은 여인들과 정을 통하고도 안 들킬 줄 알았다는 게 신기하네.”“에휴, 그러게 말이야. 난 이 일 때문에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아. 정 안되면 그를 경성 밖으로 보내버리고 죽은 듯 조용히 살라고 할까 봐 아니면 저기 어디 시골로 보내버리든가…… 아니면 그냥 콱 죽여버리 든가.”우문호는 정후와 원경릉을 보며 기가 찼다. 정후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을 죽일 궁리만 하고 있고, 원경릉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하고 있다. 원씨 부녀는 참…… 무섭네.“고지가 장인과 그런 짓을 한 건 넷째 형님이 고지의 뒤를 봐주었기 때문이야. 이 말은 즉 넷째 형님이 장인이 저지른 일을 다 알고 있다는 거고. 상부인과 다른 여인들의 일은 넷째 형님이 알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모두
“그걸 왜 탕양 당신이 판단해? 이건 내 일이야. 내가 남강에 가지 않겠다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내가 저지른 일이니 책임을 지겠다고!” 정후가 화를 냈다.정후는 탕양의 입에서 남강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화가 났다. 일평생 평민들과 말도 섞지 않던 정후가 북당에서도 환경이 열악한 남강에서 그들과 함께 살 수 있겠는가?그는 이 사실을 탕양에게까지 발설한 원경릉을 찾아가 뺨을 세게 내리치고 싶었다.원래 이 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입이 가벼운 원경릉 때문에 지금 여러 사람들이 알게 됐다. 만약 소문이 퍼져 정후가 형벌을 받게 된다면, 그 책임은 모두 원경릉에게 있다.탕양은 정후의 태도를 보아 좋은 말로 해서는 정후가 순순이 남강으로 갈 것 같지 않았다.“후작, 당신과 정을 통한 여인들은 보통 여인들이 아닙니다. 상부인도 그렇지만 다른 관리들의 본처도 있지 않습니까? 만약 이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된다면 후작을 가만 두겠습니까? 지금 남강으로 떠나면 적어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태자께도 피해가 가지 않을 거고요.”“내가 왜 태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거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리고 태자정도 됐으면 이 정도는 알아서 막아줄 수 있는 거 아니야?”“후작, 당신이 정을 통한 여인들의 부군은 조정의 고위 관리들이라는 걸 잊으셨습니까?”탕양은 멍청한 정후를 참을 수 없다는 듯 버럭 화를 냈다. “그래서 뭐? 그 여인들도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거야. 남편에게 이 사실을 들킨다면 그 여인들에게도 좋을 게 뭐가 있겠어? 그리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그랬겠어? 여자들이 남사스럽게 그런 얘기를 하고 다니겠냐고? 나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그러니까 원경릉과 태자 그리고 너만 입 조심해!”“후자, 진정하고 생각을 좀 하시지요. 당신은 태자의 장인이십니다. 태자의 앞날을 생각하셔야죠.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습니다. 지금 승승장구하고 있는 태자를 이대로 무너뜨리시려는 겁니까?”정후는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노마님의 발작정후를 데려가려던 찰나 노마님이 갑자기 중풍 발작을 일으키셨다. 치료는 했으나 목숨조차 아직 단정하기 이른 상태로 반신을 움직일 수 없었다.원경릉이 이 얘기를 듣고 마음이 급해 어쩔 줄 모르겠으나 관습상 산후조리 기간이라 친정에 돌아갈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다섯째와 어의만 보냈다.우문호와 어의가 갔을 때 정후와 부인 황씨가 노마님 곁을 지키고 있었다.노마님은 잠들어 계셨으며 얼굴이 붉고 어의 말에 중풍 발작 후에 혼수에 빠지는 게 일반적이며 아직 안정되지 않은 상태로 위험도 여전하다고 했다.