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황자 사건“아바마마께서 사건을 내게 주셔서 지금 구사는 잠시 경조사 관아에 압송되어 있고, 난 그에게 뭐라고 물어봐야 할지 아직 모르겠어.” 우문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원경릉이: “팔황자와 제왕은 한 살 남짓 차이인데 제왕은 일찌감치 친왕으로 봉해져서 친왕부를 하사 받고 나와 사는데 왜 팔황자는 지금까지 왕으로 봉해지지도 않고 친왕부도 안 받은 거야? 그리고 내 기억에 팔황자는 아직 결혼도 안 했지?”성년이 된 황자는 후궁에 머물 수 없다.우문호가: “아바마마께서 사실 이미 여덟째를 녹왕으로 봉하는 성지를 가지고 계시지만 여덟째는 머리가 좀 총명하지 못해서.”“총명하지 못해?”“그러니까….”우문호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여덟째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이랑 말하는 걸 싫어하고 괴팍한데다 글자도 모르고 그림만 좋아해서 어쩔 땐 종일 그림만 그려. 그런데 여덟째가 나랑 일곱째는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우리한테 들러붙곤 했지. 오늘 여덟째가 호흡조차 제대로 없는 모습을 보니 너무 두려운 생각이 들어.”원경릉이 증상을 들어보니 자폐증 같다.자폐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자신의 세계가 있다. 하지만 IQ는 정상이고 일부는 정상인보다 IQ가 상당히 높기도 하지만 자신을 자신의 세계 안에 가둬 둔다.원경릉은 우문호의 손을 꼭 잡고, 조금은 창백하고 무력하게 위로하며, “너무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네가 구해 줄 수 있어?” 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봤다.원경릉이 약 상자를 꺼내 보니 약 상자 안에는 여전히 유산방지제 같은 게 있어 고개를 저으며, “미안해, 나도 방법이 없어.”우문호가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우문호가 일어서며, “옷 갈아 입으러 왔어. 입궁해서 여덟째를 지켜야지.”“나도 같이 갈게.” 원경릉이 말했다.“아냐, 넌 자. 괜찮아.” 우문호가 원경릉을 꼭 끌어 안고, “넌 꼭 잘 있어야 해, 무슨 실수도 생겨선 안돼.”원경릉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알았어.”우문호는 가서 목욕하고 옷을 갈아
팔황자의 상태희상궁이 위로하며: “팔황자는 분명 괜찮으실 겁니다. 지나치게 생각하지 마시고 어서 주무세요.”원경릉은 다시 누울 수 밖에 없는 게 아니면 희상궁에게 잔소리를 계속 듣는다.머리속이 복잡해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하지만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희상궁이 원경릉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왕비마마, 어서 일어나세요. 궁에서 사람이 왔어요.”원경릉은 몽롱한 상태로 눈을 뜨고 궁에서 사람이 왔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얼른 일어나 한 손으로 상궁의 손을 잡고, “팔황자가……”희상궁은 원경릉의 입을 막고 작은 소리로: ‘쉬,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목여태감이 왔습니다. 황제폐하께서 어서 입궁하라고 하셨다는 군요.”원경릉의 얼굴색이 변하며, “팔황자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게 틀림없어.” 희상궁과 녹주가 들어와 옷 입는 것을 시중들며 간단히 하나로 머리를 틀어 올리고 날씨가 추우니 희상궁이 옷장에서 바람막이를 꺼내 원경릉에게 덮어주자 바로 길을 나섰다.목여태감은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원경릉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왕비마마, 황제 폐하께서 어서 입궁하라고 하십니다.”원경릉이: “팔황자의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닌가?”목여태감이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습니다.”원경릉도 서둘러: “가자.”원경릉은 어젯밤 자기에게 약이 없음을 봤다. 약 상자 안에는 유산방지제 외에 감기약과 가벼운 외상 연고, 항생제 몇 알이 고작으로 중상을 입은 사람에겐 이건 거의 아무 효과도 없다.하늘이 밝아 오기도 전에 온 하늘은 짙푸른 색으로 하늘 끄트머리가 희끄무레한 것이 경성 전체가 고요하고 적막해서 약간 무섭기까지 하다.희상궁은 원경릉과 같이 가며 작은 목소리로: “왕비마마, 확신이 없을 땐, 절대로 치료 하시면 안됩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황후마마는 일체의 책임을 전부 왕비께 돌리 것이 틀림없습니다.”원경릉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어요.”그녀는 마음이 어지럽다.마음이 어지러운 원인은 이 일의 배후를 꿰뚫어볼 방법
