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왕비가 밖에 무릎을 꿇고 죄를 고하러 왔다니? 어서방에 있던 내각 대신들이 술렁였다. 측전과 어서방 정전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명원제가 측전 안쪽으로 들어가자 원경릉이 이를 보고 다른 문으로 들어왔다. 원경릉은 무릎을 꿇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명원제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일어나거라!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 당장 궁에서 나가거라!”원경릉은 그가 자신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마당에 물러설 수는 없었다. “부황, 성문에서 벌어진 일은 소인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라고 야단법석을 떨어?” 명원제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다섯째와 그의 부인은 왜 이렇게 생떼를 쓰는 것일까.’“상관이 있지요. 소인이 초왕비로서 황상님과 백성들의 은혜를 듬뿍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현장에서 잘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부상자가 증가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소인이 소동을 일찍 막지 못한 탓입니다. 당시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줄곧 먼저 손을 쓰지 않고 요행을 바랐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제때 경조부에 알리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이 제왕비를 비난하는 것을 보니 같은 친왕비로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 비난은 마땅히 소인이 받았어야 했습니다. 소인을 처단하여 북당의 민심을 다스리십시오.”원경릉이 큰 소리로 말했다.원경릉은 냉정언의 계책을 따라 자신을 희생하되, 실제로 죄를 지은 주명취를 언급해서 그녀에게도 죄책감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원경릉의 생각과 언변이 점점 태상황을 닮아가고 있었다.그녀의 말을 들은 명원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그녀는 진지한 표정을 보니 뭐라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고, 자신이 큰 대역 죄를 지은 것처럼 울부짖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밖에 있는 신하들이 듣고 있어서 그는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우문호는 궁문 입구에서 초조하게 원경릉을 기다렸다.‘옴팡 욕을 먹고 있으려나? 혹시 이미 곤장을 맞고 있는 건 아니겠지? 원경릉이 몸은 튼튼해도 맷집은 없는데 말이야.’서일은 오매불망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우문호를 보고 “왕야, 궁에 들어가 보시지요? 왕비께서는 말이 워낙 직설적이셔서 미움을 사기 쉽지 않습니까? 황상의 노여움을 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조용히 좀! 그 정도는 아닐 거다!” 우문호가 뒷집을 지고 입구를 배회했다. ‘곤장을 맞는다고 해도 이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텐데, 설마 정신을 잃은 걸까?’“곤장을 맞는게 그나마 낫죠. 그게 아니라면…….”서일이 우물쭈물했다.우문호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는 서일을 노려보았다.“서일. 넌 입을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게냐?”“소인 걱정이되서 그런겁니다!”그는 걱정이 생기면 말을 함부로 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자신도 이를 알고 있었지만 통제가 잘되지 않았다.얼마나 기다렸을까, 저 멀리서 원경릉과 희상궁이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그녀는 붉은 옷에 머리를 쳐들고 가슴을 높게 들었으며 발걸음이 의기양양한 것이 마치 승리를 거둔 붉은 암탉 같았다. 우문호는 한참이나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달려와 그녀의 팔을 잡고 위아래로 살피며 “맞았어?”라고 물었다.원경릉은 그를 한 번 흘겨보며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가 맞기라도 바랬던 거야?”라고 물었다.“걱정돼서 그렇지!”우문호가 한숨을 내쉬더니 그녀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다. “조심해.”원경릉은 웃으며 “얼씨구? 갑자기 왜 이렇게 잘 해주는 거야? 입궁하기 전에는 이렇게 부축도 안 해줬잖아.”라고 말했다.그녀가 마차에 오르자 우문호는 그 옆에 앉아 한 손으로 그녀를 끌어안고 연신 그녀를 쓰다듬었다.“어땠어, 부황께서 뭐라고 하셨어? 화가 많이 나셨어?”“얼마나 화를 내시던지, 내가 놀라서 말이 안 나오더라니까. 근데 시간이 지나니 화가 좀 풀리셨어.”원경릉이
