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황자의 상태희상궁이 위로하며: “팔황자는 분명 괜찮으실 겁니다. 지나치게 생각하지 마시고 어서 주무세요.”원경릉은 다시 누울 수 밖에 없는 게 아니면 희상궁에게 잔소리를 계속 듣는다.머리속이 복잡해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하지만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희상궁이 원경릉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왕비마마, 어서 일어나세요. 궁에서 사람이 왔어요.”원경릉은 몽롱한 상태로 눈을 뜨고 궁에서 사람이 왔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얼른 일어나 한 손으로 상궁의 손을 잡고, “팔황자가……”희상궁은 원경릉의 입을 막고 작은 소리로: ‘쉬,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목여태감이 왔습니다. 황제폐하께서 어서 입궁하라고 하셨다는 군요.”원경릉의 얼굴색이 변하며, “팔황자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게 틀림없어.” 희상궁과 녹주가 들어와 옷 입는 것을 시중들며 간단히 하나로 머리를 틀어 올리고 날씨가 추우니 희상궁이 옷장에서 바람막이를 꺼내 원경릉에게 덮어주자 바로 길을 나섰다.목여태감은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원경릉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왕비마마, 황제 폐하께서 어서 입궁하라고 하십니다.”원경릉이: “팔황자의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닌가?”목여태감이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습니다.”원경릉도 서둘러: “가자.”원경릉은 어젯밤 자기에게 약이 없음을 봤다. 약 상자 안에는 유산방지제 외에 감기약과 가벼운 외상 연고, 항생제 몇 알이 고작으로 중상을 입은 사람에겐 이건 거의 아무 효과도 없다.하늘이 밝아 오기도 전에 온 하늘은 짙푸른 색으로 하늘 끄트머리가 희끄무레한 것이 경성 전체가 고요하고 적막해서 약간 무섭기까지 하다.희상궁은 원경릉과 같이 가며 작은 목소리로: “왕비마마, 확신이 없을 땐, 절대로 치료 하시면 안됩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황후마마는 일체의 책임을 전부 왕비께 돌리 것이 틀림없습니다.”원경릉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어요.”그녀는 마음이 어지럽다.마음이 어지러운 원인은 이 일의 배후를 꿰뚫어볼 방법
팔황자에게 수혈을?그 소년은 얼굴이 맑고 깨끗해서 만약 얼굴색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하지 않다면 마치 잠들어 있는 줄 알 정도다.팔황자의 입가에 검붉은 피를 닦은 흔적이 있는데 아마도 피를 토했을 것이다.조어의가 작은 소리로: “왕비마마, 팔황자는 먼저 심맥이 부서지고 그 다음에 심장에 자상을 입어 자금단을 드셨지만 상황이 매우 좋지 못합니다. 호흡이 갈수록 느려지세요.”몇 명의 어의가 속수무책으로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미 포기했음을 알 수 있다. 황제와 황후는 모두 밖에 있는데 여기서 숨이 끊어지면 부모가 자식을 앞서 보내는 꼴이 된다.원경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왔다.마차를 탈 때 이미 몰래 약 상자를 꺼내 바닥에 놓고 마차에서 내릴 때 약 상자를 들고 내렸다.지금 약 상자를 열어보니 새로운 약이 몇 개 보이는데 혈액응고제와 강심제다.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심장이 뛰는 것을 확인하고, 내출혈과 내상이 있어 혈흉이 형성되었기에 가슴에 흉곽천자를 통해 피를 배출하니 팔황자의 호흡이 다소 부드러워졌다.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안 좋아서 팔황자는 외상 외에도 내상으로 인한 출혈이 있다. 지금은 팔황자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관건은 바로 수혈이다.하지만 수혈로 상황이 안정될지 여부는 알 수 없는 것이, 원경릉은 출혈이 이미 멈췄는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그녀는 밖으로 나가 명원제에게 수혈이 필요하다는 말을 꺼냈다.처음이 아니라 제왕도 이해했다.원경릉은 혈액형 검사지를 꺼내 확인하니 제왕은 맞지 않고, 자리에 있던 사왕야 우문위도 검사에 응했지만 여전히 맞지 않았다.기왕, 손왕 모두 같이 와서 해봤으나 검사 결과 원경릉은 여전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황후가 참지 못하고, “넌 왜 계속 고개를 흔드느냐? 사람을 못 살게 구는 거 아니냐? 저들은 형제인데 어째서 맞지 않는 거야? 저들의 피를 같이 떨어뜨리면 서로 섞일 게 분명한데.”원경릉은 황후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어, “마마, 제가 사람을 못 살게 구는 것
