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람과의 싸움, 협력자의 등장원경릉은 주명취의 얼굴에 떠오른 미세한 표정 변화를 보고, 자기 추측이 옳았음을 알았다.주명취는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지 않으면 손왕부때 협박 당하는 척 하지 않았을 것이다.이 사람은 평생 ‘척’이다. 이 판국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가면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자신이 어떤 속마음을 가졌는지 똑바로 마주하려고 하지 않는다.주명취는 흉포하게 원경릉을 쏘아보며, “그래서 어쨌다고? 내가 죽든 말든 넌 볼 수도 없어.”원경릉이 주명취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사악한 웃음을 흘리며, “그래서 말이야, 네가 반드시 나보다 먼저 죽어야 안심이 된다는 소리지.”“이런 안됐네, 넌 날 못 죽여.” 주명취가 싸늘하게 말했다.“그럴 필요없……”원경릉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매스를 꺼내 들고 주명취의 팔목을 그었다.원경릉이 주명취에게 다가가 매스로 정확하게 주명취의 손목 동맥을 그었고, 주명취의 손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주명취는 죽고 싶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강가에 닿아 구조를 요청해야 했으므로 뱃사람들을 재촉해 어서 구명정을 내리도록 했다.주명취가 경악해서 분노한 가운데 한 손으로 손목을 누르고 거의 실성한 상태로 소리치길: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뱃사람 두 명이 와서 주명취가 손에서 계속 피가 떨어뜨리며 비틀비틀 서있는 것을 보고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밧줄을 잘라와서 손목의 상처를 동여매자 피가 덜 흘렀다.다른 한 사람은 한 손으로 원경릉을 잡고 바로 따귀를 날렸다.원경릉이 따귀를 맞고 머리가 빙빙 돌고 눈앞이 어지러운 가운데 코에서 피가 났지만 할 말을 잊지 않고, “저 여자는 동맥을 다쳤으니 만약 빨리 옮겨서 치료하지 않으면 과다출혈로 사망해. 억지로 동여매도 소용 없어, 피를 멈췄다 해도 그 손은 못 쓰게 될 테니까.”주명취는 표독한 눈으로 이를 악물고, “저년을 죽이고, 어서 날 데리고 돌아가!”뱃사람이 한 손으로 원경릉의 목을 틀어쥐자 원경릉은 이미 대비하고 있다가 최루 스프레이를 꺼
치열한 싸움살인청부업자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건 돈을 받는 것으로 만약 주명취가 죽으면 그들이 한 일은 수포로 돌아간다.주명취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저들을 죽여, 다른 거 없이, 나와 저년 몸에 있는 패물만도 은자 천냥은 족히 넘고 그녀 몸에는 남주라는 귀한 진주가 한 알 있는데 만 냥의 가치가 있지. 못 믿겠으면 너희들이 뒤져 봐.”뱃사람들 눈에 순간적으로 탐욕이 일어났다.만 냥이면 그들 형제가 이 일만 마치고 손을 씻은 뒤 다시는 살인과 도둑질을 할 필요가 없다.원경릉이 눈앞이 어두워졌으나 주명취의 머리채를 쥐고 힘껏 뒤로 당겨 주명취의 얼굴을 눕힌 뒤 원경릉 손에 비수로 모질게 그녀의 얼굴을 긋더니 구멍을 두 개 냈다.주명취는 고통으로 괴물 같이 울부짖는데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고 원경릉이 주명취를 끌고 가며 만아에게 공간을 틔워주었다.만아의 무공은 눈에 띄게 이 사람들에 못 미쳤으나 만아는 사나웠다.하지만 제아무리 사나워도 곳곳에 부상을 입은 상태이고, 뱃사람들은 원경릉 몸에 남주를 갖고 싶은 나머지 거의 미쳐 날뛰며 만아부터 죽이려고 했다.원경릉이 만아가 이미 말도 못하게 당한 것을 보고 속이 타 들어 가는데, 머릿속에 퍼뜩 섬광이 스치며 외치길: “만아, 미혼술!”만아가 정신을 차리고 손에 은방울을 들어 올리더니 몇 번 흔들었다.방울소리가 맑게 울리며 만아는 소매에서 하얀 가루를 꺼내 바람에 날리니, 뱃사람들은 이 가루를 들이마시고 방울소리를 듣자 놀랍게도 하나씩 멍 해지며 비수를 땅에 떨어뜨렸다.주명취가 미쳐 날뛰며, 원경릉에게 덮쳐 손목을 깨물고 죽기 살기로 물고는 원경릉을 제압하려고 했다. 원경릉은 너무 아픈 나머지 비녀로 주명취의 배, 가슴을 찌르고 서야 마침내 주명취에게서 풀려나 바닥에 쓰러졌다.원경릉은 온 몸에 힘이 빠져서 겨우 앉아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 쉬는데 손목 부분의 통증이 심각해서 전신이 덜덜 떨리고 만져보니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만아도 갑판에 누웠는데 전신의 힘을 다 쓴데다 온통 상처 투성이다.
