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물상점 내부는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염지아는 건장한 남자에게 뺨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고 부어오른 얼굴을 부여잡고는 서러워서 눈물이 차올랐다.“당신들 뭐 하는 거예요?”염지아가 물었다. 가게 안에는 온몸에 문신을 한 네 명의 건장한 남자가 있었고 우두머리인 대머리 남자는 날카롭지만 음탕한 눈빛으로 바닥에 있는 염지아를 보면서 차갑게 말했다.“뭐하냐고? 보면 몰라? 자릿세를 받으러 온 거잖아!”“자릿세라고요?”염지아는 어리둥절했다. 그 남자는 의자를 끌고 와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담배를 벅벅 피우며 차갑게 물었다.“네 사장은 어딨어?”“외출하셨어요.”염지아가 대답했다. 대머리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염지아의 희고 긴 다리와 풍만한 가슴을 훑더니 음탕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장이 돌아오면 전해. 오늘부터 이 거리는 내 구역이야. 여기서 계속 장사하고 싶으면 한 달에 200만 원씩 자릿세를 내야 해! 내기 싫다면 장사할 생각하지 마!”말을 마친 오두팔은 염지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차가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지금은 우리 예쁜이가 오빠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야 할 거야.”말을 마친 오두팔은 일어서서 염지아에게로 다가가 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을 만지려고 했다. 깜짝 놀란 염지아는 얼른 몸을 피했고 오두팔의 뺨을 세게 내리치며 욕을 퍼부었다.“변태! 당장 꺼져!”뺨을 맞은 오두팔은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의 시선이 차갑게 식더니 똑같이 염지아의 뺨을 세게 내리치며 화를 냈다.“젠장! 미친년이 감히 함부로 손을 놀려? 오늘 너를 제대로 혼내야겠다!”오두팔은 당장에 염지아의 팔을 붙잡고는 그 위로 덮쳤고 염지아에게 강제로 키스하려고 했다. 겁을 먹은 염지아는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악, 꺼져! 이건 범죄야, 신고할 거야...”“신고한다고? 그 사람들이 감히 나를 단속할 수 있나 없나 한번 봐봐!”오두팔은 비웃듯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말하고는 계속 염지아에게 손을 댔다. 이때, 문으로 인영 하나가 달려 들어오더니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서강빈은 오두팔의 손목을 부러뜨렸다. 오두팔은 처절한 비명을 질렀고 서강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서강빈은 발로 오두팔의 무릎을 차서 망가뜨렸다. 오두팔은 또다시 비명을 지르며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사과해! 안 한다면 너는 죽어!”서강빈이 차갑게 말했다. 오두팔은 인제야 앞에 있는 이 녀석을 건드리면 안 됐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는 황급히 소리쳤다.“죄송,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형님, 누님,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염지아를 보고 말했다.“이리 와. 저 사람의 뺨을 때려!”“네?”염지아는 두려운 마음이 들어 멈칫했고 서강빈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내 하인으로 있으려면 다른 사람한테 괴롭힘을 당하면 안 돼! 괴롭힘을 당한다면 반드시 갚아주어야 해! 당장 저 사람의 뺨을 쳐!”이 말을 들은 염지아는 입술을 꽉 깨물고 다가와서 오두팔의 뺨을 내리쳤다.“계속해!”서강빈이 말했다. 염지아는 잠깐 망설이더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손을 들었다. 만물상점 안에는 뺨을 때리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오두팔의 입가에 피가 흥건하고 염지아의 힘이 빠진 후에야 그녀는 멈추었다. 염지아는 지금 눈물범벅이 되었고 그녀의 눈빛 속에는 서러움과 분노가 가득했지만 후련함도 더해졌다. 그러고 나서야 서강빈은 오두팔을 만물상점 밖으로 차버리고 차갑게 말했다.“꺼져!”오두팔은 얼른 일어서서 비틀거리며 도망갔다. 서강빈은 가게로 들어가 눈물을 닦고 있는 염정아를 보았다.“지금 바로 청소할게요.”염지아는 바로 뒤돌아 망가진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서강빈은 말리지 않았고 안으로 들어가서 약을 꺼내 염지아에게 건넸다.“얼굴에 발라. 좀 있으면 부었던 게 가라앉을 거야.”염지아는 예상 못 한 일인 듯 놀란 눈빛으로 서강빈의 손에 들린 약을 보다가 얼른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감사합니다, 주인님.”