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익은 절을 하며 우는 목소리로 말했고 송해인은 놀라서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당신이 사람을 시켜서 저를 납치했다고요? 무슨 말이에요?”조규익이 사실대로 말했다.“해인 씨의 동생, 송태호가 저희 도박장에서 100억의 도박 빚을 지게 되어 저희가 그를 부추겨서 해인 씨를 납치하게 했습니다. 그 기회를 타서 송태호가 비오 그룹을 차지하게 되면 회사에서 100억을 빼돌려 빚을 갚도록 할 계획이었습니다.”“뭐라고요?”송해인은 아주 놀라며 몸을 살짝 떨었다.‘송태호? 정말 송태호였어! 서강빈이 그날에 한 얘기가 진짜란 말이야?’“서강빈이 당신들한테 시킨 거 아니었어요?”송해인이 묻자 조규익은 당황하며 얼른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송해인 씨, 오해하셨습니다. 서강빈 씨는 당신을 구하러 오신 겁니다. 이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송태호가 꾸민 일입니다. 저한테 증거가 있어요.”말하면서 조규익은 휴대폰을 꺼내 녹음된 통화내용을 들려주었고 그것을 듣고 난 송해인은 몸에 힘이 풀리며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그녀는 이제야 자신이 서강빈을 오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그날 자신이 서강빈의 뺨을 때렸다는 사실까지 상기하게 되었다.“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송해인은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하지만 진기준이 찍은 영상에서는 나를 납치한 그 사람이 서강빈이 지시한 일이라고 말했잖아요...”송해인은 고개를 들어 물었고 고정용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데리고 와.”그날 진기준의 협박하에 영상을 찍었던 그 사람도 들어와서는 바닥에 퍽 무릎을 꿇고 울면서 말했다.“송해인 씨, 잘못했어요. 그날은 진기준, 진 대표님이 저를 협박해서 말한 대로 한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저를 경찰에 넘기겠다고 해서...”쿵, 마른하늘에다 날벼락이었다. 송해인은 몸이 부르르 떨리며 예쁜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이 모든 게 가짜야? 내가 서강빈을 오해한 거야?’송해인이 혼란스러워할 때, 부하 한 명이 들어오더니 편지봉투를 하나 건네면서 말했다.“송
송해인이 만물상점에 도착했을 때는 문이 반쯤 열려있었고 불도 켜져 있었다. 차에서 내린 송해인이 드레스의 치맛자락을 들고 가게 안으로 달려들어 갔지만 아무도 없었고 식탁 위에 그녀가 오후에 줬던 청첩장이 보였다.‘서강빈이 없어?’송해인은 한 바퀴 둘러봤지만, 서강빈을 찾지 못했고 그녀는 쓸쓸한 표정으로 식탁 위에 있는 청첩장을 집어 들고는 빨개진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서강빈은 자신의 결혼식에 오지 않았다...생각에 잠겼던 송해인은 휴대폰을 꺼내 서강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고 열 몇 통을 연달아 걸었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서강빈, 어디 있어, 너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내가 잘못했어. 내가 널 오해했어. 미안해, 제발 전화 한 번만 받아줘...” 송해인은 초조하여 울음을 터뜨렸고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한편, 호텔 결혼식 현장. 진기준은 룸 안에서 아버지랑 얘기하고 있었는데 부하 한 명이 다급하게 뛰어 들어와서는 소리쳤다.“진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진기준은 퍽 하고 부하를 걷어차서는 바닥에 쓰러뜨리고 욕을 퍼부었다.“너 죽고 싶어? 오늘은 나의 기쁜 날인데 어디서 호들갑이야?”부하는 배를 움켜잡고 일어나서는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진 대표님, 정말 큰일 났습니다...”진기준은 얼굴이 굳더니 미간을 찡그리고 물었다.“말해, 무슨 일이야!”“송... 송해인 씨가...”부하는 말을 더듬었고 진기준은 표정이 변하여 다그쳤다.“해인이가 왜?”“그러니까, 송해인 씨가 도망갔습니다!”부하가 소리쳤다. 쿵,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진기준의 머리에 꽂혔고 그는 부하의 멱살을 잡으며 살벌한 눈빛으로 으르렁거렸다.“지금 뭐라고 했어? 해인이가 도망갔다고?”부하는 덜덜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습니다...”진기준은 퍽 하고 부하를 내동댕이치고는 사납게 그를 가리키면서 호통쳤다.“만약 아니라면 너를 죽여버릴 거야!”말을 마친 진기준이 씩씩거리면서 다급하게 룸을 빠져나와 메이크업 룸에 왔는데 송
그중 앞장선 녀석 하나가 손에 도끼를 든 채 차갑게 서강빈을 쳐다보면서 냉소를 띠고 말했다.“야 이 자식아, 진짜로 감히 혼자 오다니, 뒤에 있는 저 여자가 죽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얼른 무릎 꿇어.”서강빈은 차갑게 소리 내 웃고는 그 사람들을 훑어보고 물었다.“연규진이 보냈어?”맞은 편에 있는 녀석들은 안색이 변했고 특히 앞장선 그 남자는 눈썹을 치켜들고 차갑게 말했다.“그래, 이 자식아, 맞췄어! 우리는 규진 도련님의 사람이야! 네가 이미 알았으니까 너랑 시간을 끌지 않으려고. 오늘 네가 스스로 무릎을 꿇고 우리가 너의 손발을 자르게 한다면 우리는 뒤에 있는 저 여자를 놓아줄 거야.”“그러지 않으면 봤지? 저 여자는 바로 죽어!”말이 끝나자 권효정의 곁에 있던 형배는 비수를 든 손을 꺼내 바로 비수를 권효정의 새하얀 목에 대었는데 이미 살결을 파고 들어가 피가 새어 나왔다. 권효정은 발버둥을 치며 소리쳤다.“강빈 씨, 저 상관하지 말아요. 빨리 가요, 빨리 가...”권효정은 찢어질 듯 외쳤다. 