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자리를 고쳐잡고 앉아 기왕비에게 얘기했다. “그…… 이 일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의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정도의 수준이면 꽤나 경험도 많고 유명한 어의일 텐데, 그런 어의가 학교로 오고 싶어 하겠습니까? 자신이 의원을 차리면 훨씬 많은 돈을 받을 텐데요. 게다가 의학원 개설을 어의들이 환영하겠습니까? 자신이 얼마나 어렵게 배운 의술인데 그걸 공짜로 배우게 해준다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을 겁니다.”“예, 기왕비의 말대로 이 일은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그리고 한 명의 어의를 가르치는데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텐데…… 의학원에서 나온 어의들도 혜민의서에서 경험을 쌓고 자신의 의원을 차릴 텐데. 그럼 지금 있는 어의들이 가만히 두고 보겠습니까? 어의가 많아지면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길 것이라고 생각할 텐데요?”원경릉은 기왕비의 말을 듣고 작게 탄식했다. “어렵다는 거 잘 압니다. 안 그래도 탕양을 시켜서 어의를 알아보라고 했어요. 근데 지금까지도 무소식입니다.”“그럼 태자비는 혹시…… 혼자 수업을 할 생각입니까? 태자비도 어의잖아요.”“전 안 됩니다.” 원경릉은 한의학을 하나도 몰랐다.“그래요. 태자비 신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건 위험하죠.”기왕비가 원경릉의 말을 오해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설명할 기운이 없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의학원이 잘 진행되면 다섯째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가만 보면 다섯째가 복덩이를 얻었어요.”원경릉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저는 다섯째를 위해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게 아닙니다. 오로지 불쌍한 환자들을 위해서예요. 지금 북당의 의료는 너무 엉망입니다. 의원도 많이 없고, 의료비도 너무 비쌉니다. 저는 백성들이 돈이 없어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태자비, 진심으로 백성을 위해 의학원을 열겠다는 겁니까? 정말…… 정말……”기왕비는 원경릉을 칭찬하고 싶었지만 낯간지러운 말은 부끄러워 말을 멈추었다. “그럼 기왕비께서도 신경을 좀 써
기왕비의 병은 제때 발견해 한 달 남짓의 치료를 거쳐 많이 좋아진 상태다.그녀의 얼굴에 흉하게 남아있던 붉은 반점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원경릉은 처음으로 약상자에 현미경을 꺼내 희상궁의 상처조직을 채취해 검사했다. 검사 후, 희상궁의 흉터에서 채취한 조직에서는 문둥병 균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는 희상궁의 병에는 전염성이 없음을 의미한다. 사실 이 병은 호흡이나 접촉으로 전염이 된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항체를 가지고 있고 개인 면역력이 다르기에 접촉 후에도 감염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당시 희상궁의 면역력이 떨어져 있었기에 그녀가 감염이 된 것이지 평소의 상태였다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원경릉은 희상궁에게 달려가 전처럼 삼둥이들을 볼 수 있다고 하자 희상궁은 눈물을 터뜨리며 기뻐했다. 원경릉은 한 걸음 물러나 그녀가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한 달 동안의 치료 기간 동안 원경릉도 물론 힘들었겠지만, 당사자인 희상궁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겠는가.아마 말은 안 했어도 마음속으로는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이다.원경릉은 희상궁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하지만 희상궁의 병이 전염성을 잃었다고 해도 완벽히 치료가 끝난 것이 아니다. 원경릉은 그녀의 병이 완전히 낫기 전까지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는 아주 작은 확률이라도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안왕은 남영에 있었지만 가끔 경중으로 돌아왔다. 안왕은 곧 다가오는 귀비의 탄신일을 맞아 경중으로 와 선물을 건넸다. 그는 안왕부에 돌아와 안왕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안왕부 서재로 아라를 불렀다. “다섯째 쪽에서 무슨 얘기가 없느냐?” 안왕이 아라에게 물었다. 그의 남영에서 까맣게 탄 피부로 얼굴이 전보다 많이 야위어 보였다. “왕야, 태자가 대주와 동맹을 맺으려 한 후부터, 지금 조정의 모든 백관들이 태자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습니다. 전에는 중립을 지키던 관원들도 주국공이 하나하나 직접 찾아가 설득을 한다고 합
