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국공부에 와서 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 바로 원노부인이었다. 주국공보다 나이가 어린 원노부인이 주국공을 막 대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주국공은 원래 군후세가(軍後世家)였으나, 후에 조정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해 몰락의 위기에 처했었다.이를 안타깝게 여긴 원노부인의 시아버지가 그의 집안을 도왔기 때문에 주국공이 조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만약 원노부인의 시아버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주국공은 지금의 지위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주국공과 원노부인은 함께 전쟁터에 여러 번 나갔으며 그곳에서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언급한 두 가지 이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터에서 주국공의 부인이 아이를 낳다가 죽을 뻔했는데, 원노부인의 도움으로 주국공 부인과 대주씨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그 후로 주국공은 대대손손 원씨 집안에게 큰 빚을 지었다고 생각했다. 주국공은 그 후로 수차례 전쟁에 나가 공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의 명성에 큰 누를 끼친 사건이 있었는데, 소요공과 원노부인이 함께 출정한 전투에서 소요공이 이끄는 전투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패했다. 그것을 보고 어떤 장병이 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렸는데, 그 내용이 소요공의 장병들이 죽음을 두려워해 패했다는 헛소문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주국공은 소요공이 이끈 전투라는 소리에 무슨 내용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그 상소문에 동의했고, 황제는 화가 나서 전쟁에 나가 부상을 당한 병사들의 위로금을 절반으로 줄였다. 전쟁에서 돌아온 원노부인은 주국공을 흠씬 두들겨 패며 소요공과 개인적인 원한으로 전쟁에 나간 장병들에게 누를 끼치는 게 옳은 일이냐며 다그쳤고, 주국공도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그 후로 몇 해 동안 주국공은 원노부인을 피해 다녔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원노부인이 주국공부까지 찾아와 자신을 찾고 있다. 주국공은 원노부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기가 확 죽어 몸을 움츠리고 밖으로 나왔다. 원씨 집안사람들은 본래부터 기가 세서 존재만으로도 보는 사람의
억울한 사식이말을 마친 주국공은 눈을 가늘게 뜨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이전 일을 왜 자꾸 들먹입니까?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지금 전 그렇게 고집스럽지 않아요, 이전 일은 그만 끌어들입시다.”체면 좀 세워주면 어디가 덧나?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원노부인이 냉소를 지으며 무시하더니 싸늘한 얼굴로 사식이를 앞으로 불러냈다.사식이가 다리를 절며 앞으로 나와 구슬 같은 눈물을 후두둑 흘리는데, 희고 깨끗한 얼굴에 붉은 자국이 죽죽 나 있다. 누군가에게 맞은 자국으로 주국공이 못 보고 지나갈 뻔 했으나 지금 사식이가 주국공 면전에 나와있어 비로소 발견했다.사식이는 꼿꼿하게 주국공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더니 울면서 “국공 나리, 저는 오늘 태자비 마마를 보호하느라 대장군 부인과 말다툼을 했습니다. 저는 대장군 부인을 때린 적도 없고 태자비 마마와 같이 나가는 걸 문지기도 다 목격했어요. 그런데 대장군 부인이 제가 부인을 때려서 다치게 했다고 고소장을 내서, 관아에서 초왕부에 쳐들어와 저를 끌고 가더니 사정도 묻지 않고 형을 집행했습니다. 만약 할머니께서 오셔서 도와주지 않으셨으면 곤장 50대를 맞고 제가 살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감히 대장군 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 리가 없습니다. 나리 제발 절 살려주세요. 저에게 사정을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다시는 감히 대장군 부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게요, 네?”사식이가 말할 수 없이 억울한 나머지 엉엉 울었다.사식이는 아직 덜 큰 아이로 성정이 솔직 담백해서 주국공이 마음에 들어 했는데 지금 그 아이가 이렇게 억울해 하며 울고, 심지어 얼굴을 맞은 데다, 곤장까지 맞았다는 얘기를 들으니 주국공 마음이 아팠다. 대주씨가 성질머리를 부린 것에 화가 나서 주후덕을 노려보며, “대장군부에 가서 네 동생을 데리고 오너라.”주후덕이 우물쭈물하며, “아버지, 큰 동생은 아직 국공부에 있는데요.”주국공이 이 말을 듣고 화가 뻗쳐서, “쫓아내지 않고 뭐했어? 왜 아직 국공부에 있느냐? 데리고 와!”주후덕이 감히