“감사하긴, 내 가게의 사람인 이상 절대 네가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할 거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너랑 이런 얘기하고 싶지 않아. 효정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송해인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서강빈을 보면서 잠깐 침묵하더니 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자세한 건 몰라. 효정 씨는 어제 천주로 갔고 듣자 하니 천주 권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겼나 봐.”‘천주 권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천주에 가야겠어.”“네가 천주로 가서 뭐 하려고? 이렇게 권세도 없고 지위도 없는 네 처지에 천주 권씨 가문을 위해 뭘 할 수 있는데?”송해인이 살짝 화난 어투로 따져 물었다. 서강빈이 변했다. 예전에 자신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리던 남자가 이제는 다른 여자를 위해 천주로 가려 한다.“이건 내 일이니까 상관할 필요 없어.”서강빈이 차갑게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송해인은 떠나려는 서강빈을 황급히 막아서며 소리쳤다.“서강빈! 너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거기는 천주야! 거물들이 모여있는 위험한 곳이라고! 네까짓 게 무슨 자격과 능력으로 천주에 간다고 하는 거야? 그리고 천구 권씨 가문의 일이 너랑 무슨 상관인데? 정말 권효정이랑 결혼해서 권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고 싶은 거야? 네가 권효정 씨를 돕고 싶다고 해도 너한테 그럴만한 능력이 있어? 이렇게 간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어?”송해인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린 채 불만스럽게 얘기했다.“송해인, 내가 어떤 결정을 하든 그건 내 일이야. 너한테 천주는 거물들이 모여있는 위험한 곳이겠지만 나한테는 아니야! 내가 천주로 가는 것은 그간 효정 씨와의 정을 생각해서 권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보러 가는 거야.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당연히 도울 거고. 그리고 내가 권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인데?”이 말을 들은 송해인은 표정이 변하더니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소리쳤다.“서강빈! 지금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거잖아! 권씨 가문에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무턱대고 가는 건 네 목숨
서강빈은 반짝이는 침을 두 남녀의 목에 대고 차갑게 말했다.“똑바로 말해. 너희들이 누군지, 왜 나를 따라온 건지. 말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죽어.”벽까지 밀린 두 남녀는 놀라서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그들은 서강빈이 반응하는 속도를 보고 자신들이 서강빈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은 시선을 마주쳤고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도련님, 저희는 서씨 가문의 사람들입니다.”이 호칭을 들은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렸고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며 온몸에서 베일듯한 한기가 맴돌았다.“서씨 가문? 누가 너희들을 보냈어?”서강빈이 큰소리로 물었다. 손에 있던 침은 두 사람의 목을 찔렀고 피가 흘렀다.남자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둘째 어르신이 보내셨습니다.”“서경호?”서강빈은 굳은 표정을 두 남녀를 훑어보았고 그들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서야 침을 거두었다.그러자 두 사람은 자신들을 짓누르고 있던 죽음의 공포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서강빈이 이미 사라진 뒤였다. 하지만 그들의 귓가에는 사신의 목소리와도 같은 차가운 말이 맴돌았다.“가서 서경호한테 전해. 나를 찾으려 하지 말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를 죽이고 서씨 가문을 멸할 수도 있어.”폭탄 같은 이 말은 두 사람의 귓가에서 맴돌며 온몸에 소름이 끼치게 했다. 그들은 이게 장난 소리가 아니라 경고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때, 휴대폰이 울렸다.남자가 전화를 받자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됐어, 뭐라고 해?”“둘째 어르신, 자기를 찾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남자가 말을 더듬었다.“그렇지 않으면 뭐?”“둘째 어르신을 죽이고 서씨 가문을 멸하겠다고 했습니다.”“...”전화 저편의 서경호가 침묵했다. 한참 후, 그는 차가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허허, 역시 그 여자 아들이야. 성격도 똑같네. 너희들은 먼저 돌아와. 다른 사람을 붙여서 왜 천주에 왔는지 알아보라고 할 거야.”“네,
