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 2836화

Author: 유애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08-23 18:00:00
“태자는 태자비 마중 가야 해.” 명원제가 고개를 들어 목여태감에게 말했다. “목여가 짐을 따른 지 얼마나 됐지?”

목여태감이 차 도구를 내려놓고 웃음을 지었다. “폐하, 잠깐 같은데 벌써 30년이나 지났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군. 목여, 짐이 만일 어느 날 궁을 떠나면 태자가 자네 주인이 될 테니 짐에게 하듯이 태자의 시중도 잘 들어줘야 하네. 알겠나?”

그러자 목여태감의 안색이 살짝 변하였다. “폐하께서 어떻게 궁에 안 계실 수가 있습니까?”

명원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목여태감을 흘끔 보고는 답했다. “만약에 말이야.”

“그런 '만약'은 없습니다.”

명원제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왜 그런 '만약'이 없느냐? 짐이 가게 될 날이 분명 올 텐데.”

목여태감이 얼른 꿇어앉아, “폐하, 정말 그런 날이 오면 소인도 일찌감치 가겠습니다. 소인만 남아서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명원제가 벌컥 성을 냈다. ”됐네, 짐이 이렇게 말하니 넌 이렇게 기억하면 돼.”

“소인....” 목여태감이 고개를 들고 당황하며 명원제를 봤다.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그저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소인 명을 받들겠습니다..!”

우문호는 원래 내일 가려고 했으나 궁을 나서는 길에 쉬더라도 역시 먼저 출발하는 게 좋을듯싶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 마차를 서서히 성문으로 출발시켰다.

서일과 탕양이 말을 타고 와서 환송을 해주었다. 둘 다 경호에 가는 줄 알고 있고, 태자비가 전에 경호에서 사라진 것도 알아서 굉장히 따라가고 싶었지만, 태자가 그쪽은 이상한 곳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므로 평생을 그쪽에 머물러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 서일은 분명 못 갈 것이다. 서일에겐 사식이와 키워야 할 사랑스러운 딸이 있기 때문이다.

탕양도 갈 수 없는 게 비록 초왕부에 주인은 자리를 비울 수 있어도 안팎으로 할 일은 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문호와 같은 심정은 현대의 원경릉과 주 재상도 마찬가지였다.

주 재상은 그냥 한 번 해 본 말
Locked Chapter
Continue to read this book on the APP

Related chapters

  • 명의 왕비   제 2837화

    우문호가 경호로 간 뒤 명원제는 이미 퇴위 조서를 준비해 우문호가 돌아오면 바로 성지를 대대적으로 반포할 예정이었다.매화장은 이제 명원제의 소유가 되었으며 성문 입구로 경성에서 거리가 가까워, 명원제가 퇴위한 뒤 비빈들을 데리고 거기서 안빈낙도를 즐길 수 있었다. 물론 비빈들이 원하지 않으면 태비의 신분으로 궁에서 살아도 되었다. 명원제는 사실 전에 한 번도 퇴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나 막상 생각하고 나니 도무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 당장이라도 조정 일을 정리하고 싶었다. 명원제 명의로 태자 사람을 고위직에 선발해 놓아야 했다. 그래야만 나이 든 신하의 반론을 누를 수 있고 그들이 태자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거나 비방하지 못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명원제가 매화장을 사들일 때 상당 기간을 황제로 있어 개인재산이 약간 있었다. 지금 여섯째가 내탕고를 관리해 명원제는 한 몫 챙길 수 있지만 국고는 절대 건드릴 수 없는 게 다섯째가 뜻을 펼치게 하도록 남겨줄 것이기 때문이었다.그래서 백만 냥을 모으는데 약간 부족했다. 하지만 다행히 명원제에게는 부유한 사위와 며느리가 있지 않은가. 바로 이리 나리와 미색이었다.두 사람을 궁으로 불러들여 많이도 아니고 한쪽에 20만 냥씩 달라고 하자 미색은 통쾌하게 내주었으나 이리 나리는 명원제가 매화장 사는 것을 반대했다.이리 나리는 느낌이 왔다. 안풍 친왕은 자신을 수십 년 따라온 사람들이 적절히 자리 잡을 수 있는 돈을 남겨둔 채 홀랑 날아버릴 것을 말이다.그래도 안풍 친왕은 어쨌든 가기로 했기에 이리 나리는 달갑지 않았으나 명원제가 이미 결정한 일로, 하는 수 없이 결국 명원제에게 은자를 내놓았다.매화장 매매를 마치고 은자가 손에 들어오자, 안풍 친왕은 은자를 버려두고 검은 옷을 입은 신하들이 나간 틈에 경호로 바로 달려가 우문호와 마주치지 않도록 경호에 숨었다.그리고 우문호 일행이 경성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련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말을 달려 경호로 왔다. 먼지가 뿌옇게 날리며 노기가 충

