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처제의 말투를 보니 그녀가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소란스러운 소리가 나자 잠에 들려고 했던 원경릉도 놀라서 급하게 나왔다. 바닥에 망토가 질질 끌렸고 옆에는 희상궁이 그녀를 부축했다. “무슨 일이야?” 그녀는 앞으로 나와 샤오란을 한 번 보고 격노한 우문호를 보았다..원경병은 억울하다는 듯“언니, 왕야께서 샤오란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라고 말했다.우문호는 화나 나서 “본왕이 목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 아이가 뛰어들어와 뒤에서 본왕을 껴안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이 아이를 데리고 나온 것이야.”라고 말했다.“헛소리……” 원경병이 말했다.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샤오란을 바라보며 “산책한다고 나갔잖아 너 어디 갔었어?”라고 물었다.이렇게 물으면서도 원경병은 샤오란의 심성이 착하고 단순하다고 완벽히 믿고 있었다. 샤오란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다.원경병은 자신이 그녀를 추궁해서 우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원경릉은 우문호를 한번 쳐다보며 서일에게 말했다. “왕야를 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세요.”“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우문호는 노기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원경릉의 싸늘한 눈빛을 받으며 목욕탕으로 향했다.“방금 저 여자가 만졌던 곳은 더 깨끗하게 박박 닦아라 서일아! 껍질이 벗겨져도 괜찮다! 박박 닦아라!”“예! 알겠습니다!” 서일이 우문호를 끌고 갔다.목욕탕으로 가던 중에 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언급했다.“본왕은 결백하다! 난 저 여자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어!”“녹주, 기라, 동생과 샤오란을 편청으로 데리고 가라.”원경릉이 몸을 돌리자 희상궁이 다가와 부축했다.원경릉은 화가 나서 숨이 가빠졌다. 기라는 샤오란을 일으키며 “빨리 일어나세요. 울긴 왜 웁니까? 왕야께서 당신을 괴롭히기라고 했습니까?”라고 말하자 원경병이 그녀를 노려보았다.“그럼 샤오란이 일부러 왕야
샤오란이 일으킨 사건의 결말“희상궁, 초왕부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좀 알아봐요. 샤오란 결혼시키게.” 원경릉이 말했다.“문간방 땅이(阿土)가 아직 결혼을 안 했습니다.” 희상궁이 말했다.“그래, 초왕부에서 은자를 대고 땅이와 샤오란의 혼례를 준비해요.” 원경릉이 말했다.샤오란이 당황해서 얼굴색이 하얗게 질려 훌쩍거리며, “경릉 언니, 그건 저한테 죽으라는 말이 에요!”원경병도 분이 사그라지지 않아 계속 고개를 저었다.원경릉이 다가가며: “널 죽인다고? 네 스스로 노비가 되서라도 초왕부에 남겠다고 했잖아. 왜? 진심이 아니야?”샤오란이 깜짝 놀라 눈물도 뚝 그치고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경릉 언니,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원경릉이 싸늘한 말투로: “뭘 잘못했는데?”샤오란이 울면서: “누가 저한테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 줬어요. 그 사람이 왕야가 저를 건드리기만 하면 저를 바로 후궁으로 삼을 게 확실하다고, 그 사람이 말하길 경릉 언니도 그렇게 초왕비가 됐다고 했어요.”원경병은 이 말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하얗게 질려서, “샤오란, 너 지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샤오란이 얼굴을 들어 원경병을 보고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채로, “경병 언니, 용서해 줄꺼죠? 저도 잠시 길을 잘못 들었을 뿐이예요. 오 대학사에게 시집가기 싫어요. 초왕 전하 후궁이 되면 파혼해도 오 대학사가 아빠를 곤란하게 하지 않을 거잖아요.”원경병이 화가 치밀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너….너….진짜 바보구나. 말 문이 막힌다 진짜. 난 네가 괴롭힘을 당하는 줄 알았는데 네가 나서서 한 짓이었네. 너 왜 그렇게 멍청해? 정말 한대 패서 죽여버려야 속이 시원하겠어.” 샤오란이 ‘으앙’하고 울며 망연자실해서 원경병을 보고, 다시 원경릉을 보고 오락가락 두렵고 불안한 눈빛이다.“널 그런 식으로 꾄 게 누구지?” 원경릉이 차갑게 물었다.샤오란이 여전히 울기만 하고 말이 없다.원경병이 화가 나서 샤오란의 손을 잡아 끌고, “어서
