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식이는 주명취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그녀가 단도를 드는 순간 사식이가 달려들었다.“멈춰! 죽으려거든 딴 데 가서 죽……어!”주명취 자신을 향하던 단도가 순식간에 방향을 돌려 사식이를 겨누자 사식이 급히 달려가 단도를 빼앗으려 했다. 가녀린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어찌나 세었는지 사식이는 주명취의 반항에 온 몸이 휘청였다. 그 순간 주명취가 손을 빼 단도로 사식이의 복부를 찌른 후 빠르게 도망갔다.사식이는 그녀의 뒤를 쫓기 위해 달렸으나 몇 걸음 가지 못하고 피를 쏟아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너……”주명취는 차갑게 웃으며 쓰러져있는 사식이를 보았다. “사람이 절망에 다다랐을 때는 눈에 뵈는 게 없는 법이야. 나 혼자 죽을 수는 없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든 증오하는 사람이든 다 죽여서 데리고 갈 거야.”주명취는 정원을 가로질러 걸어가 측문을 열었다.“들어오시게.”사내 몇 명이 들어오더니 허리를 굽히고 빠르게 손왕부 안으로 뛰어들어왔다.대청 안에서 기다리던 원경릉은 바깥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갑자기 왜 이렇게 어지럽지?” 문경공주가 관자놀이를 잡고 고개를 숙였다.“나도 머리가 아파.” 진평공주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원경릉은 고개를 번쩍 들어 발자국 소리를 따라 귀를 쫑긋 세웠다. 발자국 소리가 몇 번 크게 울리더니 손왕부 마당에 멈춰 선 것 같았다.원경릉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제왕부에 불을 낸 것은 함정이었어!’원경릉은 병풍 뒤로 들어가 약상자를 안에서 날카로운 수술칼과 후추 스프레이를 꺼냈다.약상자를 오래 사용하니 이제 약상자도 원경릉의 마음을 잘 아는 것 같았다.그녀가 병풍 밖으로 나오자 밖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그 소리를 듣고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무서워 벌벌 떨었다. 손왕비가 밖으로 나가 상황을 보니 처음 보는 사내들이 칼을 들고 부중의 하인들과 싸우고 있었다. 하인들이라고 해봤자 음식을 하는 하인, 정원을 가꾸는 하인, 목욕을 시키는 하
“네 목적은 나잖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킬 필요 없이 나를 여기서 죽이든지 나를 데리고 나가!”원경릉이 주명취에게 다가가 소리쳤다.그녀는 주명취가 그 자리에서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죽이려고 했으면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을 텐데 이렇게 소란을 피울 이유가 있었겠는가.주명취의 눈이 반짝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았다.“초왕비, 그게 무슨 말이죠? 저 사람들은 잔치집을 털러 들어온 강도 아닙니까? 저 사람들하고 내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럽니까? 무고한 사람을 연루시키지 말고 저 사람들을 따라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세요.”“뭔 쓸데없는 소리야. 같이 가자고!” 주명취가 다가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초왕비, 저기 향로를 봐, 내가 방금 약을 탔거든? 네가 저 사람들만 잘 따라간다면 내가 여기 남은 손님들에게 해독제를 줄 것이야.”원경릉은 대청 가운데에 위치한 금빛 향로에서 희미하게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공주들은 이미 눈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있었고, 손왕비도 눈이 풀려 휘청거렸다.“데려가!” 주명취의 명령에 사내들이 원경릉을 에워쌌다.“주명취 네가 나를 죽이면 너도 죽는 거야!”원경릉이 소리를 지르자 주명취가 음흉하게 웃었다.“내가 죽는 게 무서울 것 같아? 죽는 게 무서웠으면 이렇게 하지도 않았지…… 널 죽이고 제왕도 죽이고, 우리 사이좋게 황천길에서 만나자고.”“네 죄로 남은 가족들이 죽어나갈 것은 생각도 안 하는구나?”“그들이 죽든 살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주명취가 소름 끼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원경릉은 사내들에 힘에 못 이겨 질질 끌려 밖으로 나갔다.그녀는 떠나면서 뒤돌아 손왕부를 보았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손왕비가 휘청거리더니 바닥으로 쓰러지자 원경릉은 정원에 숨어있던 하인들에게 소리쳤다.“나를 쫓아올 필요 없으니 빨리 사식이를 찾아!”원경릉은 열린 측문으로 끌려가다가 골목에 세워진 마차에 집어던져졌다.잠시후 주명취가 그 마차