쳐들어온 원노부인주후덕이 대주씨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보좌관이 잡아들인 사람이 원씨 집안 꼬맹이라는 걸 듣고 진짜 열이 뻗쳤다. 원씨 집안 사람들이 지금 들이닥쳤으니 아버지의 성정에 절대로 원씨 집안 사람들에게 강하게 나가실 리 만무하고 대주씨에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하겠지. 하긴 원씨 집안은 솔직히 건드리면 안되는 집안이긴 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대주씨는 주후덕에게 “큰오빠 먼저 가세요, 전 옷을 좀 손보고 바로 갈 게요, 제 옷에 피가 묻어서 사람들에게 실례가 돼서.”주후덕은 대주씨의 어깨에 혈흔이 있는 것을 보고 “그래, 얼른 해라, 아버지 화 나셨어.”주후덕이 나가고 대주씨는 얼른 몸종을 데리고 뒷문으로 도망쳤다.대주씨가 과녁이 될 리 없다. 오늘 원씨 집안 사람들이 쳐들어와 아버지를 찾았지 대주씨를 찾은 게 아니므로 아버지가 어쨌든 해결하겠지, 비굴하게 아부를 하던지 적절하게 협상을 하던지 어쨌든 긴 세월 원씨 집안에 대해 줄곧 이런 태도였으니 대주씨는 이번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주국공이 밖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대주씨가 오지 않자 다시 보고 오라고 하니 사라지고 없었다. 주국공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더니 새파랗게 된 얼굴로 원노부인의 진노한 얼굴을 마주하자 창피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원노부인이 부리부리한 눈빛을 보니 주국공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것이 잘못한 아이가 잘못했다는 말조차 입도 뻥긋 못하는 것 같다.이건 그동안 주국공이 원노부인에게 품고 있던 심리적 약세도 있지만 더 많은 부분은 국공부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어서기 때문이다.그래서 주국공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이 일을 규명해서 원씨 집안과 사식이에게 합당한 답을 해드리겠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원래 원노부인이 이렇게 쉽게 용서하거나 굽힐 사람이 아니며 온 집안이 발칵 뒤집어 지도록 난리를 치고도 남았다. 그런데 주국공의 사과를 듣더니 주변 사람을 물리고 국공부 사람도 전부 내보낸 뒤 주국공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주국공을 혼내는 원노부인“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반대했지. 반대 입장을 고수 했어, 왜 그랬을까?”주국공이 천천히 고개를 떨구고 침묵했다.원노부인이 차갑게 “만약 정말 반대하는 이유를 몇 개라도 댄다면 나도 화 안 내, 사람마다 보는 게 다르니까. 태자 전하의 제안도 폐단이 있어, 당신 견해와 경험에 비춰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지, 그런데 당신은 아무 이유도 없이 심지어 태자가 이건 좋은 일이라고, 우리 북당에 장기적 안정을 가져오는데 유리하다고 결정한 걸 알면서 결국 반대 했어. 황당하지?”주국공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는데 손으로 이마를 닦으며 한 마디도 변명을 못했다.원노부인이 계속 “우리 같은 노장들 중에 북당 강산을 위해 북막이나 선비족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목숨조차 모래 벌판에 내던지고 그들과 몇 번이나 대전을 치르며 죽고 다친 전사들이 얼마나 많았나? 우리가 전쟁에 나서고 침략에 맞선 초심이 뭐였어? 병사들의 희생은 뭘 위해서 였냐고? 이런 것들이 당신이 보기엔 전부 중요하지 않고, 당신 마음 속에는 소요공과 그 사적인 원한만 중요하지, 그 사적인 원한이 심지어 나라와 천하보다 커, 이래도 시아버지가 당신한테 모진 말을 했다고 할 거야?”주국공이 결국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당신 마음 속엔 내가 태자 전하 편들러 온 거 같아?” 원노부인이 “이 의제가 지금 왜 통과가 안됐는지 알아? 황제 폐하도 동의하셨어, 그런데 왜 통과가 안됐을까?”“황제 폐하께서 동의하셨다고?” 주국공이 다소 당황하더니, “황제 폐하께서 벌써 태도를 표명하셨단 말인가?”“황제 폐하께서는 벌써 태도를 표명하셨지, 안 그러면 뭐 하러 태자에게 대신들에게 유세하라고 준비시키셨겠어? 당신한테는 말해도 괜찮지. 내각은 이 일을 통과 시킬 거야, 그래서 이 일은 한치의 빈틈도 없이 실행될 거야. 하지만 황제 폐하와 내각은 이 일을 통과시키는데 네가 계속 반대 의견을 주장한다면 황제는 널 내칠 거야. 황제는 시간을 끌고 있어, 네가 동의하길 바라며. 조정의
