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부인 치료의 대가?“예,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원경릉은 주국공이 수액이란 방식을 얘기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약물은 다릅니다. 왜냐면 병이 다르니까요.”주국공이 ‘아아’ 하더니 국공부인 곁에 앉아 가는 목소리로 “아직도 아파?”“안 아파요, 배는 좀 쑤시고 팽팽하지만.” 국공부인이 부드럽게 말하고 원경릉을 보고 감격해서 “태자비 마마 정말 감사합니다. 늙은 몸이 다시 한번 살아났습니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고, “부인, 철저하게 낫게 해야 합니다. 아직 시간이 걸려요, 감사는 그때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국공부인이 주국공을 보고, “나중에 태자비 마마께 제대로 감사인사해 주세요 아셨죠?”“알았어.” 주국공이 대답하는 모습이 말 잘 듣는 아이 같다.수액 반 병 정도 떨어진 뒤 노부인이 용변을 보고 싶다고 해서 소주씨가 얼른 와서 돕는데 화장실이 밖이라 국공부인은 아직 수액을 꽂고 있다고 원경릉이 나가지 못하게 하자 요강을 들여와서 원경릉은 잠시 자리를 피했다.잠시 후 원경릉이 다시 들어와서 “어때요?”국공부인이 표정이 한결 후련하고 편안하게 원경릉에게 고맙다고 몇 번이고 얘기했다.주국공은 이 때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낙담해서 한숨을 쉬며 국공부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런데 한숨을 쉬고 나더니 주국공의 표정이 편안해 졌다.수액이 다 들어가고 원경릉이 복용할 약을 남기고 내일 다시 오겠다고 했다.주국공이 원경릉을 본관 바깥까지 배웅하니 우문호가 둘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묻길 “어떠셔?”원경릉이 “잠시 통증은 멈췄어요, 전 내일 다시 오고요.”우문호가 주국공과 다른 사람들에게 예를 취하고, “그럼, 우린 먼저 가보겠습니다.”주국공이 당황해서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말투로, “태자 전하께서는 저와 나눌 일이 있지 않으십니까?”우문호가 놀라며, “무슨 일이지요?”주국공이 앉아서 콧방귀를 뀌며 “척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하께서 태자비 마마를 데려와 제 아내의 병을 치료하신 것은 목적이
딸을 내친 주국공과 귀신을 보는 태상황적위명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불편했다. 게다가 이 말은 주씨 집안 사람들 앞에서 한 말이라 적위명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주국공은 아직도 적위명을 그때의 애송이로 생각하는 것이다.하지만 적위명은 장인의 성격이 욱하다는 것과 지금은 정말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것을 알고 조용했으나, 대주씨는 적위명을 위한답시고, “아버지,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어요? 사위는 다 아버지를 위해서 저들의 계략에 당할 까봐 걱정돼서 그런 건데. 아버지는 원래 정사에 상관하지 않고 줄도 서지 않잖아요. 그런데 만약 어머니의 병을 약점으로 잡혀서 태자 쪽에 서라고 압박을 받으면 안왕 전하는 어떻게 하시려고요?”주국공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노기가 등등하여 눈을 부라리며 대주씨에게, “태자 전하와 안왕 전하가 대립하는 것이냐? 태자 전하는 황태자로 다음 대통을 이을 자인데 네 말 대로 안왕 전하가 태자와 적이면, 안왕이 역모를 꾀하는 역신이란 것을 암암리에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밤새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입으로 똥을 쌌겠지. 이 말이 만약 밖으로 새나가는 날엔 네가 안왕을 죽이는 꼴이다. 내가 안 그래도 방금 널 욕하려고 했다. 태자비께서 야심한 밤에 와서 네 어미의 병을 치료하고 있는데 감사하단 말은 일언반구도 없이 터무니없이 못살게 굴고 방해를 해, 도대체 뭐하는 짓거리야? 무슨 짓거리냐고 어? 알고 싶지도 않다!”대주씨가 굴욕적이란 얼굴로 길길이 날뛰며 “아버지, 딸이 아버지를 위해 생각해드렸는데 뭘 그렇게 화를 내십니까? 사위와 제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세요?”주국공이 매정하게 “너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 인성이 삐뚤어져도 한참 삐뚤어졌어. 너희는 필요 없다 돌아가거라.”말을 마치고 주국공은 자리를 떠나 나갔다.남은 대중들은 순간 난감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 주국공이 적위명에게 이렇게 대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밤 이렇게 불호령을 내리니 다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한편, 우문호 부부
