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상궁의 몸에서도 여러 개의 둥근 반점이 발견됐다. 원경릉은 희상궁의 등에 손톱으로 자국을 내며 희상궁에게 아프냐고 물었다. “아무 느낌도 나지 않습니다.” 희상궁이 말했다.그 말을 들은 원경릉은 만아에게 당장 손을 씻고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희상궁님이 무슨 병에 걸리신 겁니까?” 만아가 물었다. “일단 손부터 씻거라. 자세한 건 아직 모른다.”만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희상궁은 원경릉의 반응을 보고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태자비, 무슨 병이든 숨기지 말고 말해주세요. 쇤네 마음에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관절과 근육이 욱신거립니까?” 원경릉이 물었다. “예, 아직도 시큰시큰 욱신거립니다. 관절이나 근육이 안 좋은 건 나이 떄문입니다.” 희상궁이 웃었다. “상궁, 일단 누워보세요. 제가 자세하게 검사를 해야겠습니다.”희상궁이 침상에 눕자 원경릉은 마스크를 위로 바짝 올리고 희상궁의 여기저기를 살폈다. “태자비, 면보와 장갑을 잘 끼세요. 태자비께서는 아이들도 보지 않습니까.”원경릉은 순간 잊고 있었던 아이들이 생각나 가슴이 철렁했다.희상궁의 몸을 검사해 보니 경추, 척추, 팔꿈치의 신경이 조금 커진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바늘을 꺼내 반점을 찌르고는 “아프십니까?” 라고 물었다. “아프지는 않습니다.” 희상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경릉은 뜨거운 물을 반점에 얹고는 “뜨거운 게 느껴지십니까?”라고 물었다. 희상궁은 원경릉이 자신에게 큰 병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떨구었다.“좋습니다. 상궁님, 제가 약을 지어드릴 테니 꼬박꼬박 약을 챙겨드시고, 당분간은 외출을 하지 마세요.”“쇤네 무슨 병에 걸린 겁니까?”원경릉은 희상궁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려왔다. “그…… 문둥병일 가능성이 큽니다.”희상궁은 문둥병이라는 소리에 입술이 덜덜 떨리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예, 알겠습니다.”“그래도 상궁님 걱정 마세요. 문둥병이라도 제가 고칠 수 있습니다.”희상궁은 생각에 잠겼다. “태자비…… 저는
원경릉은 약상자를 열어 리팸핀을 꺼낸 후, 다른 약들이 뭐가 있는지 확인했다. 약상자 안에는 초기의 문둥병 환자를 치료하는 약들과 균을 퇴치하는 약들이 모두 있었다. 희상궁은 그녀가 주는 약은 먹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원경릉이 자신이 치료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태자비, 쇤네가 이 병에 걸렸다는 건 절대 비밀입니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저는 문둥산으로 끌려가게 될 겁니다.” 희상궁이 말했다. “문둥산이요? 그게 뭡니까?” 원경릉이 놀라서 되물었다. “문둥병 자체가 전염이 매우 심하기에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혜민국에 보고를 해야 하고 그럼 사람이 와서 환자를 문둥산으로 보내버립니다. 그래야 백성들이 안전하니까요. 문둥병에 걸린 사람들은 문둥산에서 죽습니다.”원경릉은 백성의 안전을 위한 당국의 대처는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지만 치료도 받지 못하게 문둥산으로 격리시켜버리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걱정 마세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을 겁니다.”원경릉은 희상궁을 치료할 약을 찾으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문둥병은 전염에 의해 걸리는 것인데, 희상궁은 누구에게 옮은 거지? 병의 잠복기가 2년에서 5년 정도인데 그 사이엔 희상궁이 줄곧 궁중에 있었는데 말이야…… 언제 문둥병 환자와 접촉을 한 거지? 잠복기에 있어 발병되지 않은 문둥병은 전염성도 없는데 이상하다.’물론 사람의 면역력에 따라 잠복기가 짧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몇 개월이라고 해도 희상궁은 밖에 나가거나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하는 경우가 없었으며 줄곧 초왕부 안에서 생활했다. 더군다나 문둥병 환자와 접촉을 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모두 문둥산으로 격리되어 있지 않은가? “희상궁,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상궁은 언제 문둥병 환자와 접촉을 했습니까?”그 말을 듣고 희상궁은 기억을 되짚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문둥병 환자와 접촉한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르겠습니다. 접촉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희상궁이 고개를 저었다.“귀신이