샤오란 사건으로 오싹한 우문호우문호가 목욕하고 돌아왔는데 여전히 얼굴에 노기가 가득하다.“처분 내렸어?” 우문호가 문을 들어와 씩씩거리며 물었다. “죽을 때까지 매를 쳤겠지?”원경릉이 미소를 띠고 나와서 시중을 들며, 차를 올리고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고, 어깨를 주무르며, “쫓아냈어, 이 참에 아주 크게 혼쭐났을 거야.”“그렇게 쉽게 놔줬단 말이야?” 우문호가 분이 안 풀리기도 했고, 화를 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게, 처음에 원경릉이 아닌 걸 바로 알아차리지 못해서 샤오란이 자신을 끌어안도록 놔둔 걸 원 선생이 신경 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원경릉이: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길을 잘못 든 아기 토끼에 불과한 걸, 오 대학사한테 시집가고 싶지 않아서 너한테 그렇게 하고 후궁이 되고 싶었다더라.”“시켜? 누가 시켰어?” 우문호는 바로 한 사람이 떠올라서, “기왕비?”“응 맞아.” 원경릉이 우문호를 끌어당겨 가까이에 앉히고는, “이 일은 더 이상 캐지 말아줘. 둘째 경병이가 창피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더 캐물으면 초왕부에 다시 못 올 거야.”“이번엔 사람보는 안목이 없어서 샤오란을 도와준 꼴이 되었군.” 우문호가 중얼거렸다.“이용당한 거니 혼내지 마. 화 풀어, 화 풀어.” 원경릉이 우문호의 등을 쓸어주며 싱글거렸다.우문호가 크고 거친 목소리로, “이번은 당신 얼굴을 봐서 더이상 캐묻지 않겠지만 만약 다음에도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초왕부에 한 발자국도 못 들여놓을 줄 알라고 해.”“알았어, 알았어!” 원경릉이 확답하며, “내가 벌써 경고 했어, 다시는 안 그럴 거야.” “그리고……” 우문호가 눈썹을 찡그리는 게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은 모습이다.원경릉이 손을 떼더니 우문호를 흘끔 보고, “거진 다 됐네.”우문호가 화를 싹 거두고 원경릉의 손을 끌어서 자기 가슴에 대고는 너무너무 억울하다는 듯: “계속 해줘.”원경릉이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며, 남자도 ‘오구오구’ 해줘야 하는 존재구나.두 사람이 잠시 얘기하며 우문호의 머리가 마
일파만파가 된 샤오란 사건태후가 이 소식을 듣고 큰일 났다 싶었다. 임신 중인 초왕비가 이런 큰 소동을 참을 수 있을까? 바로 사람을 시켜 우문호를 불러들였다.태후가 직접 질문하길, “이상한 온천에서 일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우문호가 놀라서, “황조모께서 알고 계셨습니까?”이 말을 듣고 태후는 뒷목을 잡으며 우문호를 손가락질 하는데, “이 멍청한 놈, 초왕비가 난리법석을 떠는 걸로 끝나 그나마 다행이지 배 속에 아이가 어찌되었으면 내가 제 명에 못 죽었을 게다.”우문호가 할머니가 이렇게 심각하게 말씀하시는 걸 듣고 황급히: “황조모 안심하세요, 왕비는 소란을 떨지 않았습니다. 사리분별이 정확한 사람이에요, 진짜.”“안되지, 안돼.” 할머니는 손사레를 치며 이대로 둬서는 안되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네 일은 내가 황제와 상의하도록 하마.”우문호가: “상의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일은 아바마마께 말씀드릴 정도 아닙니다. 정말 괜찮아요.”“됐다, 넌 가서 왕비를 잘 돌보도록 해라. 다시 이런 일로 소란이 일어나면 너부터 용서하지 않을 테니 그렇게 알아라.” 태후가 매섭게 말했다.우무호는 이번에 정말 어리둥절해서 태후전에서 나와 상궁을 귀퉁이로 끌고 가 자세히 물었다.우문호는 자초지종을 듣고 야단났다 싶어, “일이 왜 그렇게 와전됐지? 누가 태후마마께 헛소리를 한 거야?”기왕비는 지금 병중이라 입궁해서 태후를 알현할 수 없다.“오늘 황후마마께서 오셔서 문안을 드리셨습니다.” 상궁이 조용히 말했다.황후는 이 일을 알리 없다. 누군가 입궁해서 알리지 않았다면 말이다.“오늘 누가 입궁해서 황후마마께 문안을 드렸느냐?” 우문호가 물었다.상궁이 미소를 띠고, “쇤네 그 점은 알지 못하지만 왕야께서 알고 싶으시다면 구대인에게 물으시지요. 구대인이 오늘 당직이라 궁문 시위 대장으로 순시하고 있습니다.”우문호는 바로 구사를 찾아갔다.구사는 마침 궁문 밖에서 순시중으로 우문호가 붙들어 세우고 묻길, “구사, 사실대로 말해, 오늘 누가 입궁해서
