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상궁이 매실탕을 들고 들어오자 원경릉은 목이 말랐는지 단숨에 그릇에 담겨있던 시큼한 매실탕을 들이켰다. “난 어쩜 이렇게 신 걸 잘 먹지?”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희상궁은 웃으며 “매운 것을 잘 먹으면 여자아이, 신 걸 잘 먹으며 남자아이라고 했습니다. 분명 뱃속에 세자가 들어 계신 겁니다.” 라고 말했다.원경릉은 빙그레 웃으며 “성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건강하게만 나와줬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했다.“맞습니다. 건강하게 나오는 게 가장 중요하죠.” 희상궁이 말했다.잠시 후, 원경병이 동그란 얼굴이 귀여운 샤오란을 데리고 들어왔다.샤오란은 겁에 질린 눈으로 원경병 뒤에 졸졸 쫓아오며 살짝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다 원경릉과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 모습이 마치 겁에 질린 토끼 같았다.“소인 왕비를 뵈어 영광입니다!” 샤오란이 앞으로 나와 절을 했다.“샤오란! 나하고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빨리 일어나서 앉아라.”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원경릉은 샤오란에게서 좋은 감정이 느껴졌다.‘원주도 이 소녀를 좋아했나 보군.’환하게 이를 드러내며 웃는 샤오란이 그녀를 쳐다보고는 “언니!” 라고 소리쳤다. 원경릉은 해맑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슬퍼졌다. ‘이렇게 아름답고 순수한 소녀가 늙은이에게 시집을 간다니……’원경릉은 원경병과 샤오란과 몇 마디를 대화를 나눈 후 속이 또 좋지 않아, 원경병에게 샤오란을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 그러나 샤오란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다시 들어왔다.“언니, 혹시 저 왕부에서 하루 묵어도 되겠습니까? 딱 하루 만요! 절대 막 돌아다니지 않을게요!”원경병은 놀란 얼굴로 “그건 안 돼. 형부가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어. 너는 후부 가서 자고 가.”라고 말했다.샤오란은 실망한 표정이었다.“그럼 하루만 머물러. 오랜만에 오순도순 얘기나 하자.” 원경릉은 샤오란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언니! 고맙습니다!” 샤오란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원경릉은 녹주에게 샤오
원경릉이 힘없이 그의 어깨에 기대며 “가지 마, 여기 있어.” 라고 말했다.“애교도 부릴 줄 알아?” 우문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볼에 뽀뽀를 했다.원경릉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문득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다시 머리에 떠올랐다.“나는 줄곧 우리 둘만의 세상을 보내고 싶었는데, 한 명이 더 생긴다니.”“둘만의 세상? 둘만의 세상이 뭔데?”“아이가 없는 너와 나를 말하는 거야.”“왕부에도 너랑 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원경릉은 눈을 치켜트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됐다. 설명해 봤자 내 입만 아프다.’저녁밥은 도저히 넘어가지 않았다. 다행히도 상선이 직접 국을 담아 보내주었다. 한 입 먹어보니 지난번과 똑같았다. 답답했던 속이 국을 들이 켜고 나니 속이 시원해졌다.우문호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상선을 보고 “도대체 이게 뭐죠? 제발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주세요.”라고 말했다.“절대 안 됩니다. 효과가 좋은 것에는 일정한 해로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태상황님은 왕비님이 아무것도 못 드시는 게 안타까워 이것을 보내시는 겁니다. 만약 밥을 잘 먹고 잘 지낸다면, 이걸 먹을 이유가 없습니다.”“안에는 야자 제비집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요? 해로운 게 하나도 없는데?”제비집이 별다른 좋은 점이 없다는 것은 그녀도 알지만 인체에 해로울 것까지는 없었다.“왕비께서는 고작 두 가지만 알아내신 겁니까?” 상선이 웃으며 물었다.“그리고 약간 감초 맛도 나고, 아닌가? 해열에 좋은 시호가 들어있나?”원경릉이 고개를 갸우뚱했다.우문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감초, 시후, 야자 즙, 제비집 이런 게 다 한 번에 들어갔다고? 맛없을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아냐 진짜 맛있어! 근데 먹고 나면 위가 아파.”원경릉이 답했다.“왕비님, 구토가 멈추면 저에게 꼭 알려주세요.” 상선이 웃으며 말했다.그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건곤전으로 돌아갔다.원경릉은 미간을 찌푸리고 “분명히 아주 이상한