우문호는 원경릉의 얼굴을 꼬집었다.“서일이 너는 입으로 미움을 산다고 하던데, 그 말이 딱 맞구나.”원경릉은 그의 어깨에 기댄 채 “네 생각엔 부황께서 주명취를 벌하실 것 같아?”라고 물었다.우문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보았다.“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어.”“내 생각엔 그냥 넘어갈 것 같아. 물론 내가 부황님을 찾아간 게 아무런 효과가 없지는 않을 거야. 부황님은 적어도 원걸을 벌하시지는 않겠지.”우문호도 원경릉의 생각과 같았기에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주수보가 그날 주명취를 위해 사정 하는 것을 미루어보아 주명취가 자신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황도 일곱째를 위해서 주명취에게 벌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사실 주명취가 어떻게 되든 우문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단지 원걸이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기만을 바랐다.하지만, 그는 원경릉이 내심 서운할까 걱정이 됐다. 자신을 희생해서 원걸을 빼냈지만, 정작 죄를 지은 주명취는 무탈하니 말이다.‘부황께서 뭐에 단단히 씐 게 틀림없다. 눈앞에 죄인을 보지 못하다니.’그 시각 제왕부.주명취는 제왕의 침상에 걸터앉아 한 손에는 탕을 한 손에는 수저를 들고 있었다. 그녀가 수저로 탕을 휘휘 젓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자, 입 벌리세요!”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왕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그의 턱에는 상처가 보였다. 검붉은 상처가 있음에도 그의 얼굴은 흉악해 보이기는커녕 가련하게 느껴졌다.제왕이 손을 내밀어 “본왕 스스로 먹겠다.”라고 말하며 그릇을 뺏었다.주명취는 멍한 얼굴로 그가 꿀꺽꿀꺽 탕을 마시는 것을 보았다.마치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탕을 서둘러 마시는 그를 보고 주명취가 조용히 물었다.“무슨 일 있어?”제왕은 그릇을 한쪽으로 치워두고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눈빛을 피했다.“아니, 너도 다쳤는데 내 시중을 들게 할 수는 없지.”“왕야를 돌보는 게 부인으로서
주명취가 천천히 다가와 그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제왕의 손을 가져다가 자신의 배에 얹었다.“이 아이는 장차 황자(皇子)가 될 아이야.”제왕은 그녀의 말에 깜짝 놀라서 손을 홱 빼고 그녀를 응시했다.주명취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너는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야?”라고 물었다.제왕은 깜짝 놀랐다. 그는 주명취에게 이런 야심이 있을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현재 그는 친왕의 신분으로 뱃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라고 쳐도 기껏해야 세자다. 아직 태자로 책봉된 것도 아닌데, 뱃속의 아이를 황자라고 말하다니. “명취야, 그런 허튼 소리 하지 마!”제왕은 너무 놀라 자신이 아프다는 것도 잊어버렸다.주명취는 제왕의 반응에 뺨을 내리치고 싶었지만, 그의 몸 상태를 보며 화를 억눌렀다. 그녀는 자신이 야망도 없고 쓸모없는 사람과 혼인을 했다는 것이 한스러웠다.잠시 후 그녀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제왕에게 다가갔다. “조부께서 너를 태자로 세우겠다고 하시며 너의 마음을 시험해보라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그 시험이다.”“시험?” 제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응, 조부께서는 네가 태자가 될 그릇인지. 네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싶어 하셨지.”주명취는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제왕은 잠시 침묵하더니 “주수보께서 생각을 많이 하셨구나. 태자 책봉은 부황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다. 참견하지 않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주명취는 속으로 비웃었다. ‘태자 책봉을 참견하지 말라고? 궁에 있는 모든 이들의 이목이 태자 자리에 쏠려있다! 지금 문무백관들이 태자로 올릴 적당한 친왕을 물색 중이란 말이다. 국정에 관심도 없던 손왕마저 계획을 세우는데, 어찌 너만 이렇게 태평한 것이야!’주명취는 제왕의 태도를 보고 마음이 차게 식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넌 쉬고 있어. 난 어디 좀 다녀올게.”그러자 제왕이 놀라서 소리쳤다.“명취야!”그녀는 고개를 돌려 제왕을 보았다. 제왕은 놀란 듯 숨을 헐떡였다. “너…… 너 치마에……, 월경이 시작된 것 같