구황자(九皇子)가 고개를 떨구고 천천히 걸어나갔다. 원경릉은 이 결정적인 순간에 황후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축 처진 어깨와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원경릉의 심금을 울렸다. 그황자는 정말 형을 아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황후가 그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도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사태가 심각합니다. 형제끼리는 피가 같을 수 있으니 한번 검사를 해보겠습니다.”원경릉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을 듣고 명원제가 원경릉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구황자는 돌아와서 원경릉을 바라보며 “수고하세요. 다섯째 형수님.”이라고 말했다.그는 변성기가 막 지나서 그런지 목소리가 유난히 낮았다.원경릉은 검사를 하고 조용히 결과를 기다렸다. “됐다! 적합합니다!” 원경릉이 기쁜 목소리로 소리쳤다.황후는 숨이 가빠지는 듯 내키지 않는 눈빛으로 구황자를 봤다. “그럼 빨리 데리고 가지 않고 뭐 하느냐!” 명원제가 말했다.원경릉은 구황자를 보며 “아홉째, 갑시다!”라고 말했다.황자가 따라 들어가자 황후가 뒤따라 들어왔다. 구황자의 혈관에서 나온 피는 혈관을 통해 팔황자(八皇子)의 혈관으로 들어갔다. 원경릉은 명원제에게 “아홉째가 어려서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부황께서 시위들을 불러주시면 제가 혈액 검사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이 말을 들은 황후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내 아들은 천자의 핏줄인데 어찌 다른 사람의 피를 쓴다는 것이야?”원경릉은 명원제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소인이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목숨이 달린 문제이니 빨리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그녀의 태도에 황후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다른 사람의 피로 내 아들을 살릴 수 있다고 장담하느냐!”원경릉은 잠시 침묵하더니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잘 모르면서 어떻게 황실의 혈통에 다른 이의 피를 섞을 수 있다는 것이야?” 황후는 분노했다.“황후마마 이건 황실의 혈통에 관한 일이 아닙니다. 이건 그냥……”“그럴 필요 없어
태후와 태상황에게는 통지하지 않았지만 이 소식은 태상황의 귀에 금방 들어갈 것이고, 아마 태후만 이 소식을 모를 것이다.명원제는 우문호에게 구사를 심문하라고 명령하자 황후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가 범인이다.”명원제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원경릉은 잠시 밖으로 나와 편전에서 잠시 쉬었다.편전에 걸려있는 풍경화를 보며 그녀는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림 안에는 끝없이 넓은 들판의 풍경이 있었다. 그녀는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림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있었다. 이런 그림을 그리다니 재능이 충만한 아이다.원경릉은 그가 왜 이런 사고를 당했는지, 구사가 왜 그에게 손찌검을 했는지, 혹시 구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런 게 아닌지 머릿속이 복잡했다.많은 풍경화 가운데 그녀의 눈에 띈 것은 자화상이었다. 그 자화상 옆에는 작게 글씨가 적혀있었다.이 자화상에는 얼굴은 아주 길게 그려져 있으며 눈은 얼굴의 절반 정도 차지하게 크게 그려져 있었다. 둥근 눈에는 먹이 찍혀있었는데 그 모습이 약간 이상했다.‘좀 이상한데……’원경릉은 팔황자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을 했다.그러자 갑자기 제왕이 들어와 그녀의 옆에 서서 그림을 같이 바라보았다.“그의 눈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을 크게 그리면 더 잘 볼 수 있다고 말했어요.” 제왕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눈이 나쁘다고요?”“네.”“왜죠?”원경릉이 물었다.제왕은 고개를 저었다.“누가 알겠습니까? 어의가 보니 모든 게 정상이라고 했는데, 그는 항상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말했습니다.”‘시력이 안 좋은가? 도대체 명화전(明华殿)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우문호는 경조부로 돌아가서 구사를 심문했다. 구사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그런 구사의 모습의 화가 나서 주먹을 휘저었다.“말해! 이 자식아! 진짜 죽고 싶은 거야?”구사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고 증
