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군 부인이 다치셨다고요. 괜찮으시답니까?” 원경릉이 물었다. “예, 부인께서 상처가 심해 이미 부로 돌아가 치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좌관이 말했다. “아, 예. 근데 방금 본비의 시녀가 대장군 부인을 공격했다고요? 왜 그렇게 단정 지어 말하는 거죠?”“단정 짓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그런 악질의 시녀는 반드시 유죄 판결이 날 겁니다.” “예? 악질의 시녀라고요? 보좌관, 지금 초왕부의 시녀 보고 악질이라고 하는 겁니까?” “태자비,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태자비 옆에 있던 시녀가 대장군 부인을 발로 차고 달아났다고 증언했습니다. 대장군 부인은 가마 속에서 고꾸라져 머리를 부딪쳤고요.”“그 시녀가 정말로 본비의 시녀입니까? 오늘 대장군 부인과 다툼이 있던 사람입니까?”원경릉이 보좌관을 다그치자 보좌관은 당황했다. 그는 대주씨와 어떤 시녀가 싸움이 있었는지 몰랐지만 엉겁결에 대답을 했다.“예, 바로 그 사람입니다.”보좌관의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사식이가 성큼 걸어와 그의 앞에 섰다. “부인을 찬 적이 없으며, 지금 부인이 나를 모함하고 있습니다.”보좌관은 사식이의 건방진 말투에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 “어디 보좌관에게 방자하게 구는 것이냐! 예의를 갖추거라!”“내가 뭘 방자하게 굴었다고 그래? 안 찼다고!”“태도를 주의하거라. 그런 방자한 태도로는 태자비의 체면에 먹칠을 할 테니까. 따라와라 내가 널 데리고 관아에 들어가 사실을 밝힐 것이다.”“내가 무슨 태자비의 체면에 먹칠을 해? 내 태도가 뭐가 어때서? 지금 제멋대로 굴고 있는 게 누군데 이래? 나는 결백하다고 누명을 쓴 것이야! 대주씨가 나랑 싸우고 기분이 좋지 않아 나를 모함하는 거라고! 내가 일찍이 알았지, 그 여자는 한 입으로 두말을 할 사람이라고! 주국공께 질타를 받고 나에게 화풀이를 하는 거라고! 가만 보니까 정말 열받네? 내가 만만해?”보좌관은 원경릉을 보았다.“태자비님 어떻게 댁네 하인들은 이렇게 제멋대로입니까? 태자비께서 하인들을 교육할 시간이
보좌관이 사식이를 데리고 가는 것을 본 진근영은 호기심에 가득한 얼굴로 원경릉을 보았다. “저 보좌관이 아주 기고만장하네요. 그나저나 태자비, 저런 어린 소녀를 관아로 끌고 가게 둬도 되나요? 저렇게 결백을 주장하는데 왜 관아로 보내는 겁니까?”“군주는 안심하세요. 저도 생각이 다 있어서 일부러 데리고 가게 한 겁니다. 사식이가 결백하다고 하니 증거는 없겠죠. 그러니 경조부에서 그녀를 감옥에 집어넣을 이유도 없습니다. 만약 거짓 자백이라도 받으려 고문이라도 한다면 저와 원씨 집안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사식이를 데려가 조사하지 않으면 저들은 계속해서 초왕부를 의심할 겁니다.”탕양은 원경릉의 말을 듣고 씩 웃었다.진근영은 놀란 표정으로 입을 막으며 “태자비는 정말 똑똑하십니다!” 라고 말했다.“게다가 사식이의 집안도 만만한 집안이 아닙니다.”“예, 그래도 조심은 하는 게 좋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그만큼 책임도 커지니까요.”만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원경릉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태자비…… 쇤네가 괜히 그런 일을 벌여서…… 사식 아가씨를 고생시키는 것은 아닙니까?”“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다. 희상궁은 몸이 어떠시지? 지금 가서 봐야겠다.” 원경릉이 말했다.“예!” 만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대답은 씩씩하게 했다.*희상궁은 이틀 내내 아팠다. 약을 먹은 후 열은 떨어졌지만 여전히 미열이 있었고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졸렸다. 희상궁은 원경릉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앉았다.“태자비님 쇤네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늙으면 쓸모 없어지는 겁니다.”퉁퉁 부은 희상궁의 얼굴에 원경릉은 마음이 아팠다.원경릉은 그녀의 허리에 베개를 끼워두고 앞에 앉았다. “어떠십니까? 아직도 많이 아프십니까?”“별일 아닙니다.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 뿐. 다른 건 괜찮습니다.”희상궁이 관자놀이를 두 손으로 문질렀다.원경릉은 가만 희상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희상궁은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지금도 이렇게 아름다