멀리 있는 향로에 독을 넣었다는 말에 원경릉은 마음이 놓였다. 만약 주명취가 해독제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소량의 독은 황실의 어의들이 충분히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원경릉은 주명취가 하라는 대로 충실히 그녀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주명취의 광기 어린 편집증에 원경릉이 맞서 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주명취는 인적이 드물고 외진 곳에 원경릉을 데려가 천천히 긴 시간 동안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만약 주명취의 목적이 원경릉을 죽이는 것이라면 마차에 태워서 이동할 필요도 없다.마차가 부두에 이르렀을 때 주명취가 마차에서 내려 손을 뻗었다.“내 마지막 호의.”원경릉이 주명취의 손을 잡고 내려오자 두 명의 인부가 원경릉의 양 쪽 겨드랑이에 팔을 넣었다.부두에서는 짐꾼들이 짐을 나르고 있었고, 인력거꾼들은 마대를 싣고 달려왔다.그중 한 명이 시간에 쫓겨 급하게 인력거를 몰다가 원경릉과 부딪칠 뻔했다.“걔가 눈이 멀어서 그럽니다!” 옆에 있던 여자 인부가 황급히 사과를 했다.그 순간 원경릉의 얼굴에 희망이 스쳤다.‘이 목소리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목소리인데?’원경릉은 팔을 단단히 잡고 있는 사내들이 불편해서 몸을 흔들어 사내들의 팔을 뺐다.“아프다고! 내가 알아서 갈 테니 이거 놓아라!”앞장 서던 주명취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돼?”그러자 원경릉이 고개를 푹 숙이고 그녀를 따라갔다.강가를 따라 걷다 보니 구석에 정박되어있는 배가 한 편 보였다. 인부는 원경릉을 배에 끌어올렸고 주명취도 뒤따라 배에 올랐다. 그 후에도 몇명의 인부들이 배에 올랐고,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배를 몰았다.배에 탄 원경릉은 은연중에 걱정이 되었다. ‘육지였다면 귀영위가 어떻게 해서든 구하러 왔을 텐데, 배를 타고 간다면… 귀영위가 나를 찾을 수 있을까?’수를 쓰더라도 배가 출발하기 전에 써야 한다.주명취는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선실의 등받이 의자에 앉아 한가롭게 바다를 보았
원경릉을 수장시키려는 주명취원경릉이 차갑게 웃으며, “손왕부에서 하인 몇 명이 벌써 당신 손에 죽었는데, 그건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인 게 아니고 뭐지?”주명취가 하찮다는 듯 웃으며, “버러지들인데 뭐, 넌 네 걱정이나 하시지.”원경릉이 주명취에게, “날 어떻게 죽일 건데?”주명취가 대놓고 원경릉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악의적으로 웃더니, “서둘 필요 없어, 이 배 밑바닥이 뚫렸거든, 천천히 물이 새들어 오다가 때가 되면 물에 잠길 거야. 너랑 나는 자연스럽게 죽는 거지.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거야, 아주 천천히 공포에 떨면서 죽게 해주마. 사람들은 시체도 못 찾고 넌 영원히 물귀신이 될 거야.”원경릉은 바로 여기저기 물이 새는 곳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아래층에서 팔뚝만한 크기의 구멍으로 물이 들이치는 것을 발견했다. 대충 예상하길 배가 침몰하는데 적어도 반 시진은 걸릴 것이다.노 젓는 뱃사람들이 여기서 같이 죽을 리 없으니 그들은 반드시 구명정을 준비해 두었을 것이다. 원경릉이 배 뒤쪽을 보니 과연 조각배가 하나 있다.뱃사람들은 부두에서 배가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지면 그녀들을 버리고 도망칠 예정이다.원경릉은 수영을 할 줄 모르니 만약 도망치려면 반드시 이 배를 탈취해야 한다.하지만 원경릉이 가진 최루 스프레이는 뱃사람 전부를 상대할 만큼은 안되고, 설사 양이 된다 하더라도 그녀 혼자 구명정을 띄워서 도망칠 수도 없다.주명취를 협박해도 별 수 없는 게, 주명취는 이미 죽음을 결심하고 있기 때문이다.원경릉은 고개를 돌려 주명취가 자기 뒤에 서 있는 것을 봤다.주명취는 이 망망하게 물결치는 강물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넌 못 도망가, 여기서 나랑 같이 죽을 수밖에 없지, 그러니 괜히 헛수고 하지 마, 오늘을 위해 내가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데. 원래는 너만 죽이고 호오빠와의 과거를 되돌리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호오빠 성격을 알거든. 날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을 테니 난 살아도 아무 의미가 없어, 선심 쓰는 셈 치고 네가 죽을 때 함께