주국공의 결심주국공이 꿇어앉은 장남을 보니 마음이 아련한 것이 목소리를 깔고 “네 엄마는 마음이 아프겠지. 하지만 그동안 내가 한 큰 일이나 큰 결정에 네 엄마는 항상 지지해왔다. 지금 비록 딸이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딸아이의 짓이 무슨 생각에서 출발했느냐? 넌 생각해 본 적이 없느냐?”주후덕이 “출발점이요? 안왕 전하께서 태자가 되지 못한 것때문에 태자비에게 화풀이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일로 혼쭐났으니 됐고, 태자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누이동생과 연을 끊을 필요는 없습니다.”주국공이 냉소를 지으며, “내가 미련했어, 이렇게 오랜 시간 미련을 떤 건 너희들 잘못도 없진 않다. 너희들 중 누구도 시대의 병폐를 지적하고 정세를 분석하는 사람이 없어. 너희들은 다 별볼일 없으니 그저 적위명이 앞으로 국공부에 영예를 가져다 줄 거라고 희망을 걸고 있지만 적위명과 주회가 반대하고 있는 건 지금의 태자야. 걔들이 지금 역신이 되려고 한단 말이다. 알겠느냐? 오늘 연을 끊지 않으면 앞으로 걔들이 일을 크게 만들면 만들수록 우리 국공부 전체, 주씨 가문 일족이 연루되는 게야. 너는 형제의 정을 지키겠다고, 네 목을 네 누이동생에게 갖다 바치기를 원하느냐?”주후덕이 놀라서 바닥에 허물어지며, “그…..그 정도까지는?”그 정도까지는 아닐 것 같아? 걔들이 지금 태자비를 도발할 정도로 얼마나 방자하게 날뛰고 있는데? 걔들이 태자가 황제가 되는 걸 기꺼이 지켜볼 거 같아?분명 그럴 리 없지.그럴 리 없으면 어떻게 할까? 길은 오직 하나, 그건 바로 역모다.주후덕은 생각하면 할 수록 간이 떨리고 아버지의 말이 일리가 있으므로 바로 기어서 물러나와 가문의 수장을 찾아갔다.주국공과 적위명 부인 주회가 연을 끊었다는 소식이 퍼졌고, 주씨 집안에서도 감출 생각이 없는지 심지어 마구 소문을 냈다.주국공이 직접 초왕부에 가서 원경릉에게 국공부인의 병을 치료해 주십사 요청을 드렸다.다음날 아침 일찍 주국공이 조정에 가서 태자가 제출한 대주
홍엽공자 등장원경릉이 배를 움켜쥐고 예를 취하며, “누구신가 했는데 홍엽공자셨군요, 감사합니다. 전 괜찮습니다.”홍엽공자가 눈을 크게 뜨더니, “부인께서는 절 아시나요?”“한 번 뵀습니다만 공자께서는 아마 절 기억 못하실 겁니다.” 원경릉이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어? 그럼 어디서 뵀는지 알 수 없나요?” 홍엽공자가 의심이 많은 얼굴빛으로 눈꼬리를 살짝 치뜨더니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띠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혹적인 자태다.“궁에서요, 태자 책봉식 때 한 번.”홍엽공자가 예를 표하며, “뉘신지?”원경릉이 홍엽공자에 관해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고 게다가 선비족이라 지금 북당과 대주가 연맹을 맺는 중차대한 시기에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기 마땅치 않아 홍엽공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웃으며 “친구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홍엽공자도 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보낼 뿐이다.원경릉이 들어온 뒤 진근영에게 밖에서 홍엽공자와 부딪힌 얘기를 했다.진근영이 상당히 민감하게 “태자비 마마, 그 사람과 왕래하시면 안됩니다. 앞으로 만나면 최대한 피하세요. 홍엽은 계략이 치밀한 자로 마마를 못 알아봤을 리가 없습니다. 그날 저녁에 마마께서 태자 전하 옆에 앉아 계셨는데 태자전하를 봤다면 마마를 분명 봤을 테니까요.”“기억하지 못하는 거겠죠.” 원경릉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진근영이 “홍엽은 기억력이 특히 좋고 아주 똑똑해요.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을 잊어버린 적이 없습니다. 방금 누군가 마마와 부딪히고 홍엽이 나타났다고 했는데 그 부딪힌 사람도 홍엽이 미리 손써 둔 사람일 수 있어요. 마마와 접촉하기 위해서요.”원경릉이 진근영의 말을 듣고 마음 속으로 홍엽공자에 대한 경계심이 들었으나 앞으론 아마도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란 생각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우문호와 정정 대장군이 오자 진근영이 이 얘기를 했고 우문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홍엽공자는 아직 안 갔어? 책봉식이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 여기 있는 거지?”“홍엽이
기왕비는 제갈공명원경릉은 진근영과도 따스한 말을 주고받았지만 문이에게 더 큰 희망을 실어 보냈고, 문이도 원경릉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고개를 끄덕였다.원경릉은 안심할 수 없었다.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어? 문이가 편지를 잘 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문이가 간 뒤 어떤 정보도 얻을 길이 없으니 말이다.원경릉의 마음 속엔 여전히 가족이 마음에 쓰였다.두 사람은 대주 부부를 환송하고 초왕부로 돌아왔다. 우문호는 약간 의기소침했으나 눈에 확 띄지는 않은 것이 이어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 얼른 가서 처리해야 했다.기왕비가 와서 약을 타가며 원경릉에게 몇 마디 했다.“태자 전하께서 이번에 대주와 연맹을 성사시키셨으니 큰 공을 세우셨어요. 지금 조정에서는 태자 전하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아바마마께서도 더욱 태자 전하를 중용하실 거구요.”원경릉이 억지로 웃으며, “그래요.”기왕비가 원경릉의 걱정을 눈치채지 못한 채 자기 생각만 하고 “주국공을 설득할 수 있었던 건 사실 태자비의 공로가 아니라 원노부인의 공로였지요, 누구 공인지 알고 있었어요?”