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대부인에게 처분을 내리는 주재상주대부인은 오늘 어차피 시아버지에게 밉보인 김에, 노마님이 계실 때 이 일로 노마님이 명을 내리시면 다시는 누구도 주대부인을 괴롭힐 수 없도록 노마님이 다시 그녀에게 숨통을 틔워 주길, 그래서 희상궁을 죽여주면 제일 좋을 텐데 생각했다.희상궁이 죽지 않으면 언젠가는 화근이 된다.증조마님의 눈이 잔혹한 빛으로 방금 입구에서의 자애로운 눈매는 완전히 사라지고 음침하게: “이 일은 나도 알았네, 입을 함부로 놀린 것을 내가 직접 혼을 낼 것이야. 네가 여기서 이래저래 얘기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주재상이 그제서야 천천히 묻길, “어머님, 누구를 혼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희상궁입니까?”증조마님이 이 말을 듣고 주재상을 보고 상당히 불만스런 안색으로, “왜? 내가 혼내면 안되는가?”주재상이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잠시 생각하더니: “무슨 자격으로? 죽을 날이 가까운 노인 자격으로? 지금 누가 감히 저를 넘어 혼을 내겠습니까?”증조마님이 거의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날카로운 목소리로: “뭐라고? 어디 한 번 다시 말해 보거라.”“좋습니다.” 주재상이 집안 사람들을 보고 분명하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내 말 잘 들어, 만약 누구든 감히 희상궁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건드리거나 희상궁 앞에서 무례한 말을 한 마디라도 뱉으면 상대가 누구든지 목이 떨어질 거라고 장담하지.”이 나지막한 목소리에 놀라 좌중의 심장이 오그라들고, 이제…… 노마님은 더이상 주재상을 통제하지 못하는 걸까?증조마님마저 잠시 정신이 아득해서 어안이 벙벙한 채로 주재상을 바라봤다.“집사, 준비하라고 분부한 독주는?” 주재상이 찻잔을 들고 느긋하게 말했다.집사는 놀라고 두려워하는 안색으로, “그게……”“목아(穆婭)!” 주재상이 노하여, “집사를 내보내라, 이 집에서 내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목아는 큰 몸짐으로 안쪽 대청으로 들어가 직접 집사를 달랑달랑 들고 나왔다.집사는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가 입
주대부인의 마지막이 말이 떨어지자 현장은 쥐 죽은 듯 적막하고, 울며 애원하는 소리마저 잠시 사라졌다.증조마님은 노해서 일어나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 말은 네 늙은 어미도 내 쫓겠다는 것이냐? 오늘 네가 감히 이 집안의 누구라도 해하는 날엔 내가 네 눈 앞에서 죽어주마, 너는 불효자란 죄명을 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주재상이 노모를 보고 차갑게: “저는 사람을 시켜 어머니를 월미암에 바로 보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지켜 보시지요, 우리 주씨 집안 사람을 좀 보세요. 어머니가 눈감아 줘서 어떤 꼴이 됐는지, 이 사람들을 좀 보세요, 쓸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어머니도 죽고, 나도 죽습니다. 이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고깃덩어리에 불과해요, 하지만 그때까진 어머니도 저도 살아서 볼 수는 없지요.”증조마님이 화를 내며: “그래서 내가 늘 네게 권한 것이, 네가 아직 힘이 있을 때 집안 사람을 발탁하라는 것이야. 우리 주씨 가문이 큰 나무로 장성하면, 뿌리는 땅으로 뻗어 천리에 이어질 것이니 누가 감히 우리를 건드린다는 말이냐? 지금 아직 일이 터지지도 않았는데 먼저 자기 사람에게 칼을 대다니 무슨 약해 빠진 짓이냐? 너는 진정한 영웅이니 주씨 집안의 만고의 가업을 위해 필사적을 싸워야지 벌벌 떨어서야 되겠느냐.”주재상이 냉소를 지으며, “노모는 역모를 꾀하십니까? 나이만 많으면 뭐합니까, 옛 것을 배워 적용을 하질 못하니 조만간 우리 주씨 가문의 큰 우환이 될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으면 죽기를 각오하고 어머니를 쫓아내시라고 간언해 주씨 가문 자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았을 텐데.”이 말에 모든 사람이 놀랐다, 이 말이 대역무도하다 뿐인가? 가히 인륜에 어긋난 말이다.증조마님은 눈을 깜박이고 거의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기 직전이다.이 순간 주재상이 이미 목아에게 손짓을 하고 눈짓으로 독주를 가리켰다.목아는 큰 걸음으로 다가와 독주를 받쳐 들고 주대부인의 앞까지 갔다.주대부인이 절규하고 있는 힘을 다해 뒤로 숨으며
