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은 원용의가 항상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명취가 아무리 악녀라고 해도 제왕과는 부부였던 사이인데, 제왕이 그녀를 어찌 그리 쉽게 잊겠는가?그가 주명취를 한순간에 잊어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그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냉혈한이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원용의가 상심한 얼굴로 사식이의 방에 들어오자 사식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언니, 왜 우는 거야?”“아무것도 묻지 마. 나 오늘 너랑 잘 거야.”사식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따뜻한 물을 한잔 건네었고, 원용의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노력했다. 원용의는 아무리 제왕을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1년이 길면 얼마나 길다고, 자신을 죽이려고 한 주명취를 아직도 그리워하다니……’주명취가 제왕부에 불을 질러 제왕이 죽을 뻔했을 때도 원용의가 제왕을 데리고 손왕부에 가서 보살폈다. 그가 가장 아프고 힘들어할 때 누가 그의 곁을 지켰는가? 바로 원용의다. 원용의는 그와 관련된 모든 일에 밤낮으로 최선을 다했다. 주명취가 다른 남자에 빠져 제왕을 등한시하는 동안에도 원용의는 그의 곁을 지켰다. 원용의는 생각할수록 제왕이 괘씸했다. ‘내 마음도 모르고, 뭐? 정비로 만들어준다고?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는 거잖아.’원용의는 정비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제왕의 흔들림 없는 진심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가 원통하고 분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원용의는 주명취가 죽었을 때 바로 제왕을 떠났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때 제왕을 떠났다면 지금처럼 마음의 상처는 입지 않았을 것이다. 사식이는 처음 보는 원용의의 모습에 주위를 맴돌며 손톱만 물어뜯었다. 원용의는 코를 훌쩍이며 퉁퉁 부은 눈으로 사식이를 보았다. “내가 오늘 이 모양인 거, 조모께는 절대 말씀드리지 마.”“제왕 때문에 우는 거야?” 사식이가 조용히 물었다. 원용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뭐
다음날 아침. 원용의가 아침식사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원경릉은 사식이에게 물었다.“밤새 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지 아침을 먹을 기운도 없다고 합니다.”“뭐라고?” 제왕은 사식이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왜냐고 묻는 겁니까? 그걸 제왕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요?”사식이는 제왕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훑어보았다.“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잖아. 원용의가 왜 밤새 울었냐고.”“그걸 저한테 묻는 것보다 제왕이 생각해 내는 게 더 빠를 텐데요.”“내가 이렇게 물을 이유도 없지. 제왕부를 떠난다는 사람인데 떠날 거면 하루라도 빨리 떠나라고 전해라. 다른 사람 고생시키지 말고.”“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디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 우문호가 분노했다.제왕은 쓴웃음을 지으며 우문호를 보았다.“지금 원용의는 내가 주명취를 그리워하는지 아닌지에 혈안 되어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고요!”“주명취가 네 마음에 없다고 하면 되잖아! 네 옆에 있는 여자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진정한 남자가 아니야. 원후궁이 너와 혼인을 하고 네가 힘들 때 너를 돌봐주었잖아. 그런 여자를 불안하게 하면 안 되지.”“나에게는 양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다섯재 형님처럼 여자를 기쁘게 하려고 내 양심에 반하는 말은 뱉을 수 없다고요.”“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우문호는 제왕의 가시 돋친 말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원경릉 쪽을 보았다.원경릉은 제왕의 말을 듣고 기분이 상한 듯 인상을 썼다. 우문호는 어렵사리 원경릉과 오해를 풀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제왕이 재를 뿌리자 화가 나서 껑충껑충 뛰었다. “오늘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이 개똥만도 못한 자식!” 우문호는 의자를 들어 제왕에게 던졌다. 순간 문 앞에 있던 사람이 빠르게 뛰어와 제왕의 옷깃을 끌어 그를 감싸 안았고, 의자는 그 사람의 머리에 떨어졌다. 의자는 바닥으로 널브러졌고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아침을 먹으려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리를 질렀고 사식이는 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부축했다. “이게