“그만해! 지금 몇 시인데 그래! 나 차가운 물로 씻고 싶지 않아. 어의가 당부 한 말 잊은 거야?”우문호가 원경릉에게 버럭 했다. 우문호는 누워서 호흡을 천천히 조절하며 불끈 솟은 마음을 다잡았다. 옆에 있는 이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요괴이고 악마이며 만질 수도 없고 안을 수도 없는 사람이다.“아미타불! 관세음보살!”원경릉은 본래 우문호 놀리는 게 재밌어서 더 그를 자극해 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고 있는 우문호를 보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미타불!” 그는 계속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눈동자 색이 짙어지면서 손이 천천히 그녀의 등을 감싸자, 원경릉은 옆에 놓인 차 한 모금을 마신 후 싱글벙글 웃으며 눕더니 그를 보며 정색했다.“나를 건드리면 안 돼. 우리 사이에는 삼팔선, 아미타불이 계시니까.”우문호는 욕지거리를 해대며 일어나 옷을 걸치고는 신발을 신고 바닥이 울릴 정도로 쿵쿵 발을 내디디며 나갔다.“왕야 또 냉수욕을 하러 가십니까?” 보초를 서다가 돌아온 서일이 그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 “쓸데없는 소리!” 우문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서일은 어깨를 으쓱하며 “내가 기생을 구해준다는데도 싫다고 하시니 누굴 탓하겠어?”라며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우문호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이상한 온천 옆에는 냉수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원경릉이 임신한 후부터 이곳에 자주 오게 되자 탕양은 다른 사람을 시켜 그곳에 등불을 남겨두게 하였다. 등불이 어두워서 그가 병풍 쪽에 서서 겉옷을 벗고 안에 입은 침의를 벗으려고 할 때, 갑자기 그림자가 움직이더니 누군가 갑자기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우문호는 웃으며 “안 잤어? 여기까지 따라와서 뭐해 빨리 가서 잠이나 자.”라고 말했다.입술이 그의 어깨에 찍혔다.우문호는 이 여인이 원경릉인줄 알았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에 놀라서 자신을 껴안은 사람의 손을 잡고 몸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 둥근 얼굴, 붉은 뺨, 촉촉한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보고
우문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처제의 말투를 보니 그녀가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소란스러운 소리가 나자 잠에 들려고 했던 원경릉도 놀라서 급하게 나왔다. 바닥에 망토가 질질 끌렸고 옆에는 희상궁이 그녀를 부축했다. “무슨 일이야?” 그녀는 앞으로 나와 샤오란을 한 번 보고 격노한 우문호를 보았다..원경병은 억울하다는 듯“언니, 왕야께서 샤오란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라고 말했다.우문호는 화나 나서 “본왕이 목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 아이가 뛰어들어와 뒤에서 본왕을 껴안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이 아이를 데리고 나온 것이야.”라고 말했다.“헛소리……” 원경병이 말했다.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샤오란을 바라보며 “산책한다고 나갔잖아 너 어디 갔었어?”라고 물었다.이렇게 물으면서도 원경병은 샤오란의 심성이 착하고 단순하다고 완벽히 믿고 있었다. 샤오란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다.원경병은 자신이 그녀를 추궁해서 우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원경릉은 우문호를 한번 쳐다보며 서일에게 말했다. “왕야를 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세요.”“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우문호는 노기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원경릉의 싸늘한 눈빛을 받으며 목욕탕으로 향했다.“방금 저 여자가 만졌던 곳은 더 깨끗하게 박박 닦아라 서일아! 껍질이 벗겨져도 괜찮다! 박박 닦아라!”“예! 알겠습니다!” 서일이 우문호를 끌고 갔다.목욕탕으로 가던 중에 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언급했다.“본왕은 결백하다! 난 저 여자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어!”“녹주, 기라, 동생과 샤오란을 편청으로 데리고 가라.”원경릉이 몸을 돌리자 희상궁이 다가와 부축했다.원경릉은 화가 나서 숨이 가빠졌다. 기라는 샤오란을 일으키며 “빨리 일어나세요. 울긴 왜 웁니까? 왕야께서 당신을 괴롭히기라고 했습니까?”라고 말하자 원경병이 그녀를 노려보았다.“그럼 샤오란이 일부러 왕야