    Last Updated : 2024-08-24
  • 명의 왕비   제 2838화

    모두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호수에 뛰어들었고, 마침내 희상궁 차례가 되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다리가 떨렸다. 그 모습을 본 서일이 다급하게 외쳤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으니 절 꽉 잡으세요. 던져 드릴게요!”희상궁이 얼른 서일을 잡자 서일이 희상궁을 안고 호수에 던졌는데 희상궁이 서일의 목에 깍지를 낀 채 제대로 손을 놓지 못해 호수에 떨어지는 순간 서일의 경악에 찬 비명소리가 들렸다. “손 놓으시라니까요....”“풍덩!”탕양이 화들짝 놀라 호수를 보는데 서일이 보이지 않았다. 잔잔한 물결 아래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듯 온통 고요함 뿐이다. 나무아미타불!“여기 어디야? 나는 어디지? 도련님 어디 계세요?” 칠흑 같은 터널 안에서 들리는 건 서일의 공포에 휩싸인 목소리 뿐이다. 우문씨 집안 여섯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속으로 ‘젠장’하고 생각했다. 서일이 따라온 것이다.“태자 전하, 황태손 저하....” 서일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놀란 나머지 바보처럼 꽥꽥 소리를 질렀다. “어디 계세요? 여긴 어디예요…?”경단이가 서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서일 삼촌 우리 여기 있어요. 시끄럽게 하지 마세요, 형이 시간을 계산할 거고, 조금 있다가 빛을 볼 수 있어요. 앞으로 가세요. 아이고, 좀 빨리 걸으세요. 삼촌때문에 몇 걸음이나 지체했다고요.”“전.... 전 돌아 가야 해요. 헤엄쳐서 돌아가면 될까요?” 몸에 힘이 빠져 비틀거리는데 순간 눈앞에 빛이 나타났으나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저 눈이 침침해진 건가 싶었다.“여기선 다시 못 돌아가니 저희랑 가요!” 경단이가 마음이 급해서 말하자 서일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전 안 가고 싶어요, 가기 싫다고요!”우씨 집안 여섯 남자는 꾹 참고 있다가 일제히 뒤를 돌아 소리쳤다. “우리도 널 데려가기 싫어.”우레같은 한 마디에 서일의 질질 짜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억울하고 뭐가 뭔지 모르는 가운데 그들을 따라갔다. 계란이 마저 불만인지 ‘잉’하는 소리를 냈다.희상궁은 오히려 서일보다 냉정

    Last Updated : 2024-08-24
  • 명의 왕비   제 2839화

    자동차의 강렬한 빛이 다가오자 떡들은 기뻐하며 손을 흔들고 폴짝폴짝 뛰었다. “여기요, 여기예요!“두 대의 차가 헤드라이트로 일대를 환하게 비췄다. 서일이 자기도 보겠다며 태자를 밀쳤는데 강렬한 빛에 그만 다리에 힘이 풀리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엉엉 울부짖었다.원경릉이 먼저 차에서 내려 서일의 통곡 소리를 듣고는 머리 아프다는듯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그러고는 신경 쓰지 말자 생각하고 얼른 우문호와 계란이에게 가는데 아이들이 먼저 달려왔다. 원경릉이 무릎을 굽히고 아이들을 안아주자 저마다 엄마를 외치는데 고막이 터질정도로 컸다. 그들은 기쁨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눈물에 아롱져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 우문호가 딸을 안고 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눈치 빠르게 엄마가 일어날 수 있도록 비켜주었다.우문호가 한 손으로 딸을 안고 한 손으로 원경릉의 눈물을 닦아주며 부드럽고 다정한 말투로 눈가가 붉어진 원경릉을 바라봤다. “단발머리 멋진데, 예뻐!”원경릉은 가발을 썼다. 머리카락이 이미 자라서 스포츠머리가 되었지만 희상궁과 아이들이 놀랄까 봐 가발을 썼는데 전부 귀까지 오는 단발이라 아주 상큼 발랄했다.원경릉은 아무리 눈물을 닦아도 자꾸만 흘러내렸다. 그리고 목이 멘 소리로 우문호에게 말했다. “당신은 살이 빠졌네!”“당신이 곁에 없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빠졌나 봐.” 우문호가 눈물을 참으며 미소를 지었다. 딸을 원경릉 품에 건네주었다. “딸 좀 봐.”그러자 계란이가 눈을 뜨고 달콤하고 순수한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봤다. 기뻐서 손발을 꼼지락거리는 것이 꼭 알아보는 것만 같았다.원경릉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한 달도 못 돼서 떼어놓고 온 딸이 이제 두 달을 훌쩍 지나 신생아 티를 벗고 예뻐져 있었다. 눈매가 우문호를 닮아 아름답고 잘 빠졌다.“아, 태자비 마마십니까?”감정이 복받치는 분위기가 서일의 화들짝 놀라 부르는 외마디에 산산이 깨져버렸다. 서일은 입을 틀어막고 놀란 얼굴로 원경릉을 바라봤다. 위아래를 몇 번이고 훑어보더니 태자비인