주씨 집안을 살리는 길주재상도 사실 주대부인을 감싸는 쪽이었다. 예를 들어 혜정후 때도 여전히 혜정후에게 살길을 마련해 주고자 했던 것처럼 말이다.하지만 그때도 혜정후가 저지른 짓거리를 일일이 알고 나서 주재상은 까무러치게 놀랐다.이게 주씨 집안 사람이 저지른 짓이란 말인가?누가 그들의 간이 배 밖으로 나오게 했지? 그들이 어찌 제멋대로 악행을 일삼으며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가장 중요한 건 혜정후가 그때 납치한 게 초왕비 였다는 점으로 혜정후도 뒤에 그 사실을 알았지만 여전히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는 점이다.그러니까 이들은 이미 황실이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며, 그들 마음 속에 주씨 집안이 황실보다 높다는 뜻이다.오늘 이 대청에서 그들이 한 말도 전부 이 점을 증명한다. 그들은 심지어 제왕이 현장에 있다는 사실조차 신경 쓰지 않고 그런 역모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행동으로 옮겼다.주씨 집안은 기고만장한 게 아니라 신하로 조정에 반란을 일으키고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것이다.모든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이런 속내가 감춰져 있고, 황위도 못 얻을 게 뭐 있냐, 가져오고자 하는지 아닌지 두고 볼 뿐이다.태상황이 성지를 내려 소문을 퍼트린 사람을 엄중히 징벌하라고 해서 사형을 받은 것은 주부 사람 하나지만 태상황은 이번 일로 주재상에게 삼엄한 경고를 한 것이다.“천한 년 하나때문에 아주 미쳤구나!” 증조마님이 분에 못 이겨 찻잔을 집어 던지자 큰소리가 나며 깨졌다. 나이든 군주의 반듯한 태도는 온데 간데 없고, “그때 내가 죽였 어야 했는데, 만약 네가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내가 그년을 왜 살려 뒀겠느냐? 이 참사의 화근은 다 그년 때문이야, 늙고 죽어도 우리 주씨 가문을 해치려 들다니.”주재상이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그때 당신은 구름과 비를 마음대로 부릴 만한 권세였지요, 그녀를 죽이는 것쯤 이야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웠습니다. 만약 제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희야는 벌써 죽었겠죠, 저는 쭉 봐왔습니다. 당신이 죽
주재상의 명령과 깨어난 희상궁증조마님이 깨어나 성지 내용을 듣고 오랫동안 입술을 떨고 공포로 눈동자가 오그라들며, “어찌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이냐? 주씨 집안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게야?”“군주마마,” 친정에서부터 따라와 그녀를 오랫동안 모신 통상궁이, “아마도 어르신도 잘못하신 것 같지 않습니다. 주씨 집안이 몇 년간 참으로 지나친 점이 있었지요.”“그건 우리에겐 당연한 것이야.” 증조마님이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망연자실하게 애간장이 타는듯: “우리는 주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야, 내 딸이 궁중에 시집가 황후가 되었고, 내 손녀도 궁중에 시집가 황후가 되었으니 우리 주씨 집안이 이 북당에서 제일 큰 가문이란 말이다. 태후의 소씨 집안(蘇家)은 우리집 신발을 들 자격도 못 되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어? 태상황은 고작 죽은 호국공 한 명때문에, 천한 년 하나 때문에, 성지를 내려 우리 주씨 집안의 안방마님을 죽여? 나는 모르겠네, 나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어, 넌…… 넌 어서 날 부축해서 나가자, 입궁해서 태상황을 만나야겠다.“군주마마, 그러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일은 여기서 끝내시지요, 대부인도 죄로 돌아가셨으니 저흰 월미암으로 돌아가요.” 통상궁이 권했다.“쫓아내는게 마땅해, 그것을 쫓아내는 것이 마땅해.” 증조마님이 천천히 이어나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그것을 쫓아내라, 그 아이는 우리 주씨 집안 사람이 아니니 우리 주씨 집안이 어전에서 만조백관들 앞에서 황제의 훈계를 들을 필요 없어. 이 무슨 체면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야.”증조마님은 눈앞이 캄캄해 지더니 ‘꽈당’ 소리가 나고 다시 바닥에 쓰러지셨다.주재상은 결코 이렇게 끝낼 생각이 없으므로, 밀어붙이며 일제 정리에 들어갔다. 주씨 집안 자제가 소유한 산업과 재산을 조사한 뒤 일률적으로 전부 회수하고, 모든 사람을 공개적으로 선포한 월례 은자만으로 살게 했다.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주재상은 특명을 내려 수많은 사복 시위를 양성해 몰래 주씨 집안 자제의 일거수일투