구명정을 앞에 두고 온 힘을 다하는 원경릉원경릉이 입술을 깨물고 고통을 견디는 동안 급히 싸맨 만아의 상처가 더 버티질 못하고, 물은 차올라 배가 가라앉고 있다.만아의 상처가 위중해 거의 혼절했으나 고통으로 간신히 깨어 있는 상태로, 차오르는 물을 보며 원경릉의 손을 잡아 끌고 힘겹게: “왕비마마, 나무토막을 끌어안고 뛰어내리세요, 이쪽으로 오는 배가 구해줄 겁니다.”원경릉이 만아를 부축하려고 시도하며 다급하게: “만아, 아직 힘 있어? 여기 구명뗏목이 있는데, 뗏목을 물에 띄우면 우린 도망갈 수 있어.”만아의 눈에 한 줄기 생기가 차오르며 한걸음 기어와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당최 몸을 일으킬 수 없어 몇 번 시도하다가 바닥에 세게 넘어져서 상처가 오히려 더 심해졌다.원경릉은 만아가 완전히 뻗어 버려서, 구명 뗏목을 내리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경릉은 이를 악물고 일어나 비수를 들고 힘겹게 걸어갔다. 발 아래는 이미 물이 차올라 발목까지 차오르고 비틀거리며 두어 걸음 걷는데 물결이 일었다. 물결은 높지 않아 고작 무릎에 닿는 정도였지만 원경릉은 종아리에 상처가 있어 부딪히는 물결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졌다.원경릉의 마음 속에 이토록 절망적인 적은 없었다. 원경릉은 죽고 싶지 않다. 배속에 아이까지 있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보고 싶다.원경릉은 다시 이를 악물고 앞으로 기어가는데 차가운 물이 몸을 덮치니 뼈속까지 한기가 차올라 온몸을 덜덜 떨며 산발한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렸다. 구명정이 그녀 앞에 있는데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지만 구명정을 뒤집어 내릴 힘이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구명정에 묶여 있는 밧줄을 끊을 힘조차 없다.귓가에 주명취의 예리하고 공포에 가득 찬 절규가 들린다, “죽고 싶지 않아, 어서 날 구해줘, 어서 날 구해달라고.” 원경릉이 고개를 돌리자 주명취가 허우적거리며 걸어오는 것이 보이는데 피로 얼룩진 것이 씻겨져 마치 악귀 같다.주명취는 원경릉의 발 아래 엎어지며 원경릉의 발을 끌고
구사일생세 사람은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배가 가라앉고 있어서 빨리 구명정을 젓지 않으면 구명정도 빨려 들어갈 상태다.살고자 주명취는 옆에서 젖 먹던 힘을 다해 배를 젓고, 방향과 힘이 모두 일치해 구명정은 큰 배가 물을 빨아들이는 범위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원경릉이 구명정에서 엎드려 배가 천천히 가라 앉는 것을 보니, 거대한 소용돌이를 형성해 주변의 나뭇가지 등을 빨아 들였다.만아는 상처가 너무 심해서 이미 기절했다.주명취는 숨을 헉헉 몰아쉬며 갑자기 일어나 원경릉에게 덮치는데 원경릉은 엎드려 있어 주명취가 갑자기 덮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원경릉, 죽어!” 주명취가 소리를 지르며 얼굴이 흉악해지고 두 손은 귀신의 손톱처럼 원경릉의 목을 졸랐다.주명취는 완전히 미쳐버려서 핏자국이 마치 땅의 단층처럼 붉은 핏물이 베어 나와 말할 수 없이 기괴하고 흉측했다.원경릉은 이미 전신의 힘을 다 써버려서 반발도 전혀 못한 채, 숨이 가슴에서 빠르게 빠져나가더니 현기증이 나며 눈앞에 무수한 검은 소용돌이가 생겨났다.이때 암기가 주명취의 배에 꽂혔다.