원경릉이 어의를 만나고 나오자마자 탕양을 보았다. “원씨댁에 통지를 했더니 원노부인께서 사람을 데리고 관아로 들어가셨습니다. 태자비께서도 관아로 가시겠습니까?”“아뇨. 이제 원씨댁에서 이 일을 해결할 겁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탕양은 저와 함께 서재로 가시지요. 제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 탕양은 평소와 다른 원경릉의 진지한 표정에 무슨 이유인지 묻지 않고 그녀를 따라갔다.서재에 들어간 후 원경릉은 탕양에게 조용히 말했다.“희상궁이 문둥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됩니다.”탕양은 역시 탕양이었다. 일반 사람이었다면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겠지만 탕양은 그렇지 않고 침착하게 원경릉에게 물었다. “그럼 태자비께서는 어쩔 생각이십니까? 치료를 할 수 있습니까?” “음, 방법이 있습니다. 문둥병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상궁이 어디에서 문둥병을 걸렸는가. 이게 관건입니다. 탕양은 상선을 몰래 찾아가 희상궁이 근 5년간 건곤전에서 문둥병으로 의심되는 사람과 접촉한 적이 있는지 물어봐 주세요. 지금 희상궁께서는 머리가 복잡해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하십니다.”원경릉의 말을 듣고 탕양이 화들짝 놀랐다.“그럼 태자비께서는 희상궁이 궁 안에 있는 사람에게 옮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닙니까. 이 병은 초기에 발견하기 매우 어렵고 잠복기가 깁니다.”“세상에…… 만약 궁 안에서 전염이 된 것이라면 정말 큰일입니다!”“예, 아주 큰일이죠. 그러니 5년 동안 입궁을 한 사람들 중에 문둥병에 걸려 문둥산으로 보내진 사람이 있는지 비밀리에 조사를 해보세요. 먼저 혜민서에 가서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 알겠습니다.”*저녁이 되자 원경릉은 우문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우문호는 희상궁 소식을 전해 듣고 “절대 비밀을 지켜야 해. 아무도 알아서는 안 돼.”라고 원경릉에게 말했다. “걱정 마. 탕양을 제외하고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문둥병에 걸리면
원경릉은 지금까지 희상궁의 잠복기가 짧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만약 몇 개월 전에 감염이 된 것이라면 우연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계략일까?원경릉은 근 몇 달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만약 이게 누군가가 꾸민 일이라면 범인은 안왕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큰일인데……’원경릉은 희상궁이 문둥병에 걸린 것이 안왕의 소행이든 아니든 희상궁이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우문호도 원경릉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역시도 희상궁이 몇 달 전에 감염이 된 것이라면 안왕의 짓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문둥병은 국가적으로 예의주시하는 큰 질병으로 혜민서나 기타 의료기관에서 문둥병에 걸린 환자가 생김과 동시에 신고를 한다. 그렇기에 문둥병에 걸린 환자는 길거리를 돌아다닌다거나 일반 사람과 접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론은 일상생활에서 희상궁이 문둥병 환자와 우연히 접촉할 방법은 지극히 드물다는 건데……’게다가 원경릉이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는 희상궁이 수석 상궁으로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했으며 하인들 하나하나를 가르치고 관리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유모 상궁의 교육도 했다. 만약 안왕이 꾸민 일이라면 칼날의 끝은 삼둥이를 향해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가 남영(南營)에 있지만 그가 떠나기 전에 파놓은 함정이 몇 개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원경릉은 희상궁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우문호에게 만아가 대주씨를 때린 사실을 말하며 사식이가 경조부에 끌려갔다고 말했다. “그거 아주 좋은 기회네. 보좌관이 안왕과 내통을 주고받는 사람이니까 이번 기회에 보좌관을 제거하지 않으면 경조부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그를 통해 안왕의 귀로 들어가게 될 것이야. 내가 사람을 시켜서 사식이에게 몇 마디 말을 전해야겠어. 그리고 원노부인에게 이 일을 크게 벌이라고 지시하면 돼. 그럼 주국공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거야. 주국공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원노부인은 무서워하거든.”“그래도 사식이가 고생하는 건 볼 수 없어.” 원경릉이 말했다.