샤오란이 일으킨 사건의 결말“희상궁, 초왕부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좀 알아봐요. 샤오란 결혼시키게.” 원경릉이 말했다.“문간방 땅이(阿土)가 아직 결혼을 안 했습니다.” 희상궁이 말했다.“그래, 초왕부에서 은자를 대고 땅이와 샤오란의 혼례를 준비해요.” 원경릉이 말했다.샤오란이 당황해서 얼굴색이 하얗게 질려 훌쩍거리며, “경릉 언니, 그건 저한테 죽으라는 말이 에요!”원경병도 분이 사그라지지 않아 계속 고개를 저었다.원경릉이 다가가며: “널 죽인다고? 네 스스로 노비가 되서라도 초왕부에 남겠다고 했잖아. 왜? 진심이 아니야?”샤오란이 깜짝 놀라 눈물도 뚝 그치고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경릉 언니,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원경릉이 싸늘한 말투로: “뭘 잘못했는데?”샤오란이 울면서: “누가 저한테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 줬어요. 그 사람이 왕야가 저를 건드리기만 하면 저를 바로 후궁으로 삼을 게 확실하다고, 그 사람이 말하길 경릉 언니도 그렇게 초왕비가 됐다고 했어요.”원경병은 이 말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하얗게 질려서, “샤오란, 너 지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샤오란이 얼굴을 들어 원경병을 보고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채로, “경병 언니, 용서해 줄꺼죠? 저도 잠시 길을 잘못 들었을 뿐이예요. 오 대학사에게 시집가기 싫어요. 초왕 전하 후궁이 되면 파혼해도 오 대학사가 아빠를 곤란하게 하지 않을 거잖아요.”원경병이 화가 치밀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너….너….진짜 바보구나. 말 문이 막힌다 진짜. 난 네가 괴롭힘을 당하는 줄 알았는데 네가 나서서 한 짓이었네. 너 왜 그렇게 멍청해? 정말 한대 패서 죽여버려야 속이 시원하겠어.” 샤오란이 ‘으앙’하고 울며 망연자실해서 원경병을 보고, 다시 원경릉을 보고 오락가락 두렵고 불안한 눈빛이다.“널 그런 식으로 꾄 게 누구지?” 원경릉이 차갑게 물었다.샤오란이 여전히 울기만 하고 말이 없다.원경병이 화가 나서 샤오란의 손을 잡아 끌고, “어서
샤오란 사건으로 오싹한 우문호우문호가 목욕하고 돌아왔는데 여전히 얼굴에 노기가 가득하다.“처분 내렸어?” 우문호가 문을 들어와 씩씩거리며 물었다. “죽을 때까지 매를 쳤겠지?”원경릉이 미소를 띠고 나와서 시중을 들며, 차를 올리고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고, 어깨를 주무르며, “쫓아냈어, 이 참에 아주 크게 혼쭐났을 거야.”“그렇게 쉽게 놔줬단 말이야?” 우문호가 분이 안 풀리기도 했고, 화를 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게, 처음에 원경릉이 아닌 걸 바로 알아차리지 못해서 샤오란이 자신을 끌어안도록 놔둔 걸 원 선생이 신경 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원경릉이: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길을 잘못 든 아기 토끼에 불과한 걸, 오 대학사한테 시집가고 싶지 않아서 너한테 그렇게 하고 후궁이 되고 싶었다더라.”“시켜? 누가 시켰어?” 우문호는 바로 한 사람이 떠올라서, “기왕비?”“응 맞아.” 원경릉이 우문호를 끌어당겨 가까이에 앉히고는, “이 일은 더 이상 캐지 말아줘. 둘째 경병이가 창피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더 캐물으면 초왕부에 다시 못 올 거야.”“이번엔 사람보는 안목이 없어서 샤오란을 도와준 꼴이 되었군.” 우문호가 중얼거렸다.“이용당한 거니 혼내지 마. 화 풀어, 화 풀어.” 원경릉이 우문호의 등을 쓸어주며 싱글거렸다.우문호가 크고 거친 목소리로, “이번은 당신 얼굴을 봐서 더이상 캐묻지 않겠지만 만약 다음에도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초왕부에 한 발자국도 못 들여놓을 줄 알라고 해.”“알았어, 알았어!” 원경릉이 확답하며, “내가 벌써 경고 했어, 다시는 안 그럴 거야.” “그리고……” 우문호가 눈썹을 찡그리는 게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은 모습이다.원경릉이 손을 떼더니 우문호를 흘끔 보고, “거진 다 됐네.”우문호가 화를 싹 거두고 원경릉의 손을 끌어서 자기 가슴에 대고는 너무너무 억울하다는 듯: “계속 해줘.”원경릉이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며, 남자도 ‘오구오구’ 해줘야 하는 존재구나.두 사람이 잠시 얘기하며 우문호의 머리가 마