    Last Updated : 2024-08-25
  • 명의 왕비   제 2840화

    꼬마 봉황이는 증조할아버지가 좋아 눈을 빛내며 환하게 웃었다. 봉황이가 이렇게 애교를 부릴수록 태상황의 심장은 살살 녹아내렸다.소요공이 차 문을 열고 나오며 자랑했다. “차에 타, 우리 새 차 멋있지?”“이게 차라고요?” 서일이 화들짝 놀라며 먼저 다가가 커다란 차를 살폈다. ‘여기 얼마나 탈 수 있지? 뭐로 끄는 거야?’ 서일은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이 차는 원경주가 직접 차를 바꾼 게 아니고 결혼식 관해서 상의할 때 산 관광버스였다. 삼 선생님이 산 것으로, 이 차만 있으면 여행 갈 때 차 몇 대를 움직일 필요 없이 한 대로 끝낼 수 있어 편하기 때문이었다.오늘 우문호 일행을 마중 오는 것도 원래 원경주 혼자 오면 되는데 태상황 일행이 굳이 같이 가겠다고 한 것이다.그리고 원경릉은 처음에 관광특구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도중에 백운산으로 목적지를 바꾸라는 양여혜의 전화를 받고 다른 차로 이곳에 왔다.서일은 무시하고 소요공은 사람들을 차에 타라고 불렀다. 태상황도 가이드 역할을 하며 미소를 띤 채 원경릉 할머니에게 말했다. “주디, 자네 아들을 만났어!”원경릉 할머니도 미소로 답했다. “쓸 만하죠?”“좋더군!” 그러고는 태상황이 어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레이디 퍼스트!”드라마를 그냥 본 게 아니었다.할머니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이렇게 일행은 아파트 단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일은 가는 내내 멀미가 나는지 머리를 창밖으로 내밀었다. 토하지만 않았어도, 가는 내내 풍경을 보며 이곳의 인문적 특징에 대해 배우며 최고로 즐길 수 있었는데 말이다.태상황이 우문호에게 구시렁거렸다. “어쩌자고 이놈을 데려온 거야?”“자기가 직접 뛰어든 거예요!” 우문호도 열받긴 마찬가지였다.“어떻게 뛰어내릴 수가 있어? 말이 돼야 말이지.” 태상황이 몰래 서일을 째려봤다. 서일은 차에서 내려서도 계속 바보처럼 둘러봤다. ‘이렇게 차가 많은 거 처음 보냐?’우문호는 머리가 아팠다. “됐어요, 말을 말죠. 황조부는 이곳에 좀 익숙해지셨나요? 주

    Last Updated : 2024-08-25
  • 명의 왕비   제 2841화

    거의 2개월여 간의 헤어짐으로 인해 가슴이 미어질 듯 그리웠다. 얼굴을 마주한 순간엔 바로 실감이 나지 않더니 지금 이렇게 꼭 끌어안자 비로소 마음이 놓이며 안정감이 들었다.“꼭 꿈만 같아!..” 우문호가 원경릉의 귓가에 속삭였다.그러자 원경릉이 우문호의 입술에 키스하는데 미소 띤 입꼬리가 사람을 미치게 했다. “이렇게 하면 좀 현실감이 생겨?”우문호가 그윽한 눈빛으로 답했다. “아직 현실감이 좀 부족한데, 다시 그거 해줘….”원경릉은 부끄럽다는 듯이 입술로 우문호의 입을 막았다.잠시 후 밖에서 만두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빠, 우리 들어가도 돼요?”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벌컥 열려 대답하거나 반응을 보일 틈이 전혀 없었다.그렇게 다섯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호기심에 가득한 눈빛을 장착했다. “아빠, 엄마, 방에서 뭐 하세요?”원경릉은 금세 침대에 앉아 책을 들고 있었고, 우문호는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아이들이 들어오는 걸 본 우문호는 온화하면서도 묘하게 원한 맺힌 얼굴로 답했다. “멀미가 좀 나서 기혈을 좀 가다듬고 있었어.”원경릉 엄마가 마침 밖에서 사위의 말을 듣고 얼른 답했다. “멀미 나? 지금 꿀물 타 줄게. 자네랑 저 키 큰 총각이랑 한 잔씩 해. 이리 와.”키 큰 총각은 바로 서일로, 상태가 나를 좋아져서 원경주의 부축을 받고 자리에 제대로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서리맞은 가지처럼 흐느적거리며 소파에 기대 있었는데 우문호는 멀미라는 말에 속으로 좀 안도감이 들었다.우문호가 일어나 장모에게 미소를 짓고 허리를 굽혀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뭐 하러 들어왔어?”경단이가 말했다. “엄마랑 얘기하려고요. 우리도 엄마 오래 못 봤잖아요.”찰떡이가 원망 섞인 말투로 끼어들었다. 맞아요. 아빠는 오자마자 왜 우리 엄마 숨기고 그래요‘!”쌍둥이는 원래 말하는 걸 귀찮아 하는지라 빠른 행동을 보여줬다. 바로 침대로 기어 올라가 원경릉의 품에 안기며 재빨리 가운데 자리를 점령했다. 칠성