그녀는 자신이 서강빈의 짐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더욱이 자신 때문에 서강빈이 어떤 상처를 입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서강빈은 시선을 굳히고 빠르게 사람들을 훑었다.‘16명!’권효정의 곁에 있는 놈까지 열일곱 명이다. 앞에 있는 열여섯 명은 다 개미들이어서 해결하기 쉽다. 주요하게는 권효정의 곁에 있는 저 사람인데 서강빈은 그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고 아마 실력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기운이 많이 가려져 있어서 상대방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판단할 수가 없었다.“야, 뭘 기다려? 생각할 시간 10초 더 줄게, 무릎 꿇어! 아니면 저 여자를 죽일 거야!”앞장선 남자가 호통치며 손에 있는 도끼를 들며 위협했고 서강빈은 미간을 찡그린 채 차갑게 한마디 했다.“10초, 충분해.”“무슨 뜻이야?”앞장선 남자가 반응하기도 전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며 서강빈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사라졌고 수중에 있던 은침을 발사하
“오? 나를 알아보네?”형배가 차갑게 씩 웃으며 하는 말에 서강빈은 어이없는 듯 소리 내 웃고 나서 대답했다.“당신 손에 있는 어두운 별 모양의 문신이 바로 블랙리스트에 들어간 표시잖아.”형배의 팔뚝으로 눈길을 돌리니, 거기에는 검은색의 태양별 문신이 있었는데 바로 블랙리스트의 징표였다. 블랙리스트의 구성원들 모두 이 문신이 있었는데 블랙리스트는 사악함을 대표하는 리스트로서 국내에서 꽤 유명했다.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모두 온갖 나쁜 일을 밥 먹듯이 하는 절대적인 악인들이었다. 그중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지명수배자들도 있었고 무도 대가의 배신자들도 있었으며 눈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악마 같은 살인마들도 있었다.블랙리스트 명단에는 총 100명이 있었는데 모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악랄한 자들이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조건 자체가 사람을 100명을 죽인 자들이어야 했다. 순위가 높을수록 사람을 더 많이 죽인 사람이고 살해당한 사람들의 실력도 더 좋았다.자신의 순위를 높이는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자신보다 순위가 높은 존재에 도전을 걸어 그자를 죽인 다음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하여 블랙리스트 자체가 바로 피로 얼룩진 순위 리스트였고 이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낙으로 삼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의자에 묶여있던 권효정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몸이 흠칫 떨렸다. ‘블랙리스트라고?! 저 사람이 블랙리스트의 킬러였어!’권효정은 천주 권씨 가문의 딸이니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었다. 블랙리스트라는 명단은 툭 까놓고 말하면 지독한 악마들이 살인을 가지고 순위를 매기는 곳이었다. 이 사람들의 손을 빌리는 대가는 아주 컸는데 블랙리스트에서 100위에 있는 사람에게 살인을 청부하는 비용은 20억가량 된다고 한다. 소문에 블랙리스트 1위한테 청부하려면 2000억 가까이 되는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강빈 씨, 빨리 가요. 빨리 돌아가세요, 저는 상관 말아요...”블랙리스트의 킬러를 상대로 권효정
“당신은 블랙리스트 32위 도룡이라면서 딱히 특별한 구석이 없네. 실력이 너무 별로야.”여유로운 웃음을 띤 서강빈의 말투와 태도에는 모욕하는 뜻이 다분했기에 이 말은 형배의 분노를 터뜨리기에 충분했다.“젠장, 너 죽고 싶어?”형배는 크게 화를 내며 풍성한 흑발을 뒤로 넘기더니 폭주하는 배고픈 늑대처럼 주먹을 휘두르며 서강빈을 향해 돌진했다. 서강빈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깔끔하게 주먹을 맞받아쳤다. 이 반격에 형배의 주먹은 아예 부숴져버렸고 팔뚝 전체가 다 균열이 일어 하얀 뼈가 드러나 피가 낭자하였다. 형배는 뒤로 밀려나서는 부서진 주먹을 움켜쥐고 놀란 눈으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송주에 어떻게 너 같은 존재가 있을 수 있어?”깜짝 놀란 형배의 마음은 경악과 공포로 물들었다.“문제 있어? 그저 당신의 시야가 좁았던 거야.”서강빈은 대놓고 비웃었고 이 말을 들은 형배는 마음이 철렁하였다. 순간의 기지로 그는 의자에 묶여있는 권효정에게로 돌진했다. 도망가고 싶은 형배에게 지금 도망갈 유일한 기회는 권효정을 협박하는 것이다. 이윽고 형배는 권효정의 새하얀 목덜미를 붙잡고는 악랄하게 서강빈을 쳐다보며 협박했다.“야 이 자식아, 네가 앞으로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이 여자는 죽어!”말을 하면서 형배는 손에 살짝 힘을 주었는데 목이 졸린 권효정은 얼굴이 빨개지고 숨이 올라오지 않아 아주 고통스러워했다.“강, 강빈 씨... 살려, 살려주세요...”힘겹게 말하는 권효정을 보면서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렸다. 순식간에 역전된 상황에난감해진 그는 차갑게 말했다.“너를 살려줄게. 그 전에 그 여자는 반드시 풀어줘야 해.”“하하하, 이 여자를 풀어주라고? 이 여자를 풀어준다면 내가 살 가망이 있을까?”형배는 발악했다.“그럼 네가 원하는 게 뭐야?”차갑게 말하며 주먹을 꾹 쥔 서강빈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분노가 폭발하고 있었다. 반격할 만한 기회를 노리는 서강빈을 보며 형배가 차갑게 대답했다.“야 이 자식아, 네가 누군지 모
