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자리를 고쳐잡고 앉아 기왕비에게 얘기했다. “그…… 이 일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의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정도의 수준이면 꽤나 경험도 많고 유명한 어의일 텐데, 그런 어의가 학교로 오고 싶어 하겠습니까? 자신이 의원을 차리면 훨씬 많은 돈을 받을 텐데요. 게다가 의학원 개설을 어의들이 환영하겠습니까? 자신이 얼마나 어렵게 배운 의술인데 그걸 공짜로 배우게 해준다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을 겁니다.”“예, 기왕비의 말대로 이 일은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그리고 한 명의 어의를 가르치는데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텐데…… 의학원에서 나온 어의들도 혜민의서에서 경험을 쌓고 자신의 의원을 차릴 텐데. 그럼 지금 있는 어의들이 가만히 두고 보겠습니까? 어의가 많아지면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길 것이라고 생각할 텐데요?”원경릉은 기왕비의 말을 듣고 작게 탄식했다. “어렵다는 거 잘 압니다. 안 그래도 탕양을 시켜서 어의를 알아보라고 했어요. 근데 지금까지도 무소식입니다.”“그럼 태자비는 혹시…… 혼자 수업을 할 생각입니까? 태자비도 어의잖아요.”“전 안 됩니다.” 원경릉은 한의학을 하나도 몰랐다.“그래요. 태자비 신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건 위험하죠.”기왕비가 원경릉의 말을 오해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설명할 기운이 없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의학원이 잘 진행되면 다섯째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가만 보면 다섯째가 복덩이를 얻었어요.”원경릉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저는 다섯째를 위해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게 아닙니다. 오로지 불쌍한 환자들을 위해서예요. 지금 북당의 의료는 너무 엉망입니다. 의원도 많이 없고, 의료비도 너무 비쌉니다. 저는 백성들이 돈이 없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태자비, 진심으로 백성을 위해 의학원을 열겠다는 겁니까? 정말…… 정말……”기왕비는 원경릉을 칭찬하고 싶었지만 낯간지러운 말은 부끄러워 말을 멈추었다. “그럼 기왕비께서도 신경을 좀 써
기왕비의 병은 제때 발견해 한 달 남짓의 치료를 거쳐 많이 좋아진 상태다.그녀의 얼굴에 흉하게 남아있던 붉은 반점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원경릉은 처음으로 약상자에 현미경을 꺼내 희상궁의 상처조직을 채취해 검사했다. 검사 후, 희상궁의 흉터에서 채취한 조직에서는 문둥병 균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는 희상궁의 병에는 전염성이 없음을 의미한다. 사실 이 병은 호흡이나 접촉으로 전염이 된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항체를 가지고 있고 개인 면역력이 다르기에 접촉 후에도 감염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당시 희상궁의 면역력이 떨어져 있었기에 그녀가 감염이 된 것이지 평소의 상태였다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원경릉은 희상궁에게 달려가 전처럼 삼둥이들을 볼 수 있다고 하자 희상궁은 눈물을 터뜨리며 기뻐했다. 원경릉은 한 걸음 물러나 그녀가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한 달 동안의 치료 기간 동안 원경릉도 물론 힘들었겠지만, 당사자인 희상궁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겠는가.아마 말은 안 했어도 마음속으로는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이다.원경릉은 희상궁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하지만 희상궁의 병이 전염성을 잃었다고 해도 완벽히 치료가 끝난 것이 아니다. 원경릉은 그녀의 병이 완전히 낫기 전까지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는 아주 작은 확률이라도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안왕은 남영에 있었지만 가끔 경중으로 돌아왔다. 안왕은 곧 다가오는 귀비의 탄신일을 맞아 경중으로 와 선물을 건넸다. 그는 안왕부에 돌아와 안왕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안왕부 서재로 아라를 불렀다. “다섯째 쪽에서 무슨 얘기가 없느냐?” 안왕이 아라에게 물었다. 그의 남영에서 까맣게 탄 피부로 얼굴이 전보다 많이 야위어 보였다. “왕야, 태자가 대주와 동맹을 맺으려 한 후부터, 지금 조정의 모든 백관들이 태자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습니다. 전에는 중립을 지키던 관원들도 주국공이 하나하나 직접 찾아가 설득을 한다고 합
