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황은 천천히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을 때가 다가오니까 시간이 너무 아까워.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하루를 값진지 모르고 살았다. 젊을 때는 시간이 넘쳐나는 줄만 알았어. 늙고나니 알게됐어.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야. 그 시간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었어.”원경릉은 태상황의 손을 잡았다. 태상황은 천천히 눈을 치켜들고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루완(落蠻)아 잘 지냈느냐?”우문호와 원경릉은 넋 나간 표정으로 태상황을 바라보았고 상선은 온몸을 덜덜 떨며 애써 눈물을 삼켰다. 태상황의 눈도 서서히 감겼다. 태상황은 탈수가 심해서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약을 복용해 잠깐 기운이 생겼던 것 같았다. 그는 약 기운이 사라지자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원경릉은 조용히 상선에게 “루완이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다.상선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눈짓으로 태상황 쪽을 가리켰다. 아니나 다를까 태상황이 다시 눈을 뜨고 원경릉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환각을 보셨습니까?”“방금 네가 뭐라고 했는데……”“태상황님, 소인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그럼 방금 네가 들은 게 환청이라는 건가……” 태상황이 어리둥절했다. 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상선을 보고 눈을 찡긋했다.세 사람은 태상황의 옆을 지키다가 그가 코고는 소리가 들리자 상선이 원경릉에게 손짓을 해 나한 침상 쪽으로 가자고 했다. 우문호는 상선의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갔다.‘도대체 루완이 누구인 거지? 왜 황조부께서 환각을 볼 때 그를 보았던 걸까?”상선은 두 사람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루완이라는 사람은 소요공의 사부로 사람들은 루신(落神)이라고 부르며, 태상황님께서 그녀를 처음 알았을 때는 소후부(蘇侯府)의 세 번째 아가씨였습니다.”“여자라고요? 황조부님 입에서 여자의 이름이 나온 겁니까?”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 황조부의 후궁은 매우 적었고, 실제로 봉호를 받은 사람은 황조모
“그 당시의 일은…… 부에서도 잘 몰랐습니다.” 상선이 망설였다. 우문호는 상선이 뭔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황실의 비밀이기에 말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것은 황실의 오래된 일일뿐 현재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인생의 절반 넘는 세월이 지났는데 이제 와서 왈가불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당시의 일은 영원히 묻혀야 한다. 다음 날 태상황은 자기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도 못하는 듯 정신을 차리자마자 밥을 먹자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며칠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아 배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하인에게 고기를 내어오라고 하자 원경릉이 태상황에게 안된다고 말하며 지금은 죽만 먹어야 한다고 했다.“너는 정말 야박하구나!” 그는 원경릉에게 욕을 퍼부었다.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온 태상황을 보며 원경릉은 사람이 나이가 먹으면 일찍이 기억 저편에 있던 사람이나 사건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틀날 정오가 지난 시간, 원경릉은 태상황에게 링거를 두 병 놓고 궁을 나왔다. 우문호와 원경릉은 출궁을 하고 나서야 진정정 내외가 생각났다. 두 사람은 손님을 불러놓고 제대로 접대하지 못한 것 같아서 내심 진정정 내외에게 미안했다. 두 사람은 왕부에 도착하자마자 진정정 내외에게 사과를 했다. 진정정은 그 두 사람이 어젯밤에 주국공부에 갔다가 태상황이 편찮다는 말을 듣고 입궁했다가 지금 왕부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태자비, 저희는 신경 쓰지 마세요 정말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무슨 날입니까? 왜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습니까?” 진정정이 말했다.“누가 또 아픕니까?” 원경릉이 물었다. 옆에 있던 사식이가 “희상궁님이 아프세요.” 라고 말했다. “괜찮아지지 않으셨어? 어제도 같이 국공부에 가셨었는데?”“괜찮아졌죠. 근데 어찌 된 일인지 어젯밤부터 또 열이 나셨습니다. 아까 조어의의 해열 약을 드셨는데 그 후로는 좀 열이 떨어지신 것 같습니다.” 사식이가 말했다.“정말 열이 가신 것
