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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71화

정후는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

“억울하다 억울해! 너희들이 여기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동안 나는 타향에서 비렁뱅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겠네……”

원경릉은 그의 말을 딱 잘랐다.

“부친, 진짜 비렁뱅이처럼 살게 해줘요? 원한다면 지금 당장 내가 탕양에게 말해서 준비된 거처를 팔아버리라고 할 테니 모친하고 둘이 비렁뱅이처럼 살아보세요. 구걸하기 편하게 바가지 하나씩은 제가 마련해 드릴 테니!”

그제야 정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원경릉은 그를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 조모를 보았다.

그녀는 손씨 아주머니에게 밖에 나갔다 오라고 한 후 조모의 옆에 앉았다.

조모는 검은 비단옷을 입고 있었고 새하얗게 변한 머리카락이 햇빛에 반짝였다.

조모는 원경릉을 보며 미소를 지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이 늙은이는 신경 쓸 것 없다.” 노부인이 원경릉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방금까지 정후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원경릉도 조모의 말에 금방 숙연해졌다.

원경릉은 문득 정후가 멀리 떠난 후 조모가 돌아가시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삼둥이를 낳은 후로부터는 가끔 생사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원경릉은 슬퍼하는 조모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조모, 나중에 제가 삼둥이들을 데리고 찾아오겠습니다.”’

원경릉은 고개를 들어 조모를 보았다.

“데리고 오면 너무 소란스러울까요? 아니면 조모께서 왕부로 오셔서 지내시는 것도 좋습니다.”

노부인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았다.

“그래, 이참에 왕부로 가자.”

원경릉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에 있는 손씨 아주머니에게 짐을 싸라고 했다.

노부인은 정후 내외가 보기 싫은 듯 대문이 아닌 뒷마당에 딸린 작은 문으로 나왔다.

마차에 올라탄 노부인은 원경릉의 손을 잡고 왕부로 향했다.

왕부로 가는 내내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후는 자신의 모친이 원경릉을 따라 왕부로 갔다는 말을 듣고 대성통곡을 하며 황씨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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