피가 솟구치고 주명취는 반쯤 무릎을 꿇더니 천천히 머리를 숙이며 솟아오르는 피를 보고 손으로 만지더니 허둥지둥 손으로 막았다.사람 그림자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와 구명정에 내려앉았다.청색 옷의 옷자락이 말려 마치 사신이 강림하는 것처럼 온 몸에서 분노와 한기가 뿜어져 나와 잘생긴 얼굴은 거의 슬픔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원경릉이 그를 보고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공기를 들이마시자 가슴의 고통이 천천히 사그라지며 어둠이 휩쓸고 올라와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의 차고 가는 손가락이 원경릉의 얼굴을 만지며 한 손으로 그녀를 안았다.원경릉이 온통 상처투성이에 거의 죽어가는 것을 보고, 우문호는 눈 앞의 이 여자를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다.우문호는 차가운 눈빛으로 주명취가 천천히 쓰러지는 것을 보며 싸늘하고 살벌하게: “주명취, 오늘 네가 만약 죽지 않으면 너에게 이
원경릉을 구한 우문호원경릉을 안고 초왕부로 돌아갈 때 우문호는 여전히 떨렸다.우문호는 만약 한발이라도 늦었으면 어떻게 됐을 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멀리서 주명취가 다가와 원경릉의 목을 조르는 것을 보았던 그 순간, 절망이 우문호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제왕부에 불이 나 일곱째가 화재 현장에 갇혀 있고 불길이 거세서 일곱째가 도망칠 길이 끊겼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곱째가 뜻밖에도 의식을 잃어 불이 난 것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다.그림자 무사가 먼저 도착했으나 당시 이미 불길은 잡을 수 없을 만큼 번졌는데 불은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하면 10척(3m)안에도 뜨거운 화염에 몸이 타는 것을 느낄 정도다.일곱째는 천성이 겉치레에 고상한 척을 해서 방에 나무로 된 것이 많고 다락집은 전체가 느티나무로 지어졌기 때문에 일단 불이 붙으면 불 바다가 되어 그림자 무사도 감히 접근할 수 없고, 행여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들어도 제왕을 들쳐 메고 다시 나올 수 없다.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화염은 이미 완전히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주변으로 번져 나갔다.부근의 저택에 옮겨 붙는 것을 막기 위해 반드시 서둘러 진화작업을 진행해야 했다.우문호와 셋째가 가서 일곱째를 구하기 위해 연신 소화작업을 해 비로소 다락집을 없애고 일곱째를 구해냈다.하지만 제왕부에서 소화작업이 다 끝나기도 전에 손왕부 사람이 와서 급보를 전하길, 도둑이 들어 초왕비와 제왕비가 납치당했고, 사식이가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다.당시에 우문호는 정신이 아득해 어디 가서 찾아야 할지 몰라 사람을 이끌고 아무 배나 닥치는 대로 뒤졌으나 소득이 없었다. 이때 부두에 뱃사람이 알려주길, 누가 초왕비를 위협해 물에 빠뜨리려고 한다는 말에 바로 배로 쫓아간 것이다.우문호는 이제서야 만아가 부두의 뱃사람을 시켜 소식을 전한 것임을 알고 원경릉을 침대에 눕혔다. 눈 앞이 흐리고 원경릉의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을 쓰다듬는 손가락 끝이 여전히 심하게 떨렸다.원경릉은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꺼질 듯 약