주국공은 원경릉을 보고 인사치레도 없이 노부(老夫)가 언제부터 어디가 아팠는지 설명했다. “오늘 점심부터 복부와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네”원경릉은 진통제와 링거를 놓으며 부인의 증세에 대해 주국공에게 물었다. “이 병은 단기간에 치료가 불가합니다. 부인의 콩팥에 결석이 생긴 것인데 이 결석을 몸 밖으로 배출해야 나을 수 있습니다. 일단 통증이 심하니 약으로 통증을 멈춘 후 결석을 제거해야 합니다.”“결석이 있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네. 하지만 노부인의 몸이 허약해서 결석을 빼내는 약을 끝까지 먹을 수 없었어.” 주국공이 말했다.“그럼 제가 드린 약을 한두 달 정도 복용하고 상황을 지켜보시지요.”주국공은 원경릉을 조용히 불러냈다.“태자비, 솔직하게 말해주게. 노부의 병을 치료할 수 있겠는가?”“국공 나리 걱정 마세요. 큰 병이 아닙니다. 치료만 잘 받는다면 완쾌할 수 있습니다.”주국공은 그 말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저 병이 큰 병이 아니라고? 내가 저 병으로 죽는 사람을 여럿 봤어!”라고 말했다.원경릉은 나이 든 사람에게 자신이 어떻게 치료할지 말해봤자 입만 아플 것이라고 생각했다. “걱정 마세요. 결석을 제거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주궁공은 눈썹을 찌푸리며 “태자비의 말을 늙은이가 믿을 수가 없군. 큰 병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어의들이 치료하지 못한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태자비 설마…… 노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니겠지?” 라고 물었다. 원경릉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화를 내려고 하다 밖에서 들리는 앙칼진 여인들의 목소리에 말을 멈추었다.‘사식이가 누구랑 싸우는 것 같은데……’잠시 후 하인이 주국공에게 달려왔다. “국공 나리, 태자비께서 데리고 온 시녀와 마마님이 다투셨는데, 시녀가 마마님께 폭력을 쓰려고 합니다!”주국공은 그 말을 듣자마자 원경릉을 노려보았다. “태자비의 시녀는 어찌 위아래가 없는 것인가?”원경릉은 깜짝 놀란 얼굴로 주국공을 보았다.“어떻게 된 일지 알아보겠습니다.”
대주씨는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원경릉을 보았다. “태자비께서는 국공부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닙니까?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한낱 노비가 윗사람에게 대듭니까?”원경릉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식이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대주씨를 노려보았다.그 모습을 본 대주씨는 어이가 없다는 듯 차갑게 웃었다.“어이고, 공정하고 현명한 태자비 납셨습니다. 아랫것 하나 간수하지 못해 휘둘리는 꼴이란…… 안하무인 한 노비를 호되게 혼내지 못 할망정…… 쯧쯧.”원경릉은 대주씨의 선넘는 발언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첫 번째, 전 사식이를 간수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겁니다. 사식이 성격상 틀림없이 당신을 가만두지 않았을 거니까요. 둘째, 사식이는 우리 초왕부의 노비가 아니라 원씨댁의 사람입니다. 대주씨 말대로 2품 봉호를 받은 자를 존중해야 마땅하나 사식이네 집안도 결코 만만한 집안이 아니라는 겁니다. 근데 사식이가 왜 당신에게 화를 낸 겁니까? 그건 당신이 본비를 욕했기 때문 아닙니까? 당신은 2품이지만, 난 북당의 태자비입니다. 감히 당신 따위가 본비를 욕해요? 안하무인은 사식이보다는 당신에 더 어울리는 사자성어 같은데 아닙니까?” 말을 마친 원경릉이 고개를 돌려 주국공을 바라보았다. “국공 나리, 따님이 하극상을 따지시니, 본비가 하극상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드렸습니다.”모든 상황을 지켜본 주국공은 사실 마음속으로 대주씨가 무어라고 했든지 간에 2품 봉호를 받은 부인에게 사식이가 대든 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사식이가 노비가 아닌 원씨 집안의 사람이라고 하자 사식이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원씨 집안은 거칠지만 가문 안의 규율이 있는 집안이었다. 사실 주국공이 가장 화가 났던 부분은 대주씨가 태자비의 뒤에서 못된 말을 했다는 것이다. 원경릉이 쏘아붙이는데 모두 맞는 말이라 주국공이 무어라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주국공은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대주씨를 보았다. “태자비를 욕한