일파만파가 된 샤오란 사건태후가 이 소식을 듣고 큰일 났다 싶었다. 임신 중인 초왕비가 이런 큰 소동을 참을 수 있을까? 바로 사람을 시켜 우문호를 불러들였다.태후가 직접 질문하길, “이상한 온천에서 일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우문호가 놀라서, “황조모께서 알고 계셨습니까?”이 말을 듣고 태후는 뒷목을 잡으며 우문호를 손가락질 하는데, “이 멍청한 놈, 초왕비가 난리법석을 떠는 걸로 끝나 그나마 다행이지 배 속에 아이가 어찌되었으면 내가 제 명에 못 죽었을 게다.”우문호가 할머니가 이렇게 심각하게 말씀하시는 걸 듣고 황급히: “황조모 안심하세요, 왕비는 소란을 떨지 않았습니다. 사리분별이 정확한 사람이에요, 진짜.”“안되지, 안돼.” 할머니는 손사레를 치며 이대로 둬서는 안되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네 일은 내가 황제와 상의하도록 하마.”우문호가: “상의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일은 아바마마께 말씀드릴 정도 아닙니다. 정말 괜찮아요.”“됐다, 넌 가서 왕비를 잘 돌보도록 해라. 다시 이런 일로 소란이 일어나면 너부터 용서하지 않을 테니 그렇게 알아라.” 태후가 매섭게 말했다.우무호는 이번에 정말 어리둥절해서 태후전에서 나와 상궁을 귀퉁이로 끌고 가 자세히 물었다.우문호는 자초지종을 듣고 야단났다 싶어, “일이 왜 그렇게 와전됐지? 누가 태후마마께 헛소리를 한 거야?”기왕비는 지금 병중이라 입궁해서 태후를 알현할 수 없다.“오늘 황후마마께서 오셔서 문안을 드리셨습니다.” 상궁이 조용히 말했다.황후는 이 일을 알리 없다. 누군가 입궁해서 알리지 않았다면 말이다.“오늘 누가 입궁해서 황후마마께 문안을 드렸느냐?” 우문호가 물었다.상궁이 미소를 띠고, “쇤네 그 점은 알지 못하지만 왕야께서 알고 싶으시다면 구대인에게 물으시지요. 구대인이 오늘 당직이라 궁문 시위 대장으로 순시하고 있습니다.”우문호는 바로 구사를 찾아갔다.구사는 마침 궁문 밖에서 순시중으로 우문호가 붙들어 세우고 묻길, “구사, 사실대로 말해, 오늘 누가 입궁해서
구사와 원경병의 세번째 만남구사 이 사람은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신속하다.저녁에 출궁해 첫번째 자료를 가지고 재빠르게 초왕부로 가서 진행상황을 알렸다.때마침 큰 마당에서 원경병을 보고 구사는 순식간에 때를 잘 맞췄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째 아가씨!” 구사가 나와 인사했다. 지난번 일이 있었으니 원경병도 구사를 기억하겠지.원경병이 구사를 보더니, “공자님, 얼굴이 낯익네요.”구사는 마음이 파스스 부서지며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구사로 둘째 아가씨 형부와 절친입니다.”원경병이 놀라며 그제서야 이 사람이 전에 성밖에서 사건이 터졌을 때, 와서 아는 척을 하더니 또 뭐가 어떻게 됐는지 갑자기 홱 돌아서 갔던 사람이라는 게 떠올랐다.“어머, 구 대인이셨군요, 몰라 뵀습니다.” 원경병이 얼굴빛을 단정하게 하고 다소곳하게 말했다.“절 아시겠습니까?” 구사가 골똘히 쳐다보며 물었다.“저희 만난 적이 있지요, 하지만 아마 구대인께서는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원경병이 미소를 띠고 말했다.기억을 못해? 다음 생에도 기억할 지경이다.구사가 머리를 짜내서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모양을 취하더니 잘 모르겠다는 듯, “어디서 뵀더라?”원경병이, “성 밖에서요, 제왕비께서 죽을 배급하다가 일이 터졌던 그 때.”“아!” 구사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맞아요, 기억납니다. 그날 초왕비마마와 같이 계셨지요. 두 분 말씀나누시는데 제가 갔었지요.”원경병이: “네, 그런데 왜 갑자기 가버리셨는지 모르겠어요.”“예, 그날 부상자들이 위급한 상황이라 저도 마음이 급해서, 사람을 구하러 가느라 실례가 많았습니다.” 구사가 사과했다.원경병이 예를 취하며, “대인께서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시니 존경해 마지 않습니다.”“무슨 말씀을,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구사가 손을 내저으며 겸손하게 웃었다.복도를 돌아서 오던 우문호와 원경릉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리에 멈춰 섰다.“어쩌지? 구사를 한 대 패고 싶은데.” 우문호가 구사를 보며 원경릉에게 말했다.“구사가 정말
경천은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택란이 말했다."어쩌면 5년 후에는 오늘 한 모든 일이 어리석고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때, 그 감정이 단순한 사모인지 은혜 때문인지 알게 되실 것이고,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경천은 단 한 마디만 응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나 분명하니, 절대 그런 말로 그녀를 얽매여 부담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 한 모든 일은 그의 결정이며 그의 태도였다. 그녀는 몰라도 되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릴 것이었다.그리고 그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택란은 한숨 놓은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해한다니 다행입니다.""알고 있다."경천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삼 태감이 책자를 가져왔다. 경천은 그것을 택란에게 건넸고, 택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매우 공정했으며, 심지어 약도성에 이익을 양보한 정도였다.