기세등등한 하인들을 마주한 서강빈은 표정이 굳어지고 미간을 치켜들었다.“당장 꺼져! 안 꺼진다면 때리라고 명령을 내릴 거야!”집사가 차가운 목소리로 위협했지만, 서강빈은 태연하게 말했다.“나는 권효정 씨를 만나야겠어.”“젠장! 네가 오늘 순순히 물러서지 않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당장 저 자식을 내보내!”집사가 명령하자 뒤에 있던 하인들은 몽둥이를 들고 서강빈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서강빈이 손을 들자 몽둥이들은 내력에 의해 모두 부러졌고 하인들은 표정이 크게 변했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내력이 일으킨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그들은 모두 뒤로 고꾸라져서 신음이 끊기질 않았다. 이 광경을 본 집사는 겁을 먹고 소리를 질렀다.“너, 너 뭐 하는 거야? 분명히 말하는데 여기는 천주 권씨 가문이야! 네가 감히 여기서 난리를 친다면 절대 살아서 천주를 나갈 생각을 하지 마!”서강빈은 한 걸음 다가가서 차갑게 말했다.“나는 당신네 아가씨를 만나야겠어.”서강빈의 몸에서는 살기가 넘실댔다. 그 모습을 본 집사는 놀라서 몸을 덜덜 떨며 황급히 소리쳤다.“알겠어. 지금 당장 가서 말을 전할게.”말을 마친 집사는 허겁지겁 마당을 가로질러 한걸음에 중당까지 달려가서 소리쳤다.“둘째 어르신! 어떤 놈이 밖에서 아가씨를 만나겠다면서 우리 하인들을 여럿이나 다치게 했습니다.”중당 안에는 넓적한 얼굴에 진한 이목구비를 한 중년 남자가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중년 남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 자식 이름이 뭐야?”“모, 모르겠습니다...”집사가 대답하자 중년 남자는 차갑게 말했다.“사람들을 더 데리고 가서 쫓아내! 그래도 안 간다면 다리를 부러뜨려서 강물에 던져버려!”“네, 둘째 어르신. 지금 당장 사람들을 부르겠습니다.”집사는 명령을 받고 중당을 나섰다. 이윽고 아름답고 우아한 분위기를 가진 권효정의 엄마, 손이란이 옆문으로 들어와서 쌀쌀하게 말했다.“무슨 일이에요?”중년 남자는 얼른
서강빈은 집사의 몸을 넘어 리조트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경보음이 울렸고 검은 정장을 입은 타자들이 곳곳에서 쏟아져나와 서강빈을 둘러쌌다. 대략 백여 명 정도 되었고 인원수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서강빈은 주변의 사람들에 의해 겹겹이 둘러싸였다.서강빈은 미간을 찡그린 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저 자식을 막아!”누가 낸 소리인지 모르지만, 타자들은 빠르게 서강빈을 향해 돌진했다. 주먹과 다리를 휘두르고 일부 사람들은 심지어 비수를 꺼내 서강빈을 겨누었다. 하지만 전혀 겁이 없는 서강빈은 힘을 들이지 않고 다가오는 타자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마치 모래주머니를 던지고 쓰레기를 발로 차는 것처럼 그들을 쉽게 날려버렸고 그들은 마당에 쓰러져서 앓는 소리를 냈다.이때, 중당에서는 권씨 가문의 둘째 아들인 권영준이 차를 마시고 있다가 하인의 보고를 받았다.“둘째 어르신, 큰일 났습니다. 마당에서 지금 싸움이 났습니다!”하인이 다급하게 소리쳤고 권영준은 굳은 표정으로 쌀쌀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아까 아가씨를 만나러 왔다던 자식이 쳐들어왔습니다.”하인이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크게 분노한 권영준이 테이블을 치자 테이블은 순식간에 부서졌다.“감히 권씨 가문을 쳐들어오다니 겁이 없구나! 가자, 가서 어떤 놈인지 봐야겠어!”권영준은 눈에서 불길을 내뿜을 듯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윽고 권영준은 부하들을 데리고 중당을 나와 마당으로 갔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는 순간,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마당에는 500명 정도가 되는 권씨 가문의 경호원들이 쓰러져 있었고 마당의 중간에는 사람 한 명이 우뚝 솟아있었는데 바로 서강빈이였다.“건방진 놈! 너 누구야?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여기는 천주 권씨 가문이야! 네가 함부로 난리를 피워도 되는 곳이 아니란 말이야!”권영준이 근엄한 목소리로 포효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서강빈은 담담한 표정을 하고 권영준을 보면서