대주씨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부친께서 정신이 온전하신 겁니까? 저 사람은 태자비입니다! 설마 안왕을 잊으신 겁니까? 원래 태자의 자리는 안왕의 것이어야 했다고요! 안왕이 태자만 됐더라도…… 우리가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겁니다!”그 말을 듣고 주국공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방금 한 말은 두 번 다시 국공부에서 하지 마라. 네가 아무리 내 친딸이라도 용서할 수 없다!”대주씨는 못 믿겠다는 얼굴로 주국공을 바라보았다.“부친,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우리는 안왕의 외가입니다!” “네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으냐? 네가 무지해서 원씨 집안의 사식이를 건드리고 태자비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네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없지만 국공부에서는 절대로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 말거라!”주국공은 말을 마치고 주호덕에게 그녀를 내쫓으라고 했다. 대주씨가 쫓겨날 쯤 만아가 밖으로 나왔다. 만아는 대주씨가 허리를 굽혀 가마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어디에서 용기가 솟았는지 대주씨의 상반신이 가마로 다 들어갔을 때 뒤에서 그녀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고는 줄행랑을 쳤다. 만아는 꽁무니가 빠져라 아주 멀리 도망쳤고, 뒤에서는 대주씨가 욕을 퍼붓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만아는 정신이 들었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누가 본 사람은 없겠지? 잡힌다면 분명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그러나 만아는 대주씨가 태자비를 괴롭힌 것만 생각하면 그녀를 걷어차고 감옥에 가도 좋다고 생각했다. 만아가 대주씨를 걷어찼을 때 대주씨의 머리가 가마 귀퉁이에 부딪혔고 안에서 그녀를 부축하던 시녀가 그녀를 일으켰다. 화가 잔뜩 난 대주씨는 자신의 신분을 잊은 듯 상스러운 욕을 서슴지 않았다.그녀는 옆에 있던 시녀에게 자신을 발로 찬 시녀가 태자비가 데리고 온 시녀임이 확실하다고 하며 경조부에 사람을 불러 태자비의 시녀를 신고했다. 경조부윤 직은 잠시 보좌관이 대신하고 있었다. 보좌관은 평소 우문호의 말을
“네가 했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되잖아.” 사식이가 말했다. 만아는 멍한 표정으로 사식이를 보았다.“인정하지 않는다고요? 내가 한 일을 어떻게 인정하지 않아요?”사식이는 만아를 보고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너 정말 고지식하구나? 좋은 일이면 몰라도 나쁜 일을 왜 인정해? 그리고 그 여자가 먼저 악행을 저질렀잖아. 너는 원누이를 대신해서 그 사람을 혼내준 것 뿐이야. 그러니까 네가 했다고 할 필요가 없어! 그냥 네가 아니라고 발뺌해!”그 모습을 보던 원경릉이 웃으며 사식이를 보았다. “사식아, 너 참 좋은 거 가르친다.”“만아가 고지식하잖아요! 원누이도 제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거죠?”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나쁜 사람에게는 인과응보가 무엇인지 알려줄 필요가 있어. 정직한 것은 좋지만, 어쩔 때는 거짓말을 하는 것도 필요해. 매번 손해를 보면서까지 정직할 필요는 없어.”만아는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그럼 쇤네가 잘못한 게 없다는 거죠?”“그래! 걱정 마. 무슨 일이 생기든 원누이가 연루되지 않게 내 선에서 처리할게! 넌 계속 오리발 내밀기만 하면 돼. 나쁜 사람을 혼내줬는데 왜 네가 벌을 받아?” 사식이가 말했다.“근데 만아야. 그들이 너를 본 것 같아?” 원경릉이 물었다.“쇤네가 빨리 달려서 볼 수 없었을 겁니다.” 만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됐어.” 경조부윤이 사람을 데리고 초왕부에 왔는데 우문호가 없자 진정정 대장군과 함께 수보부로 갔다. 원경릉은 진근영(陳瑾寧) 군주와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유모 상궁이 삼둥이들을 데리고 나와 햇볕을 쬐고 있었다. 마당에는 제법 살이 붙은 설랑 세 마리가 뛰어다녔다. 진근영 본래부터 개나 승냥이를 좋아했다. 그녀 역시도 검둥이라는 늑대를 기르고 있었다. 진근영은 세 마리의 설랑을 보고 귀엽다며 만삭임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놀아주기 시작했다. 삼둥이들은 설랑과 진근영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꺄르르 웃어대며 같이 놀고 싶다는 듯 포동포동한 작은 손을 펄럭
