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국공을 찾아온 원경릉과 우문호적위명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장인의 성격을 알아서 만약 다시 거스르고 맞서면 장인은 거꾸로 할 것이 틀림없고 그렇게 되면 장인이 자신의 큰 적이 되고 만다.이렇게 오랜 세월 장인을 끌어들이려고 애를 썼지만 안 됐고 지금 눈 앞에서 우문호쪽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을 보니 적위명은 내심 상당히 불편했다.그래서 적위명은 가지 않고 남아서 상황을 지켜 보기로 했다.원경릉은 늦은 밤에 불려 왔는데 이번엔 태자비가 밤에 나서는 거라 우문호가 남편 된 도리로 따라왔다. 안전하지 않다고!북당의 태자가 태자비를 위해 약상자를 들고 주국공의 저택에 왔다.적위명이 태자도 왔다는 얘기를 듣고 싸늘하게 “장인 어르신, 보세요 사위가 잘못 본 게 아니죠? 태자는 분명 틈을 노릴 겁니다.”주국공이 화가 나서 “만약 네 장모를 살릴 수만 있으면 태자의 요구에 응하면 좀 어떠냐? 넌 오늘밤 왜 이리 말이 많아? 가라고 해도 안 가고 여기 죽치고 있으면서 내 복장을 긁어”주씨 집안 사람이 주국공을 달랬다. 적위명 대장군이 위세를 떨친 지 수년이 되었고 지금 귀영위의 통수권자로 주씨 집안 사람들이 전부 떠받들며 감히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데 주국공만 여전히 적위명을 당시 풋내기때처럼 질책을 했다.모두가 적위명이 고집이 세고 자기 멋대로 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안다. 적위명도 자꾸 혼내면 반발심이 생기는 법이다. 주국공은 나이가 많아 적위명을 누를 수 없는데 결국 자기가 기르는 개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 주씨 집안의 업보라면 업보다.주후덕이 우문호와 원경릉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나와서 맞이하는데 희상궁은 아직 몸이 불편하고 머리가 어지러워 같이 오지 않았다.우문호는 몇 번을 왔으나 주국공을 보지 못했는데 오늘 원경릉 덕에 주국공이 정식으로 우문호에게 엎드려 절하는 예를 취했다. 당시 태자에게 엎드려 절하는 예가 없었으니 그간의 공백을 벌충하는 의미라고 볼 수 있었다.주국공이 무릎을 끓자 주씨 집안 사람은 전부 꿇어야
국공부인에 대한 처방우문호는 서두르지 않았다.기왕 돌파구를 찾았으니 늙은이가 승낙하지 않는 건 두렵지 않다.대주씨와 소주씨도 같이 따라 들어가고 주후덕과 적위명 및 다른 주씨 집안 사람들은 밖에서 우문호에게 인사했다.적위명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우문호에 대한 적의는 드러내지 않는 대신 상대도 하지 않고 주후덕과 우문호가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원경릉이 주국공, 주씨 자매와 방에 들어가니 국공부인은 아직 주무시고 곁에 시중드는 계집종이 있다.원경릉이 가서 들여다보니 국공부인이 설령 숙면을 취하고 있지만 얼굴색이 창백하고 앞머리가 푹 젖어 고통이 얼마나 사람을 괴롭혔는지 알 수 있었다.그리고 얼굴엔 가벼운 부종이 있고 손발도 그런데 살짝 눌러도 한동안 다시 튀어나오지 않았다.그런데 원경릉이 손을 뻗어 누를 때 국공부인이 깨셨다.국공부인은 잠결에 원경릉을 보고 알아보지 못해 멍하니 있자 소주씨가 얼른 나와서 “어머니, 이 분은 태자비 마마신데 어머니 병을 봐주러 오셨어요.”국공부인이 태자비라는 말을 듣고 몸부림을 치고 일어나 예를 취하려 하자 원경릉이 부인의 어깨를 누르며, “부인, 누운 채로 움직이지 마세요.”주국공이 “맞아, 당신은 누워, 방금 내가 대신 예를 갖췄어.”국공 부인이 힘없이 웃으며, “대신 예를 취해 줬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네요.”“있다면 있는 거야!” 주국공이 으름장을 놓았다.국공부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살짝 잔소리를 섞어, “난폭하게 왜 그러세요, 예의 잊으셨어요?”주국공이 고개를 흔들며 떳떳하게 큰소리로 “방금 밖에서 엎드려 절하는 예를 올렸어, 전혀 난폭하지 않았네. 못 믿겠으면 태자비 마마께 여쭤보든지.”국공부인이 빙그레 웃으며 자애롭고 따스한 얼굴빛으로 원경릉에게 “태자비 마마 언짢게 여기지 마세요, 남편이 원래 저런 성격이라 혹시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이 몸이 대신 사과 드리겠습니다.”원경릉이 미소 짓고 앉으며, “괜찮습니다 부인, 예를 취하고 사과하는데 시간 다 가겠어요. 저는 부인의 병을