제왕은 끝끝내 원용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원용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순간적인 충동이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는 그녀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고백하고 싶었다. 원용의는 제왕이 아무 말이 없자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 “나가계세요. 옷에 피가 다 묻어서 갈아입어야 합니다.”제왕은 바쁘게 움직이는 사식이와 원경릉을 보고 조용히 자리를 비켰다. 끝까지 무심한 제왕의 모습에 원용의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원경릉은 그녀의 상처에 약을 바르며 원용의에게 조용히 말했다. “보아하니, 넌 정말로 제왕을 좋아하고 있구나.”원용의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누이, 저도 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쭉 그를 마음에 두었던 것 같습니다.”“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정말 제왕을 떠나려는 것이야?”원경릉의 질문에 원용의는 대답을 주저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원누이께서 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겁니까?”“음…… 잠시 떨어져 있는 건 어떻게 생각해? 제왕도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은데 말이야.”원경릉의 말에 원용의는 미소를 지었다.“시간이 해결해 준다면 참 좋겠네요. 전 원누이가 참 부럽습니다. 제왕과 태자께서는 형제인데 어쩜 이리 다를까요?”“다섯째와 주명취는 친구 사이였지만, 제왕과 주명취는 부부였지 않느냐.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지. 그리고 다섯째는 현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야. 그는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않거든. 지금은 서로에게 화가 나서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을 거야. 너도 조급해하지 말고, 제왕에게 시간을 줘. 제왕도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진심을 알게 되겠지.”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식이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경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바로 조모를 찾아가 이 사실을 말할 겁니다! 언니, 이제 울지 마. 이혼 준비하고 새로운 신랑감을 찾을 준비하면 되니까! 제왕은 제 발로 복을 차버린 걸 평생 후회할 거야!”“한 번 혼인을 했
“언니도 서일과 매일매일 부딪히면 알 거야. 서일은 사람이 단순하고 바보 같아서 금방 파악이 가능하거든.” 사식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원용의에게 말했다.“지금 네 모습을 보니, 네 혼사는 이미 정해진 것 같네.” 원용의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사식이를 보았다.원경릉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설마 사식이와 서일?”원용의의 말에 사식이는 귀까지 새빨개졌다. “언니는 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거야! 서일과 내가 무슨 혼인을 해! 언니는 내가 저런 바보와 혼인을 해도 좋다는 거야? 방금 한 말 빨리 취소해! 부정탄다고!”“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바보 같은 남자가 신랑감으로는 최고야! 서일같이 둔한 사람이 살기에도 편해! 잔머리 굴리는 남자는 같이 살면 얼마나 피곤한데.” 원용의는 원경릉을 보며 “원누이, 제 말이 맞죠?”라고 물었다.원경릉은 지금까지 사식이와 서일 사이에 묘한 기류를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오늘 원용의의 말을 듣고 나니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지. 서일과 혼인하면 평생 골머리 썩을 일은 없겠네. 근데 원씨 집안에서 서일이 눈에 차기나 하려나? 