“희상궁이? 정말로?” 안왕이 눈을 크게 떴다.“예, 최근에 나온 건 원경릉과 주국공부에 갔던 게 다 입니다. 그 후로는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전에 희상궁이 책임지고 하던 왕부 내 물품 조달을 사식이와 만아가 하고 있습니다.’안왕은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 앞으로 바짝 끌어당기며 눈을 반짝였다. “혹시 설마 병이라도 난 건가?”“겨우 반년밖에 안 지났는데, 너무 빠르지 않습니까?”“아니, 반년이라도 걸릴 수 있지. 전에 어의가 말했는데 병자와 접촉한 후 몇 년 후 발병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몇 달 만에 발병하기도 한다더라.”안왕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아라를 보았다. “아라야 너는 초왕부에 사람을 심어 내부 상황을 좀 알아보거라. 희상궁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꼭 알아내야 해.”아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안왕의 무릎 위에 앉아 요염하고 그에게 기대었다. “왕야, 만약 희상궁이 문둥병에 걸렸다면 초왕부를 폐쇄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문호는 경조부윤에서 물러야 할 겁니다.”안왕은 핏대를 잔뜩 세웠다. “본왕은 우문호가 경조부윤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아.”’“그렇다면……?”“난 우문호를 철저하게 무너뜨릴 거야.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아라는 안왕의 품에 안겨 그의 가슴을 쓸었다. “왕야 말씀이 맞습니다. 차라리 죽여버리는 것도 괜찮겠네요.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안왕은 아라의 허리를 감싸며 조용히 읊조렸다. “조어의는 지금 초왕부의 어의잖아. 만약 희상궁이 문둥병에 걸린 게 맞다면 조어의도 지금 원경릉을 도와 희상궁을 치료하고 있을 거야. 하지만 문둥병 같은 불치병은 치료 방법이 없으니, 일단 조어의 쪽을 공략해 보자고.”“좋습니다. 그럼 안왕께서 오늘 밤 저와 같이 있어주시는 겁니까?” 안왕은 아름다운 아라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아니, 본왕이 오랜만에 돌아왔으니 왕비와 있어야지.” “아, 예……” 아라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안왕의 무릎에서 내려와 실의에 찬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안왕비는 안왕 옆에 누워 뜬 눈으로 뒤척이다 조용히 그에게 물었다. “왕야, 아라는 당신과 함께 한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녀를 후궁으로 들이는 게 맞지 않을까요?”안왕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음……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아라가 본처인 줄 아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나보다 아라를 더 의지하고 모든 일은 아라에게 맡기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안왕부에서도 그녀가 훨씬 더 활개를 치고 다니고…… 요즘은 제가 아라의 눈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안왕비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안왕에게 말했다. “바보야. 본왕에게 아라는 그저 시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어찌 시녀 주제에 내 후궁이 될 수 있겠느냐?”“그래도…… 당신과 아라는 오랜 시간 알고 지냈고, 또 함께한 세월이 깊지 않습니까?”“그래서 우리 왕비가 나와 시녀 사이를 질투라도 했다는 건가?” 안왕이 그녀의 턱을 위로 올렸다. 안왕비는 자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질투를 안 했다면 거짓이겠지요. 하지만 질투해서 뭐 합니까? 어쨌든 안왕에게는 후궁이 필요할 텐데……”라고 말했다. “본왕은 후궁 따위는 필요 없어. 너만 있으면 된다.” 안왕이 그녀를 껴안았다. “정말요?” 안왕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당연하지. 본왕이 후궁이 필요했다면 진작에 후궁을 들였을 것이야. 