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호는 원경릉의 얼굴을 꼬집었다.“서일이 너는 입으로 미움을 산다고 하던데, 그 말이 딱 맞구나.”원경릉은 그의 어깨에 기댄 채 “네 생각엔 부황께서 주명취를 벌하실 것 같아?”라고 물었다.우문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보았다.“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어.”“내 생각엔 그냥 넘어갈 것 같아. 물론 내가 부황님을 찾아간 게 아무런 효과가 없지는 않을 거야. 부황님은 적어도 원걸을 벌하시지는 않겠지.”우문호도 원경릉의 생각과 같았기에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주수보가 그날 주명취를 위해 사정 하는 것을 미루어보아 주명취가 자신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황도 일곱째를 위해서 주명취에게 벌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사실 주명취가 어떻게 되든 우문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는 단지 원걸이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기만을 바랐다.하지만, 그는 원경릉이 내심 서운할까 걱정이 됐다. 자신을 희생해서 원걸을 빼냈지만, 정작 죄를 지은 주명취는 무탈하니 말이다.‘부황께서 뭐에 단단히 씐 게 틀림없다. 눈앞에 죄인을 보지 못하다니.’그 시각 제왕부.주명취는 제왕의 침상에 걸터앉아 한 손에는 탕을 한 손에는 수저를 들고 있었다. 그녀가 수저로 탕을 휘휘 젓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자, 입 벌리세요!”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왕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그의 턱에는 상처가 보였다. 검붉은 상처가 있음에도 그의 얼굴은 흉악해 보이기는커녕 가련하게 느껴졌다.제왕이 손을 내밀어 “본왕 스스로 먹겠다.”라고 말하며 그릇을 뺏었다.주명취는 멍한 얼굴로 그가 꿀꺽꿀꺽 탕을 마시는 것을 보았다.마치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탕을 서둘러 마시는 그를 보고 주명취가 조용히 물었다.“무슨 일 있어?”제왕은 그릇을 한쪽으로 치워두고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눈빛을 피했다.“아니, 너도 다쳤는데 내 시중을 들게 할 수는 없지.”“왕야를 돌보는 게 부인으로서
주명취가 천천히 다가와 그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제왕의 손을 가져다가 자신의 배에 얹었다.“이 아이는 장차 황자(皇子)가 될 아이야.”제왕은 그녀의 말에 깜짝 놀라서 손을 홱 빼고 그녀를 응시했다.주명취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너는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야?”라고 물었다.제왕은 깜짝 놀랐다. 그는 주명취에게 이런 야심이 있을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현재 그는 친왕의 신분으로 뱃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라고 쳐도 기껏해야 세자다. 아직 태자로 책봉된 것도 아닌데, 뱃속의 아이를 황자라고 말하다니. “명취야, 그런 허튼 소리 하지 마!”제왕은 너무 놀라 자신이 아프다는 것도 잊어버렸다.주명취는 제왕의 반응에 뺨을 내리치고 싶었지만, 그의 몸 상태를 보며 화를 억눌렀다. 그녀는 자신이 야망도 없고 쓸모없는 사람과 혼인을 했다는 것이 한스러웠다.잠시 후 그녀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제왕에게 다가갔다. “조부께서 너를 태자로 세우겠다고 하시며 너의 마음을 시험해보라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그 시험이다.”“시험?” 제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응, 조부께서는 네가 태자가 될 그릇인지. 네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싶어 하셨지.”주명취는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제왕은 잠시 침묵하더니 “주수보께서 생각을 많이 하셨구나. 태자 책봉은 부황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다. 참견하지 않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주명취는 속으로 비웃었다. ‘태자 책봉을 참견하지 말라고? 궁에 있는 모든 이들의 이목이 태자 자리에 쏠려있다! 지금 문무백관들이 태자로 올릴 적당한 친왕을 물색 중이란 말이다. 국정에 관심도 없던 손왕마저 계획을 세우는데, 어찌 너만 이렇게 태평한 것이야!’주명취는 제왕의 태도를 보고 마음이 차게 식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넌 쉬고 있어. 난 어디 좀 다녀올게.”그러자 제왕이 놀라서 소리쳤다.“명취야!”그녀는 고개를 돌려 제왕을 보았다. 제왕은 놀란 듯 숨을 헐떡였다. “너…… 너 치마에……, 월경이 시작된 것 같