희상궁의 몸에서도 여러 개의 둥근 반점이 발견됐다. 원경릉은 희상궁의 등에 손톱으로 자국을 내며 희상궁에게 아프냐고 물었다. “아무 느낌도 나지 않습니다.” 희상궁이 말했다.그 말을 들은 원경릉은 만아에게 당장 손을 씻고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희상궁님이 무슨 병에 걸리신 겁니까?” 만아가 물었다. “일단 손부터 씻거라. 자세한 건 아직 모른다.”만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희상궁은 원경릉의 반응을 보고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태자비, 무슨 병이든 숨기지 말고 말해주세요. 쇤네 마음에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관절과 근육이 욱신거립니까?” 원경릉이 물었다. “예, 아직도 시큰시큰 욱신거립니다. 관절이나 근육이 안 좋은 건 나이 떄문입니다.” 희상궁이 웃었다. “상궁, 일단 누워보세요. 제가 자세하게 검사를 해야겠습니다.”희상궁이 침상에 눕자 원경릉은 마스크를 위로 바짝 올리고 희상궁의 여기저기를 살폈다. “태자비, 면보와 장갑을 잘 끼세요. 태자비께서는 아이들도 보지 않습니까.”원경릉은 순간 잊고 있었던 아이들이 생각나 가슴이 철렁했다.희상궁의 몸을 검사해 보니 경추, 척추, 팔꿈치의 신경이 조금 커진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바늘을 꺼내 반점을 찌르고는 “아프십니까?” 라고 물었다. “아프지는 않습니다.” 희상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경릉은 뜨거운 물을 반점에 얹고는 “뜨거운 게 느껴지십니까?”라고 물었다. 희상궁은 원경릉이 자신에게 큰 병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떨구었다.“좋습니다. 상궁님, 제가 약을 지어드릴 테니 꼬박꼬박 약을 챙겨드시고, 당분간은 외출을 하지 마세요.”“쇤네 무슨 병에 걸린 겁니까?”원경릉은 희상궁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려왔다. “그…… 문둥병일 가능성이 큽니다.”희상궁은 문둥병이라는 소리에 입술이 덜덜 떨리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예, 알겠습니다.”“그래도 상궁님 걱정 마세요. 문둥병이라도 제가 고칠 수 있습니다.”희상궁은 생각에 잠겼다. “태자비…… 저는
원경릉은 약상자를 열어 리팸핀을 꺼낸 후, 다른 약들이 뭐가 있는지 확인했다. 약상자 안에는 초기의 문둥병 환자를 치료하는 약들과 균을 퇴치하는 약들이 모두 있었다. 희상궁은 그녀가 주는 약은 먹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원경릉이 자신이 치료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태자비, 쇤네가 이 병에 걸렸다는 건 절대 비밀입니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저는 문둥산으로 끌려가게 될 겁니다.” 희상궁이 말했다. “문둥산이요? 그게 뭡니까?” 원경릉이 놀라서 되물었다. “문둥병 자체가 전염이 매우 심하기에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혜민국에 보고를 해야 하고 그럼 사람이 와서 환자를 문둥산으로 보내버립니다. 그래야 백성들이 안전하니까요. 문둥병에 걸린 사람들은 문둥산에서 죽습니다.”원경릉은 백성의 안전을 위한 당국의 대처는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지만 치료도 받지 못하게 문둥산으로 격리시켜버리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걱정 마세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을 겁니다.”원경릉은 희상궁을 치료할 약을 찾으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문둥병은 전염에 의해 걸리는 것인데, 희상궁은 누구에게 옮은 거지? 병의 잠복기가 2년에서 5년 정도인데 그 사이엔 희상궁이 줄곧 궁중에 있었는데 말이야…… 언제 문둥병 환자와 접촉을 한 거지? 잠복기에 있어 발병되지 않은 문둥병은 전염성도 없는데 이상하다.’물론 사람의 면역력에 따라 잠복기가 짧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몇 개월이라고 해도 희상궁은 밖에 나가거나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하는 경우가 없었으며 줄곧 초왕부 안에서 생활했다. 더군다나 문둥병 환자와 접촉을 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모두 문둥산으로 격리되어 있지 않은가? “희상궁,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상궁은 언제 문둥병 환자와 접촉을 했습니까?”그 말을 듣고 희상궁은 기억을 되짚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문둥병 환자와 접촉한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르겠습니다. 접촉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희상궁이 고개를 저었다.“귀신이