태상황의 설사원경릉이 예하고 약상자를 들고 들어갔다.태후와 호상궁이 침전에서 시중을 들고 어의도 있다. 태상황은 침대에 누워 눈을 크게 뜨고 있는데, 두 눈에 초점이 없고 침대 맡을 보며 힘껏 손을 휘 저으며, “저리가, 과인에게서 떨어져, 내 목숨을 찾으러 온 거냐? 두 나라가 싸우는데 네가 죽지 않으면 과인이 죽어. 이건 만고불변의 법칙이 아니냐, 꺼져, 썩 꺼지란 말이다!”태후가 눈물을 흘리며 다급하게 “이런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누가 죽인다고 그래요? 아이고!”우문호가 와서 태후를 부축해 일으키며 다독이길 “황조모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을 겁니다. 원 선생이 진찰하게 두죠.”태후가 눈물을 닦으며 원경릉을 흘깃 보고, “어서 와서 좀 보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뭐에 씐 건 아니겠지?”원경릉이 대답하길 “황조모 서두르지 마시고, 제가 우선 좀 볼 게요.”원경릉이 가서 보니 태상황의 피부가 건조하고 눈두덩이 깊이 패인데다 입술이 말라서 갈라진 것이 확실이 탈수 증상이다.검사해보고 어의에게 몇 마디 물어보더니 일단 수액을 걸었다.태상황은 여전히 몽롱한 가운데 귀신이 어쩌고 저쩌고 웅얼거리고 있고, 원경릉은 사람을 시켜 뜨거운 물을 가져오게 해서 알약을 몇 알 먹이는데 굉장히 협조적이라 꿀꺽 삼키더니 원경릉이 전해질을 열어서 마시게 하자 다 마시고 드러눕더니 잠이 들었다.잠시 후 태상황의 눈에 점점 초점이 잡히더니 원경릉을 보고 마치 막 일어난 듯, “왔냐?”원경릉이 태상황에게, “뭘 아무거나 드신 거예요? 어쩌다 설사를 하신 건데요?”“아무것도 안 먹었어, 하루 세끼 전부 네가 얘기한 대로 담백한 음식 위주로.” 태상황이 무고한 사람을 의심한다는 눈빛이다. 설사로 살이 홀쭉해 져서 눈이 더 커 보이는데 의외로 약간 멋진 느낌도 있어, “별것도 안 먹었는데 설사를 하다니, 어떻게 그렇게 재수가 없지? 하여간 나이는 못 속인다니까.”상선이 살금살금 앞으로 나오더니 비리를 까발리는데, “그게 별 거도 안
“왜 이렇게 잔소리가 심해? 지금이 몇 시인데 이 소란이라는 말이다! 과인은 죽지 않을 것이니! 여기서 내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빨리 돌아가거라!” 태상황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을 내쫓았다. 태후는 태상황의 성화에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걱정이 되는 표정으로 상선에게 그를 잘 돌보라고 언지를 주었다. 명원제는 태상황이 버럭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많이 놓였다. “두 사람은 건곤전에 있다가 내일 아침에 돌아가거라.” 명원제가 우문호와 원경릉에게 말했다.“예.” 우문호가 대답했다. 명원제가 돌아서자 주황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경릉은 나한 침상을 가리키며 우문호에게 말했다.“지금은 내가 태상황님을 볼 테니 넌 눈 좀 붙여.”“나 안 졸려. 나도 네 옆에 있을게.”태상황은 살짝 눈을 떠 그들을 보았다.“찰떡이는 좀 어떤가?”“괜찮습니다. 병도 다 나았고 요즘 살도 붙어서 통통합니다.” 원경릉이 태상황의 이불을 덮어주며 대답했다.“다행이구나. 그럼 나중에 데리고 와서 이 늙은이에게 보여주렴.”“예, 태상황님 눈 좀 붙이세요. 아직도 어지럽고 환각이 보이십니까?”“약간 어지러운데…… 환각이 아니야. 분명 귀신이었어. 듣자니 사람이 죽기 직전엔 귀신을 본다는데 짐도 머지않아 죽는다는 소리겠구나. 그렇지?”“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태상황님은 건강하시다고요!” 원경릉이 말했다.태상황은 그녀의 말은 귓등으로 듣지 않았다. “사람은 다 죽는다. 과인의 나이도 적지 않으니 곧 죽어도 이상할게 없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너무 빠르다.”태상황의 담담한 목소리에 원경릉과 우문호는 슬퍼졌다. “황조부, 칠순 팔순까지 살아계셔야 합니다. 그만큼 살면 염라대왕도 감히 황조부를 데리고 갈 수 없을 겁니다. 백만 년 천만 년 사셔야 하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우문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허허, 네가 지금 과인을 가지고 노는 것이냐? 그러다 과인이 귀신이 되어 백만 년 동안 이승에 돌아다니면 어쩌려고?” 태상황