결석을 치료하는 원경릉원경릉이 마음속으로 그녀가 적위명의 부인임을 알아보았으나, 오늘은 외부 사람이 많고 주씨 집안은 유전자가 강해서 서로 상당히 닮은 데다 원경릉이 오늘 자세히 볼 겨를이 없어 잘못 봤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물어본 것이다.대주씨는 “제 남편 집안은 적씨입니다.”그렇다면 틀림없다. 원경릉이 허리를 곧게 펴더니 담담하게 “대장군 부인이시군요? 원판과 어의가 와서 국공부인에게 약을 쓸 때 부인께서는 의심하고 질문하셨습니까? 부인의 태도는 어찌 이리 차이가 나는 지요?”“그건……”원경릉이 다시, “그리고, 부인은 치료할 방법이 있으십니까?”대주씨가 입을 삐죽거리며, “저에게 방법이 있었으면 벌써 했지 태자비 마마까지 번거롭게 했겠습니까?” 원경릉이 약상자를 열고 아무렇지도 않게 “방법이 없으시면 문외한이니 그저 서서 지켜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물어 대면서 시간 뺏지 마시고요. 아셨어요?”대주씨가 불쾌한 어조로 차갑게 “그렇게 말하지만 마마께서 쓰는 약을 우린 본 적도 없는데 몇 마디 좀 물어보면 안됩니까? 만약 약을 잘못 쓰거나 안 맞으면 노인이 그냥도 고통으로 힘들어 하시는 것을, 딸 된 도리로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원경릉이 반문하며 “물어보실 수 있죠, 하지만 의심하고 질문하지 마세요, 원판이 와서 국공부인의 병을 봤을 때는 의심하고 물어보지 않았지만 약효가 없었고, 국공부인은 여전히 고통스러우셨습니다. 그때 뭐라고 하셨나요? 제가 드린 약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국공부인께서 제 진통제를 드신 것을 대주씨께서 직접 보지 않았습니까?”“그게 어떻게 같아요? 원판은 태의원의 수장이라 권위가 있잖아요, 그리고 진통에 대해서도 태자비 마마께서 그러지 않았나요? 잠깐일 뿐이라고. 약효가 지나면 여전히 아플 거라고요.” 대주씨가 반발하며 차갑게 말했다.원경릉이 손을 내려놓고, “그래서 제가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는 것을 반대하시나요?”대주씨는 잠시 있다가 담담한 얼굴로 “그냥 자세히 여쭤봤을 뿐입니다. 반대한다고
국공부인 치료의 대가?“예,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원경릉은 주국공이 수액이란 방식을 얘기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약물은 다릅니다. 왜냐면 병이 다르니까요.”주국공이 ‘아아’ 하더니 국공부인 곁에 앉아 가는 목소리로 “아직도 아파?”“안 아파요, 배는 좀 쑤시고 팽팽하지만.” 국공부인이 부드럽게 말하고 원경릉을 보고 감격해서 “태자비 마마 정말 감사합니다. 늙은 몸이 다시 한번 살아났습니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고, “부인, 철저하게 낫게 해야 합니다. 아직 시간이 걸려요, 감사는 그때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국공부인이 주국공을 보고, “나중에 태자비 마마께 제대로 감사인사해 주세요 아셨죠?”“알았어.” 주국공이 대답하는 모습이 말 잘 듣는 아이 같다.수액 반 병 정도 떨어진 뒤 노부인이 용변을 보고 싶다고 해서 소주씨가 얼른 와서 돕는데 화장실이 밖이라 국공부인은 아직 수액을 꽂고 있다고 원경릉이 나가지 못하게 하자 요강을 들여와서 원경릉은 잠시 자리를 피했다.잠시 후 원경릉이 다시 들어와서 “어때요?”국공부인이 표정이 한결 후련하고 편안하게 원경릉에게 고맙다고 몇 번이고 얘기했다.주국공은 이 때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낙담해서 한숨을 쉬며 국공부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런데 한숨을 쉬고 나더니 주국공의 표정이 편안해 졌다.수액이 다 들어가고 원경릉이 복용할 약을 남기고 내일 다시 오겠다고 했다.주국공이 원경릉을 본관 바깥까지 배웅하니 우문호가 둘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묻길 “어떠셔?”원경릉이 “잠시 통증은 멈췄어요, 전 내일 다시 오고요.”우문호가 주국공과 다른 사람들에게 예를 취하고, “그럼, 우린 먼저 가보겠습니다.”주국공이 당황해서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말투로, “태자 전하께서는 저와 나눌 일이 있지 않으십니까?”우문호가 놀라며, “무슨 일이지요?”주국공이 앉아서 콧방귀를 뀌며 “척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하께서 태자비 마마를 데려와 제 아내의 병을 치료하신 것은 목적이
딸을 내친 주국공과 귀신을 보는 태상황적위명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불편했다. 게다가 이 말은 주씨 집안 사람들 앞에서 한 말이라 적위명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주국공은 아직도 적위명을 그때의 애송이로 생각하는 것이다.하지만 적위명은 장인의 성격이 욱하다는 것과 지금은 정말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것을 알고 조용했으나, 대주씨는 적위명을 위한답시고, “아버지,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어요? 사위는 다 아버지를 위해서 저들의 계략에 당할 까봐 걱정돼서 그런 건데. 아버지는 원래 정사에 상관하지 않고 줄도 서지 않잖아요. 그런데 만약 어머니의 병을 약점으로 잡혀서 태자 쪽에 서라고 압박을 받으면 안왕 전하는 어떻게 하시려고요?”주국공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노기가 등등하여 눈을 부라리며 대주씨에게, “태자 전하와 안왕 전하가 대립하는 것이냐? 