시멘트 더미에 쓰러져 있던 형배는 미약한 숨을 겨우 내쉬면서 두어 번 작게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이래 봬도 나는 블랙리스트 32위의 도룡인데 절대 의뢰인을 배신할 수 없지.”“그래? 그럼 가 죽어.”서강빈은 차갑게 말하고는 망설임 없이 단번에 형배의 머리를 밟아 숨통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있는 타자들의 몸에서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하나 찾아내서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한편, 송주의 한 5성급 호텔에서 형배 일행의 회신을 기다리고 있던 연규진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흥분하여 전화를 받은 연규진이 다급하게 물었다.“어떻게 됐어, 그 자식 죽었어?”창고 안에서 서강빈이 차갑게 대답했다.“규진 씨, 지금부터 도망가. 내가 당신 죽이러 갈 거니까.”연규진은 이 말을 듣고 몸을 덜덜 떨었다.“너, 안 죽었어? 형배는?”당황한 연규진이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블랙리스트 32위에 있는 도룡 말이야? 죽었어.”태연하게 대답하는 서강빈의 말에 연규진은 몸을 또 한 번 떨더니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형배가 죽었다고?’고액을 주고 블랙리스트에서 의뢰한 고수인데 형배마저도 서강빈에게 죽다니... 연규진에게 두려움이 몰려왔다.서강빈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이제야 느낀 연규진은 빠르게 전화를 끊고 부하에게 소리쳤다.“빨리! 송주를 떠나자! 당장 송주를 떠나야 해!”“도련님, 무슨 일입니까?”어리둥절해서 묻는 부하에게 연규진이 크게 화를 냈다.“궁금한 게 뭐가 그렇게 많아, 당장 송주를 떠나야 한다니까!”더 지체하다가는 자신도 여기서 죽을까 봐 겁이 난 연규진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빠르게 달빛을 가로질러 송주를 떠나 강성으로 갔다.한편, 서강빈은 권효정을 데리고 만물상점으로 돌아왔다. 권효정은 너무 놀란 탓에 온몸이 덜덜 떨렸고 제대로 걸을 힘도 없었다. 하여 서강빈은 어쩔수 없이 그녀를 안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이 만물상점의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익숙한 인영 하나가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는데 그
“더 볼일 있어? 없으면 이만 돌아가.”담담하게 말을 마친 서강빈이 뒤돌아 가게로 들어가려 하는데 정신이 번쩍 든 송해인이 다급하게 그를 불러 세웠다.“서강빈, 내가 왜 너를 찾아왔는지 알고 싶지 않아?”서강빈은 걸음을 멈추고 냉랭하게 말했다.“알고 싶지 않아. 우리 사이에 더 이상의 많은 얘기는 필요 없게 됐어. 오늘이 지나면 너는 그 사람의 아내가 될 테니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서강빈의 매정한 말을 들은 송해인은 몸을 덜덜 떨면서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새도 없이 소리쳤다.“서강빈, 너한테 얘기하려고 왔어. 지난번에는 내가 오해한 거라고, 내가 잘못했어. 나 방금 결혼식에서 도망쳐 온 거야...”말을 마친 송해인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 숨넘어갈 듯 울고 있었다.“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우리가 이렇게까지 된 건 다 내 잘못이야. 나를 떠나지 않으면 안 돼? 나는 정말, 정말 너랑 다시 잘해보고 싶어.”마음이 철렁 내려앉은 서강빈이 잠시 굳어서 그 자리에 서있었지만 이내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해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지금에 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우리는 이미 이혼했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그리고 나한테는 지키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말하면서 서강빈은 소파에 있는 권효정을 쳐다보았다. 권효정을 구하러 가던 순간부터 서강빈은 자신이 지금 지키고 싶은 사람이 권효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말을 들은 송해인은 안색이 크게 변했고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서강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너, 너 뭐라고?”서강빈은 뒤돌아 송해인을 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미안해. 나는 이제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송해인은 날벼락을 맞은 듯 머리가 새하얘져서는 소파에 있는 권효정을 보면서 망설이다가 물었다.“효정 씨야?”“응.”서강빈의 대답에 송해인은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고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지금에야 그녀는 서강빈을 다른 사람에게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밀어낸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은침이 들어가자 가슴 통증이 사라졌지만 호흡이 아직 고르지 못했기에 서강빈은 빠르게 송해인을 안아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때 몇 대의 웨딩카가 갑자기 문 앞에 멈춰섰고 진기준이 양미란과 송태호를 포함한 사람들을 데리고 달려왔다. 