막 곤장을 내리치고 있을 때 원노부인이 원씨네 부녀자들을 데리고 경조부에 도착했다. 경조부 마당에 들어서자 사식이가 곤장을 맞는 것이 보였다. 원노부인은 재빠르게 한 손으로 곤장을 빼앗아 던져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곤장이 두 동강이 나며 하늘로 치솟아 보좌관 앞에 박혔다. 보좌관은 깜짝 놀란 얼굴로 원노부인을 바라보았다.“원노부인 이건……!”원노부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좌관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무서운지 당장이라도 보좌관의 머리통을 뽑을 기세였다. “도대체 우리 집안의 사식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네. 만약 사식이가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도 이런 짓을 했다면 원씨 집안이 가만 있지 않을 걸세!”보좌관이 얼빠진 얼굴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던 찰나 사식이가 울며 원노부인을 불렀다. “조모, 왜 지금 오신 겁니까? 손녀 억울하게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경조부 사람들이 얼마나 흉악한지 내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믿지 않고 계속 자백을 하라고 협박하더니. 자백하지 않으면 곤장을 내리치겠다면서 저를 여기에 묶었습니다! 조모께서 조금만 더 늦게 오셨으면 손녀 오늘 명이 끊겼을 지도 모릅니다!”보좌관은 사식이가 원노부인에게 조모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저 자가 원씨 집안의 사람이란 말이야? 그것도 원노부인의 손녀라고? 분명 대장군 부인께서는 초왕부의 시녀라고 했는데……’보좌관은 지금이라도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 “노부인, 대장군 부인이 노부인의 손녀가 범인이라고 해서 저도 어쩔 수 없이 조사를 했습니다. 당연히......”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부인이 손바닥으로 공당(公堂)을 내리쳤고, 그 위에 있던 물건들이 모두 날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손녀가 범인이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했다는데, 왜 곤장을 때리는 건가? 자백을 하지 않으면 이렇게 해서라도 자백을 하게 만들 셈이었나!”노부인의 말이 끝나자 원씨 집안의 여인들이 모두 보좌관을 다그치며 따져 물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냥 겁
주국공부에 와서 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 바로 원노부인이었다. 주국공보다 나이가 어린 원노부인이 주국공을 막 대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주국공은 원래 군후세가(軍後世家)였으나, 후에 조정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해 몰락의 위기에 처했었다.이를 안타깝게 여긴 원노부인의 시아버지가 그의 집안을 도왔기 때문에 주국공이 조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만약 원노부인의 시아버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주국공은 지금의 지위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주국공과 원노부인은 함께 전쟁터에 여러 번 나갔으며 그곳에서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언급한 두 가지 이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터에서 주국공의 부인이 아이를 낳다가 죽을 뻔했는데, 원노부인의 도움으로 주국공 부인과 대주씨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그 후로 주국공은 대대손손 원씨 집안에게 큰 빚을 지었다고 생각했다. 주국공은 그 후로 수차례 전쟁에 나가 공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의 명성에 큰 누를 끼친 사건이 있었는데, 소요공과 원노부인이 함께 출정한 전투에서 소요공이 이끄는 전투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패했다. 그것을 보고 어떤 장병이 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렸는데, 그 내용이 소요공의 장병들이 죽음을 두려워해 패했다는 헛소문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주국공은 소요공이 이끈 전투라는 소리에 무슨 내용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그 상소문에 동의했고, 황제는 화가 나서 전쟁에 나가 부상을 당한 병사들의 위로금을 절반으로 줄였다. 전쟁에서 돌아온 원노부인은 주국공을 흠씬 두들겨 패며 소요공과 개인적인 원한으로 전쟁에 나간 장병들에게 누를 끼치는 게 옳은 일이냐며 다그쳤고, 주국공도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그 후로 몇 해 동안 주국공은 원노부인을 피해 다녔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원노부인이 주국공부까지 찾아와 자신을 찾고 있다. 주국공은 원노부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기가 확 죽어 몸을 움츠리고 밖으로 나왔다. 원씨 집안사람들은 본래부터 기가 세서 존재만으로도 보는 사람의