    Last Updated : 2024-08-26
  • 명의 왕비   제 2842화

    그렇게 말하니 서일도 이해가 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동정의 시선으로 소요공을 쳐다봤다. 온 지 그렇게 됐으면서 이렇게 간단한 관계조차 파악을 못 하다니 안타까웠다.하지만 소요공의 한마디만큼은 잘 기억해 두었다. 바로 여기에서 어떤 신기한 것을 봐도 큰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것, 촌스럽고 상식 없다며 사람들이 흉본다고 했다.그래서 불을 안 때도 밥이 저절로 되는 솥을 봤을 때도 묻지 않았다.희고 뚱뚱한 측간에 물이 약간 담겨 있는 것을 보고도 묻지 않았다.원경주가 얼굴과 손을 씻으러 데리고 가 수도꼭지라고 불리는 물체를 돌리자 물이 나올 때도 묻지 않았다.태자비의 의붓아버지가 작은 물건을 들고 뭐라고 말해도 서일은 묻지 않았다.매번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티비를 켜 안에서 작은 사람들이 나오며 말하는 것을 보자, 서일은 너무나도 놀라 결국 참지 못하고 펄쩍 뛰어올랐다. “사람을 어떻게 저기에 집어넣은 거죠?”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조용해지고 티비 속 소리만 울려 퍼졌다. “쟤 돌았어!”태상황은 무표정하게 일어나 소리쳤다. “과인은 가서 좀 쉬겠네!”주 재상과 소요공도 바로 일어나며, 멍하니 있던 희상궁을 끌고 들어갔다. 희상궁은 호기심을 그다지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매번 신기한 것을 접할 때마다 똑똑하게 설명해 주는 주 재상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서일은 좋은 해설자를 만날 복이 없었다.이윽고 만두가 서일을 앉히더니 말했다. “서일 삼촌, 앉아보세요. 할 말이 있어요.”서일이 정좌하고 앉아 귀를 쫑긋 세우고 가만히 만두의 설명을 들었다.만두의 설명은 간단명료했고, 심지어 물어보는 것은 그때그때 바로 설명해 주었다. 서일이 밖에 나갔을 때 신기한 걸 보고 꽥꽥 소리 지르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었다.이렇게 우문호와 원경릉은 잠시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으나, 방에 불쑥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아예 손을 잡고 산책하러 나갔다. 이러면 만에 하나라도 남의 방해를 받을 일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Last Updated : 2024-08-26
  • 명의 왕비   제 2843화

    태상황 일행은 2시간만 자고 일어났다. 우문호가 돌아와 태상황에게 휘종제에게 언제 출발할지 묻자고 하자 잠시 생각해 보더니 답했다. “일단 오늘 가지 말고, 내일 가자.”태상황은 바로 휘종제에게 전화해 우문호 일행이 왔다는 얘기는 하지 않고 내일 가겠다며 식사 준비를 근사하게 해달라고 전했다.휘종제가 알았다고 하며 물었다. “다섯째와 애들 왔어?”“안 왔어요.” 태상황이 말했다.휘종제가 약간 실망한 듯 보였다. “금방 온다고 안 했어? 왜 아직 안 와? 오늘 밤에 오나?”“아직 모르겠어요. 나중에 상황을 보고요!” 태상황이 말했다.“그럼 오늘 밤에 오면 밤에라도 날 불러, 애들 보고 싶어 죽겠어.” 휘종제가 말했다.태상황이 알았다고 하고는 전혀 켕기는 기색이 없는 말투로 전화를 끊었다.‘태상황이 애들을 데려가고 싶지 않은 건 아니겠지.. 설마?’태상황이 얼마나 오래 아이들을 못 봤을까? 꼬마 봉황이는 몇 번 안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삼대 거두가 어르고 있어 꼬마 봉황이는 기분이 좋았다. 원경릉 엄마가 전에 공주 침대 같은 영아용 침대를 사놓아, 꼬마 봉황이를 바디수트로 갈아입히고 포대기를 빼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 늙은이에게 손발을 꼼지락거리며 귀여운 웃음을 보냈다.불빛 아래 구슬처럼 빛나는 눈망울은 포도알 같았고, 바람만 불어도 다칠듯한 피부는 솜털처럼 보드라웠다. 분홍색의 작은 입술에 웃음이 방긋 터지는 모습에 삼대 거두는 눈도 감지 않고 한 시간 내내 바라볼 만큼 매력적이었다.태조부가 편애하는 것도 아이들이 이해 할 수 있응 정도의 귀여움이였다. 하지만 여동생에 대해서만 그렇고 다른 사람한테는 아니었다. 어쨌든 다섯 오빠도 여동생이 너무 예뻐서 어쩔 줄 몰랐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사람이 여동생을 좋아하기를 바랄 뿐이였다. 외할머니가 분유를 타고, 태상황이 먹였다. 분유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꼬마 봉황이가 막상 분유를 먹기 시작하자 먹어봤다는 듯 두 볼이 빵빵해지도록 분유를 집어 삼켰다. 배가 굉장히 고팠던 모양이었다.