태자 전하는 황태자로 다음 대통을 이을 자인데 네 말 대로 안왕 전하가 태자와 적이면, 안왕이 역모를 꾀하는 역신이란 것을 암암리에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밤새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입으로 똥을 쌌겠지. 이 말이 만약 밖으로 새나가는 날엔 네가 안왕을 죽이는 꼴이다. 내가 안 그래도 방금 널 욕하려고 했다. 태자비께서 야심한 밤에 와서 네 어미의 병을 치료하고 있는데 감사하단 말은 일언반구도 없이 터무니없이 못살게 굴고 방해를 해, 도대체 뭐하는 짓거리야? 무슨 짓거리냐고 어? 알고 싶지도 않다!”대주씨가 굴욕적이란 얼굴로 길길이 날뛰며 “아버지, 딸이 아버지를 위해 생각해드렸는데 뭘 그렇게 화를 내십니까? 사위와 제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세요?”주국공이 매정하게 “너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 인성이 삐뚤어져도 한참 삐뚤어졌어. 너희는 필요 없다 돌아가거라.”말을 마치고 주국공은 자리를 떠나 나갔다.남은 대중들은 순간 난감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 주국공이 적위명에게 이렇게 대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밤 이렇게 불호령을 내리니 다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한편, 우문호 부부
태상황의 설사원경릉이 예하고 약상자를 들고 들어갔다.태후와 호상궁이 침전에서 시중을 들고 어의도 있다. 태상황은 침대에 누워 눈을 크게 뜨고 있는데, 두 눈에 초점이 없고 침대 맡을 보며 힘껏 손을 휘 저으며, “저리가, 과인에게서 떨어져, 내 목숨을 찾으러 온 거냐? 두 나라가 싸우는데 네가 죽지 않으면 과인이 죽어. 이건 만고불변의 법칙이 아니냐, 꺼져, 썩 꺼지란 말이다!”태후가 눈물을 흘리며 다급하게 “이런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누가 죽인다고 그래요? 아이고!”우문호가 와서 태후를 부축해 일으키며 다독이길 “황조모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을 겁니다. 원 선생이 진찰하게 두죠.”태후가 눈물을 닦으며 원경릉을 흘깃 보고, “어서 와서 좀 보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뭐에 씐 건 아니겠지?”원경릉이 대답하길 “황조모 서두르지 마시고, 제가 우선 좀 볼 게요.”원경릉이 가서 보니 태상황의 피부가 건조하고 눈두덩이 깊이 패인데다 입술이 말라서 갈라진 것이 확실이 탈수 증상이다.검사해보고 어의에게 몇 마디 물어보더니 일단 수액을 걸었다.태상황은 여전히 몽롱한 가운데 귀신이 어쩌고 저쩌고 웅얼거리고 있고, 원경릉은 사람을 시켜 뜨거운 물을 가져오게 해서 알약을 몇 알 먹이는데 굉장히 협조적이라 꿀꺽 삼키더니 원경릉이 전해질을 열어서 마시게 하자 다 마시고 드러눕더니 잠이 들었다.잠시 후 태상황의 눈에 점점 초점이 잡히더니 원경릉을 보고 마치 막 일어난 듯, “왔냐?”원경릉이 태상황에게, “뭘 아무거나 드신 거예요? 어쩌다 설사를 하신 건데요?”“아무것도 안 먹었어, 하루 세끼 전부 네가 얘기한 대로 담백한 음식 위주로.” 태상황이 무고한 사람을 의심한다는 눈빛이다. 설사로 살이 홀쭉해 져서 눈이 더 커 보이는데 의외로 약간 멋진 느낌도 있어, “별것도 안 먹었는데 설사를 하다니, 어떻게 그렇게 재수가 없지? 하여간 나이는 못 속인다니까.”상선이 살금살금 앞으로 나오더니 비리를 까발리는데, “그게 별 거도 안
“왜 이렇게 잔소리가 심해? 지금이 몇 시인데 이 소란이라는 말이다! 과인은 죽지 않을 것이니! 여기서 내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빨리 돌아가거라!” 태상황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을 내쫓았다. 태후는 태상황의 성화에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걱정이 되는 표정으로 상선에게 그를 잘 돌보라고 언지를 주었다. 명원제는 태상황이 버럭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많이 놓였다. “두 사람은 건곤전에 있다가 내일 아침에 돌아가거라.” 명원제가 우문호와 원경릉에게 말했다.“예.” 우문호가 대답했다. 명원제가 돌아서자 주황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경릉은 나한 침상을 가리키며 우문호에게 말했다.“지금은 내가 태상황님을 볼 테니 넌 눈 좀 붙여.”“나 안 졸려. 나도 네 옆에 있을게.”태상황은 살짝 눈을 떠 그들을 보았다.“찰떡이는 좀 어떤가?”“괜찮습니다. 병도 다 나았고 요즘 살도 붙어서 통통합니다.” 원경릉이 태상황의 이불을 덮어주며 대답했다.“다행이구나. 그럼 나중에 데리고 와서 이 늙은이에게 보여주렴.”“예, 태상황님 눈 좀 붙이세요. 아직도 어지럽고 환각이 보이십니까?”“약간 어지러운데…… 환각이 아니야. 분명 귀신이었어. 듣자니 사람이 죽기 직전엔 귀신을 본다는데 짐도 머지않아 죽는다는 소리겠구나. 