주재상 앞에 무릎 꿇은 주명취주명취는 자신이 계속 밀고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주명취는 뼈 속 깊이 후회하고 있다. 당초에 왜 우문호를 선택하지 않았을까?지금 호오빠는 황제 폐하의 마음에 든 데다 태상황 폐하의 병이 나은 후 태자가 될 확률이 가장 높아졌다.친정에 돌아와 할머니 곁에 있는데, 할머니는 목소리를 잃은 후 앓아 누운 채 일어나지 못하고 계신다.주명취는 계속 기다렸지만 주재상은 밤 늦게 서야 돌아왔다.주재상이 주명취를 보더니 차갑게: “왕비마마 저와 서재로 가시지요.”주명취가 “예!”하고 대답했다.주재상이 서재에 들어가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자, 안에 입은 검은 박쥐무늬 비단 옷때문에 더욱 위엄 있고 신중하게 보였다.장미목 책상 뒤에 앉아 주명취를 깊이 쏘아보며, “제왕이 칼에 찔리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주명취는 감히 사실을 숨길 생각을 하지 않고: “손녀가 그랬습니다.”주재상이 싸늘하게: “일 하는 꼴이 갈수록 네 멋대로구나.”“손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성문밖에 일도 모함을 당했다, 누군가 제왕부에 맞서고 있다며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릴 방법이 이것 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주명취가 억울함을 호소했다.“그럼 네 계책은 성공했느냐? 초왕의 눈을 속였느냐?” 주재상이 냉랭하게 말했다.주명취의 눈에 아픔이 스쳐 지나며 숨도 거의 쉬어지지 않았다, “초왕이…… 손녀는 초왕이 이렇게 매정할 줄 몰랐습니다.”주재상이 냉소를 지으며, “너는 초왕이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하느냐? 너희들이 각자 혼인한 뒤 초왕이 알아챈 게 틀림없어. 황제의 아들 중에 제일 똑똑한 게 바로 초왕이야, 너의 그런 잔꾀에 초왕이 넘어갈 성 싶으냐? 주제도 모르는 것 같으니!”주명취는 무릎을 꿇고 슬픈 목소리로: “할아버지, 후회하고 있습니다. 당초에 제왕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주재상은 천천히 책상 위의 담뱃대를 집어 들고 안에 담배를 채우더니 음침한 목소리로: “오늘 내가 어서방에 있
주재상의 뜻을 안 주명취주명취는 바닥에 꿇어 앉아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주명취처럼 똑똑한 사람이 할아버지가 두고 있는 바둑의 수를 어찌 모를까?할아버지에게 있어 주명취는 버려진 바둑돌이다.주명취은 온통 슬픔과 분노로 예의 범절도 무시하고 차갑게 물었다: “두렵 건데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제왕비인 게 못마땅하시지요? 누구 물색해 둔 사람이 있으세요? 명양인가요?”“너는 신경 쓸 것 없다. 네 몫의 일이나 잘 해내면 돼.” 주재상은 미간조차 찌푸리지 않고 말했다.“왜요?” 주명취가 사무쳐 하며: “손녀가 일 하나를 잘못했을 뿐인데 어째서 할아버지는 저를 버리려 하십니까? 제가 성밖에서 죽을 배급하는 것도 할아버지의 뜻이었고, 만약 굳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하면, 할아버지야 말로……”재난의 원흉이란 5글자에서 딱 막혔다. 주명취가 제아무리 당돌해도 감히 이 5글자를 내뱉을 순 없었다.하지만 주재상은 차갑게: “재난의 원흉이란 말이지? 맞아. 네가 죽 배급소를 열고 어질다는 명성을 퍼트리는 건 전부 내 생각이었지. 그러나 아쉽게도 넌 과유불급이라 죽 배급소를 널리 열어 며칠간 죽을 배급하는 것으로, 수도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으면 될 것을 어쩌자고 양부인과 예친왕비를 찾아 간 것이냐? 너는 매사에 지나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아마 쓸데없이 지혜를 낭비하고 기회를 틈타 욕심을 채우겠지. 네가 하나를 제대로 했으면 지금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상황 병환이 위중할 때 너는 내 말이라고 속여 희상궁을 위협했지. 그때부터 너를 버릴 마음이었으나 네가 정실부인의 손녀라는 점을 생각해 한 번 더 기회를 주었 건만, 너는 귀하게 여기지 않았어. 게다가 일이 터지자 또다시 회임을 했다는 핑계를 대며 문책에서 빠져나가 조금도 책임을 질 생각이 하지 않지. 그런 너를 어찌 제왕비라고 하겠느냐? 나는 절대로 네가 제왕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주명취는 슬픔과 분노로 가득해, “하지만 저는 할아버지의 친 손녀가 아닙니까, 제왕을 그토록 생