태상황은 천천히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을 때가 다가오니까 시간이 너무 아까워.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하루를 값진지 모르고 살았다. 젊을 때는 시간이 넘쳐나는 줄만 알았어. 늙고나니 알게됐어.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야. 그 시간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었어.”원경릉은 태상황의 손을 잡았다. 태상황은 천천히 눈을 치켜들고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루완(落蠻)아 잘 지냈느냐?”우문호와 원경릉은 넋 나간 표정으로 태상황을 바라보았고 상선은 온몸을 덜덜 떨며 애써 눈물을 삼켰다. 태상황의 눈도 서서히 감겼다. 태상황은 탈수가 심해서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약을 복용해 잠깐 기운이 생겼던 것 같았다. 그는 약 기운이 사라지자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원경릉은 조용히 상선에게 “루완이 누구입니까?” 라고 물었다.상선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눈짓으로 태상황 쪽을 가리켰다. 아니나 다를까 태상황이 다시 눈을 뜨고 원경릉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환각을 보셨습니까?”“방금 네가 뭐라고 했는데……”“태상황님, 소인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그럼 방금 네가 들은 게 환청이라는 건가……” 태상황이 어리둥절했다. 원경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상선을 보고 눈을 찡긋했다.세 사람은 태상황의 옆을 지키다가 그가 코고는 소리가 들리자 상선이 원경릉에게 손짓을 해 나한 침상 쪽으로 가자고 했다. 우문호는 상선의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갔다.‘도대체 루완이 누구인 거지? 왜 황조부께서 환각을 볼 때 그를 보았던 걸까?”상선은 두 사람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루완이라는 사람은 소요공의 사부로 사람들은 루신(落神)이라고 부르며, 태상황님께서 그녀를 처음 알았을 때는 소후부(蘇侯府)의 세 번째 아가씨였습니다.”“여자라고요? 황조부님 입에서 여자의 이름이 나온 겁니까?” 우문호가 깜짝 놀랐다. 황조부의 후궁은 매우 적었고, 실제로 봉호를 받은 사람은 황조모
“그 당시의 일은…… 부에서도 잘 몰랐습니다.” 상선이 망설였다. 우문호는 상선이 뭔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황실의 비밀이기에 말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것은 황실의 오래된 일일뿐 현재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인생의 절반 넘는 세월이 지났는데 이제 와서 왈가불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당시의 일은 영원히 묻혀야 한다. 다음 날 태상황은 자기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도 못하는 듯 정신을 차리자마자 밥을 먹자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며칠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아 배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하인에게 고기를 내어오라고 하자 원경릉이 태상황에게 안된다고 말하며 지금은 죽만 먹어야 한다고 했다.“너는 정말 야박하구나!” 그는 원경릉에게 욕을 퍼부었다.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온 태상황을 보며 원경릉은 사람이 나이가 먹으면 일찍이 기억 저편에 있던 사람이나 사건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틀날 정오가 지난 시간, 원경릉은 태상황에게 링거를 두 병 놓고 궁을 나왔다. 우문호와 원경릉은 출궁을 하고 나서야 진정정 내외가 생각났다. 두 사람은 손님을 불러놓고 제대로 접대하지 못한 것 같아서 내심 진정정 내외에게 미안했다. 두 사람은 왕부에 도착하자마자 진정정 내외에게 사과를 했다. 진정정은 그 두 사람이 어젯밤에 주국공부에 갔다가 태상황이 편찮다는 말을 듣고 입궁했다가 지금 왕부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태자비, 저희는 신경 쓰지 마세요 정말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무슨 날입니까? 왜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습니까?” 진정정이 말했다.“누가 또 아픕니까?” 원경릉이 물었다. 옆에 있던 사식이가 “희상궁님이 아프세요.” 라고 말했다. “괜찮아지지 않으셨어? 어제도 같이 국공부에 가셨었는데?”“괜찮아졌죠. 근데 어찌 된 일인지 어젯밤부터 또 열이 나셨습니다. 아까 조어의의 해열 약을 드셨는데 그 후로는 좀 열이 떨어지신 것 같습니다.” 사식이가 말했다.“정말 열이 가신 것