억울한 사식이말을 마친 주국공은 눈을 가늘게 뜨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이전 일을 왜 자꾸 들먹입니까?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지금 전 그렇게 고집스럽지 않아요, 이전 일은 그만 끌어들입시다.”체면 좀 세워주면 어디가 덧나?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원노부인이 냉소를 지으며 무시하더니 싸늘한 얼굴로 사식이를 앞으로 불러냈다.사식이가 다리를 절며 앞으로 나와 구슬 같은 눈물을 후두둑 흘리는데, 희고 깨끗한 얼굴에 붉은 자국이 죽죽 나 있다. 누군가에게 맞은 자국으로 주국공이 못 보고 지나갈 뻔 했으나 지금 사식이가 주국공 면전에 나와있어 비로소 발견했다.사식이는 꼿꼿하게 주국공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더니 울면서 “국공 나리, 저는 오늘 태자비 마마를 보호하느라 대장군 부인과 말다툼을 했습니다. 저는 대장군 부인을 때린 적도 없고 태자비 마마와 같이 나가는 걸 문지기도 다 목격했어요. 그런데 대장군 부인이 제가 부인을 때려서 다치게 했다고 고소장을 내서, 관아에서 초왕부에 쳐들어와 저를 끌고 가더니 사정도 묻지 않고 형을 집행했습니다. 만약 할머니께서 오셔서 도와주지 않으셨으면 곤장 50대를 맞고 제가 살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감히 대장군 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 리가 없습니다. 나리 제발 절 살려주세요. 저에게 사정을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다시는 감히 대장군 부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게요, 네?”사식이가 말할 수 없이 억울한 나머지 엉엉 울었다.사식이는 아직 덜 큰 아이로 성정이 솔직 담백해서 주국공이 마음에 들어 했는데 지금 그 아이가 이렇게 억울해 하며 울고, 심지어 얼굴을 맞은 데다, 곤장까지 맞았다는 얘기를 들으니 주국공 마음이 아팠다. 대주씨가 성질머리를 부린 것에 화가 나서 주후덕을 노려보며, “대장군부에 가서 네 동생을 데리고 오너라.”주후덕이 우물쭈물하며, “아버지, 큰 동생은 아직 국공부에 있는데요.”주국공이 이 말을 듣고 화가 뻗쳐서, “쫓아내지 않고 뭐했어? 왜 아직 국공부에 있느냐? 데리고 와!”주후덕이 감히
쳐들어온 원노부인주후덕이 대주씨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보좌관이 잡아들인 사람이 원씨 집안 꼬맹이라는 걸 듣고 진짜 열이 뻗쳤다. 원씨 집안 사람들이 지금 들이닥쳤으니 아버지의 성정에 절대로 원씨 집안 사람들에게 강하게 나가실 리 만무하고 대주씨에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하겠지. 하긴 원씨 집안은 솔직히 건드리면 안되는 집안이긴 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대주씨는 주후덕에게 “큰오빠 먼저 가세요, 전 옷을 좀 손보고 바로 갈 게요, 제 옷에 피가 묻어서 사람들에게 실례가 돼서.”주후덕은 대주씨의 어깨에 혈흔이 있는 것을 보고 “그래, 얼른 해라, 아버지 화 나셨어.”주후덕이 나가고 대주씨는 얼른 몸종을 데리고 뒷문으로 도망쳤다.대주씨가 과녁이 될 리 없다. 오늘 원씨 집안 사람들이 쳐들어와 아버지를 찾았지 대주씨를 찾은 게 아니므로 아버지가 어쨌든 해결하겠지, 비굴하게 아부를 하던지 적절하게 협상을 하던지 어쨌든 긴 세월 원씨 집안에 대해 줄곧 이런 태도였으니 대주씨는 이번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주국공이 밖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대주씨가 오지 않자 다시 보고 오라고 하니 사라지고 없었다. 주국공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더니 새파랗게 된 얼굴로 원노부인의 진노한 얼굴을 마주하자 창피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원노부인이 부리부리한 눈빛을 보니 주국공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것이 잘못한 아이가 잘못했다는 말조차 입도 뻥긋 못하는 것 같다.이건 그동안 주국공이 원노부인에게 품고 있던 심리적 약세도 있지만 더 많은 부분은 국공부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어서기 때문이다.그래서 주국공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이 일을 규명해서 원씨 집안과 사식이에게 합당한 답을 해드리겠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원래 원노부인이 이렇게 쉽게 용서하거나 굽힐 사람이 아니며 온 집안이 발칵 뒤집어 지도록 난리를 치고도 남았다. 그런데 주국공의 사과를 듣더니 주변 사람을 물리고 국공부 사람도 전부 내보낸 뒤 주국공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사식이는 다들 일곱째 고모의 안부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의아해하며 물었다.“일곱째 고모께서 편지를 보내신 겁니까?”그러자 셋째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편지가 왔단다. 며칠 놀다가 곧 경성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구나.”사식이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일곱째 고모께서 돌아오고 나서 혼담을 꺼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일곱째 고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일이 난감해질 텐데요.”노태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미 모든 일을 저질렀느넫 이제 와서 동의하지 않는다니? 감히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목을 매겠다!”노태군은 일곱째 고모가 열여덟 살이 되던 때부터 그녀의 혼사를 기다려 왔다. 계속 기다리다가 이미 머리카락이 다 하얘져 버렸지만, 그녀는 아직 혼인 기약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혼사를 정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더 나았다.그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일곱째 아가씨가 빨리 시집가기를 바라고 이씩 때문에, 이 일은 서둘러 진행하기로 했다.