그는 서강빈이 송해인을 안아서 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서강빈의 옷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서강빈! 너 해인이한테 뭐한 거야?”양미란도 얼른 다가와서는 송해인을 서강빈의 품에서 빼냈다.“딸, 왜 이래? 엄마 놀라게 하지 마...”초조하게 소리치던 양미란은 송해인의 안색이 아주 안 좋은 것을 발견했다.“서강빈, 너 우리 해인이한테 뭐 했어?”양미란이 분노에 차 소리쳤고 송태호도 달려와서는 서강빈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으면서 난리 쳤다.“미친놈! 너 감히 우리 누나한테 약을 먹여?”미간을 찌푸리고 한마디도 안 하고 있던 서강빈은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였고 송태호가 다짜고짜 휘두르는 주먹에 맞았다. 표정이 어두워진 서강빈이 송태호를 걷어차서 바닥에 쓰러뜨렸다.“악... 이런 젠장!”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진 송태호는 배를 움켜쥐고 토했다. 진기준은 그 모습을 보고 손짓하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저 자식을 잡아!”진기준의 부하들이 맹수처럼 돌진하자 서강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내 얘기 좀 들어봐.”“얘기는 무슨! 너 죽여버릴 거야!”진기준이 소리치자 부하들은 허리춤에 있는 삼단봉을 꺼내 들고 서강빈을 공격하려 했다. 어쩔수 없이 방어를 하게 된 서강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을 모두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오른 진기준은 바로 허리춤에서 비수를 꺼내 들고 혼란을 틈타 서강빈의 복부를 향해 찔렀다.서강빈의 미간에 차가운 빛이 번쩍이더니 비수를 든 진기준의 손을 빠르게 잡아서 꺾어버리고 진기준의 무릎을 찼다. 외마디 비명을 내뱉으며 서강빈에게 제압당한 진기준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젠장! 서강빈, 너 당장 이 손 놔!”진기준은 악을 쓰며
만약 서강빈이 단지 의술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선종은 이 정도까지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의학은 도문에서 기원했지만, 지금의 의사 중에서는 도술을 아는 이들이 적었다. 그러나 서강빈은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도술 면에서도 이렇게나 조예가 깊으므로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서강빈은 다가가서 이선종을 일으키며 말했다.“선생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께서도 어르신의 병세를 걱정하여 혹시나 돌팔이를 만날까 봐 그러신 거잖아요.”이선종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서 선생, 선생을 보니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선생은 저보다 의술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성품도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서강빈은 이선종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바라보았다.지금 임성진 어르신의 얼굴은 점점 혈색이 돌아오고 곁에 있는 기기에서도 몸의 각종 수치가 호전되고 있다고 나타나고 있었다.임호는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서 선생을 큰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데 서 선생께서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보잘것없는 이 동생을 거둬주십시오.”말하며 임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서강빈을 향해 주먹을 모은 채로 성의를 표했다.서강빈은 임호에 대해 첫인상이 무척 나빴지만, 임호가 가게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순간부터 서강빈이 임호에 관한 생각도 180도 변하였다.하여 서강빈은 거절하지 않고 임호를 부축하여 일으키면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할아버지를 잘 보살피세요. 내가 남긴 처방전을 따르면 어르신께서는 열흘이 지나지 않아 완치하실 것입니다.”임호는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형님. 할아버지께서 상황이 좋아지시면 반드시 감사 인사를 올리러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서강빈은 임호의 오른 다리를 한번 보더니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다음에 올 때 x 레이 사진을 함께 가지고 오세요.”임호는 영