책자를 접은 후,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약도성을 생각해 줘서 고맙습니다. 두 나라의 원한을 풀기 위해 애써줘서, 그리고 약도성의 백성과 조정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습니다.""알고 있었던 것이냐?"경천이 다소 놀라며 묻자, 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 알아봤습니다.""오해하지 마라. 그저 너를 위하여 한 일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해명했다.택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마시지요. 저는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해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도 사실 많이 감동했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혼사에 대해 논할 나이가 아니고, 사적인 감정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아바마마
손에 쥐니,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그 옥의 차가운 느낌이 서서히 스며들자, 그녀는 기분이 좋았다.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놀라운 표정을 지었을 때, 그는 미세하게 안도하며, 그녀가 좋아할 것이라 믿었다."직접 만든 것입니까?"택란은 마음에 든 듯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눈동자에는 존경이 가득했다."응!"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음에 드냐?""예. 정말 마음에 듭니다!"택란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그러자 그가 약간 흥분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이걸 직접 나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느냐?""예?"택란이 잠시 멈칫하며, 놀라 물었다."저에게 준 선물이 아닙니까?"그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으로 소매 주머니에서 또 다른 옥 조각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이건 내가 네게 직접 주고 싶은 것이다."택란은 그가 손에 든 것을 바라보았다. 옥질도 동일하게 맑고 투명했고, 손바닥의 선도 보일 정도였는데, 그 조각에는 경천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옥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준수한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입고 있던 옷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색은 알 수 없었지만, 자수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기억력이 매우 좋았기에, 그때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그녀는 두 개의 옥을 손바닥에 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옥에 3년 전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시간을 되돌려 3년 전 만남을 담은 것이었다!경천은 택란을 바라보며,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심장은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올 듯했다.택란이 두 개의 옥을 서둘러 상자에 다시 넣으며 말했다."두 개 모두 오라버니께서 먼저 가지고 있으세요."경천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건네받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며, 애써 실망이 드리운 눈빛을 숨겼다.삼 태감이 정교한 음식을 올려놓았고, 모두 택란이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작은 흥분을 억누르고, 표정을 고쳐서 천천히 돌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북당 백성인 란이 언니와의 혼사는 다 거짓인 겁니까?"경천의 동공이 흔들렸다."혹시... 화가 난 것이냐?""아닙니다."택란이 고개를 젓자, 밝은 빛이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비쳤고, 고르게 정리된 이마 밑의 눈동자는 다시 차분해졌다."그런데 어찌 사람을 시켜 저를 찾고 있다고 직접 저게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편지를 보냈다면, 저도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심지어 혼사에 하객까지 청하며 일을 이렇게나 크게 벌였는데, 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십니까?"