서일 집안도 뭐 그리 나쁘진……” 서일 집안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원씨 집안에 갖다 대기에는 한없이 초라했다. 그가 비록 태자의 보필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의 신분으로 큰 공을 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모께서는 집안이 아니라 사람을 중시하십니다.” 원용의가 말했다.“노부인께서 통찰력이 있으시구나.”사식이는 두 사람이 자신의 의견은 무시하고 서일과 엮자 화가 났다. “원누이! 언니! 내가 싫다는데 왜 자꾸 서일하고 엮어!”사식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원경릉과 원용의는 웃음이 터졌다.*원용의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오늘 배를 타고 호수를 유람하려던 계획은 취소됐다. 우문호는 시간을 죽이는 게 아까워 서주의 만불산(萬佛山)이라도 등반해야겠다고 생각했다.만불산은 서주의 유명한 관광
만불산을 오르며우문호가 갑자기, “맞다, 당신 원래 어떤 모습이었어?”원경릉이 자기 얼굴을 만지며, “비슷했어, 지금보다 약간 키가 컸고 좀더 나이가 들었지만 IQ는 좀 좋았던 편이야.”“아이큐는 또 뭐야?”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바꿔 잡는데,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추석의 서늘함이 느껴지는 것이 한껏 상쾌하다.“그러니까 고상해 보이고 아는 게 많은 거야.” 원경릉이 말했다.“아, 왕선생같이.” 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하지만 왕선생은 눈에 띄게 못 생겼잖아, 아이큐란 게 긍정적인 단어는 아니구나.”원경릉이 ‘어’하더니, “왕선생이 못 생겼다고? 적어도 전진장군보다는 훨씬 잘 생겼는데.”그런데 이 사람들 얘기를 꺼내자 ‘사촌 소형이 제일 잘 생겼다.’ ‘위아래 흰옷을 입고 태도에 품위가 있는 게 약간 영락한 초류향(楚留香)같은 느낌이다.’ 품평이 연달아 나왔다.우문호는 수탉처럼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외모로 따지면 날 따라올 자가 없지.”원경릉은 오늘은 얌전히 시비 걸지 않기로 하고, “그러게, 우리 태자 전하 외모는 독보적이지.” 원경릉이 이 말을 하며 고개를 돌려 우문호를 보니, 확실히 안구가 정화된다.어두운 구름무늬 바탕의 푸른 비단옷을 위아래로 빼 입고 별처럼 찬란한 눈동자, 다문 입술에 초승달처럼 가볍게 떠오르는 미소, 금관을 단정하게 쓰고 있으니 한층 잘 생기고 귀티가 난다. 황실의 기품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다.완벽한 낭군이다.원경릉이 눈 호강을 하는 중에 자기도 모르게 존경하는 마음이 드는데, 우문호는 갈수록 뻔뻔해 져서 주변에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바람같이 다가와 발그레해 진 원경릉의 볼에 입을 맞췄다.“아효!” 서일이 멀리서 보고 기분 나쁜 걸 못 참고 비명을 질렀다.“너 잡히기만 해봐!” 우문호가 고개를 돌려 씹어 먹을 듯이 서일을 노려봤다.서일은 의식적으로 눈을 가렸는데 어젯밤 두들겨 맞은 얼굴에 아직 멍이 들어 있으므로 안 맞으려면 당분간 조신하게 지내야 겠다고 생
신선에게 빌기를우문호가 원경릉의 말을 듣고 웃으며, “걱정 마, 당신은 마음이 착한 사람이니 신불이 반드시 마음의 소리를 들어 주실 거야, 나로 말 할 것 같으면, 북당의 태평성대와 원경릉과 아이들의 평안, 그리고 우리가 일평생 함께 있길 빌 거야.”서일이 참다못해, “나리, 이런 얘기는 발설하시면 안됩니다. 신선 앞에서 빌어야 지요, 묵념으로.”신선에 참배하는 것도 규칙이 있는데 나리는 모르시나?우문호가 뾰로통하게,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마음에 원하는 걸 큰 소리로 말해야 한다고. 안 그러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소원을 비는데 신선이 하나하나 사람들의 마음을 추측하다가 피곤해서 죽을 걸? 우리라도 명쾌하게 빌어주면 안돼? 신선들이 일 좀 편하게 하게.”서일이 들어보니 이게 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일리는 어디까지나 일리일 뿐, 규칙은 규칙이지, 좌우간 여기는 이치를 따지는 곳이 아니니까.하지만 서일은 슬쩍 우문호의 주먹을 보며 생각했다. 나리와는 이치고 규칙이고 다 안 통하고, 그냥 입다무는 게 최고다.산을 오르며 끝없이 펼쳐지는 풍광도 일품이지만, 한 쌍의 그림 같은 부부도 참배객과 문인묵객의 이목을 끄는데, 어떤 사람들은 슬쩍 훑어보고, 어떤 사람들은 대놓고 뚫어지게 보고, 심지어 어떤 여자들은 일부러 우문호의 몸에 쓰러지며 약한 척 우문호가 부축해 주길 기다렸다.하지만 우문호는 여색의 참 맛을 1도 모르는지, 분명 이제 겨우 20대 초반의 나이에 눈살을 찌푸리며, “아주머니, 길을 잘 보고 다니셔야죠, 저랑 부딪힌 건 괜찮지만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제 아내한테 부딪히시면 안돼요.”미인은 당황해서 마음이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진 채 얼굴을 가리고 울면서 산을 내려갔다.원경릉은 배꼽을 잡고 웃는다.깔깔 웃고 떠들며 엄청 지쳤지만 정상에 올랐다.정상엔 신전이 한 채 지어져 있는데 모셔진 것이 옥청 신선이다.여기는 참배객이 가장 몰리는 장소로, 빽빽해서 거의 들어갈 틈이 없는데 어떻게 서일이 향을 사와서 불을 붙이더니 손에