    Last Updated : 2024-08-27
  • 명의 왕비   제 2844화

    “과인은 안 피웠어.” 태상황이 호언장담했다. “냄새 맡아봐. 담배 냄새 안 나지.”“어? 입에 향수 뿌리셨어요?” 소요공이 싫은 내색을 했다.“이건 향수가 아니고 껌이라는 거야. 과인이 경주한테 사 오라고 했지!”잠시 후 주 재상이 벌떡 일어났다. 자기에게는 이제 희야가 있으니까 이들과 말싸움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서일도 깜박 잠들었다가 소란스럽게 옆집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 일어났다. 태상황 일행도 보이지 않는 게 아마 그쪽에 있는 것 같다.방이 없어서 원경주가 서일을 ‘거실 장군’으로 배치해 태상황 일행을 보호할 수 있겠냐고 해서 서일이 동의했다. 소파가 정말 편했으니까.서일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문 앞에 갔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몹시 당황했다. “누구 있어요? 거기 누구 없나요?”황태손은 왜 문 여는 법을 안 가르쳐 줬을까?서일은 차에 대해서는 알지만 문 여는 방법은 아직 몰랐다.만두가 와서 문을 열어주자 서일이 만두 얼굴을 보고 순간 울 뻔했다.만두가 서일의 손을 끌며 다정하게 말했다. “서일 삼촌, 무서워하지 마요, 여기는 안전하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절 불러요. 전 들을 수 있어요.”서일은 망망대해에서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한 것처럼 감동이 벅차올라 만두를 끌어안았다. “널 예뻐한 보람이 있었어.”만두가 서일의 목을 감싸고 방긋 웃었다. “앞으로도 서일 삼촌은 계속 절 예뻐해야 해요. 자, 가요. 외삼촌이 밀크티를 주문해 주셨어요!”서일이 만두를 내려놓고 손을 잡고 같이 저쪽 집으로 들어갔다.그쪽은 이미 혼사를 상의 중으로 태상황이 성대하게 하자고 하는 바람에 휘종제 손님이 오는 것에 대해 우문호는 걱정스레 말했다. “이번 혼례의 중점 사안은 사람이 얼마나 오냐가 아니라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전부 계시면 충분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왔다가 당황스러운 실수라도 하는 날엔…. 원 선생이 낯설어할 겁니다. 어쨌든 다들 서로 모르는 사이니까요.”태상황이 말했다. “과인은 좀 성대하게 하자고

    Last Updated : 2024-08-27

Latest chapter

  • 명의 왕비   제3125화

    약도성의 건물 대부분이 무너져 백성들은 임시로 지은 오두막과 초가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폐허로 변한 도성은 눈에 보이는 곳마다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원경릉은 마음속 깊이 안타까움을 느꼈다.택란의 뜻으로 중증 환자들은 모두 저택으로 옮겨졌다. 원경릉은 계란이의 결정이 매우 옳다고 생각했다. 중증 환자들은 그녀와 몇몇 의원이 책임지고 돌보았고, 나머지 의원은 경증 치료를 맡았다.택란은 엄마 곁에 머물며 환자를 돌보는 것을 도왔는데, 기본적인 의술을 알고 있어서 소독과 붕대 감는 일을 도왔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통증이 심해 참기 어려웠고, 진통제를 먹이거나 진통 주사를 놓았다. 택란도 주사를 놓을 수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쉬지 않고 바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본 환자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그들은 궁에서 자신들의 생사를 진정으로 걱정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황후마저 직접 왔으니, 예전의 대립과 적대감은 유치한 웃음거리로 느껴졌다.저녁 무렵,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왔지만, 이야기를 나눌 여유도 없이 서로 포옹한 뒤 다시 각자 사람들을 구하러 나섰다.백성 중 자발적으로 음식을 만들고 약을 끓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저택 내 물자는 부족했으나 주변의 도움이 끊이질 않았다. 호명은 사람들을 조직해 식량과 의복을 나누어 주었다. 지금의 약도성엔 인간의 이기심이 한순간에 사라진 듯했다.황후가 직접 약도성에 온 덕분에 서북 지역의 신하들도 직접 의원과 물자를 이끌고 약도성에 와서 돕기 시작했다.약도성은 전례 없는 관심을 받았고, 이는 약도성 백성들이 다섯 도시 중 가장 빠르게 조정을 인정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재난 이전의 상태로 빠르게 회복하는 데만 집중했다.재난이 발생한 지 반달이 지나면서 발견된 것은 모두 희생자뿐이었다. 인원을 파악한 후 한곳에 모아 장례를 치렀다.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5만여 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이 숫자는 매우 끔찍했지만, 택란의 사전