뱃사람과의 싸움, 협력자의 등장원경릉은 주명취의 얼굴에 떠오른 미세한 표정 변화를 보고, 자기 추측이 옳았음을 알았다.주명취는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지 않으면 손왕부때 협박 당하는 척 하지 않았을 것이다.이 사람은 평생 ‘척’이다. 이 판국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가면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자신이 어떤 속마음을 가졌는지 똑바로 마주하려고 하지 않는다.주명취는 흉포하게 원경릉을 쏘아보며, “그래서 어쨌다고? 내가 죽든 말든 넌 볼 수도 없어.”원경릉이 주명취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사악한 웃음을 흘리며, “그래서 말이야, 네가 반드시 나보다 먼저 죽어야 안심이 된다는 소리지.”“이런 안됐네, 넌 날 못 죽여.” 주명취가 싸늘하게 말했다.“그럴 필요없……”원경릉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매스를 꺼내 들고 주명취의 팔목을 그었다.원경릉이 주명취에게 다가가 매스로 정확하게 주명취의 손목 동맥을 그었고, 주명취의 손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주명취는 죽고 싶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강가에 닿아 구조를 요청해야 했으므로 뱃사람들을 재촉해 어서 구명정을 내리도록 했다.주명취가 경악해서 분노한 가운데 한 손으로 손목을 누르고 거의 실성한 상태로 소리치길: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뱃사람 두 명이 와서 주명취가 손에서 계속 피가 떨어뜨리며 비틀비틀 서있는 것을 보고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밧줄을 잘라와서 손목의 상처를 동여매자 피가 덜 흘렀다.다른 한 사람은 한 손으로 원경릉을 잡고 바로 따귀를 날렸다.원경릉이 따귀를 맞고 머리가 빙빙 돌고 눈앞이 어지러운 가운데 코에서 피가 났지만 할 말을 잊지 않고, “저 여자는 동맥을 다쳤으니 만약 빨리 옮겨서 치료하지 않으면 과다출혈로 사망해. 억지로 동여매도 소용 없어, 피를 멈췄다 해도 그 손은 못 쓰게 될 테니까.”주명취는 표독한 눈으로 이를 악물고, “저년을 죽이고, 어서 날 데리고 돌아가!”뱃사람이 한 손으로 원경릉의 목을 틀어쥐자 원경릉은 이미 대비하고 있다가 최루 스프레이를 꺼
치열한 싸움살인청부업자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건 돈을 받는 것으로 만약 주명취가 죽으면 그들이 한 일은 수포로 돌아간다.주명취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저들을 죽여, 다른 거 없이, 나와 저년 몸에 있는 패물만도 은자 천냥은 족히 넘고 그녀 몸에는 남주라는 귀한 진주가 한 알 있는데 만 냥의 가치가 있지. 못 믿겠으면 너희들이 뒤져 봐.”뱃사람들 눈에 순간적으로 탐욕이 일어났다.만 냥이면 그들 형제가 이 일만 마치고 손을 씻은 뒤 다시는 살인과 도둑질을 할 필요가 없다.원경릉이 눈앞이 어두워졌으나 주명취의 머리채를 쥐고 힘껏 뒤로 당겨 주명취의 얼굴을 눕힌 뒤 원경릉 손에 비수로 모질게 그녀의 얼굴을 긋더니 구멍을 두 개 냈다.주명취는 고통으로 괴물 같이 울부짖는데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고 원경릉이 주명취를 끌고 가며 만아에게 공간을 틔워주었다.만아의 무공은 눈에 띄게 이 사람들에 못 미쳤으나 만아는 사나웠다.하지만 제아무리 사나워도 곳곳에 부상을 입은 상태이고, 뱃사람들은 원경릉 몸에 남주를 갖고 싶은 나머지 거의 미쳐 날뛰며 만아부터 죽이려고 했다.원경릉이 만아가 이미 말도 못하게 당한 것을 보고 속이 타 들어 가는데, 머릿속에 퍼뜩 섬광이 스치며 외치길: “만아, 미혼술!”만아가 정신을 차리고 손에 은방울을 들어 올리더니 몇 번 흔들었다.방울소리가 맑게 울리며 만아는 소매에서 하얀 가루를 꺼내 바람에 날리니, 뱃사람들은 이 가루를 들이마시고 방울소리를 듣자 놀랍게도 하나씩 멍 해지며 비수를 땅에 떨어뜨렸다.주명취가 미쳐 날뛰며, 원경릉에게 덮쳐 손목을 깨물고 죽기 살기로 물고는 원경릉을 제압하려고 했다. 원경릉은 너무 아픈 나머지 비녀로 주명취의 배, 가슴을 찌르고 서야 마침내 주명취에게서 풀려나 바닥에 쓰러졌다.원경릉은 온 몸에 힘이 빠져서 겨우 앉아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 쉬는데 손목 부분의 통증이 심각해서 전신이 덜덜 떨리고 만져보니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만아도 갑판에 누웠는데 전신의 힘을 다 쓴데다 온통 상처 투성이다.