“희상궁이? 정말로?” 안왕이 눈을 크게 떴다.“예, 최근에 나온 건 원경릉과 주국공부에 갔던 게 다 입니다. 그 후로는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전에 희상궁이 책임지고 하던 왕부 내 물품 조달을 사식이와 만아가 하고 있습니다.’안왕은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 앞으로 바짝 끌어당기며 눈을 반짝였다. “혹시 설마 병이라도 난 건가?”“겨우 반년밖에 안 지났는데, 너무 빠르지 않습니까?”“아니, 반년이라도 걸릴 수 있지. 전에 어의가 말했는데 병자와 접촉한 후 몇 년 후 발병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몇 달 만에 발병하기도 한다더라.”안왕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아라를 보았다. “아라야 너는 초왕부에 사람을 심어 내부 상황을 좀 알아보거라. 희상궁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꼭 알아내야 해.”아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안왕의 무릎 위에 앉아 요염하고 그에게 기대었다. “왕야, 만약 희상궁이 문둥병에 걸렸다면 초왕부를 폐쇄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문호는 경조부윤에서 물러야 할 겁니다.”안왕은 핏대를 잔뜩 세웠다. “본왕은 우문호가 경조부윤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아.”’“그렇다면……?”“난 우문호를 철저하게 무너뜨릴 거야.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아라는 안왕의 품에 안겨 그의 가슴을 쓸었다. “왕야 말씀이 맞습니다. 차라리 죽여버리는 것도 괜찮겠네요.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안왕은 아라의 허리를 감싸며 조용히 읊조렸다. “조어의는 지금 초왕부의 어의잖아. 만약 희상궁이 문둥병에 걸린 게 맞다면 조어의도 지금 원경릉을 도와 희상궁을 치료하고 있을 거야. 하지만 문둥병 같은 불치병은 치료 방법이 없으니, 일단 조어의 쪽을 공략해 보자고.”“좋습니다. 그럼 안왕께서 오늘 밤 저와 같이 있어주시는 겁니까?” 안왕은 아름다운 아라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아니, 본왕이 오랜만에 돌아왔으니 왕비와 있어야지.” “아, 예……” 아라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안왕의 무릎에서 내려와 실의에 찬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안왕비는 안왕 옆에 누워 뜬 눈으로 뒤척이다 조용히 그에게 물었다. “왕야, 아라는 당신과 함께 한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녀를 후궁으로 들이는 게 맞지 않을까요?”안왕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음……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아라가 본처인 줄 아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나보다 아라를 더 의지하고 모든 일은 아라에게 맡기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안왕부에서도 그녀가 훨씬 더 활개를 치고 다니고…… 요즘은 제가 아라의 눈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안왕비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안왕에게 말했다. “바보야. 본왕에게 아라는 그저 시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어찌 시녀 주제에 내 후궁이 될 수 있겠느냐?”“그래도…… 당신과 아라는 오랜 시간 알고 지냈고, 또 함께한 세월이 깊지 않습니까?”“그래서 우리 왕비가 나와 시녀 사이를 질투라도 했다는 건가?” 안왕이 그녀의 턱을 위로 올렸다. 안왕비는 자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질투를 안 했다면 거짓이겠지요. 하지만 질투해서 뭐 합니까? 어쨌든 안왕에게는 후궁이 필요할 텐데……”라고 말했다. “본왕은 후궁 따위는 필요 없어. 너만 있으면 된다.” 안왕이 그녀를 껴안았다. “정말요?” 안왕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당연하지. 