주명취를 향한 제왕의 마음주명취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어 작은 소리로: “내일 입궁하려고 해요.”제왕은 순간 주명취가 뭘 하려는 지 알지 못해 ‘응’외에 아무 말도 못했다.주명취는 갑자기 눈가가 붉어지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 조금 흐느끼며, “제가 잘못한 일은 제가 바로잡아야 지요. 사실 요 며칠 마음속으로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줄곧 부질없는 문제에 매달렸어요. 제가 한 일때문에 당신의 명예가 다치게 될까, 당신까지 아바마마의 처벌에 연루될까 두려운 나머지 그래서, 어떻게든 책임을 피해보려고 온갖 방법을 생각해봤어요. 저는 정말 제가 임신한 줄 알았는데 결과는 요란한 빈 수레였어요. 저는 정말 후회하는 마음으로 일찌감치 입궁해서 보고 드리려고 해요.”주명취는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가까스로 눈물을 참으며, “그래서 저는 내일 입궁해서 죄를 청하기로 결정 했어요. 제가 져야할 책임을 져야죠.”이 말은 제왕에게 의외였다.제왕이 주명취의 눈빛을 보니 아프고, 부끄럽고, 뉘우치며 자책하는 마음 가운데 억지로 강한 척 하는 것이 느껴졌다.제왕은 주명취의 손을 잡고, “안심해. 내가 널 위해 사정할거야.”“응!” 주명취가 눈물을 떨구며 억지로 미소를 짓는 모습이 사람의 마음을 더없이 아프게 했다. “여전히 저를 믿어줘서 고마워요, 제가 오늘…… 저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정말 미쳤나 봐요.”제왕이 너그럽게: “다 각자의 감정이 있는 법이지. 성밖에서 생긴 일이 그렇게 커졌는데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 그런 결과를 나을 줄 생각도 못했지. 그러니 아바마마께서도 당신을 가볍게 처벌할 게요.”주명취는 머리를 숙여 제왕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며: “당신이 절 여전히 믿어주니 고마워요.”제왕은 한동안 주명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비로소 작은 목소리로: “난 당연히 당신을 믿어. 당신은 내 왕비니까.”하지만 그 말을 하는 제왕의 눈은 초점을 잃었다.제왕은 주명취를 믿어야 할지 말지 모르겠다.제왕
원경릉의 호칭과 주명취에 대한 처분원경릉도 오늘밤 파리를 삼킨 기분이다.왜냐면 우문호가 원경릉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원경릉’이라고 직접 이름을 부르자니 분위기가 너무 없고,‘왕비’라고 부르자니 너무 삭막하고 공식적인 느낌이다.‘굥’이……라고 불렀다간 전신에 닭살이 돋아, 닭이 돼서 날아갈 것 같고,‘릉이’는 ‘령이’랑 헷갈린다. 우문호는 ‘령이’가 입에 붙어 있는데다 ‘령이’는 우문령이다.‘릉아’……라는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원경릉이 한 손을 덮었다. 오래 산 부부도 오글거리는 게 싫지만은 않다.최종적으로 우문호는 결정을 내렸다. 원 선생.원경릉의 머릿속에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회장님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손을 잡고 치하하며: “원 선생, 지난 40년 동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오늘 드디어 영광스런 퇴직이군요!”원경릉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원 선생이라니, 이 무슨 고색창연한 호칭이란 말인가, 그녀는 지금 고작 17살 소녀란 말이다.원경릉은 뾰로통하게: “그럼 너는 뭐라고 불러?”우문호는 패기 넘치게: “나리!”원경릉은 상대도 하기 싫은 지 등을 돌리고 홱 돌아섰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손목을 잡고, “화났어? 그럼 뭐라고 부를지 얘기해 봐.”“우문호!”“그럼 난 널 어떻게 불러?”“난 이름도 성도 바뀐 적이 없거든. 원경릉!”우문호는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에이 너무 따분해.”우문호는 하여간 원 선생이 꽤 마음에 들었고, 계속 부르다 보면 언젠가 원경릉도 명실상부한 원 선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그땐 둘 다 늙어서 자식과 손자들에 둘러 쌓여 정말 기쁘고 충실한 인생일 거야.원경릉의 머릿속은 황제 폐하께서 주명취를 도대체 어떻게 처분하실 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하다.우문호가 지그시 누르며, “무슨 생각해?”원경릉이 바로 눈을 감고, “아무 생각도 안 해, 너무 졸려.”“좋아, 우리가 잠자는 건 절대 방해할 수 없지!”원경릉은 문득 최근 집 생각을 한 횟수가 점점