구명정을 앞에 두고 온 힘을 다하는 원경릉원경릉이 입술을 깨물고 고통을 견디는 동안 급히 싸맨 만아의 상처가 더 버티질 못하고, 물은 차올라 배가 가라앉고 있다.만아의 상처가 위중해 거의 혼절했으나 고통으로 간신히 깨어 있는 상태로, 차오르는 물을 보며 원경릉의 손을 잡아 끌고 힘겹게: “왕비마마, 나무토막을 끌어안고 뛰어내리세요, 이쪽으로 오는 배가 구해줄 겁니다.”원경릉이 만아를 부축하려고 시도하며 다급하게: “만아, 아직 힘 있어? 여기 구명뗏목이 있는데, 뗏목을 물에 띄우면 우린 도망갈 수 있어.”만아의 눈에 한 줄기 생기가 차오르며 한걸음 기어와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당최 몸을 일으킬 수 없어 몇 번 시도하다가 바닥에 세게 넘어져서 상처가 오히려 더 심해졌다.원경릉은 만아가 완전히 뻗어 버려서, 구명 뗏목을 내리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경릉은 이를 악물고 일어나 비수를 들고 힘겹게 걸어갔다. 발 아래는 이미 물이 차올라 발목까지 차오르고 비틀거리며 두어 걸음 걷는데 물결이 일었다. 물결은 높지 않아 고작 무릎에 닿는 정도였지만 원경릉은 종아리에 상처가 있어 부딪히는 물결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졌다.원경릉의 마음 속에 이토록 절망적인 적은 없었다. 원경릉은 죽고 싶지 않다. 배속에 아이까지 있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보고 싶다.원경릉은 다시 이를 악물고 앞으로 기어가는데 차가운 물이 몸을 덮치니 뼈속까지 한기가 차올라 온몸을 덜덜 떨며 산발한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렸다. 구명정이 그녀 앞에 있는데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지만 구명정을 뒤집어 내릴 힘이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구명정에 묶여 있는 밧줄을 끊을 힘조차 없다.귓가에 주명취의 예리하고 공포에 가득 찬 절규가 들린다, “죽고 싶지 않아, 어서 날 구해줘, 어서 날 구해달라고.” 원경릉이 고개를 돌리자 주명취가 허우적거리며 걸어오는 것이 보이는데 피로 얼룩진 것이 씻겨져 마치 악귀 같다.주명취는 원경릉의 발 아래 엎어지며 원경릉의 발을 끌고
구사일생세 사람은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배가 가라앉고 있어서 빨리 구명정을 젓지 않으면 구명정도 빨려 들어갈 상태다.살고자 주명취는 옆에서 젖 먹던 힘을 다해 배를 젓고, 방향과 힘이 모두 일치해 구명정은 큰 배가 물을 빨아들이는 범위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원경릉이 구명정에서 엎드려 배가 천천히 가라 앉는 것을 보니, 거대한 소용돌이를 형성해 주변의 나뭇가지 등을 빨아 들였다.만아는 상처가 너무 심해서 이미 기절했다.주명취는 숨을 헉헉 몰아쉬며 갑자기 일어나 원경릉에게 덮치는데 원경릉은 엎드려 있어 주명취가 갑자기 덮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원경릉, 죽어!” 주명취가 소리를 지르며 얼굴이 흉악해지고 두 손은 귀신의 손톱처럼 원경릉의 목을 졸랐다.주명취는 완전히 미쳐버려서 핏자국이 마치 땅의 단층처럼 붉은 핏물이 베어 나와 말할 수 없이 기괴하고 흉측했다.원경릉은 이미 전신의 힘을 다 써버려서 반발도 전혀 못한 채, 숨이 가슴에서 빠르게 빠져나가더니 현기증이 나며 눈앞에 무수한 검은 소용돌이가 생겨났다.이때 암기가 주명취의 배에 꽂혔다.피가 솟구치고 주명취는 반쯤 무릎을 꿇더니 천천히 머리를 숙이며 솟아오르는 피를 보고 손으로 만지더니 허둥지둥 손으로 막았다.사람 그림자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와 구명정에 내려앉았다.청색 옷의 옷자락이 말려 마치 사신이 강림하는 것처럼 온 몸에서 분노와 한기가 뿜어져 나와 잘생긴 얼굴은 거의 슬픔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원경릉이 그를 보고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공기를 들이마시자 가슴의 고통이 천천히 사그라지며 어둠이 휩쓸고 올라와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의 차고 가는 손가락이 원경릉의 얼굴을 만지며 한 손으로 그녀를 안았다.원경릉이 온통 상처투성이에 거의 죽어가는 것을 보고, 우문호는 눈 앞의 이 여자를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다.우문호는 차가운 눈빛으로 주명취가 천천히 쓰러지는 것을 보며 싸늘하고 살벌하게: “주명취, 오늘 네가 만약 죽지 않으면 너에게 이
원경릉은 그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도 하기 싫은 문제였다.형제들과 다르게 그는 노화세포를 전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 사실을 그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우문호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그도 자식들의 회복 능력을 보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원경릉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다.우문호는 그녀를 바라 보았다.부부라서 마음이 통한 것일까.그는 그녀의 마음을 대략 읽고 있었다.원경릉은 수술을 하고 나서 전혀 늙지 않았다.일부로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어도 여전히 젊어 보였다.반대로 우문호는 하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기 시작했다.어쩌면 국가의 일을 처리하느라 노화가 빠른 것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는 그의 나이에 맞는 모습으로 점차 변해갔다.아직 눈가에 주름도 없고, 늙어 보이지 않지만 그는 곧 자신에게 닥칠 일이라고 생각했다.원경릉에게 주사를 맞겠다고 한 것도 그저 한순간의 충동일 뿐이다.