“사식아, 네 고모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갑작스레 병에 걸려 거의 죽게 생겼다고 전해라!”노태군이 단호히 명령했다.딸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스스로 저주까지 불사하는 그녀는 정말 독한 늙은이었다.서일은 탕양을 데리고 서둘러 궁으로 향했다. 중매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바로 황후를 찾아가야 했다.소월궁에서 우문호 부부는 탕양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우문호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짐이 보기엔, 일찍 일곱째 아가씨에게 네 마음을 고백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이리 일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탕양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고,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불안에 휩싸여 버릴 것 같았다. 그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폐하,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제발 사람을 보내 그녀가 어디 있는지
오래전의 악몽이 마음속에서 되살아나, 탕양은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녀가 혹시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스스로 뺨을 몇 대 때리고는 다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를 따라잡으려 죽자고 달려도, 끝내 그녀를 볼 수 없었다.그렇게나 빨리 도망간 건가?그렇게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쉬지도 않고 곧장 원가로 달려갔다.마침 서일과 사식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와 있던 참이었는데, 대문 앞에 도착하니, 탕 대인이 거지처럼 문지기 앞에 쓰러지다시피 주저앉아 먼지투성이의 얼굴에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문지기의 옷깃을 움켜쥔 채 다급히 묻고 있었다. “일곱째 아가씨는? 너희 일곱째 아가씨는 대체… 어디 있느냐?”그러자 문지기는 놀라 얼어붙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나 사나운 탕 대인을 본 적이 없어 더듬거리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일곱... 일곱째 아가씨께서... 탕 대인과 함께 약도성에 가신 거 아니셨습니까…?”“그럼 아직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탕양이 소리쳤다.“아직... 아직 못 뵈었습니다…!”바로 그때, 서일이 다가와 문지기한테서 탕 대인을 떼어놓으며 말했다.“무슨 일이십니까?! 우선 손부터 놓으십시오. 옷이 다 찢어지겠습니다.”탕 대인은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며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큰일이야… 내가 그녀를 망쳐 버렸네! 죽어도 이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네…!”“무슨 일입니까? 저희 고모께서 지금 어디 계십니까?”사식이가 다급히 물었다.“그녀는...“탕 대인은 비참한 표정을 지으며, 눈물 투성이가 된 얼굴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네… 나는 돌아온 줄 알고 있었네...”바로 그때, 무거운 발소리와 함께 지팡이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원가의 노태군이 부축을 받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탕양이 고개를 들자, 노태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탕
냉정언은 자기도 모르게 죄책잠이 들어 미간을 찌푸렸다.‘이번에 정말 큰일을 저지른 것인가?’그는 그저 탕양에게 술을 먹여 일곱째 아가씨에게 진심 어린 말을 꺼낼 용기를 주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동안 탕양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황제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고, 다들 그를 안타까워했었다.탕양은 다섯째가 초왕이었을 때부터 초왕부와 다섯째,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그렇게 반평생을 북당을 위해 헌신했으나, 그를 진정으로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다. 특히 과거에 자신도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탓에 평생을 스스로도 용서하지 못한채, 조정을 위해 뛰어난 공을 세우고도 관직이나 봉록을 거절하며 죄를 속죄하듯 살았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실수를 범할 수 있는 법이니까. 탕양은 이미 그 누구보다 훌륭히 잘해왔고, 게다가 정과 의리에 발목 잡힌 것은 많은 영웅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였다. 고금의 역사를 통틀어, 결코 그 혼자만이 저지른 행동이 아니었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와 벗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술에 취하지 않은 이상, 맑은 정신으로는 절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을 것이기에, 술에 취하게 하면, 경성이 아닌 변방의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몇 마디 속마음 정도는 털어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하지만 예상외로, 탕 대인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쌓였던 건지... 