원경릉이 고개를 들고 다소 의아하다는 듯, “몰랐어요. 기왕비는 누구 공로라고 생각하세요?”기왕비가 웃으며, “하하, 대주씨의 공로지요.”원경릉이 이해하지 못하고, “대주씨요?”기왕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만약 대주씨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으면 주국공이 안왕의 검은 야심을 보고 태도를 표명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겁니다. 주국공이 비록 고집이 세지만 멍청하진 않아요, 지금 주씨 집안은 하늘을 떠받치는 큰 나무 같으나 사실 주국공이란 줄기가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잎이 제대로 뻗지 못해 만약 주국공이 죽으면 주씨 집안은 사람들에게 유린당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행여 대주씨와 적위명의 모반에 연루되는 날엔 주씨 집안은 유린 정도가 아니라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텐데 주국공이 그래도 소요공과 다투고 있겠어요? 주국공은 소요공과 싸우다 죽는 한이 있어도 목숨 따위 아깝지 않지만, 온 집안 사람의 목숨이 역모라는 죄명을
충격의 연속기왕비가 아무렇지도 않게, “저 부처 안 믿어요.”원경릉이 놀라서, “불자가 아니라고요? 하지만 기왕부에 불당이 있잖아요?”기왕비가 뻔뻔하게, “그건 불자라고 하면 여러 흉계를 감출 수 있어서 만들어 둔거예요, 또 많은 사람들이 부처를 믿는다고 하면 마음의 담을 좀 허물기도 하고 제일 중요한 건, 태후 마마께서 불자시거든요.”원경릉이 즐겁게, “기왕비에 대해 알면 알 수록 능력자라니 까요.”기왕비가 뾰로통하게, “뭐가 능력자예요? 그거 욕이네요, 여자는 다 자신이 능력자이길 원하지 않아요. 이전의 주명취처럼 남자의 날개 그늘 아래서 평안한 삶을 원하지. 아니 누가 계략을 세우면서 살고 싶겠어요? 사사건건 미친년처럼 자신을 몰아붙이며 살고 싶겠어요? 당신들도 전엔 저 싫어했잖아요? 나는 겉과 속이 다른 양다리에, 겉으론 좋은 말을 하면서 속으론 흉계를 꾸민다고, 나를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잖아요.”“그런 거 아니었어요? 잘못 생각한 거예요?” 원경릉이 웃으며 반문했다.기왕비가 생각해보더니, “어휴, 사실 그렇기는 그렇네. 하지만 뭐 달리 방법이 있어요? 나 혼자면 됐다고 쳐도 군주도 있잖아요?”원경릉은 요즘 진심으로 기왕비에게 감탄하는 게 기왕비는 생각이 민첩하고 마음이 명확하고 무슨 일이든 정확히 들여다봐서 원경릉처럼 연구만 해온 사람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감싸주지 않으면 애진작에 몇 번이나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하지만 주명취를 생각하니 원경릉은 저절로 주명양이 생각나서, “주명양은 아직 안 돌아왔어요?”“돌아왔어요!” 기왕비가 별일 아닌 듯 얘기했다.“돌아왔어요? 주명양이 돌아오길 원했다고요? 기왕 전하는 아직 석방 안되지 않았나요?” 원경릉이 의아해 했다.기왕비가 손가락을 뻗어 인조 손톱으로 작은 소용돌이 모양을 그리는데 멀리서 보면 장미꽃 같지만 색감때문에 가까이서 보면 해골같이 보이는데 살살 위쪽으로 소용돌이 그림을 넓혀가며 담담하게, “대충 주재상 쪽에서 얻은 소식으론 기왕이 풀려날 것 같아요.”원경릉은 기왕이 풀
원경릉은 피곤한 나머지 말을 하다 그만 잠에 들어 버린 반면, 우문호는 너무 흥분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는 잠이 안 와 뒤척일 때마다 원경릉을 깨울까 봐 걱정되어, 복도에 나가 앉아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시도했다.그는 두 손으로 큰 돌을 들어 올리며 힘을 주고 외쳤다."일어나, 일어나, 날아오르거라."큰 돌이 움직이지 않자, 그는 그것을 내려놓고 더 작은 돌을 들었다."일어나거라."한참 노려봤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그는 또 다른 돌로 바꾸어 다시 시도했다.더 작은 돌을 쥐다가, 결국 두 손가락으로 모래를 쥐었다. 그러나 모래는 떠오르지 않았고, 오히려 손으로 꽉 쥐어, 몇 알의 모래가 빠져나갔다.그는 어쩔 수 없이 손바닥에 낙엽을 올려놓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나뭇잎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입김을 불어 나뭇잎을 날려 보냈다.그는 손을 두드리며 눈을 굴리고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뭇잎보다 가벼운 것이 떠오르지 않아, 결국 이 능력을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그는 계란이와 소통해 보려고 했다. 원경릉과 아이들이 쉽게 할 수 있으니, 그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조용한 소월궁 복도에서 그는 조용히 계란이의 이름을 두 번 불렀다."계란아, 자고 있냐?""계란아...!"정확히 두 번 부른 후, 그는 순간 늦은 시각이라 계란이가 분명 자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렇게 부르면 오히려 잠든 계란이까지 깨울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일찍 일어난 목여 태감은 황제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고 준비를 도우려 했다. 돌아서려던 참에 황제가 복도에서 공주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그는 황제가 공주를 그토록 그리워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공주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황제와 함께한 시간이 많지 않았다.그마저도 가끔 공주가 보고 싶을 정도인데, 황제는 오죽하겠는가?그러나 계속 그리워하는 것도 답은 아니었다. 그리움이 병이 되면 안 되니, 그는 이제 황후에