사실 그는 그녀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하지만 몇십 년 뒤에 그녀의 인생에 자신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생각하면 할수록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그는 서둘러 생각을 접었다.'지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요즘들어 우문호는 운명을 믿기 시작했다.원경릉이 자신에게 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 다음 날, 온 가족이 숙왕부에 도착했다.그들이 일찍 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문이 닫혀 있었다.만두가 문을 두드렸다.아무런 대답이 없자 우문호가 바짝 긴장했다.“무슨 일 일어난 건 아니겠지?”“제가 들어가 보겠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아들의 의외의 행동에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만두가 언제 무술을 배운 거야?”원경릉은 무술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그리고 혹시 몰라 다르게 답했다.“저도 만두가 무술을 배웠을 줄은 몰랐습니다.”곧이어 만두가 안에서 문을 열었
“그래, 그래. 잘 된 일이야.”우문호가 기뻐했다.곧이어 손을 뻗어 딸의 이마를 어루만졌다.“내 딸이 그래도 제일 착하구나.”“아바마마, 편애하면 아니 되옵니다.”칠성은 우문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편애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그러고는 그의 그릇에 닭다리 하나를 올려 주었다.“자, 이건 칠성이거다.”“저희도 먹고 싶습니다!”옆에 있던 4명의 아들들이 우문호에게 그릇을 내밀었다.“닭다리는 딱 2개밖에 없구나. 칠성이에게 하나를 주었으니, 남은 하나는...”“아바마마! 저 주십시오.”택란이 그릇을 내밀었다.“어..”곧이어 원경릉도 그릇을 내밀었다.“저도 주십시오!”우문호는 한 손으로 닭다리를 잡은 채 자신의 앞에 놓인 그릇 6개를 바라보았다.잠시 고민하고는 원경릉의 그릇에 닭다리를 올렸다.“내 아내가 고생이 많지!”그리고 서둘러 닭 고기를 집어 다른 그릇에 올려 두었다. 그는 이마 위로 손을 올렸다.“내일 닭을 더 많이 잡으라고 해야겠구나, 한 사람에 닭다리 하나씩 먹을 수 있게 말이야.”그의 말이 끝나고 자리에는 웃음꽃이 피었다.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웃어 보였다.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만두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바마마, 저희가 장난 좀 친 것뿐입니다.마음에 두지 마십시오.게다가 여자라고는 어마마마와 여동생뿐입니다.저희 남자형제들이 양보하는 게 맞지요.”나머지 형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큰 형의 말에 어떻게 동생들이 토를 달 수 있겠는 가.그리고 동생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아바마마도 지켜 주셔야 합니다.아바마마가 저희 집안에서 제일 약한..”칠성은 닭다리를 뜯으면서 애매한 말을 내던졌다.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형제들이 반찬을 집어 그녀의 그릇에 두었다.만두가 입을 열었다.“그만 이야기하고 밥 먹어. 닭다리로도 부족한 거야?”칠성은 그의 말에 풀이 죽었다.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다시 닭다리를 뜯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바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된다. 술은 19세부터 마실 수 있는 법이다.”만두는 약간 실망한 듯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예. 말을 따르겠습니다.”기분이 좋아진 우문호는 팔꿈치로 원경릉을 살짝 찌르며 말했다.“한 모금만 주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리다고 하기도 훨씬 지난 나이네. 집에서 한 모금 정도는 괜찮소. 밖에서는 안 마시면 되지.”경단과 찰떡도 원경릉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기만을 기다렸다.원경릉은 아이들이 모두 아빠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 걸 보며, 오늘처럼 즐거운 날은 한 번쯤 허락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직접 아이들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작은 잔에 술향이 은은하게 퍼졌고, 아이들은 금세 웃음을 터뜨렸다.세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문호를 향해 잔을 높이며 말했다.“아바마마, 아바마마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우문호는 아이들의 풋풋함을 간직한 똑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성인이 되려고 애쓰는 그들을 보며 그는 뿌듯함과 감동이 교차했다. 그는 아이들과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그래, 부자끼리 한잔하자!”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품에 안겨 있던 작은 아이들이 지금은 그와 함께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현대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아이들이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은은한 촛불이 아이들의 기뻐하는 얼굴을 비췄다. 탁자 아래, 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다.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열심히 음식을 챙겨주었다. 환타가 원경릉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어마마마, 드시지요. 아바마마도 손잡지 마시고 어서 드십시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먹자, 다 같이 밥 먹자!”그녀는 그릇에 담긴 음식을 우문호의 그릇으로 조금 옮기며 말했다.“다 못 먹으니, 조금 먹어주시오.”우문호가 답했다.“그럼, 좋아하는 것만 먹고, 싫어하는 건 나한테 주시오.”그는 그릇을 내려놓고 새우를 까서 마늘장에 찍어