만취 상태에서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았다. 대체 이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품었던 것일까?상황이 아주 복잡해졌다.‘탕 대인 아주 못 쓰겠구먼! 이를 어찌 마무리 짓는단 말이냐…?!’원가의 상대하기 쉽지 않은 여장군들을 떠올리니, 냉정언은 순간 뒷골이 땡겨 머리를 쥐어뜯었다.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리니, 냉명여가 눈 앞에 서 있었다. 냉명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버지, 탕 대인은 어찌 일곱째 아가씨와 그런 일을 벌인
탕양은 지금까지 살면서 술에 취해 저지른 잘못이 단 하나뿐이었다. 비록 그 일도 나중에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지만, 그 일로 그는 술에 취하면 정말로 이성과 기억을 잃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렇기에 그 후로 술을 마시더라도 되도록이면 취하지 않게 애썼다. 하지만 어젯밤은 예외였다. 그는 이곳 사람 모두를 믿고 있었기에 경계를 풀었던 것이다.남녀 간의 일도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가 되어서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의부님! 의부님!"바로 그때, 문밖에서 호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탕양은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호통쳤다."일단 들어오지 말거라!"그는 급히 이불을 걷어내고, 바닥에서 옷을 찾아 황급히 입은 후, 이마를 문지르며 정신을 가다듬은 뒤에야 문을 열어 주었다.문밖에서 호명이 물었다."이제 막 일어나신 겁니까? 아직도 취기로 힘드십니까?"탕양은 머릿속이 어지럽고 복잡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괜찮다. 무슨 일이더냐?""식사하시라고 부르러 왔습니다. 아! 일곱째 아가씨께서 경성으로 돌아간 것을 알고 계십니까? 같이 가실 줄 알았는데 먼저 떠나셨더군요.""… 돌아갔다고?!"탕양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예!"호명이 그의 얼굴을 보다가 잠시 멈칫하며 말했다."의부님… 혹시 어젯밤 누구에게 맞으셨습니까?"탕양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만져 보았는데, 그제야 얼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황급히 동경을 찾아 얼굴을 비춰보았는데, 왼쪽 뺨에 여러 개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누군가에게 뺨을 맞은 것 같았다.그러자 어렴풋이 한 여인이 세게 뺨을 때리며 욕설을 퍼붓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떠올랐다.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이 텅 비어 있어 창백해진 안색으로 생각에 잠겼다.‘설마 내가 취기를 빌어... 그래서 떠난 것이었구나...’이번 사건은 목숨을 내놓고 속죄해도 부족할 정도였다."말을 준비하거라! 어서!"탕양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소리
연회는 계속 진행되었고, 냉정언은 술잔을 들고 계속 탕양에게 술을 권했다. 잔을 몇 번이나 주고 받자, 탕양은 머리가 머리가 어지러워져 말조차 똑바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연회가 끝난 후, 냉정언이 일곱째 아가씨에게 말했다."술을 꽤 마셨다 보니, 탕양이 좀 취한 것 같네. 정원에 나가 산책을 조금 하면서 술기운을 가시는 것이 어떻소?"일곱째 아가씨도 약간 취한 상태였기에, 바람을 쐬며 땀을 내면 술이 깰 것 같다며 동의했다."예. 그럼 다들 돌아가서 쉬시지요. 제가 호명과 함께 탕 대인을 돌보겠습니다.""좋소. 수고하시게나!"냉정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자, 어서 돌아가시게!"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새가 흩어지는 것 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일곱째 아가씨는 호명과도 함께 산책할 생각이었는데, 빠르게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이 어이가 없는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탕양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보고 물었다."괜찮습니까? 걸을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탕양이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는데, 술에 많이 취한듯 몸을 심하게 휘청거렸다."어찌 못 걷겠습니까? 취하지 않았습니다!""예. 그럼, 몇 걸음 더 걸어보시지요. 정말 못 걸으시겠으면 방으로 돌아가 쉬시고요. 취기를 덜어줄 탕을 준비하라고 하겠습니다."그러자 탕양은 허리에 손을 얹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곧게 뻗은 직선을 그리며 터벅터벅 걷고는 뒤돌아 일곱째 아가씨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보시지요. 얼마나 똑바로 걷는지! 안 취했습니다. 이제 믿을 수 있습니까?"일곱째 아가씨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하하하. 예, 안 취하셨네요. 그럼 이만 나가서 함께 산책하시지요."그녀는 그가 오래 걷지 못할거라고 생각해, 방으로 데려가 쉬게 하기로 했다.역시나 문을 나서자마자 탕양은 난간을 붙잡고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하도 휘청거리는 탓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기에, 일곱째 아가씨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를 부축했다.그러자