원경릉이 어의를 만나고 나오자마자 탕양을 보았다. “원씨댁에 통지를 했더니 원노부인께서 사람을 데리고 관아로 들어가셨습니다. 태자비께서도 관아로 가시겠습니까?”“아뇨. 이제 원씨댁에서 이 일을 해결할 겁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탕양은 저와 함께 서재로 가시지요. 제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 탕양은 평소와 다른 원경릉의 진지한 표정에 무슨 이유인지 묻지 않고 그녀를 따라갔다.서재에 들어간 후 원경릉은 탕양에게 조용히 말했다.“희상궁이 문둥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됩니다.”탕양은 역시 탕양이었다. 일반 사람이었다면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겠지만 탕양은 그렇지 않고 침착하게 원경릉에게 물었다. “그럼 태자비께서는 어쩔 생각이십니까? 치료를 할 수 있습니까?” “음, 방법이 있습니다. 문둥병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상궁이 어디에서 문둥병을 걸렸는가. 이게 관건입니다. 탕양은 상선을 몰래 찾아가 희상궁이 근 5년간 건곤전에서 문둥병으로 의심되는 사람과 접촉한 적이 있는지 물어봐 주세요. 지금 희상궁께서는 머리가 복잡해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하십니다.”원경릉의 말을 듣고 탕양이 화들짝 놀랐다.“그럼 태자비께서는 희상궁이 궁 안에 있는 사람에게 옮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닙니까. 이 병은 초기에 발견하기 매우 어렵고 잠복기가 깁니다.”“세상에…… 만약 궁 안에서 전염이 된 것이라면 정말 큰일입니다!”“예, 아주 큰일이죠. 그러니 5년 동안 입궁을 한 사람들 중에 문둥병에 걸려 문둥산으로 보내진 사람이 있는지 비밀리에 조사를 해보세요. 먼저 혜민서에 가서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 알겠습니다.”*저녁이 되자 원경릉은 우문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우문호는 희상궁 소식을 전해 듣고 “절대 비밀을 지켜야 해. 아무도 알아서는 안 돼.”라고 원경릉에게 말했다. “걱정 마. 탕양을 제외하고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문둥병에 걸리면
원경릉은 지금까지 희상궁의 잠복기가 짧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만약 몇 개월 전에 감염이 된 것이라면 우연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계략일까?원경릉은 근 몇 달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만약 이게 누군가가 꾸민 일이라면 범인은 안왕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큰일인데……’원경릉은 희상궁이 문둥병에 걸린 것이 안왕의 소행이든 아니든 희상궁이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우문호도 원경릉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역시도 희상궁이 몇 달 전에 감염이 된 것이라면 안왕의 짓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문둥병은 국가적으로 예의주시하는 큰 질병으로 혜민서나 기타 의료기관에서 문둥병에 걸린 환자가 생김과 동시에 신고를 한다. 그렇기에 문둥병에 걸린 환자는 길거리를 돌아다닌다거나 일반 사람과 접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론은 일상생활에서 희상궁이 문둥병 환자와 우연히 접촉할 방법은 지극히 드물다는 건데……’게다가 원경릉이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는 희상궁이 수석 상궁으로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했으며 하인들 하나하나를 가르치고 관리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유모 상궁의 교육도 했다. 만약 안왕이 꾸민 일이라면 칼날의 끝은 삼둥이를 향해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가 남영(南營)에 있지만 그가 떠나기 전에 파놓은 함정이 몇 개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원경릉은 희상궁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우문호에게 만아가 대주씨를 때린 사실을 말하며 사식이가 경조부에 끌려갔다고 말했다. “그거 아주 좋은 기회네. 보좌관이 안왕과 내통을 주고받는 사람이니까 이번 기회에 보좌관을 제거하지 않으면 경조부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그를 통해 안왕의 귀로 들어가게 될 것이야. 내가 사람을 시켜서 사식이에게 몇 마디 말을 전해야겠어. 그리고 원노부인에게 이 일을 크게 벌이라고 지시하면 돼. 그럼 주국공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거야. 주국공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원노부인은 무서워하거든.”“그래도 사식이가 고생하는 건 볼 수 없어.” 원경릉이 말했다.
