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안 났다니까? 맹세해!” 원경릉이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래 그럼 됐어.” 우문호는 두 손으로 그녀를 껴안았다.원경릉은 가만히 그를 올려다보았다. “화가 났든 안 났든 지금은 괜찮다는 거잖아. 그럼 됐어.”“…….”“할 건 마저 해야겠지?”우문호는 원경릉을 번쩍 들어 침상 위로 던졌고 원경릉도 아까와는 다르게 반항하지 않았다.*제왕과 원용의의 방 안에는 냉기가 흘렀다. 두 사람은 어쩌다가 싸우게 됐는지 영문도 모른 채 서로에게 화가 나있었다. 원용의는 침상에 가만히 앉아 있었고 제왕은 뒷짐을 지고 왔다 갔다 하면서 시를 읊었다. 그녀는 제왕이 일부러 그녀의 주의를 끌기 위해 시를 읽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사식이랑 잘게요.” 원용의가 침상에서 일어났다. 제왕은 후다닥 문으로 달려가 그녀를 막아섰다. “가지 마.”“이거 비켜요!” “도대체 왜 화가 났는지 말을 해줘야 알지! 다섯째 형님 내외랑 너랑 무슨 상관이라고 너까지 덩달아 나한테 성질을 부리는 거야?”“나 화 안 났어요.” 원용의가 바닥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제왕은 차가운 원용의의 표정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용의야, 본왕이 너에게 믿음을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너도 느끼는 게 있을 거야. 하지만 가끔 네가 이럴 때면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딱 한 번만 물을게.”“……”“진심으로 나를 떠나고 싶은 거야?”원용의는 제왕이 이별에 대해 묻자 깜짝 놀라 머리가 멍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녀도 자존심을 굽힐 수가 없었다. “맞습니다! 난 당신을 떠나려고 해요. 그래도 당신은 아무렇지 않겠죠? 우리는 진짜 부부도 아니니까요.”제왕의 어깨는 축 내려앉았고, 얼굴에는 실망과 슬픔이 가득했다. “넌 어쩜 그렇게 모진 거니…… 우리가 겪은 수많은 나날들이 물거품이 되는구나. 진심으로 떠나고 싶은 거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안 되겠니?”원용의는 눈물을 머금고 제왕을 보았다. “나보고 모질다고요? 그럼 당신은 나에게 모
제왕은 원용의 입에서 주명취의 이름이 나오자 인상을 찌푸렸다. “죽은 사람을 왜 들먹이는 거야?”“제왕은 제가 왜 이러는지 알 리가 없지요. 어쩌면 제가 쪼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저는 꼭 제왕에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어요. 당신은 주명취를 못 잊고 있는 거죠?”제왕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 여자 얘기는 안 하면 안 되겠어? 도대체 죽은 사람 얘기를 굳이 하는 이유가 뭐야?”“그건 제왕이……”“용의야 왕부로 돌아가면 너를 정비로 맞이할게. 난 앞으로 너와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어.”“제가 지금 정비가 되려고 이러는 것 같아요?”제왕은 화를 억누르고 원용의의 어깨를 잡았다.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네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다 해주려고 그러는 거야.”“그 말 참 모순적이네요. 제가 묻는 말에 제대로 된 대답도 하지 않으면서 제 믿음을 얻으려는 거죠? 제왕이 저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모두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네요.”원용의는 고개를 돌려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내가 그녀를 잊고 못 잊고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그럼 제왕은 제가 다른 남자를 그리워하고 있어도 괜찮겠네요?”“뭐? 감히 어떤 새끼야?”원용의는 눈을 흘기며 제왕을 보며 허탈한 듯 웃었다. “거봐요. 역지사지를 해보니 제 마음이 좀 이해가 되나요?”원용의는 제왕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제왕이 대답을 해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원용의는 사식이가 있는 방으로 가기 위해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잠깐만 우리 나가서 얘기를 하는 건 어때?”제왕은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제왕, 당신은 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거 잊지 마세요.”“일단 나가서 얘기를 좀 하자고.”“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건 당신입니다! 간단명료하게 대답해 주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사람을 지치게 합니까?”