“대장군 부인이 다치셨다고요. 괜찮으시답니까?” 원경릉이 물었다. “예, 부인께서 상처가 심해 이미 부로 돌아가 치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좌관이 말했다. “아, 예. 근데 방금 본비의 시녀가 대장군 부인을 공격했다고요? 왜 그렇게 단정 지어 말하는 거죠?”“단정 짓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그런 악질의 시녀는 반드시 유죄 판결이 날 겁니다.” “예? 악질의 시녀라고요? 보좌관, 지금 초왕부의 시녀 보고 악질이라고 하는 겁니까?” “태자비,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태자비 옆에 있던 시녀가 대장군 부인을 발로 차고 달아났다고 증언했습니다. 대장군 부인은 가마 속에서 고꾸라져 머리를 부딪쳤고요.”“그 시녀가 정말로 본비의 시녀입니까? 오늘 대장군 부인과 다툼이 있던 사람입니까?”원경릉이 보좌관을 다그치자 보좌관은 당황했다. 그는 대주씨와 어떤 시녀가 싸움이 있었는지 몰랐지만 엉겁결에 대답을 했다.“예, 바로 그 사람입니다.”보좌관의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사식이가 성큼 걸어와 그의 앞에 섰다. “부인을 찬 적이 없으며, 지금 부인이 나를 모함하고 있습니다.”보좌관은 사식이의 건방진 말투에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 “어디 보좌관에게 방자하게 구는 것이냐! 예의를 갖추거라!”“내가 뭘 방자하게 굴었다고 그래? 안 찼다고!”“태도를 주의하거라. 그런 방자한 태도로는 태자비의 체면에 먹칠을 할 테니까. 따라와라 내가 널 데리고 관아에 들어가 사실을 밝힐 것이다.”“내가 무슨 태자비의 체면에 먹칠을 해? 내 태도가 뭐가 어때서? 지금 제멋대로 굴고 있는 게 누군데 이래? 나는 결백하다고 누명을 쓴 것이야! 대주씨가 나랑 싸우고 기분이 좋지 않아 나를 모함하는 거라고! 내가 일찍이 알았지, 그 여자는 한 입으로 두말을 할 사람이라고! 주국공께 질타를 받고 나에게 화풀이를 하는 거라고! 가만 보니까 정말 열받네? 내가 만만해?”보좌관은 원경릉을 보았다.“태자비님 어떻게 댁네 하인들은 이렇게 제멋대로입니까? 태자비께서 하인들을 교육할 시간이
보좌관이 사식이를 데리고 가는 것을 본 진근영은 호기심에 가득한 얼굴로 원경릉을 보았다. “저 보좌관이 아주 기고만장하네요. 그나저나 태자비, 저런 어린 소녀를 관아로 끌고 가게 둬도 되나요? 저렇게 결백을 주장하는데 왜 관아로 보내는 겁니까?”“군주는 안심하세요. 저도 생각이 다 있어서 일부러 데리고 가게 한 겁니다. 사식이가 결백하다고 하니 증거는 없겠죠. 그러니 경조부에서 그녀를 감옥에 집어넣을 이유도 없습니다. 만약 거짓 자백이라도 받으려 고문이라도 한다면 저와 원씨 집안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사식이를 데려가 조사하지 않으면 저들은 계속해서 초왕부를 의심할 겁니다.”탕양은 원경릉의 말을 듣고 씩 웃었다.진근영은 놀란 표정으로 입을 막으며 “태자비는 정말 똑똑하십니다!” 라고 말했다.“게다가 사식이의 집안도 만만한 집안이 아닙니다.”“예, 그래도 조심은 하는 게 좋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그만큼 책임도 커지니까요.”만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원경릉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태자비…… 쇤네가 괜히 그런 일을 벌여서…… 사식 아가씨를 고생시키는 것은 아닙니까?”“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다. 희상궁은 몸이 어떠시지? 지금 가서 봐야겠다.” 원경릉이 말했다.“예!” 만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대답은 씩씩하게 했다.*희상궁은 이틀 내내 아팠다. 약을 먹은 후 열은 떨어졌지만 여전히 미열이 있었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졸렸다. 희상궁은 원경릉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앉았다.“태자비님 쇤네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늙으면 쓸모 없어지는 겁니다.”퉁퉁 부은 희상궁의 얼굴에 원경릉은 마음이 아팠다.원경릉은 그녀의 허리에 베개를 끼워두고 앞에 앉았다. “어떠십니까? 아직도 많이 아프십니까?”“별일 아닙니다.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 뿐. 다른 건 괜찮습니다.”희상궁이 관자놀이를 두 손으로 문질렀다.원경릉은 가만 희상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희상궁은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지금도 이렇게 아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