주재상 앞에 무릎 꿇은 주명취주명취는 자신이 계속 밀고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주명취는 뼈 속 깊이 후회하고 있다. 당초에 왜 우문호를 선택하지 않았을까?지금 호오빠는 황제 폐하의 마음에 든 데다 태상황 폐하의 병이 나은 후 태자가 될 확률이 가장 높아졌다.친정에 돌아와 할머니 곁에 있는데, 할머니는 목소리를 잃은 후 앓아 누운 채 일어나지 못하고 계신다.주명취는 계속 기다렸지만 주재상은 밤 늦게 서야 돌아왔다.주재상이 주명취를 보더니 차갑게: “왕비마마 저와 서재로 가시지요.”주명취가 “예!”하고 대답했다.주재상이 서재에 들어가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자, 안에 입은 검은 박쥐무늬 비단 옷때문에 더욱 위엄 있고 신중하게 보였다.장미목 책상 뒤에 앉아 주명취를 깊이 쏘아보며, “제왕이 칼에 찔리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주명취는 감히 사실을 숨길 생각을 하지 않고: “손녀가 그랬습니다.”주재상이 싸늘하게: “일 하는 꼴이 갈수록 네 멋대로구나.”“손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성문밖에 일도 모함을 당했다, 누군가 제왕부에 맞서고 있다며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릴 방법이 이것 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주명취가 억울함을 호소했다.“그럼 네 계책은 성공했느냐? 초왕의 눈을 속였느냐?” 주재상이 냉랭하게 말했다.주명취의 눈에 아픔이 스쳐 지나며 숨도 거의 쉬어지지 않았다, “초왕이…… 손녀는 초왕이 이렇게 매정할 줄 몰랐습니다.”주재상이 냉소를 지으며, “너는 초왕이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하느냐? 너희들이 각자 혼인한 뒤 초왕이 알아챈 게 틀림없어. 황제의 아들 중에 제일 똑똑한 게 바로 초왕이야, 너의 그런 잔꾀에 초왕이 넘어갈 성 싶으냐? 주제도 모르는 것 같으니!”주명취는 무릎을 꿇고 슬픈 목소리로: “할아버지, 후회하고 있습니다. 당초에 제왕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주재상은 천천히 책상 위의 담뱃대를 집어 들고 안에 담배를 채우더니 음침한 목소리로: “오늘 내가 어서방에 있
주재상의 뜻을 안 주명취주명취는 바닥에 꿇어 앉아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주명취처럼 똑똑한 사람이 할아버지가 두고 있는 바둑의 수를 어찌 모를까?할아버지에게 있어 주명취는 버려진 바둑돌이다.주명취은 온통 슬픔과 분노로 예의 범절도 무시하고 차갑게 물었다: “두렵 건데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제왕비인 게 못마땅하시지요? 누구 물색해 둔 사람이 있으세요? 명양인가요?”“너는 신경 쓸 것 없다. 네 몫의 일이나 잘 해내면 돼.” 주재상은 미간조차 찌푸리지 않고 말했다.“왜요?” 주명취가 사무쳐 하며: “손녀가 일 하나를 잘못했을 뿐인데 어째서 할아버지는 저를 버리려 하십니까? 제가 성밖에서 죽을 배급하는 것도 할아버지의 뜻이었고, 만약 굳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하면, 할아버지야 말로……”재난의 원흉이란 5글자에서 딱 막혔다. 주명취가 제아무리 당돌해도 감히 이 5글자를 내뱉을 순 없었다.하지만 주재상은 차갑게: “재난의 원흉이란 말이지? 맞아. 네가 죽 배급소를 열고 어질다는 명성을 퍼트리는 건 전부 내 생각이었지. 그러나 아쉽게도 넌 과유불급이라 죽 배급소를 널리 열어 며칠간 죽을 배급하는 것으로, 수도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으면 될 것을 어쩌자고 양부인과 예친왕비를 찾아 간 것이냐? 너는 매사에 지나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아마 쓸데없이 지혜를 낭비하고 기회를 틈타 욕심을 채우겠지. 네가 하나를 제대로 했으면 지금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상황 병환이 위중할 때 너는 내 말이라고 속여 희상궁을 위협했지. 그때부터 너를 버릴 마음이었으나 네가 정실부인의 손녀라는 점을 생각해 한 번 더 기회를 주었 건만, 너는 귀하게 여기지 않았어. 게다가 일이 터지자 또다시 회임을 했다는 핑계를 대며 문책에서 빠져나가 조금도 책임을 질 생각이 하지 않지. 그런 너를 어찌 제왕비라고 하겠느냐? 나는 절대로 네가 제왕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주명취는 슬픔과 분노로 가득해, “하지만 저는 할아버지의 친 손녀가 아닙니까, 제왕을 그토록 생