구사와 원경병의 세번째 만남구사 이 사람은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신속하다.저녁에 출궁해 첫번째 자료를 가지고 재빠르게 초왕부로 가서 진행상황을 알렸다.때마침 큰 마당에서 원경병을 보고 구사는 순식간에 때를 잘 맞췄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째 아가씨!” 구사가 나와 인사했다. 지난번 일이 있었으니 원경병도 구사를 기억하겠지.원경병이 구사를 보더니, “공자님, 얼굴이 낯익네요.”구사는 마음이 파스스 부서지며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구사로 둘째 아가씨 형부와 절친입니다.”원경병이 놀라며 그제서야 이 사람이 전에 성밖에서 사건이 터졌을 때, 와서 아는 척을 하더니 또 뭐가 어떻게 됐는지 갑자기 홱 돌아서 갔던 사람이라는 게 떠올랐다.“어머, 구 대인이셨군요, 몰라 뵀습니다.” 원경병이 얼굴빛을 단정하게 하고 다소곳하게 말했다.“절 아시겠습니까?” 구사가 골똘히 쳐다보며 물었다.“저희 만난 적이 있지요, 하지만 아마 구대인께서는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원경병이 미소를 띠고 말했다.기억을 못해? 다음 생에도 기억할 지경이다.구사가 머리를 짜내서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모양을 취하더니 잘 모르겠다는 듯, “어디서 뵀더라?”원경병이, “성 밖에서요, 제왕비께서 죽을 배급하다가 일이 터졌던 그 때.”“아!” 구사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맞아요, 기억납니다. 그날 초왕비마마와 같이 계셨지요. 두 분 말씀나누시는데 제가 갔었지요.”원경병이: “네, 그런데 왜 갑자기 가버리셨는지 모르겠어요.”“예, 그날 부상자들이 위급한 상황이라 저도 마음이 급해서, 사람을 구하러 가느라 실례가 많았습니다.” 구사가 사과했다.원경병이 예를 취하며, “대인께서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시니 존경해 마지 않습니다.”“무슨 말씀을,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구사가 손을 내저으며 겸손하게 웃었다.복도를 돌아서 오던 우문호와 원경릉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리에 멈춰 섰다.“어쩌지? 구사를 한 대 패고 싶은데.” 우문호가 구사를 보며 원경릉에게 말했다.“구사가 정말
구사의 보고구사가 이번은 참기로 하고 이를 악물었다. 아름다운 사람 앞에서 실례를 범할 순 없지.구사는 웃음을 띠고 깨끗한 치아를 드러내며 원경병에게, “둘째 아가씨, 다음에 뵙겠습니다,.”“다음에 뵐 게요.” 원경병 생각에 이 구사라는 궁내 시위국 국장은 상당히 온화하고 친절한데다 조금도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구사는 우문호, 원경릉과 안으로 들어가 앉더니 우문호를 흘겨보며, “나한테 왕야라고 허세를 부려? 체면을 봐주나 봐라. 나한테 사정할 때가 온다 너.”우문호는 잔을 조몰락거리며 담담한 말투로: “인격이 좀 그러신 장인 어르신이 처제 혼사는 내가 절반은 책임을 지라고 하셨는데.”구사가 불만스럽다는 듯 우문호에게, “그 일로 날 협박하지 마라.”“누가 협박했다고 그래? 너야 말로 할말 안 할말 다하고, 네가 방금 뭐가 어쩌고 어째, 네 허풍이 하도 세서 돼지도 날아갈 지경이야. 나라와 백성을 걱정해? 사람을 구하느라 마음이 급해? 부끄럽지도 않냐?” 우문호가 콧방귀를 뀌었다.구사가 뻔뻔하게: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그날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했는지 너도 알잖아.”원경릉이 두 남자가 여기서 지지고 볶고 싸우는 걸 듣다가 짜증이 나서, “구사, 무슨 소식을 알아냈죠?”미래의 처형이 말하니 자연스럽게 자세를 가다듬고, “샤오란 사건은 제왕비가 말한 것으로, 황후께서 태후마마를 찾아가 이 일을 알리고 황제 폐하께도 찾아가 주명양을 후궁으로 삼는 일을 거론하셨습니다. 이 일은 주재상도 암묵적으로 인정해서 아마 황제폐하께서 잠시 숙고하시고 곧 성지를 내리실 것입니다.”원경릉이 놀라, “그 주명양이요? 주명양 본인은 뭐래요?”주명양은 콧대가 높아서 후궁이 되려고 할까?주명양이 하는 걸 보니 언니 주명취도 안중에 없다.주명취가 어쨌든 제왕의 정비인데 주명양이 과연 초왕의 후궁으로 오려고 할까?“주명양이 동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오늘 왕야가 출궁하고 주재상이 주명양을 데리고 입궁해 태후에게 선을 보였습니다. 태후