그는 파도가 몰려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위풍당당하게 파도 속을 헤치며 지나가면, 계란이가 자신을 더 존경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렇게 생각하자, 귓가에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눈을 번쩍 뜨니, 호수 표면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보였다.갑자기 폭풍이 불어온 듯, 호수의 물이 밀려서 호숫가로 몰려갔다. 파도가 하나하나씩 밀려와, 정자에 앉아 있는 그들이 흔들림을 느낄 정도였다.그는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원 선생, 이 파도를 정말 내가 만들었다는 것이오?!""그렇소!"원경릉이 그의 놀란 얼굴을 보며 방긋 웃으며 말했다."바로 당신이 한 것이오. 놀랍지 않소?"원경릉도 약간 놀랐다. 억제제의 효과가 남아 있어서 그저 소소한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는 될 것이라 상상도 못 했다."너무 놀랍소."우문호는 믿기지 않아서 한참을 바라봤다. 파도는 계속해서 일렁였고, 다시 몇 번 더 일어나기를 마음속으로 바라자, 파도는 더욱 커졌다."원 선생, 나도 능력이 생겼소. 당신과 아이들처럼 됐소."우문호는 기뻐서 눈빛이 반짝였고, 목소리도 떨리기 시작했다.그는 너무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기에, 흥분한 나머지, 원경릉을 덜썩 끌어안았다."뛰어내리고 싶소. 뛰어내릴 테니, 이곳에서 기다리시오. 잠깐만 내려가서 놀다 오겠네."원경릉이 말하기도 전, 그는 원경릉을 놓고 난간을 넘어 풍덩 소리와 함께 호수로 뛰어들었다.어두운 밤, 그는 물고기처럼 호수 속을 헤엄쳤다. 파도가 계속 일렁이자, 호수 속의 물고기들은 놀라서 여기저기 뛰어 올라왔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물속에서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정자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물기로 뒤덮인 얼굴을 내밀고 원경릉을 보며 웃었다."원 선생, 너무 재밌소. 당신도 내려오겠소? 물살을 줄이겠네."원경릉은 호숫가에서 팔꿈치를 받친 채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가지 않고, 그저 당신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겠네. 한 바퀴 더 돌고 자러 가야 하오
원경릉은 어두운 풀숲에서 이 장면을 보고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가 정말 주문이라도 걸고 있는 걸까?능력 조종은 몸과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처음 능력을 얻었으니, 분명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그래서 능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게다가 억제제도 조금 효과가 있기 때문에, 능력을 사용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었다.그녀는 이 바보가 너무 안타까웠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믿지 않는 척했지만, 몰래 나와서 시험해 보는 그를 보니 속상했다.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밖으로 걸어갔다."다섯째!"우문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표정은 어쩔 줄 몰라 당황했으며, 손가락을 뒤로 숨기려 했다."아니... 언제 온 것이오?"원경릉이 답했다."호숫가에 서 있기에 온 것이오. 혹시 오늘 밤 내가 말한 걸 시도해 보려고 하는 것이오?"그녀는 뒤에서 따라갔던 것도, 그가 시도하는 것을 보았다고도 말하지 않았다.우문호는 그녀가 그의 어리석은 행동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아니네. 그저 잠이 안 왔을 뿐이오. 길주에서 벌어진 부정을 생각하느라 마음이 복잡해서, 바람을 쐬려고 나온 것이오. 당신이 말한 일은 벌써 잊은 지 오래되었네. 그런 농담을 어찌 아직까지도 마음에 담아두겠소?"원경릉은 대답한 후, 그에게 다가가 손을 꽉 잡았다."함께 바람도 쐴 겸 호숫가 정자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떻소?""피곤하지 않소?"우문호가 물었다."괜찮소. 그냥 당신과 얘기하고 싶네."그녀의 눈빛에는 은은한 미소와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우문호가 그런 그녀에게 입맞춤하고 웃으며 말했다."좋소. 호수 가운데로 가시오."두 사람은 손을 잡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갔다. 호수 가운데에는 작은 정자가 하나 있었고 호수를 관찰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다.그리고 정자의 처마 아래에는 하나의 풍등이 걸려 있었다. 비록 불빛은 다소 어두웠지만,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지 않고 난간에 기대어 호수에서 반짝이는 빛을 바라보았다. 미풍이 불어와,