구사는 정신이 멍해졌다.“제기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본왕의 죄를 네가 뒤집어쓴다고? 무슨 소리야?”구사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왕비가 임신만 안 했어도……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네 죄를 뒤집어쓰겠어?”구사는 한 손으로 우문호의 옷깃을 잡아당겨 그의 얼굴에 입술에 가득한 피를 뿜었다.“우문호! 네가 미쳤지? 네가 아무리 참지 못하더라도, 소빈(苏嫔)이 네 부황의 여인인 것을 알았어야지. 네 목숨이 몇 개라도 되는 거야? 여덟째가 그걸 봤다고, 그에게 손을 대? 여덟째는 네 동생이야!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어?”우문호와 구사는 몸싸움을 했고, 그 도중에 탁자가 부서졌다. 지독한 몸싸움 끝에 구사의 얼굴에는 피가 묻었다. 우문호는 부서진 나무판자로 그를 때리려다가 넘어졌다.구사는 차가운 목소리로 “꼬숩다 꼬수워!” 소리쳤다.우문호는 아픈듯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구사를 노려보았다.“너…… 나랑 알고 지낸지 얼마나 됐지?”“알몸으로 엉덩이 씰룩거리며 걸을 때부터.” 구사가 말했다.“아직도 그렇게 나를 모르느냐?” 우문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예전에는 안 이랬지…… 누가 알았겠어? 네가 그렇게 여색을 밝히는지?” 구사가 콧방귀를 뀌었다.“그래 그렇다고 치자. 근데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래?” 우문호가 그를 보며 물었다.구사는 욕지거리를 했다.“내 처형이 될 사람을 생각해서? 만약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 작은 사과는 울다 죽을 것이야.”“작은 사과가 뭔 개소리야?” 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렸다.“개소리? 네가 하는 말이 개소리지.” 구사가 그를 보며 이를 갈았다.우문호는 의자에 걸 터 앉아 그를 보았다.“네가 직접 봤어? 내가 여덟째에게 손찌검을 하는걸?”구사가 물었다.“네가 검을 버리고 소빈을 데리고 가는 것을 봤지.” 우문호가 말했다.“그럴리가? 난 바로 들어왔어.”우문호는 비명 소리를 듣자마자 곧장 뛰어들어갔다.“내가 검을 버리고 도망갔는데 성 문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말장난을 하는 거
“궁중의 금위군(禁衛軍) 중에 어전 시위를 제외하고 모두 나와 같은 청색 비단옷을 입었어.” 우문호는 씩씩하게 말했다.“그렇네……”구사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너는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우문호가 그를 노려봤다.“그럼 어떻게 해. 내 결백을 밝혀줘.” 구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우문호는 뒷짐을 지고 천천히 방 안을 두 바퀴 돌았다. ‘이 멍청한 구사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너는 일단 아무 말도 하지 마. 내가 부황께 말할게. 부황께서는 분명 화를 내겠지만…… 나는 너의 부친을 찾아가서 사정할게. 너는 이틀 동안 소빈(苏嫔)을 조사해 봐. 소빈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을 거야.”“그 여자가 미쳤다고 불게?” 구사가 말했다. “그리고 생각해 봐. 소빈에게 그 남자가 누구인지 말하라고 하면 순순히 말하겠어? 황제를 두고 바람을 피웠는데? 그걸 황제께서 받아들일 것 같아?”자신의 여인이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알고 무너지지 않은 남자가 있을까. 그리고 소빈과 관련된 궁중의 사람들 소빈궁의 덕비마마까지 모두 재앙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우문호는 이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일은 어쩌면 덕비마마(德妃娘娘)와 관련 있을 수 있었다. 덕비마마는 자식이 없어서 그런지 그가 어릴 때 그를 매우 예뻐하였다. 자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부황의 여인으로서 줄곧 부황의 총애를 받았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데는 덕비를 감시하지 않은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그렇다면 덕상궁(德尚宫)의 사람들을 비롯해 얼마나 많은 목숨이 희생되어야 하는가.이런 생각을 하지 우문호는 머리가 아팠다.“됐어. 우선 여기 있어. 먹을 건 충분하니까 당분간 여기서 지내.” 우문호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구사는 자기의 뺨을 세차게 세 대 갈기며 하늘을 보고 탄식했다. ‘멍청하다! 이런 일에 휘말리다니!’우문호는 먼저 구사의 부친을 찾아갔다. 구사의 부친은 이미 이 소식을 듣고 입궁하려고 했다가 팔황자의 생사가 확실하지 않았기에