막 곤장을 내리치고 있을 때 원노부인이 원씨네 부녀자들을 데리고 경조부에 도착했다. 경조부 마당에 들어서자 사식이가 곤장을 맞는 것이 보였다. 원노부인은 재빠르게 한 손으로 곤장을 빼앗아 던져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곤장이 두 동강이 나며 하늘로 치솟아 보좌관 앞에 박혔다. 보좌관은 깜짝 놀란 얼굴로 원노부인을 바라보았다.“원노부인 이건……!”원노부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좌관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무서운지 당장이라도 보좌관의 머리통을 뽑을 기세였다. “도대체 우리 집안의 사식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네. 만약 사식이가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도 이런 짓을 했다면 원씨 집안이 가만 있지 않을 걸세!”보좌관이 얼빠진 얼굴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던 찰나 사식이가 울며 원노부인을 불렀다. “조모, 왜 지금 오신 겁니까? 손녀 억울하게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경조부 사람들이 얼마나 흉악한지 내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믿지 않고 계속 자백을 하라고 협박하더니. 자백하지 않으면 곤장을 내리치겠다면서 저를 여기에 묶었습니다! 조모께서 조금만 더 늦게 오셨으면 손녀 오늘 명이 끊겼을 지도 모릅니다!”보좌관은 사식이가 원노부인에게 조모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저 자가 원씨 집안의 사람이란 말이야? 그것도 원노부인의 손녀라고? 분명 대장군 부인께서는 초왕부의 시녀라고 했는데……’보좌관은 지금이라도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 “노부인, 대장군 부인이 노부인의 손녀가 범인이라고 해서 저도 어쩔 수 없이 조사를 했습니다. 당연히......”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부인이 손바닥으로 공당(公堂)을 내리쳤고, 그 위에 있던 물건들이 모두 날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손녀가 범인이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했다는데, 왜 곤장을 때리는 건가? 자백을 하지 않으면 이렇게 해서라도 자백을 하게 만들 셈이었나!”노부인의 말이 끝나자 원씨 집안의 여인들이 모두 보좌관을 다그치며 따져 물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냥 겁
주국공부에 와서 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 바로 원노부인이었다. 주국공보다 나이가 어린 원노부인이 주국공을 막 대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주국공은 원래 군후세가(軍後世家)였으나, 후에 조정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해 몰락의 위기에 처했었다.이를 안타깝게 여긴 원노부인의 시아버지가 그의 집안을 도왔기 때문에 주국공이 조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만약 원노부인의 시아버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주국공은 지금의 지위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주국공과 원노부인은 함께 전쟁터에 여러 번 나갔으며 그곳에서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언급한 두 가지 이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터에서 주국공의 부인이 아이를 낳다가 죽을 뻔했는데, 원노부인의 도움으로 주국공 부인과 대주씨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그 후로 주국공은 대대손손 원씨 집안에게 큰 빚을 지었다고 생각했다. 주국공은 그 후로 수차례 전쟁에 나가 공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의 명성에 큰 누를 끼친 사건이 있었는데, 소요공과 원노부인이 함께 출정한 전투에서 소요공이 이끄는 전투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패했다. 그것을 보고 어떤 장병이 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렸는데, 그 내용이 소요공의 장병들이 죽음을 두려워해 패했다는 헛소문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주국공은 소요공이 이끈 전투라는 소리에 무슨 내용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그 상소문에 동의했고, 황제는 화가 나서 전쟁에 나가 부상을 당한 병사들의 위로금을 절반으로 줄였다. 전쟁에서 돌아온 원노부인은 주국공을 흠씬 두들겨 패며 소요공과 개인적인 원한으로 전쟁에 나간 장병들에게 누를 끼치는 게 옳은 일이냐며 다그쳤고, 주국공도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그 후로 몇 해 동안 주국공은 원노부인을 피해 다녔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원노부인이 주국공부까지 찾아와 자신을 찾고 있다. 주국공은 원노부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기가 확 죽어 몸을 움츠리고 밖으로 나왔다. 원씨 집안사람들은 본래부터 기가 세서 존재만으로도 보는 사람의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