주재상과 희상궁의 재회원경릉이 예를 취했다.주재상이 들어가 문을 닫았다.희상궁이 침대에 앉아 주재상 머리의 백발을 보고 흠칫하다가 마음이 아려 와서, “당신……”주재상이 옷자락을 날리며 침대 옆 걸상에 앉아 조용히 그녀와 마주 보고 있다.주재상이 웃으며 손을 뻗어 희상궁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기 앉아서 당신을 볼 수 있다니 이거 기분 진짜 좋은데.”희상궁이 낮게 쉰 목소리로, “그러게요, 살아있어 정말 좋네요.”“당신도 나도 늙었어, 살 날도 얼마 없는데 이렇게 낭비하면 안돼.” 주재상이 말을 하며 품에서 물건을 하나 꺼내더니 희상궁 앞에 슬쩍 놓는다.희상궁이 뭔가 들여다보니, 뜻밖에도 곰팡이 슨 흔적이 있는 자수 쌈지다.그녀가 웃으며, “당신 아직 가지고 있었어요?”“그럼, 실이 빠지고 곰팡이도 좀 폈어, 빨아도 안 지워지더라고. 어쨌든 소년 시절의 물건은 특별하니까 몸에 간직하고 있었지. 생각해보니 나중에 순장품으로 관에 들어갈 때도 같이 가져 가게 될 것 같은데.”희상궁이 웃는데 눈가가 발그레하게 풋풋해졌다.“날 미워했어요?” 희상궁이 물었다.주재상이 잠시 생각하더니, “미워해? 당신 마음을 짓밟아 죽이기까지 했지만 난 억지로 강행할 수 없었어, 나중에 당신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알았지, 이렇게 한 것도 나쁘지 않구나 하고. 만약 당신이 시집을 왔으면 1년이 못 돼서 죽었을 게 틀림없어. 이 세상엔 그렇게 모질고 독한 사람이 있더군.”희상궁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 그때 죽는 게 두려웠어요.”주재상이: “죽는 걸 무서워해 주길 잘 했어. 너와 결혼하지 못했지만 하여튼 난 네가 궁에 있다는 것을 알고, 네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 봐, 이생도 다 끝나가잖아, 우리 둘이 각자 잘 지내온 것만으로도 행운이었어.”주재상은 넋을 놓고 희상궁을 쳐다보다가 살살 고개를 흔들며, “있잖아, 당신은 이렇게 늙었는데 내가 당신을 보면 왜 항상 예전 얼굴로 보이지?” “그래요, 못 봐줄 거예요. 내 한창때
주재상 공개재판을 연 증조마님주씨 집안은 여전히 뒤흔들리고 있었다.주재상의 정실부인인 주 노마님은 스스로 월미암으로 가길 원해서 옮기셨으나, 증조마님은 오히려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증조마님은 주씨 집안이 정돈되는 것에 화가 치밀어 그녀가 이 저택에서 이런 식으로 권력을 뺏긴다고 생각하니 용납할 수 없었다.그래서 증조마님은 주씨 집안 연장자를 소집하기에 이르렀고, 주씨 집안 어른들이 모여 다같이 주재상을 ‘공개재판’하게 되었다.주씨 가족 모두는 증조마님을 존경과 숭앙해 마지 않는다.그녀는 젊었을 때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전 집안의 안 살림을 손에 쥐고 어느 집에 문제가 생기면 나타나서 한 방에 평정하곤 했다.경성에서 정실 황후의 큰 딸인 공주도 감히 증조마님의 위세를 따라올 수 없었다.그런 증조마님은 잘못을 감쌌다.주씨 집안 사람이면 증조마님의 직계든 아니든 무조건 감싸줬다.주씨 집안이 무슨 일을 일으키든지 그녀가 전부 싸고 돌았다.몇 년 전에 인간이 덜 된 손자가 있었는데 밖에서 사람을 때려죽여 상대가 관가에 고발하려고 한 일이 있었다. 증조마님이 나서서 제압하더니 한 푼도 배상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맞아 죽은 사람의 가족이 주씨 집안의 체면을 상하게 했다며 와서 사죄까지 하게 만들었다.이 사건은 관가에 가지 않고 피해를 입은 사람 가족은 죽은 사람이 재수없게 자기가 넘어져서 죽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으며, 야반도주로 경성을 떠났다. 주씨 집안의 보복이 두려워서 였다. 이 일은 철저하게 이루어져 밖에는 당연히 한마디 소문도 새어 나가지 않았다.증조마님은 영예를 즐기는 사람이다. 집안 자식과 조카에게 절을 받고, 매년 생일 주부로 돌아와 바닥에 무릎 꿇은 시커먼 사람들의 무리와 그들의 입술이 모두 한결같이 증조마님의 만수무강을 비는 것을 듣고, 기쁨과 희열을 느꼈다. 증조마님의 한창때는 영화로웠고, 시끌벅적하게 사람들에 둘러 쌓여 지내는 게 익숙해서 비록 월미암에 있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문전성시를 이뤘다. 경성의 귀부인들