본왕이 후궁이 필요했다면 진작에 후궁을 들였을 것이야. 근데 보아라, 난 너에게 후궁 얘기를 꺼낸 적도 없지 않느냐? 본왕에겐 오직 너뿐이야. 설마 혼인 때 했던 약속을 잊은 것이야?”안왕의 말을 들은 안왕비의 눈가가 촉촉해졌다.“예. 왕야께서 이번 생은 후궁을 들이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그래, 난 뱉은 말을 지킨다.” 안왕이 말했다. 안왕비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미소를 지었다. “왕야 그거 아십니까? 초왕도 후궁을 들이지 않고 한결같이 초왕비만 사랑하겠다고 했답니다. 그 얼마나 순결하고 귀한 사랑입니까? 저는 내심 그 둘을 보며 부러워했습니다. 왕야께서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네요
조어의를 떠보는 적운근래 안왕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정에서 요직을 담당하는 고관대작들로, 이들은 일전에 집안에 환자가 생기면 성은을 입어 어의를 청하곤 했다. 그래서 조어의와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람도 여럿 있는데 그들은 평일에도 가끔 모이곤 했다.이번에 조어의를 술자리에 초대한 사람은, 명원제가 파격적으로 ‘국구(國舅, 황제의 처남)’로 봉한적위명의 장자 적운(狄雲)이다.원래 태후나 황후의 형제만 국구로 봉해지는데, 적운은 3년전 천자를 호위할 때 명원제를 구한 공이 있어 그 자리에서 바로 국구로 봉해졌다.국구 적운의 장모가 전부터 심근경색을 앓아왔는데 항상 귀비의 은혜로 조어의가 몇 번 치료하러 다녔고, 그렇게 왕래하다 보니 국구와 친해졌다.이제 국구가 술자리에 초대하면 조어의는 안 갈 도리가 없었다.하지만 조어의도 바보가 아닌 지라 안왕과 태자 사이에 드리운 암울한 기운의 심각성을 알고, 가기 전에 우문호를 찾아가서 물었다.우문호가, “신경 쓰지 말고 가시게, 만약 술자리에서 희상궁 일을 물으면 희상궁이 확실히 병이 있는데 본인은 치료에 참여하지 않고 태자비가 직접 한다고. 그리고 희상궁이 혼자 따로 살고 있어 아무도 드나들 수 없다고 얘기 잊지 말고.”조어의는 희상궁이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태자가 신신당부하는 것이 분명 의도가 있을 것이므로 알았다고 했다.적국구와 만난 뒤 예의상의 인사말을 나누자마자 바로 술이 들어왔다.이렇게 속히 술을 권하는 걸 보고 조어의도 마음을 다잡고 술이 세 순배쯤 돌자 상당히 취한 척 했다.적국구가 상황을 보고 술잔을 내려 놓으며 이것저것 주워섬기다가, “맞아, 사람들이 전에 태상황의 시중을 들던 희상궁이 지금은 초왕부에 있다고 하던데, 조어의는 희상궁과 알고 지내십니까?”조어의가 듣고 ‘과연 희상궁 일을 묻는구나’ 싶어 태자의 선견지명에 놀라며, “맞습니다, 희상궁이 확실이 태자비 마마의 시중을 들고 있지요, 저는 희상궁과 우연히 몇 마디 섞어봤을 뿐이라 알고 지낸다고 하긴 어렵군요.”적국
희상궁의 병을 의심하는 적운과 조어의조어의가 이번엔 직접 술을 따라 적국구의 잔을 가득 채우더니 자신의 잔에도 따르고, “오늘밤 국구 나리께서 오직 저를 위해 술자리를 마련해 주셨으니, 제가 국구 나리께 한 잔 올릴 차례입니다.”적국구는 조어의가 이번에 권한 술은 평소처럼 어물어물 넘기지 않고 바로 다 비우더니 술잔을 내려놓고, “그럼 태자비 마마께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조어의가, “태자비 마마께선 짧은 논평에서 나병에 관해 보시고 소인에게 물어보는 것이라 하셨습니다.”적국구가 당황하며, “논평에 나병에 관해 써 있다고요?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조어의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웃으며, “진짜인지 아닌지 누가 따지겠습니까? 자자, 계속 드십시다.”적국구가 웃으며, “만약 정말 나병에 걸렸으면 어의에게 알릴 리 없었을 테지요.”조어의가, “그야 그렇지요, 태자비 마마시니까요, 하지만 국구 나리 눈은 속일 수 없으니 말씀드립니다. 초왕부 시녀 만아가 약방에서 나병을 치료하는 약을 사더군요, 단지 이것은 기밀사항으로 아무도 알게 해서는 안됩니다.”“정말입니까?” 적국구의 눈이 빛나더니, “확실하지요?”“됐어요, 그만 합시다. 이 일은 저희와 무관하니 자자, 술 드십시다.” 조어의가 입을 다물었다.적국구가 더 캐내기가 뭐해서 대충 몇 잔 더 마시더니 핑계를 대고 일이 있다며 갔다.조어의가 돌아와서 우문호에게 보고하고 적국구가 과연 희상궁 일을 물었다고 했다.우문호가 서탁에 앉더니 얼굴에 화색이 가득 돌며, “잘 됐군, 물어 보다니 잘 됐어.”조어의가 어리둥절해 하며, “왕야, 희상궁이 정말 나병에 걸린 건가요?”우문호가 손을 흔들며, “어찌 그럴 리가? 희상궁은 전에 계속 황궁에 있었고, 출궁한 뒤로 초왕부에 있었으며 나병 환자들이 모이는 곳에는 간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무 이유도 없이 나병에 걸릴 수가 있나?”조어의가 다소 걱정하며, “하지만 희상궁이 이미 한 달이 넘도록 문밖에 나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우문호가 바깥을 둘러보