팔황자에게 수혈을?그 소년은 얼굴이 맑고 깨끗해서 만약 얼굴색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하지 않다면 마치 잠들어 있는 줄 알 정도다.팔황자의 입가에 검붉은 피를 닦은 흔적이 있는데 아마도 피를 토했을 것이다.조어의가 작은 소리로: “왕비마마, 팔황자는 먼저 심맥이 부서지고 그 다음에 심장에 자상을 입어 자금단을 드셨지만 상황이 매우 좋지 못합니다. 호흡이 갈수록 느려지세요.”몇 명의 어의가 속수무책으로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데 이미 포기했음을 알 수 있다. 황제와 황후는 모두 밖에 있는데 여기서 숨이 끊어지면 부모가 자식을 앞서 보내는 꼴이 된다.원경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왔다.마차를 탈 때 이미 몰래 약 상자를 꺼내 바닥에 놓고 마차에서 내릴 때 약 상자를 들고 내렸다.지금 약 상자를 열어보니 새로운 약이 몇 개 보이는데 혈액응고제와 강심제다.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심장이 뛰는 것을 확인하고, 내출혈과 내상이 있어 혈흉이 형성되었기에 가슴에 흉곽천자를 통해 피를 배출하니 팔황자의 호흡이 다소 부드러워졌다.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안 좋아서 팔황자는 외상 외에도 내상으로 인한 출혈이 있다. 지금은 팔황자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관건은 바로 수혈이다.하지만 수혈로 상황이 안정될지 여부는 알 수 없는 것이, 원경릉은 출혈이 이미 멈췄는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그녀는 밖으로 나가 명원제에게 수혈이 필요하다는 말을 꺼냈다.처음이 아니라 제왕도 이해했다.원경릉은 혈액형 검사지를 꺼내 확인하니 제왕은 맞지 않고, 자리에 있던 사왕야 우문위도 검사에 응했지만 여전히 맞지 않았다.기왕, 손왕 모두 같이 와서 해봤으나 검사 결과 원경릉은 여전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황후가 참지 못하고, “넌 왜 계속 고개를 흔드느냐? 사람을 못 살게 구는 거 아니냐? 저들은 형제인데 어째서 맞지 않는 거야? 저들의 피를 같이 떨어뜨리면 서로 섞일 게 분명한데.”원경릉은 황후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어, “마마, 제가 사람을 못 살게 구는 것
구황자(九皇子)가 고개를 떨구고 천천히 걸어나갔다. 원경릉은 이 결정적인 순간에 황후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축 처진 어깨와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원경릉의 심금을 울렸다. 그황자는 정말 형을 아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황후가 그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도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사태가 심각합니다. 형제끼리는 피가 같을 수 있으니 한번 검사를 해보겠습니다.”원경릉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을 듣고 명원제가 원경릉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구황자는 돌아와서 원경릉을 바라보며 “수고하세요. 다섯째 형수님.”이라고 말했다.그는 변성기가 막 지나서 그런지 목소리가 유난히 낮았다.원경릉은 검사를 하고 조용히 결과를 기다렸다. “됐다! 적합합니다!” 원경릉이 기쁜 목소리로 소리쳤다.황후는 숨이 가빠지는 듯 내키지 않는 눈빛으로 구황자를 봤다. “그럼 빨리 데리고 가지 않고 뭐 하느냐!” 명원제가 말했다.원경릉은 구황자를 보며 “아홉째, 갑시다!”라고 말했다.황자가 따라 들어가자 황후가 뒤따라 들어왔다. 구황자의 혈관에서 나온 피는 혈관을 통해 팔황자(八皇子)의 혈관으로 들어갔다. 원경릉은 명원제에게 “아홉째가 어려서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부황께서 시위들을 불러주시면 제가 혈액 검사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이 말을 들은 황후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내 아들은 천자의 핏줄인데 어찌 다른 사람의 피를 쓴다는 것이야?”원경릉은 명원제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소인이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목숨이 달린 문제이니 빨리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그녀의 태도에 황후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다른 사람의 피로 내 아들을 살릴 수 있다고 장담하느냐!”원경릉은 잠시 침묵하더니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잘 모르면서 어떻게 황실의 혈통에 다른 이의 피를 섞을 수 있다는 것이야?” 황후는 분노했다.“황후마마 이건 황실의 혈통에 관한 일이 아닙니다. 이건 그냥……”“그럴 필요 없어