“……”“우리 인연은 여기까지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왕은 원용의가 항상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명취가 아무리 악녀라고 해도 제왕과는 부부였던 사이인데, 제왕이 그녀를 어찌 그리 쉽게 잊겠는가?그가 주명취를 한순간에 잊어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그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냉혈한이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원용의가 상심한 얼굴로 사식이의 방에 들어오자 사식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언니, 왜 우는 거야?”“아무것도 묻지 마. 나 오늘 너랑 잘 거야.”사식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따뜻한 물을 한잔 건네었고, 원용의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노력했다. 원용의는 아무리 제왕을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1년이 길면 얼마나 길다고, 자신을 죽이려고 한 주명취를 아직도 그리워하다니……’주명취가 제왕부에 불을 질러 제왕이 죽을 뻔했을 때도 원용의가 제왕을 데리고 손왕부에 가서 보살폈다. 그가 가장 아프고 힘들어할 때 누가 그의 곁을 지켰는가? 바로 원용의다. 원용의는 그와 관련된 모든 일에 밤낮으로 최선을 다했다. 주명취가 다른 남자에 빠져 제왕을 등한시하는 동안에도 원용의는 그의 곁을 지켰다. 원용의는 생각할수록 제왕이 괘씸했다. ‘내 마음도 모르고, 뭐? 정비로 만들어준다고?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는 거잖아.’원용의는 정비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제왕의 흔들림 없는 진심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가 원통하고 분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원용의는 주명취가 죽었을 때 바로 제왕을 떠났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때 제왕을 떠났다면 지금처럼 마음의 상처는 입지 않았을 것이다. 사식이는 처음 보는 원용의의 모습에 주위를 맴돌며 손톱만 물어뜯었다. 원용의는 코를 훌쩍이며 퉁퉁 부은 눈으로 사식이를 보았다. “내가 오늘 이 모양인 거, 조모께는 절대 말씀드리지 마.”“제왕 때문에 우는 거야?” 사식이가 조용히 물었다. 원용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뭐
다음날 아침. 원용의가 아침식사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원경릉은 사식이에게 물었다.“밤새 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지 아침을 먹을 기운도 없다고 합니다.”“뭐라고?” 제왕은 사식이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왜냐고 묻는 겁니까? 그걸 제왕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요?”사식이는 제왕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훑어보았다.“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잖아. 원용의가 왜 밤새 울었냐고.”“그걸 저한테 묻는 것보다 제왕이 생각해 내는 게 더 빠를 텐데요.”“내가 이렇게 물을 이유도 없지. 제왕부를 떠난다는 사람인데 떠날 거면 하루라도 빨리 떠나라고 전해라. 다른 사람 고생시키지 말고.”“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디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 우문호가 분노했다.제왕은 쓴웃음을 지으며 우문호를 보았다.“지금 원용의는 내가 주명취를 그리워하는지 아닌지에 혈안 되어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고요!”“주명취가 네 마음에 없다고 하면 되잖아! 네 옆에 있는 여자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진정한 남자가 아니야. 원후궁이 너와 혼인을 하고 네가 힘들 때 너를 돌봐주었잖아. 그런 여자를 불안하게 하면 안 되지.”“나에게는 양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다섯재 형님처럼 여자를 기쁘게 하려고 내 양심에 반하는 말은 뱉을 수 없다고요.”“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우문호는 제왕의 가시 돋친 말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원경릉 쪽을 보았다.원경릉은 제왕의 말을 듣고 기분이 상한 듯 인상을 썼다. 우문호는 어렵사리 원경릉과 오해를 풀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제왕이 재를 뿌리자 화가 나서 껑충껑충 뛰었다. “오늘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이 개똥만도 못한 자식!” 우문호는 의자를 들어 제왕에게 던졌다. 순간 문 앞에 있던 사람이 빠르게 뛰어와 제왕의 옷깃을 끌어 그를 감싸 안았고, 의자는 그 사람의 머리에 떨어졌다. 의자는 바닥으로 널브러졌고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아침을 먹으려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리를 질렀고 사식이는 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부축했다. “이게