목여태감을 대하는 우문호와 원경릉의 자세구사가: “누를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황제 폐하도 이 일로 주재상과 척을 지지 않을 게 분명해. 황제 폐하 입장에서 친왕이 후궁을 맞는 건 다시 없이 정상적인 일이고, 지금 맞지 않더라도 앞으로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니 일단 지금 사태를 어떻게 넘어갈지 생각하자.”우문호가: “전에 나한테 주명양을 후궁으로 삼으란 언질이 있었는데 사실 아바마마께서 별로 찬성하지 않는 내색이었어, 그런데 이번일이…… 만약 좋은 구실이 있으면 아바마마도 내게 반드시 강요하시진 않을 거야. 그래 네 말이 맞아. 아바마마 입장에선 내가 후궁을 맞아들이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지. 앞으로 아바마마께서 어떻게 압박해 올지는 잠시 잊고, 우선 눈 앞의 일부터 대응하는 게 먼저야.”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지만 다행히 지금 우문호는 원경릉과 같은 마음으로 맞서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다.그러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만약 우문호 자신이 후궁을 맞는 것에 찬성하면 원경릉은 슬퍼하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그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천천히 냉정을 되찾은 우문호의 얼굴을 보니 유난히 지적이다. 원경릉은 스스로 약간 밝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지적인 우문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현실은 우문호의 기대 이상으로 술시 정도에 목여 태감이 두 명의 태감을 데리고 초왕부로 왔다.그들은 문지기에게 통보만 하고 바로 안으로 들어 왔다.막 마당에 들어서자 싸우는 소리가 들여왔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왕야의 목소리다.“너, 사람 열 받게 하는 재주도 좋아? 네가 싫어. 삐지고 속 좁고 아량 없고, 이제 널 보면 구역질이 나. 토하고 싶다고.”목여 태감은 이건 누구에게 하는 말이지? 왕비에게 하는 말인가? 왕야가 돈 걸까?목여 태감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왕비가 하는 말을 듣고 있다: “내가 싫어요? 난 뭐 안 싫은 줄 알아요? 다들 점잖은 사람들이라 차마 체면을 구기지 못할 뿐이지.”우문호가 차갑게: “내
목여태감 앞에서 난리를 피우는 원경릉 부부희상궁이 앞으로 나와 작은 목소리로 한숨 지으며, “어느 주둥이가 그랬는지 왕비마마 앞에서 왕야께서 주씨 집안 둘째 아가씨를 후궁으로 맞을 거라고 하지 뭡니까. 왕비마마께서 순간 화가 치밀어 왕야와 다투시게 되었습니다. 하필 임신으로 힘들 때 왕야께서 첩을 들이신다니,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습니까. 왕비께서는 사실로 알고 만류도 소용없어요. 왕야께서 일순간 화가 나서 사실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주씨 집안 둘째 아가씨를 후궁으로 들이시겠군요.”목여 태감은 흠칫 놀라, “누가 그런 말을?”“아직 조사 안 하셨어요? 좀 있다가 왕비마마를 위로해 드리고 제가 잘 알아보겠습니다.” 희상궁이 말했다.우문호는 화가 아직 다 가시지 않았는지, “뭘 조사해? 조사할 필요 없다. 내가 주명양을 후궁으로 맞아들일 것이야, 왕비가 나한테 어쩔 건데?”희상궁이 권하며: “왕야 지금은 절대로 왕비마마를 자극하시면 안됩니다. 방금 왕비마마께 약을 마시라고 하셨는데, 왕비께서 고집을 부려서 정말 마셨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우문호는 방금 화를 좀 가라 앉히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 말을 듣고 다시 열이 뻗쳐서, “어디 배짱이 있으면 한 번 마셔보라고, 마시면 아주 소박을 놔 버릴 테니까.”희상궁이 가볍게 책망하듯, “왕야, 왕비마마와 다투시면 안됩니다. 어의도 태아가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감정이 쉽게 동요하고 여기저기 치받기 쉬운 성품인데 만약 정말 일이 터지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목여태감이 다급히: “예, 예, 이러시면 안됩니다.”우문호가 목여 태감을 흘끔 보고 막 생각난 것처럼, “태감은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요?”목여태감이 바로 고개를 저으며, “별일 아닙니다. 황제 폐하께서 출궁해서 왕비마마를 뵙고 오라고 명하셨습니다.”“가서 아바마마께 보고할 때 내가 사나운 여자와 결혼해서 아내와 헤어지고 싶다고 보고하게!” 우문호가 화가 나서 말했다.목여 태감이 입술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녹주가 미친듯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