그렇지?”“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태상황님은 건강하시다고요!” 원경릉이 말했다.태상황은 그녀의 말은 귓등으로 듣지 않았다. “사람은 다 죽는다. 과인의 나이도 적지 않으니 곧 죽어도 이상할게 없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다.”태상황의 담담한 목소리에 원경릉과 우문호는 슬퍼졌다. “황조부, 칠순 팔순까지 살아계셔야 합니다. 그만큼 살면 염라대왕도 감히 황조부를 데리고 갈 수 없을 겁니다. 백만 년 천만 년 사셔야 하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우문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허허, 네가 지금 과인을 가지고 노는 것이냐? 그러다 과인이 귀신이 되어 백만 년 동안 이승에 돌아다니면 어쩌려고?” 태상황
태상황은 천천히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을 때가 다가오니까 시간이 너무 아까워.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하루를 값진지 모르고 살았다. 젊을 때는 시간이 넘쳐나는 줄만 알았어. 늙고나니 알게됐어.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야. 그 시간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었어.”원경릉은 태상황의 손을 잡았다. 태상황은 천천히 눈을 치켜들고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루완(落蠻)아 잘 지냈느냐?”우문호와 원경릉은 넋 나간 표정으로 태상황을 바라보았고 상선은 온몸을 덜덜 떨며 애써 눈물을 삼켰다. 태상황의 눈도 서서히 감겼다. 태상황은 탈수가 심해서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약을 복용해 잠깐 기운이 생겼던 것 같았다. 그는 약 기운이 사라지자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원경릉은 조용히 상선에게 “루완이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다.상선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눈짓으로 태상황 쪽을 가리켰다. 아니나 다를까 태상황이 다시 눈을 뜨고 원경릉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환각을 보셨습니까?”“방금 네가 뭐라고 했는데……”“태상황님, 소인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그럼 방금 네가 들은 게 환청이라는 건가……” 태상황이 어리둥절했다. 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상선을 보고 눈을 찡긋했다.세 사람은 태상황의 옆을 지키다가 그가 코고는 소리가 들리자 상선이 원경릉에게 손짓을 해 나한 침상 쪽으로 가자고 했다. 우문호는 상선의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갔다.‘도대체 루완이 누구인 거지? 왜 황조부께서 환각을 볼 때 그를 보았던 걸까?”상선은 두 사람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루완이라는 사람은 소요공의 사부로 사람들은 루신(落神)이라고 부르며, 태상황님께서 그녀를 처음 알았을 때는 소후부(蘇侯府)의 세 번째 아가씨였습니다.”“여자라고요? 황조부님 입에서 여자의 이름이 나온 겁니까?”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 황조부의 후궁은 매우 적었고, 실제로 봉호를 받은 사람은 황조모
세월이 흘러, 택란이 열한 살 되던 해에 드디어 만두가 돌아왔다.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그는 이제 완전한 청년으로 성장해 돌아왔다. 그리고 떡들 세 명은 만으로 따지면 이미 열일곱 살이 되었다.만두는 도착하자마자 먼저 황제의 허락을 받고 군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비록 국경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국력이 항상 군사력의 안정에 의해 뒷받침되기 때문에 군 경험이 매우 중요했다.나라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면 먼저 군심을 얻어야 한다.우문호는 그의 선택을 전폭 지지하며,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키워주기 위해서 그를 작은 병사로 임명하여 군에 들여보냈다. 약도성은 이미 재건이 대부분 완료된 상태였다. 백성들도 마음을 다잡았고, 이제는 본격적인 발전만 남아 있었다. 이리 나리와 홍엽이 이곳에 왔을 때, 냉명여를 약도성에 남겨두었는데, 호명이 챙기려 했으나, 냉명여는 택란 곁에서 그녀를 보호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꽤 고집이 센 아이기에 그는 그저 놔두기로 했다. 