깨어난 원경릉탕양이 당황해서, “그게……”“제왕부에 불을 지른 건 주명취가 가까스로 해 낼 지 몰라도, 사실 깊이 생각해 보면 이 화재가 간단한 것이 아니거든. 손왕부에 나쁜 놈을 집안까지 끌어 들인 뒤 사람을 죽이고 납치한 것은 물론이고 도주할 길을 물색해 배까지 준비해 두는 건 주명취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살인청부업자와 접촉하려면 반드시 누군가 연락책이 있기 마련이다.살인 조직의 배후에는 총괄이 있어 가볍게 개인적으로 일을 맡았을 리 없다.그리고 살인청부 조직도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황실이나 관직에 있는 공인은 기본적으로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일망타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하지만 그들은 직접 손왕부에 들어왔고 제왕부에는 불을 지르기까지 했으며 상당히 주도면밀 하게 방화 한 것이 몸종이 어쩌다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동시에 두 팀이 이 음모를 진행했을 경우 주명취가 일시에 통제가 가능했을까?탕양이 돌이켜 찬찬히 생각해보고 그제서야 얼굴이 하얘지면서: “왕야 참으로 주도면밀 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소인은 감히 생각조차 못했습니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침대에 앉아 차갑게: “너는 내가 주재상에게 밉보일까 걱정이고, 내가 문책을 당해 직책에서 물러나는 죄를 지을까 두려워 해서지만, 만약 배후의 인물을 색출해내지 않으면 나는 먹지도 자지도 못할 것이다.”탕양이: “그렇다면 이 일은 소인이 직접 주씨 집안에 가서 애기하겠습니다. 서일아, 너는 관아로 가서 왕야의 명령을 전해라.”두 사람은 각자 떠났다.희상궁이 녹주에게 뜨거운 물을 준비하게 하고 왕비의 얼굴과 몸을 닦았다.뜨거운 물이 들어오자 우문호는 어두운 목소리로: “너희들은 다 나가서 왕비를 위한 죽을 준비하고 깨어나길 기다리려 무나.”모두 명을 받들고 나갔다. 우문호는 두 손을 적시고 손가락 끝으로 살살 우선 원경릉의 얼굴을 닦는데, 얼굴에 피로 얼룩진 곳이 많고 전부 굳어 있었다.원경릉은 얼굴에 상처가 없으니 이 피는 그녀의 것이 아니다.하지만 처음 봤을 때 우
주씨 저택으로 돌려보내진 주명취우문호는 원경릉을 안더니 작은 목소리로: “움직이지 마, 가만히 누워 있어, 조금 있으면 안 아플 거야.”원경릉은 우문호가 절절하게 아파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사식이를 떠올리고 서둘러: “사식이는?”우문호가: “사식인 복부를 다쳤는데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해서, 원씨 저택에 돌려보냈어.”“만아는?”우문호는 고개를 흔들며, “아직 몰라.”“최선을 다해 만아를 구해줘.” 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잡는데, 베개 위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아직 피에 물들어 있다, “만약 만아가 아니었으면 난 벌써 죽었어.”우문호는 그윽한 눈빛으로 목이 메이며: “안심해, 만아는 괜찮을 거야, 무공을 수련한 사람이잖아, 체질이 너보다 좋고 상처도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니까, 체력이 소모됐을 뿐이야, 쉬고 나면 괜찮을 거야.”