그는 갑자기 결단을 내린 듯, 천천히 그녀 앞에 섰다. 그러고는 그녀의 까만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수습할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천하에 나의 황후가 우문택란이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녀가 어서 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택란은 순간 놀라하며, 굳어진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경천은 그녀가 화가 난 것 같아,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의 눈동자엔 어두운 그림자가 깔렸고,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응할 수... 있겠느냐?"택란은 잠시 망설였다. 기억 속의 그 소년이 지금 별빛을 받으며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10년 후 그가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그녀를 부인으로 맞겠다고 열정적으로 말했었다. 그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는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런 과거와 현재가 얽혀 버리자, 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저는..."경천은 그녀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굴을 조금 숙이며 말했다."지금 바로 대답할 필요 없다. 몇 년 후라도, 10년, 아니 20년 후라도 괜찮다.""하지만...""아니, 말하지 말거라."그는 방금까지만해도 가득찼던 자신감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
냉명유는 팔짱을 낀 채 검을 가슴 앞으로 옮기며, 차갑게 말했다."누님께서 어디로 가든, 저도 무조건 함께 갈 것입니다."“하… 하지만."삼 태감이 무척 난감해했다."그래. 함께 가자. 이 거월통천각이 정말 달을 딸 수 있는지 어디 가서 보자꾸나!"그러자 택란이 웃으며 말했다.주 아가씨는 조금 의심스러웠다. 정말 공주가 만나고 싶다면, 어찌 공주한테 이렇게 높은 계단을 오르게 할 수 있는가?그러고는 계단 위에 새겨진 난초꽃을 힐끗 보고는 순간 멈칫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계단의 각 층마다 난초꽃이 새겨져 있었다.황제가 자신의 그리움을 돌계단에 새긴 것이었다!택란도 계단을 오르며, 이 사실을 눈치챘다.게다가 각 난초의 형태와 크기는 매우 똑같았다. 처음에는 선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긴 했지만, 후에는 점점 더 섬세하고 부드러워 보였다.이건 분명 같은 사람이 새긴 것 같았다. 그가 직접 조각한 것일까? 금나라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은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에 도착했다. 다행히 냉명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택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네개의 용 모양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네 모서리에는 각각 올라가 쉴 수 있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탁자와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떠힌. 네 면에 걸려져 있는 대나무 커튼이 걷혀 있어, 사방에서 밖을 볼 수 있었다.그 사이에서 청색 비단옷 차림의 남자가 통천각 옆 난간에 기대어 택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매우 긴장한 듯 손과 발을 살짝 떨고 있었다. 별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약간 숨이 가쁜 듯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만남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반짝이는 별들도 그중 하나였다.하지만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
