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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27화

“그리고는…… 없어.” 정후는 말을 아꼈다.

원경릉은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구심단(救心丹)을 한 알 삼켰다.

“아니, 거짓말은 그만하세요. 지금이라도 불미스러운 관계를 맺은 여인들이 더 있으면 빨리 말해요. 약까지 먹은 마당에 화를 낸다고 죽기라도 하겠어요?”

정후는 구심단을 먹은 원경릉을 보고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사실대로 말을 해도, 저 약을 먹었으니 얘가 죽지는 않겠구나.’

그는 지금까지 유부녀 약 열 명 정도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말했고, 그중에 두 여인은 조정의 관리 본처들이었다.

그 말을 들은 원경릉은 그 자리에서 눈이 뒤집어졌다.

‘여자들도 미쳤나? 저……원팔룡(元八隆)을 왜 좋아하는 거지?’

원경릉은 잠시 정후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마흔이 넘었는데도 몸이나 얼굴이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고, 눈도 깊은 것이 유부녀들이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가 술과 담배에 찌들었지만, 본판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근 몇 년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돈도 없고, 벼슬도 못하고 있는 마당에 어쩌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정후부가 어떻게 먹고살겠느냐는 말이다! 나도 여자들한테 몸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겠느냐? 나도 싫었어! 근데 어쩌겠냐고! 수치스러워도 먹고는 살아야지!”정후가 열변을 토했다.

정후는 딸 앞에서 이런 더러운 과거를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이 수치스럽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두 가지 선택이 있으니 잘 생각하고 고르세요. 첫 번째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는다. 두 번째 처자식을 데리고 경성을 떠난다. 부친 때문에 잘 살고 있는 오라버니의 앞길도 막지 말고요.”원경릉이 말했다.

“사실 두 가지 모두 필요 없어. 네가 입만 다물고 있어 준다면, 아무도 알지 못한다. 두 선택 모두 명예롭지 못하잖아?”

“정말 끝까지 이렇게 구질구질할 겁니까? 부친과 고지 사이에 일어난 일을 안왕이 알고 있잖아요! 안왕이 그런 큰 패를 쥐고 있으면서 가만히 있을 거라고 믿는 겁니까? 부친은 바봅니까?”

“안왕도 이제 쓸모없어. 무슨 힘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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