이선종은 돋보기를 쓰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듯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이 약재가 백 년이 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서강빈이 내린 처방을 본 이후로 서강빈을 대하는 이선종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였다. 심지어 서강빈의 앞에서는 초보인 것 같은 모습까지 보였다. 서강빈은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련초를 한번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습니다. 백 년 된 설련초가 맞아요.”서강빈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임호는 감격하여 말했다.“서 선생, 그 말은 우리 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그렇다고 볼 수 있죠. 먼저 어르신께서 탕약을 드시고 난 후에 다시 살펴보죠.”서강빈은 고개를 세게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니, 너무 다행이에요. 서 선생, 우리 할아버지께서 무사할 수만 있다면 우리 임씨 가문에서는 서 선생의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서강빈에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니 도련님께서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이 설련은 줄기만 사용해야 합니다. 꽃잎은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폐의 기를 상하게 하여 오히려 어르신께 독이 될 수 있어요.”서강빈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임호는 설련을 곁에 있는 간호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손인수가 서둘러 다가오며 말했다.“도련님, 이런 일은 저에게 맡기세요.”이렇게 말하며 손인수는 고개를 돌려 서강빈을 바라보았다.서강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인수의 의술로 보아 이 정도로 간단한 일을 처리하는 건 거뜬했다.손인수는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무척 공손하게 서강빈을 향해 인사를 건넨 다음에야 병실을 나섰다. 이선종은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서 선생과 손 신의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습니까?”“그런 셈이죠.”서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그제야 자신이 병실에 도착
이선종이 듣기에 서강빈의 말은 지금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임성진 어르신은 천주 군사구역의 고위층 지도자였다. 만약 정말 병을 완치할 수 있다면 오늘까지 끌었을 필요가 있겠는가? 설마 천주의 모든 유명한 의사들이 다 서강빈보다 못하다는 말인가?서강빈은 침대에 누워있는 임성진 어르신을 살펴보았다. 어르신의 얼굴이 창백하고 호흡이 미약한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한 듯 보였다. 서강빈은 먼저 진혼 부적을 사용해서 총알 파편을 제거한 후 어르신한테 침을 놓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 보아서는 반드시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를 먼저 안정시켜야 했다.“임성진 어르신의 지금 상태로 보아 바로 총알의 파편을 꺼내면 안 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기맥을 안정시켜야 해요. 선생님께서는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지요?”서강빈은 고개를 돌려 이선종을 보면서 말했다.“흥! 자네는 말을 참 쉽게 하네.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데 자네처럼 젊은 사람이 무슨 수로 어르신의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말인가? 그리고 임성진 어르신은 지금 폐 기능이 감퇴한 것뿐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네.”이선종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선생님, 그 말은 너무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의술을 놓고 말할 때도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지는 지금 결론을 내기에는 이른 것 아닌가요?”서강빈은 말을 마치고 곁에 있는 책상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들고 능숙하게 써 내려간 처방을 이선종에게 건네며 말했다.“선생님, 내 처방전이 어르신의 병세를 안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을지 한번 보십시오.”이선종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서강빈의 손에서 처방전을 건네받아서는 자세히 읽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도 가소로운 표정을 하고 있던 이선종은 서강빈의 탕약 처방전을 보고 나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게... 이 처방
이선종은 성회에서 유명한 신의였는데 원장의 체면이 아니면 멀리서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봐주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복잡하여 이선종도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 원장님, 감사합니다.”임호는 먼저 원장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있는 서강빈을 가리키며 말했다.“하지만 저희 할아버지의 병은 서 선생이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서강빈의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을 대하는 임호의 말투와 태도는 큰 변화가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보아낼 수 있었다. 더는 예전의 거만함이 없었다.“뭐라고요? 서 선생? 무슨 서 선생이요? 