근데 보아라, 난 너에게 후궁 얘기를 꺼낸 적도 없지 않느냐? 본왕에겐 오직 너뿐이야. 설마 혼인 때 했던 약속을 잊은 것이야?”안왕의 말을 들은 안왕비의 눈가가 촉촉해졌다.“예. 왕야께서 이번 생은 후궁을 들이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그래, 난 뱉은 말을 지킨다.” 안왕이 말했다. 안왕비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미소를 지었다. “왕야 그거 아십니까? 초왕도 후궁을 들이지 않고 한결같이 초왕비만 사랑하겠다고 했답니다. 그 얼마나 순결하고 귀한 사랑입니까? 저는 내심 그 둘을 보며 부러워했습니다. 왕야께서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네요
조어의를 떠보는 적운근래 안왕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정에서 요직을 담당하는 고관대작들로, 이들은 일전에 집안에 환자가 생기면 성은을 입어 어의를 청하곤 했다. 그래서 조어의와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람도 여럿 있는데 그들은 평일에도 가끔 모이곤 했다.이번에 조어의를 술자리에 초대한 사람은, 명원제가 파격적으로 ‘국구(國舅, 황제의 처남)’로 봉한적위명의 장자 적운(狄雲)이다.원래 태후나 황후의 형제만 국구로 봉해지는데, 적운은 3년전 천자를 호위할 때 명원제를 구한 공이 있어 그 자리에서 바로 국구로 봉해졌다.국구 적운의 장모가 전부터 심근경색을 앓아왔는데 항상 귀비의 은혜로 조어의가 몇 번 치료하러 다녔고, 그렇게 왕래하다 보니 국구와 친해졌다.이제 국구가 술자리에 초대하면 조어의는 안 갈 도리가 없었다.하지만 조어의도 바보가 아닌 지라 안왕과 태자 사이에 드리운 암울한 기운의 심각성을 알고, 가기 전에 우문호를 찾아가서 물었다.우문호가, “신경 쓰지 말고 가시게, 만약 술자리에서 희상궁 일을 물으면 희상궁이 확실히 병이 있는데 본인은 치료에 참여하지 않고 태자비가 직접 한다고. 그리고 희상궁이 혼자 따로 살고 있어 아무도 드나들 수 없다고 얘기 잊지 말고.”조어의는 희상궁이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태자가 신신당부하는 것이 분명 의도가 있을 것이므로 알았다고 했다.적국구와 만난 뒤 예의상의 인사말을 나누자마자 바로 술이 들어왔다.이렇게 속히 술을 권하는 걸 보고 조어의도 마음을 다잡고 술이 세 순배쯤 돌자 상당히 취한 척 했다.적국구가 상황을 보고 술잔을 내려 놓으며 이것저것 주워섬기다가, “맞아, 사람들이 전에 태상황의 시중을 들던 희상궁이 지금은 초왕부에 있다고 하던데, 조어의는 희상궁과 알고 지내십니까?”조어의가 듣고 ‘과연 희상궁 일을 묻는구나’ 싶어 태자의 선견지명에 놀라며, “맞습니다, 희상궁이 확실이 태자비 마마의 시중을 들고 있지요, 저는 희상궁과 우연히 몇 마디 섞어봤을 뿐이라 알고 지낸다고 하긴 어렵군요.”적국
희상궁의 병을 의심하는 적운과 조어의조어의가 이번엔 직접 술을 따라 적국구의 잔을 가득 채우더니 자신의 잔에도 따르고, “오늘밤 국구 나리께서 오직 저를 위해 술자리를 마련해 주셨으니, 제가 국구 나리께 한 잔 올릴 차례입니다.”적국구는 조어의가 이번에 권한 술은 평소처럼 어물어물 넘기지 않고 바로 다 비우더니 술잔을 내려놓고, “그럼 태자비 마마께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조어의가, “태자비 마마께선 짧은 논평에서 나병에 관해 보시고 소인에게 물어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적국구가 당황하며, “논평에 나병에 관해 써 있다고요?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조어의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웃으며, “진짜인지 아닌지 누가 따지겠습니까? 자자, 계속 드십시다.”적국구가 웃으며, “만약 정말 나병에 걸렸으면 어의에게 알릴 리 없었을 테지요.”조어의가, “그야 그렇지요, 태자비 마마시니까요, 하지만 국구 나리 눈은 속일 수 없으니 말씀드립니다. 초왕부 시녀 만아가 약방에서 나병을 치료하는 약을 사더군요, 단지 이것은 기밀사항으로 아무도 알게 해서는 안됩니다.”“정말입니까?” 적국구의 눈이 빛나더니, “확실하지요?”“됐어요, 그만 합시다. 이 일은 저희와 무관하니 자자, 술 드십시다.” 조어의가 입을 다물었다.적국구가 더 캐내기가 뭐해서 대충 몇 잔 더 마시더니 핑계를 대고 일이 있다며 갔다.조어의가 돌아와서 우문호에게 보고하고 적국구가 과연 희상궁 일을 물었다고 했다.우문호가 서탁에 앉더니 얼굴에 화색이 가득 돌며, “잘 됐군, 물어 보다니 잘 됐어.”조어의가 어리둥절해 하며, “왕야, 희상궁이 정말 나병에 걸린 건가요?”우문호가 손을 흔들며, “어찌 그럴 리가? 희상궁은 전에 계속 황궁에 있었고, 출궁한 뒤로 초왕부에 있었으며 나병 환자들이 모이는 곳에는 간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무 이유도 없이 나병에 걸릴 수가 있나?”조어의가 다소 걱정하며, “하지만 희상궁이 이미 한 달이 넘도록 문밖에 나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우문호가 바깥을 둘러보