변경은 심지를 단련하기에 좋은 곳이었고, 호명이 보살펴 주며 저택 안에 거주했기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진국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황제가 본격적으로 조정을 이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도는 원래 약도성 접경 지역에 새롭게 지은 곳으로 옮겨졌고, 이름 또한 량주로 바뀌었다. 금나라는 이제 공식적으로 량주를 수도로 정했다.이 소식이 약도성에 전해지자, 택란은 무척 기뻐하며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이제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해도 될 것 같소. 금나라에 한 번 가볼 생각인데, 자네도 같이 가는 것이 어떻소?”그 해 택란은 훌쩍 성장해 주 아가씨보다 조금 더 커 있었다. 주 아가씨는 때때로 그녀를 보며, 대나무가 환생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며칠 사이에 또 훌쩍 자란 것이다.택란의 아이 같던 분위기는 사라졌고, 훨씬 차분하고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약도성의 거센 바람과 강한 햇빛 때문에 원래 하얗던 피부는 건강한 빛을
우문호는 정정이 계란이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놓였다. 보아하니 혼인 문제에 있어 두 사람은 합의를 봐 더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 같았다.정정 대장군 부부는 경성에서 반 달 동안 머물렀고, 그동안 정정과 우문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말을 타거나, 군영과 산을 누비며 백성들을 살폈다.대두는 아이들과 즐겁게 지냈다. 비록 처음 이틀 동안은 계속 만두를 보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이제는 만두를 완전히 잊은 듯했다.그는 란이와도 갈등을 풀었고, 오히려 제일 친해져서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했다.그렇게 2주가 지나 정정이 작별을 고하기 전, 우문호에게 대두의 배필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하며, 대두는 그녀가 자랄 때까지 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그의 말에 우문호가 어리둥절하며 물었다.“누구요?”정정이 웃으며 말했다.“지금은 말할 수 없소. 아직 확정된 일이 아니라, 나중에 잘못되면 감정이 상할 수도 있네.”“우리 사이에 말 못 할 게 어딨소?”우문호는 그의 말에 이미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그러자 정정이 더욱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들으면 자네가 조급해질까 봐 그러네!”우문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난 지금 이미 엄청 조급하네.”정정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철썩 때리며 위로했다.“걱정하지 마시게. 계란이는 아니네. 계란이는 내 딸이기도 하니, 절대 며느리가 될 수 없소.”다른 남자가 계란이를 자기 딸이라 부른 건 처음이었지만, 우문호는 반감 없이 오히려 매우 기뻐, 활짝 웃으며 말했다.“맞네, 자네 말이 맞아. 계란이는 자네 딸이기도 하네. 우리 모두의 착한 딸이지.”근영군주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원경릉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우리가 여기서 제일 쓸모없는 존재 같습니다…”“맞는 말입니다!”원경릉이 진지한 표정으로 맞장구치자 근영군주가 그녀를 가볍게 안으며 말했다.“앞으로는 자주 만나지 말고, 1년에 한 번만 봅시다! 시간이 어찌 이리 빨리 흐른다는 말입니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눈
목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마들을 사육했기에, 우문호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당장이라도 정정과 함께 보러 가고 싶어 했다.그러자 근영군주가 웃으며 말했다.“폐하께서 아직도 소년 같은 순수함을 지니시고 있다니, 참 보기 드물고 귀한 일이군요.”하지만 원경릉의 귀에는 이 말이 남편이 어린아이 같다는 말로만 들렸다.그녀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하하하. 사내들이 가끔 저렇게 유치할 때가 있잖습니까.”근영군주도 깊이 공감하며 말했다.“예. 평소엔 유치하다가도, 필요할 때는 놀라운 배짱과 결단력을 보여주지요. 집안을 지탱하기도 하고, 나라를 떠받치기도 하고. 안 그렇습니까?”원경릉도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남자들이 말을 타러 나가자, 원경릉과 근영군주는 궁전 안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두가 몹시 심심해하자 원경릉은 친왕비들에게 아이를 궁으로 데려와 아이들끼리 놀게 했다.