다섯째는 평소 아이들의 자잘한 일들에 항상 주목했다. 아이들을 자랑스러워하다가 금세 우울해지곤 했는데, 원경릉은 그의 모습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게 그의 즐거움이었고, 그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계란이의 길쭉한 팔다리가 앞으로 절대 키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다만 아직 클 나이에 이르지 않았다.원경릉은 예전에 아이들이 빨리 자라길 바랐지만, 이제는 천천히 자라길 바랐다. 그래야 아이들이 곁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질 것이다.섣달그믐날 그들은 연회를 올렸다. 관례대로라면 숙왕부에서 무상황과 함께 보내야 했지만, 올해는 무상황이 미리 사람을 보내 섣달그믐날 숙왕부는 아무런 손님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명을 전했다. 어르신들끼리 다채롭게 보낼 준비가 되어 있으니, 아이들이 와서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고 뜻을 전했다.다섯째는 오히려 이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동안 어르신들 앞에서 태상황으로서 위엄을 세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대우는커녕 오히려 재롱까지 부려야 했기에, 그는 항상 처지가 곤란했었다.무상황이 사람을 보내 궁에 있는 우문호에게 각자 알아서 새해를 보내고, 올해는 함께 모이지 않기로 소식을 전했다.황태후도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친정 식구들과 명절을 함께 보내본 적이 없다며 어린 공주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우문호 역시 만족스러웠다. 항상 북적이는 설날을 보내다 보면, 기진맥진하게 되니 차라리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는 게 훨씬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여덟 식구끼리 쉴 수도 있었다.이 소식을 들은 후, 우문호는 아이와 원경릉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놓으라 미리 전했다. 원경릉은 원 할머니를 초대하려 했지만, 원 할머니는 한참 망설이다가 단호히 거절했다. 자주 그녀와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먹지만 숙왕부의 어르신들과는 그런 기회가 적으니, 이번에는 그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겠다고 했다.원경릉은 이 말을 듣고 의아했다. 어르신들과
추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약을 먹은 후 많이 안정되었다. 이전에 폐종양이 신경을 압박해 유발했던 통증이 크게 완화되었고, 이제는 진통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통증이 사라졌으니, 삶의 질도 개선되었다. 추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자, 모두가 기뻐했다.숙왕부의 노인들은 갑자기 건강 관리에 눈을 뜬 것처럼 건강한 음식을 먹고,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햇빛을 쬐기 시작했다.운동은 늘 해왔던 일이지만, 과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적당한 운동을 하게 되었다.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그들의 전담 의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 외에도 식단을 짜고, 그에 따라 식사하도록 했다.다들 갑자기 이렇게 말을 잘 들으니,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의아해했다. 나중에야 그들이 회의를 열었고, 새로운 목표를 세운 것을 알게 되었다.그 목표는 바로 20년 후의 북당을 보는 것이었다. 안풍친왕과 무상황이 말하길, 20년 후의 북당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북당은 그들 심혈을 기울여 온 나라니, 더 나은 북당을 보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고자 했다.원경릉과 우문호는 마음이 놓였다.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보물이 있는 것과 같고, 나라에 이런 노인들이 있다면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문호는 걱정 없이 북당을 힘차게 이끌 수 있었다.그렇게 북당의 경제 발전이 최우선 순위에 놓였다.이리 나리는 나라의 발전을 지휘하는 사람으로서 이전의 여유로운 삶을 지낼 수 없었다.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며 산업마다 노조를 설립하였고, 각 노조는 나라의 법에 따라 방향을 잡고 나아가고 있었다.그들은 주변 나라와 장사를 하며 자원을 구매했다.지금 우문호와 이리 나리는 약도성의 철광에 목표를 맞추고 있었다. 북당의 철광 자원은 충분하지 않아 그동안 계속 구매해 왔었다. 하지만 금속은 수출량이 제한적이었기에, 이를 극복하려면 자원을 개발해야 했다.약도성의 철광은 매우 풍부했다. 조사 결과, 금나라와 접경한 산맥 외에도 다른 광산 자원이 발견되었다.