정후가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우문호를 데리고 나가서: “날 보내려는 것을 알고 있네, 나도 생각해 봤는데 경성에 머무는 것은 확실히 위험해서 가고 싶지만 며칠만 말미를 주게. 어머님 상태가 안정이 되면 그때 가도록 하세, 만약 내가 떠난 후에 어머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머님 곁에서 임종을 지킬 사람조차 없는 게 아닌가.”우문호는 정후의 질질 짜는 얼굴을 보니 짜증나서: “무슨 말로 노마님을 자극한 거 아닙니까? 잘 계시던 분이 왜 갑자기 풍을 맞으셨죠?”정후가 하늘을 가리켜 맹세하며, “절대 아니야, 그런 말을 내가 어떻게 감히 한단 말인가? 어머님을 열 받아 죽게 하다니, 내가 죽어서 무슨 낯을 들고 조상님을 뵙겠나.”우문호가 정후를 노려보며, “지금 죽어도 조상님을 뵐 낯은 없으시죠.”정후가 무안한지 감히 말을 못하고, 감시 다시 울지도 못했다.초왕부로 돌아와서 우문호는 어의와 함께 원경릉에게 노부인의 상태를 설명했다.“이번은 돌발성 풍으로 깊은 혼수에 빠져 깨어나지 못해 우황을 썼는데 안정이 될지 여부는 지켜봐야 합니다, 만약 안정되지 못할 경우 단시일 내에 2차 발작을 일으킬 우려가 있으며 2차발작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어의가 말했다.원경릉도 중풍의 위험을 알고 있고, 노마님은 가슴앓이를 앓고 있어서 이런 심혈관 질환 환자는 혈압이 원래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은데 전에 혈압을 쟀을 때 약간 높은 편이었지만 심각하지
세 쌍둥이의 이름우문호는 원경릉이 계속 찰떡이를 쳐다보는 걸 보고: “미워하지 마, 못생기긴 했지만 당신이 낳은 애들이잖아, 그냥 인정해.”원경릉이 장난할 기분 아니라는 표정으로: “어디가 못 생겼다는 거야?”“누리끼리한 게 인절미 같아. 내 생각에 찰떡이가 아니라 인절미라고 불러야 되지 않을까.” 우문호가 안아 올리며, “당신은 너무 오래 안고 있지 마, 아직 상처도 다 안 나았는데.”찰떡이를 보면 볼 수록 못 생겼지만 우문호의 마음은 떨리기도 한다. 이렇게 작은 생명이 고요하게 자신의 품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자신과 어느 정도 닮은 게 진짜 야릇한 기분이다.마치 원경릉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뽀뽀하고 싶은 그런 기분이랑 비슷하다.이 쪼꼬만 인절미가 뭐라고?“걔 황달이 약간 비정상이야.” 원경릉이 말했다.“확실히, 눈 흰자위까지 노래.” 우문호가 살짝 걱정하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우선 관찰해 보자, 걱정하지 마.” 원경릉이 말했다.“게다가 너무 말랐어, 젖을 안 먹나?” 우문호가 안고 아기 침대로 가서 셋을 비교해 보더니 더욱 찰떡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문호가 긴장해서 원경릉을 돌아보고, “원 선생, 아이들 무슨 일 없겠지?”“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무슨 일 있을 리 없어, 체질이 좀 약한 거야.”원경릉이 침대에서 내려오는 걸 우문호가 부축해 주며, “왜 또 내려와 더 누워 있지.”원경릉이 아가 침대 앞에서 세 아가들을 보고 있다. 우문호가 뒤에서 턱을 원경릉의 어깨에 올린 채 같이 아이들을 바라봤다. 셋이 서로 다른 포대기에 쌓여 있지만 동작이 똑같다.마치 주먹 지르기 군무를 추는 것처럼 아가들이 거의 동시에 손을 들었다 동시에 내려놓는 게 무형의 어떤 것이 아가들이 같은 동작을 하도록 지휘하는 것 같다.“진짜 신기하네, 이거 정신 감응 아냐?” 우문호가 신기해서 물었다.원경릉이 세 아이의 동글동글 꿀떡 같은 모습에 마음속으로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머리를 우문호의 가슴에 기대