원경릉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능력과는 차이가 있소."우문호는 웃음을 터뜨렸다."어리석은 말 하지 말고 자시오. 참 피곤하오. 아, 그리고 이번에 서일과 이부 사람들을 길주로 보냈소. 만두도 함께 가서 배웠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오?""좋소."원경릉은 멈칫하다 말을 이었다."그럼, 다시 물을 조종하는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자면..."우문호는 일어나 또 연신 하품을 하며 말했다."아이고, 정말 힘드오. 그럴 리 없는 일로 그만 이야기하시오. 원 선생, 다들 나한테도 그런 능력이 있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하지만 이런 일은 강요할 수 없네. 더 나아지려고 노력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그것이 아니라..."원경릉도 벌떡 일어나서 그를 따라갔다."정말 사실이오. 시도를 해보는 것이 어떻소? 궁 안에 호수가 있지 않소?""피곤하니, 이만 자야겠소."우문호는 침대에 뛰어올라 이불을 휘저었다."정말 피곤하오."그러자 원경릉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우문호가 흥분에 휩싸일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피할 줄은 몰랐다. 설마 두려운 걸까?"내 말 좀 들어보시오. 이 능력은 무서울 필요가 없네. 다룰 수만 있다면...""원 선생, 그만하시오. 정말 피곤하니, 어서 자시오."우문호는 손을 내밀어 그녀를 잡아당겼고, 그녀는 그의 몸에 쓰러졌고, 그는 그녀를 감싸 안았다.원경릉은 그가 이렇게 거부할 줄은 몰랐다. 강제로 받아들이게 할 수도 없으니, 우문호가 지금 하는 일을 마친 뒤, 다시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칠간 왔다 갔다 하느라 바빴고, 생각할 일도 많아 그녀는 정말 피곤한 상태였다. 그녀는 이내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렴풋이 우문호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녀가 눈을 뜨기도 전, 우문호가 살짝 그녀의 목 아래에 있던 팔을 빼는 것이 느껴졌다.잠시 후,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떠났다.원경릉은 눈을 뜨자마자 마침 우문호
자시가 다 되어 갈 때, 그녀는 바로 소월궁으로 돌아갔다.궁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자마자, 다섯째가 돌아왔다. 녹주가 그의 옷을 걸어주고, 목여 태감이 차를 준비한 뒤 물러갔다. 기라는 복도 앞의 불을 하나만 남긴 채 모두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안고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했다."기다리지 말고 피곤하면 먼저 자지 그랬소.""마침 연구를 확인하려 했소. 일부러 기다린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오. 피곤할 텐데 오늘은 씻지 말고 바로 쉬시오."하지만 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화가 너무 나서 잠이 오지 않소. 그건 그렇고, 아이들에 대한 얘기 좀 해주시오."그는 침대에 누워 몸을 뒤로 뉘었다. 약간 피곤해 보였지만, 그보다도 화가 난 것 같았다. 평소 아무리 바빠도 오늘처럼 피곤해 보인 적은 없었다.원경릉은 그의 허리 쪽에 부드러운 베개를 끼워주고, 반쯤 무릎을 꿇은 채 그의 눈썹과 관자놀이를 마사지했다. 우문호는 화를 낼 때면 두통이 자주 생겼다."계란이는 어떤가? 워낙 바쁘다 보니 자세히 듣지도 못했소."그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원경릉을 바라보고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마사지하지 못하게 했다.그러고는 팔을 크게 펼쳐 그녀를 품에 안았다."당신도 피곤했을 텐데 그만하시오. 조금 쉬다가, 당신의 어깨를 눌러주겠네."원경릉은 그의 품에 기대며 웃으며 말했다."계란이는 괜찮소.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당신이 좋아하는 자와 하겠다고 했소."다섯째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피곤함이 말끔히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정말? 정말 그렇게 말했소?!""물론이네. 당신은 그녀의 우상이오."그러자 우문호는 곧바로 기운을 차린듯 허리를 곧게 폈다."우상이라. 그렇다면 앞으로 무공을 갈고닦는 것 외에도 책을 많이 읽고 지식을 쌓아야겠군. 우상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네. 실력이 없으면 아이가 실망할 것 아닌가.""실력이라..."원경릉은 그의 품을 떠나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예. 