희상궁이 나병이라고 조정에서 터트리다이렇게 이틀이 지나고 적국구가 아침 일찍 상소를 올렸는데, ‘희상궁이 나병에 걸렸음에도 태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면서 고의로 감추고 개인적으로 나병 환자를 초왕부에 숨겨두었다’는 내용이었다.초왕부에 나병 환자가 있다는 말에 온 조정이 놀라서 술렁거렸다.5년전 역병이 창궐했던 공포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관원들에게 되살아나며 거의 매일 나병 확진자가 나오고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려고 했다.당시 명원제가 등극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으나, 바로 결단을 내려 신속하게 환자를 검사하고 병자들을 문둥산으로 보내 격리시켰다. 그리고 석회가루로 환자가 살았던 곳을 소독하고 환자가 사용한 옷과 일상용품 전부를 태워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막았다.그때 거의 경성 전체에 나병의 그림자가 드리웠는데 병에 걸린 사람은 몸에 병을 앓고,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마음에 병을 앓았는데, 조정에서 이 병은 몇 년의 잠복기를 거친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모두 자신이 잠재적인 환자가 아닌가 두려워했다.지금 적국구가 조정에서 나병이란 두 글자를 입에 담으니 어찌 사람이들이 떨지 않을 수 있을까?더욱 두려운 것은 이번에 병에 걸린 사람이 희상궁이라는 점으로 희상궁은 전에 계속 궁에서 시중을 들던 사람인데 만약 희상궁이 환자면 그러니까?순간 문무백관의 눈동자가 전부 높은 자리에 앉은 명원제를 주목했다.명원제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명원제는 당연히 그 공포를 잊을 리가 없는 것이 그 일이 마침 명원제가 등극하자 마자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다.막강한 대국에서 강력한 군대가 쳐들어 왔다면 출병해 맞서 싸울 수라도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악질이란 불치병이 발생해 폭증할 경우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적국구를 바라보고 적국구는 우문호를 바라보고 있다.10월에 하늘에서 내린 용의 아들을 순산한 경조부 부윤이자 황실의 태자 우문호는, 순간 막막한지 무고하다는 맑은 눈빛으로, “희상궁이 나병에 걸려
적위명 초왕부에 들이닥치다기왕 엄밀히 조사하기로 했으니 어의 몇 명을 관원과 함께 보내야 했다.하지만 나병인지라 관원들은 감히 가려고 들지 않고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아무도 이 난관을 해결하려고 들지 않았다.주재상이 나와서 목소리를 깔고, “소신이 어의와 함께 가 보길 원합니다.”적위명이 이 얘기를 듣자마자, “소신 부자도 함께 가 보길 원합니다.”주재상이 희상궁과 태자를 얼마나 감싸고 도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어찌 주재상 혼자 어의와 가게 둔 말 말인가? 주재상은 지금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어의도 주재상의 말을 들을 것이라 나병 진단이 나면 주재상이 어의에게 함구하라는 엄명을 내릴 지도 모른다.주재상과 적위명 대장군의 대열을 따라 조정의 다수의 관원들도 흩어져서 따라 가는데 어쨌든 가긴 가지만 희상궁과 접촉한다고 하지는 않았으니 초왕부에 앉아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고 다행히 주재상 일행과 같이 가는 형식이다.이렇게 여럿이 모여 시너지를 얻은 관원들과 망연자실한 태자가 보무도 당당하게 초왕부로 갔다.가는 길에 태자 우문호는 백치미를 드러내며 계속 적국구에게, “도대체 누가 희상궁이 나병에 걸렸다고 한 겁니까? 이거 뜬 소문 아닌가요? 만약 희상궁이 알면 분개하지 않겠어요?”적국구는 우문호를 상대하지 않았지만, 다른 관원들은 태자를 이렇게 거북스럽게만 하기도 곤란해서 ‘이 일은 어쩌면 누군가가 작심하고 초왕부와 태자 전하를 목표로 유언비어를 퍼트렸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원래는 그냥 적당히 위로하려던 심산이었는데 이 말에 주재상도 고개를 끄덕이며, “초왕부를 목적으로 삼은 유언비어일 가능성이 상당히 크군.”그래서 가는 길에 관원들 사이에 이 얘기가 퍼지며 ‘희상궁이 정말 나병이 아니면 누군가 고의로 초왕부를 격리해서 폐쇄하려고 유언비어를 퍼트린 것’ 처럼 되었다.적위명 부자가 이 얘기를 듣고 마음 속으로 쓴 웃음을 지었다. 때가 되면 유언비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우문호가 아닌 척을 하지만 척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나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