창호가 필살기를 쓰면서 돌진해오는 것을 보고도 서강빈은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며 그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러한 표정 변화를 창호는 서강빈이 겁먹었다고 생각했다. 역시 무식한 놈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른다.“너를 지옥에 보내줄게!”창호는 소리를 지르며 무시무시한 내력을 지닌 호랑이 발톱 같은 큰 손으로 서강빈의 심장을 도려내려 했다. 하지만 창호가 예상치 못한 것은 서강빈이 손을 들어 그의 얼굴에 대고 휘젓기만 했을 뿐인데 창호는 뺨을 맞은 것이었다.순간, 창호는 얼굴이 차에 치인 듯 고개를 뒤로 꺾은채 날아갔고 피를 토하며 바닥에 부딪힌 것도 모자라 몇 번 튕겨 오른 다음 내동댕이쳐졌다.그 모습을 본 권영준과 이랑, 그리고 주위에 있던 권씨 가문의 나머지 타자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대종인 창호는 권씨 가문 둘째 어르신의 오른팔로서 이랑과 함께 호랑이와 늑대의 콤비라고 불린다. 권영준은 창호가 뺨을 맞고 날아간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린 채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랑도 서강빈을 다시 훑어보았다. 이랑은 방금 서강빈이 손을 내민 순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이랑 자신도 대가를 뛰어넘은 대종인데 출신도 모르는 애송이 자식이 공격하는 것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이랑, 저 자식을 죽여!”권영준은 서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 권영준이 제대로 화가 났다.이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손을 팔짱 낀 채 늑대의 시선 같은 서늘한 눈길로 서강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의 온몸에서는 시리도록 차가운 살기가 넘실댔다. 이랑이 공격하려던 때, 창호가 바닥에서 일어나더니 고함을 지르며 입가의 피를 닦아내고는 분노하여 소리쳤다.“이랑, 저 자식은 내 것이야! 내가 직접 죽일 거야!”이랑은 미간을 찌푸린 채 몸을 풀고 있는 창호를 보았다. 험악한 표정을 하고 있는 창호의 호랑이 문신도 함께 꿈틀대고 있었다.“야 이 자식아! 내가 너의 뼈 마디마디를 모조리 씹어줄 거야! 나를 건드린 대가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여줄게!”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말을 마친 이랑이 허리춤에서 나비칼을 꺼내 공격하기 시작했다. 칼은 등골 서늘하게 만드는 눈부신 한기를 내뿜으며 서강빈의 심장을 향해 날아갔고 서강빈은 미간을 찡그리더니 창호의 머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얼굴이 피범벅이 된 창호가 이랑의 나비칼을 향해 날아갔고 이 모습을 본 이랑은 깜짝 놀라 빠르게 칼을 거두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창호를 받아 안았다. 가볍게 받아 안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랑은 뒤늦게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창호가 자신에게 부딪히는 순간, 이랑은 빠르게 달려오는 KTX에 부딪힌 것만 같았다. 이랑은 창호와 함께 뒤로 수 미터나 밀려났고 바닥에는 무섭게 생긴 자국만 두 줄이 길게 생겼고 잔디도 다 뒤집혔다.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고 나서야 이랑은 품에 있는 창호가 이미 숨이 끊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강빈의 발길질 한 번에 창호가 죽었다. 이랑은 표정이 크게 변하더니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와 분노가 함께 터져 나왔다.“네가 창호를 죽였어?”이랑이 분노하여 소리쳤고 이 말을 들은 권영준의 표정도 확 변하였다.‘뭐라고? 창호가 죽었다고?’“그 자식의 실력이 나보다 못한 탓이야.”서강빈이 담담하게 말하자 이랑은 빨개진 눈으로 호통쳤다.“너는 죽어야겠다!”이랑이 앞으로 돌진했고 손에 들린 나비칼은 서강빈의 머리를 조준했다. 그 누구도 이 공격을 받고 살아남은 적이 없는 이랑의 필살기였다. 나비칼이 서강빈의 머리를 향해 날아가는 것을 보자 권영준은 차갑게 콧방귀를 끼고 뒤돌아 자리를 뜨려고 했다. 이 녀석이 누구든지 상관없이 죽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하지만 이랑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무척 놀라게 되었다. 그의 나비칼을 서강빈이 두 손가락으로 집었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랑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서강빈이 손가락에 힘을 주어 단단한 나비칼을 단번에 부숴버렸다는 것이다.“이게...”이랑은 깜짝 놀랐다. 이 녀석은 어떤 실력을 갖추고 있길래 손가락으로 나비칼을 부러뜨릴 수 있는가. 이랑이 놀란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