  • 명의 왕비   제3124화

    북당의 황후가 의원을 이끌고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믿지 않았다. 약도성의 백성들조차 믿을 수 없었고, 감히 믿을 엄두도 없었다.우문택란이 이미 약도성에 왔지만, 고작 여덟 살짜리 아이에 불과했다. 다들 그저 그녀가 약도성에 놀러 왔고 수천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왔다고 생각했다. 이후 어린아이답지 않은 그녀의 비범한 능력이 증명되었다. 그녀는 약도성의 성주로서 약도성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약도성은 초토화되었고, 재건하려면 조정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북당의 조정이 약도성을 방치하고 자연적으로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어도 어쩔 수 없었다. 약도성 백성들은 줄곧 조정을 적대시하였기 때문에, 조정이 이들을 구할 이유가 없었다.그런데 황후가 직접 약도성으로 향한다는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약도성은 조정이 이렇게까지 신경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지진 발생 열흘째 되던 날, 원경릉 황후가 이끄는 의원들이 약도성에 도착했다. 그들은 밤낮없이 말을 갈아타며 전력으로 달려왔다. 약도성의 백성들은 이 소식을 듣고 흥분하며 황후께서 약도성에 오신다고 얘기를 전했다.사람들의 생각은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지진 이전까지만 해도 조정을 적대시하고 북당을 적국으로 여겼던 약도성 백성들이, 이제는 원경릉을 환영하며 열광적으로 맞이했다. 이는 택란이 지진을 미리 알아차린 것과 구조 활동 덕분이었다.원경릉은 백성들의 뜨거운 환영을 예상하지 못했다. 말을 타고 앞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었고, 그녀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어머니!”군중 속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경릉은 단번에 딸을 찾아내고 말에서 내려 달려갔다. 택란은 엄마 품에 안기자마자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어머니,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너무 많아요!"택란이 흐느끼며 말했다.원경릉은 딸이 이렇게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원경릉은 딸을 품에 꼭 안

  • 명의 왕비   제3123화

    택란은 어릴 적부터 화염을 다루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였지만, 그녀는 내면의 감정을 철저히 억눌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화염을 제어하지 못할 위험이 있었다. 스승님을 따른 후, 스승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약점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의 틈새가 생기면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항상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모든 일을 담담히 대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진심 어린 감정을 흔들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그녀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꼬마 봉황이 날개를 펼쳐 그녀를 품에 안고 위로해 주었다.그들은 수년간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성장해 왔고,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잠시 후, 택란은 다시 구조 현장으로 나갔고, 여전히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섰다.위왕과 안왕은 어린 조카의 침착함에 깜짝 놀랐다. 겨우 여덟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아이의 천성은 어디로 간 것인가?그들은 택란이 애초에 아이로서의 천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태어난 후, 조금이라도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는 빠르게 세상을 이해하며, 지혜롭고 노련한 어른처럼 모든 것을 맞서야 했다.사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그녀를 한두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사랑하고 아껴주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기대나 요구가 없었으며, 능력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그녀의 모든 행동을 걱정하고 감시하지 않았다.아버지 앞에서 그녀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약도성의 일이 안정된 후, 그녀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돌아갈 계획이었다. 이번 약도성 방문은 그녀에게 있어 단순한 놀이가 아닌 실습이었다. 이곳은 그녀의 의지와 감정을 단련할 수 있는 장소였고, 실제로 그녀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구조 작업은 계속되었고, 지진이 발

  • 명의 왕비   제3122화

    한 마을 주민이 눈물을 닦으며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원 같은 건 절대 없을 것이오. 조정은 우리를 모조리 죽이길 바라오. 우리가 죽어야 조정은, 이 약도성을 완전히 삼킬 수 있소.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소.”택란은 화가 나서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내가 여기에 왔잖냐! 빨리 계속 파시게!”주민이 그녀를 힐끔 보며 물었다.“웬 꼬마가, 넌 누구냐?”택란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어둠 속이라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여기 있는 걸 보고 다들 의아해했다.“약도성의 성주, 우문택란이다!”그녀는 단호하게 말한 뒤, 산사태가 난 지역을 향해 다시 걸어갔다. 작은 몸집이 시선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작아 보였다.황실의 공주라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얼어붙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공주가 이런 곳에 직접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공주는 저택 안에서 잘 보호받고 있어야 할 존재다.그녀는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해 접근한 곳의 흙을 한 겹씩 옮겨내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구조 요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가 급히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약도성의 지진은 강북부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낡은 집도 무너졌지만, 심각한 피해는 없었다. 약도성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위왕과 안왕은 신속히 구조 병사를 파견했다. 그들은 택란이 약도성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들 여태껏 택란이 스승과 함께 떠났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의 네 오빠들은 바로 병사를 데리고 약도성으로 향했다. 지진 발생 12 시진 후 약도성에는 8천 명 이상의 병사가 합류했다.약도성의 백성은 조정이 지원군을 보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조정이 약도성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든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과거에도 가뭄, 메뚜기 떼, 산사태 등의 재난이 일어났지만, 북막조정은 몇 포대의 쌀만 보내며 형식적인 구조를 했을 뿐이다.약도성