주국공은 원경릉을 보고 인사치레도 없이 노부(老夫)가 언제부터 어디가 아팠는지 설명했다. “오늘 점심부터 복부와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네”원경릉은 진통제와 링거를 놓으며 부인의 증세에 대해 주국공에게 물었다. “이 병은 단기간에 치료가 불가합니다. 부인의 콩팥에 결석이 생긴 것인데 이 결석을 몸 밖으로 배출해야 나을 수 있습니다. 일단 통증이 심하니 약으로 통증을 멈춘 후 결석을 제거해야 합니다.”“결석이 있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네. 하지만 노부인의 몸이 허약해서 결석을 빼내는 약을 끝까지 먹을 수 없었어.” 주국공이 말했다.“그럼 제가 드린 약을 한두 달 정도 복용하고 상황을 지켜보시지요.”주국공은 원경릉을 조용히 불러냈다.“태자비, 솔직하게 말해주게. 노부의 병을 치료할 수 있겠는가?”“국공 나리 걱정 마세요. 큰 병이 아닙니다. 치료만 잘 받는다면 완쾌할 수 있습니다.”주국공은 그 말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저 병이 큰 병이 아니라고? 내가 저 병으로 죽는 사람을 여럿 봤어!”라고 말했다.원경릉은 나이 든 사람에게 자신이 어떻게 치료할지 말해봤자 입만 아플 것이라고 생각했다. “걱정 마세요. 결석을 제거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주궁공은 눈썹을 찌푸리며 “태자비의 말을 늙은이가 믿을 수가 없군. 큰 병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어의들이 치료하지 못한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태자비 설마…… 노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니겠지?” 라고 물었다. 원경릉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화를 내려고 하다 밖에서 들리는 앙칼진 여인들의 목소리에 말을 멈추었다.‘사식이가 누구랑 싸우는 것 같은데……’잠시 후 하인이 주국공에게 달려왔다. “국공 나리, 태자비께서 데리고 온 시녀와 마마님이 다투셨는데, 시녀가 마마님께 폭력을 쓰려고 합니다!”주국공은 그 말을 듣자마자 원경릉을 노려보았다. “태자비의 시녀는 어찌 위아래가 없는 것인가?”원경릉은 깜짝 놀란 얼굴로 주국공을 보았다.“어떻게 된 일지 알아보겠습니다.”
대주씨는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원경릉을 보았다. “태자비께서는 국공부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닙니까?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한낱 노비가 윗사람에게 대듭니까?”원경릉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식이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대주씨를 노려보았다.그 모습을 본 대주씨는 어이가 없다는 듯 차갑게 웃었다.“어이고, 공정하고 현명한 태자비 납셨습니다. 아랫것 하나 간수하지 못해 휘둘리는 꼴이란…… 안하무인 한 노비를 호되게 혼내지 못 할망정…… 쯧쯧.”원경릉은 대주씨의 선넘는 발언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첫 번째, 전 사식이를 간수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겁니다. 사식이 성격상 틀림없이 당신을 가만두지 않았을 거니까요. 둘째, 사식이는 우리 초왕부의 노비가 아니라 원씨댁의 사람입니다. 대주씨 말대로 2품 봉호를 받은 자를 존중해야 마땅하나 사식이네 집안도 결코 만만한 집안이 아니라는 겁니다. 근데 사식이가 왜 당신에게 화를 낸 겁니까? 그건 당신이 본비를 욕했기 때문 아닙니까? 당신은 2품이지만, 난 북당의 태자비입니다. 감히 당신 따위가 본비를 욕해요? 안하무인은 사식이보다는 당신에 더 어울리는 사자성어 같은데 아닙니까?” 말을 마친 원경릉이 고개를 돌려 주국공을 바라보았다. “국공 나리, 따님이 하극상을 따지시니, 본비가 하극상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드렸습니다.”모든 상황을 지켜본 주국공은 사실 마음속으로 대주씨가 무어라고 했든지 간에 2품 봉호를 받은 부인에게 사식이가 대든 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사식이가 노비가 아닌 원씨 집안의 사람이라고 하자 사식이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원씨 집안은 거칠지만 가문 안의 규율이 있는 집안이었다. 사실 주국공이 가장 화가 났던 부분은 대주씨가 태자비의 뒤에서 못된 말을 했다는 것이다. 원경릉이 쏘아붙이는데 모두 맞는 말이라 주국공이 무어라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주국공은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대주씨를 보았다. “태자비를 욕한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