주명취를 향한 제왕의 마음주명취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어 작은 소리로: “내일 입궁하려고 해요.”제왕은 순간 주명취가 뭘 하려는 지 알지 못해 ‘응’외에 아무 말도 못했다.주명취는 갑자기 눈가가 붉어지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 조금 흐느끼며, “제가 잘못한 일은 제가 바로잡아야 지요. 사실 요 며칠 마음속으로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줄곧 부질없는 문제에 매달렸어요. 제가 한 일때문에 당신의 명예가 다치게 될까, 당신까지 아바마마의 처벌에 연루될까 두려운 나머지 그래서, 어떻게든 책임을 피해보려고 온갖 방법을 생각해봤어요. 저는 정말 제가 임신한 줄 알았는데 결과는 요란한 빈 수레였어요. 저는 정말 후회하는 마음으로 일찌감치 입궁해서 보고 드리려고 해요.”주명취는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가까스로 눈물을 참으며, “그래서 저는 내일 입궁해서 죄를 청하기로 결정 했어요. 제가 져야할 책임을 져야죠.”이 말은 제왕에게 의외였다.제왕이 주명취의 눈빛을 보니 아프고, 부끄럽고, 뉘우치며 자책하는 마음 가운데 억지로 강한 척 하는 것이 느껴졌다.제왕은 주명취의 손을 잡고, “안심해. 내가 널 위해 사정할거야.”“응!” 주명취가 눈물을 떨구며 억지로 미소를 짓는 모습이 사람의 마음을 더없이 아프게 했다. “여전히 저를 믿어줘서 고마워요, 제가 오늘…… 저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정말 미쳤나 봐요.”제왕이 너그럽게: “다 각자의 감정이 있는 법이지. 성밖에서 생긴 일이 그렇게 커졌는데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 그런 결과를 나을 줄 생각도 못했지. 그러니 아바마마께서도 당신을 가볍게 처벌할 게요.”주명취는 머리를 숙여 제왕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며: “당신이 절 여전히 믿어주니 고마워요.”제왕은 한동안 주명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비로소 작은 목소리로: “난 당연히 당신을 믿어. 당신은 내 왕비니까.”하지만 그 말을 하는 제왕의 눈은 초점을 잃었다.제왕은 주명취를 믿어야 할지 말지 모르겠다.제왕
원경릉의 호칭과 주명취에 대한 처분원경릉도 오늘밤 파리를 삼킨 기분이다.왜냐면 우문호가 원경릉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원경릉’이라고 직접 이름을 부르자니 분위기가 너무 없고,‘왕비’라고 부르자니 너무 삭막하고 공식적인 느낌이다.‘굥’이……라고 불렀다간 전신에 닭살이 돋아, 닭이 돼서 날아갈 것 같고,‘릉이’는 ‘령이’랑 헷갈린다. 우문호는 ‘령이’가 입에 붙어 있는데다 ‘령이’는 우문령이다.‘릉아’……라는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원경릉이 한 손을 덮었다. 오래 산 부부도 오글거리는 게 싫지만은 않다.최종적으로 우문호는 결정을 내렸다. 원 선생.원경릉의 머릿속에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회장님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손을 잡고 치하하며: “원 선생, 지난 40년 동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오늘 드디어 영광스런 퇴직이군요!”원경릉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원 선생이라니, 이 무슨 고색창연한 호칭이란 말인가, 그녀는 지금 고작 17살 소녀란 말이다.원경릉은 뾰로통하게: “그럼 너는 뭐라고 불러?”우문호는 패기 넘치게: “나리!”원경릉은 상대도 하기 싫은 지 등을 돌리고 홱 돌아섰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손목을 잡고, “화났어? 그럼 뭐라고 부를지 얘기해 봐.”“우문호!”“그럼 난 널 어떻게 불러?”“난 이름도 성도 바뀐 적이 없거든. 원경릉!”우문호는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에이 너무 따분해.”우문호는 하여간 원 선생이 꽤 마음에 들었고, 계속 부르다 보면 언젠가 원경릉도 명실상부한 원 선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그땐 둘 다 늙어서 자식과 손자들에 둘러 쌓여 정말 기쁘고 충실한 인생일 거야.원경릉의 머릿속은 황제 폐하께서 주명취를 도대체 어떻게 처분하실 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다.우문호가 지그시 누르며, “무슨 생각해?”원경릉이 바로 눈을 감고, “아무 생각도 안 해, 너무 졸려.”“좋아, 우리가 잠자는 건 절대 방해할 수 없지!”원경릉은 문득 최근 집 생각을 한 횟수가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