하느님이 와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이선종의 표정에는 분노한 기색을 띠고 고개를 들어 임호를 보며 말했다.“어르신은 폐에 총알의 잔해가 남아있기 때문에 병든 것입니다. 아무리 최고급의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꺼낼 수가 없어요. 그 잔해가 남아있는 한 무슨 약을 쓰더라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강빈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총알의 잔해일 뿐인데 그 정도까지는 엄중하지 않죠.”‘뭐라고? 총알의 잔해일 뿐인데?’이 말을 들은 이선종은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자네가 의술을 정말 아는지 의심되네. 잔해가 체내에 남아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어? 장기가 쇠퇴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어떤 사람이 와도 이렇게 엄중한 병은 치료할 수가 없다네.”이선종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가 보기에 서강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었다. 하여 그의 말속에는 오만함이 다분했고 무례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져와서 저 사람한테 보여주세요!”주 원장은 다급하게 곁에 있는 간호사를 불러서는 손짓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임성진 어르신의 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와서 서강빈에게 건넸다. 서강빈은 x 레이 사진 속의 음영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여기일 것이다.x 레이 사진 속의 거대한 음영을 보고 임호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휘청
“서 선생, 잘못했습니다. 제발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지금 더 버티기 어렵습니다.”이렇게 말하며 임호는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그는 무릎을 꿇는 순간부터 서강빈이 승낙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고 마음을 먹었다.사실 서강빈은 이미 우남기 어르신한테서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방금 그린 진혼 부적도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임호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임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호의 행동은 서강빈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대장부로서 무릎을 꿇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더욱이 임호처럼 도도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가게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의 효심을 증명하기에 족했다.이렇게 생각한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했다.“서 선생.”임호는 감격한 얼굴로 서강빈을 쳐다보았다.“그래요, 도련님, 어르신한테 갑시다.”서강빈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말 저를 용서하신 겁니까?”임호는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두 눈으로 말했다.서강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임호를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까지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대장부였다.“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서 선생, 이리로 오십시오.”임호는 이렇게 말하며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조금 전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너무 오래 있은 탓에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다시 말썽을 일으켜 임호는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넘어지고 말했다. 서강빈은 손을 뻗어 임호를 부축하고는 은침을 하나 떠내 임호의 무릎에 있는 혈 자리에 꽂았다.은침의 위에 영기가 맴돌더니 바로 임호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윽고 따뜻한 느낌이 몸에 퍼지면서 임호의 무릎에 있던 상처는 기적처럼 완치되었다.“이게...”임호는 깜짝 놀랐다. 대단한 한의사, 심지어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의사까지 다 찾아가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강빈은 임호에게 눈길을 보내지도 않고 곁에서 청소하는 염지아에게 말했다.“그만하고 손님 보내드려.”염지아는 서둘러 손에 있던 걸레를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돌아가십시오.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염지아는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권효정한테서 어느 정도 맥락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임호처럼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염지아도 좋게 보지는 않았다.