대주의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친왕비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궁에 들어왔다.사실 대두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많지 않았다. 미색의 두 아이와, 원용의의 아이 모두 대두보다 어렸지만, 놀 벗이 없는 상황에 나이가 어린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대두는 외동아들로 자라 성격이 다소 거칠었다. 하지만 미색의 딸인 란이 역시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어머니인 미색을 닮아 태생이 강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었다.게다가 그녀에게 무술을 배워 한창 센 척을 할 시기라 대두와 몇 마디 말다툼 끝에 결국 몸싸움으로 번져 버렸다.란이가 대두를 때리자, 대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맞으면서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참고만 있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란이는 평소 늑대파에서 무술 대련을 했기에 상대가 반격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맞고만 있는 멍청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에, 부어오른 대두의 뺨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며 물었다.“어찌... 반격하지 않는 것입니까?”대두는 화난 표정으로 대답했다.“어찌
생각해 보면 이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혼사를 정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남녀인지도 모르면서 성급한 부모들이 충동적으로 혼사를 결정해 버리다니 말이다. “대두가 아직 이리도 어린데, 벌써 혼사를 이야기하다니요, 우리 만두는 아직 애 입니다.”우문호는 괜히 기분이 답답해졌다.현대로 다녀온 뒤, 사람들이 늦은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는 것을 본 그는 생각이 바뀌었다. 열몇 살에 혼사를 하는 것은 성장의 억압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사 이야기를 한다고 당장 하는 건 아니오. 그저 약속만 하고, 몇 년 후에 하겠다는 거네.”“어찌 이리도 태연한 것이오?”우문호가 원경릉의 여유로운 표정을 보며 그녀가 그들이 빚을 받으러 온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난 걱정 없소. 딸을 보내고 싶지 않으면 당신처럼 쓸데없는 부담감 없이 그냥 바로 거절할 것이오. 형제간의 정이 거절로 인해 상할까 봐 고민한다니, 억지로 혼사를 성사하는 것이 더 정을 상하게 할 것이오.”그러자 우문호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음이 편치가 않소.”후궁에서의 우문호는 조정에서의 단호하고 강력한 모습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었다. 조정에 나서기만 하면 단호하고 과감하며, 마치 번개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는 반면, 후궁에서의 그는 망설임도 많고 잔소리도 많은 사람이었다. 원경릉이 다른 왕비들과 대화할 때, 그들도 가끔씩 이 얘기를 꺼내곤 했었다. 다들 다섯째의 평소 잔소리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며 놀라했다. 하지만 다른 친왕들의 의견은 달랐다. 그들은 그가 예전보다 훨씬 결단력이 있어졌다고 말했다.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나리는 한숨을 쉬며, 결국 결단력 넘치는 황제도 결국 자식들 문제에서는 고민에 빠지는구나 싶었다.8월 14일, 정정 대장군 가족이 북당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초왕부에 머물렀다.그들은 초왕부에 머문 직후 탕양의 안내로 우문호를 만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갔다.아무리 큰 걱정도 오래된 벗 앞에서