태후와 태상황에게는 통지하지 않았지만 이 소식은 태상황의 귀에 금방 들어갈 것이고, 아마 태후만 이 소식을 모를 것이다.명원제는 우문호에게 구사를 심문하라고 명령하자 황후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가 범인이다.”명원제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원경릉은 잠시 밖으로 나와 편전에서 잠시 쉬었다.편전에 걸려있는 풍경화를 보며 그녀는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림 안에는 끝없이 넓은 들판의 풍경이 있었다. 그녀는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림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있었다. 이런 그림을 그리다니 재능이 충만한 아이다.원경릉은 그가 왜 이런 사고를 당했는지, 구사가 왜 그에게 손찌검을 했는지, 혹시 구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런 게 아닌지 머릿속이 복잡했다.많은 풍경화 가운데 그녀의 눈에 띈 것은 자화상이었다. 그 자화상 옆에는 작게 글씨가 적혀있었다.이 자화상에는 얼굴은 아주 길게 그려져 있으며 눈은 얼굴의 절반 정도 차지하게 크게 그려져 있었다. 둥근 눈에는 먹이 찍혀있었는데 그 모습이 약간 이상했다.‘좀 이상한데……’원경릉은 팔황자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을 했다.그러자 갑자기 제왕이 들어와 그녀의 옆에 서서 그림을 같이 바라보았다.“그의 눈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을 크게 그리면 더 잘 볼 수 있다고 말했어요.” 제왕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눈이 나쁘다고요?”“네.”“왜죠?”원경릉이 물었다.제왕은 고개를 저었다.“누가 알겠습니까? 어의가 보니 모든 게 정상이라고 했는데, 그는 항상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말했습니다.”‘시력이 안 좋은가? 도대체 명화전(明华殿)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우문호는 경조부로 돌아가서 구사를 심문했다. 구사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그런 구사의 모습의 화가 나서 주먹을 휘저었다.“말해! 이 자식아! 진짜 죽고 싶은 거야?”구사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고 증
구사는 정신이 멍해졌다.“제기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본왕의 죄를 네가 뒤집어쓴다고? 무슨 소리야?”구사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왕비가 임신만 안 했어도……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네 죄를 뒤집어쓰겠어?”구사는 한 손으로 우문호의 옷깃을 잡아당겨 그의 얼굴에 입술에 가득한 피를 뿜었다.“우문호! 네가 미쳤지? 네가 아무리 참지 못하더라도, 소빈(苏嫔)이 네 부황의 여인인 것을 알았어야지. 네 목숨이 몇 개라도 되는 거야? 여덟째가 그걸 봤다고, 그에게 손을 대? 여덟째는 네 동생이야!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어?”우문호와 구사는 몸싸움을 했고, 그 도중에 탁자가 부서졌다. 지독한 몸싸움 끝에 구사의 얼굴에는 피가 묻었다. 우문호는 부서진 나무판자로 그를 때리려다가 넘어졌다.구사는 차가운 목소리로 “꼬숩다 꼬수워!” 소리쳤다.우문호는 아픈듯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구사를 노려보았다.“너…… 나랑 알고 지낸지 얼마나 됐지?”“알몸으로 엉덩이 씰룩거리며 걸을 때부터.” 구사가 말했다.“아직도 그렇게 나를 모르느냐?” 우문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예전에는 안 이랬지…… 누가 알았겠어? 네가 그렇게 여색을 밝히는지?” 구사가 콧방귀를 뀌었다.“그래 그렇다고 치자. 근데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래?” 우문호가 그를 보며 물었다.구사는 욕지거리를 했다.“내 처형이 될 사람을 생각해서? 만약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 작은 사과는 울다 죽을 것이야.”“작은 사과가 뭔 개소리야?” 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렸다.“개소리? 네가 하는 말이 개소리지.” 구사가 그를 보며 이를 갈았다.우문호는 의자에 걸 터 앉아 그를 보았다.“네가 직접 봤어? 내가 여덟째에게 손찌검을 하는걸?”구사가 물었다.“네가 검을 버리고 소빈을 데리고 가는 것을 봤지.” 우문호가 말했다.“그럴리가? 난 바로 들어왔어.”우문호는 비명 소리를 듣자마자 곧장 뛰어들어갔다.“내가 검을 버리고 도망갔는데 성 문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말장난을 하는 거