원경릉의 머리가 베개로 떨어지며, 우문호를 향해 고개를 돌린 깨끗하고 창백한 얼굴에 한 줄기 선홍 빛이 떠오르며, “주명취는?”우문호는 손가락으로 원경릉의 입술을 쓸며 얼어붙을 듯한 눈빛으로, “주명취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으니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지.”“그럼 주명취의 죄는 어떤 판결을 받는데?” 원경릉이 물었다.“사형은 확정인데, 어떻게 죽는지 두고 봐야 지.” 우문호가 상당히 부드럽게 말했다.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왕야가 직접 심판할 거야?”“경조부의 책임을 다른 데 전가할 수는 없어.”“주명취와 왕야는……” 원경릉이 잠시 생각하더니 역시 말하지 않았다.우문호의 눈빛은 싸늘하기 이를 데 없이, “나랑 주명취는 그리워할 옛 사랑 따위 없고, 다른 사람이 뭐라고 지껄이든 상관없어. 남의 일에 오지랖 부리는 거까지 통제할 수는 없으니까.”원경릉이 고개를 흔들며, “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두려운 게 아니라, 주명취가 죄를 지었으니 당연하지만, 왕야가 마음 아파할 게 걱정일 뿐이야. 어쨌든 둘은 과거가 있으니까.”“과거에 뭐가 있다고? 난 눈곱만큼도 그립지 않아. 너한테 미안할 뿐이지. 하물며
사건을 고민하는 각자탕양이 주씨 저택에 와서 우선 재상에게 말씀드리니 재상이 초왕의 요구를 듣고, 예리한 눈을 치켜 뜨더니 탕양에게, “초왕이 그리하면 화를 자초할 수 있으니 너는 돌아가서 초왕에게 전하게. 이 일은 내가 입다물게 할 수 있으니 만조백관은 아무도 이 일을 추궁할 수 없을 것이다. 허나, 죽어 마땅한 사람도 반드시 죽을 것이다.”탕양이 조용히: ‘재상 어르신, 이 일은 어르신 생각에 제왕비 마마 혼자 가능하시다고 보십니까?”주재상이 다소 당황했으나 천천히 눈을 내리깔고 고결한 자세로, “알았네, 얼마든지 사람을 데려가도 돼.”탕양이 예를 취하고 물러났다.느지막이 경조부 사람이 와서 주명취를 옮겨 갔다.경조부 감옥은 어둠침침하고 축축했다.주명취에 대한 대우는 나쁘지 않아 비교적 채광이 좋은 감옥방에 자리를 펼 수 있었으며, 감옥에서는 등불로 벽에 구멍을 뚫어 송진을 넣은 뒤 조명용으로 쓰고 있었다.흔들리는 불빛이 주명취의 감옥 반대쪽에서 창백하고 텅 빈 얼굴을 비췄다.주명취는 이 감옥방에 들어온 이래 계속 눈을 뜨고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쉬는 모습이 죽어가는 금붕어 같다.보좌관이 들어와 묻지만 주명취는 눈을 들어 보좌관을 노려볼 뿐: “우문호가 직접 오지 않으면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보좌관이 우문호에게 돌아갔다.우문호가: “서두르지 마라, 일단 하루는 내버려 둬.”보좌관은 주명취가 죽을 까봐 걱정하자 우문호가: “안 죽어, 그 자금탕이면 이삼 일은 버텨.”보좌관이 물러났다.서일은 우문호가 왜 하루를 내버려 두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자 우문호가 평소처럼: “기왕이 곧 후궁을 맞는데 어찌 이 불길한 일이 경사를 방해하게 할 수 있느냐?”“기왕부는 최근 오히려 굉장히 분수에 만족하던 데요.” 서일이 말했다.분수에 만족한다고? 우문호의 입꼬리에 비꼬는 듯한 웃음이 걸렸다.주명취를 심문해서 뭔가 나온다고 해도 무슨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하지만 우문호는 이 자백을 상부에 올릴 것이다.오늘밤, 많은 사람들이 잠들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