"탕 대인이 저를 예쁘다고 말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그러니 일곱째 아가씨께도 예쁘다고 말해 보십시오. 분명히 기뻐하실 것입니다!"하지만 탕 대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다를 겁니다. 일곱째 아가씨는 이제 그런거에 좋아할 나이를 지났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예쁘다고 말하면, 그저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어찌 그럴 리 있습니까? 누구나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는 법입니다. 탕 대인, 대인께서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까?"탕 대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예? 하하하. 그렇습니까?""예! 모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탕 대인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를 지었다."과찬입니다.""기분 좋으십니까?"택란이 묻자 탕 대인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뜻을 알아차리고 멈칫하며 말했다."이 녀석!"택란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탕 아저씨도 누군가에게 꼭 사랑받으시길 바랍니다."탕 대인은 이 말에 크게 감동해서 택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예. 고맙습니다."저녁엔 계약이 성공한 기념으로 연회가 열렸다.소박한 술자리긴 했지만, 커다란 술통들이 준비되어 있어 모두 마음껏 마시며 즐길수 있었다.택란은 술을 마시지 않기에, 주 아가씨가 매실청을 대신 준비해 주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택란의 마음에 쏙 들었다.술잔을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모두 패기 있게 약도성을 북당에서 제일가는 도성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벌써 독산을 어떻게 개발할지부터 고민하고 있었는데, 독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했기에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기 시작했다.각자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대부분이 경치를 개발하자는 내용이었다.반면, 택란은 새로운 생각을 제안했다. 독산에 온천이 있으니 오두막을 지어 온천을 끌어들여 돈을 받고 여러 개의 탕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온천수가 몸에 좋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자고 제의하였다.택란의 생각은 이 시절
탕양은 자신이 여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자부했었다. 특히 일곱째 아가씨처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더 선호하기에 굳이 자신과 인연을 맺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그의 큰 착각이었다.여인의 마음은 늘 갈대처럼 변덕스럽고,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다정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아가씨는 오랫동안 혼자 외롭게 지내왔는데, 중년에 접어들며 그 외로움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누군가 곁에 있다면, 삶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만, 물론 잘못된 연으로 나빠질 가능성도 있었다.원가의 가훈은 항상 군주에게 충실하며, 엄청난 용기도 있었다. 심지어는 원가에서 키운 닭조차 남의 집의 닭보다 더욱 용감할 정도였다.하지만 한 번의 좌절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겠다는 것이 과연 용기있는 행동 일까?물론 그녀가 반드시 탕양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볼 수도 있었다.하지만 탕양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한다면, 그녀 역시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여태껏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오직 탕양뿐이었다.그리고 어쩌면 시도해 봐야만 서로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탕양과 잘 맞는다고 느끼는 건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경성으로 돌아간 후에도 탕양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공개적으로 구혼에 나설 생각이었다. 한편, 택란이 주 아가씨와 함께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탕 대인이 왜 나쁜 사람인 것이오?""여인을 훔쳐봤습니다.""탕 대인이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소? 어찌 못 보는 것이오?"주 아가씨는 택란이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공주에게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내가 여인을 사모하면 상대의 시선을 바라보지,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탕 대인은 일곱째 아가씨를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그