미색은 몰래 원경릉에게 말했다.“이 방법은 왕비 마마께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부드럽게 대하면 안 되고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약한 자는 괴롭히지만, 강한 자에게는 굴복한다고 하셨지요.”원경릉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맞는 말 같았다.이틀 후, 원경릉은 청우헌에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때 왕비가 사람을 보내 약이 도착했으니, 원경릉에게 추 할머니의 방으로 오라고 전했다.원경릉은 급히 추 할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왕비와 다른 두 사람이 추 할머니의 침대 옆에 있었다.두 사람은 현대적인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짧은 머리에 센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고 잘생긴 생김새에 이리 나리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풍기는 깨끗하고 강인한 기운을 느낀 원경릉은 그가 현대 군인임을 직감했다.그리고 여자는 짧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고 외모가 왕비와 매우 닮았었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단정하고 유능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도 역시... 군인처럼 보였다.두 사람의 강한 기를 보아, 계급이 낮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원경릉은 그들이 왕비의 두 자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소 흥분했다.그 순간, 왕비가 담담하게 한 마디 소개했다.“이쪽은 나의 아들 진예와 딸 진리다.”원경릉의 흥분된 마음은 단번에 깨져버렸지만, 그래도 예의를 지키며 앞으로 나아가 악수하였다.“안녕하십니까? 저는 원경릉이라고 합니다...”세 사람은 악수하며 웃었다.“들어봐서 자네를 알고 있네.”“정말입니까? 그럼 제가... 삼촌과 이모라고 불러야겠습니다.”원경릉은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호칭은 중요하지 않네!”진예가 말했다.“약을 갖고 왔다.“왕비가 원경릉에게 귀띔해 주었다.“예, 알겠습니다. 어디 보지요!”원경릉은 서둘러 돌아서서 약을 확인했다. 약은 한 상자 가득했고, 반 해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아직 출시되지 않은 약이기에, 그녀의 약 상
추 할머니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다.사실, 추 할머니는 이미 연세가 많고, 그동안 몸이 계속 좋지 않아 치료를 반복하는 것에 지쳤을 것이 당연했다. 오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쉽게 포기하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아마도 추 할머니는 주위 사람들과 이별하기 싫어서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 같다.원경릉은 그저 새로운 약이 효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녀 또한 평생을 함께해온 이들이 드디어 모였을 때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모든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릴 수 있기를 바랐다.아마도 지금이 그들에게 있어 가장 아름답고, 걱정 없이, 짐 없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요즘 미색도 자주 숙왕부에 들러 작은 일들을 도와주고, 어르신들을 돌보며 노력했다. 미색은 오기 전, 손왕비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유했지만, 손왕비는 무상황을 겁내며 오려 하지 않았다.그는 미색에게 원경릉은 이제 더 이상 초왕비나 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황후로서의 신분을 지키며 조심해야 하며, 혼자서 궁 밖으로 자주 나가는 것은 위험하니 반드시 호위를 대동해야 한다고 당부하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손왕비의 말은 선의였지만, 미색은 늘 그래왔듯 그녀를 반박했다."신분이라니요? 신분으로 따지면 숙왕부의 어르신들도 황후 못지않게 귀한 분들입니다!"숙왕부에 도착한 미색은 이 말을 원경릉에게 그대로 전했다.원경릉은 듣고 웃으며 말했다."둘째 형수도 선의로 말한 것이오. 하지만 자네의 말도 맞소. 신분이 뭐가 중요하오? 신분으로 따지면 나는 원래 의원이라네. 황후는 그저 자리일 뿐, 결코 내 영광이 아니라고 생각하네.""전적으로 동의합니다!"미색이 그녀를 지지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회왕비였지만, 황실의 신분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을 대흥 군주라고 여기지 않고 늑대파 출신이라고 자처했다. 그녀는 험난한 강호에서 버틴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업을 가지고 있었다.미색은 앞으로 손왕비에게도 일을 시작하라고 권유하