정후와 노마님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좋아.”황실에서 이름을 지을 땐 의미와 뜻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원경릉은 셋째의 화(和)자가 제일 좋았다.마음이 온화하고 어우러져 사는 일생을 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화(和)자는 인동과도 참으로 어울린다.우문호는 효(孝)자가 좋다.원 선생이 아이들을 낳느라 고생이 심한 것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서 앞으로 아이들이 반드시 원 선생에게 효도하길 원했다.고지가 명월암으로 내쳐진 후 원경릉이 기상궁을 그쪽으로 보내 무우산을 쥐어 주고 보살피게 했다.정후는 최근 간교한 모략을 꾸미는 대신 그저 일심으로 정후부에서 노모를 모셨다.지금 노모가 유일한 그의 구세주로 죽어서도 안 되지만 완전 살려 놔도 곤란하다.첩인 주씨는 정후가 고생스럽게 노마님을 보살피는 것을 보고, 몰래 정후에게: “나리, 힘들게 고생하지 마세요, 하인에게 시중 들게 하시면 될 것을, 노마님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은데.”정후가 이 말을 듣고 한 대 갈기며 성을 내는데: “뭐가 아무래도 안 돼? 다시 한번만 더 그딴 소리 해봐, 아주 주둥이를 찢어버릴 테니까.”정후는 주씨를 한결같이 사랑만 해 와서 화 한번 내본 적 없고 손찌검은 말할 것도 없다.주씨가 얼굴을 움켜쥐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리, 이게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꺼져!” 정후가 짜증을 냈다.주씨가 울면서 나갔다.정후가 씩씩거리며 앉아서 물을 한 모금 마셨지만 마음은 황망하고 어지럽기만 하다.정후는 이번에 정말 후회하고 있다.어머니가 갑자기 풍 발작을 일으킨 게 바로 자신이 부인들과 일을 얘기했기 때문으로 어머니가 좀 도와 주길 바랬을 뿐인데, 충격을 받고 한 손을 들어 정후를 때리려 다가 때리기도 전에 쓰러지셨다.정후는 전에 어머니가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생각해서 인정이 없다며 멀리했고, 어떨 때는 정말 심하게 박정했다.하지만 정후는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계시기에, 믿을 구석이 있고, 뿌리
할머니의 반신마비정후가 이 말을 듣고 크게 실망한 나머지 분노해서: “원경릉, 너는 애비가 안중에도 없는 것이냐?”원경릉이 그와 말도 섞고 싶지 않고 보면 화가 치밀었다. 할머니 상태도 묻지 않은 건 정후가 괜히 역정이 나서 할머니에 대한 저주의 말을 뱉을까 싶어서다.눈 하나 꿈쩍 안하고 자식을 죽이고 내다 팔 수 있는 사람이 어머니 저주하는 것쯤 어려울까.그래서 원경릉은 바로 돌아서서 나왔다.정후가 원경릉에게 소리치며: “네가 만약 얘기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사위를 찾아 갈 것이다.”원경릉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차갑게 내뱉으며: “왕야에게 얘기할 겁니다. 멀리 숨어 있으라고 건드릴 수 없게 말입니다.”정후가 이 말을 듣고 자신이 온갖 마음 고생을 하며 원경릉을 지금 이자리까지 올려 놨더니, 원경릉이 불효 막심하고 박정하기 이를 데 없음에 불같이 화를 내며 물건을 깨부수고 싶었지만 자신이 배상할 만한 수준의 물건이 아님을 알고 씩씩거리며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원경릉은 열 받아서 위가 따끔거렸지만, 할머니가 너무 걱정된 나머지 만아를 시켜 조어의에게 정후부에 한번 왕진을 가서 할머니 상태를 좀 봐 달라고 했다.조어의는 땅거미가 지고서야 돌아와서 원경릉에게 보고하길: “노마님이 깨어 나긴 하셨으나, 말씀을 못하십니다. 몸 왼쪽을 움직이시지 못하셔서 침을 놔 드렸고 개선되기를 바라지만 침이란 것이 시간이 필요한 지라 상당기간 노마님이 더이상 자극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요.”“할머니께서는 여전히 위험하신 가요?” 원경릉이 물었다.“말씀 드리기 어렵습니다. 상태가 여전히 좋지는 않으십니다.” 조어의가 말했다.원경릉이 마음이 초조해서 가서 보고 싶은데 희상궁이 권하길: “지금 노마님은 와병 중이시고 마마는 산후조리 기간입니다. 아직 몸에 피기운이 있으니 가시면 두 기운이 상충해서 금기를 범할까 싶으니 가시지 마세요.”원경릉은 미신을 믿지 않지만 만약 터부라면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조어의가 매일 가서 노부인에게 시침을 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