주재상의 선포주재상은 차가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봤다. 방금 들어 올 때 그렇게 열렬하게 비난을 퍼붓더니 지금 그가 자리에 앉자 아무도 말이 없다.주재상이 증조마님을 향해, “어머님 이 일 참 잘 하셨습니다. 모두를 오라 하셔서 제가 사람을 시켜 통지하는 수고를 덜었으니 말입니다. 마침 여러분들 앞에서 몇 마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증조마님은 여전히 노한 얼굴로 주재상의 말을 듣고 언짢은 기분이 들어 날카로운 목소리로: “서둘지 마라, 여기 계신 분들은 다 너보다 연장자이니, 저분들의 말씀부터 들어라.”주재상은 두 손을 소매 속에 넣고 냉정하게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몇 마디 안되고 오늘 여러분 모두 무슨 노소와 귀천 따위 따지지 않으실 겁니다. 앉아서 말씀하시는,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도 저보다 백발이 많지는 않군요. 누가 편히 지내고 누가 용을 쓰고 일하는지 일목요연 합니다. 오늘부터 주씨 성을 가진 자손이면 조정에서 직임을 맡을 시 반드시 다른 관원들과 같이 이부의 심사를 받을 것이며,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일률적으로 걸러내 사직서를 받고 쫓아낼 것으로 절대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입니다.”이 말이 떨어지자 대청 사람들이 전부 냄비에서 물이 끓어 넘치듯 했다.주씨 집안의 분가마다 조정에 직임을 맡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나라를 짊어질 만한 대들보, 즉 진정 재능이 있는 자도 적지 않다. 당연히 이 사람들은 모두 주재상이 선발한 것으로 주씨 가문이란 나무의 큰 몸통이 그래서 이렇게 뿌리를 깊이 박을 수 있는 것이다. 노마님의 좋은 게 좋은 거란 싸고돌기 때문이 아니고 주재상의 실력 때문에 지금의 주씨 가문이 번성한 것이다.하지만 주씨 집안의 일부 관원은 자리만 차지라고 국록을 받아 먹고 있는데, 커다란 각 관아에 공무를 핑계로 약간의 명성과 권력에 기대 봉록은 도리어 적지 않게 받아 먹는다.주재상 밑에도 진짜 능력 있는 사람은 몇 안된다. 이 모든 것은 증조부인이 제멋대로 원칙 없이
주재상과 어머니의 독대증조마님은 오늘 존귀하게 차려 입고 있었는데, 금은사를 엇갈리게 해서 자손 번성을 비는 박쥐 도안 구름무늬 비단 의상을 입고, 목에는 둥글고 광택이 좋은 귀한 진주목걸이를 걸었는데 이 진주는 궁중의 태후가 한 것보다 알이 굵고 둥글며 윤이 났다. 이는 증조마님의 위치가 태후 소씨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자만의 표시다.증조마님의 앉은 품세는 여전히 단정하고 고귀하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어깨는 뒤로 젖히고 목은 길게 늘인 채 두 손은 의자 팔걸이에 놓여 있는 것이, 그렇게 단아하고 장중한 자태로 흐릿한 문밖을 바라는데 눈빛이 막막하다.그런데 주재상의 두 손은 소매속에 숨겨져 있어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장기 두는 사람을 지켜보는 동네 노인 같은데 등은 약간 굽었고, 어깨는 처졌는데 눈빛만은 형형해서 역시 바깥을 보고 있다. 바깥에 어떤 귀신이 있던지 감히 숨을 수 없는 그런 눈빛이다.“너는 어째서 네 어미를 이리 대하느냐? 나는 너를 양육하고 길러냈는데 너는 어째서 이렇게 불효하는 것이냐?”결국 증조마님이 먼저 입을 열었는데 원한이 가득하다.“불효라?” 주재상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증조마님에게, “지난 세월간 아들이 충분히 효도하지 않았습니까? 어머니가 말씀 하시는 대로 아들이 다 했습니다. 그동안 바람이 필요하면 바람을 얻고, 비가 필요하면 비를 얻으셨지요, 매일 왕래한 식객만도 열이 넘고 어머니의 존귀와 영예에 뭐 하라도 부족한 적이 있으셨습니까?”증조마님이 냉소를 지으며,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네가 준 게 아니야.”“제가 만들어 드린 게 아니면 누가 드렸습니까? 당신은 바깥사람이, 주부의 사람이 전부 당신을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라고 생각하는 줄 아십니까?” 주재상이 담담하게 얘기했다.“넌 어미에게 보복하고 있어, 세상에 너 같은 아들은 없어.” 증조마님이 열 받았다.주재상이 고개를 저으며, “당신에게 보복하는 거라면 지금까지 기다릴 필요 없었어요.”“그럼 왜 이러는 거냐?” 증조부인이 주재상을 보고 실망한 듯 고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