“궁중의 금위군(禁衛軍) 중에 어전 시위를 제외하고 모두 나와 같은 청색 비단옷을 입었어.” 우문호는 씩씩하게 말했다.“그렇네……”구사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너는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우문호가 그를 노려봤다.“그럼 어떻게 해. 내 결백을 밝혀줘.” 구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우문호는 뒷짐을 지고 천천히 방 안을 두 바퀴 돌았다. ‘이 멍청한 구사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너는 일단 아무 말도 하지 마. 내가 부황께 말할게. 부황께서는 분명 화를 내겠지만…… 나는 너의 부친을 찾아가서 사정할게. 너는 이틀 동안 소빈(苏嫔)을 조사해 봐. 소빈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을 거야.”“그 여자가 미쳤다고 불게?” 구사가 말했다. “그리고 생각해 봐. 소빈에게 그 남자가 누구인지 말하라고 하면 순순히 말하겠어? 황제를 두고 바람을 피웠는데? 그걸 황제께서 받아들일 것 같아?”자신의 여인이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알고 무너지지 않은 남자가 있을까. 그리고 소빈과 관련된 궁중의 사람들 소빈궁의 덕비마마까지 모두 재앙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우문호는 이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일은 어쩌면 덕비마마(德妃娘娘)와 관련 있을 수 있었다. 덕비마마는 자식이 없어서 그런지 그가 어릴 때 그를 매우 예뻐하였다. 자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부황의 여인으로서 줄곧 부황의 총애를 받았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데는 덕비를 감시하지 않은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그렇다면 덕상궁(德尚宫)의 사람들을 비롯해 얼마나 많은 목숨이 희생되어야 하는가.이런 생각을 하지 우문호는 머리가 아팠다.“됐어. 우선 여기 있어. 먹을 건 충분하니까 당분간 여기서 지내.” 우문호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구사는 자기의 뺨을 세차게 세 대 갈기며 하늘을 보고 탄식했다. ‘멍청하다! 이런 일에 휘말리다니!’우문호는 먼저 구사의 부친을 찾아갔다. 구사의 부친은 이미 이 소식을 듣고 입궁하려고 했다가 팔황자의 생사가 확실하지 않았기에
구후작은 입궁하자마자 크게 울며 황상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는 엎드려 명원제에게 이 사건을 확실하게 조사를 한 다음에 일을 처리해 달라고 했다.구후작은 명원제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다. 바닥에 엎드린 후작을 보자 명원제는 마음이 약해졌다.우문호는 후작이 돌아간 후 다시 입궁해 구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말을 들은 황제는 크게 노했지만 구후작이 생각나서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우문호에게 서둘러 조사를 해서 진범을 찾으라고 했다.명원제와 우문호의 대화를 들은 기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구사는 부황님을 모시는 시위로 부황님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지. 그리고 그와 가장 깊은 사이는 다섯째인 너잖아. 만약 구사가 죄를 뒤집어쓰려고 했다면 분명 부황님 또는 너와 관련이 있을 텐데.”“형님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네요. 구사가 무슨 부황님을 감싸려고 합니까? 설마 형님은 부황께서 여덟째를 다치게 했다고 의심하는 겁니까? 생각을 좀 하고 말을 하시죠?”우문호가 차갑게 말했다.“다섯째야. 내 뜻을 오해나는 것 같구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방법이 있다.” 기왕은 웃었다.둘의 싸움을 보자 명원제는 침울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여기서 말싸움하지 말고 나가거라!” 명원제가 소리쳤다.기왕의 안색이 안 좋아지더니 “부황, 소인이 할 말이 아직 남았습니다.”라고 말했다.“말해!” 명원제는 성가시다는 듯 그를 보았다.기왕은 앞으로 한걸음 나왔다.“부황. 명화전에서 태감이 죽는 것이 무슨 대수입니까? 여덟째가 다쳤습니다. 구사는 피가 떨어지는 장검을 들고 있었고 다섯째가 들어가 구사를 잡았습니다. 그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럼 범인은 3명 중 한 명이며, 만약 구사가 아니라면 다섯째 아니면 팔황제 자신이 자살을 하려고 했다는 건데……”명원제는 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명화전에 그들 셋 밖에 없는걸 어떻게 알았어? 네가 거기 있었어?”“소인의 추측일 뿐입니다……” 기왕은 명원제의 매서운 눈빛에 겁을 먹고 급히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