예전에 원가에서 온 가문이 강북부로 이주한 적이 있었다.북쪽은 바람과 모래가 거셌지만 원가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느끼게 했다.이리 나리는 원가의 사업을 줄이도록 도우며, 관리하기 쉬운 몇몇 가게만 남겼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에게 장사를 내려놓아도 괜찮은지 물은 적 있었는데, 그때 일곱째 아가씨가 말했었다.“그런 말 마시오. 내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 만족스럽소. 열심히 해서 큰 성과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평생 바삐 지낼 수도 없잖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겠소? 다 잘 살기 위해 번 것이오. 가업을 나눠 받은 돈만 해도 평생 다 못 쓸 만큼 많소. 그리고 가게들도 계속 돈을 벌 텐데 뭐가 아쉽겠소?”탕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손에 익은 일이라, 혹시라도 아쉬워할까봐 걱정했소. 사실 나도 당신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었소. 당신만 괜찮다면 다행이오.”일곱째 아가씨는 미소를 지었고, 그의 말에 모두가 기뻐했다.“한가해지는 것도 괜찮소. 1년에 두세 달은 약도성에 가서 지내면 얼마나 여유롭겠소.”하지만 탕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1년에 두세 달이면, 왕복하는 시간까지 더해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고, 그 말은 반년 동안이나 그의 곁에 없다는 뜻이었다.게다가 그도 경성을 몇 달씩 떠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은 황제 곁을 하루라도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녀가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그는 늘 함께하고 싶었지만, 오래된 부부였기에 항상 붙어있을 필요는 없었다.북당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었다. 원가가 일부 사업을 매각하면서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가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싸웠고, 좋은 위치에 있는 가게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다.원래 원가는 모든 가게를 이리 나리에게 넘기려 했지만, 이리 나리는 거절했다.그리고 안풍친왕이 먼저 나서서 이리 나리가 이미 너무 많은 가게를 보유하고 있고, 특히 경성에서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독점 우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일곱째요? 일곱째는 분명 원용의에게 말할 것이고, 원용의는 또 사식이에게 얘기할 것이고, 사식이도 분명 서일에게 전할 것일 텐데요. 만약 서일이 알게 되면, 이제 북당 전체가 다 알게 될 것이오.”우문호는 순간 당황해하며 말했다.“그건 내가 생각지도 못했네.”원경릉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황실 친왕들 사이에서 이미 탕양의 이야기가 뒷말로 오가고 있을 것이었다. 겨우 부인을 얻었는데, 밤에 함께 자지 못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우문호는 탕 대인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들 뒤에서 탕양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여인들이 수군거리니, 남자들은 그를 도우려 했다.물론 부부 사이의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기에, 대신 탕양을 술자리로 초대해 술로 고민을 푸는 방법을 제안했다.그렇게 며칠째 술을 마시던 탕양은 자신의 비밀이 모두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제 탓입니다. 폐하가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걸 깜빡했습니다.”제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여인은 때로 달래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그러자 탕양이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했다.“제가 폐하께 이 이야기를 했을 땐, 혼례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알고 있다. 서두르지는 말거라.”모두가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탕양을 바라보았지만, 탕양은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그들은 이미 혼인했지만, 오랜 부부 생활을 한 터라, 남녀 간의 정이 때로는 하루아침에 급격히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탕 대인은 돌아가자마자 일곱째 아가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이지, 어찌 허구한 날 남의 부부 일에만 관심을 가지니, 할 일이 없나 보오.”“신경 쓰지 마시오. 우리가 잘 살면 그만이니.”탕양은 일곱째 아가씨를 안으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