제왕은 끝끝내 원용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원용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순간적인 충동이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는 그녀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고백하고 싶었다. 원용의는 제왕이 아무 말이 없자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 “나가계세요. 옷에 피가 다 묻어서 갈아입어야 합니다.”제왕은 바쁘게 움직이는 사식이와 원경릉을 보고 조용히 자리를 비켰다. 끝까지 무심한 제왕의 모습에 원용의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원경릉은 그녀의 상처에 약을 바르며 원용의에게 조용히 말했다. “보아하니, 넌 정말로 제왕을 좋아하고 있구나.”원용의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누이, 저도 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쭉 그를 마음에 두었던 것 같습니다.”“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정말 제왕을 떠나려는 것이야?”원경릉의 질문에 원용의는 대답을 주저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원누이께서 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겁니까?”“음…… 잠시 떨어져 있는 건 어떻게 생각해? 제왕도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은데 말이야.”원경릉의 말에 원용의는 미소를 지었다.“시간이 해결해 준다면 참 좋겠네요. 전 원누이가 참 부럽습니다. 제왕과 태자께서는 형제인데 어쩜 이리 다를까요?”“다섯째와 주명취는 친구 사이였지만, 제왕과 주명취는 부부였지 않느냐.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지. 그리고 다섯째는 현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야. 그는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않거든. 지금은 서로에게 화가 나서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을 거야. 너도 조급해하지 말고, 제왕에게 시간을 줘. 제왕도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진심을 알게 되겠지.”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식이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경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바로 조모를 찾아가 이 사실을 말할 겁니다! 언니, 이제 울지 마. 이혼 준비하고 새로운 신랑감을 찾을 준비하면 되니까! 제왕은 제 발로 복을 차버린 걸 평생 후회할 거야!”“한 번 혼인을 했
“언니도 서일과 매일매일 부딪히면 알 거야. 서일은 사람이 단순하고 바보 같아서 금방 파악이 가능하거든.” 사식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원용의에게 말했다.“지금 네 모습을 보니, 네 혼사는 이미 정해진 것 같네.” 원용의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사식이를 보았다.원경릉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설마 사식이와 서일?”원용의의 말에 사식이는 귀까지 새빨개졌다. “언니는 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거야! 서일과 내가 무슨 혼인을 해! 언니는 내가 저런 바보와 혼인을 해도 좋다는 거야? 방금 한 말 빨리 취소해! 부정탄다고!”“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바보 같은 남자가 신랑감으로는 최고야! 서일같이 둔한 사람이 살기에도 편해! 잔머리 굴리는 남자는 같이 살면 얼마나 피곤한데.” 원용의는 원경릉을 보며 “원누이, 제 말이 맞죠?”라고 물었다.원경릉은 지금까지 사식이와 서일 사이에 묘한 기류를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오늘 원용의의 말을 듣고 나니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지. 서일과 혼인하면 평생 골머리 썩을 일은 없겠네. 근데 원씨 집안에서 서일이 눈에 차기나 하려나? 서일 집안도 뭐 그리 나쁘진……” 서일 집안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원씨 집안에 갖다 대기에는 한없이 초라했다. 그가 비록 태자의 보필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의 신분으로 큰 공을 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모께서는 집안이 아니라 사람을 중시하십니다.” 원용의가 말했다.“노부인께서 통찰력이 있으시구나.”사식이는 두 사람이 자신의 의견은 무시하고 서일과 엮자 화가 났다. “원누이! 언니! 내가 싫다는데 왜 자꾸 서일하고 엮어!”사식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원경릉과 원용의는 웃음이 터졌다.*원용의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오늘 배를 타고 호수를 유람하려던 계획은 취소됐다. 우문호는 시간을 죽이는 게 아까워 서주의 만불산(萬佛山)이라도 등반해야겠다고 생각했다.만불산은 서주의 유명한 관광