희상궁이 나병이라고 조정에서 터트리다이렇게 이틀이 지나고 적국구가 아침 일찍 상소를 올렸는데, ‘희상궁이 나병에 걸렸음에도 태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면서 고의로 감추고 개인적으로 나병 환자를 초왕부에 숨겨두었다’는 내용이었다.초왕부에 나병 환자가 있다는 말에 온 조정이 놀라서 술렁거렸다.5년전 역병이 창궐했던 공포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관원들에게 되살아나며 거의 매일 나병 확진자가 나오고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려고 했다.당시 명원제가 등극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으나, 바로 결단을 내려 신속하게 환자를 검사하고 병자들을 문둥산으로 보내 격리시켰다. 그리고 석회가루로 환자가 살았던 곳을 소독하고 환자가 사용한 옷과 일상용품 전부를 태워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막았다.그때 거의 경성 전체에 나병의 그림자가 드리웠는데 병에 걸린 사람은 몸에 병을 앓고,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마음에 병을 앓았는데, 조정에서 이 병은 몇 년의 잠복기를 거친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모두 자신이 잠재적인 환자가 아닌가 두려워했다.지금 적국구가 조정에서 나병이란 두 글자를 입에 담으니 어찌 사람이들이 떨지 않을 수 있을까?더욱 두려운 것은 이번에 병에 걸린 사람이 희상궁이라는 점으로 희상궁은 전에 계속 궁에서 시중을 들던 사람인데 만약 희상궁이 환자면 그러니까?순간 문무백관의 눈동자가 전부 높은 자리에 앉은 명원제를 주목했다.명원제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명원제는 당연히 그 공포를 잊을 리가 없는 것이 그 일이 마침 명원제가 등극하자 마자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다.막강한 대국에서 강력한 군대가 쳐들어 왔다면 출병해 맞서 싸울 수라도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악질이란 불치병이 발생해 폭증할 경우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적국구를 바라보고 적국구는 우문호를 바라보고 있다.10월에 하늘에서 내린 용의 아들을 순산한 경조부 부윤이자 황실의 태자 우문호는, 순간 막막한지 무고하다는 맑은 눈빛으로, “희상궁이 나병에 걸려
적위명 초왕부에 들이닥치다기왕 엄밀히 조사하기로 했으니 어의 몇 명을 관원과 함께 보내야 했다.하지만 나병인지라 관원들은 감히 가려고 들지 않고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아무도 이 난관을 해결하려고 들지 않았다.주재상이 나와서 목소리를 깔고, “소신이 어의와 함께 가 보길 원합니다.”적위명이 이 얘기를 듣자마자, “소신 부자도 함께 가 보길 원합니다.”주재상이 희상궁과 태자를 얼마나 감싸고 도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어찌 주재상 혼자 어의와 가게 둔 말 말인가? 주재상은 지금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어의도 주재상의 말을 들을 것이라 나병 진단이 나면 주재상이 어의에게 함구하라는 엄명을 내릴 지도 모른다.주재상과 적위명 대장군의 대열을 따라 조정의 다수의 관원들도 흩어져서 따라 가는데 어쨌든 가긴 가지만 희상궁과 접촉한다고 하지는 않았으니 초왕부에 앉아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고 다행히 주재상 일행과 같이 가는 형식이다.이렇게 여럿이 모여 시너지를 얻은 관원들과 망연자실한 태자가 보무도 당당하게 초왕부로 갔다.가는 길에 태자 우문호는 백치미를 드러내며 계속 적국구에게, “도대체 누가 희상궁이 나병에 걸렸다고 한 겁니까? 이거 뜬 소문 아닌가요? 만약 희상궁이 알면 분개하지 않겠어요?”적국구는 우문호를 상대하지 않았지만, 다른 관원들은 태자를 이렇게 거북스럽게만 하기도 곤란해서 ‘이 일은 어쩌면 누군가가 작심하고 초왕부와 태자 전하를 목표로 유언비어를 퍼트렸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원래는 그냥 적당히 위로하려던 심산이었는데 이 말에 주재상도 고개를 끄덕이며, “초왕부를 목적으로 삼은 유언비어일 가능성이 상당히 크군.”그래서 가는 길에 관원들 사이에 이 얘기가 퍼지며 ‘희상궁이 정말 나병이 아니면 누군가 고의로 초왕부를 격리해서 폐쇄하려고 유언비어를 퍼트린 것’ 처럼 되었다.적위명 부자가 이 얘기를 듣고 마음 속으로 쓴 웃음을 지었다. 때가 되면 유언비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우문호가 아닌 척을 하지만 척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나병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