  • 명의 왕비   제3121화

    지진이 발생하기 전, 호명과 주 아가씨는 약도성 중심부에서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새벽녘은 사람들이 가장 피곤할 시간이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난 백성들은 분노했다. 그중 한 집안은 도축업을 하는 홀아비가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새벽 무렵에야 돼지를 잡고 고기를 나눠주고 돌아와 잠자리에 든 참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잠에서 깨어난 데다 아이까지 깨우니,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옆집 사람은 칼을 들고 나가 저들을 쫓아내면 다시 잘 수 있다고 부추겼다. 남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상황이라 아들을 방으로 데려다 놓고, 즉시 칼을 들고 나가 주 아가씨와 맞섰다.그가 칼을 휘두르며 집안 식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 그 순간, 지진이 발생했다. 그들은 자기 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먼지가 자욱했고, 곁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옆집 역시 무너졌고,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집 처마 아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깔려 있었다.“아들! 아들아!”홀아비는 그제야 안으로 데려다 놓았던 아들을 떠올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은 이미 완전히 무너졌다. 겨우 세 살밖에 안 되는 아들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희박했다.그는 미친 듯이 벽돌과 흙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주 아가씨와 호명도 서둘러 도왔다.지진은 단 몇 초 만에 일어났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고, 그 결과 무너진 집에 깔린 백성들이 매우 많았다. 약도성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사방에서 울부짖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평소 조정과 맞서던 이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무력해 보였다. 그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다.홀아비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다들 함께 벽돌을 치우고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도구가 없어서 맨손으로 작업해야 했다. 주 아가씨의 손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흙벽을 밀어내고 벽돌을 옮겼다.반 시진 후, 주 아가씨가 마침내 아이를 안고 왔다. 아이는 다리를 크게 다쳐 엉엉 울고 있었다. 홀아

  • 명의 왕비   제3120화

    “그럼... 호명, 가십시다!”주 아가씨는 왠지 모르게 택란의 말을 믿었다.호명도 주 아가씨의 말을 듣고 동의했다.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지진이 생기지 않으면 백성들을 귀찮게 한 정도로 끝날 테지만, 정말 지진이 발생한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게다가 약도성의 백성들은 조정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더 미움을 사도 중요하지 않다.일행은 즉시 돌아가 병사들을 소집해 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백성에게 넓은 곳으로 대피하라고 알렸다.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 백성은 역시나 원치 않았다.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병사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성주가 단호하게 명령한 일이었기에, 백성들은 마지못해 끌려 나갔다.그러나 문제는 강제로 밖으로 끌어낸 사람들을 계속 감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떠난 후 많은 백성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게다가 일부 폭도들은 이를 계기로 병사들과 정면으로 맞서며 심각한 충돌을 일으켰다.부분 병사가 백성들이 소란을 피우는 마을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마을은 거의 조정을 적대시하는 곳이었다. 너무 외진 곳이고 여인도 적은 곳이라, 이곳 남자들은 혼사도 치르지 못하고 가난하게 지내고 있었다. 하루 세 끼를 유지하기조차 힘들었고, 금나라의 선동이 더해져 이 지역의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 이 몇몇 마을에서 15세 이하의 아이들은 열 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병사들이 징과 북을 울리며 백성을 깨우자, 폭도들이 화를 내며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20여 명의 병사들이 이들에게 압도당해 심하게 얻어맞았다.결국 병사들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약도성에서 대피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약 만 명 정도였다. 대부분 병사가 떠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조정이 백성을 괴롭힌다고 욕하며 약도성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에 주 아가씨가 분노를 참지 못해 말했다.“성주께 말씀드려서 집을 전부 불태워버리자고 해야겠습니다! 정말 너무합니다.”호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명의 왕비   제3119화