한편, 안왕과 위왕은 이미 명월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왔기에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몸 전체가 먼지투성이였다.하지만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궁에 들어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혼 연회가 예정보다 앞당겨 열리게 되었다고 했다.그들은 의아해하며 금나라가 막무가내라고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혼례라더니, 이제는 정혼식이라 하고, 심지어 약속했던 날도 지키지 않고 앞당겼으니 말이다.혼사라는 중대사가 이렇게 어린아이 장난처럼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신부가 북당 사람이니, 그들은 신부의 친정과도 마찬가지였기에 금나라의 일정을 따르며, 금나라의 계획을 지지하는 것이 맞았다. 다른 나라 사절들이 함께 있었기에, 그들은 무관의 신분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친구를 사귀고 주변 무역 문제를 논의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다섯째가 특별히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다른 나라의 사신을 만나면 국사를 논하지 않더라도, 상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말했었다. 장사는 대화로 시작되는 일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면 결국 성사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비록 처음에 다섯째의 이런 태도가 약간 뻔뻔하다고 느꼈었지만, 지난 10여년간 나라 경제가 눈에 띄게 번영했다는 사실을 차마 부인할 수는 없었다.다섯째의 말처럼 경제를 앞서게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한 덕분에, 돈이 끊임없이 북당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그들이 다른 나라 신하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황제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안왕과 위왕은 금나라의 황제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젊은 황제는 올해 열여덟도 되지 않는 어린 나이라 들었다. 어린 나이에 유명한 진국왕을 몰락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한 결단력과 꾀를 가졌을까?내시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밝은 황금빛 용포를 입은 젊은 황제가 시위에게 둘러싸여 등장했다.혼례복이 아닌 용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혼례를 올리는 것은 아닌 듯했다
세 사람은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그 중, 택란은 베일을 쓴 채 궁에서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때마침 불이 하나둘씩 밝혀질 시간이라, 거리는 무척 떠들썩했다. 금나라 수도의 번화함은 약도성이 비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통행금지가 없어, 백성들이 밤늦게까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택란은 마차의 가림막을 살짝 들어 올려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장사에 열중하는 상인들, 주루나 주막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이런 활기 넘치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러고는 순간 어린 황제를 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3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3년 사이에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었으니 말이다. 키도 훤칠해졌고 이제 얼굴도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닌 한층 성숙하고 침착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도성이 지난 몇 년간 겪어온 일들이 많았기에 당연히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다.한편, 금나라 황궁에서는 이미 정혼 연회의 준비를 마쳤으나, 중요한 두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안왕과 위왕이었다.북당의 두 친왕이 도착해야만 연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한편, 경천 황제는 내내 택란을 만나고 싶어 했다.지난 3년 동안, 그는 그녀와 재회할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3년간 간절히 바랐던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들떴지만, 첫 만남은 너무도 중요했다.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생생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그는 사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조정을 되찾아 그녀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물론 지금 그녀는 아직 어리기에, 혼담을 논하기엔 이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