태자 전하께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뵙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런데 옷가지를 정리하고 궁으로 오시니, 전하는 이미 군영으로 떠나셨지요. 마침 마마께서도 외출하신 터라, 이곳에서 폐하를 보살피고 계신 것입니다.""그래."원경릉은 직접 어서방에 가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로하신 희 상궁에게 밤새도록 지키게 할 수 없었다.어서방에 도착하자, 목여 태감과 희 상궁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황급히 다가왔다."마마,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인 일이십니까?""다섯째가 저녁을 먹었는지 보러 왔네. 무슨 일이 생긴 것이오? 이렇게 늦도록 의논을 한다니."단단히 닫혀 있는 어서방의 문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탕양, 냉 대인, 홍엽, 이리 나리와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목여 태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길주(吉州)에서 과거 시험 부정행위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폐하께서 크게 노하셨습니다."원경릉이 미간이 찌푸렸다. 다섯째는 조정의 인재 등용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고, 재위하는 동안 부정행위에 대해서 엄격하게 처벌해 왔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감히 이런 짓을 벌였단 말인가? 돈에 눈이 멀어도 정도가 있지!길주에서 이런 일이 터졌으므로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조짐이 보일 가능성이 컸기에,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불길 번지듯 확산할 것이었다.다섯째는 문인을 매우 중시하며, 늘 무장은 나라를 지키고, 문인은 나라를 다스린다고 말해왔다. 그런 마음 가짐으로 황제의 자리에 앉았으니, 당연히 문인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졌을 것이다.게다가 그는 백성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방법은 십여 년간의 힘든 공부 끝에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라 말했었다. 그런데 부정행위가 만연하면 실력 있는 자들이 탈락할 테고 그렇게 되면 문인을 중시하는 정책이 무너질 것이다.더 나아가, 억울하게 탈락한 자들은 조정에 대한 불만을 품을 것이고, 문인이 불만을 가지면 나라의 기운은 쇠퇴할 것이다."식사는
아이들과 밤새 각자 도성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원경릉은 다음 날 아침 서둘러 경성으로 돌아가기로 했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경천의 혈액과 호수 에서 채취한 얼음물에 얼음 벌레가 존재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기화가 아직 돌아가지 않았기에, 원경릉은 그를 불러내어 계란에게 그 일을 비밀로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기화는 가슴을 두드리며 절대로 말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다.하지만 원경릉은 그의 진지한 모습을 보며 더욱 불안해져, 왠지 모르게 그가 말실수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다시 한번 당부하자, 기화는 슬슬 짜증이 나는 듯했다."정말 저를 못 믿는 것입니까? 분명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원경릉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예. 꼭 비밀로 하십시오.""예. 어서 아이들과 인사나 하시지요."기화는 성가신 듯 손을 휘저으며 속으로 투덜거렸다.'나이도 어린 황후가 어쩜 이렇게 잔소리가 많지?'원경릉은 아이들과 작별을 마친 후, 바로 경성으로 떠났다.하루도 채 걸리지 않아, 그녀는 황궁으로 돌아왔다.그녀는 돌아오자마자 간단히 다섯째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 바로 실험실로 향했다.경천의 혈액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니, 역시나 얼음 벌레가 있었다. 비록 과거 다섯째의 혈액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하긴 했으나, 다섯째의 것보다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이어서 호수에서 가져온 얼음물을 현미경으로 확인해 보기도 했지만 얼음 벌레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호수 근처에서 채취한 물도 마찬가지이므로, 호수에서 감염된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얼음 벌레의 감염원을 추적할 수 없게 되자, 원경릉은 꽤 실망스러웠다.하지만 우선 경천의 혈액 속 얼음 벌레를 연구할 수 있기에, 그녀는 벌레를 분리하여 다양한 온도에서 번식력과 생존력을 실험해 보려 했다.이 일을 마무리한 뒤, 원경릉은 드디어 다섯째에게 능력에 대해 알려줄 때가 왔다는 결정을 내렸다.그저 그가 놀라서 기절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소월궁으로