    저녁 무렵, 그들 일행은 출발했다.약도성의 밤은 전혀 활기가 없었다. 해가 지고 나면 거리에서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수년간 치안이 매우 나빴다. 비록 저녁에 병사들이 순찰하고 있지만, 백성들은 이미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덕분에 이번 외출은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약도성이 가난하다 보니, 부유한 이들의 저택만 튼튼할 뿐, 대부분의 집은 돌집이나 흙집, 나무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초가 거의 다져지지 않은 상태여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대부분의 건물이 버틸 수 없을 것이다.택란은 이 점이 걱정되었지만, 아직 지진이라 단언할 수 없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길한 예감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그녀는 꼬마 봉황에게 물어보았고, 꼬마 봉황이 하늘로 날아올라 몇 바퀴를 돌며 주변을 살폈다. 새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을 본 꼬마 봉황은 택란에게 알렸다. 그녀의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다.택란은 호명과 주 아가씨에게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으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호명과 주 아가씨는 믿지 않았다. 약도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만 지진이 발생하였다.주 아가씨가 말했다.“오늘 밤하늘을 보니 지진운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신 것 같습니다.”“지진운은 믿을 수 없소. 강가로 한번 가보시게.”이곳에는 바다가 없고, 산을 따라 흐르는 큰 강만 있었다.다들 풍등을 들고 강가로 향했다.강물의 흐름은 빠르지 않았고, 눈에 띄게 가뭄의 흔적이 드러나 있었다. 물 높이는 겨울이나 봄에 비해 많이 낮아졌고, 어떤 곳은 강바닥이 드러나 있었다.택란은 풍등을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강물은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수심이 얕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이곳에 샘물이 있소?”택란이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있습니다. 여기서 2리 정도 떨어진 곳에 큰 샘물이 하나 있는데, 근처 주민들이 그곳에서 물을 떠다 마십니다.”“좋소. 가보겠소!”택란이 말했다.일행은 다시 큰 샘물로 향했다. 주 아

  • 명의 왕비   제3118화

    그녀는 부엌으로 가서 부지깽이를 찾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뱀이야! 부엌에 뱀이 들어왔다! 어서 뱀을 잡아! 성주께서 놀라시면 안 된다!”몇몇이 부엌으로 몰려가 한바탕 소동 끝에 뱀 세 마리를 잡아냈다. 비록 정원에 뱀이 나타나지만, 뱀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어찌 집 안으로 들어온 걸까?택란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이오?”공연이 서둘러 대답했다.“성주님, 방으로 돌아가십시오. 여기 뱀이 있습니다.”“뱀이 집 안으로 들어왔소?”택란은 뱀을 힐긋 보았다. 그 뱀은 독성이 없는 풀뱀이다.“어제 요리사가 쥐가 많이 돌아다닌다고 했는데, 오늘은 뱀이 여기저기 기어다니네. 정말 이상한 일이오.”“별일 아닙니다!”공연은 손을 씻고 와서 말을 이었습니다.“제가 성주님을 방으로 모시겠습니다.”택란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직 정오였고, 태양이 세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약도성에 예전에 지진이 난 적이 있었느냐?”택란이 고개를 돌려 요리사에게 물었다.요리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지진이요? 땅이 움직이는 것을 말씀하십니까?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큰 지진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땅이 흔들리고 산이 흔들려서 집도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셨습니다.”“성주님 겁주지 말고 할 일 하시오.”공연은 택란이 놀랐을까 봐 걱정하며 요리사에게 떠나라 했다.택란은 방으로 돌아간 뒤, 꼬마 봉황을 불렀다.뱀, 곤충, 쥐, 그리고 새는 지진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꼬마 봉황은 영적인 새이기에 더더욱 그렇다.꼬마 봉황이 조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꼬마 봉황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 큰일이 닥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설마 지진이 나는 건 아니겠지?”택란은 바닥에 엎드려 귀를 대고 지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그녀의 청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기에, 지진이 오고 있다면 땅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하지

  • 명의 왕비   제3117화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생각으로, 택란은 이에 관해 세게 명을 내렸다.성내 백성들은 택란이 이 도시의 성주이자 진국공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택란이 낭산의 도적들을 토벌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낭산 도적들을 전멸시켰다는 것을 누가 믿을까?이곳의 백성들은 평생 황실 사람을 본 적 없었다. 지금 이렇게 직접 마주하자, 감정이 폭발하여 약도성을 빼앗겼다는 이유로 황실에 대한 깊은 원망을 드러냈다.약도성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백성은 백여 명에 불과했고, 셈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이렇게 폐쇄적인 환경에서 원망은 쉽게 극대화되었다.특히 금나라 사람들이 부추기자,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처음엔 택란도 외출을 하곤 했지만, 적대적인 감정이 격렬해지자 외출할 때마다 돌멩이가 날아왔다. 다행히 호명이 그녀의 안전을 염려해 경호를 강화하면서 크게 다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양두는 백성들과 다투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자네들이 원망해야 할 대상은 북막의 황실과 진가요!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북당을 침략하려다 패배하는 바람에 약도성을 내놓은 것이오. 다들 그때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소? 전쟁을 지지해 놓고 이제 와서 북당을 원망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소!”양두는 기세가 등등했고 욕도 도리가 있어, 백성들을 순간 잠잠하게 했다. 하지만 이내 돌멩이가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고, 양두는 머리를 감싸며 도망쳐야 했다.이들은 이성적으로 도리를 따질 사람이 아니었다.호명은 상황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해, 택란에게 경성으로 돌아가길 권유했다. 하지만 택란은 단호히 거절했다. 첫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십 년이 지나도 변화는 없을 것이고, 약도성은 영원히 이 상태로 남을 것이다.호명은 사고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호를 더욱 강화했다.그는 주 아가씨에게도 특별히 경계를 강화해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