천주에서 오면 어떤가? 그 누가 와도 주인님한테 병을 치료해달라고 하려면 공손한 태도로 부탁해야 한다.임호는 침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말했다.“서 선생, 어제의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한테 뭐든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며칠 버티지 못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임호는 말하면서 염지아를 지나치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당장 나가세요!”염지아는 앞으로 다가가서 임호의 길을 막았다.임호는 염지아를 한번 보더니 주먹을 꽉 쥐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문 앞까지 물러났다.두 시간 동안 임호는 문 앞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임호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임호는 다시 돌아서서 서강빈에게 말했다.“서 선생, 제발 부탁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를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겠습니다.”말을 마친 임호는 문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미안하지만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강빈은 여전히 임호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말했다.“서 선생, 만약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임호는 말하면서 연신 절을 올렸다. 눈가가 빨개진 임호를 보면서 염지아와 권효정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물론 임호가 어제는 행동이 지나쳤지만, 그의 효심은 용서를 받을 만했다.바로 이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순식간에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졌다.임호는 비를
손인수는 서강빈의 의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임성진 어르신이 잠시는 무사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어르신께서 다시 위독해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손... 손 신의, 서강빈이 안 온다고 합니다.”임호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서강빈 씨는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닙니다. 얘기를 어떻게 하신 겁니까?”손인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게...”임호는 그 물음에 마음이 찔렸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그때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뭐라고요? 도련님, 부탁하러 간 사람이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납치 아닙니까?”손인수의 마지막 말은 거의 호통치듯 했다.임호도 아주 자책하며 말했다.“손 신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할아버지께서 지금 정말 위독하십니다. 제발 부탁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임호의 강인한 얼굴에서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손인수는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사실대로 말하면 제가 어르신을 살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닙니다.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그럴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손인수의 말에 임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서 황급하게 물었다.“손 신의, 그 말씀은 신의께서도 방법이 없다는 말씀입니까?”지금까지 임호는 모든 희망을 손인수에게 걸었었다. 아무래도 5년 전에 임성진 어르신의 고질병이 재발했을 때, 손인수가 한번 살려준 적이 있었다.이번에 임호가 서강빈에게 그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도 손 신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손인수의 그 말은 그의 모든 신념을 한순간에 다 무너뜨렸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할아버지의 곁에서 자라왔는데 군인이 된 이후로 항상 할아버지를 인생의 롤모델로 여겼었다. 할아버지가 곧 자신을 떠난다는 생각에 임호는 더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도련님, 제가 돕지 않으려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그때는 운이 좋았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임성진 어르신의 상태는 그때보다 더 심각합니다. 제