손왕을 만나러 간 원경릉원경릉이: “제왕은 분명 아내와 함께 가겠지?”우문호가 고개를 흔들며, “아니, 같이 안 간데. 제왕비만 간데.”원경릉은 또 의외였다. “이렇게 큰 일에, 아내한테 죽고 못사는 제왕이 같이 안 간다고? 성격이 변했나?”“내 생각에도 이상해. 제왕부에 가서 좀 물어볼까 생각 중이야.” 원경릉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아닌지 우문호가 조심스럽게 원경릉의 안색을 살폈다.원경릉이: “가봐.”이렇게 상쾌하게 답하다니 함정이 있는 게 분명하다. “됐어, 별로 가고 싶지도 않고.”원경릉이: “가라니까!”원경릉은 우문호의 속셈은 상관없고, 그저 주명취가 왜 스스로 죄를 청했으며, 더군다나 제왕이 왜 같이 가지 않는지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온몸이 근질근질해 죽겠다.우문호는 홱 돌아서며, “안가!”안 간다는 데도 굳이 가라고 함정을 파는 걸 보니 사람을 얕잡아 봐도 한참 얕잡아 봤다.우문호는 다음날 관아로 돌아가고 원경릉은 우선 회왕부로 갔다가 이어서 손왕부로 갔다.손왕은 다친 이래 초왕부에 온 적이 없다.원경릉은 일찍 문병을 가지 못한 무례를 그제서야 깨달았다.손왕이 후궁을 맞는 일이 어떻게 진행 되었는지 모르겠다.손왕부에 가니 손왕비가 맞이 했다. 원경릉이: “둘째 아주버님은요?”손왕비는 웃으며: “꽃밭에서 뛰고 계세요.”원경릉이 놀라서, “살 빼시는 거예요?”“네, 지난 번 사건 이후로 계속 자기가 살쪘기 때문이라고, 위급할 때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으니 창피하다며 분발하시는 중이랍니다.” 손왕비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거면 피격 당한 일이 차라리 잘 된 거라고 해야 하나요.”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손왕비가 그다지 낙관적인 태도가 아닌 게, “며칠이나 갈 지 두고 봐야죠.”이렇게 자극을 받아 살을 빼겠다고 결심하고 맹세한 게 어디 한두 번 이어야지 말이다.매년 새해가 되면 머리에 질끈 띠를 두르고 누구보다 단단하게 결심하지만 보름도 못 가서 또 똑같이 포기한다.“손왕 전하는 이제 겨우 상처가 아물었는데
손왕에 대한 손왕비와 원경릉의 생각손왕은 목욕 하고 의관을 정제한 뒤 나타났다.사실 손왕은 스스로가 좀 날씬하게 야윈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아주 약간 빠져 보이긴 하다. 이만한 것도 대단하다.“둘째 아주버님 의지가 아주 대단하신 데요.” 원경릉이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손왕는 바나나 같은 손을 휘휘 저으며, “신체를 단련하니 좋아, 좀 있다가 검술 연습도 해야 돼.”원경릉이 의아해 하며, “검술을 연마하신다고요? 그럼 아주버님 오늘 운동량이 엄청 나신데요, 어쩐지 마르셨더라.”“검술 연습은 필요해, 무공은 꾸준히 정진해야 하는 법이거든.” 손왕이 뻔뻔하게 허세를 부리며, “내가 검술 연습을 제법 하는 편이거든, 고수라고 칭할 만큼은 아니지만 다섯째랑 대련하면 별 차이 없을 게 틀림없어.”손왕비는 차를 마시다가 뿜었다.원경릉은 손왕비를 슬쩍 보고도 그녀가 손왕의 허세를 까발리는 타입이란 걸 알아챘다.우문호의 무공이 어떤 수준인지 원경릉도 모른다. 그녀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하지만 손왕비의 저 반응을 보니 다섯째의 무공이 뛰어난 게 틀림없다.“왜 웃어? 설마 내가 다섯째에 못 미친다는 거야?” 손왕이 노발대발하며 손왕비에게 눈을 흘겼다.“아니요, 어떻게 못 미칠 수가 있어요? 진짜 겨루면 다섯째도 당신의 적수가 못되죠. 당신 엉덩이 한쪽만으로도 다섯째를 깔려 죽게 할 수 있는 걸요.” 손왕비가 진지하게 말했다.손왕은 씩씩거리며 나가버렸다.원경릉이 손왕비에게, “형님은 왜 항상 아주버님을 그렇게 몰아붙이세요? 아주버님이 얼마나 어렵사리 투지를 가진 건데.”손왕비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어렵사리 투지를 가졌다고? 저이가 정말 투지가 있으면 나도 손왕 전하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죠, 그런데 저이는 투지가 없어요. 그저 외모만 살을 좀 빼고 싶을 뿐인데 바깥에 사람들은 저이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죠.”원경릉이 당황해서, “그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요?”손왕비가 한탄하듯, “이 많은 친왕들을, 친왕부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