만불산을 오르며우문호가 갑자기, “맞다, 당신 원래 어떤 모습이었어?”원경릉이 자기 얼굴을 만지며, “비슷했어, 지금보다 약간 키가 컸고 좀더 나이가 들었지만 IQ는 좀 좋았던 편이야.”“아이큐는 또 뭐야?”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바꿔 잡는데,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추석의 서늘함이 느껴지는 것이 한껏 상쾌하다.“그러니까 고상해 보이고 아는 게 많은 거야.” 원경릉이 말했다.“아, 왕선생같이.” 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하지만 왕선생은 눈에 띄게 못 생겼잖아, 아이큐란 게 긍정적인 단어는 아니구나.”원경릉이 ‘어’하더니, “왕선생이 못 생겼다고? 적어도 전진장군보다는 훨씬 잘 생겼는데.”그런데 이 사람들 얘기를 꺼내자 ‘사촌 소형이 제일 잘 생겼다.’ ‘위아래 흰옷을 입고 태도에 품위가 있는 게 약간 영락한 초류향(楚留香)같은 느낌이다.’ 품평이 연달아 나왔다.우문호는 수탉처럼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외모로 따지면 날 따라올 자가 없지.”원경릉은 오늘은 얌전히 시비 걸지 않기로 하고, “그러게, 우리 태자 전하 외모는 독보적이지.” 원경릉이 이 말을 하며 고개를 돌려 우문호를 보니, 확실히 안구가 정화된다.어두운 구름무늬 바탕의 푸른 비단옷을 위아래로 빼 입고 별처럼 찬란한 눈동자, 다문 입술에 초승달처럼 가볍게 떠오르는 미소, 금관을 단정하게 쓰고 있으니 한층 잘 생기고 귀티가 난다. 황실의 기품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다.완벽한 낭군이다.원경릉이 눈 호강을 하는 중에 자기도 모르게 존경하는 마음이 드는데, 우문호는 갈수록 뻔뻔해 져서 주변에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바람같이 다가와 발그레해 진 원경릉의 볼에 입을 맞췄다.“아효!” 서일이 멀리서 보고 기분 나쁜 걸 못 참고 비명을 질렀다.“너 잡히기만 해봐!” 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씹어 먹을 듯이 서일을 노려봤다.서일은 의식적으로 눈을 가렸는데 어젯밤 두들겨 맞은 얼굴에 아직 멍이 들어 있으므로 안 맞으려면 당분간 조신하게 지내야 겠다고 생
신선에게 빌기를우문호가 원경릉의 말을 듣고 웃으며, “걱정 마, 당신은 마음이 착한 사람이니 신불이 반드시 마음의 소리를 들어 주실 거야, 나로 말 할 것 같으면, 북당의 태평성대와 원경릉과 아이들의 평안, 그리고 우리가 일평생 함께 있길 빌 거야.”서일이 참다못해, “나리, 이런 얘기는 발설하시면 안됩니다. 신선 앞에서 빌어야 지요, 묵념으로.”신선에 참배하는 것도 규칙이 있는데 나리는 모르시나?우문호가 뾰로통하게,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마음에 원하는 걸 큰 소리로 말해야 한다고. 안 그러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소원을 비는데 신선이 하나하나 사람들의 마음을 추측하다가 피곤해서 죽을 걸? 우리라도 명쾌하게 빌어주면 안돼? 신선들이 일 좀 편하게 하게.”서일이 들어보니 이게 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일리는 어디까지나 일리일 뿐, 규칙은 규칙이지, 좌우간 여기는 이치를 따지는 곳이 아니니까.하지만 서일은 슬쩍 우문호의 주먹을 보며 생각했다. 나리와는 이치고 규칙이고 다 안 통하고, 그냥 입다무는 게 최고다.산을 오르며 끝없이 펼쳐지는 풍광도 일품이지만, 한 쌍의 그림 같은 부부도 참배객과 문인묵객의 이목을 끄는데, 어떤 사람들은 슬쩍 훑어보고, 어떤 사람들은 대놓고 뚫어지게 보고, 심지어 어떤 여자들은 일부러 우문호의 몸에 쓰러지며 약한 척 우문호가 부축해 주길 기다렸다.하지만 우문호는 여색의 참 맛을 1도 모르는지, 분명 이제 겨우 20대 초반의 나이에 눈살을 찌푸리며, “아주머니, 길을 잘 보고 다니셔야죠, 저랑 부딪힌 건 괜찮지만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제 아내한테 부딪히시면 안돼요.”미인은 당황해서 마음이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진 채 얼굴을 가리고 울면서 산을 내려갔다.원경릉은 배꼽을 잡고 웃는다.깔깔 웃고 떠들며 엄청 지쳤지만 정상에 올랐다.정상엔 신전이 한 채 지어져 있는데 모셔진 것이 옥청 신선이다.여기는 참배객이 가장 몰리는 장소로, 빽빽해서 거의 들어갈 틈이 없는데 어떻게 서일이 향을 사와서 불을 붙이더니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