기화가 말했다."형인 경천보다 크게 부족하지는 않지만, 아직 경천만큼의 패기는 없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경천과 대등해질 것입니다!""성격은 어떻습니까?""괜찮습니다."기화는 대부분의 사람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괜찮다"고 했으니, 정말 괜찮은 사람일 것이었다.이후 기화는 원경릉과 함께 다른 도성을 방문했다. 원경릉은 미리 능력으로 소식을 보내 그들을 한곳에 모이게 했다. 한편 기화는 계란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동행했다. 그도 어쩌다 조금 여유가 생겼다.소년들은 어머니가 오자 무척 기뻐했다. 하지만 저녁이 되자, 그들은 어머니를 데리고 방으로 향했다. 그들은 그녀가 이유 없이 이렇게 먼 곳까지 올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원경릉은 아이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일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약을 잘못 쓰고, 얼음 벌레에 감염되고 현대에서 사용한 약까지, 모든 것을 알려주었으며, 경천의 저주까지 전부 털어놓았다.경단과 찰떡은 이 말을 듣고 무척 놀랐다. 그들은 위기에 처한 아버지의 상황에 대해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반면, 환타와 칠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원경릉은 이 두 아이가 떡들보다 신비로운 일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이 능력은 정말 타고난 것 같았다.잠시 후, 칠성이 입을 열었다."사실, 경천이 감염된 얼음 벌레가 저주의 일종일 가능성이 큽니다. 비록 기화 스승께서 연관 없다고 하셨지만, 저주도 일정한 형태와 매개체를 가지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형태나 매개체가 있으니, 분명 저주를 풀 방법도 있지요. 큰 공덕을 지닌 자가 필요하다고 했으니, 어쩌면 어마마마일 수도 있습니다. 어마마마가 얼음 벌레의 저주를 없앨 방법을 연구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내가?"원경릉은 깜짝 놀랐다."아니면 아바마마일 수도 있습니다."옆에서 듣고 있던 환타가 말을 보탰다."아바마마 혈액 속 마커가 사라졌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원경릉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기화가 말한 고차원 문명이 아무리 들어도 이상하게만 느껴졌다.인류는 고차원 문명에 대해 단지 추측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심지어 그 존재 여부조차 검증할 수 없다.누군가 고차원 문명이 신계 문명과 동일하다고 주장했지만, 그녀는 신계 문명을 접할 방법조차 갖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신계의 시선으로 이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겠는가?그녀는 점점 자신이 주제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원경릉은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화제를 경천 황제에게 돌리려 했다."그를 구할 방법이 없습니까? 아직 젊은데 그냥 죽게 내버려두는 건 너무 아깝잖습니까?"아깝긴. 큰 공덕을 쌓았으니, 그는 죽고 윤회할 것입니다.""윤회라..."원경릉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미간을 문질렀다."아까는 고차원 문명 얘기를 하시더니, 이번엔 윤회라. 사고방식이 너무 빠르게 바뀌시니, 따라가기가 힘듭니다."하지만 기화는 오히려 태연하게 말했다."뭐가 어렵습니까? 과학의 끝엔 결국 신학이라 하지 않습니까? 어찌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십니까?""그럼, 고차원 문명의 관점에서 이 저주에 관해 설명해 주시지요."이렇게 특별한 이유를 과연 그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기화가 답했다."사실 이해하기엔 쉽습니다. 저주라는 건 하나의 힘이고, 그 가문은 힘을 어지럽혀 반작용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저주라는 게 바로 그런 것이지요. 하지만 가문의 기운이 달라지며 이 반작용의 힘도 점점 약해지게 되고, 이 세대에서 거의 끝이 보입니다. 그를 큰 공덕을 쌓은 사람이라고 한 이유는, 나라를 다스리고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고, 나라 발전에도 공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가 쌓은 덕이 반작용보다 커지면, 반작용의 힘도 점점 약해질 것이고, 결국 동화될 것입니다. 그럼, 윤회한다 해도 그는 복이 가득한 사람일 것입니다."원경릉은 그의 말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는데, 그때 기화가 한마디 덧붙였다."누군가는 화를 입으려 태어났고, 누군가는 운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