황실에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은 큰일이었기에, 서둘러 잔치를 준비해야 했다.이전에 원 할머니는 숙왕부에서 자주 연회를 열면 안 된다며 경고한 적이 있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겐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좋지 않은데 연회라 그저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술도 같이 마시게 되니 절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 할머니는 큰 경사가 아니면 고기를 금지한다는 엄명을 내렸었다.하지만 제왕 부부가 딸을 낳은 지금은 큰 경사였기에 한 무리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원 할머니에게 허락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차례로 설득에 나섰고, 결국 원 할머니도 어쩔 수 없이 허락하며, 술과 고기의 양은 반드시 자신이 통제한다는 조건을 붙었다.그녀는 이제 숙왕부의 집사처럼 보일 정도로 나서서 제지했고, 그녀도 이 역할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녀가 가장 원하던 노후 생활은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니 말이다.추 할머니의 병세는 약물 치료 후 조금 호전되었다. 병세가 더 악화하지 않았고, 진통제 주사의 빈도도 줄어들었다.사실 원경릉이 사용하는 약물이 병세를 억제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모두의 격려와 그녀의 강한 의지가 병세를 멈춘 이유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숙왕부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도 또 한 번 연회를 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원 할머니는 단호히 거절했다.연회가 열리는 날, 원경릉도 참석했다. 그녀는 숙왕부의 활기를 또 한 번 느끼고 싶었고, 그 분위기가 역시나 그녀를 매우 기쁘게 만들었다.나이 든 늙은이들이 마련한 연회가 젊은 그녀조차도 활기를 느낄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다.고기의 양은 엄히 제한되었고, 채식 요리가 늘어났다. 원 할머니는 야채를 구워도 맛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다들 원 할머니의 말을 따르듯 채소를 먹긴 했지만, 여전히 제한된 고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분주했다. 모닥불이 모든 사람의 기쁨 어린 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안풍친왕 부부도 직접 고기를 구워 열기를 더했다.식사가
며칠 뒤, 다섯째가 정말 아이를 데리고 궁에서 나왔다.원경릉은 이미 화를 풀었다. 그가 어찌 나쁜 마음을 품었겠는가? 그는 단지 딸과 단둘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리고 사실이 증명하듯이, 계란이는 무상황을 만난 후 아버지를 금세 잊어버렸다. 그녀는 무상황을 태조부라고 부르며 함께 뜰을 산책하고, 함께 식사하며, 얼굴과 손을 닦아 주고, 함께 바둑도 두었다.이때 택란이가 조심히 원경릉에게만 말했다.“어마마마,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돈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금이고 은이고 다 주려 한다면, 틀림없이 아주 사랑한다는 증거일 것입니다.”원경릉은 순간 자신이 이 사실을 잊고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무상황의 계란이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특별했다.예전에 그녀는 무상황이 계란이를 너무 편애하여 다른 왕비들이 질투해, 형제자매 사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했었다.실제로 손왕비가 몇 마디 불평하며 약간 질투를 내비치긴 했지만, 미색이 바로 반박했다. “뭘 안다고 그러십니까? 이 금을 계란이에게 준다면, 앞으로 조정에 돈이 필요할 때 계란이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손왕비나 제가 받았다면, 돈을 내놓으려 하겠습니까?”이 말에 손왕비는 순식간에 화를 가라앉히고, 곧장 원경릉에게 사과했고, 그 이후로 원경릉도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우문호와 원경릉은 함께 정원을 거닐며, 안풍친왕의 자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섯째도 이 소식에 안도하며 말했다.“그들을 만나보고 싶소.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오? 아니면 작은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오?”아직 그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그들이 돌아온다고 들었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오.”원경릉이 대답했다.“안풍친왕의 성격을 생각하니, 자녀들도 그를 닮았을지 궁금해졌소.”원경릉이 웃으며 여우 같은 한 가족이진 않을까 생각했다.안풍친왕의 자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원용의에게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원용의가 아이를 낳았다.제왕은 아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