말을 마친 임호는 분노하여 콧방귀를 끼고는 병실로 들어갔다.“동진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송주의 시장 허명수가 조용히 병실을 나서면서 방동진에게 물었다.“참나, 임호 도련님께서 너무 경솔하신 탓에 서 선생을 모셔오지 못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한테 손을 대려고까지 했어요. 우남기 어르신께서 중간에서 수습하지 않으셨다면 정말...”방동진은 여기까지 말하고 난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고, 임호도 참.”허명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를 거닐며 말했다.“서강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임성진 어르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해?”“아주 확신합니다.”방동진은 이렇게 말하며 난처한 표정으로 허명수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아무래도 남자인데 남자 구실을 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입에 담기가 어려웠다.허명수는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당장 서강빈한테 전화해봐. 지금 당장 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임성진 어르신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으셔.”방동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시장님, 그때 상황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얘기하십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라고 해도 저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동진아, 임성진 어르신의 안위가 달린 일이야. 그 사람을 납치해오더라도 데리고 와야 해.”허명수는 명령하는 말투로 말했다.“시장님, 문제는 저한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서 선생이 나서주기를 원한다면 임호 도련님께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얘기도 있잖습니까?”방동진은 서강빈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호가 만약 예의를 차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면 우남기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서강빈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임호가 아예 서강빈을 무시하고 심지어 서강빈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는 것이다.서강빈이 참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동진조차 임호가 너무했다고 생각이 들었다.하여 방동진은 임호가 강효 그룹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일에 더는 관여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서강빈은 차갑게 곽수철을 쳐다보며 얼음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곽수철, 설마 오늘 여기를 살아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뭐라고?’곽수철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들었고 서강빈과 눈이 마주쳤다. 서강빈의 눈빛에서 그는 섬뜩한 살기를 느꼈다.“너... 너 감히 나를 죽인다고?”곽수철은 서강빈이 감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절대 믿지 않았다. 곽수철은 자신이 킬러를 고용해서 서강빈을 죽일 수만 있지 절대 서강빈이 자신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서강빈은 이 작은 송주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일 뿐이다. 그런 서강빈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달빛이 비치지 않은 깊은 밤에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사람 죽이기 딱 좋아. 네가 장소를 아주 잘 골랐어. 시간대도 잘 골랐고.”서강빈은 고개를 들고 고요한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아니... 서강빈, 너는 나를 죽이면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놔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곽수철은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많은 돈을 아직 다 쓰지 못했고 여자들과도 더 놀고 싶었다. 그리고...어찌 됐든 지금 그는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말해. 저것들은 다 무슨 사람들이야?”서강빈은 곽수철의 가슴을 밟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내가 말한다면 너... 너는 나를 놔줄 거야?”곽수철은 겁을 먹은 얼굴로 말했다. 서강빈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곽 대표, 시간을 아껴. 지금 피가 빠져나오는 속도로 봐서는 5분 안에 죽게 될 거야.”말하면서 서강빈은 곽수철의 허벅지에 꽂힌 칼을 세게 휘저었다. 곽수철은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다. 곽수철처럼 곱게 자란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몇 초가 지난 후, 곽수철은 연신 애원하며 말했다.“서강빈, 말할게, 내가 다 말할게! 제발 나를 그만 괴롭히고 나 좀 놔줘!”“말해.”