경호의 신비원경릉은 옆에 우문호를 보더니 눈물이 났다.우문호도 원경릉을 보고, “좌우간 당신은 이 생에 날 못 떠나.”우문호의 크고 따스한 손이 원경릉의 손을 꽉 감싸주는 것을 느끼며, 따듯하고 단단해서 가슴속이 행복으로 가득차는 느낌이 들었다. “난 자기를 절대 떠나지 않아.”“거래 성립!” 우문호가 갑자기 원경릉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졸지에 부부 두 사람이 초점의 대상이 되었고, 사람들은 부러움과 온정의 눈길로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두런두런 속삭였다. ‘이 부부는 얼마나 다정해’, ‘얼마나 행복해’, ‘얼마나 보기 좋아.’기도하고 나와서 신전 밖을 몇 바퀴 도는데 풍경은 수려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다. 어디도 차분한 곳이 없어 우문호가, “옥청전(玉清殿) 뒤에 경호(鏡湖)가 있다 던데 우리 가 보자.”원경릉이 좋아하며, “좋아, 나 산 속에 있는 호수 좋아하는데, 그게 그렇게 그윽하고 아름답더라.”우문호가, “하지만 꼭 볼 수 있는 건 아니야, 거기엔 일년 내내 운무가 자욱해서 본 사람이 극소수 중에 극소수라고.”“그럼 천지(天池)랑 같은 거 아닌가?”“천지? 천지가 뭔데?”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고 앞으로 가며 물었다.“응, 천지는 천지지. 자기는 가 본적 없어.”“그럼 나중에 나 데리고 가.” 우문호가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막상 말하고 나니 정말 가보고 싶어 졌다. 사실 원경릉이 자신이 모르는 일이나 장소를 언급하면 우문호는 무조건 한 마디를 추가하는데 바로 ‘같이 가자’이다.경호는 신전의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걸어서 대략 30분 정도로 샛길을 따라 단풍나무 숲을 지나니 이윽고 다다랐다.경치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좋은데, 호수 좌우 90~120평 전체가 단풍나무로 둘러쳐져 있어 지금 마침 가을이라 단풍잎이 붉게 물들었고, 호수는 자욱한 운무에 가려져 있는데 운무는 마치 한덩어리로 움직이는 흰색 화전옥(和田玉) 덩어리처럼 어려서 경호를 감싸고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경인양 느껴지게 했다. 저 운무가 자욱한 곳을
경호가 시공의 입구?서일은 도인이 그들을 가지 말라고 하자 화가 나서, “뭘 잘못 봤다는 거예요? 우리가 분명히 호수에 작은 배가 떠 있는 걸 봤어요, 나중에 가운데로 가는 거까지, 그땐 아마도 아직 뭍에 올라오지 않은 모양이지만 못 믿겠으면 저랑 같이 가서 보시던 가요.”도인이 손을 내젓고 웃으며, “불가능합니다. 모두 분명 잘못 보신 거예요, 저희가 배를 못 타게 하는게 아니라, 아무도 못 띄우는 거예요, 오래 전에 어떤 사람이 경호에 배를 띄웠는데 호수에 들어가긴 했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죠.”만아가 겁을 먹고, “어? 물에 빠진 거예요?”도인이 고개를 저으며, “아닌 게 확실합니다. 경호는 1년에 두 번 열리는데 제가 직접 호수에 가서 시체와 배를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산 위에는 배가 없어요, 배를 띄우려 해도 할 수 없지요. 여러분들은 잘못 보신 게 확실합니다.”원경릉이 의심에 차서 눈썹을 치켜 뜨고, “도사님, 우리 네 사람이면 눈이 8개인데 결코 잘못 볼 수가 없습니다. 정말 누가 호수에서 배를 타고 있었어요. 누가 호수에 내려가거나 배를 가지고 왔는데 모르셨던 게 아닐까요?”도인이 웃으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습니까? 경호를 계속 지키고 있는 걸요, 일부 담대한 참배객이 목숨이 아까운 줄도 모르고 기이함에 이끌려 물에 들어가서 노는 것을 막기 위해서지요. 제가 여기서 이미 30여년 있었으나 물에 들어간 사람은 딱 두 명 봤습니다. 이 두사람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지요, 배도 없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더는 없었어요. 그래서 경호는 아주 위험하기 때문에 실제로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도인은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 앞에 이 부부의 신분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상당히 공손한 태도로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경호의 위험을 그들에게 얘기했으며, 그들이 물에 들어가 목숨을 잃을 까봐 걱정했다.원경릉은 도인이 말을 돌리거나 속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금 작은 배를 본 건 네 명이 동시에 집단적 환각을 본 걸까?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