그녀는 탕양을 힐긋 바라보는데, 예전의 담담하고 온화한 모습 없이 뜨겁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절대 먼저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생 그렇게 죽을 때까지 버틴다 해도, 제자리에 머물러 기다리지 않을 것이었다."탕 대인, 지금 어디를 보는 것이오?"그때, 냉정언이 물었다."예? 무슨 말이십니까?"탕양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냉정언을 바라보자, 냉정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께서 계속 일곱째 아가씨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것이오?"이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술렁이며 이상한 시선으로 탕양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주 아가씨가 급히 택란의 귀를 막으며 말했다."보지도, 듣지도 마십시오!"탕양은 크게 당황하며 두 손을 마구흔들었다."아닙니다! 전 그러지 않았습니다! 냉 대인께서 잘못 보신 겁니다.""아니오. 분명 아가씨의 옷깃과 가슴을 보고 있었소!"말을 마치자마자 냉 대인은 숭이를 안고 단호하게 밖으로 나갔고, 탕양은 얼굴을 붉히며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 일곱째 아가씨를 쳐다봤다. 그러자 일곱째 아가씨는 기침을 하며 옷깃을 정리한 뒤 소리쳤다. "흥. 변태!"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도 돌아서 나가버렸다.탕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당황한 얼굴로 주 아가씨와 홍엽을 보며 말했다."다들 보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런 게 아니라는..."홍엽이 소매를 휘두르며 말했다."눈이 자네 얼굴에 달려 있는데, 자네가 누굴 보고 어디를 보는지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주 아가씨는 택란의 손을 잡고 나가며 말했다."마마, 이제 탕 대인 같은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십시오. 인품이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탕양은 여전히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냉정언의 한마디에 그의 처지가 아주 난감해져 버렸다.그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명여야..."냉명여 또한 귀를 막고 밖으로 달려 나가며 외쳤다."탕 대인께서는 정말 나쁜 사람이십니다!"탕양은 그만 머리를 감싼
이처럼 독산은 마치 진실한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가장 진솔한 생각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탕양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배신한 것을 아직 기억하고 계십니까?"탕양은 그동안 일곱째 아가씨와 이 일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항상 담담한 태도로 과거 이야기를 피하며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이 말을 꺼내니, 탕양은 잠시 멍해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요..."일곱째 아가씨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기억하고 있다면, 제가 독산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우십시오. 독산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15년간의 수익은 전부 제 것이 될 겁니다. 그리고 15년 뒤에는 이익을 반으로 나누겠습니다. 절대 3할만 받을 수는 없습니다."탕양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만 폐하께 이미 3할이라고 말씀드렸는 걸요.""그건 대인의 일이지요. 폐하를 오랫동안 모셔 왔으니, 대인의 공로를 인정하고 배려해 주실 것입니다. 이건 대인께서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할지에 달린 것 아닙니까?"그러자 탕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가씨, 3할이라도 충분히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저 길만 새로 만들면 되고, 심지어는 조정에서 나서서 도와줄 것이니, 초반 투자 비용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하면, 놀러 오는 자들에게 먹거리와 즐길 거리로 돈을 적잖이 벌 수 있습니다.""반으로 나누는 것까지만 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익을 중시하는 상인인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탕양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예. 폐하께 돌아가 말씀은 드리겠지만… 무조건 그 조건을 따내겠다고 장담할 순 없습니다.""못 따내도 그만입니다."일곱째 아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앞으로 제가 독산에 몇 번이나 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조정에서 독산을 얻는다고 해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탕양이 웃으며 답했다."이곳에서 지내면서 머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