구후작은 입궁하자마자 크게 울며 황상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는 엎드려 명원제에게 이 사건을 확실하게 조사를 한 다음에 일을 처리해 달라고 했다.구후작은 명원제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다. 바닥에 엎드린 후작을 보자 명원제는 마음이 약해졌다.우문호는 후작이 돌아간 후 다시 입궁해 구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말을 들은 황제는 크게 노했지만 구후작이 생각나서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우문호에게 서둘러 조사를 해서 진범을 찾으라고 했다.명원제와 우문호의 대화를 들은 기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구사는 부황님을 모시는 시위로 부황님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지. 그리고 그와 가장 깊은 사이는 다섯째인 너잖아. 만약 구사가 죄를 뒤집어쓰려고 했다면 분명 부황님 또는 너와 관련이 있을 텐데.”“형님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네요. 구사가 무슨 부황님을 감싸려고 합니까? 설마 형님은 부황께서 여덟째를 다치게 했다고 의심하는 겁니까? 생각을 좀 하고 말을 하시죠?”우문호가 차갑게 말했다.“다섯째야. 내 뜻을 오해나는 것 같구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방법이 있다.” 기왕은 웃었다.둘의 싸움을 보자 명원제는 침울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여기서 말싸움하지 말고 나가거라!” 명원제가 소리쳤다.기왕의 안색이 안 좋아지더니 “부황, 소인이 할 말이 아직 남았습니다.”라고 말했다.“말해!” 명원제는 성가시다는 듯 그를 보았다.기왕은 앞으로 한걸음 나왔다.“부황. 명화전에서 태감이 죽는 것이 무슨 대수입니까? 여덟째가 다쳤습니다. 구사는 피가 떨어지는 장검을 들고 있었고 다섯째가 들어가 구사를 잡았습니다. 그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럼 범인은 3명 중 한 명이며, 만약 구사가 아니라면 다섯째 아니면 팔황제 자신이 자살을 하려고 했다는 건데……”명원제는 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명화전에 그들 셋 밖에 없는걸 어떻게 알았어? 네가 거기 있었어?”“소인의 추측일 뿐입니다……” 기왕은 명원제의 매서운 눈빛에 겁을 먹고 급히
기왕의 거센 주먹에 우문호의 얼굴이 부어올랐다. 하지만 그는 기왕의 코와 다리를 때렸기에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문호가 기왕보다 더 많이 맞은 것처럼 보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명원제가 기왕이 우문호를 때리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는 것이다.명원제의 무서운 눈빛이 기왕을 향하자 우문호는 뻘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부황! 소인의 잘못입니다. 소인이 즉시 여덟 동생의 사건을 조사하고 사건을 밝히고 그 후에 형님께 사죄하겠습니다!”우문호가 말했다.“너…… 너!” 기왕의 얼굴이 보라색으로 변했다. “네 죄를 인정하지 못할까!”우문호는 그의 두 손을 맞잡고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맞받아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며 무릎을 꿇었다.기왕은 우문호의 두꺼운 낯짝이 이렇게 두꺼운지 몰랐다. 기왕은 화가 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를 하는 태도는 좋았지만 사과를 하는 우문호의 묘한 눈빛이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다.명원제는 우문호를 향해 걸어갔다.“아직도 여기서 무엇하느냐 빨리 가서 조사해!”“예! 알겠습니다!” 우문호가 일어섰다.기왕은 노발대발하며 “부황, 다섯째를 믿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닥쳐!” 명원제는 분노로 얼굴이 검붉어졌다. “여기서 무릎 꿇고 있는다고 뭐가 밝혀지기라도 해?”기왕은 부황이 화를 내는 것을 보고 믿을 수 없어서 부황이 돌아서서 들어가는 뒷모습만 빤히 보았다.부황이 궁으로 들어가자 우문호도 몸을 돌려 떠났다. 우문호의 당당한 뒷모습을 보며 기왕은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네가 어떻게 구사를 구해줄지 두고 보겠어.’우문호가 기왕을 때린 것은 결코 순간적인 충동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더이상 기왕을 참을 수 없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아내인 원경릉이 여덟째의 목숨을 구하려고 하고 있고, 부황은 이런 중요한 시기에 벌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나니 부황의 화도 거의 사그라들었다. 기껏해야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면 될 일이었다. 우문호는 현비(贤妃)의 궁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